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Regressor’s Tale of Cultivation RAW novel - Chapter (201)
배신 (7)
“아, 오랜만에 뵙습니다, 어르신. 그때 잠시 뵈었지요?”
홍국 역시 나를 알아본 듯 아는 척을 했다.
‘그랬군, 그래서 홍국도 규련에게 서휼이 백녕을 데려갔다고 얘기하지 않은 거였어!’
“…처음에는 잘못 봤다고 생각했습니다. 하나… 다시 생각해 보니, 그때 대군님이 쓰셨던 투영 법술은, 혈음계 천마들이 쓰던 것과 굉장히 유사해 보였습니다. 아니, 거의 흡사했지요. 혈음계 천마들과 겨뤄 본 제가 잘 압니다.”
“그렇다는군.”
천량이 씨익 웃으며 말했다.
“서휼 그자가 돌아와서, 그 가당치도 않은 작명과업에서 손을 떼게 할 기회일세!”
천량이 속한 천견족은, 자신들의 이름을 진룡맹에서 관리하는 것을 마음에 들어 하지 않는 종족 중 하나였다.
그중에서도 천견은 직접적으로 작명과업을 시행한 13개 대형 종족보다는, 그들을 은근슬쩍 작명과업의 찬성 쪽으로 넘어가게 한 서휼을 더 싫어하는 이였고, 그가 실각해서 정치권으로는 다시는 발을 들이지 못하게 하고 싶어 하였다.
나 역시 서휼을 싫어하는 천량의 성향은 잘 알고 있었고, 그때 당시 나도 홍국의 옆에 있었으니 그 상황은 잘 알았다.
‘홍국의 증언은 사실일 확률이 매우 높다.’
아니, 보나 마나 서휼이 동족을 희생해서 자신의 투영체를 강림시킨 그 술법은 분명 혈음계의 것이다.
‘나 혼자만 증인이었을 때와는 상황이 다르다.’
나 혼자만 서휼이 혈음계의 첩자라고 떠들었을 때는 아무런 발언력이 없었다.
하지만, 실질적으로 천견족의 장로인 천량과, 증인인 홍국.
그리고 서휼의 반대파가 온 힘을 다해서 서휼과 혈음계의 관련성을 외친다면, 어쩌면 서휼에게 정치적으로 상당한 피해를 끼칠 수도 있을 터였다.
‘좋군.’
실패해도 성공해도 내게 불이익은 없다.
그냥 서휼이 첩자다 하고 소리나 질러 보는 거니까.
실패하면 실패한 대로 서휼이 이런 음해에 시달리는 것은 그의 신분이 하계 출신 흑룡족의 방계 해룡족이라서이니, 그를 혼인시켜야 한다고 밀어붙일 수 있고.
성공한다면 그를 혈음계의 첩자로 밀고 가서 지족 내에서 서휼의 영향력을 말소시킬 수 있었다.
‘서휼 정도 되면 혈음계의 첩자라 하더라도, 축(軸)에 대고 다시는 혈음계와 접촉하지 않게 하는 맹세를 시킨 후에 가택 연금을 시키거나 할 뿐이겠지.’
어쨌든 사축기는 귀중한 전력이니 말이었다.
여하튼 그 경우라 해도 내가 원하는 방향이었으니 좋다.
“좋습니다. 다만, 서휼이 아무리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해서, 증인 한 명의 증언만으로는 발언력이 크지 않습니다.”
“하면….”
“혹 증거가 있습니까? 홍 수사?”
내 말에 홍국은 진중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혈음계 천마들이 쓰는 투영술은, 대지에 영향을 남깁니다. 확실하진 않지만, 아마 그 목화 농장에 다시 가면 확인할 수 있을 겁니다.”
“좋네, 부하를 시켜 증거를 수집해 오라고 하지.”
“다만….”
그러나 바로 누군가에게 손짓하려던 천량에게, 홍국이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제가 지금까지 목화 농장에 가서 일부러 증거를 수집해 오지 않은 이유는, 용족이신 대군님이 그럴 리 없으리라는 생각도 있었으나, 동시에 천마들의 투영술의 흔적은 영기의 파동을 접하면 쉽게 날아가는 특성이 있어, 제가 감히 조사하지 못한 것도 있습니다. 한 마디로….”
“증거를 가져오긴 곤란하고, 우리가 가서 확인해야 한다는 건가.”
천량의 말에 홍국은 고개를 끄덕였다.
“흐음….”
그 말에 나는 조금 난처한 기분이 되었고, 반대로 천량은 좋아라 하며 혀를 내밀고 헥헥거렸다.
“아주 좋군! 그럼 반서파 전원이 모여 일단 그 농장으로 가지! 모두가 확인하면 되겠어!”
그러나 기운차게 외치는 그를 보며, 나는 작게 한숨을 쉬었다.
“그건 곤란할 것 같군요.”
“음?”
“잊은 겁니까? 홍국이 말하는 목화 농장은, 규 선배님께서 관주사자의 이름으로 진룡맹에서 하사받은 영지입니다.”
“음…!”
“흙 조금 퍼 와서 증거를 관찰한다면야 문제가 없었겠으나… 반서파 전 원영, 천인기 수사들이 우르르 몰려가서 증거를 관찰한다고요? 관주사자께 어떤 말씀을 듣고 싶으신 겁니까? 안 그래도 관주사자께서 서휼과 어떤 사이인지 아시지 않습니까.”
“…그렇군. 내 생각이 짧았네.”
“차후에 시간을 내서, 저희 둘만 조용히 가 증거를 확인하는 것으로 하지요.”
반서파가 전부 몰려가는 건 당연히 문제가 되겠지만, 나와 천량 정도가 가서 확인하는 것 정도는 문제가 없을 터였다.
그렇게 우리는 시일을 정해, 규련이 관주사자로서 업무에 충실할 때에 맞추어 농장에 증거를 찾으러 가기로 하였다.
그리고, 천량에게 서휼이 혈음계와 관계되었다는 증거를 찾으러 가자고 한 지 한 달이 지났다.
‘오늘부터 칠 주야 간, 규 선배는 봉명주 최하층에서 공간 균열을 정돈하신다.’
내일이면 공간 균열을 수리하는 데에 몰입하여, 정신이 그쪽으로 쏙 빠질 테니, 내일 천량과 함께 규련의 목화 농장에 가면 될 터다.
그렇게 생각했을 때였다.
투웅!
익숙한 금 소리가 등 뒤에서 울렸다.
나는 흠칫 놀랐으나 미소를 지으며 뒤를 돌아보았다.
“오랜만이오, 유화.”
“잘 지내셨는지요.”
난데없이 내 뒤에서 모습을 드러낸 것은, 거미의 하반신을 가진 반인지주족 여인, 유화였다.
“월수궁무록이 많이 늘었군.”
“워낙 기본이 말도 안 되는 구결이었는지라 쉽게 익힐 수 있었습니다.”
“당신 재능이 뛰어난 탓이었겠지… 그래서, 어쩐 일로 찾아오셨소?”
“…제자의 일 때문입니다.”
유화의 얼굴에서 씁쓸한 빛이 감돌았다.
“제자에게 해룡이 걸어 놓은 세뇌는 전부 풀었습니다. 해룡의 유도로 생겨난 자기 암시 역시 흩어 버리는 데 성공했고요. 하지만… 제자가 말하기를, 그 해룡이 자신에게 해 주기로 한 것들이 많다 합니다.”
그녀의 설명이 이어졌다.
“백염족들의 훌륭한 생활과 지배 계층으로서의 권리, 자신의 대우, 자신의 척산편에 대한 대우 등, 무수한 권리를 백녕과, 백염족 전체에게 쥐여 주겠다고 약속했다 하더군요. 그래서 자신 역시 해룡이 훌륭한 자라고 자기 암시를 했던 것이고요.”
“이권에 서휼에게 넘어간 것인가?”
“…그것만은 아닙니다. 백녕이 원하는 것은….”
유화의 말이 이어졌다.
“홍국이라는 멧돼지 요족을 아시는지요?”
“…안다만.”
어쩐지, 최근 그 멧돼지의 이름을 들을 날이 참 많은 것 같다는 생각을 하였다.
“홍국은 목화 농장의 감독관이던 시절, 백녕에게 자신의 노부모를 채찍질하게 시켰던 자입니다.”
“….”
“결국 백녕의 노부모는 홍국의 명령에 의해 백녕의 손으로 생을 떠났지요. 서휼은… 백녕에게 홍국을 가장 잔인하게 죽여 주겠다는 약속을 했다고 했습니다.”
그녀가 말했다.
“백녕이 말하기를, 제가 서휼 대신에라도 홍국을 찢어 죽여 준다면, 이제는 완전히 서휼에 대한 마음을 접겠다 하더군요.”
“…홍국 때문에 온 것이로군.”
“예.”
“복수 때문에 날 찾아온 건가? 복수를 도와달라고?”
“그렇습니다.”
“그렇다면….”
나는 허공을 바라보며, 허공에서 흐르는 미약한 의식의 흐름을 노려보았다.
“왜 그걸 네 입으로 직접 얘기하지 않는 거지?”
흠칫!
내 말에 유화가 흠칫 놀랐고, 곧이어 허공에서 백녕이 튀어나왔다.
“네 스승보다 월수궁무록에 대한 이해도가 많이 떨어지나 보군. 원영기만 되어도 알아챌 수 있겠구나.”
백녕은 잠시 침묵하는 듯하더니 유화를 쳐다보았다, 다시 나를 보았다.
“본래는 제가 말씀드리려 했습니다. 하나 스승님께서 막으셨지요.”
“흐음….”
나는 유화를 쳐다보며 물었다.
“나에 대한 신뢰는 없었나 보오?”
“당신에 대한 신뢰는 있지만, 아무래도 상황이 신경 쓰여서 말입니다.”
그녀가 쓴웃음을 지었다.
“현재 당신이 반서파와 접촉하고, 그들이 홍국을 필요로 한다고 알고 있습니다.”
“맞소.”
“하면 당신 역시 홍국을 필요로 함에 따라 저희와 적대할지도 모르니, 제자는 필요할 때 탈출할 수 있도록 조치해 뒀습니다만… 의미가 없었나 보군요.”
“당신과 내가 월수궁무록을 익힌 기간만 해도 차이가 난다만… 재능이 떨어지는 저 녀석에게 월수궁무록을 익히게 하면 당연히 내 눈에는 구멍이 잔뜩 보이지.”
“제 불찰입니다.”
나는 두 사제를 바라본 후 홍국에 대한 처분을 고민했다.
“…홍국과 백녕의 은원 관계는 인정을 하지. 다만, 지금은 녀석이 필요한 시점이오.”
백녕은 분한 듯 양 주먹을 움켜쥐었다.
“하지만, 농장에 가서 서휼이 혈음계와 관계되었다는 증거 자료를 확보하고, 진룡맹 장로회에 제출하면 그 이후부터는 홍국의 쓰임새가 다하게 되니, 홍국을 백녕과 단둘이 만날 수 있게 주선해 주도록 하지.”
내 제안에 유화의 얼굴이 밝아졌다.
백녕의 의념 역시 감정이 잦아들었다.
“감사합니다.”
“감사드립니다.”
유화와 백녕이 차례대로 내게 인사를 올렸다.
유화가 밝은 목소리로 말했다.
“하면, 홍국은 내일이면 쓰임새가 다한다는 말씀이시군요.”
“아니, 내일은 아니오. 내일 나와 천량이 목화 농장으로 가서, 서휼과 혈음계의 연관성을 찾은 후 그것이 확실해지면 진룡맹 장로회에….”
“예?”
그때, 유화가 내 말을 끊고 의아하다는 목소리로 물어왔다.
“지금 천량이라는 천인기 요족이, 반서파라는 이들을 전부 데리고 홍국을 앞세워 규련의 목화 농장으로 날아가고 있던데… 서휼의 약점을 확보하려는 게 아닌가요?”
“…!”
벌떡!
나는 자리에서 황급히 일어나, 빠르게 천량과 연결된 전음부에 법력을 불어넣었다.
우우웅!
하지만 전음부는 얼마간 진동하는 듯하다가, 상대쪽에서 전음을 흩어 버렸다.
‘제길, 신중히 하자고 했건만!’
규련이 봉명주 최하층에 들어간 것은 오늘이다.
그녀의 성격상 관주사자의 업무를 시작하고, 하루 정도 지나면 업무에 몰두하여 다른 일은 생각을 하지 않는다.
하지만 아직 하루가 지나지 않았고, 만약 그녀의 영지에서 무언가 신호가 온다면 그것을 알아보러 봉명주에서 나올 수도 있었다.
“이런 멍청해 빠진 놈들이… 손님 대접을 해 주지 못해 미안하네만, 잠시 규련의 목화 농장에 다녀오지.”
나는 봉명주에 있는 관주사자, 시자의 업무실에서 나와 하늘로 날아올랐다.
그때, 유화와 백녕 역시 내 옆으로 올라왔다.
촤르륵!
유화는 주홍빛 강물로 변해 백녕을 집어삼키더니, 허공으로 나풀나풀 날아오르며 월수궁무록으로 모습을 감췄다.
[저희도 동행하게 해 주시지요. 어차피 당신에게 도움을 청해야 하니, 이번 일에 도울 일이 있다면 돕겠습니다.]“뭐, 마음대로 하시오. 일단 가면서 얘기하지!”
파아앗!
나는 비둔술과 요족의 활공술, 그리고 허공답보 등 모든 것을 사용하며 빠르게 날아올랐다.
* * *
휘이이이이―
어느새 시간은 밤이었다.
한밤중, 저 멀리 산맥 너머로 규련의 영지에 있는 목화 농장이 보이기 시작했다.
츠츠츠츠―
장령목화들은 한밤중에도 달빛을 받으며 새하얗게 타오르는 듯했다.
그리고, 저 멀리 목화 농장의 한 구석에서 어마어마한 격변이 일어나고 있었다.
쿠구구구구!
“…!”
나는 그 모습을 보며 입을 벌렸다.
일전, 서휼이 해룡족 전사들의 육신을 통해 투영술을 펼쳤던 자리.
그 인근의 대지가, 대지에 흐르는 용맥째로 뽑혀 들어 올려지고 있었다.
장령목화 농장의 일부가 통째로 뽑혀 나가고 있었다.
약 2, 3리에 달하는 면적의 목화밭이 하늘로 그대로 뽑혀 올려졌고, 그 주변에는 원영, 천인기 수준의 요족들이 천지영기를 운행하며 목화밭을 들어 올리는 중이었다.
“이런 미친, 뭘 하는 짓이오!”
나는 그 중심에 있는 천량을 향해, 얼굴이 하얗게 된 채로 고함을 질렀다.
“규 선배가 들어간 게 오늘이라 하지 않았소!? 내일은 되어야 우리 둘이 와서 조사를 할 수 있을 터라고 말했을 텐데! 나랑 동행도 하지 않고, 천인기 이상 요수선사들을 우르르 끌고 온것도 모자라, 지금 규 선배의 농장에 무슨 짓을 하는 거란 말이요!”
내 말에, 천량은 태연하게 팔짱을 끼고 고개를 저었다.
“미안하게 됐소, 서 수사. 하지만 서 수사의 방식은 너무 무르오!”
“뭐…?”
“그리고 또, 우리 반서파가 단결하게 만들어 준 것이 서 수사라는 것은 인정하오만, 반서파 내에서 당신이 관주사자의 시자 신분이라는 지적이 나와서 당신의 계획을 전부 따르기도 조금….”
“아니, 그게 무슨 소리요?”
“관주사자께서 서휼과 무슨 사이인지는 전 요족이 아는 일이오. 그런데 서휼과 그런 관계인 관주사자의 시자인 서은현… 당신의 계획을 곧이곧대로 실행하는 것은 위험하다는 생각에 거사를 진행하기로 했소.”
“이 무슨… 좋소, 그럼 일단 규 선배의 농장을 어떻게 하려는 거요?”
내 질문에, 천량이 아닌 홍국이 답하였다.
“관주사자님의 농장에는 분명 서휼님이 혈음계의 술법을 쓴 증거가 있습니다. 하지만 증거만 따로 떼어서 진룡맹 장로회에 제출하면, 혈음계 투영술의 특성상 영기의 파동에 의해 사라질 것입니다. 하여 저희는 이 일대를 전부 떼어서 장로회에 제출하기로 했습니다.”
“하! 규 선배가 지금 봉명주 최하층에 계신데, 봉명주로 이걸 가져간다고?”
그 말에 천량이 고개를 저었다.
“아니, 봉명주로 가져가지 않을 걸세. 규 선배의 농장은 호족(虎族)의 영역으로 이송될 것일세. 태호족이 주도하여 이번 일의 진상을 조사할 것이고, 진룡맹 장로회도 이번에는 호족 영역에서 열릴 것일세.”
“…!”
하필이면 용족과 사이가 제일 나쁜 호족의 영역에서 일을 거행한다.
“처음부터… 호족의 영향을 받았던 거요?”
“그건 아닐세. 반서파라는 이들이 생긴다는 걸 알고, 용족의 명예에 어떻게든 흠을 내고 싶어 하는 호족 쪽에서 접근해 왔지.”
“….”
즉, 그의 말대로라면 이건 더 이상 나만의 싸움이 아니었다.
호족과 용족 간의 정치 알력 다툼인 것이었다.
‘나쁠 건… 없나?’
생각해 보면 이번 일이 호족 쪽으로 넘어가는 것도 나쁘지만은 않았다.
용족과 사이가 나쁜 호족이라면, 어떻게든 용족에게 타격을 주기 위해, 서휼이 혈음계와 관련이 있다는 사실을 만들어 내기라도 할 터였으니 말이었다.
‘오히려 서휼을 더 확실하게 실각시킬 수 있는 기회다.’
하지만….
“…다 좋군. 하지만… 너무 무모하오…! 규 선배가 알아차리기라도 하시면 어쩌려고!”
“하하하! 우리 역시 정보통이 있다네. 관주사자께서는 이미 봉명주 최하층의 공간 균열 수리에 들어가셨고….”
“아니! 내가 규 선배의 옆에서 일하는데 왜 내 정보를 믿지 못하는 거요! 내일까진 기다려야 한다니까!”
“그렇기 때문에 믿기 힘든 걸세. 우리도 우리 나름대로 빠르게 일을 처리해야 할 필요가 있었네. 듣자 하니, 관주사자께서 공간 균열 수리를 한 번 들어가시면 그 집중력이 대단하시어 바깥 일은 아무것도 신경 쓰지 못하신다지?”
“…제길, 그 문제가 아니라….”
나는 지끈거리는 머리를 꾹꾹 누르며 한숨을 쉬었다.
‘젠장, 나도 모르겠군.’
“…마음대로 하시오. 단, 이미 일이 이리된 것, 최대한 빨리 농장을 호족 영역으로 나르시오!”
“안 그래도 그럴 참이었소. 재촉하지 마시오.”
나는 일을 이렇게 만들어 놓고도 태연한 표정을 짓고 있는 천량을 보며, 속에서 열불이 나는 걸 느꼈다.
“규 선배라면 어쩌면 지금쯤 눈치챘을 수도 있소, 지금 당신들 때문에 한시가 급하게 됐으니, 속전속결로 처리해야 하오!”
“….”
“뭘 하시오! 빨리 증거를 호족으로 옮기라니까!”
“….”
“왜들… 그렇게 조용하오?”
“…뒤, 뒤….”
나는, 순간 뒷골이 싸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서은현.”
그리고,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내가 천천히 고개를 돌리자, 그곳에는 작은 공간 균열이 나 있었다.
기껏해야 손바닥만 한 균열일까.
그러나 그 손바닥만 한 균열 사이로, 익숙한 황금빛 동공이 우리를 쳐다보고 있었다.
“방금… 도대체 무슨 말을 한 거냐?”
“….”
“그리고 지금 이 상황은 또 다 뭐고?”
“….”
“저들은 최근 반서파라며, 그이에게 노골적으로 험담을 하는 이들이 아니냐? 왜 저런 이들과 같이 있느냐? 내 농장은 또 뭐고? 호족으로 옮기라는 건 또 뭘 말하는 거냐?”
“….”
얼마간, 좌중에는 침묵이 맴돌았다.
그리고, 그 침묵의 틈새에서, 나는 이를 악물고 고함을 질렀다.
“뭐 해, 이 멍청한 새끼들아! 내 말 안 듣고 이미 저질렀으면 저지른 일이라도 제대로 하란 말이다! 옮겨!!!”
“흠!”
“헛!”
그제야 정신을 차린 반서파의 천인기 요족들이 흠칫 놀라며, 빠르게 요술을 사용해 규련의 농장을 호족 영역 방향으로 나르기 시작했다.
쿠구구구구!
그리고, 얼마간 얼이 빠져 있던 규련에게서 어마어마한 살기가 흘러나왔다.
[네놈들… 이게 지금 무슨 일인지… 똑똑히 해명해야 할 것이다…!]찌릿, 찌릿찌릿…!
나는 전신을 에는 듯한 살기를 흘려 내며, 있는 힘을 다해 그들이 옮기는 목화밭 위에 올라타, 나 역시 법술을 써 목화밭의 속도를 올렸다.
“전력을 다해 영기를 불어넣으시오! 곧 규 선배가 쫓아오실 거요!”
“아니, 규 선배께서는 사축기 수사가 아니시오? 아무리 사축기 대원만이시라지만, 현재 봉명주 안쪽에서 자신의 영지까지 공간 균열을 찢어 놓은 상태일 텐데, 그만한 거리를 격해 공간 균열을 내고 쫓아오시려면 상당히 시간이….”
“이 병신 같은 새끼들아! 규 선배는 이제 사축기 수사가 아니란 말이다!”
“뭣…!”
나는 뒤쪽에서 어마어마하게 불어나는 기운을 보며 다급하게 외쳤다.
“이미 천지합일(天地合一)을 시작하셔서, 합체기(合體期)로 도약하고 계시단 말이다!! 내가 왜 내일 거행하자고 했는지 아냔 말이야!? 규 선배님께서는 지금 공간 균열을 수리하며, 내일쯤 아예 최하층에서 폐관 수련에 들지 말지 알려 주겠다고 하셨기 때문이란 말이다!!!”
나는 내 말을 지지리도 듣지 않고 멍청하게 일을 그르친 이 요족들에게 고함을 질렀다.
“지금 쫓아오는 건 사축기 대원만이 아니다! 준(準) 합체기(合體期) 요왕(妖王)이란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