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Regressor’s Tale of Cultivation RAW novel - Chapter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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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회차의 첫날
아.
나는 눈을 떴다.
익숙한 기분.
“또 회귀했군.”
지난 삶의 마지막을 떠올려 보았다.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저항하다가···.
“···드디어, 올랐다.”
그래, 제대로 정신이 든다.
나는 분명, 마지막 순간.
“절정지경(絕頂之經)에 올랐다!”
너무 흥분되어, 나는 주변도 신경쓰지 않고 하늘을 쳐다보며 울부짖었다.
“드디어! 드디어!!!”
평생을 갈구해 온 그 경지에, 닿았다!!!
부웅!
익숙한 소리가 들린다.
오랜만에 보는 얼굴, 전명훈 과장이다.
하지만 나는 그쪽으로는 눈길도 주지 않은 채, 그대로 눈을 감았다.
휘이익!
공기를 뚫고 오는 전명훈의 손길.
나는 그의 움직임을 느끼며, 죽기 직전 도달했던 ‘그 감각’을 일깨웠다.
‘보인다!’
눈을 감았는데도 생생하다.
붉은빛의 궤적이 내 뺨을 향해 있었다.
나는 눈을 감은 채로 최적의 움직임으로 전명훈의 귀싸대기를 피했다.
“이 자식이, 피해?”
붕, 붕!
전명훈이 몇 번 더 손을 후려쳤으나, 나는 여전히 눈을 감고서 최소한의 움직임만으로 그의 손길을 전부 피해 냈다.
‘보인다. 전명훈의 다음 움직임이. 녀석의 손길이 어디로 향할지. 아주 또렷하게 보여.’
이전에도 전명훈 정도는 쳐다보지도 않고 공격을 피할 수 있었지만, 그건 전부 수십년 동안 무술 수련을 한 경험을 통해 경험적으로 어디를 때릴지를 ‘예상’ 하며 피한 것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다르다.
붉은 실선이 녀석의 경로를 말해준다.
실선은 눈을 뜨고 있어도, 감고 있어도 그 자리에 존재하는 듯 생생하게 보였다.
이건 ‘예상’이라기보단, 차라리 ‘예지(豫知)’에 가까웠다.
‘이게, 절정경 고수들의, [시야]인 건가?’
나는 그제야 어째서 일류 고수는 몇 명이 모여 있든 절정고 수를 이길 수 없는지 알 수 있었다.
‘보이는 거다. 자기보다 하수(下手)인 일류 무사들은 몇 명이 모여있든 공격의 방향과 궤적이 눈에 훤히 보이는 거야. 공격이 절대로 닿을 수가 없는데 어떻게 일류 무인이 절정 무인을 이길 수 있겠나.’
이 때문에 절정 고수를 일류 무인이 상대하기 위해선, 수십 명 이상이 인해전술로 덤벼드는 수밖에 없는 것이었다.
‘거기에, 상대의 공격 방향과 궤적은 둘째치고.’
나는 나를 향해 달려드는 전명훈을 향해, 투지를 세웠다.
동시에, 녀석의 궤적을 알려 주던 붉은 선들이 전부 사라지고, 시야를 푸른 선들이 한가득 메웠다.
얼굴을 포함해, 어깨, 가슴, 팔, 옆구리, 배, 하초, 골반, 다리, 무릎, 발 등.
수십 군데를 향해 푸른 선이 옹기종기 향해 있었다.
본능적으로 알 수 있다.
이 푸른 선이 향하는 곳이 상대의 허점이자, 내가 공격할 수 있는 최적의 동선이다.
아무래도 나와 전명훈의 싸움 실력의 차이가 현격하게 나기 때문에 이렇게 많은 허점이 드러나는 것이리라.
‘그렇군. 그때 붉은색과 푸른색은.’
―삼화취정의 고수시로군. 나 말고 이 성에서 삼화취정에 이른 자는 처음 보는구려.
―세 번째에 이른 놈들이 흔하지야 않지. 절대 다수가 평생을 빨갛고 파란 그 안에서만 살아가니. 나 또한 자네같은 고수를 만나는 건 오랜만이군.
회귀 2회차 당시.
김영훈과, 가천보라는 문파의 원로원주 팔직태의 대화.
분명 그때 가천보 원로원주 팔직태는 ‘빨갛고 파란’이라는 말을 했었다.
그때 당시에는 한 마디도 이해하지 못할 말이었으나, 나는 지금에서야 그 말을 이해할 수 있었다.
‘그는, 절정 고수들이 보는 이 ‘시야’에 대해 말한 것이었었나.’
상대의 공격을 읽을 수 있는 적색(赤色)의 선.
내가 최적의 공격을 할 수 있는 청색(靑色)의 선.
서로의 간합을 주고받을 수 있는 이 쌍색(雙色)의 세계가 바로 절정 고수들의 세계였던 것이며, 동시에 그가 말했던 ‘빨갛고 파란’ 세계였으리라.
거기까지 생각이 미쳤을 때.
주륵―
‘어?’
나는 문득 내 코에서 코피가 흐르는 것을 느꼈다.
동시에, 나는 ‘고통스럽다’는 감각을 느꼈다.
아프다!
마치, 뇌가 타 버리고 있는 것 같다!
‘젠장, 이 [시야]를 사용하면 뇌에 과부하가 오는 건가?’
나는 손을 들어, 내게 달려드는 전명훈의 마혈을 보이지도 않을 속도로 점혈해 버린 후, 지난번과 같이 해독초랍시고 수면초를 먹여서 잠재워 버린 후, 빠르게 [시야]를 해지했다.
사실 [시야]를 켜는 순간부터 통증이 있기는 했지만 무시했다.
하지만 시야의 사용 시간이 길어질수록 통증이 심해졌고, 결국에는 뇌가 타 버릴 듯한 통증이 된 것이었다.
‘방금 전명훈과의 투덕거림에서 ‘시야’를 쓴 시간은 촌각도 되지 않았다. 그런데도 이렇게 고통스럽다니···.’
뭐가 문제일까.
잠시 고민하던 나는, 우선 아직도 혼란에 떠는 동료들을 진정시킨 후.
그들을 데리고 동굴로 들어가 불을 지피고 나무열매와 버섯구이를 구워 먹으며, 동료들을 잠재웠다.
해가 지고, 동료들이 모두 잠든 걸 확인한 후에야 나는 동굴 밖에 앉아서 생각을 정리해 보았다.
‘우선, 절정지경에 대해 정리해 보자.’
절정경이란 기본적으로 뇌를 과부화시켜, 상대의 투로(鬪路)를 읽어 내어 시각화시켜 준다.
물론 말이 시각화지, 맹인이라 할지라도 상대의 투로를 읽을 수만 있다면 뇌리에 두 가지 색깔이 체험과도 같이 선명하게 떠오른다.
시각화라기보다는, 내가 예지하는 적의 투로를 내 뇌가 멋대로 색을 입혀 청색과 적색으로 만든 듯했다.
‘이 시야를 사용하면 상대의 움직임이 모두 읽히고, 나는 최적의 동선으로 상대의 허점을 노릴 수 있다.’
이래서 지난 삶의 김영훈이 내게 오감의 극대화를 상시 적용하는 것을, ‘절정경의 모방’이라고 한 듯했다.
오감을 극대화시켜 상대의 투로를 간접적으로 계산하게 한 것이다.
다만 내가 너무 재능이 없어서 절정지경의 세계를 모방해 왔음에도 끝끝내 마지막에 죽음을 각오하고서야 절정지경을 각성한 것일 터.
‘엄청나군.’
나는 다시금 절정지경의 시야로 세상을 바라보았다.
한밤중 떨어지는 나뭇잎을 바라보며, 푸른 선을 떠올렸다.
수백 수천 가지의 푸른 실선이 나뭇잎을 향해 생겨났다.
나는 근처에 있는 나뭇가지를 잡고, 나뭇잎을 향해 휘둘렀다.
내공도 없고, 나뭇가지는 검처럼 생기지조차 않은 뭉툭한 가지였다.
심지어 나뭇잎은 생기가 돋은 파릇파릇한 잎사귀였으며, 밤바람에 이리저리 휘날리고 있었다.
그러나, 내가 단악검법의 검초로, 푸른 선이 그려 준 최적의 동선을 통해 나뭇가지로 나뭇잎을 내리친 순간이었다.
파삭!
나뭇잎이, 그대로 베여 버렸다.
나풀거리는 부드러운 나뭇잎이, 내공도 담기지 않은 뭉툭한 나뭇가지에 반으로 잘린 것이었다.
지난 삶의 회귀 첫 날.
절정경의 깨달음을 얻을락 말락 할 때 잠시 이뤄 냈던 경지였다.
그때는 무의식적으로 해낸 것이었지만, 지금 내 의식은 아주 또렷했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나뭇가지를 들고 검무(劍舞)를 추었다.
내 검무에, 밤바람에 흩날리던 나뭇잎들이, 내공도 담기지 않은 나뭇가지에 전부 잘려 나갔다.
슈칵, 슈칵!
무수한 검초가 나뭇잎들을 꿰뚫는다.
최적의 동선이 내 눈 앞에 수천 가지가 뻗어 나갔다.
나는 눈을 감고, 주변에서 흩날리는 나뭇잎들이 전부 일류 고수라고 생각해 보았다.
나는 내공이 없고, 목검도 아닌, 적당히 조금 두꺼운 나뭇가지를 쥔 상태다.
이 많은 일류 고수들을 이길 수 있을까?
‘이길 수 있다!’
일류 고수들이 각자 병장기들을 집어들고 내게 달려들었다.
구절편, 연검, 암기, 철퇴, 극, 권, 창, 호조, 참마도, 환도 등 무수한 병장기들이 내게 쏟아진다.
어째서일까.
무섭지 않다.
붕, 붕, 붕!
나는 끊임없이 검무를 추며, 일류 무사들의 병장기를 피해 내고, 최적의 동선으로 최적의 검로를 이었다.
내 일 검에 그들의 초식이 모두 파해되고, 이 검에 그들의 균형이 파괴되고, 삼 검에 모두의 목이 잘려 나가 있었다.
“하아···.”
눈을 뜨자, 주변에는 잘려 나간 나뭇잎들이 즐비해 있었다.
주륵―
얼마나 ‘시야’를 사용했다고, 다시 뇌가 타 버릴 것 같은 느낌과 함께 코피가 흘렀지만.
내 기분은 날아갈 듯이 좋았다.
‘나도, 이젠 절정 고수다!’
***
나는 지혈초를 뜯어 코피를 멈추고, 주변을 돌아다니며 수백 년 묵은 황주삼들을 캐러 다녔다.
‘아마 시야를 그리 오래 유지하지 못하는 건 내공의 유무도 있겠지.’
내공이 어느 정도 몸의 내구도를 받쳐 줘야 시야의 유지도 지속 시간을 늘릴 수 있을 것이다.
난 황주삼들을 캔 후 적당히 흙만 턴 후 그 자리에서 전부 씹어서 삼켜 버렸다.
이미 절정 고수에 오른 이상, 딱히 이것들을 팔아야 할 이유는 없었다.
‘김영훈 것만 남겨 두고 전부 먹어야지.’
등선향의 이 근방에서 찾을 수 있는 황주삼은 약 10개.
조금 더 먼 곳으로 탐색 범위를 넓힌다면 뭔가 더 나오겠지만, 굳이 그럴 필요는 없다.
나는 추후 김영훈이 먹을 2개 정도의 삼을 제외한 나머지 8개의 삼을 전부 뽑아 먹어 치워 버렸다.
쿠구구구―
용맥기공의 인도에 따라, 삼들의 막대한 영력이 전신 혈도를 타고 용솟음친다.
후우―
삽시간에 어마어마한 내공 화후가 쌓였다.
황주삼을 하나만 먹고 나머지는 그냥 팔아 버린 후, 50 평생을 꾸준히 공력 수련만 해서 깊은 화후를 가졌던 지난 삶보다도 오히려 많은 내공이 단전에서 꿈틀거린다.
“어디, 다시 볼까?”
막대한 내공을 끌어올리며, 나는 다시 절정 고수의 ‘시야’를 일으켰다.
그리고 시야를 일으킨 채 약 한 시진 동안 검무를 펼쳐 보았으나, 크게 문제는 없었다.
다시 타는 듯한 괴로움이 시작된 것은 한 식경 후.
그때부터 다시 두통과 뇌가 타는 듯한 괴로움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약 한 시진 반 정도가 내가 버틸 수 있는 한계점이군.’
또한 아무리 내공이 많아도 결국에는 이 고통이 찾아오는 시간을 조금 늘릴 뿐, 완전히 없애지는 못한다는 것을 알았다.
‘그렇다면, 방법은 하나뿐인가.’
계속해서 절정 고수의 시야를 펼치는 것을 반복 수련한다.
그렇게 해서, 뇌가 타는 듯한 고통을 줄여 나가고 점차 뇌 자체가 이 시야에 익숙해지게 하는 것.
‘수련, 끝없는 수련만이 답이다.’
천재들은 어떨지 모르겠지만.
재능을 타고나지 않은 내게는 이 방법이 최선이었다.
이번 생의 목표는 우선적으로는 절정 고수의 시야를 사용할 때 느껴지는 이 타는 듯한 고통의 극복.
그리고, 최종적으로는···.
‘삼화취정(三花聚頂)···!’
절정의 극한(極恨)이라고도 불리는 삼화취정에 도달할 것이다.
“오기조원까지 이번 생애에 바라겠다는 건 좀 도둑놈 심보인 듯싶고. 그리고 어차피 오기조원은 감도 안 잡히는 데 반해서···.”
삼화취정의 경지는, 지금으로서도 대략 감이 잡혔다.
―세 번째에 이른 놈들이 흔하지야 않지. 절대다수가 평생을 빨갛고 파란 그 안에서만 살아가니.
가천보 원로원주가 말했던, [세 번째].
적의 의도를 상징하는 붉은색.
내 의도를 상징하는 푸른색.
이것 외에도, [세 번째] 색이 존재하며, 그것이 삼화취정과 그 이하의 존재들을 가르는 기준선이다.
세 번째.
‘뭔지는 감도 안 잡히지만.’
일류에서 절정으로 넘어갈 때 느꼈던 아득한 벽보다, 절정에서 삼화취정에 도달하는 것이 조금 쉽다는 것이 어렴풋이 예상된다.
나는 동굴 안에서 자고 있을 김영훈을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다.
‘분명 이전보다는 훨씬 더 그의 가르침을 잘 소화할 수 있겠지.’
절정고수에 이른 만큼, 김영훈을 따라다니며 얻을 수 있던 가르침의 수준 역시, 일류 고수이던 시절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이 많을 것이다.
더군다나, 6권에 달하는 지난 삶의 김영훈이 남긴 심득과, 그가 마지막에 남긴 구결 역시 가지고 있었다.
이번 생의 김영훈은 지난 삶의 김영훈을 분명히 뛰어넘을 것이다!
‘나 역시, 이번 삶에서 삼화취정을 얻고, 수도자에 한 발 더 가까워질 것이다!’
나는 그렇게 다짐을 하며, 동굴 앞에서 평안히 떠오르는 아침 해를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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