A Musical Genius Who Lives Twice RAW novel - Chapter 72
72화
갑작스러운 휴식 시간이 찾아왔다.
나, 홍윤서, 조은솔, 고희범, 성민아까지 모두가 스튜디오 한자리에 모인 상황.
“그러니까 어디서부터 설명을 해야 하나.”
김이철은 비니를 한 손에 들고 빙글빙글 돌리다가 말했다.
“너희들 애니메이션은 좀 보냐?”
“저 봐요.”
“저도.”
고희범과 홍윤서가 손을 들었다.
고희범이야 원래부터 인터넷 요정 수준으로 컴퓨터에 눈을 박고 사니까 이상할 것도 없었다.
홍윤서도 은근 저쪽으로 조예가 깊었다.
군대에서 애니메이션을 배웠다나.
물론, 나나 조은솔은 그쪽과 썩 거리가 있었다.
‘소개해 줄 사람이랑 애니메이션이 어떤 관계가 있는 건가?’
작은 의문을 품은 순간이었다.
“그래도 이건 모를 수가 없을걸?”
김이철이 노트북을 두드리더니 미튜브에 들어가 어느 애니메이션을 재생했다.
옛날 애니메이션 채널에서 틀어 줬을 법한 10년 이상 지난 애니메이션.
그런데 그 오프닝 송이.
“아!”
인트로를 듣자마자 단박에 알 정도였다.
“저 이거 알아요. 와, 진짜 얼마 만에 듣는 거지?”
조은솔이 화들짝 놀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그런데.
이 노래를 아는 건 나도 마찬가지였다.
‘이 노래, 알 것 같아.’
그냥 멜로디만 아는 게 아니었다.
제목까지 선명했다.
거의 12년은 더 지난 옛날 애니메이션, [별빛 아이]의 오프닝 곡이었다.
제목이 뭐였더라.
별바라기였나.
그렇게 본격적으로 노래가 시작되기를 잠시.
“와, 진짜 잘 부른다.”
식구들이 저마다 놀란 목소리를 연발했다.
“그러게요. 어릴 때는 몰랐는데 다시 들어 보니까 내공이 느껴지네.”
“발성이 장난 아니네. 레알루다가.”
추억을 넘어 곡 그 자체에 감탄한 눈치.
그 소감은 나도 마찬가지였다.
‘대단한데.’
완성도가 엄청났다.
단순히 잘 부른 수준이 아니라, 업계에서 잔뼈가 제대로 굵은 프로의 느낌.
내심 감탄하고 있으려니 김이철이 피식 웃더니 말했다.
“내가 너희한테 소개해 주려는 친구가 이거 부른 가수야.”
“아.”
이제야 김이철이 이 사람을 추천한 이유가 이해가 되었다.
‘이 정도면 내 방송에 딱 맞기는 하지.’
노래를 기본적으로 잘 부르고, 곡 자체도 들으면 바로 알 정도로 유명하다.
그렇다고 당장 활발하게 활동하는 프로는 또 아니지.
딱 내가 요구한 포지션에 걸맞은 사람이었다.
‘누구나 알 만큼 유명하지만, 그렇게 막 뜨겁지는 않은.’
방송에 화제를 끌어모으기에 충분하다.
이 정도라면 방송에 출연시킬 수만 있다면 충분하겠다 싶다.
내가 열려는 가요제 취지에도 딱 맞지 않나.
분야를 막론하고 누구나 출연해서 자기 실력을 한껏 뽐낼 수 있는 것.
좋은 홍보가 되겠다.
그렇게 생각한 찰나였다.
‘다 좋은데, 괴팍하다는 건 뭐지?’
아까 김이철이 언급한 말이 가슴속에 걸렸다.
성격이 안 좋다는 건가.
아니면 뭔가 이유가 있어 노래를 부르기 어려워졌다는 건가.
나는 감이 안 잡혀서 물었다.
“이분, 혹시 어떤 사정이라도 있나요?”
“그게 말이지.”
김이철은 헛기침을 뱉더니 말했다.
“너희들, 히키코모리라고 들어봤니?”
“…….”
그 말에 나는 눈을 깜빡이고는 말했다.
“히키코모리요?”
* * *
히키코모리.
방에 갇혀서 안 나오는 사람을 말하는 신조어였다.
요즘은 신조어도 아니다.
그냥 알 사람 다 아는 단어.
‘히키코모리라고? 가수였던 사람이?’
가슴속에서 의문이 고개를 치켜들었는데 김이철이 헛기침을 뱉더니 말했다.
“히키코모리는 조금 너무 나갔나? 지금은 따로 가수 활동을 안 해. 갑자기 관뒀지.”
“왜요?”
조은솔이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물었다.
“이렇게나 노래를 잘 부르는데요?”
“참 복잡한 사정이 있었는데.”
김이철은 착잡한 표정으로 애니메이션 오프닝 화면을 바라보면서 말했다.
“보통 이런 애니메이션은 해외 곡을 그대로 들여오기보다는, 한국에서 번안하거나 창작곡을 넣는 경우가 많은 거 알지?”
“네, 거의 다 고쳐서 넣죠.”
이쪽 방면의 전문가인 고희범이 손을 번쩍 들었다.
“일본은 음원 라이선스 문제가 많이 복잡해서 국내로 들일 때는 창작곡을 붙일 때가 많다고 들었어요.”
“이 친구가 잘 아네. 그게 별빛 아이도 마찬가지였어. 일본에서 트는 오프닝을 들어보면 국내판이랑은 노래가 완전히 다르거든. 한번 들어 볼래?”
그는 곧 마우스를 누르더니 빠르게 원곡을 재생했다.
그런데 그 노래가.
‘원곡이라고 특별히 더 낫지는 않네.’
조금 미묘했다.
내 입맛에는 한국식으로 고친 게 더 낫다고나 할까.
특히 보컬이 그러했다.
일본에서 활동하는 보컬들은 코 먹는 발성을 낼 때가 많은데, 이 곡도 그런 성향이 있었다.
‘개성은 있지만, 호불호가 심하게 타겠네.’
그래도 듣는 맛은 있다.
대충 그 정도의 감상을 느끼고 있으려니 김이철이 말했다.
“너희들이 듣기에는 한국이랑 일본, 어느 쪽 버전이 더 나은 것 같아?”
“저는 한국이요.”
“한국.”
“음…… 다수결에 의해 한국.”
도미노처럼 나온 식구들의 반응에 김이철은 피식 웃더니 말했다.
“뭐, 양쪽 다 매력 있지만 한국 버전이 특별히 나쁘지는 않다는 정도는 동의하지?”
“네.”
스튜디오 녹음을 겪으며 프로 가수들에 대한 존경심이 부쩍 늘어난 홍윤서가 고개를 열심히 끄덕였다.
그다음 순간이었다.
김이철의 입에서 완전히 예상을 벗어난 말이 튀어나왔다.
“그런데, 이게 못 불렀다고 테러를 당했어.”
저 곡이 못 불렀다는 말이었다.
“뭐 노래를 이따위로 불렀냐고 매일 같이 항의가 빗발치듯 쏟아졌지.”
“이게요?!”
“아니, 이렇게 잘 부르는데?”
“그 사람들은 귀를 머리가 아니라 엉덩이에 달고 다닌대요?”
식구들이 저마다 개성 있는 리액션을 뽐냈다.
동감한다.
말도 안 된다.
취향 문제가 있을 수는 있지만, 객관적으로 말하건대 결코 못 부른 건 아니었다.
뭔가 사정이 있겠지.
그런 생각을 하는 찰나.
“누군가한테는 한국에서 곡을 바꾼 거 자체가 기분 나쁜 일이거든.”
김이철은 한숨을 내쉬더니 말을 이었다.
“원작 마니아 중 극성인 사람들 사이에서 말이 많았지. 일본판이 더 좋았는데, 왜 그걸 고쳐서 넣었느냐. 그것도 왜 창작곡으로 제멋대로 바꿨느냐. 가수는 죽음으로 사죄해라. 사과문 써라 등등. 회사로 항의 메일이 잔뜩 쏟아졌다니까. 전화부터 편지까지. 정신이 없을 정도로 쏟아졌지.”
“…….”
“대다수 시청자는 그런 거 신경 안 썼겠지만. 알잖아. 원래 어딜 가든 만족한 사람들은 조용하고, 목소리 큰 사람들이 눈에 띄는 거.”
대충 들으니까 사정을 알 것도 같았다.
팬들한테 집중적으로 공격을 당했고, 여기에 상처를 입어서 가수 활동을 그만뒀다는 거 아닐까.
“저도 이 애니메이션은 꽤 재밌게 봤는데, 이런 일이 있는 줄은 전혀 몰랐어요.”
조은솔이 떨떠름한 목소리로 중얼거리려니 김이철이 피식 웃고는 말했다.
“아는 사람만 아는 일이지. 아마 인터넷에 검색해도 찾아보기 어려울걸. 업계 관계자들 사이에서나 좀 알려져 있을까.”
“그래도 음악을 포기하실 정도로 상처를 받으셨을 줄이야.”
“사람 멘탈이 생각보다 연약해.”
“아무리 그래도 싫어하는 사람보다는 좋아하는 사람이 더 많았을 것 같은데요.”
조은솔이 아쉬운 목소리로 말한 순간이었다.
“가수는 한 명이니까요.”
내가 입을 열었다.
“아무리 소수한테 공격을 받았다고 한들, 그 공격을 받는 사람이 한 명이잖아요. 감당하기 어려웠을 거예요.”
흔한 일이었다.
대중의 폭력은 생각보다 집요하다.
개개인에게는 사소한 한 마디였을 게, 당사자에게는 한 마디가 아니다.
수십, 수백 혹은 그 이상이 될 수도 있는 일이었다.
“당장 주위만 봐도 그렇잖아요. 학교 교실에서 한두 명만 적으로 돌려도 온 세상이 다 불안해지지 않나. 모두가 날 싫어하는 것 같고. 대중에게 노출된 직업은 이거랑 비교도 안 되겠죠. 싫어하는 사람이 최소 몇백 명 단위로 붙을 텐데.”
가수로서 활동해 본 나이기에 뼈저리도록 아는 일.
‘혹평 말 몇 마디만 들어도 인간 불신에 시달린 사람이 한둘이 아니었지.’
높은 자리에 올라갔다는 건, 그만큼 적이 많다는 말과도 다르지 않았다.
나는 어째서인지 말을 쏟아 내고 싶은 기분이 되었다.
“많이 힘들었을 거예요. 세상 모든 사람이 다 적으로 보였을 거고. 업계에서 다시 설 수 있을지 의심도 들었을 거고.”
“저 친구 말이 맞아.”
김이철이 피식 웃더니 말했다.
“사실, 이제 히키코모리도 뭣도 아니야. 집밖에 외출 잘해. 인간관계도 건강하고. 옛날보다는 많이 좋아졌지. 그래도 뭐 10년도 넘게 지났으니까 슬슬 다시 활동해 볼 법도 한데, 여전히 관객이 무서운가 보더라.”
그는 눈을 깜빡거리더니 말했다.
“나랑 그 친구가 꽤 막역한 사이란 말이야. 거의 같은 시기에 데뷔했거든.”
“…….”
“그래서 아는데, 실력이 지금도 하나도 안 죽었어. 어디 무대 한번 자리 마련해 주고 싶은데, 본인이 부담스럽다고 거절할 때가 많아. 여전히 자길 싫어하는 사람이 많을 거라고 생각하는 거지.”
“그래서 저희 방송에 출연을 시켜 보는 게 어떤가 하시는 건가요?”
“응, 아무래도 인터넷 방송이면 또 느낌이 다를 수 있잖아?”
대충 어떤 말인지는 건 알겠다.
그리고 또 대안도 머릿속에 어렴풋이 떠오르는 게 사실이었다.
‘일단 데려오면 무조건 먹힐 카드다.’
하지만 설득이 필요하다.
어떻게 설득해야 할까.
내게 설득할 방법이 있을까.
그렇게 고민하던 참이었다.
‘아.’
작게 떠올랐다.
단박에 설득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다음에 동요 정도는 올 것 같은 방법이.
또한, 완벽하게 인터넷 방송다운 방법이었다.
‘해 볼 가치는 있다.’
나는 생각을 정리하고는 입을 열었다.
“이야기 잘 들었어요. 이분으로 소개해 주세요.”
할 수 있다.
자신도 있다.
그런데 내 말에 김이철이 화들짝 놀란 표정으로 물었다.
“어? 진짜로?”
“사장님이 먼저 소개해 주신다고 하셨잖아요. 전 마음에 들어서요.”
“흠, 쉽지 않을 텐데.”
“해 보고 안 되면 그때 다른 사람 구하면 되죠. 아, 그런데 지금 당장은 아니고요. 조금만 나중에 소개해 주세요.”
“왜?”
김이철이 의아한 듯 물었다.
“기왕 연결해 줄 거면 빨리 해치우는 게 낫지 않나?”
“뵙기 전에 준비할 게 조금 있어서요.”
어차피 밑져야 본전이다.
아니, 밑져 봐야 나한테는 이득인 방법이었다.
“그럼 일단.”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스트레칭을 하며 말했다.
“충분히 쉰 것 같은데, 녹음부터 마저 하죠.”
일이 늘었다.
그 전에 하나는 끝내야겠다.
* * *
며칠 뒤.
나는 인터넷 방송을 켤 준비를 마쳤다.
그런 나를 두고 조은솔이 영 불안한 듯 물었다.
“정말로 하게?”
“네.”
나는 손가락을 이리저리 꺾으며 말했다.
“어차피 설득에 실패한다고 해서 특별히 제가 손해를 보는 것도 아니잖아요.”
“그건 그런데. 사람에 따라서는 그 받아들이는 게 조금 다를 수도 있어서.”
“그때는 또 방법이 있죠.”
설득에도 방법이 있다.
그냥 다짜고짜 달려가서 말로 어쩌고저쩌고하는 건 하수의 방법이었다.
제대로 된 설득을 하기 위해서는, 그 전에 사전 준비가 필요했다.
왜, 이걸 고희범식으로 말하자면 이거 아닐까.
빌드 업.
그래, 설득에도 빌드 업이 필요하다.
시간을 들여 모든 개연성을 만든 상태에서 모시면 그만이다.
나는 그런 마음으로 방송을 켜고.
“안녕하세요. 형님들.”
기타를 들었다.
“오늘은 제가 시청자님들을 위해 추억의 곡을 하나 준비해 왔습니다.”
– 다음 화에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