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Regressor’s Tale of Cultivation RAW novel - Chapter (15)
────────────────────────────────────
하늘이 버린 재능(2)
나는 서경성 중소문파 넷을 더 돌았다.
그 중 언류보, 휘영문에서는 비무에 패배했고.
개주방, 유궐보 등의 문파에서는 비무에 승리했다.
그렇게 소소한 명성을 얻은 나는 사파로 분류되는 중소문파들 역시 찾아갔다.
회쟁파 역시 그 중 하나였다.
“최근 서경성 곳곳에서 비무를 청하고 다니는 어린 일류 고수가 있다 들었는데, 자네였구만.”
서경성의 사파로 분류되는 회쟁파는, 내가 가자마자 껄껄 웃으며 나를 환대해 주었다.
회쟁파의 장문인은 수염을 기르고, 회색빛 장포를 입은 노인이었다.
그는 그 특유의 분위기 덕분에 마치 신선처럼 보였으며, 회쟁파의 장로들 역시 하나같이 도인 같은 인상을 지니고 있었다.
“안타깝게도 내 요 며칠 사이 오른팔에 부상을 입은지라, 나는 비무를 하지 못할 듯싶네. 그래서 본 파의 장로들이 소협을 상대할 것이네만···.”
회쟁파의 장문인의 말에, 풍채가 좋아 보이는 중년인이 인상 좋은 미소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소협은 본문의 일 장로, 나 태즉엽이 상대해 드리리다.”
“저 역시 한 수 부탁드립니다.”
얼마 후, 우리는 비무대에 서서 기수식을 잡았다.
“비무, 시―”
파앗!
“작!”
심판을 보는 장문인이 채 시작을 외치기도 전, 태즉엽이 내게 돌진하며 참마도(斬馬刀)를 휘둘렀다.
‘역시 사파로군.’
나는 딱히 상관하지 않으며 검에 검기를 불어넣고 맞섰다.
단악검법, 제이 초, 입산(入山)!
슈칵!
나는 중단세로 달려드는 참마도를 피해 허리를 숙인 후, 하단세로 태즉엽의 하반신을 베어 나갔다.
타앗!
그러나 태즉엽은 풍채 좋은 외모와는 달리 날렵하게 공중으로 뛰어올라 내 검을 피한 후, 공중에서 참마도를 내리찍으며 떨어져 내렸다.
‘정면으로 받으면 위험하다.’
그렇다고 뒤로 물러서면 계속 수세로 몰아붙일 것이다.
단악검법, 제팔 초, 유곡(幽谷).
부웅!
쩌엉!
나는 참마도와 검을 마주친 후, 참마도가 내리치는 힘의 방향을 그대로 흘려서 공격 방향을 비틀었다.
내 바로 옆을 내리친 참마도가 굉음을 내며, 비무대 바닥을 찢어발기듯 박살 내 버렸다.
나는 태즉엽이 참마도를 내리친 직후 찰나의 틈을 이용해 다시 반격을 시도했다.
단악검법, 제오 초, 괴암(塊巖).
붕, 붕, 붕!
그 자리에서 검무를 추듯 회전하며, 검결이 나를 주위로 덩어리지게 만들어 공격이 파고 들어올 수 없는 공방일체의 태세를 취한다.
회전하는 검결에 휘말릴까, 태즉엽은 한 발자국 뒤로 물러섰고, 나는 그 틈을 놓치지 않고 다시 검을 찔러 들어갔다.
단악검법, 제사 초, 유릉(流陵)!
파앗!
구불구불한 산의 능선과도 같은 검초가, 태즉엽을 향해 쏘아져 간다.
태즉엽은 참마도를 휘둘러 내 검을 걷어내려 했지만 검기는 구불구불하게 휘어지며 그의 품 안쪽으로 파고들어 갔다.
‘이대로 끝을 낸···.’
피잇!
그때, 미세한 뭔가가 내 눈을 향해 정확히 쏘아졌다.
“···!”
나는 화들짝 놀라 검을 빼고 몸을 피했다.
“침(針)?”
그것은 미세한 침이었다.
태즉엽의 입으로, 침을 쏘아 발사하는 침구가 물려 있었다.
“이 역시 본인의 무공이니, 무어라 하지는 말기를 바라겠소.”
태즉엽은 인자한 미소를 지으며 다시 참마도를 휘둘러왔다.
그러나 나는 신선한 기분이 들었다.
‘역시 사파는 기오막측한 기술을 많이 쓰는군.’
분명 팔경각주보다, 순수한 무공만으로 따졌을 때 태즉엽은 그보다 몇 수 아래였다.
내가 검초를 조금 더 밀어붙이면 아예 도를 떨어뜨릴 것이다.
그러나, 방금 전의 침과 같은 기이한 수법을 쓴다면, 실전에서의 순수한 전투력은 오히려 정파 무인보다 높을 수도 있었다.
‘역시··· 이런 경험은 영훈 형님 옆에서는 얻을 수 없다.’
그는 천하제일인이었고, 또한 공명정대한 대협이었다.
비록 지난 삶에서는 무극신마니 뭐니 불렸으나, 그것은 수도자들에게 거스른 탓에 붙은 칭호였지, 그것이 그의 성정이 사이악랄하다는 의미는 아니었다.
그랬기에, 그와 대련할 때는 항상 순수한 무(武)의 기예만을 얻을 수 있었지 이런 돌발 상황에 대처하는 능력은 조금 떨어졌다.
그러나, 앞으로 사파와도 무수한 비무를 거치며 내 경험은 계속 쌓여 나갈 것이다.
‘지난 삶에서도 실전 경험이 없는 건 아니었으나, 대부분 대규모 전투나, 수도자를 상대하는 합격진을 펼치거나, 혹은 지난 생의 영훈 형님을 따라 관청을 때려 부수는 일을 했으니···.’
나는 의외로 사파들과는 그리 실전 경험이 많지 않은 것이었다.
특히 이런 식으로, 일류에 이른 사파와의 실전 경험은 더더욱!
챙, 챙, 챙!
태즉엽의 참마도가 세 번을 내리 휘몰아치며 나를 압박했다.
동시에.
퓻, 퓻, 퓻!
그는 잘 보이지도 않는 얇은 침을 계속해서 내게 쏘아 댔기에 여간 신경 쓰이는 것이 아니었다.
‘좋아, 그렇다면.’
나는 승부수를 띄우기로 했다.
이런 귀찮은 부류는 단번에 찍어 눌러 버려야 한다.
단악검법, 제구 초, 산수화(山水畵).
단악검법, 제육 초, 기석(奇石).
도합 여섯 번의 대각선 베기에, 변초를 넣으며 검초의 속도를 가속시킨다.
파아앗!
여섯 번의 참격이 날아드는 침과 참마도를 전부 쳐 내며, 그사이에 섞여 든 변초로 태즉엽의 빈틈을 잡았다.
단악검법, 제칠 초, 심산(深山)!
나는 그 빈틈으로 파고들어 가, 우하에서 좌상으로 몸을 비틀며 그를 베어 올렸다.
촤악!
나는 비무였기에 태즉엽의 옷만을 베어 넘겼고, 그렇게 비무의 승리자는 내가 되었다.
“비무, 도전자 서은현 승리!”
“좋은 비무였네. 허허.”
“저 역시 많은 것을 견식했습니다.”
나는 태즉엽에게 포권을 한 후, 비무대를 내려가려 했다.
그때였다.
선풍도골을 한 회쟁파의 장문인이 수염을 쓰다듬으며 크게 외쳤다.
“그럼 이어서 바로 연전(連戰)을 속행하겠네!”
뭐?
나는 어이가 없어서 그에게 물었다.
“아니, 연전이라는 이게 무슨 말입니까? 저는 사전에 들은 바가 없습니다.”
“으음? 그랬나? 나는 분명히 말했던 것 같은데. 자네가 못 들은 게 아닌가? 이보게들, 모두 분명히 내가 사전에 삼연전(三連戰)을 제안했고, 소협이 받아들였던 것 같은데?”
“예, 장문인 말이 맞습니다.”
“저 역시 똑똑히 들었습니다.”
회쟁파의 장로들은 이구동성으로 고개를 끄덕였고, 나는 표정이 일그러지는 것을 막을 수 없었다.
‘이 놈들이···.’
이것이, 사파인가?
‘비겁할 줄 예상은 했기에 정도문파 몇을 돌며 명성을 얻고 찾아온 건데···.’
“내 오늘의 비겁함을 다른 문파에 널리 알리면 회쟁파의 명성이 곤두박질칠 텐데요.”
“저런, 걱정 마시게나, 소협.”
회쟁파 장문인이 인자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소협은 본파에서 비무를 하다가 상처가 살짝 날 테고, 상처가 도져서 파상풍에 걸려 죽을 것이라네. 본 파는 그런 자네를 극진히 보살펴 주겠으나, 극진한 보살핌에도 자네는 어쩔 수 없이 사망할 터라네.”
“미친놈들이었군.”
아예 사고방식 자체가 다르다.
“내가 이겨서 나가는 걸 봐 줄 생각이 없었나 보오?”
“애초에 우리 회쟁파가 제대로 된 문파로 보였는가? 우리 사파들은 관아에서 인가도 제대로 못 받은 불법 조직인데, 불법 조직에 와서 비무행을 치른다는 소협의 정신 나간 기행이 죽음을 앞당긴 걸세.”
“···뭐.”
나는 히죽 웃었다.
“그딴 거야 알고 있었소.”
정파, 사파로 무림이 나뉜 듯이 말하고는 하지만.
무림은 실제로 정파의 압도적인 강세였다.
기본적으로 정파란 정도공법을 익힌 무림문파들을 칭하기도 하지만,
연국에서의 정파란 관아에 제대로 된 인가를 받은 무술 도장을 의미했다.
그 외에 사파란 칼잡이들이 모여 불법적인 일을 하는 모든 조직을 의미했다.
그런 만큼 사파란 절대로 양지에서 일하지 못했고, 정파는 언제나 양지에 서 있었기에, 사파 조직은 절대다수가 관아에 인가를 받은 조직이 아니었다.
분명 일반적인 기준에서 본다면,
불법 조직에 비무를 신청한 내 행위는 정신 나간 짓이다.
산적 소굴에 쳐들어가 비무행을 외친 것이나 다름없는 것이다.
물론 성내의 문파는 산적 소굴과는 달리 일반적인 정도문파와 어느 정도 비슷한 점이 있었으나, 본질적으로는 다르지 않은 만큼, 내 행동은 기행이라 할 수 있었다.
그러나.
“···하지만 모든 사파가 정신 나간 불법 조직은 아니지. 내가 알기로 그래도 몇몇은 무인(武人)으로서의 자존심이 있다고 들었는데. 그게 회쟁파는 아니었나 보군.”
내가 마냥 아무 생각 없이 사파에 쳐들어와 비무를 한 것은 아니었다.
나름 지난 삶에서 얻은 정보들을 통해 무림문파로서의 긍지를 가지고 있는 사파 조직들을 추려, 그중에서 찾아온 것이 회쟁파인 것이었다.
꿈틀―
그 말에, 회쟁파 장문인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긍지가 밥을 먹여 주진 않는다네. 비겁한 짓을 하지 않는다고 문파가 유복해지진 않아···.”
“뭐, 내 생각을 당신들에게 강요할 건 없으나··· 최소한의 긍지조차 없는 이들은 평생 같은 자리에만 머물 뿐이오.”
“···.”
물론 내가 이런 소리를 할 수 있는 것 역시, 회쟁파가 수년 후 정도문파로 탈바꿈한다는 걸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도 달라지는 건 없네. 우리는 이 근방을 장악한 패주로서, 감히 멍청하게 우리에게 비무행을 신청한 얼간이를 손봐 줄 의무가 있는 것이야.”
척, 척, 척, 척, 척!
일 장로를 제외한 열 명의 회쟁파 장로들이 나를 둘러쌌다.
“비무, 2연전을 시작하겠네!”
“···말은 잘하시는군.”
10 대 1이 비무냐?
이 사파 놈들의 사고방식은 어이가 없을 지경이었지만.
‘애초에 이런 걸 노리고 온 거지.’
나는 히죽 웃으며, 나를 둘러싼 열 명의 장로들을 향해 검을 내밀었다.
“덤비시오. 받아들이지.”
그렇게, 비무가 시작되었다.
***
서경성에, 한 명의 젊은 일류 고수가 이름을 날리기 시작했다.
그는 사도방파인 회쟁파에 비무행을 찾아갔고, 세인들의 비웃음을 샀다.
불법 조직인 사파에게 비무행이라니!
산적 소굴에 비무행을 거는 것과 다를 바가 없었다.
저자는 다음 날 시체가 되어 나올 것이다.
모두가 그렇게 예상했다.
젊은 일류 고수가 회쟁파를 찾아가고 하루.
세인들은 일류 고수가 죽었을 것이라 떠들었다.
이틀.
세인들은 회쟁파가 일류 고수를 죽이고 그 시체를 문파 밑에 묻어 버렸을 것이라 떠들었다.
사흘.
세인들은 죽어 버린 젊은 일류 고수에게 애도를 표하였다.
그러나, 사흘째 저녁.
일류 고수는 회쟁파의 장원에서, 피 칠갑을 한 채 빠져나왔다.
그런 후 객잔에 가서 소면과 만두를 주문해 먹고,
바로 다음 문파를 찾아가서 비무를 벌였다.
후에 밝혀지길, 회쟁파는 그들을 찾아온 일류 고수와 끝없이 연전(連戰)을 벌였다고 한다.
회쟁파의 전투원 수십 명이 번갈아 가며 끝없이 일류 고수와 연전을 치렀고.
청년 고수는 그들 모두를 상대하며 사흘 밤낮으로 쉬지 않고 모두와 싸워 쓰러뜨렸다고 한다.
회쟁파는 사파답게 패배한 인물이 체력이 회복된 이후 다시 연전을 벌이고는 했지만, 그 청년 고수는 재도전한 이는 경맥을 잘라 버려 불구로 만들었다고 한다.
결국 마지막 사흘째.
회쟁파의 사파 고수들이 모두 합공해서 청년 고수를 상대했으나, 청년 고수는 그들 모두를 물리치고 회쟁파를 빠져나왔다고 했다.
그리고, 그 직후 소면을 먹고 바로 다시 비무행을 간 청년 고수.
그 정신 나간 청년 고수는 수많은 세인들의 입을 오르내리며, 서경성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다.
세인들은 그 미치광이 고수에게, 딱 맞는 별호를 붙여 주었다.
무한투귀(無恨鬪鬼), 서은현!
그것이, 나였다.
***
“후루룩!”
나는 서경성의 중소문파 서른세 곳을 찾아다니고, 객잔으로 와 소면을 먹었다.
‘정도문파는 사도방파와 달리 체력 소모가 그리 크지 않군.’
지난 번 회쟁파에서는 정말 죽을 뻔했다.
‘그 뻔뻔한 새끼들···.’
내게 처음 패배했던 태즉엽도 내가 연전으로 체력이 떨어져 나가자, 체력을 회복한 후 다시 비무대로 올라왔었다.
놈들의 비열함이 그만큼 뻔뻔해졌을 때쯤, 내 쪽에서도 비열한 짓을 쓰기 시작했다.
검을 닦는 척하며, 독초의 즙을 묻힌 면포로 검에 독을 바르고 싸운 것이었다.
지지난 삶, 나는 무림맹주의 책사가 되기 전 의술을 공부하며 일류 의원 정도로 실력을 올렸고, 투룡보의 의당에서 근무하기도 했다.
그러나, 일류 의원이라는 건 달리 말하면 일류 독술사(毒術士)라는 의미도 된다.
사람을 살리는 기술과 죽이는 기술은 정말로 한 끗 차이였으니까.
독을 묻히고 싸우니, 한결 싸움이 수월했다.
몸 어디든 검 끝이 스치기만 해도 회쟁파 방도들은 곧이어 거품을 물며 쓰러져 버렸으니 말이었다.
물론 시간이 지나자, 회쟁파 쪽에서도 내게 독을 쓰기는 했다.
하지만, 나는 일류 의원이었다.
‘배합법이 뻔한 싸구려 독이나 써 대니 안 통하지.’
회쟁파에서 쓰는 독은 내가 미리 만들어 둔 해독단과 해독초 등으로도 충분히 해독해 버릴 수 있었다.
회쟁파 장문인은 악을 써 대며, 회쟁파 내의 모든 전투원들을 끌어모아 사흘 밤낮 동안 나를 잡아 두었었다.
‘그 미친 늙은이 같으니···.’
무슨 클론 기술이라도 가진 것처럼 사파 잡졸들이 끊임없이 쏟아져 나와서 정신이 나가는 줄 알았다.
회쟁파 방도들은 내가 연전연승을 거두자, 나중에는 아예 대놓고 창과 화살을 들고 방진을 짜서 내게 돌격해 오기도 했었다.
‘인질을 잡지 않았으면 정말 죽을 뻔했어.’
나는 결국 회쟁파 장문인에게 달려들어, 그를 제압하고 인질로 잡고 목숨을 부지해야만 했다.
하지만 그조차도 회쟁파 장로들이 장문인을 무시하고 나를 죽이라고 고함을 치는 바람에, 마지막 날에는 문파 전체와 싸워야만 했다.
‘독, 인질, 그리고 각성제(覺醒劑)와 마약(魔藥)을 먹지 않았으면 죽었을 거다.’
마지막 날에는 피로가 축적되어서 각성제를 미친 듯이 복용했다.
심지어 회쟁파를 빠져나와서도 각성 효과가 빠지지 않아, 다른 정도 문파를 찾아가 비무를 한 번 더 벌여도 끄떡없을 정도로.
“휴우···.”
그 날을 생각하니 절로 한숨이 쉬어졌다.
회쟁파 이외에도 사파들은 대개 비슷비슷했다.
찾아가 비무 신청을 하면 처음에는 비무를 해 주는 듯하다가, 내가 이기면 연전을 강요한다.
연전에서도 승리하면, 주변에 있던 방도들이 하나하나 품에서 병장기를 꺼내 들고, 한꺼번에 내게 덤빈다.
아예 초장부터 비무가 아니라 그런 식으로 덤벼드는 놈들도 있었다.
그런 식으로 수많은 사파 잡졸들이 내게 달려들어 체력을 빼 놓는다.
그러면 나는 각성제를 먹고, 독을 뿌려 대며 사파 놈들을 제압하며 싸운다.
그렇게 체력이 달리게 되면 온 힘을 다해 도망치고,
체력이 꽤 남아돌면 사도방파 전체와 싸워서 놈들을 두들겨 패고 나온다.
그런 후, 그런 식의 [비무]가 끝나면 각성제를 한 번 더 먹고 근처 정도문파에 찾아가 비무 신청을 한다.
정도문파에서는 목숨 걱정이 없으니 져도 되고 이겨도 된다.
그런 후 지면 진 대로, 이기면 이긴 대로 정도문파에서 하룻밤 자고 갈 것을 청한다.
정도문파 내에서라면 사파 놈들의 습격을 걱정할 것도 없으니 편안하게 쉬고 가도 된다.
그런 식으로, 나는 서경성 내의 수많은 정파와 사파를 돌아다니며 미친 듯이 비무행을 벌였다.
세간에서는 그런 나를 정신 나간 광인(狂人), 무한투귀라 불렀으나.
나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나는, 재능이 없다.’
그러나, 내가 도달하려 하는 절정지경의 길은 내 재능으로 도달하기엔 한없이 까마득하다.
그러므로, 나는 끊임없이.
끊임없이 싸우며, 생사의 경계를 넘으며.
그렇게 경지에 도달해야 하는 것이다.
재능이 없는 이가 벽을 넘으려면 어찌해야 하는가.
‘미쳐야 한다.’
재능이 없다면, 광기(狂氣)라도 있어야 한다.
그것만이, 둔재가 천재와 같은 세계를 바라볼 수 있는 방법이다.
나는 그렇게 서경성뿐이 아닌, 연국 곳곳을 헤집으며, 수많은 정사지간의 문파를 찾아다니며 비무행을 벌였다.
그렇게, 2년이 흘렀다.
***
“오랜만이군.”
나는 김영훈과 산 첫 집에 도착했다.
지난 이 년간, 내 명성은 연국 곳곳에 펴졌다.
서경성의 문파 곳곳을 헤집었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그 덕에 내 명성을 듣고 서경성 사성삼마에서 나를 영입하려는 시도 역시 있었다.
물론 나는 깔끔히 영입 제의를 거절했다.
조직에 관련된 일을 맡게 되면 무조건 개인 시간을 뺏긴다.
‘안 그래도 재능이 부족한데 개인 시간까지 뺏기면, 이번 생애에는 절정의 벽을 못 넘을지도 몰라.’
2년 동안 그토록 분탕질을 치며,
정도문파에서 비무를 벌이고.
사도방파에서 비무를 빙자한 실전 경험을 쌓았다.
심지어는 사도방파에서 내게 현상금을 걸어, 객잔에서 자던 중 왠 잡것들이 습격해 와서 죽을 뻔한 적 역시 한두 번이 아니었다.
내 실전 경험은 가공할 만치 쌓였고, 이제는 동급의 일류 후반의 고수와 싸우면 실력의 고저에 상관없이 무조건 1할의 승률은 먹고 들어갈 정도였다.
그러나···.
‘아직도, 절정의 경지는커녕 벽조차도 보이지 않는다!’
절정의 경지는 도대체 얼마나 있어야 얻을 수 있는 것인가!
나는 한숨을 내쉬며, 김영훈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집으로 들어갔다.
“하하, 이게 누구신가. 명성이 자자한 무한투귀 서 소협이 아니신가?”
“···소생 역시 명성이 자자한 영 대협을 뵙습니다.”
나는 무림 말투로 나를 맞아 주는 김영훈에게 포권을 하며 말했다.
“그놈의 영 대협은 당최 익숙해지지가 않는군. 이놈의 세상은 어찌 된 게 김 씨가 없단 말이냐?”
“뭐, 어쩌겠습니까. 영 대협이 싫으시면 금 대협이라고 불리셔야 할 텐데요.”
“쯧, 마음에 안 드는군.”
“천하삼대도객, 절산도(絶山刀) 영 대협께서 뭐가 그리 마음에 안 드십니까.”
그랬다.
조수월무록을 익힌 김영훈은 이번 생에서 2년 만에 천하삼대도객의 자리에 도달한 것이었다.
‘지난 삶보다도 더욱 성장이 빠른 거 같군.’
그렇다면.
이번 생의 김영훈은, 수도자를 이길 수 있을까.
그의 무공은 지난 회차의 김영훈이 필생을 다해 쥐어짜 낸 깨달음을 전승받아, 지난 삶보다도 훨씬 빨리 강해지고 있었다.
‘어쩌면···.’
그래, 어쩌면 그는 더욱 강해질 수 있을지도 몰랐다.
“···뭐, 잡담은 그만하고, 오래간만에 대련이나 해 보죠.”
“하하, 자네 천하삼대도객의 일도(一刀)를 받을 이 기회를 영광스럽게 여기게나!”
우리는 집 안의 비무장으로 들어가, 비무를 시작했다.
‘김영훈에게는 잡다한 절기가 안 통한다.’
처음부터 진심으로 간다.
단악검법 일 초, 월악(越岳).
단악검법 십이 초, 칠광일출봉(七光一出峰).
나는 그에게 달려들어 횡 베기를 한 다음, 횡 베기 너머로 일곱 갈래의 검기를 쏘아냈다.
“기도가 2년 전보다는 나아졌군.”
투웅!
그러나 김영훈은 칼집에서 도를 뽑지도 않은 채, 칼집 채로 도를 대강 휘둘렀다.
그것만으로도, 내 검기는 모두 허공에서 사라져 버렸다.
“하지만 여전히 어설퍼.”
“조금 더 새로운 걸 보여 드려야겠군요.”
단악검법.
십삼 초.
요산요악(樂山樂岳).
난 다시 그 자리에서 빠르게 회전하며 세 번의 참격을 휘두르고, 다시 검을 높이 들어올려 세 번을 내리찍었다.
종횡의 참격이 김영훈을 덮쳐 갔다.
단악검법의 십삼 초 부터는, 하나하나가 절초(絶招)로 불릴 기술들이다.
‘못 피한다!’
하지만 김영훈은 피하려는 시도조차 하지 않은 채, 칼집을 뻗어 왔다.
그리고, 느린 듯, 부드럽게 내 검초에 맞춰 자신의 도를 대각선으로 두 번 아래에서 위로 휘두른다.
그 부드러운 일격에, 내 검초는 모조리 걷어들여져 버렸다.
‘그렇다면 못 걷어들일 일격을···’
단악검법.
십사 초.
기산심천(氣山心天)!
후웁!
전신의 기운이 크게 증폭된다.
웅혼한 내력이 전신 혈도를 타고 흐르며, 검으로 흘러들어갔다.
그 기운은 산과 같고(氣山), 마음은 하늘과 같아라(心天)!
본디 무형(無形)이어야 할 검기(劍氣)가 응축되며 희미한 형태가 모이기 시작했다.
절정지경에서나 쓸 수 있는 검사(劍絲)의 형태가 억지로 구현되는 것이었다.
나는 그 상태에서 우에서 좌로, 대각선으로 비스듬히 올려 베며 초식을 전개했다.
쿠과광!
가공할 검기가 김영훈을 향해 날아든다.
그리고, 김영훈이 칼집을 들어, 내 검기의 어느 한 곳을 찔러 들어갔다.
그 순간.
째앵!
일순간 강화된 검기는 사방팔방으로 흩어지며 무화(無化)되어 버렸다.
“···.”
나는 어이가 없어 잠시 그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기산심천은 지금껏 내 나름의 구명절초로, 이 기술을 한 번 사용하면 어떤 상대가 어떤 기술을 쓰든 반으로 갈라 죽여 버리는 무시무시한 위력을 보여 왔다.
심지어 절정고 수에게조차 어느 정도는 통할 것이라 믿었던 나였으나, 그의 일 초 만에 무화된 지금의 이 상황을 보자, 조금 허탈한 감정이 밀려오는 것은 어찌할 수 없었다.
“힘이 너무 분산되어 있군. 검기를 더욱더 일념(一念)으로 집약시키게나.”
“···조언 고맙습니다.”
“이번에는 내가 가지.”
말을 마친 후, 채 반응할 틈도 없이 기수식을 잡은 그가, 나지막하게 초식 명을 내뱉었다.
“단맥도(斷脈刀), 사 초, 산바람.”
피잉!
온다!
나는 ‘산바람’의 초식을 막기 위해 빠르게 초식을 펼쳤다.
단악검법.
십오 초.
첩첩산중(疊疊山中).
나는 검을 휘둘렀다.
일 검(一劍)에서 뿜어져 나온 검기가 세 갈래로 갈라진다.
다시 검을 휘두르자, 세 갈래가 다시 아홉 갈래로.
다시 검을 휘두르자, 아홉 갈래가 다시 스물일곱 갈래로.
그렇게 계속해서 검무(劍舞)를 펼치며, 내 검기를 계속해서 쪼개 갔다.
얼마 후, 전방을 향해 검기가 무수한 가시덤불처럼 빼곡하게 들어찼다.
파앙!
단맥도 사 초의 산바람.
미쳐 보이지도 않을 정도의 찌르기는 첩첩산중으로 펼쳐진 검기들의 벽을 뚫지 못하고 그대로 무화되어 버렸다.
“허억···! 헉···!”
그러나 나는 첩첩산중의 초식을 펼친 후, 식은땀을 흘리며 그대로 주저앉으려는 다리로, 겨우겨우 쓰러지지 않고 버텨 냈다.
정신에 걸리는 부하(負荷)가 어마어마하다.
검기를 쪼개는 건 웬만한 집중력으로 되는 일이 아니었다.
그런데 검기를 쪼개다 못해 수백 조각으로 잘게 나누어 마치 가시덤불처럼 전방에 세워 벽을 만드는 첩첩산중의 초식은, 펼치는 것만으로도 뇌가 녹아 버릴 것 같은 피로감을 선사해 주었다.
절초(絶招)는 괜히 절초라고 불리는 것이 아니다.
무예의 달인이 극한의 집중력을 짜내 필생의 의지로 펼쳐 내는 것이 절초이다.
보통의 무공에는 하나, 혹은 두 개나 들어있을 무시무시한 절초들이.
지난 삶의 영훈 형님이 개량해 준 단악검법에는 열두 개나 더 생겨나 버렸다.
‘미친 재능이지, 하여간.’
하지만 그 덕에 나는 단악검법을 펼치며 완전 죽을 맛이었고, 십삼 초 이후의 초식들을 펼칠 때마다 어마어마한 피로감을 느껴야 했다.
물론 효과야 좋았지만.
나는 이 기세를 모아, 다음 초식을 사용하며 김영훈에게 달려들었다.
단악검법.
십육 초.
산중호걸(山中豪傑).
좌상에서 우하로.
우상에서 좌하로.
각각 네 번.
총 여덟 번의 참격이 그를 향해 쏟아진다.
산수화의 초식과도 일견 비슷해 보였지만, 산수화가 참격을 사방으로 쏟아내는 난도질이라면,
산중호걸의 초식은 쏟아져 내리는 참격의 힘을, 상대의 일점(一点)에 집중시켜 터트려 버리는 기술이었다.
여덟 개의 참격이 모두 한 치의 어긋남도 없이 일점에 집중되어야 하기에, 이 역시 상당한 집중력을 필요로 하는 초식이었다.
“하체가 비었군.”
그러나, 김영훈이 하단세를 취하며 내 다리를 노리는 것으로 산중호걸의 초식은 완전히 파해되었다.
부웅!
“크윽!”
나는 그의 칼집에 다리를 맞고, 그 자리에 쓰러졌다.
“내가 이긴 것 같은데.”
“예, 축하드립니다.”
나는 검을 집어넣고 자리에서 일어나, 그에게 감사 인사를 했다.
그 덕분에 초식들의 문제점들이 하나둘 보이는 듯싶었다.
얼마간 그는 내 약점과 개선점들을 알려 주었고, 나는 김영훈의 말들을 새겨들었다.
그는 나와 십 주야 간 지도 대련을 해 준 후, 다시 다음을 기약하며 떠나갔다.
나 역시, 다음 비무행을 위해 떠났다.
그리고, 다시 세월은 유수처럼 흘러, 삼 년이 지났다.
***
회귀한 햇수로는 5년째.
만날 당일도 아니었으나, 첨주성의 한 중소방파와 비무를 하고 나온 내게, 김영훈이 찾아왔다.
“오랜만이군, 무한투광(無限鬪狂), 서은현.”
“···김영훈··· 맞습니까?”
“하하, 조금 어색하겠지. 이게 말일세···.”
3년간, 내 별호는 투귀에서 투광(鬪狂)으로 변했다.
실전 경험은 더더욱 늘었고, 명성 역시 점차 커졌다.
그 외에도 사도방파들을 상대하며 독과 암기 등을 다루는 비열함 역시 늘었고,
지난 세월을 반증하는 흉터들 역시 몸 곳곳에 생겨난 상황이었다.
하지만, 내 경지는 그대로였다.
여전히 일류 후반.
절정의 벽은 보이지도 않는 상황.
그러나, 다시 만난 김영훈의 모습은 완전히 달라져 있었다.
20대의 그의 모습.
‘반로환동! 그렇다는 것은···.’
그는 벌써, 오기조원에 이르렀다는 의미였다.
나는 문득, 아주 조금 허탈한 기분이 들었다.
누구는 5년 동안 끊임없이 실전 경험을 겪고 무공을 갈고닦아도 잡기가 조금 느는 것에 불과한데.
누구는 그저 가진 바 재능을 활성화하는 것만으로 벌써 다음 단계로 넘어가는 것이다.
“하하, 오기조원에 경지에 이르르니 환골탈태가 이뤄지고 몸이 젊어지더구만. 그리고 또 삼화취정의 경지일 때와는 완전히 다른 영역에 이르렀고. 뭐 그렇게 됐네.”
“그나저나 무슨 일로 찾아온 겁니까. 1년 전에 만나지 않았습니까.”
우리는 2년마다 만나기로 되어있었다.
처음 헤어진 후 2년. 그리고 다시 2년.
그때마다 만났고, 올해는 지난번에 만난 지 1년밖에 지나지 않은 상태였다.
“음, 내가 오기조원에 이르고, 연국 각 대문파들을 찾아다니며 비무행을 다녀봤는데 말이지··· 한 가지 깨달은 게 있어서 말이다.”
“뭡니까?”
“그건, 이 연국에서는 이미 내가 천하제일인의 경지에 이르렀다는 것이다. 그 누구도 내 일초지적이 안 되더군. 그래서 말이다···.”
그가 은근한 표정으로 내게 제안을 하며 말했다.
“이제 천하제일인의 이름으로, 문파나 조직을 운영해 볼 생각인데 말이다. 한자리 줄 테니 혹시···.”
“됐습니다. 전 지금 상태가 편합니다.”
벌써 저놈의 무림맹주 병이 도진 모양이었다.
아마 저 제안을 수락하면 이번에도 책사나 부문주 같은 게 되어서 소처럼 일할 게 뻔했다.
내 명성도 실력도 지난 삶들과는 달리 더할 나위 없기에, 아마 책사나 부문주가 된다면 훨씬 더 조직 운영이 쉬울 것이다.
하지만.
‘내게 시간은 언제나 부족한데, 조직 운영 때문에 뺏길 수야 없지.’
천재가 5년 만에 오기조원에 이를 동안.
둔재는 5년 동안 여전히 지지부진한 실력이었다.
내 재능으로 절정지경에 도달하려면 일 분 일 초가 아까운 상황이다.
그런 만큼, 절대로 내 시간을 빼앗겨선 안 된다.
내 칼 같은 거절에, 김영훈은 조금 시무룩한 표정으로 한숨을 쉬고는 물러났다.
앞으로 조직을 세우면 지금처럼 몇 년에 한 번씩 만나기가 어려울 것 같다는 말과 함께.
자신과 함께 가면 늘 붙어서 지도 대련을 해 줄 수 있다는 말이기도 했다.
‘아무리 좋은 조건을 제시해도, 이번 생에는 가지 않겠습니다.’
이미 지난 삶 동안 그에게 수없이 지도 대련을 받아 왔다.
이제 내게 필요한 것은 오히려 수많은 실전 경험!
지난 삶의 영훈 형님조차도 내게 일류 후반에 오르면 무수한 실전을 겪어 보라고 했었으니만큼.
지금 그에게 가는 것은 오히려 손해였다.
나는 이번 생애에는 그저 그의 행적을 멀리서 지켜보기로 하며, 다시 끝이 없는 비무행을 이어 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