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Musical Genius Who Lives Twice RAW novel - Chapter 78
78화
믹싱이었다.
최근 몇 달간 확실히 느낀 사실이 하나 있었다.
어떠한 음악이든, 전문적인 믹싱을 거치고 안 거치고의 차이가 어마어마하다는 것.
옛날에도 그랬지.
하지만 요즘은 그 차이가 더 극단적으로 변한 듯했다.
‘일반인도 거의 프로 수준으로 변했지.’
흔히 이러한 상황을 두고 사기 친다고 표현하고는 했다.
하지만 굳이 욕할 게 아니다.
그만큼 기술이 발전했다는 뜻이니까.
김이철이 내 음원을 만져 주었을 때 효과가 어떠했나.
꽤 볼 만했다.
얼핏 욕심이 들어 버릴 정도로.
하지만 그간 미룬 이유가 있었다.
“윽, 비쌀 것 같은데.”
고희범이 질색하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렇다.
돈 문제였다.
믹싱 외주가 저렴하던가.
아니다.
“우리 방송 올리는 거 감안하면 최소한으로만 작업해도 월 몇백은 가볍게 깨질 것 같다야.”
틀린 말은 아니었다.
하지만 이제 감당할 수 있다.
“지금은 노를 저어야 할 타이밍이야. 질을 올려야지.”
“감당하기 어려우면?”
“어차피 건당으로 맡기잖아. 우선 시범적으로 도입해 보고, 감당 안 되면 그때 물러도 돼.”
손해를 감수하고서라도 질러 볼 생각.
방송의 퀄리티를 올려야 할 시기 아니겠나.
그런데 내 말에 고희범이 헛웃음을 터뜨리더니 말했다.
“한영아, 너는 돈 욕심이 아예 없는 것 같다.”
“돈은 어디까지나 수단이지.”
“목적은 음악이고?”
“당연하지.”
돈이라는 건 굶어 죽지 않을 정도면 된다.
굳이 더 바라자면, 내가 음악을 하는 데 부족하지 않을 정도면 충분하다.
“진짜 음악에 미쳤구나. 제정신이 아니야.”
고희범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하지만 말만 그렇지 실제로 반대할 생각은 없는 눈치.
“일단은 알았어.”
그는 한숨을 길게 내쉬더니 말했다.
“안 그래도 필요하기는 했지. 그럼 누구한테 맡기느냐가 문제인데.”
“김이철 사장님한테 물어볼까?”
“……그쪽은 단가가 장난 아니던데?”
“얼마나 하길래?”
“제대로 하면 건당 백 이상.”
응.
많이 세구나.
하루에 한 곡씩 맡기면 월 삼천이네.
‘애초에 그렇게 맡기지도 못하겠지만.’
나는 머릿속에서 선택지를 하나 지운 뒤 다시 물었다.
“그럼 다른 사람으로 구한다 치고 보통은?”
“실력이 검증된 사람은 그래도 몇십은 넘는다고 봐야지.”
“검색해 보니까 더 저렴한 사람들도 있던데.”
“정 아끼려면 십만 원 밑으로도 구할 수는 있겠지만, 그쪽은 커리어가 검증이 안 되고, 잠적 타는 사람들도 많대.”
음악계의 고질병.
잠적이었다.
나는 눈을 깜빡이다가 말했다.
“내가 무리한 요구를 하는 건가?”
“솔직히 말하자면 그렇지. 준프로급 작업물이 나오면서도 단가는 저렴한 사람이라. 좀 막막하기는 하네.”
“그래도 어떻게든 해 봐.”
“내가 도라X몽이야?”
“고라X몽.”
그렇게 둘이 머리를 맞대고 고민하는 참이었다.
덜컹.
작업실 문이 열리더니 누군가가 대뜸 입을 열었다.
“나 왔어요.”
누군가 했더니.
“누나.”
김예담이었다.
어느새 작업실을 제집처럼 들락날락하게 된 그녀가 악기를 등에 짊어지고 서 있었다.
그런데 그녀의 표정이 좀 특이했다.
원래부터 싱글벙글한 사람이지만, 오늘은 더더욱 그렇다고나 할까.
“무슨 좋은 일 있었어요?”
“있었지.”
김예담은 여전히 웃는 얼굴로 짐을 내려놓더니 말했다.
“학교에서 교수님이 방송 보셨는지 칭찬 많이 하셨어.”
아하.
교수님이 칭찬하셨구나.
그런데 교수님이랑 엮이는 게 신날 일인가.
작은 의구심이 들기를 잠시.
‘가만.’
머릿속으로 한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전문가.
믹싱을 맡기기에 적당한 사람이 바로 주변에 있지 않았나.
“누나.”
“왜?”
“혹시, 학교에 믹싱 잘하는 친구 없으세요?”
“믹싱?”
“상대적으로 외주 단가는 저렴하면서도 실력은 있는 사람으로요. 상업용으로 쓸 만한 수준으로.”
“…… 한영아, 좀 조건이 까다롭다?”
그녀는 하하 웃더니 말했다.
“사정이 있는 것 같은데, 그것부터 말해 줄래?”
“음, 그게요.”
혹시나 하는 마음에 지금까지의 이야기를 설명한 순간이었다.
김예담이 곤란한 듯 웃으며 말했다.
“으음, 실력이 되는데 돈은 안 받는다는 게 말이 안 되기는 하지?”
“아무래도 그렇죠?”
“응, 음대는 대부분 학생 때부터 자기 몸값을 잘 알거든.”
다음 순간이었다.
김예담이 썩 오묘한 웃음이 담긴 얼굴로 말했다.
“하지만 꼭 현금으로 주는 게 아니라면 또 모르지.”
* * *
다음날.
나와 고희범 그리고 김예담은 어느 원룸촌으로 향했다.
‘유유자적하네.’
날카롭게 쏟아지는 햇빛과는 달리 한적하니 여유가 가득한 원룸촌.
반바지에 슬리퍼를 찍찍 끄는 것이 홍윤서를 닮은 사람들이 주위에 자주 보였다.
“우왓, 씨, 깝놀. 한영아, 봤냐? 윤서 형인 줄.”
고희범이 중얼거리는데, 역시나 하찮은 이야기였다.
한편, 내 머릿속은 복잡하기 짝이 없었다.
‘이번 대회 음원 발표랑 우가수는 동시에 내놓으면 되겠네.’
우가수 3편에 대한 시청자들의 관심이 뜨겁게 타오르고 있다.
음원 발표도 앞서 라이브 무대에서 예고한 상황.
서서히 빌드업을 터뜨릴 시기가 됐다.
‘시너지 효과가 엄청날 거야.’
최근에 구독자 수 12만을 넘겼다.
보지 않아도 알 것 같다.
이 모든 일정이 끝날 무렵, 우리 방송의 입지는 예전과 완전히 다른 차원에 올라 있으리라.
밑그림은 완성했다.
그러니 여기에 화룡점정을 찍어 줄 화가가 필요했다.
그게 누구인가 하면, 지금부터 만날 사람이었다.
“천재라고 했죠?”
김예담이 우리에게 소개해 주기로 한 사람이었다.
“음, 어떻게 설명하면 좋을까? 실력은 확실한 동생이야. 과에서도 독보적이지. 수억으로 입학한 1학년 학생인데 벌써 교수님들이 눈여겨 본데.”
“음향 제작과라고 했나요?”
“응, 이미 인터넷에서는 유명해.”
Dim-a.
일명 디마라고 불리는 뮤지션이었다.
한예원 음향 제작과에 재학 중인 1학년 학생인데, 인터넷에서는 이미 유명인이라나.
사운드에리어(인터넷 음원 업로드 사이트)에 자기 작업물을 가끔 올리는데, 이게 올라올 때마다 반응이 상당했다고 했다.
재능이 빛나다 보니 벌써 침을 발라 둔 프로들도 많다지.
‘확실히, 음원만 들었을 때는 아마추어라는 게 믿기지 않을 지경이었어.’
나는 내 귀를 믿는다.
디마의 센스는 꽤 특출난 부분이 있었다.
실력만큼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하지만 그런 그가 여태까지 파트너를 못 얻은 이유, 그건 생각보다 어처구니가 없었다.
“주위에서 오퍼가 들어와도 한사코 거절한다고 하더라. 자기 뮤즈가 필요하다니.”
자기 파트너를 찾아 함께 작업하고 싶다는 이유였다.
로망을 성취하고 싶다나.
“뮤즈라, 로망이 가득하네요.”
“몰랐어? 그런 로망 쫓는 사람 은근히 많아. 자기만의 전속 가수를 가지고 싶어 한다고 해야 하나? 엔지니어나 프로듀서를 꿈꾸는 사람들의 공통점이지.”
그녀는 여기에 한 마디를 덧붙였다.
“실력이 어중간한 사람이면 작업 의욕이 안 생긴다고 거절한다더라. 자기는 잘할 수 있을 때만 잘한다나.”
“그럼 실력이 좋은 사람이면요?”
“이게 더 문제인데. 지난번에 말했듯 계약 조건에서 자기 고집이 있어.”
그렇구나.
적당히 고개를 끄덕이고 있는데 그녀가 말을 이었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만나서 보면 감이 올 텐데…… 아, 여기다.”
떠들면서 걷는 사이 어느새 어느 건물에 도착했다.
낡아 빠진 붉은색 벽돌 건물.
이 원룸촌에서도 빼어나게 낡은 건물인데, 지어진 지 적어도 30년은 된 듯했다.
“이런 곳에도 사람이 살아요?”
고희범이 놀란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그렇게 말하면 실례지.”
나는 그의 무례한 발언을 정정하고는 말했다.
“이런 곳에서도 대학생이 살아요?”
“……대학생은 사람도 아니야?”
“반려동물 이하죠.”
은근히 놀라서 건물을 올려다보고 있는데, 그녀의 발걸음이 향한 곳은 위가 아니라 아래였다.
“지하야.”
아이고야.
심지어 지하에 사는구나.
생각보다 형편이 안 좋을 수도 있겠네.
그러면서도 일감을 가려서 받는다는 말이지.
‘자존심이 대단한 친구일 수도 있겠다.’
그렇게 생각할 무렵 김예담의 발이 멈춘 곳은, 지하로 내려가서도 복도 끝이었다.
탕탕!
그녀가 문을 두드리며 외쳤다.
“나 왔어.”
끼익.
곧 문이 열렸다.
그런데 그 안에서 나온 사람이.
“……으, 누나, 옆에 초인종 있잖아요.”
말라깽이였다.
당장이라도 말라비틀어진 것 같은 사람.
속된 말로 로우킥을 차면 부러질 것처럼 휘청거리는 사람이 안에 있었다.
그가 우리를 흘깃 바라보더니 말했다.
“들어오세요.”
* * *
디마.
한국예술원의 수재이자, 인터넷에서는 일찍이 이름을 떨친 사람.
그 실물은 빈약하기 짝이 없는 약골이었다.
“적당히 앉으세요.”
그가 눈을 비비며 중얼거렸다.
“누추하죠? 신경 쓰지 마세요.”
응.
확실히 누추하기는 하다.
‘이 정도면 5평, 아니, 4평도 안 되겠는데.’
좁디좁은 방음실에 작업용 장비가 빼곡하게 들어차 있었다.
네 사람이 들어서자 앉을 자리도 모자란 수준.
그런데 놀라운 건 바닥에 침구까지 깔려 있다는 점이었다.
“저, 혹시 여기서.”
“먹고 자고 해요. 흐아암.”
거리낌이라고는 한 점도 없는 목소리였다.
디마는 퀭한 표정으로 한숨을 내쉬더니, 눈을 비비다가 내게 말했다.
“흐으, 아, 미안해요. 잠을 통 못 자서.”
“살다 보면 그럴 수도 있죠.”
“그건 그렇고 예담이 누나한테 소개를 받으셨다고.”
“그렇죠.”
“단도직입적으로 말할게요.”
그는 어딘가 생각을 굳힌 목소리로 말했다.
“한영 님이 그동안 올린 영상은 어제부터 오늘까지 거의 다 들어 봤어요.”
하루 사이에 다 찾아서 들어 봤다는 건가.
그런데 다음으로 이어진 말이 가관이었다.
“그리고 제가 느낀 건데, 수준이 상당했어요. 리스펙할게요.”
대뜸 칭찬이다.
까탈스러운 사람이라기에 살짝 긴장했더니마는.
디마는 내가 반응할 틈도 없이 말을 이어 나갔다.
“연주부터 음색까지 다 뛰어나요. 자기 색깔도 확실하고, 또 요즘은 싱어송라이터 전성기니까 나름 수요도 있겠죠. 방송도 잘나가고 있죠? 아마 앞으로 성장할 여지가 클 거예요. 또 업로드하는 분량도 보니까 어마어마했고요. 하지만요.”
그 순간이었다.
한참이나 칭찬을 쏟아 내던 그의 표정이 한순간 돌변했다.
“음향 관련해서는 형편없었어요. 가장 간단한 컴프레서조차도 엉망진창이던데요. 조잡한 수준이었어요. 거의 곡의 디테일을 망가뜨릴 정도.”
“윽.”
고희범이 앓는 소리를 냈다.
“그쪽이 했어요?”
“네.”
“아마추어죠?”
“그것이…….”
디마는 그를 반쯤 잠긴 눈으로 바라보더니, 눈초리를 돌리며 말을 이었다.
“괜찮아요. 아마추어치고는 잘했어요. 뭐든 다 잘하는 사람이었다면 애초에 절 찾아오지도 않았겠죠. 부족한 게 있으니까 서로 도와서 메꾸는 거라고 생각해요. 그게 우리 관계죠.”
짧은 말을 들으면서 새삼스럽게 느낀 건데, 캐릭터가 독특했다.
‘재밌네.’
전체적으로 남의 시선을 전혀 의식하지 않는다고 할까.
뻔뻔할 정도였다.
하지만 그렇기에 되려 편했다.
‘빙빙 돌리는 것보다는 이렇게 본론부터 꺼내는 게 낫지.’
음악을 하는 사람이라면 자기 생각을 솔직하게 꺼낼 줄 알아야 한다.
어설프게 상대를 배려하는 건, 안 하느니만 못한 일.
결과물만 좋다면 아무리 성격이 나빠도 괴짜라며 이해받는 게 이 업계 아니었나.
“그래서.”
그렇게 한참 생각에 잠긴 순간이었다.
“제 나름대로 듣고 한번 만져 봤어요.”
“하루 사이에요?”
“삘이 와서.”
디마가 대뜸 일어나더니 마우스를 딸깍였다.
만졌다니.
뭘.
작은 의문도 잠시, 금방 답이 나왔다.
[어느 날 내게 찾아온 검푸른 고래]지난 라이브 공연에서 내가 불렀던 곡이었다.
그런데 그것이 조금 달랐다.
‘훨씬 깔끔해졌네.’
완벽하게 달라졌다.
단순히 듣기 좋아진 것도 있지만, 그보다는 본격적인 상품이 되었다고나 할까.
그래.
다듬어졌다.
돈을 받고 팔아도 될 상품의 영역에 오른 듯했다.
‘연락한 게 어제였는데, 하루 사이에 이렇게 만진 건가.’
손도 빠르다.
나도 모르게 입꼬리가 올라가는데, 디마가 말을 이었다.
“소스 자체가 후져서 이 정도밖에 못 만졌네요. 트랙도 억지로 나눠서 조잡하게 다듬었고. 솔직히 말해서 개판이에요. 하루 만에 작업해서 어쩔 수 없었어요.”
글쎄다.
보통 미튜브 음원만 꼴랑 추출해서 저렇게 만진다는 게, 과연 가능하기나 한 일인가.
남들은 아예 시도조차 못 했을 일 같은데.
겸손인지 기만인지 좀처럼 감이 안 잡히는 말에 나는 웃음을 감추며 말했다.
“개판이라고 말하는 것치고는, 꽤 퀄리티가 괜찮은 것 같은데요.”
“모자라요. 본격적으로 작업을 시작하면 달라질 거예요. 훨씬 더 나은 작업물을 보장할 수 있어요.”
어느새 그의 거침 없는 목소리의 이유를 깨달았다.
나는 디마를 영입하러 온 게 맞다.
나를 그의 마음에 들게 만들 생각이었다.
하지만.
“실력이 좋아서 그나마 이렇게라도 만졌죠.”
그는 처음부터 나라는 사람에 대한 결론을 내린 상황이었다.
참으로 중간 과정이 없는 사람이다.
‘서로 간 볼 시간 아껴서 좋네.’
나는 모처럼 속이 시원해지는 걸 느끼며 말했다.
“훌륭하네요. 이런 작업물이라면 얼마든지 믿고 맡길 수 있을 것 같아요.”
“좋게 봐 주셨다니 감사.”
디마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말했다.
“하지만 제 실력을 사고 싶다면 한 가지 조건이 있어요.”
지금부터 시작이다.
디마가 내 눈을 직시하며 말했다.
“수익은요.”
디마가 실력에도 불구하고 기피당하는 이유.
그건 바로.
“퍼센티지로 받고 싶어요. 무조건.”
수익 분배였다.
– 다음 화에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