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Regressor’s Tale of Cultivation RAW novel - Chapter (199)
배신 (5)
‘나는 충동적인가.’
수십 년 만에, 꿈속을 헤매던 상태에서 벗어나 두 눈을 뜬 유화는 자신의 결정이 맞는지 고민했다.
아무리 심족 두 명 이상을 포섭할 수 있는 기회라도.
아무리 더러운 지족 영역에 한 방을 먹여 줄 수 있을지라도.
아무리 지금 펼치는 이 공격이, 그녀가 후에 구현 3단계에 제대로 이를 때에 도움이 되더라도.
그것을 위해, 안 그래도 짧은 심족인 그녀의 수명을 10년 치 이상이나 소모하는 것이 과연 맞는가.
하지만 그녀의 손이 그녀가 수년을 연주해 온 그녀의 금에 닿는 순간.
그녀의 고민은 눈 녹듯이 사그라들었다.
그녀가 수십 년을 뜯어 온 금이었다.
그리고 눈앞의 백녕은 그녀가 수년을 들여 각성시킨, 그녀의 제자였다.
쓸데없지 않다.
충동적이지도 않다.
왜냐하면, 가르침을 준 자로서, 자신에게 배운 이가 저렇게 되었다면 어떤 식으로든 책임을 주어야 하는 게 맞으니까.
그녀는 백녕이 걸린 세뇌가 어떤 성질의 것인지 깨달았다.
강력한 자기 세뇌!
도대체 그 음험한 용이 어떻게 그녀의 제자를 구워삶은 것인지는 몰랐다.
하지만 백녕은 자기 자신이 자신의 세뇌를 강력하게 믿고 있었다.
설령 거짓이더라도 스스로가 그렇게 ‘믿고 싶어’ 했다.
저런 강력한 세뇌를 깨려면, 더더욱 강력한 충격이 필요했다.
‘내 힘만으로는 부족하다.’
심족의 심상에 충격을 주려면, 더더욱 강력한 힘이 필요했다.
지금 필요한 것은, 구현 3번째 단계!
구현 3번째 단계의 심족은 기껏해야 만 명 안팎.
그러나 달리 말하면, 구현 3번째부터를 달성한 심족들은 정말로 천, 지족이 식겁하며 위협이 될 정도의 존재들이라는 소리였다.
‘간다.’
그리고, 그녀가 연주를 시작하였다.
천지만상이 주홍빛으로 차올랐다.
* * *
쿠릉, 쿠르르릉!
해룡족이 자리 잡은 운심호.
그곳에, 기이한 뇌성벽력이 울렸다.
아니, 그것은 ‘분명히’ 뇌성벽력이 아닌 다른 소리였다.
하지만 천둥소리가 아니었음에도, 운심호 인근에 사는 무수한 원영기 요족들은 그것을 천둥소리로 인식했다.
왜냐하면, 운심호에서 느껴지는 저 ‘힘’은, 요족들이 여태껏 수행을 이어 오며, 원영기에 이를 때에 맞았던 천벌의 힘과 그 성질이 놀라우리만치 성질이 흡사했기 때문이었다.
운심호에는, 주홍빛 천겁이 몰아치고 있었다.
기이하게도, 그 천겁은 하늘이 아닌 운심호의 밑바닥.
한 노예 종족 출신의 연주로부터 비롯되고 있었다.
* * *
“…!”
나는 영기를 운행하며, 답천의 경지를 드러내고서 나를 향해 내리치는 주홍빛 힘에 저항하였다.
너무나도 익숙한 힘이다.
천겁(天劫)!
이것은 천겁이었다!
내가 수 번의 생을 거치며 몇 번이나 마주했던, 하늘의 진노!
나는 그제야 어째서.
지난번 전명훈의 공격들을 보고서 왜 함천존자의 일격을 떠올렸는지 깨달았다.
전명훈의 뇌도공법은 천뢰를 연상시켰다.
그리고, 심족 구현 3단계.
답천 너머의 경지로 추정되는 이 힘은, 놀랍도록 천겁과도 닮아 있었다.
“…!!!”
있는 힘을 다해 유화의 천겁에 맞서 나가며, 나는 그녀가 ‘어떻게’ 3번째 구현을 펼쳐 내는지를 눈에 담으려 했다.
물론 단순히 눈에 담는 것조차 버거웠다.
하지만, 영기를 읽으며, 의념을 읽으며.
그리고 다시 천겁을 예측하는 예뢰안의 법술을 사용하며.
나는 유화가 쓰는 구현 3번째 단계의 힘을 눈에 담았다.
‘저것이….’
그런가….
답천 너머로 발돋움하는 방법은….
쿠르르르릉!
그녀의 연주 소리는 분명 아름다웠으나, 나는 그 소리가 천둥소리처럼 들렸다.
아니, 지족의 입장에서 저것은 분명 천둥소리였다.
그러나 지족과 의념의 시야를 둘 다 가진 내게는, 너무나도 아름다운 예술로만 보였다.
‘아름답다….’
절로 경탄이 나올 정도의 완성도.
보고만 있어도 영감이 샘솟는 기예.
그리고, 그녀 자신의 의지!
나는 기이한 홀황경에 휩싸이는 느낌과 함께 그녀가 구현한 ‘아름다움’을 감상하였다.
전신이 타들어 가는 것 같았지만 아랑곳하지 않고, 그렇게 나는 하염없이 그녀의 예술을 관람하였다.
츠스스스….
“…헛!”
나는 순간 다시 정신을 차렸다.
“어, 어어?”
정신을 차리기가 어려웠다.
갑자기 현실 감각이 이상해진 것 같았다.
‘뭔가, 천겁을 맞던 중에 기억이 끊겼던 것 같은데….’
비몽사몽하다.
순간 졸기라도 했던 듯 정신을 차리기가 힘들었다.
“정신이 드셨나요?”
“…!”
다음 순간, 내 옆에서 말을 거는 유화 덕에 나는 머리를 흔들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여기는….”
나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하!”
그리고, 나는 어이가 없어져서 헛웃음을 내뱉었다.
산호 마을은 사라졌다.
아니, 산호 마을뿐이 아닌, 해룡궁 역시 ‘해룡궁이었던 것’으로 변해 가루가 되어 있었다.
그리고 사방으로 해룡족 원로들과 장로들이 쓰러져 기절해 있었다.
그것은 산호 마을의 백염족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저 앞에는 백녕이 무릎을 꿇고 있었다.
나와 그녀를 제외한, 운심호의 모두가 ‘자고’ 있었다.
유화는 한층 초췌해진 얼굴로 눈을 감고 있었다.
“제 환람연하로 모두 재웠습니다. 제가 깨우지 않고 자력으로 일어나려면, 천인기 수사는 하루, 원영기 수사는 열흘. 그 이하는… 말할 것도 없겠지요.”
“…무시무시하군.”
어느 순간 기억이 끊겼다 했더니, 저항할 틈도 없이 잠들었던 것이리라.
이런 무시무시한 심족이, 강력한 공격력을 가진 심족과 함께 다닌다면 그 앞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이들이 없을 터였다.
더욱 무시무시한 건, 그녀가 현재 운심호에 거주하는, 20명이 넘는 해룡족 천인기 원로를 모조리 재웠다는 것이었다.
해룡족의 천인기 수사들은 모두 예순두 명이었으나, 나머지는 전부 서휼의 명에 따라 지족 곳곳에서 활동을 이어 가고 있었다.
해룡궁에 남은 것은 3분지 1밖에 안 되는 숫자였으나, 그래도 그녀 한 명으로 교환비가 20 대 1이나 되는 말도 안 되는 일을 선보인 것이었다.
“심족 구현 3단계에 이르면… 천인기 수사라도 이렇게 말도 안 되게 제압할 수 있는 거요?”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여기 있는 천인기, 원영기 지족들은 전부 며칠 전 요선루로 와서 제 음색을 미리 들었기에, 음색을 기억하는 이들의 심상을 파고들기가 압도적으로 쉬웠답니다.”
“….”
역시나 음공은 한 번 음색을 들었다면 빠져나가기 힘든 독이나 다름없다.
다만 유화의 연주가 음공과 다른 점이 있다면, 일반적인 음공은 그래도 음악의 진동이 가시면 더 이상 영향이 없지만.
그녀의 환람연하는 음악의 진동이 아닌 심상에 그 음색의 영향이 남아 있는 한 언제든지 그 영향을 강하게 증폭시켜 상대를 재워 버릴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녀의 말이 사실이었는지, 인근 수저요족 중 한 번도 유화의 연주를 들은 적 없던 원영기 요족 몇몇은 일어나려고 몸을 움찔거리는 중이었다.
물론 그녀가 몇 번 더 금을 뜯자 다시 기절해 버렸지만 말이었다.
“…그래서 어떻게 할 거요?”
“탈출해야겠지요. 해룡족은 심족에 대해 잘 몰라 기습에 당한 것이지만, 인근에 사는 지족 중 심족에 대해 아는 이들이라면 전부 방금의 일격을 보고 이곳에 심족이 있다는 것을 알아챘을 것입니다.”
“…그렇겠지.”
나는 쓴웃음을 지으며, 내 운명에 섞인 말도 안 되는 일격을 쳐다보았다.
하늘을 보자, 그녀의 일격을 맞은 것으로 내 운명이 변화해 있었다.
안 좋은 쪽으로 말이었다.
“왜 천, 지족들이 심족을 혐오하고 공포스러워하는지 이제야 알겠군.”
“….”
“심족의 구현 3단계는 천겁과 거의 동일하지. 그리고….”
나는 어처구니없는 눈으로 유화를 바라보았다.
“내가 지금 천기를 보며 확인한 것이 맞는지 모르겠지만, 심족의 천겁을 맞으면, 천족과 지족은 앞으로 맞는 천겁의 종류가 추가되는군. 그렇지 않소?”
“…맞습니다. 그래서 그토록 양대 종족이 저희를 박멸하려 노력하는 것이지요.”
그랬다.
내 운명에는 한 종류의 천겁이 대뜸 하나 더 추가되어 있었다.
본디 청색과 금색의 천겁을 맞던 나는, 이제부터는 주홍빛의 천겁 역시 같이 맞아야 하는 것이었다.
“심족의 선배님들께 듣기로, 정확히는 구현 3단계 심족의 일격은 천겁과 그 성질의 거의 흡사해 하늘이 착각을 한다고 하더군요.”
그녀의 설명이 이어졌다.
“구현 3단계의 일격 역시 천겁과 거의 흡사하기에, 하늘은 그 일격을 맞은 이가 그 일격을 극복해 내는 데에 성공하면 아무런 반응이 없습니다. 하지만 그 일격을 극복해 내지 못한다면, 하늘은 천겁을 극복해 내지 못한 것으로 인지하여 다음 경지 상승 때에, 한 번에 한하여 심족이 쏘아 낸 일격과 같은 성질의 천겁을 더 내리꽂는다 하더군요.”
“….”
다행히 영원히 내가 맞아야 할 천겁의 종류가 하나 더 늘어난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한 번에 한한다 치더라도, 맞아야 할 천겁의 종류가 늘어난다는 것은 끔찍하고 공포스러운 일이었다.
심족 구현 3단계와 싸우면, 누구든지 앞으로 맞아야 할 천겁의 종류가 한 번에 한하여 늘어난다.
정말로 무시무시한 일이었으며, 과연 천, 지족이 어떻게 해서라든지 심족을 뿌리 뽑고 싶어 하는 이유다웠다.
“그래서 천, 지족이기도 한 당신은 피하라고 한 거였습니다만….”
“뭐, 상관없소.”
나는 피식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천겁의 가짓수가 늘어난 것은 분명 어질어질한 일이었지만, 그래도 다음 경지를 엿보았으니 만족한다.
“어쨌든 그래서 어떻게 탈출할 건지는 계획이 있소?”
“구현 두 번째인 본래 실력으로 몸을 제 곡과 동화하여 도망친다면….”
“무모하군. 당신이 너머의 경지를 보여 주었으니, 나도 답례를 하지.”
나는 의식을 집중한 후, 그녀의 앞에서 그녀의 인식을 잘라 내는 월수궁무록을 펼쳤다.
파아앗!
순간 그녀의 시야에서 벗어난 내가 그녀의 앞에 나타나자, 그녀는 월수궁무록이 가진 의미를 깨달았는지 헛숨을 들이켰다.
“그, 그건 도대체 무엇입니까?”
“이건 월수궁무록이라는 내 기술이오. 아마 당신이라면 사용할 수 있을 테지.”
월수궁무록에 어찌나 충격을 받았는지, 그녀가 금을 잡고 있던 두 손이 덜덜 떨리는 것이 보였다.
“당신이… 만든 기술인 겁니까?”
“아니, 나도 배운 기술이오.”
“어, 어떤 분이 만든 기술인 거죠?”
“…나를 이 경지에 이끈 스승이시지.”
“부, 부디! 그분을 소개해 주실 수 있나요?”
“…하계에 계시오.”
“하계….”
그 말에 그녀는 의미심장한 표정을 지었다.
“차후에 존자께 말씀드려야겠습니다. 그런 분을 모실 수 있다면 저희 심족은 한 단계 더 도약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음… 그렇긴 하겠지.”
김영훈이라면 어째 정말로 심족을 천, 지족에 버금가는 더더욱 말도 안 되는 종족으로 탈바꿈시킬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유화는 내가 보여 준 월수궁무록의 구결을 되뇌고, 몇 번 펼쳐 본 후.
자신의 연주에 접목하여 순식간에 자기류로 변형하였다.
그녀 역시 어찌 되었든 심족으로 각성할 정도의 재능은 있었으니 변형 자체는 어렵지 않은 모양이었다.
츠츠츳!
인지 사이에 곡의 형태로 숨어 든 그녀는 내게 인사를 한 후 강물의 형체를 한 채 날아올랐다.
강물에 딸려 올라가는 백녕의 몸체를 보았다.
“네 제자만 데려가는 거냐?”
[…세뇌는 억지로라도 풀어 두었습니다. 그 용이 다시 걸지 않는 한 추가로 세뇌가 걸리지는 않겠지요. 만약 이렇게까지 했는데도 불구하고 백녕이 남겠다고 한다면… 백녕의 의지는 존중하여 돌려보내겠습니다. 하지만… 백녕이 남은 백염족을 데리고 가고 싶어 한다면 그와 함께 다시 해룡궁으로 와, 남은 백염족들도 전부 심족 영역으로 함께 갈 것입니다.]“그렇군, 알겠다.”
나는 월수궁무록을 쓴 채 사라져 가는 그녀를 배웅한 후.
다른 용족들처럼 자리에 드러누워 눈을 감았다.
쿠구구구!
저 멀리, 운심호 바깥에서 어마어마한 천지영기가 몰려오고 있었다.
보나마나 유화의 구현 3단계를 보고, 심족이 쳐들어온 것을 확신한 채 날아오는 지족 사축기 수사들이었다.
나는 눈을 감은 채, 다른 천인기 원로들처럼 기절한 척을 하면서 기묘성심전으로 의식을 저 밑바닥으로 가라앉혔다.
쿠구구구구!
운심호의 물이 모조리 위쪽으로 빨아올려지며, 차가운 공기가 피부를 때린다.
그리고 사축기 수사의 광대한 의식 영역이 운심호를 휩쓸며 곳곳을 거침없이 조사하는 것이 느껴졌다.
[어디 있느냐, 이 빌어 처먹을 심족 나부랭이야! 당장 튀어나오너라!]‘이것으로….’
나는 속으로 미소를 지었다.
어쨌든 목적은 이뤘다.
유화가 나타날 때부터 내 손으로 난동을 일으킬 생각은 있었지만, 그녀가 내 예상보다 거하게 날뛰어 준 덕에.
해룡궁은 가루가 되었고, 해룡족 영역 전체도 혼란에 접어들었으니, 앞으로 해룡족 원로 놈들이 나한테 뭔가를 시킬 여유가 없으리라.
서휼이 남겨 놓은 사회적 제약에서 벗어났다.
‘이제 남은 건 자유를 통해, 서휼에게 불만이 있던 몇몇 요족의 대표들과 접촉하는 것.’
이제부터가, 서휼의 뒤통수를 향한 배신의 진짜 시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