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Musical Genius Who Lives Twice RAW novel - Chapter 97
97화
뮤지션의 앨범이란, 꼭 뮤지션이 바래서 생겨나는 건 아니다.
어떤 앨범은 뮤지션의 의지와 상관없이 탄생할 때도 있는 법.
[마이클 잭슨, 사후 유작 앨범 2번째 발매]그 왜, 일본에는 자드라는 가수도 있지 않나.
사후에만 싱글에 정규에 라이브에 컴필레이션에 앨범만 스무 장 가까이 냈다지.
내게도 비슷한 게 있었다.
[9].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김한석의 이름으로 발매한 네 번째 앨범이었다.
-[제목: 9] [아티스트: 김한석] [장르: 포크/인디] [앨범 소개]
전설의 싱어송라이터, 김한석의 음악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그의 사후 9곡을 다듬어 네 번째 정규 앨범으로 다듬었다.
이를 위해 국내 최고 수준의 제작진들이 모여 한 곡 한 곡을 다듬어 냈다.
지금, 고인이 머릿속으로 담았던 실험적인 사운드가 세상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두 귀로 즐겨 보자.
-다시 한번 말하겠지만, 이 앨범은 내 의지와 상관없이 내놓은 앨범이었다.
내가 발매도 안 했던 곡을 억지로 추려낸 앨범.
더 깊게 들어가자면, 발매할 생각이 없는 곡들을 추려낸 앨범.
그렇다.
저 9이라는 앨범의 정체는 바로.
‘왜 이런 앨범을 내고 난리야!’
내 흑역사 모음집이었다.
왜 죽은 사람을 욕보이지? 고인은 좀 편히 보내 주면 안 되나?’
부끄럽다.
심각하게 부끄럽다.
하나하나가 다 미완성 곡이지 않나.
일단 머릿속에 담겨는 있으니 녹음하기야 했다만, 막상 공개하기에는 부족한 구석이 있어서 쟁여만 뒀던 곡들.
나중에 생각나면 마저 만들 생각이었다.
하지만 이게 어떻게 됐는가.
‘심지어 1절에서 끊겼잖아.’
2절이 없다.
왜냐, 1절밖에 안 만들었으니까!
이런 걸 발굴해다가 정식으로 발매하다니.
이 얼마나 사악한 일인가.
사람이 죽었으면 그냥 좀 보내 줄 것이지, 왜 이렇게 부끄럽게 만드는가!
“와, 이런 곡이 있었네.”
식구들은 또 그걸 들으면서 놀란 목소리로 떠들기 바빴다.
“김한석이 이런 노래도 만들었구나.”
“…….”
“사후 앨범이 나왔다는 건, 죽어서도 사람들이 기억해 줬다는 거잖아. 자랑스럽겠다.”
아니야.
부끄러워 죽겠어.
“역시 김한석이 시대를 앞서갔다니까.”
“그러게요. 이런 생각을 다하네.”
그만 좀 하면 좋겠다 싶은데 조은솔이 길게 숨을 내쉬더니 말했다.
“김한석이 대단하기는 해. 저 시대 노래 같지가 않아. 엄청 세련됐네.”
그래, 세련되기는 했지.
그런데 부끄러우니까 그만 좀 했으면 좋겠는데, 고희범까지 한 마디를 덧붙였다.
“진짜 김한석이 천재가 맞긴 했나 봐요. 이런 앨범도 내고.”
칭찬해 줘서 고맙다.
근데 그거 내가 낸 앨범 아니야.
“이런 곡 하나 내고 가면 평생 자랑스럽겠지?”
아니야.
부끄러워서 죽을 것 같아.
제발 남의 흑역사를 두고 칭찬하는 짓은 그만둬 줘.
나는 수치심을 더는 못 참고 말했다.
“그…….”
“왜?”
“그것 좀 끄면 안 돼요?”
“왜?”
“들으려니까 조금 손발이 오그라들어서.”
그 말에 홍윤서가 코웃음을 치더니 말했다.
“이거 웃긴 놈이네. 김한석 좋아한다면서. 유작 앨범을 왜 네가 부끄러워해?”
“…….”
반박하기 어렵다.
그저 조용히 복수의 날을 기약하는 수밖에.
‘30년 전의 내가 지금의 나를 타격하는구나.’
저 곡이 무엇인가.
당시 음악 시장의 한계를 뚫고 벗어나려 이곳저곳을 마구 찌르다가, 결국, 너덜너덜한 테두리 앞에서 안주해 버린 게 저 곡이었다.
실패한 청춘이라고나 할까.
어쩌면 저 곡이 내 한계였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제 내게도 기회가 왔다.
‘수습할 수 있다. 아니, 수습하고야 만다.’
저 당시 곡을 완성하지 못했던 건, 어디까지나 마지막 퍼즐 한 조각을 차마 못 찾고 포기한 탓이었다.
어느 시도를 해 봐도 부족했다.
아무리 노력해 봐도, 내가 간절히 찾는 그 한 조각을 발견해 낼 수가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어떠한가.
‘드디어 완성할 수 있게 됐어.’
현대 음악에서 영감을 얻어, 모자랐던 퍼즐 조각 하나를 드디어 구상해 냈다.
이제, 2절을 완성해 낼 순간이 왔다.
그리고 내 흑역사도 청소할 수 있게 됐다.
‘얼른 끝내야겠다.’
나는 기타를 들고 입을 열었다.
“이거 리메이크로 뮤비를 찍을 거거든요. 일단은 한 번 들어 봐 주세요.”
디릭.
그렇게 연주를 시작하고 잠시 뒤.
식구들의 표정은 썩 볼만했다.
아, 이 맛에 신곡을 내는 건가 보다.
* * *
이번 뮤직비디오 촬영은 통상의 절차와는 완전히 달라졌다.
[정상적인 절차였다면, 곡을 제작한 다음 거기에 맞춰서 촬영을 진행하는 게 정상이죠.]오중기 사장이 한 말이었다.
우리 상황이 많이 꼬였다는 말.
하지만 그들은 이 정도는 감수하려는 눈치였다.
[이번에는 피차 특수한 상황이니 그런 관례 따위는 중요치 않습니다. 저희는 최고의 영상을 만들어 보일 테니, 한영 씨는 최고의 곡을 준비해 주시길 바랍니다. 그거면 됩니다.]곡만 좋으면 된다.
적당한 제작 기간 정도는 기다려 줄 테니, 최상의 결과물을 만들어 보자는 말이었다.
‘일단 곡 준비는 끝났고.’
이대로 샘플을 녹음해다가 보내도 상관없을 터.
하지만 기왕 내놓는 곡이니만큼 조금 더 공을 기울여 보기로 했다.
그 일환이 지금, 눈앞에 있었다.
Dim.A.
아직 어리지만, 여느 성인 프로듀서 못지않은 감각을 가진 음악 영재.
“어때요?”
내 곡을 한참이나 말없이 들은 그가 말했다.
“김한석 원곡에서 번안한 거 맞죠?”
“네.”
“누가 이렇게 만들어 줬어요?”
“제가요.”
“그럴 것 같았어요.”
그는 말 그대로 예상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더니 입을 열었다.
“어쩐지 너무 엉성하더라.”
“…….”
초면에 공격적으로 나오는 거 보소.
나한테 평소 원한이라도 있었나.
일 많이 시켰다고 이러긴가.
눈을 좁게 뜨고 째려보려니, 그는 작게 헛기침을 뱉고는 말했다.
“하지만 오히려 레퍼충들보다는 낫네요.”
“레퍼충이요?”
래퍼충이라니.
생소한 말에 나는 되물었다.
“랩 하는 사람들 욕하는 말인가?”
“아뇨, 그게 아니라 레퍼충. 레퍼런스만 따와서 무작정 카피해다가 곡 내는 사람들이요.”
래퍼가 아니라 레퍼런스였구나.
디마는 작은 경멸이 담긴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적당히 레퍼런스 하나 따와서 카피하는 건 아무나 할 수 있거든요. 프로 흉내 내기에 이것보다 좋은 것도 없죠. 그래서 아무나 해요. 그러다가 천재인 척하고.”
아.
요즘 작곡계에는 그런 분위기가 있구나.
새로운 정보에 고개를 끄덕이는데 그가 중얼거렸다.
“솔직히 말하자면 지금 한영 씨가 들려준 곡은 너무 낡았어요. 요즘 트렌드에서 벗어난 건 그렇다 쳐도, 요즘 작곡 공식에서 지킨 것도 거의 없네요. 솔직히 말하자면 작곡을 많이 안 해 본 사람이기에 만들 수 있는 곡이라고 생각해요.”
아니야.
작곡 많이 해 봤어.
그냥 요즘 시대 음악을 접한 게 반년밖에 안 돼서 그러는 거야.
그렇다고 이걸 사실대로 말할 수는 없으니, 어떻게 반박할 여지를 찾고 있는 찰나였다.
“하지만.”
디마가 숨을 내쉬며 말했다.
“그래서 좋아요.”
앞서 나온 말과는 완전히 반대되는 말이었다
“참신하네요.”
낡았다더니 참신하단다.
이거 모순 아닌가.
할 말을 잃은 참인데 그가 말을 이었다.
“지난번 그 바게트라는 곡보다 나은 건 물론이고, 요즘 들어본 어지간한 곡들보다도 훨씬 나아요. 잠깐 들은 게 계속 귀에 남네요. 그래요. 이 곡에는 레퍼충들이 따라올 수 없는 근본이 있어요.”
말하는 것 좀 봐라.
칭찬과 악담이 반반 섞인 게, 요즘 식으로 말하자면 맵고 달고의 반복이었다.
“근본이요?”
“자기가 무슨 곡을 만들고 싶은지 아는 사람이 만들었다는 거예요. 스타일만 적당히 겉핥기로 베껴 온 게 아니라.”
그렇구나.
말을 듣고 있다 보니 화를 낼 타이밍도 놓쳐 버렸네.
됐다.
나는 그냥 한숨을 내쉬고는 말했다.
“그래서, 이거 작업할 수 있겠어요? 제가 고안한 것보다는 더 살리고 싶은데. 가능하면 최대한으로.”
“음.”
그 순간이었다.
디마는 뭐라 확답을 하지 못하더니, 무언가 고민이라도 있는 듯 눈을 감았다.
머릿속으로 뭘 생각하는지 고민의 시간이 잠시.
그는 결심한 듯 눈을 뜨더니 말했다.
“못 할 것 같아요.”
못 한다는 말이었다.
동시에 나는 근래 흔치 않게 은근한 놀라움에 잠겼다.
‘뭐지, 이건 무슨 말이지.’
못 하는 건 그럴 수 있다.
하지만 중요한 건 이 말이 디마의 입에서 나왔다는 사실이었다.
‘이 사람 입에서 못 한다는 말이 나오는 건 난생처음 듣는 것 같은데.’
내가 아는 디마가 어떤 사람이었던가.
자기 능력으로 못 하는 일이 생긴다면, 밤새워 공부해서라도 어떻게든 되게 만들어 올 성격이다.
“그럼 다른 사람을 찾아보라는 건가요?”
혹시나 해서 사정이 있는지 물어본 순간이었다.
“아뇨, 제가 할 거예요.”
디마는 고개를 도리도리 젓더니 말했다.
“오해하지 마세요. 여기서는 못 한다는 거니까. 제 작업실은 이 곡을 못 살리거든요. 절대로.”
아.
그런 말이었구나.
확실히 이 작업실은 환경으로 따지자면 말도 안 되는 수준이기는 했다.
3평이나 될까 싶은 비좁은 공간에 음향 장비들을 꾸역꾸역 채워 넣었지. 그간 여기에서 작업해 온 게 신기할 따름이었다.
‘그래도 애정은 느껴지네.’
디마는 세상만사가 다 귀찮은 표정으로 의자에서 일어나더니 말했다.
“집 밖에 나가는 거 귀찮은데, 그래도 필요하니까 어쩔 수 없네요. 얼른 다녀오죠.”
방구석 전문가.
디마가 외출을 선언했다.
그를 알고 지낸 이래 처음으로 본 광경이었다.
* * *
“여기에요.”
디마가 나를 인도한 곳은 전혀 예상치 못한 장소였다.
‘여기는.’
한국예술원.
디마가 다니고 있는 학교의 음대 부속 건물, 그중에서도 레코딩 스튜디오가 딸린 연구동이었다.
내가 왜 놀랐는가.
그 이유는, 디마가 학교에 왔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이 사람, 대학생이었지.’
놀랍다.
내가 기억하는 디마는 학교에 가긴 하나 싶은 사람이었다.
작업물을 보내면 24시간 언제든 즉각 피드백이 온다.
학교에 거의 출근, 아니, 등교를 하기는 하나 의심스러운 수준.
새로운 발견에 감탄하며 서 있으려니, 디마가 나를 뒤돌아보며 말했다.
“왜 그러세요?”
“학교에 다니시기는 하는구나 싶어서요.”
“저 대학생인데요.”
그래, 대학생이지.
디마는 기지개를 켜더니 말했다.
“저도 학교에 별로 오고 싶지는 않았는데, 필요한 게 여기에 있어서 어쩔 수가 없었어요.”
“작업실에서는 안 되는 게 있나 봐요.”
“있죠.”
그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말했다.
“릴 테이프라고 들어보셨어요?”
릴 테이프.
요즘 사람들에게는 생소할 수 있는 말이었다.
업계에서는 사양길에 접어든 지 꽤 오랜 시간이 흐른 장비니까.
하지만 내게는.
“당연하죠.”
모를 수가 없는 이름이었다.
“아날로그 녹음할 때 필요한 거잖아요.”
“…….”
내 말에 디마가 은근히 놀란 티를 냈다.
네가 그걸 어떻게 알고 있냐는 게 뻔히 드러나는 표정.
그 표정에 나는 나도 모르게 피식 웃었다.
‘하긴, 아는 사람이 드물 만도 하지.’
릴 테이프.
흔히 아날로그 녹음을 할 때 필요한 장비였다.
그런데 이걸 아는 사람이 왜 없냐.
그 이유를 말하자면.
벌써 십몇 년 전에 자취를 감추었기 때문이었다.
‘그립네.’
현대에 들어서는 기술의 발전에 힘입어 어지간하면 디지털로 녹음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내가 살던 때는 달랐다.
릴 테이프가 필수였다.
즉, 내 모든 앨범은 릴 테이프로 작업했다.
하지만 뭐든 안 쓰는 건 안 쓰는 이유가 있기 마련.
이게 한국 대중 가요계에서 반쯤 사라진 이유가 무엇인가 하면.
“곡 하나 녹음할 때마다 돈 엄청나게 드는 장비잖아요.”
돈이 끔찍하게 들어가기 때문이었다.
릴 테이프라는 게 소모품이다.
녹음이 길어지면 테이프를 갈아 줄 때마다 돈을 써야 하니, 디지털 녹음보다 작업비용이 몇 배로 불어날 때가 잦았다.
“그런데 그건 왜요?”
“아까 한영 씨가 연주한 거 들으니까 알겠더라고요.”
디마는 눈을 깜빡이더니 말했다.
“그건 디지털 장비로는 절대 그 맛을 못 살려요. 아날로그로 가야 돼요.”
“그런가?”
“디지털은 소리가 좀 매끄러워요. 좋게 말하면 깔끔하지만, 다르게 말하면 정이 안 느껴지죠.”
“아날로그는요?”
“따뜻하죠. 감성적이고.”
디마는 공기 중의 먼지를 응시하듯 빈 허공을 둘러보더니 말을 이었다.
“아날로그의 소리는 편안해요. 귀를 자극하지 않죠. 이걸 테이프 컴프레션(Tape compression)이라고 하는데, 자연스럽게 소리의 결을 다듬어서 듣는 사람의 귀를 배려해 줘요.”
“디지털로는 재현 못 하나요?”
“단언컨대, 죽었다가 깨어나도 못 해요. 된다는 사람도 있는데, 막상 들어보면 느낌이 아예 다르거든요.”
그런 장점이 있었나.
나로서는 영 예상하지 못했던 말이었다.
“신기하네요. 기술이 발전하는 사이 도태된 기술인 줄 알았는데요.”
“꼭 최신 기술이 좋다고는 할 수 없어요. 중요한 건 그때그때 내게 필요한 걸 골라서 적용하는 거죠.”
그는 무뚝뚝하게 말을 잇더니 맞았다.
“한영 씨가 준비한 음악에는 디지털보다 아날로그가 더 알맞아요. 양초의 빛처럼 따뜻하고 가을비처럼 부슬부슬하고 자연스러운 소리. 그런 게 있어야 하거든요. 한영 씨 음악에는요.”
“내 음악이라…….”
“일단 해 보고 아니다 싶으면 엎어도 되고요. 그냥 제 생각일 뿐이에요.”
그의 말을 듣고 있으려니 생각나는 게 있었다.
김진산 사장이었다.
언제나 최선을 못에 박힌 듯 강조하던 그 사람.
어떻게 보면 지금 디마의 말에는, 그러한 최선의 미학이 묻어 있었다.
‘디지털을 버리고 아날로그를 택한다라.’
꼭 최신이 좋은 건 아니구나.
최신은 최선이 아니었다.
그렇게 생각해 보니 내 마음속에도 작은 깨달음이 스며드는 듯했다.
‘그래, 틀에 잡히지 말고 생각해 보자.’
디지털도 좋고 아날로그도 좋다.
양쪽에서 취사 선택을 하면 되는 거구나.
그래서 디마가 여기로 온 거겠지. 작업실에는 아날로그 장비가 없으니까.
……라고 생각한 순간이었다.
“어.”
스튜디오 앞을 지나치던 사람 한 명이 뚜벅뚜벅 구두 걸음으로 다가오며 말했다.
“우리 또라이가 학교에 다 나왔네?”
또라이.
그게 누구지.
나한테 하는 말인가 싶은 찰나, 한 사람이 눈에 들어왔다.
‘인정.’
디마의 표정이 무덤덤했다.
– 다음 화에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