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new career singer who can read the future RAW novel - Chapter (67)
미래를 읽는 경력직 신인가수-67화(67/225)
내가 이 자리에 있는 걸
우연이라고 믿고 싶었던 순간이 있었지
그런데 이제는 알고 있어
우연이 아니라는 것을
세렌디피티 세렌디피티
그 단어는 아니었던 거야
우연히 찾아온 행운이 아니라는 것을
“피디님, 가사 어때요?”
이준혁 피디가 고개를 다시 한번 갸웃하더니 말했다.
“솔직히 말하자면, 너무 직관적이에요. 조금 더 은유를 넣으면 좋은 가사가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아.”
한 번에 통과할 리는 없을 거라고 생각하긴 했지만, 좀 더 자잘한 수정을 생각했었다.
‘하얀 집’ 촬영을 수월하게 진행하는 동안 작사 작업을 해서 그런가 자신감이 너무 올라가 있었던 모양이다.
“그리고 멜로디에 맞춰서 노래해 볼래요?”
이준혁 피디가 음원을 재생했다.
이에 맞춰 도현은 노래를 불렀다. 하지만 한 가지 문제점이 드러났다.
‘하얀 집’에 출연 중일 때는 머릿속으로, 혹은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가사를 적느라 박자감이 엇나갔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 제대로 된 반주에 맞춰 노래를 불러 보니 박자 감각이 맞지 않았다. 억지로 박자에 가사를 욱여넣은 느낌이었다.
“아, 박자도 안 맞네요.”
“프로그램을 촬영하는 동안 바빴을 텐데 가사를 써 온 점은 높게 쳐드릴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러느라 놓친 부분들이 많은 것 같네요. …일단 우리 회사에서는 도현 씨를 작사, 작곡, 프로듀싱까지 모두 가능한 싱어송라이터로 만드는 게 목표거든요.”
“아, 네!”
도현으로서는 굉장히 유리한 포지션이었다. 잘나가는 싱어송라이터의 콘셉트라면 휴엔터와의 계약이 끝난다 하더라도, 더 좋은 회사에 들어갈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고 볼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이번 앨범에 더 심혈을 기울여야 할 겁니다. 이번 작업, 아쉽게 생각하지 말고 다시 해 오세요.”
이준혁 피디의 목소리는 냉랭했다.
“그리고… 일단 완성된 다른 곡들도 들려드리겠습니다.”
도현은 두근거렸다. 다른 곡들을 들었을 때에도 거의 날것의 상태로만 들었었지, 완성된 버전으로는 들어 보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트랙도 유기적으로 짰습니다. 1번은 인트로, 마지막 10번 트랙은 아웃트로. 이렇게. 자, 한번 순서대로 쭉 들어 봅시다. 생각이 나는 대로 메모도 해 보세요.”
이 피디는 인트로부터 재생했다.
인트로를 듣는 순간 도현은 소름이 돋았다.
‘…이게 정말 인트로라고?’
현악을 중심으로 한 화려한 오케스트라 사운드가 도현의 시작을 확실히 알리고 있었다. 약 1분 30여 초간 연주되던 오케스트라 사운드가 멈춘 뒤, 두 번째 트랙이 흘러나왔다.
‘와, 이게 음악에서 느낄 수 있는 자본인가.’
이전까지는 한 번도 느낀 적 없었던, 고퀄리티의 음악이 흘러나오자 도현은 감동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흔히 말한 ‘돈맛’이 느껴지는 음악들이었기 때문이었다. 자신이 참여했던 앨범에서 자본주의의 맛이 느껴지는 건 이 앨범이 첫 번째였다. 지난 데뷔의 기억들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특히 짐승돌도 데뷔했던 때의 음악과 비교하자면, 저 먼 우주의 끝과 지구의 섬 하나의 크기를 대 보는 것 같았다.
“어때요?”
마지막 아웃트로까지 끝나고 나자 이준혁 피디는 입을 열었다.
“이런 게 바로 자본주의구나, 싶네요.”
그 말에 웬만해선 웃지 않는 이 피디가 피식 웃었다.
“그래요?”
“저 진짜 이런 음악으로 꽉 채워진 앨범을 대중에게 들려줄 생각을 하니까 너무 설레요. 와, 음악을 들은 순간부터 아웃트로가 끝나는 때까지 설렜어요.”
도현은 그저 ‘설렌다’라고만 표현되는 자신의 감정이 아쉬울 따름이었다. 그 이상으로 표현하고 싶을 정도로, 앨범 트랙의 유기성과 곡의 완성도가 높았다.
“도현 씨가 마음에 들어 하니 제가 다 기분이 좋네요. 그럼 타이틀곡 작사 작업을 어떻게 해야 할지 감이 오죠?”
“네! 감이 옵니다!”
“아, 더불어 미션이 있어요. 아웃트로 전의 트랙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아웃트로 전의 트랙이라 하면… 이 앨범에서 가장 간질간질하고 달콤한 멜로디를 가진 곡이었다. 그걸 떠올린 도현은 그대로 답했다.
“마음 한구석이 간지럽고 달콤하더라고요. 그래서인지 왠지 팬송으로 부르면 좋을 듯한….”
“감이 발달해 있네요. 맞아요. 이건 팬송이거든요. 가사가 없었던 이유는 알겠죠?”
“…아! 제가 작사를 하는 것이라면 너무 좋습니다! 아무래도 날것의 가사가 나오겠지만, 작사 팀의 도움을 받으면서 조금씩 고치다 보면 좋은 가사가 나올 것 같아요.”
“맞습니다. 이번 9번 트랙은 팬송이에요. 인트로와 아웃트로를 화려하게 장식하며 다음 앨범을 기대하게 했다면, 9번 트랙은 10년이라는 시간이 지날 동안 도현 씨와 함께해 준, 앞으로 함께할 팬들에게 보내는 곡이라고 생각해 주면 되겠습니다.”
이 피디의 설명에 도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잘할 수 있습니다!”
“좋습니다, 그 태도. 도현 씨에게 칭찬하고 싶은 건 움츠러드는 순간이 있을 텐데도 항상 자신감을 보여 준다는 점이에요. 그런 점이 매력적이라고 전 생각합니다. 이번 앨범 녹음 때도 그런 매력을 살려 보기로 합시다.”
“예! 피디님!”
이준혁 피디는 1번 인트로부터 10번 아웃트로까지 든 USB를 건넸다. 도현은 꾸벅 인사하고는 밖으로 나왔다.
* * *
“슬슬 집으로 가 볼까.”
도현은 도하에게 연락을 취해서 같이 갈지, 아니면 조용히 혼자서 이동할지 고민했다.
도하는 분명 도현을 기다리다가 당직실에서 잠을 자고 있을 터.
“…불편하게 자는 것보단 함께 사는 집에서 재우는 게 낫겠지.”
도현은 ‘하얀 집’ 촬영을 마치고 난 후, 회사와 방송국 중간에 있는 투룸 집을 구해서 독립했다. 아무래도 도하와 같이 사는 게 편했기에 각자 방 하나씩을 쓰고 있었다.
도현은 조용히 당직실로 갔다. 아니나 다를까. 도하는 꾸벅꾸벅 고개를 움직이며 잠들어 있었다.
“도하야.”
“으, 으으… 네?”
도하가 입가로 흘러내리던 침을 닦고 고개를 들었다.
“형님, 이제 끝나셨어요?”
“응. 음원도 다 받았고.”
“형님, 어때요? 저도 들어 보고 싶은데.”
“집에 가서 들려줄게. 집부터 가자. 졸린데 운전은 할 수 있겠어? 내가 해도 상관없으니까 일단 가자. 집 가서 편히 자는 게 중요하니까.”
“에이, 매니저가 운전해야죠.”
“그럴 필요가 뭐 있어. 정신이 조금이라도 온전한 사람이 운전해야지. 가는 동안 넌 좀 눈 붙여. 요새 스케줄이 많아서 고생하는 건 너인데.”
도현은 도하를 생각해서 말했다. 도하는 손사래를 쳤다가 이윽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어요, 형님. 그럼 차 안에서 음악 재생해 주세요.”
“오케이.”
도현과 도하는 주차장으로 향했다. 주차장이라고 하기엔 비좁은 데다, 팬들이 접근하기 좋은 공간이었지만.
“꺄아! 도현 오빠!”
“도현아! 여기 한 번만 봐 줘!”
“도현아, 오늘도 수고했어!”
수많은 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도현은 회사 앞으로 찾아오는 팬들의 인사를 되도록 받아 주지 말라는 회사 방침에 따라 가벼운 손 인사 정도만 하고는, 운전석에 올라탔다.
도하는 뭉그적거리며 조수석에 앉았다.
“들어 볼래?”
“형님, 제가 꽂을게요.”
도하가 USB를 건네받고는 차량에 꽂았다. 얼마 뒤, 1번 인트로 트랙부터 재생됐다.
“와, 이거 정말 형님 앨범 맞아요? 다른 가수 앨범 아니라? 형님 다음에 데뷔할, 우리 회사 데뷔 조 애들 음악이 아니라요? 무슨 솔로 앨범 인트로인데 그룹 인트로 같이 기깔나게도 뽑았네요.”
도하가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감탄을 내뱉었다.
“그렇지? 나도 듣고선 놀랐어.”
“이야, 우리 형님, 이번에 진짜 대박 날 것 같아요.”
“그랬으면 좋겠어.”
도현은 운전대를 돌리며 답했다.
“다만, 오늘 가지고 갔던 가사는 다 까였어. 거기다가 팬송 가사 작사하라는 미션까지 주어졌고.”
“아아, ‘하얀 집’ 프로그램 촬영 때 썼던 가사요? 아무래도 그땐 정신 집중을 온전히 할 수 없었으니까 그러지 않았을까요?”
도하의 말에 도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프로그램 당시 상황과 지금의 상황은 많이 달랐으니까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뭐, 그런 것이겠지. 이번 주까지만 화보 촬영이랑 인터뷰 있지?”
“예. 맞아요. 다음 주부턴 앨범 촬영 들어가야 하는데…. 형님, 식단 조절 가능하시겠어요? 식단도 하라고 회사에서 지시를 내리던데.”
도현은 평소에도 식단을 조절해 먹었다. 연예인이 되기로 결심한 뒤부터는 무조건 식단을 조절해 먹었다. 그뿐만 아니라, 맨몸 운동이라 할지라도 빼먹지 않고 했다.
‘하얀 집’에서는 여러모로 신경 써야 할 게 많아 그러진 못했지만. 평소에는 맨몸 운동에도 신경을 많이 쓰는 편이었다. 맨몸 운동이 아니면 헬스장을 다니며 꾸준하게 운동을 하며 가꿨다. 이게 다 닭가슴살을 먹으며 활동했던 짐승돌 시절에 생긴 버릇이었다.
“지금 정도면 괜찮지 않나. 여기서 더 빼면 너무 비쩍 말라 보일 거 같은데.”
“그러긴 해요. 그래도 운동은 더 하지 않더라도 식단 관리는 하라고 회사에서 지시가 내려왔어요.”
“그러지, 뭐.”
야경은 아름다웠다. 도하와 이런저런 일에 관련한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천천히 운전대를 잡고 앞으로 가다 보니 머릿속으로 온갖 영감이 떠올랐다.
“때로는 그런 거 있음 좋겠어.”
도현이 중얼거렸다.
“어떤 거요, 형님?”
“그, 왜 말이야. 내가 머릿속으로 생각하는 걸 바로 글자로 옮겨 주는 거 말이야. 머릿속에서 생각하던 걸 입으로 내뱉는 순간 순서가 꼬이기 마련이거든. 그래서 그런 거 말고 뇌와 직통으로 연결된 그런 거. 그러면 난 베스트 작사가상 받을지도 모르는데.”
“아마… 한 200년 후쯤에는 가능하지 않을까요?”
도하가 진지하게 답해서 도현은 웃음이 터졌다.
“농담이야, 농담. 아, 이제 집이다. 나 주차하고 올라갈 테니까 먼저 올라가 있어.”
“아니죠, 형님. 형님을 케어하는 게 제 몫인데 어떻게 제가 먼저 올라가요.”
도하는 조수석에서 내린 뒤 도현이 주차를 할 때까지 기다렸다. 주차를 마친 도현은 우편함을 우선 확인했다.
도현이 사는 곳, 우리빌라의 401호에 커다란 서류 봉투가 끼워져 있었다.
“음? 도하야, 저 서류 봉투는 뭐지? 내가 저런 걸 받을 린 없는데.”
도하가 꺼내서 살폈다.
“누가 보낸 건지 이름도 안 쓰여 있고…. 팬들이 들어와서 꽂아 놓은 게 아닐까 싶은데요?”
“에이, 설마. 이사한 지 얼마나 됐다고 벌써 팬들이 찾아와서 꽂아?”
도현은 설마 하며 서류 봉투를 챙겨서 집에 들어갔다.
식탁 위에 올려놓고 도현은 씻으러 들어갔다.
그때 밖에서 도하가 내지르는 비명이 들렸다.
“형님!”
도현은 샤워 가운을 걸치고는 밖으로 나왔다.
도하는 손을 덜덜 떨면서 서류 봉투를 가리켰다.
도현은 그게 뭔가 싶어서 사진을 봤다.
그리고….
“…이게 뭐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