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Regressor’s Tale of Cultivation RAW novel - Chapter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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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이 내린 재능(5)
꿈인가.
쏴아아아―
비가 떨어지고 있다.
하늘은 먹빛으로 물들어 있었고, 그 하늘 아래, 청색의 장포를 입은 노인이 구름 형태의 법기를 타고, 무너진 신마전 본단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리고 그 주변으로 수십 명의 청포를 입은 축기기 수사들이 이곳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비가 오고 있었건만, 그들의 주변으론 보이지 않는 막이라도 쳐 있는 것인지, 빗방울이 그들 주변으로 튕겨 나가고 있었다.
신마전의 가운데에선 형님과, 신마대, 그리고 신마전의 장로들이 피 칠갑을 한 채 누워 있었다.
쿨럭, 쿨럭!
피를 한 움큼 토해 내며, 형님은 부러진 도신을 지팡이 삼아 겨우겨우 다시 일어섰다.
“괴물···이군. 축기, 후기란 놈은···.”
허공에 떠 있는, 구름 형태의 법기를 탄 노인이 그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자랑스러워해도 좋다, 범인(凡人). 나는 단순한 축기 후기가 아닌, 정귀··· 아니, 축기 대원만이라는 경지의 수도자이니. 그대는 결단기(結丹期) 직전의 수도자와, 축기기 마흔아홉을 상대로 믿을 수 없는 분전을 한 것이니라.”
“분전은, 지랄··· 당신 하나 상대하기도, 벅찼는데. 나머지는 진법만 펼쳤, 으면서도···.”
“흐음, 경지를 보아하니 무림인 중에서도 오기조원이라는 경지에 이른 것 같군. 맞나?”
쿨럭! 쿨럭!
영훈 형님은 피를 한 움큼 토하며, 다시 한쪽 무릎을 꿇었다.
‘형님···.’
나는 무너진 건물 잔해에 깔린 채로, 영훈 형님을 바라보았다.
축기기 수사 한 사람의 손짓에 건물이 손쓸 새도 없이 무너졌고, 나는 건물 잔해에 깔려서 움직일 수가 없었다.
‘치명상은 아니다.’
지난 생, 나름 일류 의원이었던 나의 자가 진단이었다.
제대로 치료를 받으면 두 달 안에 일어날 수 있을 상처.
하지만, 지금 당장 형님을 미력하게나마 도울 수는 없다.
‘아니, 깔리지 않았어도 어차피 도움은 안 됐겠지.’
나는 입술을 짓씹으며, 나 자신의 무력함을 통감했다.
축기 후기 대원만이라고 경지를 밝힌 청포 노인이, 수염을 쓰다듬으며 형님에게 말했다.
“비록 우리 수도가문 일족을 죽인 건 괘씸하고, 죽여 마땅하지만··· 네 재능을 높게 보아. 너에게 본 가문의 제자로 들어와 수도공법을 익힐 기회를 주마.”
“수···도, 공법···? 그런 건, 당신들, 특별한 놈팽이들만, 익힐 수 있는 게··· 아니었나?”
“너희 무림인들의 경지로 오기조원에 달하면, 범인 역시 우리와 같은 영질을 각성한다. 아마 너희의 오기조원이, 오행영통에 상응했던가? 너 역시 수도공법을 익힌다면 본 가의 좋은 인재가 되리라.”
그 말에, 도리어 수도자들 쪽이 당황한 듯했다.
“하, 할아버님. 저 자는···.”
한 축기기 수사가 뭐라 불만을 토로하려 할 때, 노인이 입을 웅얼거렸다.
무언가 전음을 보내는 것 같았다.
그리고, 그의 전음을 들었는지, 당황한 표정을 하던 축기기 수사들 모두가 피식피식 미소를 지었다.
“하하, 그렇다, 범인. 너도 수도자가 될 자질이 있으니 기회를 주마.”
“본가의 최고 수도공법도 주마. 너는 엄청난 업적을 남겼으니.”
“수도자가 되면 지금과는 비할 수 없는 힘과 지혜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이제는 도리어 다른 이들이 영훈 형님에게 수도자가 될 것을 권하고 있었다.
나는 그들의 눈빛에서, 그들이 형님을 비웃고, 조롱하고 있음을 알아챘다.
“함···정···.”
함정이다.
저들은 분명 형님을 수도자로 받아들일 것은 분명했지만, 무언가 말하지 않은 것이 있었다.
그때였다.
쿨럭! 쿨럭!
형님이 피 칠갑이 된 채로, 자리에서 일어섰다.
“수도자, 그래. 그거 좋지! 확실히 당신들의 무지막지함은 잘 알겠네.”
처억!
그리고, 그는 부러진 도신을 수도자들을 향해 겨눴다.
당장이라도 쓰러질 것 같은 모습을 한 채, 그는 외쳤다.
“하지만 말이지. 나는 당신들과 싸우며 깨달음을 얻었다. 덕분에 월수궁무록을 대성(大成)할 수 있었다!”
쿠웅!
그가 강하게 진각을 밟았다.
“보여 주마, 월수궁무록의 극한(極恨)을!”
“···그 부러진 도로? 동료들도 전부 죽었으면서?”
“···죽은 신마전의 동료들도, 네놈들에게 한 방 먹여 주기를 바랄 거다.”
영훈 형님이 기수식을 잡았다.
‘저 모습은···.’
나는 순간, 그의 모습에서 지난 삶의 영훈 형님의 모습이 겹쳐지는 것을 보았다.
문득, 나는 어째선지 월수궁무록에 담겨있는 의(意)가 무엇인지 알 것 같았다.
지난 삶, 영훈 형님의 절망에 찬 그 모습이 말해 주던 것.
파앗!
영훈 형님의 신형이 사라졌다. 눈 깜짝할 새에 청포 노인의 목전에 도달한 그는, 도를 휘둘렀다.
“흥, 어림없는 짓··· 음···!”
그리고, 청포 노인이 무언가 법술을 쓰려 할 때.
영훈 형님의 부러진 도가, 노인의 바로 옆 공간을 베어 내고, 노인의 옆을 지나갔다.
그저 허공을 베었을 뿐이었다.
그러나, 보이지 않는 무엇인가가 ‘잘린’ 것인지.
노인은 크게 당황하며 영훈 형님을 그대로 놓쳐 버렸다.
영훈 형님은 노인을 지나쳐, 축기기 수사들의 포위망을 뚫고 그대로 달아나 버렸다.
그렇다.
지난 삶의 영훈 형님이 만들어낸 월수궁무록.
수도자를 만나 절망에 빠진 천하제일인이 절망과 슬픔 속에서 창시한 무학.
그 무학에 담겨 있는 의(意)는,
―아우 서은현은 이 무공을 부디 후대에 남겨, 후대가 수도자라는 자연재해의 앞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최소한의 동아줄로 만들어 다오.
보다 강력한, 항거할 수 없는 수도자의 앞에서.
도망칠 수 있는 틈을 만들어 내는 비법.
이것이, 월수궁무록이 추구하던 본래의 목표였던 것이다.
“이익···! 저 맹랑한 범인 놈을 잡아라!”
파앗!
청포 노인은 구름 모양 법기를 타고 영훈 형님을 쫓아갔고, 다른 축기기 수도자들 역시 각자 비행법기를 타고 허공을 날아 그를 쫓아갔다.
장내에 남은 몇몇의 축기기 수도자들이 무너진 신마전을 내려다보았다.
“그나저나, 저 아래 생존자가 있는 것 같습니다만.”
우웅―
저들이, 나를 주시하는 것이 느껴졌다.
그러나 한 수도자가 혀를 차며 말했다.
“됐다. 절정경의 범인이 아니면 일류니 이류니 하는 찌꺼기들은 놔두고 저놈을 쫓도록. 어차피 나머지 잡것들은 범인들의 관청에 맡겨서 수배를 내리면 된다.”
“옛.”
축기기 수도자들은 나를 내버려 두고, 하늘을 날아서 형님을 쫓아가 버렸다.
그렇다.
나는 저들이 신경 쓸 가치도 없는, 일류 찌꺼기.
별 볼 일 없는 잡것이기에, 목숨을 건진 것이다.
찌꺼기.
잡것.
범인···.
“커헉··· 끄으윽···!”
나는, 약하다.
쓸모없다.
무력하다.
그극, 그그극!
온 힘을 다해, 나를 덮고 있는 건물 잔해를 밀어 올렸다.
전신의 내공을 끌어모아 밀어낸다.
“끄···아아아아아!”
그그그극!
나는, 약하다.
아무 도움도 되지 않을 정도로 약해서, 그래서 살아남았다.
그래서, 기쁜가?
“흐아아아아!”
나는 간신히 잔해를 빠져나와, 빗물이 흐르는 바닥에 엎어졌다.
“아아아아! 아아아아!”
나는 한없이 약하다.
그 누구에게도 도움이 될 수 없을 정도로.
약한 것을 보완하고자, 변장술, 의술, 잠입술, 첩보술 기타 등등 잡기를 익혀 왔으나.
진짜 괴물들을 상대론 아무 손도 못 쓰는 것이다.
“으아아아아!”
나는 빗속에서, 그저 울부짖었다.
***
철퍽, 철퍽, 철퍽···.
얼마간 울부짖은 나는, 기력이 조금 회복되자 형님이 진각을 밟고 튀어나갔던 장소로 기어갔다.
주변에는 장로들과 신마대 절정 고수들의 시체가 즐비했다.
나는 시체들 사이를 돌아다니며, 혹시 모를 생존자가 없는지를 살펴보았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신마대의 인원들은 전원 사망해 있었다.
“···젠장.”
그때, 내 눈에 뭔가가 들어왔다.
형님이 진각을 밟았던 그 장소.
그곳에, 뭔가가 있었다.
“이건···.”
도흔(刀痕)이었다.
그러나, 그 도흔이 형태를 이룬다.
이것은, 글자였다.
나는 황급히 도흔으로 다가가, 글자들을 읽었다.
‘보름 뒤··· 수악사···.’
수악사는 첨벽성 바깥에 있는, 아무도 없는 절의 이름이었다.
도흔은 정말로 괴발개발로 쓰여 있어, 그의 글씨체를 잘 아는 내가 아니면 알 수 없도록 패여 있었다.
“보름까지, 기다려야겠군.”
나는 빗속에서 내공을 운용해 기운을 회복한 후, 건물 잔해에 깔린 다른 생존자들을 구해, 장로들과 신마대의 인원들을 적당한 곳에 묻어 주었다.
“부전주님, 저희는 이제 어찌합니까?”
“무극신마께서, 만약 수도자들에게 패배해 돌아가신다면···.”
“저희 신마전은 무림공적인데···.”
“과, 관에서 저희를 수배하면 어찌 되는 겁니까?”
나는 다급한 얼굴로 내게 매달리는, 남은 전력을 보며 얼굴을 쓸어내렸다.
지금 남은 이들은 모두 절정에는 이르지 못한, 최대가 일류 후반에 이른 이들밖에 없었다.
절정경의 고수는 전부 신마대에 속해 있었고, 신마대는 수도자들에게 대항하며 합격진을 펼치다가 싸그리 죽었으니까.
‘이런 상황에선 상급자가 당황하면 대혼란이 일어난다.’
이들 중에서 폭동이 일어나, 나를 잡아 내 목을 관아에 바치자는 이들도 나올지 모른다.
“오늘부로.”
지금은 일단 명목상으로나마 내가 상급자인 상황.
거기에, 지난 삶과는 달리 나는 일류 중기의 무사다.
일류밖에 없는 이들 사이에서 무시당할 정도의 실력은 아닌 것이다.
“신마전은 형태를 바꾼다.”
지금은 단순히 혼란스러운 상황 정도가 아니다.
신마전의 구심점이던 무극신마, 영훈이 사라진 상황.
조직에 아무런 미래가 보이지 않는다면, 혼란은 급격히 커지는 법.
마지막 상급자로서, 최소한의 비전은 제시해 주어야 한다.
“현재 신마전은 무림공적 상태고, 관 역시 우리 대부분에게 현상금을 건 상태다. 구심점인 무극신마께서도 역시 현재 생사를 알 수 없는 상태다!”
내 말에, 남은 이들의 눈빛이 점차 흉흉해지고 있었다.
“만약 관이나 무림 문파들이 우리를 추격하기 시작하면 우리는 전멸이다! 하지만! 방법이 있다!”
“무, 무엇입니까?”
“연국은 넓다! 그렇기에, 소식이 연국 곳곳으로 퍼지는 데엔 시간이 걸리고, 사람과 자원이 든다! 우리는 앞으로! 그 틈새를 파고들어, 연국 무림계의 정보를 장악한다!”
“그게 무슨···.”
“내게서 첩보, 방첩, 잠입술, 변장술 등 기타 잡기를 배운 이들도 있을 것이다! 내가 가르친 그런 잡기들을 이용해 각 문파의 정보를 파악하고, 무림의 동향을 파악하는 조직으로 신마전의 방향성을 바꾼다!
앞으로 무림의 정보는 우리 손을 거쳐 전달될 것이며, 우리 손으로 조작될 것이다! 우리는 정보를 다룰 것이기에, 우리의 전신이 신마전이라는 정보 역시 우리의 손에 의해 조작할 수 있다!
우리는 앞으로 우리가 정보를 유통하고, 공급하며, 관과 무림문파들에게 거짓 정보를 팔며 우리의 생존을 도모할 수 있을 것이다!”
단순한 허세가 아니었다.
지난 삶 무림맹의 책사로 있을 당시, 온 무림의 정보와 사건이 내 손아귀에 들어왔다.
정보를 다루는 일은 얼마든지 할 수 있었으며,
심지어 나는 미래에 일어날 일도 상당수 알고 있다.
내 말이 어느 정도 신뢰를 주었는지, 남아있는 이들의 눈에서 흉흉함이 사라지기 시작했다.
“빠르면 빠를수록 좋다, 새로운 조직 체계를 정하고, 신마전 건물 곳곳을 뒤져 토지 문서와 금전을 찾아라! 오늘 밤이 지나기 전에 우리는 새로 태어난다!”
나는 남아 있는 이들을 수습해, 빠르게 조직을 재정비하고, 그날 밤 다른 이들과 함께 첨벽성을 빠져나갔다.
***
보름이 지났다.
나는 형님이 적어 놓은 수악사로 향했다.
‘뭐지? 아무도 없는데···.’
나는 한참을 기다렸다.
다음 날 동이 틀 때까지 형님을 기다렸다.
그러나, 다시 해가 지고.
밤이 되고.
그렇게 주야가 바뀌기를 사흘.
형님은 오지 않았다.
그리고 그때 즈음, 나는 수악사 곳곳을 뒤지며, 마침내 형님이 남겨 놓은 흔적을 발견하는 데에 성공했다.
“후, 못 발견할 뻔했군.”
나는 수악사의 대들보에 쓰인 도흔을 발견할 수 있었다.
―수도자들이 추격해 와, 너를 만나지 못하고 이곳에 서신을 남긴다.
나는 대들보를 향해 뛰어올라, 대들보를 그대로 잘라 내서 떨어뜨렸다.
대들보에는 작은 도흔들이 수십 개가 각인되어 있었고, 도흔들은 하나같이 글자를 이루고 있었다. 악필이었으나, 그럭저럭 알아볼 수는 있었다.
나는 천천히 형님의 서한을 읽어보았다.
―그날, 나는 월수궁무록의 진의를 깨달았다. 지금까지 월수궁무록이 수도자들을 잡아 죽이라 만든 무공인 줄 알았다. 하지만 완전히 잘못 짚었던 것이었어.
이 무공은, 수도자들에게서 도망칠 용도로 만들어진 것이었다.
“···.”
―나는 그 날. 이 무공을 창시한 창시자의 절망을 뼛속 깊이 느꼈다. 필히 이 무공의 창시자 역시 압도적인 수도자를 만나 절망하고, 수도자에게 맞설 무공이 아닌, 그저 도망치는 무공을 창시하는 데에 그쳤던 것이겠지.
이 무공으로 그동안 수도자들을 참살할 수 있었던 것은, 그저 그들의 수준이 너무 낮았던 것인 게야. 나는 이 무공을 천하제일의 무공이라 자부했지만, 이 무공은 내세울 것이 단 하나도 없다는 걸 깨달았다.
“···형님.”
나는 침음성을 흘렸다.
이 글의 분위기에서, 나는 지난 삶의 형님을 다시 만나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마지막 오기로 수도자들에게서 계속해서 도망쳐 볼 것이다. 마지막 오기로··· 정말로, 무공으로는 수도자를 대적할 수 없는지. 월수궁무록은 정말로, 도망치는 것에서만 끝나는 무공인지··· 아니면 내가 그 너머에, 조금이라도 더 닿을 수 있을 것인지···.
나는 앞으로 수도자들에게서 계속 도망치고 또 도망치며 지낼 것이다. 계속해서 극한의 영역까지 월수궁무록을 펼치며, 무공을 할 수 있는 한 최대한 진화시킬 것이야. 앞으로 너를 볼 수 없을 것 같구나.
이제 수도자들이 다가온다. 언젠가, 살아남는다면 네게 찾아가마.
그것이 서한의 마지막 문장이었다.
“···저 역시, 어둠 속에서 기다리겠습니다, 형님.”
나는 수악사에서 나와, 이제는 정보 조직으로 재편성된 신마전의 후신.
귀영각을 향해 돌아갔다.
***
10년이 다시 지났다.
나는 연국 곳곳의 어둠으로 귀영각을 침투시켜, 연국 곳곳의 정보를 유통하는 정보 시장을 장악하는 데에 성공했다.
무림맹에서 몇십 년간 소처럼 일하며 정보를 다뤄 본 경험과, 미래의 지식을 알고 있는 사실은 어마어마한 도움이 되었다.
다른 정보 조직이 우리에게 조금 저항하는 듯했으나, 결국 암중 혈투에서 패배해 버렸다.
우리는 이러니저러니 해도 신마전의 후신.
무림공적으로 지정된 단체의 나머지 잡졸들이 모인 단체였으며, 그 나머지 잡졸들의 무위는 하나하나가 일류 고수.
대문파 장로 수준이자, 중소문파 문주 수준인 이들이 즐비했다.
암중 혈투를 걸어 봤자 무력 수준이 우리 쪽이 압도적으로 높기에, 우리는 다른 정보 조직을 압도적으로 쓸어버릴 수 있었다.
그나마 우리를 상대할 수 있는 절정 고수의 경우, 애초에 이런 암중 혈투에 참여할 이유도 없이 그냥 자기 문파를 차리거나 대문파의 공봉, 혹은 원로로 들어가도 편하기에 아예 암중 혈투에 들어올 이유가 없었다.
결국 귀영각은 5년 안에 연국 무림의 정보 시장을 완전히 손에 넣었고, 우리는 신마전이 우리의 전신이라는 정보를 완전히 통제하여 삭제시켜 버렸다.
나는 다시 5년 동안 귀영각을 안정시키며, 천천히 형님을 기다렸다.
***
신마전 멸문 이후 10년이 흘렀다.
귀영각은 완전히 연국의 정보 조직을 대표하는 문파로 자리 잡았다.
동시에 우리는 신마전의 잔당들은 완전히 토벌되었다고 속이고, 수도자들마저 왜곡된 정보를 믿게 만들어 우리와 신마전을 완전히 분리시키는 데에 성공했다.
그 결과 우리는 아예 수도자들에게 후원을 받는 연국의 기득권층이 되는 데에 성공했다.
10년 사이, 일류 후반에 있던 무사들 몇이 절정의 경계를 넘어 절정 고수가 되었기에 대외적인 전력이 부족하지도 않았다.
모든 것이 풍족하다.
부족한 것은.
‘나 자신의 실력.’
내 기억상.
내 수명은 이제 10년 남짓 남았다.
쉬잉! 쉬잉!
단악검법의 검세가 허공을 갈랐다.
10년 동안은 일에 치여서 무공을 제대로 단련하지 못했기에, 내 무공 수위는 일류 중반과 후반의 경계에 걸쳐있을 뿐이었다.
‘한 발짝만 넘으면 일류 후반에 도달할 수 있을 것 같은데···.’
그 한 발짝이 넘어가지 않는다.
10년 안에, 하루라도 빨리 일류 후기에 도달하고, 최소한 절정의 단서는 잡아야 한다.
‘언제까지··· 언제까지 약한 채로만 있어야 한다는 거냐!’
내 몸은 어느덧 일흔에 가까워져 있었다.
하지만 나는 아직까지도 한참은 약한 것을 느꼈다.
‘오기조원이 최소한의 목표이건만··· 아직도 일류 후반에를 도달하지 못하고 있다···.’
왜 이렇게 내 재능은 비천한 것일까.
그를 고민하며, 한참을 검을 휘두를 때였다.
“여전히 검 끝에 잡념이 많군, 은현.”
“···!”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휙!
나는 바로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는, 형님이 앉아 있었다.
“···오랜만입니다. 형님.”
“인사는 됐고, 검이나 다시 잡아 봐라.”
나는 그 말에 따라 단악검법의 기수식을 다시 잡았다.
“그 검법은 네 몸에 옷처럼 꼭 맞는 검법이다. 제대로만 사용하면 절정에도 오를 수 있어. 한번 펼쳐 봐라.”
나는 그 말에 따라 단악검법의 형을 다시 펼쳐 보았다.
그걸 보면 형님은 내게 고칠 점을 말해 주었고, 나는 열심히 그 말에 따르며 검형을 고쳐 나갔다.
그런 조언은 밤이 될 때까지 계속되었고, 밤이 되자 형님은 홀연히 사라져 버렸다.
나는 마치 귀신에 홀린 것처럼 눈을 비벼 봤으나, 형님은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다음 날.
형님은 어느덧 다시 나타나 내게 무공을 지도해 주었고, 나는 군말 없이 그의 가르침을 받았다.
그렇게 칠 주야가 지났을 무렵.
화아아악!
검이, 나와 녹아든다.
단악검법이라는 검법 자체가 내 혼(魂)에 섞여들어 나의 일부가 된다.
나는 순간, 어째서인지 앞으로 이 검법을 나뭇가지로도, 맨손으로도 펼칠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었다.
동시에, 의지가 일자마자 자연스럽게 검기가 검을 덮었고, 검기의 안정성이 훨씬 높아졌다.
원래보다 한참은 더 검기를 오래 유지할 수 있을 듯싶었다.
“이건··· 검신합일(劍身合一)!”
검신합일의 경지.
일류 후기의 상징.
“벽을 넘었군. 축하한다.”
“···형님은 정말, 대단하시군요.”
나는 솔직하게 감탄을 담아 그에게 말했다.
몇 년간 아무리 애써도 넘을 수 없었던 경지를.
칠 주야간의 가르침으로 넘겨 준 것이었다.
그러나 그는 혀를 차며 말했다.
“내가 넘겨 준 게 아니다. 네가 거의 경계에 발을 걸쳤기에, 등을 떠밀어 준 거지.”
“그래도 그 벽을 넘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내가 해 줄 수 있는 건 여기까지다. 어차피 이 이후로는 막 벽을 넘었기 때문에 네 스스로가 정리해야 해.”
“물론이지요.”
“그리고··· 절정경은 쉽지 않을 거다. 그 너머부터는 완전히 다른 세상이니까. 절정 이후부터는 일류에서의 무학 체계를 생각하면 안 돼.”
“평생을 들어 왔습니다.”
“평생을 더 들어도 부족할 거다. 나는 장난처럼 넘은 게 절정의 벽이었지만, 재능 없는 너는, 수천 배, 수만 배의 노력을 들여야 겨우 벽에 닿을 수라도 있을 거다.”
“유념하겠습니다.”
“···그래.”
영훈 형님은 품에서 한 권의 서책을 꺼냈다.
책의 제목은 조수월무록(眺修越武錄)이었다.
“월수궁무록에서 조금 부족한 부분을 보완하고, 몇 가지 기술을 더 발전시키고, 몇 가지 기술을 더 추가했다.”
그는 ‘몇 가지’라고 말했으나, 책은 지난 생에 받았던 것보다 확연히 두꺼워져 있었다.
거의 세 배는 될 것 같았다.
“하지만, 그렇게나 수도자를 바라봤음에도(眺修)··· 그저 일반적인 무공을 넘어서는 것 외엔(越武)··· 별 볼 일 없는 기록(錄)일 뿐. 나는 끝내 수도자들을 넘어서지 못했다.”
“···.”
“축기기 수사들은 어찌어찌 따돌리고, 축기 후기도 마침내 베어 내는 데에 성공했지만. 결단기 수사는, 말 그대로 자연재해였다. 결단기부터는 인간 형상을 한 자연 현상에 가깝더군···.”
“···.”
“결단기 수사의 한쪽 손목을 베어 내는 데엔 성공했다. 하지만 그뿐, 결단기 수사가 주문 몇 번을 외니 손목은 다시 자라나고, 나는 몇 번을 죽었다 살아났지.”
그는 씁쓸한 얼굴로 하늘을 바라보았다.
나 역시 씁쓸한 감정을 감출 수 없었다.
지난 생보다 빨리 천하제일의 자리에 오르고.
지난 생의 유산인 월수궁무록까지 익혔음에도.
지난 생에 들었던 것과 똑같은 결과였다.
“아마 월수궁무록을 창시한 이도 나와 똑같은 감정을 느꼈을 터다. 여기가, [끝]이라고. 더 이상 무림인은 이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고··· 그걸 느꼈을 테지···.”
그는 참담한 표정으로 얼굴을 쓸어내렸다.
“나는··· 나를 제압한 결단기 수사가 나를 높게 봐 주어. 그 수사의 수도문파에 새로 입문하게 되었다. 무림에서야 천하제일이었지만, 수도문파에 들어가면 막내일 테지. 하하··· 수도문파에 들어가면 속세와 연을 끊어야 한다 하기에, 마지막으로 널 보러 왔다.”
“···거기까지가··· [끝]이라면, 이건 왜 제게 주신 겁니까.”
나는 침울한 표정으로, 조수월무록을 바라보며 물었다.
“어차피 이걸 익힌들, 수도자에게는 도달할 수 없지 않습니까.”
“하하, 맞는 말이다. 하지만.”
그는 서글픈 표정으로 말했다.
“후대가, 수도자들의 앞에서 최소한의 권리라도 챙길 수 있도록. 그것을 위해서 남기는 무공일 뿐이다. 구명절초라고는 생각지도 않는다. 그저··· 수도자들에게 우리 같은 범인이 인격체로 인정받기 위한 최소한의 ‘힘’일 뿐.”
그는 서글픈 표정으로 웃으며 말했다.
“이 세상에는 생각보다 잔인하고 포악한 수사들이 많더군. 그런 자들 앞에서, 아주 잠깐의 틈이라도 얻을 수 있는 그런··· 그것은 그런 무공이다.”
스르륵···.
어느새, 그는 내 눈앞에서 완전히 사라져 버렸다.
마치 허깨비라도 된 듯한 현상이었기에, 나는 놀라 기함했다.
“이, 이건···.”
“조수월무록을 창시하며 만든 잡기 중 하나다. 조수월무록도, 월수궁무록과 같이 입문 조건은 삼화취정이니, 삼화취정에 이른 절정 고수에게 가져다주면 진가를 알아볼 거다. 또한 네 선물도 따로 남겨 놨으니, 앞으로 열심히 정진해서, 꼭 절정경에 이르길 바란다.”
우웅···.
육합전성을 남긴 영훈 형님은, 그날 이후 다시는 내 앞에 나타나지 않았다.
***
영훈 형님이 남기고 간 것은 한 가지가 더 있었다.
내 수련장 벽면.
그곳에는 도흔들이 새겨져 무공 구결을 이루고 있었다.
“이건···.”
단악검법이었다.
그러나··· 이제 일류 후반에 오른 내게 맞춰 또다시 한번 개량된 단악검법이었다.
원래는 12초로 이뤄졌던 단악검법이었으나, 개량되며 12 초식이 추가되어 총 24 초식이 단악검법에 담겼다.
다행히도 본래의 단악검법에 연계된 초식이 추가로 생긴 느낌이었기에 익히는 것이 어렵진 않았다.
거기에 검신합일의 경지에 이른 탓인지, 검법의 숙련도가 매우 빠르게 오르는 느낌이었다.
“고맙소, 형님.”
나는 단악검법 개량형을 익히며, 나지막이 형님에게 감사 인사를 전했다.
***
내 수명은 차근차근히 닳아 갔다.
그러나 나는 늙은 몸으로도 몸이 부서져라 검을 휘둘렀다.
일류 후반에서, 절정으로 넘어가기 위해.
조수월무록은 일단 구결을 머릿속에 기억해 둔 후, 필사해서 연국 대문파 곳곳으로 몰래 전달했다.
삼화취정의 고수들이 조수월무록을 얻고, 조금이라도 경지가 상승해서 수도자들에게 대항할 힘을 얻기를 바라는 마음에서였다.
내 몸은 서서히 생명력이 빠져나갔고.
육신 역시 예전처럼 말을 듣지 않았다.
그러나, 나는 이를 악물고 검을 휘둘렀다.
더는 약할 수 없다.
약해서는 안 된다.
생을 반복한다고 해서, 반복되는 생에 의미가 없는 것이 아니다.
그렇기에, 나는 이 생을 최선을 다해서 살아온 것이고.
또한 앞으로 다시 살게 될 생을 위해서.
그 생애에 무력함을 느끼지 않기 위해서.
나는 절대로 약할 수 없다!
몇 년이 빠르게 흐르고.
나는 죽는 그 날 당일에도 검을 놓지 않고, 검을 휘둘렀다.
그렇게, 내 수명이 다하는 날.
나는 검법을 펼치며, 끈질긴 이번 생을 마무리했다.
그것이, 나의 세 번째 회귀(回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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