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Regressor’s Tale of Cultivation RAW novel - Chapter (113)
네가 밟아온 것 (1)
원립이 도착하기 사흘 전.
“놈을 죽일 것입니다.”
청문중진은 나를 보며 작게 한숨을 쉬었다.
원립 학살 사태를 최초로 발견한 결단기 수도자인 청문중진에겐, 이번 원립 사냥 무리에서의 임시적인 지휘권이 주어졌다.
그는 어두운 표정으로 나를 보며 말했다.
“나도 그자를 찢어 죽이고 싶네. 하지만, 계획이 필요해. 지금 당장 150여 명의 결단기 수도자들이 모였으나, 모인 기간도 짧고 회의할 시간도 짧았네. 우리가 저 노괴물을 상대하려면… 시간이 더 필요해.”
“….”
“자네를 비롯해, 몇몇의 결단기 수도자들이 지금 분노에 눈이 돌아갔다는 걸 충분히 알고 있네. 하지만 지금은 힘을 모아야 할 때야. 그렇게 비협조적으로 나온다면 오히려 방해만 될 걸세.”
“…제 목적은 그놈을 죽이는 겁니다.”
“…지금 결단기 진법사들과 짠 계획이 성공하면, 원립에 의한 공포에서 결코 적지 않은 시간 동안 해방될 수 있네. 심지어 원립이 그 안에 수명이 다해 버리면 오히려 그 역시 좋겠지.”
뿌득….
나는 검은 눈물을 흘리며 이를 갈았다.
“제… 손으로 놈을 죽일 수 없단 말입니까….”
청문중진은 깊은 한숨을 쉬었다.
“나라고 왜 놈을 천 갈래 만 갈래 찢어 죽이고 싶지 않겠나…. 하지만, 이번 계획이 실패한다면, 그놈은 거리낌 없이 전 대륙에 우리가 겪었던 것과 같은 학살극을 흩뿌릴 것일세. 원영기 수도자가 한 분도 안 계신 지금, 그를 막을 자는 아무도 없어질 걸세.”
“….”
“부디… 전 대륙의 평화를 위해… 도와주게. 최소한 이 자리에 모인 모든 사람은… 한 마음이 되어 계획에 참여해야 해….”
나는 청문중진을 쳐다보았다.
그의 의념 역시 고통으로 물들어 있었다.
“부디 힘을 빌려주게. 공묘세가 가주도 숨겨 오던 가문의 비전까지 빼 들었어….”
그의 부탁에, 나는 잠시 이를 악물었다.
“…하면, 조건을 붙이겠습니다.”
“뭔가?”
“계획에 협조해서 가주님의 지휘에 따라 원립을 밀어붙이되, 저는 기회가 오면 최대한 원립을 죽이려 할 것입니다. 그게 제 조건입니다.”
“알겠네. 그 정도야 당연한 거지. 자네뿐이 아닌… 이곳에 모인 모든 이들이 사실상 그리 하려 할 터인데.”
청문중진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내게서 계획의 참여를 확인받은 후, 나와 같이 원립을 죽여 버릴 것이라며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던 방립의 갈의 노인을 설득하러 그에게 다가갔다.
나는 청문중진을 잠시 바라보고, 다시 수많은 결단기 수도자들과 결단기 진법사들이 모여 계획했다는 계획.
그 계획의 중심인, 원립의 동부, 흑색의 성을 쳐다보았다.
‘성공하려나.’
아마 성공할 확률이 높았다.
그들의 계획대로 된다면, 수백 년간 세상은 평화로울 테고.
나는 이전 삶에서도 답천사막 대학살이 일어난 후, 수백 년간 평화를 느꼈으니까.
‘만약… 성공한다면, 오히려 내 복수는 뒤로 밀리는 것인가.’
과연, 그것이 맞는가.
지금 이 순간, 놈의 육신을 발기발기 찢지 않고, 내가 버틸 수 있겠는가.
‘…최대한, 노력하자.’
틈을 봐서, 결단기 수도자들이 그런 복잡한 계획을 짤 것도 없이, 바로 원립을 죽일 수 있도록…!
그리고, 그렇게 사흘 후.
원립이, 지평선 너머로 나타나기 시작했다.
* * *
나는 며칠 전 있었던, 청문중진과 대화를 나눴던 때를 떠올리며 무형검을 거세게 잡았다.
‘계획이, 아예 성립되지도 않도록… 놈을 이 자리에서 죽인다.’
처음부터 전력을 다한다.
나는 산외산부진의 태세를 유지하며, 기(氣)로 이뤄진 경락을 바로 무형검과 이어 버렸다.
목숨을 건다.
콰아앙!
무형검은 그 누구의 공격보다도 빠르게 내쏘아져 원립에게 가 부딪혔다.
그러나, 내 무형검은 원립의 주변을 감싼 피 구름에 막혔을 뿐이었다.
척, 척, 척, 척!
내 뒤쪽으로 다른 결단기 수도자들이 도열하며 각자 법술과 법보를 뿜어냈다.
수(水), 화(火), 풍(風), 뢰(雷)에 해당하는 법보들이 원립의 피 구름을 뚫었다.
“죽어라, 이 악귀 놈!”
고손자를 놈에게 잃었다는 갈의 방립 노인이 비색의 바퀴 형태의 법보를 입에서 뿜는다.
다른 수도자들이 뚫어 놓은 피 구름의 구멍으로, 노인과 다른 결단기 수도자들이 각기 법보를 꽂아 넣었다.
쿠웅, 쿵, 쿵!
폭광이 번뜩이며, 원립이 섬뜩한 미소를 짓는다.
키이이잉!
폭광 너머로 적색의 장막이 번뜩였다.
어느새, 그가 네 개의 적색 보탑을 꺼내 그의 주변에 결계를 펼친 채였다.
‘더 단단해졌군.’
지난번에 결단기 대원만 수준의 그와 싸웠을 때에는 고작 결단 대원만 수준의 법력을 먹어서였는지,
몇 번 후려치면 결계가 흔들렸던 것과 달리, 원영기의 법력을 머금은 결계는 나와 다른 결단기 수도자들이 법보를 쏟아부었는데도 튼튼했다.
[쯧쯧, 웽웽대는 것이 썩 시끄럽구나.]원립이 비릿한 미소를 지으며 손을 들어 올렸다.
“막아!”
“노괴가 힘을 쓴다!”
“전부 공격하시오!”
100명에 달하는 결단기 수도자들이 일시에 법보와 가장 강력한 법술들을 퍼붓기 시작했다.
천지가 진동할 듯하며, 그 여파만으로 근처 사막이 유리가 되어 녹아내리고, 모래 폭풍이 사방팔방으로 번져 나갔다.
쿠오오오오!
결단기 수도자들의 합격에, 직경 5리에 달하는 범위에 1리에 달하는 깊이의 구덩이가 생겨났다.
휘오오오오!
지형이 바뀌며 지축이 흔들린다.
쿠구구….
그리고, 폭발 너머, 그 안쪽에서, 피 구름이 넘실거린다.
“으윽, 미친…!”
“이래도 안 죽었다고…!?”
결단기 수도자들의 얼굴에 공포의 기색이 서린다.
그리고, 원립이 혀를 차는 소리가 사방으로 울려 퍼져 왔다.
[일반적인 원영 초기라면, 위험했겠구나. 하지만 글쎄… 나는 일반적인 원영 초기도 아닐뿐더러… 더군다나 네놈들은 금번 비승에 붙어가지도 못한 저급 자질을 지닌 버러지 놈들이 아니더냐?]피이이잉!
피 구름 안쪽에서, 핏빛의 광채가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모두 모여 진을 치시오. 노괴가 그 법술을 쓸 것이오!”
나는 원립을 노려보며 사방으로 외쳤다.
며칠간, 나를 비롯해, 대초원에서 원립에게 가까스로 살아남은 생존자 두 명의 증언으로 인해 원립의 법술에 대한 특징이 모든 결단기 수도자들에게 퍼졌다.
때문에 우리의 증언을 들은 결단기 수도자들은 원립의 법술과, 그 위력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 알고 있었다.
“모두 이쪽으로!!”
청문중진과 공묘령이 옆에 붙어서 큰소리로 외쳤다.
수많은 결단기 수도자들이 그들에게로 붙었고, 며칠간 연습해 둔 보호진을 알맞게 짜며 법진을 완성했다.
저계 수도자들이 배우는 아주 간단한 호신(護身)의 진.
하지만, 그것을 펼치는 자들은 결단기 수도자들이었고, 그들의 법력이 한데 모이자, 어마어마한 방어력을 형성해 냈다.
번쩍!
원립의 법술이 폭발했다.
혈광이 사방팔방으로 넘실거리며, 천지사방이 핏빛 속에 잡아먹히는 듯했다.
빠직, 빠지지직!
호신의 진이 금방이라도 깨질 듯 금이 갔으나, 100명이 훌쩍 넘는 결단기 수도자들이 모여 만들어진 진법은 결코 쉬이 깨지지 않았다.
치이이이!
얼마 후, 핏빛이 잦아들었다.
그리고 잦아드는 핏빛 너머로, 우리는 다시금 비슷한 규모의 법술을 준비하는 원립을 볼 수 있었다.
“모두 다시 공격해라!”
“틈을 주지 마!”
140여 명의 결단기 수도자들은 각각 다섯 무리로 나뉘어, 사방과 상공에서 원립을 공격해 갔다.
나는 원립의 전방에서 놈의 얼굴에서 시선을 떼지 않고 미친 듯이 무형검을 휘둘렀다.
총천연색의 법보와 법술들이 원립 주변의 방어막을 두들겼다.
그리고.
원립이, 다시금 법술을 완성했다.
“혈(血), 수(樹), 해(海)!”
촤라라라락!
원립이 자신 주변의 피 안개를 흡수한다.
그리고, 원립이 지팡이를 꺼내 들었다.
붉은 수정 해골이 박혀있는 나무 지팡이.
마치 아기의 손 같은 작은 나뭇가지들이 몸체에 빼곡히 자라난 그 지팡이가, 시뻘건 빛을 내뿜었다.
촤라라라락!
지팡이에 자라난 작은 나뭇가지들이, 미친 듯이 자라나 사방으로 뻗쳐 나간다.
콰과과과!
“피, 피해!”
“절대 닿지 마라!”
“아, 안 돼! 저리 가!”
가지들은 사방으로 뻗치고 또 뻗치다 못해, 원립을 중심으로 사막에 핏빛의 숲을 형성해 내었다.
몇몇 결단기 수도자들이 원립의 공격을 피하지 못하고 녀석의 수해(樹海)에 그대로 갇혀 버렸고, 그들은 삽시간에 전신의 기혈이 전부 빨려 목내이 같은 모습으로 변해 버렸다.
그리고, 수해의 중심에 있던 원립은 몇 명의 결단기 수도자를 빨아먹은 후 어쩐지 방금 소모된 기력이 회복되어 버린 것 같았다.
“제길, 괴물 같은 놈…! 그래도 네놈이 우리 전부를….”
촤락, 촤락, 촤락!
원립의 주변으로, 일곱 개의 족자가 떠오른다.
“해(解)!”
그가 법결을 맺자, 족자에 피로 그려져 있던 요혼들이 풀려났다.
하지만 요혼들은 지난번에 나를 상대했듯이 각각 나뉘어 다른 이들을 상대하지 않고, 허공에서 서로 뭉치기 시작한다.
쿠구구구!
그리고, 한 마리의 요혼이 서로 다른 요혼과 겹쳐질 때마다, 요혼의 수행이 폭증하는 것이 느껴졌다.
키잉, 키잉, 키잉!
결단기 수준이었던 요혼이, 점차 결단 중기 최고봉을 넘어 결단 후기, 결단 대원만에 다다른다.
그리고.
키잉, 키잉, 키이잉!
일곱 마리의 요혼이 완전히 겹쳐져, 그 어떤 짐승도 아닌 괴이(怪異)의 형상이 되었을 때.
요혼에게서 느껴지는 수행은 원영기에 달하였다.
“아, 아아….”
“하하….”
비록 요혼에게서 느껴지는 기운으로 보아, 진짜 원영기는 아니었고, 법술도 기껏해야 예닐곱 개를 사용하면 기운이 다할 것 같았다.
그러나 지금 당장 원립의 옆에 원영기급 전력이 하나 더 생겼다는 것이 중요했다.
끼아아아아!
하지만 그것이 끝이 아니었다.
원립이 저물대를 열자, 귀곡성이 울리며 내가 봤던 혈수가 솟구치며, 낫을 든 두 마리의 귀왕으로 변모하였다.
그리고, 그 귀왕은 원립의 법결에 따라 원립의 주변에 있는 피 안개로 들어가 그대로 피 안개와 동화되었다.
쿠구구구구!
원립의 피 구름이 거대하게 뭉치며, 두 마리의 귀왕의 형상을 만들어 낸다.
“미친….”
“일반적인 원영기 수도자도… 아니잖나….”
새로 강화된 귀왕은 한 마리 한 마리가 원영 초기에 조금 못 미치는 기운을 지녔고, 두 마리가 합쳐지면 충분히 원영 초기에 해당하는 기력을 지니고 있었다.
[그래, 계속 해 보려느냐, 벌레들아?]그때였다.
“모두 포기하지 마라!”
공묘세가의 가주, 공묘령이었다.
갈의를 입은 미부인인 공묘령은 안색이 창백해진 상태에서도 수많은 법보를 꺼내 들고 외쳤다.
“어차피 원영기 수도자를 상대할 수 없단 건 모두 알고 있지 않았나! 원래 세운 계획대로 놈을 몰아붙여!”
“그, 그래…! 계획대로만 하면…!”
“맞소! 충분히 상대할 수 있어!”
[호오…?]결단기 수도자들은 모두가 제 목숨이 아까운 줄 아는 이들이었고, 원립을 상대하고자 하였으나, 그만큼 신중한 이들이었다.
하여, 그들은 원립을 직접 상대하려 하지 않았다.
원립이 이곳에 도착할 그 며칠 동안, 그들은 원립을 상대할 방안을 미리 내놓았고, 전부 그 계획에 따라 움직이고 있는 것이었다.
물론, 나를 비롯한 몇몇은 계획이고 뭐고 상관없이 원립을 죽일 기회를 최대한 노리고 있었지만 말이었다.
‘죽인다.’
계획이고 뭐고 필요 없다.
전부 원립을 직접 맞상대하기 두려운 이들이 내놓은 타협이 아닌가?
죽일 수 있다.
틈새만 보인다면!
콰앙, 콰아아앙!
“크아아아악!”
“괴, 괴물…!”
괴이한 요혼과 원영 초기 귀왕의 합세에, 결단기 수도자들은 일방적으로 밀리고 있었다.
하지만, 그러는 와중에도 그들은 미친 듯이 원립에게 돌진하며 원립을 몰아붙였다.
“죽어라! 이 마귀 놈!”
나는 갈의를 입은 방립의 노인과 함께 원립의 앞에서 그를 향해 미친 듯이 공격을 퍼부었다.
피싯, 피시싯!
나와 그의 공격에 의해, 점차 원립을 보호하는 보탑 결계에 금이 가고 있었다.
“죽어라! 죽어! 없어져 버려라!!!”
갈의 방립 노인은 피눈물을 흘리며 마구 법술을 쏟아부었고, 나 역시 시커먼 눈물을 흘리며 저주문을 잔뜩 섞어 무형검으로 결계를 내리쳤다.
나와 노인을 비롯해서, 원립에게 친지를 잃어 미친 듯이 원립을 죽이려 하는 한두 명의 결단기 수도자들이 더 이쪽으로 가세하여 결계를 후려쳤다.
그리고.
콰아아앙!
나와 노인의 합격에, 기어이 보탑 결계가 뚫렸다.
“밀어붙여라!!”
청문중진이 뒤쪽에서 사자후를 터트렸다.
청문세가의 원로들이 구멍이 뚫린 원립의 결계를 넘어 그에게 달려들었다.
콰아악!
세 명의 청문세가 원로들이 원립에게 매달려, 그를 한 곳으로 밀어붙이기 시작했다.
[이 벌레들이, 감히 어디에 손을 대는 것이냐.]촤악!
원립의 위쪽으로 반투명한 핏빛 깃발이 세 개가 떠올랐다.
콰앙!
하지만, 내 무형검에 의해 혈주번들은 그대로 쓸려 나가 사라졌고, 청문세가 원로들 외에 다른 결단기 수도자들 역시 몇몇은 원립에게 달려들고,
몇몇은 법보나 법술을 원립에게 붙여 밀어붙였다.
[이놈들이…?]원립은 밀어붙여지는 방향이 어디인지 깨달았는지 우리를 바라보며 말했다.
[무슨 꿍꿍이인 게냐?]“죽어라!!!”
“목을 뽑아 주마.”
갈의 노인과 나는 원립을 향해 각각 무형검과 바퀴 형태의 법보를 날렸다.
그리고, 원립이 입을 벌렸다.
쉬아아아악!
열일곱 개의 뼈 단검 법보가 그의 입에서 튀어나왔다.
치링, 치리링!
단검 법보들에서 기이한 소리가 나며, 사방으로 핏빛 기운을 흩뿌렸다.
“잠깐, 모두 산개해라!”
청문중진의 목소리가 울렸고, 청문세가 원로들은 그에 황급히 떨어졌다.
하지만 미쳐 반응이 늦었던 몇몇 결단기 수도자들은, 원립의 법보를 피하지 못했다.
촤아아악!
핏빛의 참격이 사방으로 뻗어 나간다.
원립에게 붙어 있던 이들은 순식간에 갈기갈기 찢겨 나갔고, 그들의 금단은 원립의 주변에 있던 피 구름에 그대로 삼켜져 버렸다.
잠시 피 구름 안쪽에서 비명 소리가 울리는 듯했으나, 금세 사라졌다.
그리고, 원립은 주변의 피 구름을 흡수하며 다시 기력을 회복시키고 있었다.
[벌레 떼도 썩 수가 많으니 귀찮구나. 본좌가 원영 중기에만 도달했어도 저항도 못 하고 내 한 줌 양식이 되었을 것들이….]“놈이 회복한다!”
“막아라!”
원립을 향해 가장 먼저 달려간 것은, 나와 갈의의 방립 노인이었다.
“죽어라!”
“죽어라!”
우리는 동시에 외치며 원립에게 공격을 쏟아부었다.
촤아악!
단검 법보들이 참격을 흩뿌리며 우리를 노렸다.
하지만 갈의 노인은 기이한 법술을 써 참격을 막아 냈고, 나 역시 무형검을 전신에 덮어 참격을 막아 냈다.
콰아앙!
나와 노인은 거의 몸통박치기를 하듯이 원립에게 달려들어, 그를 밀어붙였다.
청문중진의 목소리가, 뒤쪽에서 가까워진다.
“이제 거의 다 왔다! 진법사들은 준비해라!”
콰아앙!
나와 갈의 노인의 사이로, 푸른 둔광과 함께 청문중진이 그 육중한 몸을 부딪쳐 왔다.
[이… 놈들이…!]그리고, 마침내 원립을 상대하기 위해 결단기 수도자들이 세웠던 계획이 발동하였다.
콰아앙!
청문중진이 힘을 줘서 원립을 후려치자, 원립의 몸은 녀석의 동부인 흑색의 성 안쪽, 그곳의 안쪽 결계 내부로 빨려 들어갔다.
“역시, 제 주인은 결계가 막지 않는군.”
청문중진은 원립을 보며 뇌까렸다.
나는 잠시 입술을 깨물며 그를 쳐다보다가 법력을 끌어올려 결인을 맺었다.
나와 다른 진법사들이 모여, 결계에 법력을 흘려 넣는다.
‘죽이지는 못했나.’
뿌드득….
머리끝까지 열이 뻗치는 듯했다.
하지만, 청문중진의 말이 뇌리를 스쳤다.
―나라고 왜 놈을 천 갈래 만 갈래 찢어 죽이고 싶지 않겠나…. 하지만, 이번 계획이 실패한다면, 그놈은 거리낌 없이 전 대륙에 우리가 겪었던 것과 같은 학살극을 흩뿌릴 것일세. 원영기 수도자가 한 분도 안 계신 지금, 그를 막을 자는 아무도 없어질 걸세.
―부디… 전 대륙의 평화를 위해… 도와주게. 최소한 이 자리에 모인 모든 사람은… 한마음이 되어 계획에 참여해야 해….
뿌드득….
나는 이를 악물며, 다른 진법사들과 함께 결계진 위쪽에서 법력을 보탰다.
‘그래, 이번에는 어쩔 수 없다.’
하지만.
“반드시…!”
다음에는.
“네놈의 목을 뽑아 가져갈 것이다! 원립!”
그들의 원한을 갚으리라…!
나는 저주문이 섞은 검은 눈물을 흘리며 다른 진법사들과 함께, 흑색 성의 결계진을 이용한 봉인진(封印陣)을 펼쳤다.
“봉(封)!”
쿠구구구구!
원립의 동부 위쪽으로, 오색찬연한 빛살이 맴돌며, 원립을 가두는 감옥이 되었다.
쿠구구구!
진법사들이 봉인진을 펼침과 동시에, 다른 수도자들이 각자 자신의 비술로 주변의 용맥을 움직였다.
“양천(陽天).”
진씨세가 가주 진여운과 휘하 원로원들이 양 속성의 용맥을 끌어와 진법에 잇는다.
“음신(陰神)!”
막리세가 가주 막리황천과 휘하 원로원들은 음 속성의 용맥을 끌어와 진법에 이었다.
음양이 진법에 붙었고, 각각 세가들의 가주들은 음, 양에 더불어 태(兌), 리(離), 진(震), 손(巽), 감(坎), 간(艮)에 해당하는 용맥들을 끌어와 진법에 이었다.
음과 양은 각각 건(乾)과 곤(坤)이 되어 팔괘(八卦)에 해당하는 용맥이 진법에 이어졌다.
공묘세가 가주인 공묘령과 동방의 결단기 군주 중 세 명이 봉인진 위에서 결인을 맺으며, 봉인진을 완성하였다.
“팔괘흡령봉진(八卦吸靈封陣)! 봉(封)!”
파아아아앗!
쿠구구구구!
답천사막에 흐르는 용맥이 진에 이어지며 진을 완성시켰다.
그리고.
쿠웅, 쿠우우웅!
진의 안쪽에서 핏빛이 번뜩이는 듯하며, 진이 마구 흔들렸다.
“소용없다! 공묘세가의 비전으로 내려오는 팔괘흡령봉진은 제대로만 펼쳐지면 원영기 수도자도 가둘 수 있지. 더군다나 네 동부에 있는 기이한 결계를 진법사들이 며칠 동안 연구하여, 결계에 성질에 더해 진을 강화시켜 펼쳤다. 네가 천인기에 도달하지 않는 이상. 아니, 천인기 중기에 도달하기 전에는 절대 진을 벗어날 수 없을 것이다!”
쿠웅….
공묘령에 말에, 안쪽에서 울리던 충격음이 사라졌다.
그리고, 원립의 목소리가 울렸다.
[훌륭한 봉인진이군. 쉬이 나갈 수 없겠어.]“이 노괴야, 네놈의 수명이 얼마나 남았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마 평생 그 안에서 갇혀 있다가 늙어 죽어야 할 것이다!”
공묘령의 자신감 넘치는 말에, 잠시 진 안쪽에서 침묵이 맴도는 듯하더니, 이내 폭소가 터져 나왔다.
[흐하하하! 재밌는 것이로다. 너는 기억했다. 내가 봉인을 나가면 잔뜩 귀여워해 주지.]공묘령은 그 자신감 넘치는 말에 당황하는 듯했으나, 피식 웃으며 진을 내려다보았다.
“늙은이, 허세는! 이 진이 그리 만만해 보이더냐? 나이를 헛으로 처먹었나 보구나.”
[쯧쯧, 내가 그 정도로 사리 분별이 아니 되진 않는다, 어린 것아. 잘 생각해 보아라. 결단기 수도자들이라면 천기를 읽어 보아라! 별자리를 읽고, 이 부근이 어떤 곳인지 보아라…!]“뭐?”
공묘령은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듯 봉인진을 내려다보았다.
[큭큭큭… 이해가 안 되느냐? 실마리를 주지. 지난번의 해방성(解放城)은 어느 곳에서 몸을 드러냈느냐?]“뭐…?”
그의 말에, 답천사막 동방의 군주 중 한 사람이 희번득한 눈으로 하늘을 쳐다보았다.
지금은 한낮이었으나, 결단기 수준의 수도자쯤 되면 천기를 읽는 능력이 강화되어 한낮에도 별자리를 읽는 것이 가능했다.
“자, 잠깐…! 이, 이 좌표… 그리고 지난번 해방성이 나타났던 자리를 생각해 보고, 다음 위치를 계산해 보면….”
그리고, 문득 그 군주의 눈에 공포가 서렸다.
“이, 이곳이오! 이 근처에, 해방성이 모습을 드러낼 것이오!”
그 말에 대초원의 부족장 중 한 명이 눈을 부릅뜨고 되물었다.
“봉명성이!? 이 자리가 다음번 봉명성이 나타나는 자리라고…!?”
“뭐야…! 보, 봉명성이 나타나…?”
“그, 그렇소…! 해방성의 규칙과, 지난번 해방성이 나타났던 위치를 생각해서 계산하면, 이 근처에 해방성이 나타날 거요! 200년 후면 이 봉인이 아무 쓸모가 없단 말이오!”
결단기 수도자들은 그 말에, 전부 공포에 질린 눈으로 봉인진을 쳐다보았다.
[하하하, 어리석은 것들. 봉명성도 생각지 못했느냐…? 본좌는 200년 후 풀려날 것이다. 그때까지, 혈영을 회수하며 모아 둔 양식으로, 수행을 원영 후기까지는 끌어올려 줄 터이니, 네놈들은 200년 후 원영 후기 수도자와 싸울 준비를 해 두어야 할 터이다…!]“마, 말도 안 돼!”
“이런 멍청한! 왜 봉명성을 생각지 못한 거요!”
“누가 그런 것까지 계산할 수 있단 말입니까! 당장 지난번 봉명성이 나타난 것도 200년 전의 일이고, 지금 이 자리에 봉명성이 나타나는 건 수천 년 전의 일이었는데!”
“이런 머저리같은! 해방성 때문에 저 마두가 풀려나게 생겼잖소!!!”
각 세력의 결단기 수도자들은 마구 언성을 높였고, 나를 비롯해서 산수라고 하는 3명의 결단기 수도자는 멍청하게 주변을 둘러보는 중이었다.
아무래도 속한 세력이 없는 이들이다 보니 정보에 약한 듯싶었다.
그중 나와 함께 원립을 찢어 죽이려 했던, 갈의의 방립을 쓴 노인이 외쳤다.
“이놈들! 뭐라는 거냐! 해방성은 또 뭐냐, 봉명성은 대강 뭔지 안다만, 왜 봉명성이 이 근처에 나타나면 봉인이 풀린다는 거야!”
노인의 물음에, 공묘세가 가주 공묘령이 입술을 뜯으며 말했다.
“노사께서는 산수셨던지라 정보를 접할 기회가 없으셨나 보군요. 봉명성은 해방성(解放城)이라고도 불립니다. 왜냐하면 봉명성은 그 자체로 해방(解放)을 상징하며, 봉명성이 나타나는 순간 그 일대의 천지영기는 해방의 상징에 감응하며 갇혀 있던 것들을 해방시키지요.”
“뭣…? 봉명성에 그런 능력이 있다고?”
나 역시 그녀의 말을 귀담아들었다.
‘원립이 대학살을 일으키고, 200년 후에 나타났던 이유가… 저것인가?’
공묘령의 설명이 이어졌다.
“고계 수도자들 사이에서는, 봉명성은 애당초 이 세계 어딘가에 잠들어 있는 뭔가를 해방시키기 위해 만들어진 선보라는 소문이 돌고 있습니다. 그것이 특수한 선보일지, 아니면 어떤 신화적인 혈통일지, 그도 아니라면 고대 존재의 혼백일지는 모르지만요.”
“봉명성이 뭘 위해 만들어졌든 관심 없소. 그래서… 하려는 말이 뭐요? 내가 생각하는 그건 아니겠지?”
“노사께서 생각하시는 것이 아마 맞으실 겁니다. 한 마디로, 봉명성이 나타나는 곳에 봉인이 있다면, 그 봉인 역시 해방성의 기운에 감응해 완전히 해체되거나, 혹은 한참 약화됩니다.”
“그 말은….”
청문중진이 노인의 말을 받아 진중하게 말했다.
“저 노괴가, 200년 후 봉명성이 강림하면 다시 풀려난다는 말이오.”
술렁술렁….
수많은 결단기 수도자들의 안색이 하얗게 질렸다.
수많은 결단기 수도자들이 공포에 질린다.
그때.
청문중진이 소리쳤다.
“모두 들으시오!”
사람들의 시선이 그에게 쏠렸다.
“공포에 떨 것이 없소! 어쩌면 잘된 일일 수도 있소이다!”
“그게 무슨 말이오, 청문 가주?”
“노괴가 학살극을 시작한 것을 알고, 대륙의 결단기 수사들께서 긴급하게 모이셔서 허겁지겁 원립을 상대하셨소. 분명, 모두가 만전의 상태는 아니셨을 것이오. 그렇지 않소?”
“마, 맞소!”
“그, 그래. 연단을 하던 중에 원영기 노괴가 학살을 저지르고 있다 해서 급히 튀어나와서 제 실력을 내지 못했소이다!”
청문중진의 말이 이어졌다.
“200년은 우리 같은 이들에겐 긴 시간이 아니라지만, 절대 짧은 시간도 아니외다.
전 대륙의 기재들이 천인기 선배들과 함께 비승했다고 해도, 원영기에 이를 가능성이 있는 이들만 올라갔을 뿐. 결단기에 이를 가능성이 있는 기재들은 충분히 남아 있소! 200년 동안 인재들을 더욱 양성하고, 결단기 수도자의 수를 늘리고, 더욱더 만반의 준비를 하면 될 것이오.
우리가 며칠 간의 준비로 저 노괴를 함정에 몰아넣었듯이, 200년간 준비를 하면 아무리 원영 후기 노괴라도, 아니 원영 대원만 노괴라도 잡을 수 있을 것이오!”
그의 말에, 곳곳에 있는 결단기 수도자들의 안색이 점차 밝아졌다.
“200년 후! 우리는 200년 후를 기약해, 저 원영기 노괴를 잡아낼 것이오! 물론 200년 안에 저 노물이 수명이 다해 버린다면 두말할 것 없이 좋겠지만… 그렇지 않을지라도, 우리는 키워 낼 기재들이 있고, 미래가 있소! 준비를 더 할 수 있소!”
그의 말이 이어짐과 동시에, 나는 그제야, 회귀를 반복하며 궁금했던 일의 전모를 대강 알 수 있을 듯싶었다.
“이번에 일어난, 답천사막의 대학살(大虐殺)을 기억하며, 200년 후에 노괴와 벌일 대전쟁(大戰爭)을 준비합시다!”
회귀 10년차.
괴군의 행동으로 벌어진 작은 나비 효과로 인해,
답천사막 대학살이 수십 년은 빠르게 앞당겨졌고.
그로 인해 전 대륙은 200년 후에 있을 혈목자 원립과의 전쟁에 대비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