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Musical Genius Who Lives Twice RAW novel - Chapter 95
95화
숲 뮤직.
탄탄한 내실로 차근차근 입지를 다져 온 중견 엔터테인먼트 기업.
비록 규모로 따지자면 3대 엔터에 비견되는 규모는 아니지만, 보유한 뮤지션들의 평균적인 수준은 전혀 밀리지 않았다.
즉, 알짜 기업.
그런데 이 회사에는 한 가지 공공연한 비밀이 있었다.
바로, 한국에서 손꼽는 IT 업체, 네온과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다는 것.
‘어떤 일인가 했더니.’
그곳의 관리자 겸 매니저 겸 기획을 맡은 손 과장이 씨익 웃음을 지었다.
‘수준이 대단하기는 하네.’
그는 지금 무대 위에서 날뛴 한 대학생을 보고 감탄을 짓고 있었다.
김한영.
근래 들어 빠르게 유명 미튜버 반열에 합류한 뮤지션이었다.
그런데 손 과장은 한참 옛날부터, 10만은커녕 5만도 안 된 시절부터 그에게 주목하고 있었다.
왜냐.
‘YTG에서 침을 발라 뒀다는 말이 나올 만도 하네.’
업계에서 알음알음 말이 다 퍼졌기 때문이었다.
[YTG의 숨겨 둔 신인이다.] [YTG와 이미 계약을 마치고 이번 가을 시즌 데뷔를 준비하고 있다.] [임선우의 인맥으로 소개를 받았다더라.]별 이상한 말이 다 돌았다.
사실대로 말하자면, 손 과장 그 또한 처음에는 저 말을 곧이곧대로 믿었다.
왜냐.
그만큼 김한영의 성장세는 폭발적이고 또 파격적이었으니까.
누가 뒤에서 밀어주지 않고서야 저런 성장은 불가능하다는 게 그의 생각이었다.
그래서 채널 테슬라가 김한영을 포섭했다는 말을 듣고 더 놀라기도 했다.
하지만 이제 알겠다.
‘그냥 난 사람이었네.’
원래 잘나서 알아서 떴다는 것을.
무대를 보면 알 수 있다.
이 뮤지션이 어떤 생각으로 무대 위에 오르는지, 무대에서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얼마나 집중하고 있는지.
업계에서 잔뼈가 굵은 손 과장의 눈에는 그게 손에 잡힐 듯 보였다.
‘놀랍네.’
그렇게 한창 생각에 잠겨 있는 참이었다.
“과장님, 저 사람 뭐예요?”
“아.”
숲 뮤직 소속 신인, 유리가 그에게 말을 걸어왔다.
“뭐 저렇게 잘해?”
그녀는 진심으로 놀란 목소리였다.
단순히 동업자에게 놀란 걸 넘어 작은 경계마저 담긴 눈치.
분명 솔로 아이돌로 데뷔했거늘, 아이돌보다는 싱어송라이터라는 이름으로 더 자주 불리는 그녀가 마저 중얼거렸다.
“무대를 아주 잡아먹었네요.”
그 말에 손 과장은 자기도 모르게 피식 웃고야 말았다.
‘유리한테는 보이나 보네.’
알 만큼 알기에 보이는 거겠지.
하기야, 이건 손 과장도 마찬가지였다.
그의 눈에 비친 김한영은 뭐라고 해야 할까.
“그러게, 아예 무대가 자기 안방인가 보다.”
무대에 익숙한 수준을 넘어, 무대와 이미 한 몸이 된 수준이었으니까.
“흐음.”
“과장님, 왜 그러세요?”
“아니, 그냥 신기해서.”
“신기하다뇨? 그렇게까지 잘하나?”
“그런 건 아니고, 이상하잖아. 무대라는 게 그냥 음악 많이 해 봤다고 해서 잘할 수 있는 게 아닌데.”
“그럼 뭔가 다른 게 있나요?”
이어진 말에 유리가 귀를 기울였다.
손 과장은 어린 유망주의 태도에 작게 흐뭇해하며 말을 이었다.
“유리야, 무대는 말이야. 전쟁터야. 그것도 많이 경험해 본 사람이 잘 아는 전쟁터.”
“무슨 말씀이세요?”
“왜, 권투만 해도 그렇잖아. 아무리 스파링을 많이 뛰어 본 선수라고 해도 실제 경기에 나가면 이야기가 달라지지.”
손 과장은 고개를 돌려 관중석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스포트라이트의 열기와 관중들의 함성. 조여 오는 분위기. 그리고 어딘가 낯선 앰프의 반응와 뻐끈한 목. 이 모든 게 섞여서 멘탈을 터뜨리거든. 그래서 사석에서는 아무리 뛰어난 가수라도 무대 위에서만큼은 제 컨디션을 못 낼 때가 많아.”
“음, 알 것도 같아요.”
“그렇지? 하지만 이것도 다 극복하는 방법이 있지.”
“그게 뭐예요?”
유리가 마치 엄청난 노하우라도 마주한 것처럼 눈을 반짝였다.
손 과장은 큭큭 웃고는 말을 이었다.
“첫째는 타고나는 거야. 원래 무대를 즐기는 성격으로 말이지.”
그래, 예를 들자면 너처럼 말이다.
손 과장은 목구멍까지 튀어나온 말을 다시 삼켰다.
유리는 무대 위의 요정이라고 불릴 만큼 무대를 즐기는 타입이다.
하지만 그렇기에 자기가 어떤 무대를 이끌어가는지 의식해서는 안 되었다.
“치사하게. 그럼 그건 극복하는 게 아니라 그냥 타고난 거잖아요.”
“하하, 그런가?”
“그럼 두 번째는 뭐예요?”
“음, 이건 진짜 어려운 건데.”
손 과장은 지금 이야기를 한 번에 흘리기 아깝다는 듯 뜸을 들이다가 말했다.
“무수히 많은 무대를 경험하는 거야.”
이게 또 다른 방법이었다.
하지만 유리는 잘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목소리로 물었다.
“무대를 많이 안 겪는 사람이 있나요? 선배님들은 다 스케줄 빡빡하잖아요.”
“그거랑은 조금 달라.”
손 과장은 재차 고개를 젓고는 말했다.
“말 그대로 온갖 무대야. 길바닥부터 시작해서 그 어떤 부조리한 무대라도 모조리 다 겪는 거지.”
“…….”
“무대에 익숙하든 익숙하지 않든, 온갖 무대를 경험하면서 무대 그 자체와 친해진 사람들이 있어. 그런 가수들은 때깔부터가 달라. 관객들의 호흡 하나하나에 반응하지. 전자가 무대를 빨아들인다면, 이쪽은 무대와 하나가 돼.”
수많은 뮤지션을 만나 본 그의 경험에서 비롯된 말이었다.
그런데 유리가 의아한 듯 고개를 갸웃거리더니 말했다.
“저 사람이 그렇다는 거예요? 이제 막 신인인데?”
“내가 듣기에는?”
“에이, 그래도 그건 너무하다. 저 놀리지 마세요.”
그녀가 꺄르르 웃었다.
손 과장이 농담이라도 한다고 생각하는 눈치.
다소 천진난만한 그 웃음소리에 손 과장은 피식 웃고는 말했다.
“내가 좀 오바했나?”
“네, 과장님 가끔 이런 이야기 들으면 재밌어요.”
“그래도 방심하지 말아. 너도 당장 내년이면 저 사람이랑 경쟁해야 할지도 모르니까.”
“경쟁이요?”
“알지? 곧 우리 회사도 더 큰 회사랑 합쳐지는 거.”
네온에게 인수되는 것을 이야기하는 것이었다.
“그때 되면 본격적으로 자리싸움을 벌여야 할 거야. 듣기로는 소속 회사들끼리도 약육강식으로 굴릴 거라는 말이 있거든.”
“흐음, 어렵겠네요.”
유리는 손 과장의 말에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더니 물었다.
“하지만 저 사람, 방송에서는 음악계에 아예 투신할 생각은 없다고 했던 것 같은데요.”
“봤어?”
“봤죠. 재밌던데요.”
“하이고. 연습은 안 하고 장하다. 장해.”
손 과장은 어처구니가 없어 피식 웃고는 말했다.
“뭐, 저 사람이 뭐라고 했든 음악으로 뜨고 말고는 본인이 결정하는 게 아니야. 대중이 결정하는 거지.”
“대중이요?”
“지난번 순위 봤지? 50위 안에 들어왔던 거.”
“새벽이었잖아요. 저희 회사 신인 중에도 그런 사람은 많지 않나?”
“그런 것들이랑 비교하지 마.”
그런 것들이라.
이는 사실 실로 파격적인 표현이었다.
이제 막 모습을 드러낸 지 반년밖에 안 지난 신인.
그것도 인터넷 방송인을 자사의 데뷔한 신인들과 비교하는 것이니.
하지만 손 과장은 진지했다.
“50위 바깥으로 밀려난 것치고는, 200위 바깥으로 나가기까지 보름 가까이 넘게 걸렸지.”
“…….”
“일시적으로 치고 올라오는 건 마케팅만 있으면 누구나 이룰 수 있는 요행이지만, 유지하는 건 실력이야. 긴장해. 조금만 잘못하면 유리, 너도 뒤로 밀려날지 몰라.”
여러 회사가 합친다.
그 말인즉슨, 내부 경쟁이 시작되리라는 말과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렇기에 손 과장은 경쟁자의 진면목을 손수 확인한 것.
물론, 유리도 그의 말을 허투루 넘기지 않았다.
“내일부터 연습 30분씩 늘려야겠네요.”
그녀는 프로다.
그렇기에 같은 프로를 무시하지 않았다.
같은 시각.
무대의 한쪽에는 또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이 있었다.
‘음악이라.’
새로운 빛을 본 사람의 생각이었다.
* * *
공연을 마칠 무렵.
나는 상쾌해진 마음으로 무대에서 내려오며 물었다.
“어땠어?”
그 말에 고희범이 따봉을 외치며 말했다.
“훌륭했다 사우루스.”
“사우루스?”
이건 또 무슨 말이지.
영 이해가 안 가서 우두커니 있으려니 고희범이 이마를 탁 치며 말했다.
“아이고, 이걸 몰라? 요즘 종겜(종합 게임) 미튜버들 사이에서 얼마나 유행하고 있는데 사우루스.”
“…….”
내가 그걸 어떻게 아나.
게임 인방 안 보는데.
또 하찮은 거 하나 배워 왔구나 싶은데, 조은솔이 웃으며 말했다.
“한영이가 이번 곡은 한 일주일 준비했나?”
“조금 더 짧긴 했어요.”
“그사이에 이렇게 발전해 버리네. 진짜 혼자만 너무 앞서가는 거 아니야? 햇병아리 같았던 시절이 어제만 같은데.”
“누나, 봉황은 알에서 태어날 때부터 봉황이라잖아요.”
“그래, 너 잘났다.”
“감사합니다.”
“칭찬 아니야.”
식구들도 모두 즐겁게 구경한 눈치.
홍윤서가 특히 그러했다.
그는 아직도 흥분이 안 가신 듯 부르르 떨더니 말했다.
“이야, 유리 진짜 쩔더라.”
그래, 그랬지.
진짜 쩔었…….
잠깐, 지금 뭐라고?
“크흐, 라이브 잘한다는 말이야 많이 들었지만, 거의 음원을 씹어먹은 수준이던데?”
“…….”
이 양반 보소.
내가 아니라 다른 사람한테 더 집중했구나.
하지만 확실히 그 사람은 내 기억에도 남았다.
‘별명이 무대 위의 요정이라고 했나.’
얼핏 보기에는 촌스러운 수식어.
하지만 그녀는 그 말마따나 무대 위를 즐길 줄 아는 사람이었다.
‘세상에는 재능 있는 사람이 정말 많네.’
임선우를 보고, 그 정도면 3대 엔터라고 한들 그 이상의 재능을 가진 사람은 드물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 자리에서 또 한 명을 찾았다.
그와 동급일지도 모르는 사람을.
‘더 노력해야겠어.’
처음에는 스튜디오의 두 사장에게 실력을 자랑하러 꾸린 무대가 맞다.
하지만 이게 내게 또 다른 향상심을 이끌어 주었다.
안주할 틈이 없군.
당장이라도 연습 시간을 대폭 늘려야겠다.
그렇게 생각하는 찰나였다.
“아, 여기 계셨네요!”
두 사람이 대뜸 찾아왔다.
스튜디오의 두 사람인가 싶은데, 목소리가 조금 달랐다.
살짝 호기심을 품고 뒤를 바라본 순간이었다.
‘이 사람들이 왜 여기에.’
말 그대로 두 사람이었다.
한 명은 숲 뮤직의 손 과장.
그리고 나머지 한 명은.
‘흠.’
유리였다.
숲 뮤직에서 가장 촉망받는 신인, 괴물 신인, 무대 위의 요정, 음원 재생기.
온갖 별명으로 불리는 그녀가 내 앞에 서 있었다.
그것도 얼굴에 방긋방긋 웃는 미소를 품고.
‘왜 왔지?’
굳이 이쪽으로 찾아온 이유를 알 수 없어서 서로 멀뚱멀뚱 바라보는 찰나였다.
“무대 너무 재밌게 봤어요.”
아.
칭찬하러 왔나 보다.
나는 그 호의를 받아들이며 말했다.
“그쪽도 꽤 괜찮았어요.”
“그렇죠?”
자기가 꽤 잘했다는 걸 알고 있는 모양인지, 겸손한 척하지 않고 거듭 웃었다.
옆을 돌아보자 홍윤서의 표정은 거의 신이라도 영접한 것처럼 볼 만한 상황.
“유리야.”
“아, 그게 다름이 아니라.”
유리는 마저 방긋방긋 웃더니 말했다.
“이따가 저희 행사 끝나고 이쪽이랑 그쪽이랑 다 같이 식사라도 하면 어떨까 해서요.”
“식사요?”
“이렇게 신인들끼리 만난 것도 다 인연이잖아요.”
틀린 말은 아니다.
이쪽도 저쪽도 신인이고 가까이 지내서 나쁠 게 없는 건 사실이니까.
하지만 뭐라고 해야 할까.
‘그건 안 될 일이지.’
내게는 당장 다른 볼일이 있었다.
‘오늘은 회식하는 날이야.’
방송 식구들과의 단체 회식.
그게 바로 오늘 저녁 일정이었다.
왜 오늘 식구들을 공연장에 초대했는가. 이게 다 사원 복지이기 때문.
‘아무리 거물이 밥을 먹자고 한들, 식구들과의 약속보다 먼저일 수는 없지.’
오늘의 하이라이트로 감자탕집에서 얼큰하게 한 사발 말아 먹을 생각에 점심도 가볍게 때우지 않았나.
다른 사람이 밥 좀 하자고 해서 그걸 망칠 수는 없다.
“선약이 있어서요.”
그래서 사실대로 말한 순간이었다.
“…….”
“……네?”
“……음?”
일대의 분위기가 빙하기처럼 꽁꽁 얼어붙었다.
유리와 손 과장은 설마 거절당할 줄은 몰랐다는 듯한 표정.
나머지도 표정이 잔뜩 굳었다.
특히 홍윤서가 그러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평화로운 아침 햇살이 담겨 있었던 그의 표정인데, 이제 그 자리를 뭉크의 절규가 대신했다.
‘오늘 많이 피곤하신가?’
하긴, 식구들끼리 오붓한 시간을 방해당했으니 기분이 썩 좋지는 않겠지.
나는 대화를 어서 끝낼 요량으로 말했다.
“죄송하지만 다음에 같이 하시죠.”
“네? 네. 그럼 언제쯤.”
“일정 보고 다시 말씀드릴게요. 당분간은 연습이 바빠서.”
“…….”
그렇게 대강 할 말을 마쳤다 싶은 순간이었다.
“아, 여기 계셨네요.”
인파를 헤치고 진짜 손님들이 등장했다.
술을 좋아할 것 같이 생긴 남자와 고집이 세 보이는 남자.
스튜디오 누의 두 사장이었다.
– 다음 화에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