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Musical Genius Who Lives Twice RAW novel - Chapter 89
89화
‘이거 하다 보니까 은근히 재밌네.’
연기.
그동안 내심 관심은 있으면서도 도전하지는 못했던 분야였다.
이번 촬영에서도 사실 조연을 세울 생각이었고.
하지만 내가 본인 출연을 받아들인 건, 정셰프가 내게 영화 한 편을 추천했기 때문이었다.
[한번 보시면 생각이 달라지실 겁니다.]전설적인 밴드, 퀸의 일생을 그린 영화였다.
‘제목이 뭐였더라.’
영화 제목이 뭐였는지 기억도 희미하다.
하지만 그 내용만큼은 정확하게 내 머릿속에 박혀 들었다.
퀸의 보컬, 프레디 머큐리를 담당한 배우가 너무나도 열정적인 연기를 보여 주었기 때문.
‘강렬했지.’
연기에도 음악이 담길 수 있다는 걸 거기에서 느꼈고, 그 순간 의욕이 생겼다.
그래서 출연했다.
그런 녹화도 어느덧 막바지에 다다른 참.
“그 생각은 틀렸어. 음악은 다른 사람의 머리 위에 서기 위한 물건이 아니야.”
대본대로 대사를 뱉은 순간이었다.
“컷! 컷! 완벽합니다!”
정셰프가 크게 외치더니 박수를 치며 감탄을 늘어놓았다.
“이야, 흠잡을 게 없습니다. 한영 님은 천재예요. 음악 실력은 말할 것도 없을뿐더러, 연기까지 이렇게 기대에 부응해 주시다니. 이 작품을 찍을 수 있어서 행복합니다.”
칭찬에 과장이 많다.
내가 바보도 아니고 저 말의 태반이 립서비스라는 걸 모르겠나.
하지만 그리 나쁜 기분도 아니었다.
저런 말이야말로 정셰프 나름의 노력이라는 걸 알기 때문.
‘현장이 내 생각이랑은 꽤 다르네.’
여기에 오기 전에 읽은 소설이 하나 있었다.
[두 번 사는 연기천재].홍윤서에게 추천받아서 읽은 건데, 그게 나름대로 재밌었다.
삼류 연기자가 과거로 회귀해서는 월드 스타로 도약한다는 내용.
‘꽤 재밌었지.’
그런데 이 소설에 한 가지 특징이 있었다.
그게 무엇인가 하면, 가는 연기 현장마다 빌런이 넘쳐난다는 것.
감독은 고압적이고 배우들은 주인공에게 질투심을 품었다.
투자자들도 주인공의 적.
배우의 편이어야 할 소속사마저 독자들의 혈압을 오르게 만들었다.
이 모든 상황을 주인공이 연기력으로 타계한다는 게 주 패턴.
그럴 때마다 독자들은 감탄하고는 했다.
[믿고 있었다고 젠장!] [아ㅋㅋㅋㅋㅋ 작가야 이번에만 봐 주는 거라고 ㅋㅋㅋㅋㅋㅋ] [ㄹㅇㅋㅋ 다음부터는 안 봐줄 줄 알라고]이 패턴이 300화 완결까지 무한 반복.
그런데 놀라운 사실이 있었다.
읽으면서 억지에 가까운 전개라고 생각했는데, 놀랍게도 이게 실제 현장에 가깝다는 것.
‘작가가 현직 업계인이라고 했나.’
자기 경험담을 엮어서 썼다고 했다.
하물며 인터넷에서 촬영 현장은 대개 험악하다는 말을 많이 들은 탓일까.
내심 긴장했더니마는 이곳은 완전히 다르지 않나.
“이야, 오늘 여러분들 덕분에 제가 너무 편하게 촬영하네요. 이래도 되는 겁니까?”
정셰프가 큰 역할을 해 준 덕이었다.
시종일관 활기차다 못해 전구 같은 그의 면모가 촬영장에서 빛을 발한 것.
“민아 씨, 아까 연기 너무 좋았어요. 저도 모르게 숨을 멈춘 거 있죠?”
“그, 그래요?”
“어휴, 마스크가 대역에 찰떡이에요. 배우 하셔도 되겠는데요?”
“흠, 흠.”
보통, 감독이라고 하면 강압적인 면모가 있다는데 그는 정반대였다.
그 누구에게든 밝고 편하게 대한다.
트집보다는 칭찬을, 단점보다는 장점을 강조했다.
“바로 그거예요! 더 표독스럽게! 상대방을 깔보듯 턱을 들어 주세요!”
“……이렇게요?”
“엑셀런트!”
이제 그의 방식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즐겁다.
우리 팅에서만 네 사람이 참가했는데, 그들의 연기를 보는 맛이 있었다.
“꺼억.”
“이야, 타고나셨네.”
그중 양아치 연기를 맡은 홍윤서가 일품.
긴장감이라고는 쥐뿔도 없는 털털함이 자연스럽게 배어 나왔다.
“혹시 어디서 연기 배워 보셨어요? 뮤지컬이라거나.”
“사람은 누구나 연기를 하며 살아가는 생물 아니겠습니까.”
“아하, 연습을 실전처럼, 실전을 연습처럼! 이걸 만류귀종이라고 하죠? 제가 오늘 또 한 가지를 배워 갑니다.”
“후후, 별말씀을.”
순간적으로 혈압이 솟았다.
‘아니야, 만류귀종은 그거 아니야.’
저 홍윤서의 실실 웃는 얼굴 좀 봐라.
이 자리의 누구보다도 신났구나.
‘이게 실력인가.’
대단하다.
내가 문외한이라지만 이번 작품이 잘 굴러가고 있다는 건 충분히 느껴졌다.
다만, 예외도 있었다.
한 사람.
촬영장에 한 사람이 유독 나를 불만족스러운 표정으로 응시했다.
‘계속 저러네.’
그 사람이 누구인가 하면.
처음 촬영장에 도착했을 때 시비가 붙을 뻔했던 사람이었다.
처녀 귀신을 연기한 사람.
‘원래 뮤지컬 배우를 겸업했다고 했나.’
그는 처음 촬영을 시작했을 때부터 나를 바라보는 눈길이 곱지 않았다.
작중에서는 일진 캐릭터를 맡았는데, 행동이 험악한 것이 연기인지 실제로 그런 건지 영 분간이 안 되었다.
“상국 씨, 다음 장면 준비해 주세요.”
“아, 예.”
“다음 장면으로 오늘 촬영분의 성패가 결정됩니다. 상국 씨만 믿을게요! 파이팅!”
“알겠습니다.”
계속 단답형이다.
싱글벙글 웃는 정셰프의 태도도 유독 그에게는 먹히지 않는 모양.
화기애애한 현장에서 유독 그만이 붕 떴다.
‘이런 현장은 감독한테 잘못 찍히면 끝장나는 거 아니었나.’
일반적으로 그렇다는데.
아니면 그냥 인터넷 방송이라 그럴 수도 있고.
굳이 깊게 알 필요는 없다.
나는 의문을 대충 넘기고는 정셰프가 부르는 목소리에 자리에서 일어났다.
‘오늘 비하인드 클립까지 찍겠네.’
아무리 시청자 투표에서 2번 곡이 선택됐다지만, 그렇다고 나머지 곡들을 버릴 생각은 없었다.
특히 1번 곡은.
* * *
영상 촬영이 끝났다.
이것을 편집하고 인터넷에 업로드하기까지 걸리는 기간이 약 일주일.
그 틈에 나는 볼 일 하나를 끝냈다.
“정말로 이걸로 제출하려고 그러니?”
교수님을 뵙는 것이었다.
내가 과제로 제출한 파일을 확인한 박정화 교수님이 면담을 요청해서 온 참인데, 그녀는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 말했다.
“진짜 내가 그동안 교직에서 일하면서 이런 과제를 내는 학생은 처음이다.”
“흠.”
그런가.
내가 낸 과제가 그렇게 파격적이리라는 생각은 해 본 적이 없는데.
박정화 교수는 한참이나 웃음을 터뜨리더니 말했다.
“파격적이네.”
“잘못 만든 건가요?”
“글쎄? 공정성이 걸려 있으니까 뭐라고 말은 못 하겠는데, 다른 학생들이 너희들 과제를 보면 뭐라고 평가할지 궁금하기는 하네.”
“감탄하지 않을까요?”
“하겠지. 안 할 수가 없겠지.”
말이 저렇지 그녀는 내 과제가 너무나도 마음에 든 모양.
당연한 일이다.
심혈을 기울여서 만들었으니까.
하지만 이게 전부일까.
‘그냥 칭찬하려고 부르신 건가?’
내심 의문을 품은 찰나였다.
“그런데 오늘 너희들을 부른 건 사실 이거 때문은 아니고.”
그녀의 입에서 나온 말은 전혀 예상치 못했던 것이었다.
“혹시, 뮤직비디오 찍어 볼 생각 없니?”
뮤직비디오.
정말로 생각조차 안 해 봤던 것이었다.
“뮤직비디오요?”
“응, 옛날에 내가 가르쳤던 제자들이 이쪽 전문으로 회사를 하나 차렸는데, 포트폴리오로 사용할 작품을 하나 찍고 싶어 하더라. 거기에 도움이 될 사람을 소개해 달라고 하지 뭐니.”
제자들이 영상 회사를 차렸다는 말이었다.
그러고 보니 박정화 교수는 이쪽 방면으로 활동이 활발한 사람이라고 들었지.
듣기로는 방송계에서 일한 적도 있고, 미디어 관련 협회에서 이사직도 맡고 있다나.
아주 마당발이라고 했지.
“그 말 듣고 마침 한영이가 떠오르더라.”
“저희가 그 뮤비에 출연한단 말씀이신가요?”
“왜? 한영이가 음악도 잘하고, 인터넷에서 꽤 유명하지 않니?”
“그건 그렇죠.”
내 말에 박정화 교수는 흐뭇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 친구들은 실력 있는 방송인과 협업할 수 있으니까 좋고. 너희들도 이쪽으로 수혜를 볼 수 있으니까 좋고. 서로 이득 아니겠니? 아마 자기네 포트폴리오라고 최선을 다해서 찍어 줄 텐데.”
대체로 맞는 말이었다.
하지만 워낙 갑작스러운 제안이다 보니 머릿속이 딱딱하게 굳는 게 사실.
‘교수님이 이런 제안을 한다고?’
내 기억은 교수님들에 대한 편견으로 가득 차 있었다.
당장 얼마 전 조은솔이 한 말이 있었다.
[학부생을 칭찬한다면 그건 연구실로 끌고 가기를 고려한다는 말이야. 밥을 사 준다면 그건 이미 견적 마치고 밑밥 까는 단계라는 말이고.]출장에 데려간다면 그건 이미 끝났으니 포기하라고 했나.
그렇다면 이렇게 다른 일감을 소개해 준다는 건 어떻게 해석하면 좋을까.
‘설마, 나를 석박사 통합 과정까지 끌고 가려는 건가.’
아니다.
말도 안 되는 일.
과제 하나 열심히 했기로서니, 고작 1학년에게 그런다는 게 말이나 되나.
나보다 학점 관리 잘하는 학생은 넘치고 넘친다.
‘괜히 인터넷에서 떠드는 썰에 매몰되지 말자.’
바보 멍청이도 아니고.
그런 생각을 하고 있으려니 고희범이 입을 열었다.
“교수님, 정말요?!”
좀 심하게 들뜬 목소리였다.
그가 환하게 웃으며 재차 물었다.
“그럼, 뮤직비디오를 찍는 데 저희가 들어가는 비용 같은 게 따로 있을까요?”
“내가 내 학생 소개하는 건데 그럴 리가 있겠니?”
박정화 교수는 그런 고희범의 반응이 마음에 들었는지 산뜻하게 웃더니 말했다.
“꼭 이 자리에서 결정하라는 건 아니고, 다음에 시간 나면 다 같이 식사라도 한번 해 보는 게 어떨까?”
“저는 좋아요!”
고희범의 목소리는 이미 불타오르고 있었다.
이 기회를 절대 놓치지 않겠다는 눈치.
아, 감이 왔다.
‘저건 못 막겠네.’
하지만 나라고 꼭 반대하려는 건 아니다.
마침 나도 뮤직 비디오라는 것에 관심이 생기던 참.
그럼에도 생각도 않았던 건 예산 탓이었다.
‘한 편 찍는데 드는 비용만 최소 몇백에서 천 단위라고 했지.’
소속사가 딸린 가수라면 몰라도, 우리들은 아직 시기상조라고 판단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됐다.
기회가 왔다면 잡을 수 있을 때 잡아야지.
나는 그런 생각으로 입을 열었다.
“감사합니다. 부탁드릴게요.”
“응, 그럼 그렇게 알고 연락해 놓을게.”
그렇게 일단락이 났다 싶은 순간이었다.
박정화 교수가 여전히 웃음 가득한 표정으로 답했다.
“나중에 식사 한번 하자 애들아.”
“…….”
이거 견적 마치고 밑밥 까는 단계 맞는 것 같은데.
* * *
며칠 뒤.
인터넷에 짜르 봄바가 투하되었다.
[김한영x맥스 무비 공식 콜라보레이션] [무림고등학교 편]무림고등학교.
음악이 지배하는 학교에 김한영이 전학을 왔다는 컨셉으로 촬영한 초 단편 영화였다.
불과 10분이 안 되는 영상.
하지만 그 반응이.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짜릿했다.
[김한영 무친놈…… 무친놈……] [진짜 내 손발이 다 오그라든다 ㅋㅋㅋㅋㅋ] [발연기 뭐냐고오오오오] [뭐지? 인간미를 자랑하는 건가?] [형, 우리가 뭐 잘못했어? 그럼 말이라도 해 줘야 고칠 거 아냐]연기 자체는 우습기 짝이 없었다.
막말로 중학교 학예회도 이것보다는 훨씬 낫겠다 싶을 정도.
표정은 시종일관 무표정이고 동작은 딱딱하다.
흡사 로봇.
시청자들은 웃음을 터뜨리기에 바빴다.
[시청자 고문 멈춰!] [김한영… 하고 싶은 거 그만해…]하지만.
하이라이트 장면에 다다른 순간.
저 모든 웃음이 수증기가 되어 사라졌다.
[돌았네]자기소개 장면이었다.
[어우씨, 소름이 갑자기 확 돋네]압도적인 연주력.
그간 선보인 적 없었던 장르의 변화가 시청자들에게 새로운 충격을 가져다 주었다.
[ㄹㅇ 연주 뭐 이렇게 잘함 ㅋㅋㅋㅋ] [진짜 미친놈인가] [연기도 일부러 발로 한 거 아냐?]이걸 말하자면 이러했다.
김한영의 죽어 있던 연기가, 연주를 시작한 순간 살아났다.
{에일리언, 내가 아닌 너희들이야말로 에일리언. 세상 사람 시선이 무서워 개미굴에 숨어드는 에일리언.}
하늘이 뒤집힌 듯한 변화.
처음부터 연기가 아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한 사람의 몸에 생기가 자라난 찰나의 충격은 죽은 사람의 부활에 필적했다.
그 충격이 시청자들에게도 전염되었다.
[진짜 졸라 잘한다] [와] [뭐 이렇게 깔끔함? 립싱크 아님?] [ㄴㄴ 잘 보면 아님. 중간에 입 모양이랑 호흡 소리 같은 거 다 일치함] [설마 저 장면 때문에 라이브로 촬영한 거?] [ㄹㅇ 장인정신 오지네]웃음으로 가득했던 만큼 그 반전 또한 거대했다.
그렇게 불과 이틀이 흘렀을 무렵.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조회 수: 201만] [실시간 인기 급상승 #1]이 시장에 새로운 대세가 탄생했음을.
또한.
잭팟이 터졌음을.
– 다음 화에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