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Musical Genius Who Lives Twice RAW novel - Chapter 84
84화
일 처리가 이상하다니.
여태껏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는 말이었다.
‘업계 평판도 그럭저럭 괜찮았고, 뒤에서 말이 나온 것도 없었지.’
애초에 테슬라라는 MCN 자체가 뒤가 구린 사람과는 계약을 안 한다.
그래서 나도 믿고 맥스 무비와 진행하기로 했던 건데.
‘뭔가 일이 있었나.’
충격보다 호기심이 앞서려니 한윤태가 고개를 끄덕이면서 말했다.
“그 뭐냐, 내가 지난번에 너희한테 말하지 않았나? 우리 가게에 종종 오는 친구가 있는데, 그 친구가 옛날에 미튜버한테 노동력을 쪽 빨렸다고.”
“그런 말 했었죠.”
한윤태가 종종 했던 말이었다.
그가 옛날에 미튜버를 기피했던 이유라며 이야기를 들려줬었지.
“듣자 하니 일만 엄청나게 시켜 놓고, 막상 온 결과물은 반려당했다나.”
사건이 있었구나.
물어보려는 참인데 성민아가 눈을 좁게 뜨고는 물었다.
“돈이라도 떼먹혔대요?”
“아니, 돈은 또 깔끔하게 줬다대?”
한윤태는 고개를 젓더니 말했다.
“그런데 이런 일을 꼭 돈 때문에 하는 건 아니잖아. 잔뜩 고생했는데 커리어가 안 남으면 시간 날린 것 같고 찝찝하지. 뭐, 사람은 좋다고 하더만.”
여기에서 한윤태의 말에는 주의할 필요가 있었다.
사람은 좋다.
이는 내가 알기로, 꼭 문제가 있는 사람들을 설명할 때 따라붙는 표현이기 때문이었다.
‘사기꾼들도 다 사람은 좋다고 하지.’
그래서 작게 주의한 참인데, 한윤태가 뜻밖의 제안을 던졌다.
“아니지, 이렇게 말로만 할 게 아니라 직접 한번 만나 볼래?”
그 피해자를 만나 보겠냐는 말이었다.
“지금이요? 갑자기?”
“안 될 게 뭐 있겠나. 이 근처에서 작업실 잡고 음악 하는 애거든. 저녁에 심심하면 와서 맥주 한잔할 때도 많아. 술 사 준다고 부르면 맨발로 나올걸?”
빠릿하다.
확실히 한윤태가 인간관계 하나는 확실하다.
홍대에서 모르는 뮤지션이라고는 한 명도 없는 수준 아닌가.
그래, 마침 궁금하던 참인데 잘 됐다.
“저희야 나쁠 거 없죠.”
* * *
갑작스러운 만남이 성사되었다.
“사장님!”
“어, 국건이 왔어? 빨리 왔네.”
“사장님의 부름을 받고 호다닥 달려왔죠. 아, 덥다. 9월인데 아직도 덥네.”
이국건.
사장님이 부른 남자가 털레털레 자리에 앉았다.
“맥주?”
“제가 또 거절을 모르는 사람이라. 흐흐. 시원하게 한 잔 말아 주십시오.”
“오냐.”
그는 정말로 달려왔는지 자리에 앉아 소매를 펄럭였다.
카키색 점퍼에 가슴팍 위로 걸린 군번줄이 인상적인 남자.
‘국건이라.’
얼핏 봐서는 어딘가 짜증이 치솟는 이름이었는데, 실제로 본 얼굴도 그러했다.
주먹감자처럼 다부진 얼굴에 까까머리.
그리고 밝은 얼굴까지 실로 닉값을 제대로 하는 남자.
아니나 다를까.
“……!”
홍윤서의 눈동자는 마치 괴물이라도 본 것처럼 경악으로 가득했다.
아니지.
저건 아니지.
아무리 걸리는 게 있다고 해도 사람을 초면에 그렇게 바라보면 쓰나.
……라고 생각한 찰나였다.
“이국건입니다. 충성!”
그렇게 봐도 되겠구나.
유감이다.
내심 탄복했는데 이국건은 책상 위로 몸을 비스듬히 기대며 말했다.
“그 김한영 씨 맞죠? 사장님한테 이야기 많이 들었어요. 이야, 진짜 잘하신다던데?”
“잘하기는 하죠.”
“그런 자신감, 싫지 않아요.”
뭘 좀 아는 사람이군.
그렇게 짧은 통성명을 나누기를 잠시.
맥주 한잔과 함께 본격적인 화제로 넘어갔을 무렵, 이국건은 고심하듯 턱을 주억거리더니 말했다.
“정셰프, 그 사람이요. 사람은 좋아요.”
“…….”
또 나왔다.
사람은 좋다는 그 발언.
나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피해를 좀 보셨다던데요?”
“그랬죠. 그런데 그냥 하는 말이 아니라, 진짜로 사람은 정말 좋거든요.”
이국건은 맥주잔을 벌컥 들이키더니 말했다.
“뭐, 저도 그 사람 때문에 피곤하긴 했는데, 사람만 보면 세상에 그런 선인이 또 없어. 부처 공자님이랑도 호형호제할걸요?”
“그럼 작업물이 깨졌다는 건.”
“아, 그건 말이죠.”
국건이 싱긋 웃으며 말했다.
“그 사람이 일 처리를 상당히 답답하게 하거든요.”
“막 작업물을 자꾸 반려한다거나?”
성민아가 대뜸 물었다.
나도 궁금했던 참이기에 귀를 기울이는데, 국건이, 아니, 이국건이 눈을 좁게 뜨더니 말했다.
“비슷하죠. 자기가 어떤 소리를 필요로 하는지를 모른다고 해야 할까.”
“모른다고요?”
“뜬구름 소리만 계속 던져요. 구체적인 지시가 있으면 모르겠는데, 그런 것도 아니었거든요. 우리끼리 하는 말인데, 이게 또 답답하잖아요. 작곡이라는 게 그렇게 국수 뽑는 기계처럼 버튼 누르면 나오는 게 아닌데.”
그는 어느새 불만이 담긴 표정으로 말을 늘어놓았다.
“칭찬을 계속해요. 초면부터 진짜 음악 좋고 아이디어 좋고 실력 끝내준다고 칭찬하더라고요. 천재적이라면서. 그런데 막상 작업물을 보내면 이 느낌이 아니라면서 말을 빙빙 돌리죠.”
아.
듣자 하니까 무슨 말인지 알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나쁜 말을 못 하는 성격 같기도 하고. 차라리 아닌 건 아니라고 말했으면 좋겠는데, 계속 그러니까 저도 작업하다가 짜증이 확 솟더라고요.”
“흠.”
“그러다가 서로 지쳐서 관뒀죠.”
이런 부류가 종종 있었다.
상대방에게 자기 의견을 제대로 말을 못 하지.
상대방을 배려해서인지 관계를 생각해서인지 허우대만 보면 좋다.
하지만 정작 일하는 입장에서는 영 피곤한 캐릭터였다.
‘디마랑은 완전히 반대라고 해야 하나.’
그쪽은 직설적이다 못해, 자기랑 생각이 조금 안 맞다 싶으면 바로 선을 그어 버리는 타입이다.
‘일반적인 인간관계에서는 까이기 좋지.’
반면, 정셰프는 다르다.
그는 말을 삥삥 돌리다가 이도 저도 아니게 되는 타입.
남의 입맛을 맞춰 줘야만 하는 입장이라면 상관없다.
하지만 그는 [메가 무비]라는 큰 단체를 총괄하며 남에게 외주를 맡기는 입장.
그러니 이런 태도는 그 자체로 하자라고 볼 수도 있었다.
‘꼭 100만 미튜버라고 해서 운영이 잘 굴러가는 건 아니라는 건가.’
하긴.
100만 미튜버가 아니라 1,000만 감독이어도 그렇지 않나.
의사결정이 우유부단해서 현장에서 욕먹는 사람이 여럿이라고 했다.
‘우유부단한 사람이랑 일을 할 때는 어떻게 해야 하지.’
그런 생각에 빠진 참인데 이국건이 입을 열었다.
“아 참, 그때 작업물 녹음한 게 아직 있기는 한데, 한번 들어 볼래요?”
“아, 좋죠.”
그가 곧 음원을 틀어 주었다.
그런데 그 수준 또한 예상했던 대로였다.
‘귀에 안 꽂히는 느낌은 있지만, 이 정도면 크게 불만을 가질 건 없어 보여.’
크게 나쁠 건 없었다.
이 정도쯤 되면 취향의 영역이라고 보는 게 옳을지도 모른다.
나는 그 멜로디를 머릿속으로 굴리다가 물었다.
“어떻게 작업을 수월하게 할 방법 없을까요?”
“음, 그때는 몰랐지만 지금 제가 다시 한다면 말이죠. 무조건 솔직하게 다 터놓는다는 생각으로 할 것 같아요. 그러다가 싸워서 멱살을 잡더라도요.”
“그 정도까지요?”
“경험자로서 하는 말이에요. 나중에 스트레스 받아서 저 부를 수도 있을걸요? 흐흐.”
“흠, 주신 말씀은 잘 생각해 볼게요. 고마워요.”
“에이, 감사 인사는 무슨.”
국건이 엄지손가락을 내밀며 큰 목소리로 외쳤다.
“같은 처지에 돕고 살아야죠! 같은 대한 건아 아닙니까! 마!”
“…….”
어째서일까.
분명 우리 도와주러 온 사람이고, 또 호의적으로 대해 주는데 어째서인지 찝찝하다.
이상하다.
내 몸 안의 DNA 차원에서 이 남자를 전력으로 부정하는 것만 같다.
생리적으로 껄끄럽다.
‘대체 왜지?’
하지만 어쨌든 이야기는 잘 들은 게 사실.
‘자기 의견을 제대로 밀어붙이지 못하는 사람이라. 이걸 어떻게 대처해야 하나.’
어떻게 대처하는 게 좋을까.
어찌 됐든 작업물 자체는 달달하기 짝이 없다.
100만 미튜버와의 협업.
게다가 이건 내가 주역이다. 앞으로도 흔히 할 수 있을 일은 아니지.
잘하면 백만 단위로 조회 수가 나오는 영상을 하나 건질 수 있을지도 모를 일.
또한, 개인적으로도 꼭 해 보고 싶은 일이기도 했다.
‘대놓고 내 노래를 소재로 삼는다는 거잖아.’
잘하면 영상 속에 곡을 내는 그대로 음원까지 이어 버릴 수도 있지 않을까.
거기에서 과제 성공은 보너스고.
‘거절하기는 조금 그런데, 일단 만나 보고 다시 생각해야 하나?’
그렇게 한창 고민하는 찰나였다.
“야, 야! 한영아, 지금 막 그쪽에서 연락 왔다.”
고희범이 내 의자를 툭툭 두드리더니 말했다.
“타이밍도 좋아라. 우리 옷에 도청장치라도 붙여 놓은 거 아냐?”
“보여 줘.”
“예, 사장님. 잠~시만요.”
그가 보여 준 메일을 확인하자, 그곳에는 대본 파일이 들어 있었다.
그리고 나는 곧 깨달았다.
‘이러니 문제지.’
답답하게 일이 진행됐던 이유를 확실하게 깨달았다.
#7 교실
김한영: (전기가 튀는 것 같은 연주)
#11 옥상
김한영: (분노에 차 피가 끓어 오르는 연주)
이건 아니지.
실소가 나온다. 하지만 동시에 해결 방법도 떠올랐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집단지성의 힘을 빌려 봐야겠네.”
* * *
“벌써 완성하셨다고요?”
정셰프가 한껏 놀란 표정으로 물었다.
“첫 번째로 삽입될 곡만요.”
나는 웃으며 답했다.
“그런데 제가 이런 작업이 처음이다 보니까, 영상에 맞을지 잘 모르겠네요. 한 번 들려 드리고 싶어서 찾아왔어요.”
지금, 나는 미팅을 위해 맥스 무비 스튜디오에 찾아왔다.
별다른 사정이 있는 건 아니었다.
그냥 대화가 필요했기 때문.
‘정셰프는 선택을 내리는 법을 잘 모르는 사람이라고 했지.’
이국건의 이야기는 나름대로 재밌었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그의 관점일 뿐, 실제로 어떨지는 모를 일이었다.
같은 사람이라도 보는 기준에 따라 천사도 악마도 될 수 있지 않겠나.
[오스카 쉰들러는 수십 년 동안 나치 부역을 상징하는 악마였습니다. 하지만 그는 종전 후 성인이 되었습니다.]교양 시간에 들은 말이었다.
일단 이쪽 의견도 한 번은 들어 봐야지.
이국건의 음악이 정말로 별로라서 차마 직설적으로 말을 못 하고, 말을 빙빙 돌렸을 가능성도 아예 0이라고 볼 수는 없었다.
‘뭐, 별문제 없으면 얼굴도장 한 번 찍은 셈 치고.’
나는 그런 생각으로 기타를 집어 들며 말했다.
“한번 들어 봐 주세요.”
이번에 연주할 곡은 작중에서 첫 장면.
전학생이 학생들 앞에서 자기소개하는 씬이었다.
정글을 방불케 하는 무림 고등학교에서 인상적인 연주를 선보이며 모두에게 눈도장을 찍는 그런 장면.
-#3
김한영: (번갯불에 콩 볶듯 날카로운 연주)
-대충 화려한 연주라는 거지.
장서균의 연주에서 모티베이션을 얻어 비슷하게 하나 만들어 와 봤다.
차자작, 차작!
번갯불이라는 말을 그대로 옮긴 듯한 연주.
현에 뮤트를 걸어 놓은 상태로 연주하는 주법, 뮤트 조법이었다.
타다다닥!
뮤트를 걸고 그 위에 퍼커시브를 얹는다.
뮤트를 장서균의 연주에서 영감을 얻었다면, 퍼커시브는 성민아의 스타일을 참고했다.
이 둘의 조화.
그것이 바로 내가 생각할 수 있는 ‘번갯불’의 정답이었다.
‘시선을 빼앗기에는 이게 최선이다.’
빠르고 날카롭다.
실력 과시라는 측면에서 볼 때 이것보다 충실한 곡이 또 있을까.
탕! 타다닥!
열의를 들여 준비한 곡 연주를 마쳤을 무렵, 정셰프가 놀란 얼굴로 박수를 치며 말했다.
“와우, 어마무시한 솜씨네요. 역시 단기간에 뜨신 건 다 이유가 있었어요. 천재가 맞으신 것 같아요. 으흐흐.”
“감사합니다.”
나는 본론으로 들어가기 위해 짧게 헛기침을 뱉고는 말했다.
“나름대로 열심히 준비는 했는데, 이 곡을 작중에서 사용한다면 어떨까요?”
“음, 그렇네요.”
잠시 뒤.
정셰프는 진심으로 미안한 눈빛이 잔뜩 묻은 얼굴로 말했다.
“조금 안 와닿는 것 같아요. 연주 자체는 좋은데, 머릿속에 그림이 안 그려진다고나 할까.”
“흠.”
일단은 반려다.
하지만 여기까지는 나도 예상한 바.
나는 앞서 준비해 온 다음 말을 입 밖으로 꺼냈다.
“그렇다면 혹시 생각하고 계시는 구체적인 테마가 있을까요? 아니면 레퍼런스나.”
“그게, 저보다는 전문가인 한영 님의 의견에 맡기고 싶어요.”
아니지.
그렇게 맡겼는데 지금 반려가 나온 거잖아.
유감이다.
그래도 나는 혹시 하는 마음에 재차 물어보았다.
“제가 이런 작업이 처음이라서 그래요.”
“첫날에 이만큼 멋진 작업물을 만들어 내셨다면, 다음에는 훨씬 더 끝내주는 걸 떠올리실 수 있을 거예요.”
“그래도.”
“자신감을 가지세요. 전 한영 님의 솜씨를 믿습니다!”
“…….”
딱히 위로해 달라고 한 말이 아닌데.
나는 내심 한숨을 내쉬었다.
‘국건 씨 말이 맞았네.’
이쪽은 순진무구하게도 자기가 뭘 실수하고 있는지 전혀 모르고 있다.
음악인을 마법 뿅망치처럼 여기고 있을 수도 있겠지.
‘그동안 같이 협업한 사람 중에 음악 감독은 없었나.’
있겠지.
그렇다면 그 사람의 인내심이 걸출하거나, 아니면 운 나쁘게 이번에만 터졌거나 둘 중 하나이리라.
멜로디 메이킹은 분야가 다를 수도 있고.
그렇다고 해서 이 남자와 말다툼을 할 생각은 없었다.
왜냐.
‘딱 예상했던 대로네.’
기대를 안 하면 실망도 없기 때문.
플랜 A가 망했다면 플랜 B로 가면 그만이지.
“그렇다면요. 이건 그냥 제 생각인데요.”
나는 다음 단계로 넘어가기 위해 설명을 시작했다.
그러기를 잠시.
정셰프가 휘둥그레진 표정으로 되물었다.
“시청자분들께 맡겨 보자고요?”
– 다음 화에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