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new career singer who can read the future RAW novel - Chapter (20)
미래를 읽는 경력직 신인가수-20화(20/225)
나는 무대를 보며 노랫말을 읊었다.
무대에서 가장 많이 하는 실수가 가사를 까먹는 일이었다. 프롬프터에 가사가 나오지만, 긴장한 상태의 신인 가수가 프롬프터를 보며 자연스럽게 노래를 이어 가기란 쉽지 않은 일이었다.
나야 물론 무대 경험이 많았지만, 지금 이 순간만큼은 첫 번째 데뷔 시절로 돌아간 것만 같았다.
“저희 잘할 수 있을까요?”
우리 팀원이 나에게 물었다. 나는 리더로서 이들의 감정까지도 잘 추스를 수 있도록 해야 했다.
“그럼요. 우리 모두 10명 안에 들 수 있을 거예요.”
“저 진짜 어제도 탈락하는 꿈을 꿔서….”
“원래 꿈은 반대라잖아요. 모두가 올라갈 거예요.”
우리 조는 무대 뒤로 이동했다.
스태프들이 카메라를 들고 우리 조를 촬영했다.
다른 조원들은 전부 5명인데 우리 조만 3명이니, 주목을 더 받을 만도 했다.
어쩌면 악마의 편집 주인공이 될 것이라는 게 우리의 생각이었다.
“23번 님, 본선 무대 소감이 어떠세요? 팀원이 2명이나 나갔잖아요.”
스태프가 예상했던 질문을 던졌다.
여기서 대답을 잘해야 한다.
잠시라도 망설이는 순간 그 장면은 악마의 편집을 피해 갈 수 없다는 걸 잘 알고 있다.
“아쉽지만, 열심히 하겠습니다!”
“에이. 너무 싱거운데요?”
스태프가 감정을 더 끌어내려고 하는 게 보였다.
하지만 그런 데에 속아 넘어갈 내가 아니다.
“괜찮습니다! 탈락하신 두 분께서 후회하지 않으시도록 저희 조는 모두 10명 안에 들도록 해 보겠습니다!”
“알겠습니다. 역시 서바이벌을 두 번째로 경험하시는 분이라 안 넘어가시네요.”
그 말을 하며 스태프가 웃었다.
나의 모습을 본 다른 팀원들 역시도 스태프의 짓궂은 질문에 신중히 대답했다.
나쁘지 않군.
“다들 잘할 수 있죠? 파이팅!”
“파이팅!”
“저희 모두 생방송에 진출해 봐요!”
힘차게 인사를 하고 무대에 올라갔다.
이별한 연인의 이야기를 담은 곡인 만큼 감정선을 잘 살리고 시선 처리 역시 신경을 쓸 것.
무대에 오르기 전에 이미 팀원들에게 한 차례 강조했지만, 나 자신도 기억하고 있어야 할 것이었다.
MR이 흐르고 도입부가 시작됐다.
이전에 리허설에서 한 소리 들었던 팀원은 이번엔 순조롭게 시작을 알렸다.
오케이, 시작 좋고.
점차 감정이 차오르고, 1절 사비 부분이 왔다.
나는 감정을 절제하는 듯 살짝 풀어놨다.
힘차고 부드럽고 장조의 멜로디였지만, 왠지 눈물이 쏙 쏟아지게 할 정도로.
1절 사비가 끝나고 간주 부분이 나오자 박수 소리가 들렸다.
나는 웃어 보이고 싶었지만, 웃음도 자제했다.
이별한 연인의 감정에 심취해 있어야 했다.
그렇게 2절이 시작됐다.
다른 팀원들의 목소리가 살아날 시간이었다.
둘의 목소리에선 긴장한 기색이 드러나긴 했지만, 듣기 싫을 정도는 아니었다.
방송 무대를 처음 겪는 이들의 긴장감 정도였다.
노래의 클라이맥스에서 둘의 화음이 쌓아 올려지며 감성을 자극했다.
무대 아래를 둘러보니 우리의 감정에 심취해 눈물을 보이는 참가자도 있었다.
이 정도면 훌륭한 무대다.
좋았어.
* * *
“저 친구 실력 꽤 좋은데요? 왜 못 떴을까. 어쩌다 네 번째 데뷔에 도전하는 걸까요.”
무대를 바라보던 코스트가 말했다.
그 말에 오션은 가요계 대선배로서 한마디 했다.
“원래 실력이 아무리 좋아도, 운때를 잘못 만나면 못 뜨는 법이지. 자네도 무명 생활이 길지 않았나.”
“그렇긴 했지만, 저 친구 보이스는 진짜 아까울 정도인데요. 본명이 무명이라던데, 그래서 그런 것인지….”
“에헤이, 이름 가지고 놀리는 거 아닐세. 어찌 됐든 저 친구 실력을 보아하니 10명 안에는 가뿐하게 들겠고.”
그 말에 도파민이 추억을 회상하듯 입을 열었다.
“예전에 대기실서 본 적 있는데, 싹싹한 친구더라고요. 그 그룹은 결국 망했지만.”
도파민의 살짝 건방진 말투에 오션은 미간을 찌푸렸다.
그러나 엮이고 싶지 않았기에 오션은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물론 스태프들은 심사위원단의 대화를 모두 촬영 중이었지만.
“아무튼, 기대되는 친구로군. 얼굴도 잘생겼고, 피지컬이랑 프로포션도 좋고, 노래까지 잘하니. 다 갖췄으니 기회만 제대로 주어진다면….”
코스트가 대화에 끼어들었다.
“휴엔터와 전속 계약을 했다고 하더라고요. 뜨는 건 이제 간단한 일이죠.”
“아, 그래? 잘됐군. 저런 보물 같은 친구들이 무대에 많이 올라 줘야 해. 그래야 한류 열풍이 오래가지.”
오션의 말에 시스터즈가 말했다.
“역시 선배님께서는 자나 깨나 가요계 걱정뿐이시네요.”
“당연한 소릴! 흐음, 나는 저 친구를 내 픽으로 삼지. 두고 봐. 분명히 1위를 하고 말 거야.”
가요계 대선배의 선언에 다른 이들은 살짝 당황한 기색을 내보였다.
이렇게 대놓고 한 명을 지지하겠다고 하는 건 서바이벌 프로그램서도 처음 겪는 일이었기 때문.
도현이 속한 조의 무대가 끝나고 나머지 다섯 팀도 무대를 마쳤다.
심사위원들은 각 팀의 평가와 더불어, 탈락자까지 고심하며 회의를 했다.
탈락자를 누구로 삼을 것이냐는 회의는 그야말로 접전이었다.
한 명이 지지 의사를 표하면, 다른 이는 약점을 말하며 다음 본선에 들 수 없다고 했기 때문이었다.
회의만 해도 두 시간 동안 진행됐다.
서바이벌 참가자들에게는 떨리는 시간의 연속이었다.
* * *
“자, 여러분! 드디어 기다리고 기다리던 결과가 나왔습니다! 우리 심사위원분들께서 엄청난 회의를 하셨다고 하는데요! 그 결과가 이제부터 공개됩니다!”
MC 하연호가 재등장했다.
“저희 올라갈 수 있을까요?”
도현네 조의 팀원이 자신감 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파트도 제대로 소화했잖아요. 에이, 걱정 마세요.”
“23번 님은 붙으실 거 같은데… 저도 다음 본선까진 가고 싶거든요. 관객들을 바라보며 무대도 하고 싶고….”
“붙으실 겁니다. 우리 조, 지적도 거의 없었고, 무대 잘했어요. 그러니까 걱정은 안 하셔도 됩니다. 제 말만 믿고 가세요.”
도현이 자신감 넘치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럼에도 남은 두 명은 걱정 어린 표정으로 한숨을 푹푹 내쉬었다.
무대에선 잘했어도, 막상 내려오니 긴장이 많이 되는 모양이었다.
“그렇게 한숨 쉬면 들어왔던 복도 달아나요. 우리 힘차게 결과 발표를 기다립시다.”
도현이 다른 조를 둘러보니 다른 조 역시 상황은 비슷해 보였다.
누가 올라갈지 모르는 상황이다 보니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다.
“자, 그럼 순서대로 다음 라운드에 진출할 참가자 명단을 부르겠습니다!”
첫 번째 무대를 한 조부터 순차적으로 발표가 시작됐다.
천국과 지옥을 오가는 순간이었다.
도현은 눈을 감고 자신의 마음을 진정시키려 애를 썼다.
‘난 붙는다. 붙고야 만다. 붙을 수 있다. 붙을 수밖에 없지.’
도현은 각 조에서 희비가 갈리는 동안 두 손을 꽉 잡았다.
데뷔만 네 번째 도전이라 해도 심사위원들의 입맛에 따라 탈락의 기로에 서게 돼 있는 법.
“자, 그럼 여덟 번째 조!”
하연호가 드디어 도현이 속한 조를 외쳤다.
그때가 돼서야 도현은 눈을 뜨고 하연호를 바라봤다.
“이 조는 참 고생이 심했어요. 시작하자마자 한 명이 퇴거했고, 리허설 때 또 한 명이 못 하겠다고 퇴거해서 파트 재분배까지 한 조죠. 그럼에도 모두 열심히 한 데 대해 존경을 표합니다.”
‘제발! 제발…!’
도현은 겉으로 티를 내지 않았지만, 속으로는 간절히 바라고 바랐다.
그건 모두가 같을 터.
“이 팀은….”
하연호가 말을 하다 말고 짓궂게 웃었다.
그 순간 도현은 직감했다.
우리 모두가 붙을 수 있으리라고.
서바이벌 경험자의 촉이었다.
“전원 합격입니다! 축하드립니다!”
예상했던 말이 하연호에게서 들려왔다.
하연호의 말에 굳어 있던 팀원들의 표정이 풀렸다.
웃음이 만발했다.
“감사합니다!”
“정말… 정말 감사합니다!”
“여덟 번째 팀의 리더로서 마음고생을 많이 했을 23번 참가자의 말도 들어 볼까요?”
그러자 스태프가 다가와서 마이크를 도현에게 건넸다.
“우선… 여러모로 마음고생했을 우리 팀원들에게 수고했단 말을 하고 싶습니다. 모두 수고했어요, 여러분. 오늘은 푹 잡시다! 그리고 다음 라운드에서 더 멋진 무대를 보여 주는 거죠!”
“보기 좋습니다. 역시 팀워크가 돋보이는 팀인 것 같네요. 자, 그럼 다음 팀의….”
이어지는 발표에서도 희비가 엇갈렸다.
도현의 팀은 안도하고 있었지만, 다른 팀은 희비가 엇갈리고 있는 만큼 티를 내지 않았다.
* * *
그렇게 결과 발표가 끝난 후.
하연호는 무대 아래로 내려가지 않았다.
“여러분, 본선 1차 라운드에서 수고를 하셨습니다. 이번에는 2라운드에 대한 안내입니다.”
남은 10명이 무대를 바라보며 긴장했다.
이번에 주어질 미션은 어떤 것인지 궁금해하는 이들이 대다수였다.
“이번에는 어떤 미션일까 궁금하죠?”
“네!”
한 참가자가 우렁차게 대답해서 참가자들의 긴장이 순간 풀렸다.
“목소리가 참 좋군요. 2차 미션부터는 개인 미션입니다! 여러분의 실력을 마음껏 과시할 수 있는 무대가 되겠습니다!”
“우오오오오!”
한 참가자가 자신 있다는 듯 환호성을 내질렀다.
그 모습에 몇몇 참가자들이 풉 하고 웃음을 터트렸다.
“잘하실 수 있을 것이라 믿습니다. 실력을 마음껏 드러낼 수 있는 무대이지만, 예전에 설명해 드렸듯 이 무대는 수많은 작곡가가 만든 노래를 부르는 무대입니다. 여러분에게는 랜덤으로 곡이 주어지게 됩니다. 그럼 그 노래를 부르면 됩니다. 선곡할 필요도 없습니다. 어떻습니까?”
하연호의 말에 도현의 조 사람들은 다시 걱정 어린 표정으로 변했다.
“이런… 이거 완전 운발 게임 아니에요? 작곡가의 곡이 나랑 잘 안 맞으면….”
“그러니까 미션이지 않을까요? 나랑 안 맞는 작곡가의 곡이라 하더라도 잘 맞춰서 불러라, 이거죠.”
도현이 서바이벌 경험자로서 설명을 해 줬다.
팀원들의 표정은 더욱더 굳었다.
“모두 자신감을 가지세요. 노래는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달라지게 돼 있어요. 여러분은 팀 미션도 잘 해 내신 만큼 개인 미션도 잘하실 거예요.”
“하… 그러고 싶은데, 긴장이 되네요.”
“저도요. 도현 님은, 아니 23번 님은 걱정이 안 되시겠네요.”
그럴 리가.
도현 역시도 자신의 음색을 잘 알기에 작곡가를 잘못 만나면 무대를 망칠 수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
“아닙니다. 저도 제 음색과 잘 어울리는 곡을 만나야….”
그때였다.
“자, 그럼 남은 10명에게 각각 멘토를 정해 주겠습니다. 멘토가 디렉팅을 해 줄 겁니다. 심사위원단 다섯 분 중에서 여러분의 멘토가 정해질 겁니다. 이미 멘토분들은 여러분을 선택했습니다. 자, 그럼 순차적으로 번호를 불러 보겠습니다….”
도현은 왠지 코스트만은 피하고 싶었다.
예선 때부터 만났던 터라, 피하고 싶은 마음이 컸다.
그러나 바람은 그렇게 쉽게 이루어지지 않는 법.
“23번, 코스트 씨에게 가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