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new career singer who can read the future RAW novel - Chapter (16)
미래를 읽는 경력직 신인가수-16화(16/225)
…졌다.
나는 가위를 냈고, 상대는 바위를 냈다.
옆으로 고개를 돌리자 의기양양한 상대 참가자의 모습이 보였다.
이겼어야 했는데.
우리 조가 있는 곳을 보자 짜증이 난 듯한 30번 참가자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분명 이 장면은 방송에 나간다. 30번의 모습도 방송에 나가겠지.
무대 위를 비추는 카메라 몇 대가 내 얼굴을 잡고 있는 게 보였다.
아마도 여기서 표정을 조금이라도 잘못 짓는다면 악마의 편집으로 나만 욕을 먹겠지. 그리고 내 예감상, 여기서 이렇게 쉽게 9번 곡이 넘어가지는 않는다. 뭔가 미션이 주어질 수도 있다.
그때 MC 하연호가 입을 열었다.
“오. 둘 중 한 분이 9번째 곡을 가져가게 되셨군요! 그런 김에 이 승부에서 이긴 자에게 특별한 기회를 드리겠습니다! 9번째 곡을 선택하실 수도 있고, 10번째 곡을 미리 들어 볼 수 있는 찬스입니다!”
상대의 표정을 보니 순간 고민에 잠긴 듯했다. 나였어도 참지 못할 유혹이었다.
“어떻습니까? 두 분 다 손을 든 이 곡보다 10번째 곡이 더 좋을 수도 있습니다! 만일 그렇게 돼서 10번 곡을 선택하게 된다면, 9번째 곡은 23번 참가자에게 가게 됩니다!”
내 옆자리 참가자는 고민하는 기색을 보이더니, 하연호를 향해 말했다.
“저, 다음 곡 들어 보겠습니다.”
“호오… 역시 기회를 놓치지 않는 분이시로군요!”
스태프가 헤드셋을 준비했다. 그러고는 참가자의 귀에 씌웠다. 어떤 음악이 들어 있는지 몰라도 그의 얼굴이 시시각각 변하는 걸 느낄 수 있었다. 9번째보다 훨씬 더 좋은 음악일까? 궁금증은 커졌다.
스태프는 음악을 짧게 들려주고 헤드셋을 다시 가져갔다. 이 참가자는 자신의 조가 속한 곳을 봤다. 그랬다가 나를 한 번 보고는 고민에 잠긴 듯했다.
이유가 뭔데?
그 곡이 그렇게나 좋은 거야?
아니면 아니란 거야?
[THE STAR] 카드는 어찌 됐든 나를 빛나게 해 줄 카드. 이런 상황에서라면 더욱더 빛나게 해 줄 수도 있단 생각에 기대를 품었다.“마음의 결정을 내리셨습니까? 10초 드리겠습니다.”
하연호의 장난기 짙은 말에 내 옆 참가자는 허둥지둥거리다가 말했다.
“10번째 곡, 선택하겠습니다!”
그의 조를 바라보니 실망한 기색이 역력했다. 리더를 10분 만에 뽑아서 제대로 된 성향을 모르는 것도 한몫했을 테고, 그 리더가 독단적으로 상황을 몰고 간 데에 대한 짜증도 있을 터.
그러다 우리 조 쪽을 바라보니 30번 참가자가 나를 향해 엄지를 추어올렸다. 괜히 뿌듯해지는군. 내가 원하던 곡이 나에게로 들어왔을 때의 행복이란.
“리더들은 다시 조원들이 속한 자리로 가 주세요. 각 조마다 스태프들이 선택한 음원을 들을 수 있는 연습 룸을 드릴 겁니다. 그럼 거기서 파트를 분배하고, 인스트루멘탈 버전이 아닌, 제대로 된 가이드 보컬이 부른 곡을 듣게 될 겁니다! 자, 여러분! 준비하세요!”
자리로 돌아오니 30번이 들뜬 채로 내게 말을 걸었다.
“와, 진짜 저도 저 곡 아니면 안 된다고 생각을 했거든요? 그런데 딱 저 곡을 가져오신 거예요! 얼마나 놀랐는지 몰라요.”
“운이 따라 줬죠. 모두의 보컬에 맞는 음악이 저 곡 하나라고 생각했거든요. 10번 곡은 모르지만. 어찌 됐든 저희 조가 모두 생존을 한다면 좋지 않겠어요?”
내 말에 다른 조원들도 수줍게 웃어 보였다. 나의 판단이 어리석지 않았음을 알아주는 것이다.
30번은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참으로 말도 많다.
“저 개인적으로는 고음부를 제가 부르고 싶은데요. 제가 고음에 있어선 어디 가서 밀리지 않아요.”
30번의 목소리를 듣고 있자니… 10여 년간 연예계에서 가수로 구른 짬바에서 느껴지는 게 있다. 30번의 말은 허황된 것이라는 것을.
내가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자 30번은 이야기를 더 해갔다.
“아니, 그러니까요. 진짜 제 말 믿어 주세요.”
“믿지 않는다고는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고음부가 가장 주목을 받는 파트이기도 한 만큼 인스트루멘탈 버전이 아니라, 가사 있는 버전으로 들어 보고 결정을 내려야겠죠?”
“그, 그거야 그렇지만….”
“리더님 말이 맞아요.”
조용히 있던 49번이 답했다.
다른 참가자들 역시 내 말에 동조하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아니, 제가 말한 건 제가 가져가겠다는 뜻은….”
이미 한 번 설명한 이상 괜찮을 것이라고 예상했는데, 30번은 몇 번이고 의견을 피력하려는 듯했다.
더 말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하려는 찰나.
스태프가 다가왔다.
“23번 리더님. 여기 음원이 담긴 USB입니다. 그리고… 연습실 룸 넘버는 23번입니다.”
룸 넘버까지 23번이라.
만일 TV 방영되는 본선까지 올라간다면 최종적으로 25명이 남는다. 그렇게 따지자면, 제작진은 25개의 연습 룸을 준비했다는 말이 된다.
이 프로, 돈 좀 썼네.
“다 같이 연습실로 가 보죠.”
조원들을 이끌고 스태프에게 물어 23번 연습실에 도착했다. 이야. 웬만한 스튜디오보다 시설을 잘 갖춰 놓은 듯했다.
그나마 다행인 건, 내가 음향 기기를 다룰 줄 안다는 점.
“음향은 신경 쓰지 마세요. 제가 직접 다루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리더님!”
“일단 들어 볼까요?”
벚꽃이 흩날리던 계절에
나의 곁을 함께하던 당신에게
사랑한다고 이제야 말하고 싶어
늦은 걸 알아
아니란 걸 알아
그래도 당신은 나의 원 앤 온리
You got the best of me
곡을 신중하게 듣던 49번이 말했다.
“굉장히 로맨틱하네요. 아까 인스트루멘탈만 들었을 땐 밝은 음악일 줄 알았는데요. 지나간 연인을 그리워하는 곡이라는 게 반전 같아요.”
그 말에 나도 고개를 끄덕였다. 듣자마자 어느 부분에서 무엇을 살려야 할지 바로 떠올랐다. 물론 바로 입 밖으로 내진 않았다.
30번 참가자는 사비 부분을 듣고는 미간을 찌푸렸다.
“이 곡, 고음 파트가 따로 없네요? 사비 부분에서 제가 고음 애드리브를 넣어 주면 참 좋을 텐데.”
자기 마음대로 디렉팅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디렉팅 역시도 나의 몫.
“30번 님, 죄송하지만 이 곡은 더하면 더할수록 분위기가 망가진다고 생각해요. 오히려 덜면 덜수록 이 곡의 매력이 살아나고요.”
“…아무리 리더라지만 독재자도 아니고, 판단을 미리 내리고 이 곡 고른 거 아니에요?”
30번은 시작부터 거슬리더니, 같은 조가 되었어도 거슬리고 있다. 30번의 말에 다른 참가자들이 안절부절못하는 표정을 짓는 게 보였다.
“아닙니다. 전 독재적으로 하길 원치 않습니다.”
옆에서 카메라도 돌아가고 있는데, 30번은 자신의 이미지 따윈 챙길 생각이 없나 보다.
방송 프로그램에 출연할 때는 말 한마디, 행동거지 하나라도 조심해야 한다는 걸 모르는 듯했다. 노래 실력, 그중에서도 고음을 잘 부르면 노래를 잘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 중 하나였다.
고음이 노래의 전부는 아니다. 파워풀하게 고음을 뽑아낼 수 있다면 매력적인 보컬이긴 해도, 모든 걸 충족시키는 보컬이 아니라는 나의 굳은 신념이 있었다.
“지금 파트 나누려고 하는 게 독재자 같잖아요. 고음 파트 49번 님에게 주려고 그러시는 거죠?”
“아뇨. 모두의 노래를 듣고 공평하게 나누겠습니다.”
내 말에도 다른 조원들의 굳은 표정은 나아지지 않았다.
조금만 더 있다간, 30번이 나에게 주먹이라도 날릴 것 같았으니까. 험악한 분위기에 일조를 한 30번이 짜증이 났지만, 나는 미소를 잃지 않았다.
미소 천사. 그게 내 목표이기도 했다. 져도 웃기. 이 프로그램을 통해서 최대한 호감을 많이 쌓아 마지막 투표 때 많은 수를 얻을 것. 아주 간단하지만, 지키기는 어려운 것이었다.
30번은 할 순 없겠지만.
“30번 님도 앉으시고, 다시 한번 노래를 들어 보도록 하죠.”
30번은 뭐라고 하려다가 내 차분한 말에 자리에 앉았다.
나는 다시 음원을 틀었다. 배경은 벚꽃이 흩날리는 듯했고, 장조로 진행이 됐다. 가사는 부드럽게 연결이 됐고, 파트마다 누군가가 튀어야 하는 게 아니라, 화음을 부드럽게 쌓아 올려야 듣기 좋을 듯했다.
흐음. 역시 이 노래에서는 사비에 49번을 넣어야 할 것 같은데. 30번의 목소리는 중저음역대에 넣는 게 포인트가 될 듯하고. 다른 이들의 목소리는….
“다시 들어 보니 어떠신가요?”
내가 조원들에게 의견을 물었다.
조원들은 이미 자신이 어느 파트를 맡고 싶은지 정한 듯한 표정이었다.
30번 빼고.
30번이 [THE STAR]의 기운을 앗아 가는 듯했지만, 나는 인내했다.
“일단 제가 생각한 걸 말씀드리겠습니다. 2절 사비는 49번 님이 해 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
그러자 30번의 표정에 황당하다는 듯한 기색이 역력했다.
“왜 49번 님이 2절 사비를 합니까? 전 분명 제가 고음부를 잘하기에 2절 사비와 클라이맥스 부분을 하고 싶다고 했었….”
“목소리로 판단한 겁니다. 30번 님의 고음부는 좋아요. 좋은데 이 곡은 튀는 것보다는 화음을 쌓아 올려서 가야 하는 곡이에요. 30번 님이 고음부를 맡게 된다면 파워풀해질 거예요. 그렇다면 이 곡의 매력이 사그라지겠죠. 그렇기에 그런 판단을 내린 겁니다. 30번 님의 목소리는 2절 도입부에 잘 어울려요. 중저음역대를 부르면서 그 위에 제가 화음을 쌓는다면….”
30번은 자신의 목소리에 대한 장단점을 이야기해 줬음에도 분노한 모습이었다.
허, 참. 오디션 프로그램마다 자신을 최대한 살리려고 노력하는 사람이 있다지만 이 참가자는, 그냥 자신의 모든 것을 다 바치고 싶어 하는 것 같다.
미래를 내다보지 못하고 현재에만 사는 사람. 지금은 숙소에 막 입성해서 TV 방송까지 갈 인원을 고르는 단계임에도.
“그렇다면 전 못 하겠습니다.”
잠시 고민한 듯한 30번은 반발 의사를 내비쳤다. 캠을 든 스태프는 30번 참가자의 얼굴을 비췄다.
30번 참가자는 어그로를 끌려고 참석한 게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들 정도였다. 저런 태도라면 그 어느 소속사에서도 반기지 않을 터.
“30번 님, 이건 저를 위한 게 아니라 조원 5명 모두를 위한 겁니다. 30번 님의 목소리는 고음역대에서도 있지만, 중저음부에서도 괜찮아요. 이 기회에 색다른 매력을 알아 가는 것도 좋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는 스태프가 자신의 얼굴을 계속 찍고 있자, 스태프를 밀쳐 냈다.
그 바람에 캠을 들고 있던 여자 스태프는 뒤로 넘어지며 바닥을 굴렀다. 캠코더가 망가진 것은 물론이고.
“무슨 일입니까!”
소란을 들었는지, 담당 연출진이 와서 물었다.
나는 사건을 조용히 넘어가려 했지만, 의외로 49번이 나서서 모든 상황을 설명했다. 30번은 분이 가라앉지 않는지 씩씩거리고 있었다.
그때. 담당 PD의 입이 열렸다.
“30번 참가자, 퇴거입니다.”
30번의 표정이 굳었다.
“아니, 그게 아니라요. 제가 흥분해서 그만…. 한 번만 봐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두 번 말하지 않습니다. 당장 퇴거해 주세요.”
PD는 스태프와 장비를 챙기며 연습 룸을 나갔다.
30번은 나를 향해 욕설을 중얼거리고는 쾅 닫고 나갔다.
나는 다시 미소 지으며 말했다.
“그럼 파트 재분배와 연습을 시작해 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