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Regressor’s Tale of Cultivation RAW novel - Chapter (213)
번갯불 (5)
찌이이잉―
무언가 기묘한 소리가 울렸다.
그러나 그 소리를 듣자마자 갑자기 의식이 폭주하며 폭발해 버릴 듯이 울렁였다.
‘멀다!’
흑룡처럼, 아니 어쩌면 흑룡보다도 더 머나먼 차원에 존재하는 존재이다.
그러나, 내가 지금까지 만났던 진선 급 존재들은 하나같이 분체이거나, 피 한 방울에 깃든 사념이었다.
하지만 머나먼 차원에 존재할지언정, 지금 이 자리에 강림한 것은 분명한 ‘본체’였다!
‘보, 보면 안 돼!’
나는 [그]를 만났을 때를 떠올리며 진선을 쳐다보지 않고 땅으로 고개를 숙인 채, 최대한 저 존재를 생각하는 것을 잊어버리려 노력했다.
하지만 직시하지 않고 생각을 멈췄음에도 불구하고 저 찌이잉거리는 소리가 내 뇌리를 마구 헤집는 것 같았다.
그리고 나는 눈앞의 금벽호를 보며 두 눈을 크게 떴다.
“…! 끄으으읍!”
“…!”
금벽호는 번개가 되어 가고 있었다.
비유적 표현이 아니라, 물리적으로 그는 두 눈부터 시작해서 몸 전체가 벼락이 되어 허공으로 흩어지는 중이었다.
하지만 그러는 와중에도 금벽호는 자신의 머리를 틀어쥐고 이를 악물고 있었다.
“드, 듣지 마라! 저, [저것]이 말을 하고 있다! 말을, 저 말을 들으면 안 돼!”
‘말…?’
이 찌이잉거리는 소리가 금벽호에게는 어떠한 ‘말’로 들리는 모양이었다.
어쩌면 금신천뢰문의 공법을 익힌 이만이 천뢰번을 보고 잡을 수 있듯이, 뇌도공법을 익힌 이에게만 들리는 ‘말’일 수도 있었다.
“말을! 아, 아니, 말 걸지 마! 나를 들여다보지 마! 제발! 흐아아아아!”
나는 온 힘을 다해 방금 봤던 진선의 ‘눈’을 떠올리지 않으려 애쓰며, 땅에 머리를 처박고 눈앞의 전송진의 문양 하나에 의식을 집중했다.
최대한 다른 것을 생각해야 한다!
최대한!
그와 동시에, 천뢰번 정려가 허공으로 떠오르기 시작했다.
츠츠츠츳!
어느 정도 허공으로 떠오른 천뢰번은, 어느 순간 빛을 발했다.
꽈과과광!
다음 순간.
천뢰번이 떠오른 자리, 그러니까 나와 금벽호의 중간 자리에 금빛의 뇌전이 떨어졌다.
나는 금색의 뇌전을 맞은 천뢰번에서, 무언가가 ‘풀려나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그와 동시에, 천뢰번에서 빛살이 뿜어지더니 빛살 속에서 뭔가가 나타났다.
“…?”
그것은 작은 발이었다.
사락….
뇌전으로 이뤄진 궁장의 끄트머리가 바닥에 닿았다.
그리고 궁장 안쪽으로 보이는 작고 하얀 맨발이 내 눈에 들어왔다.
동시에 고운 목소리가 사방으로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주인님, 저의 주인님. 드디어 저를 구하러 오셨나이까.]오싹, 오싹!
그 목소리를 듣자, 등 뒤로 소름이 오소소 돋았다.
[위대하신 분이시여, 저를 데려가소서.]벼락으로 이뤄진 궁장을 입은 존재가, 무릎을 꿇었다.
그 존재의 얼굴은 볼 수 없었지만, 새하얀 백색의 머리칼을 늘어뜨린 그 존재의 음성은 마치 이 세상의 것이 아닌 듯 기이했다.
무릎을 꿇은 존재가, 마치 기도하듯이 양손을 모은 채로 하늘을 향해 빌기 시작했다.
[당신에게 귀의하게 해 주소서. 당신에게 돌아가게 해 주소서. 당신에게 다시 저를 바치게 해 주소서….]‘그것’이 기도를 시작하자, 무시무시한 일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귀, 귀의….”
번개로 변해 흩어지고 있던 금벽호가, 갑자기 그것과 똑같은 자세로 무릎을 꿇고 양손을 깍지 낀 채 고개를 숙였다.
“귀의… 하나이다.”
그뿐이 아니었다.
의식으로 느껴진다.
천인도에 곳곳에서 같은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귀의하나이다….”
“귀의하나이다….”
“귀의하나이다….”
거리를 지나던 행인, 수도자들, 그들 모두가 경지를 가리지 않고 바닥에 주저앉아 기도하기 시작했다.
그와 동시에, 번개로 기화하던 모두의 몸체가 더더욱 빠른 속도로 번개 그 자체가 되더니 하늘로 올라가기 시작했다.
그들은 마치, 번개 그 자체가 되어 더더욱 위대한 존재에게 귀의하는 듯했다.
그때였다.
――――!
찌이잉거리는 소리가 다시 울렸다.
그와 동시에 새하얀 머리칼을 늘어뜨린 ‘그것’이 감격한 듯이 말했다.
[아아… 알겠나이다. 12만 년 동안 금신자의 후예들에게 착취당했던 원을 풀게 해 주시니, 명을 받잡아 따르나이다.]동시에 맨발의 ‘그것’은 하늘로 떠오르기 시작했다.
찌릿, 찌릿….
‘위험하다.’
이곳에 있으면 안 된다.
도망가야 한다.
하지만….
‘도망치면 저 존재에게 귀의당한다!’
이 자리에서 조금이라도 움직이면 나 역시 기이하게 번개로 변화하여 하늘로 흡수당할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내가 멀쩡할 수 있는 것은, 오직 내가 ‘정려’의 이름을 불러 준 것, 단지 그것 때문이라는 것이 느껴진다.
그리고, 하늘로 올라간 그것.
천뢰번 정려일 것으로 예상되는 존재의 목소리가 천인도 전역으로 울려 퍼졌다.
[나, 대천벌의 정화가 주(主)를 대리하여 천겁을 불러오노니….]쿠구구구구!
하늘에서 어마어마한 빛살이 모이는 것이 느껴졌다.
[지금부터, 심판을 시작하겠노라.]다음 순간.
파아아앗!
빛살이 천인도 전역을 메우며 인족 총연맹의 총본산을 산산이 조각내었다.
* * *
전명훈은 눈을 떴다.
“으윽, 여기는….”
분명 거리를 거닐고 있다, 갑자기 어둠 속으로 끌려갔다.
그 이후부터 기억이 끊겼다.
“내 동부?”
그러나 그는 이곳이 자신의 동부이자 수련실이라는 것을 알아채고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리고 그는 자신의 옆에서 금빛 장포를 입은 여인이 졸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소해…?”
그때, 금색 장포의 여인, 금소해가 눈을 떴다.
“아, 사제. 눈 떴어?”
“소해… 어떻게 된 거지?”
“어떻게 되기는 멍청아! 갑자기 떠난다고 해서 얼마나 놀랐는지 알아?”
“뭐?”
“아무리 악적(惡敵)한테 조종당하고 있어도 그렇지. 그렇게 망설임 없이 나를 내버려 두고 떠난다고 할 수 있어? 흐, 흐윽….”
금소해는 뭔가를 말하려던 듯했으나 말을 멈추고 눈물을 쏟으며 전명훈의 품에 안겨 울었다.
전명훈은 상황을 이해하진 못했지만, 멋쩍은 듯이 머리를 긁으며 말했다.
“무슨 일인지는 모르지만… 널 두고 떠날 수 있을 리 없잖아, 소해.”
“…그래. 좋아.”
“무슨 일이 있던 거야?”
“…일단 나가자, 나가 보면 알 거야.”
전명훈은 금소해와 함께 그의 동부에서 나왔다.
이윽고 그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금신천뢰문 곳곳이 폭격이라도 맞은 것처럼 무너져 있었다.
“이, 이게 대체….”
“너와 천뢰번을 노린 한 외부의 악적이 금신천뢰문을 습격했어. 너는 며칠간 그 악적에게 조종당해서 악적에게 협력했고.”
“그런….”
“지금 사존께서 천뢰번을 들고 악적을 처단하러 가셨어. 곧 돌아오실 거야.”
“그런 일이….”
잠시 당황하던 전명훈을 보며, 금소해가 진지하게 물었다.
“…너, 악적한테 조종당할 때 망설임 없이 나를, 그리고 금신천뢰문을 떠나겠다고 했어.”
“…내가 그랬다고?”
“그래. 그래서 한 가지 묻고 싶은 게 있어.”
그녀는 진지한 표정으로 전명훈과 눈을 마주쳤다.
“만약, 나중에 금신천뢰문에 어려운 일이 닥친다면, 우리가 감당할 수 없는 일이 닥친다면, 너는 본문을 떠날 거야?”
그녀의 말에 전명훈은 잠시 눈을 감고 금신천뢰문에서의 기억들을 떠올렸다.
“…그럴 리가 없잖아.”
“약속할 거지?”
“그래, 약속할게. 나 전명훈은 어떤 일이 있어도, 금신천뢰문을, 그리고 금소해를 배신하지 않을 거야.”
전명훈은 새끼손가락을 소해에게 건넸다.
“네 고향에서 약속하는 법이랬었나?”
“맞아.”
두 사람은 새끼손가락을 묶어 약속을 한 다음, 엄지손가락으로 도장을 찍었다.
“내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 여기에 있는데, 왜 배신하겠어. 지난번에 같이 도망치자고 한 것도 너무 답답해서 그냥 한번 해 본 말이야.”
전명훈은 금소해를 보며 믿음직해 보이기 위해 허리를 펴고 미소를 지었다.
“날 믿지?”
금소해는 그 말에 안심했다는 듯 입을 열었다.
그리고, 하늘이 노랗게 물들었다.
쩌어어어엉!
“…!”
천겁이 금신천뢰문에 내리쳤다.
아니, 천겁이 아니었다.
그것은 천겁이라기엔 너무나도 거대했고, 너무나도 악의로 뭉쳐 있었다.
쿠구구구궁!
수계의 대륙보다 조금 작은 뇌령도 위쪽.
그 위로, 어떠한 ‘눈’의 형상이 투영되며 뇌령도 전역에 번개의 비가 쏟아져 내리기 시작했다.
쿠구구구구!
소리가 사라진다.
색상이 사라진다.
눈앞에 남은 것은 오로지 새하얀 세상뿐.
금신천뢰문의 모든 이들이, 절대로 감당할 수 없는 천겁에 휘말리며 그들이 서 있는 대지째로 녹아서 아래로 떨어지기 시작했다.
모두가 녹아 버린다.
전명훈만을 제외하고.
“아, 안 돼…!”
전명훈의 자질은, 천겁을 맞는 와중에도 천겁마저 흡수하며 천겁의 위력에서 빗겨 가고 있었다.
천겁을 포함한 삼라만상 모든 번개에게 사랑받는 재능.
그것이 천상금뢰지체.
그러나 전명훈은 천겁을 맞으며 자신의 수행이 미친 듯이 널뛰는 도중에도 좋아할 수 없었다.
도리어 그는 공황 상태가 되었다.
눈앞에서, 자신의 연인이 산 채로 튀겨지고 있었다.
채 비명을 지를 틈도 없이!
“안 돼!”
전명훈은 절규하듯이 일단 금소해를 끌어안아 금소해에게 내리치는 천겁의 면적을 줄여 보고자 노력했다.
법술을 써서 천겁을 막으려고도 해 봤다.
하지만 대륙 전체를 뒤덮으며, 세상을 쪼갤 듯이 내리치는 천겁은 절대 막을 수 없다.
그의 품 안에서, 금소해는 죽어 갔다.
“안 돼, 안 돼, 안 돼! 죽지 마! 죽지 마!”
전명훈은 반쯤 정신이 나간 채로 금소해의 손을 잡고 외쳤다.
하지만 그가 품에 안은 사랑은 잿더미가 되어 가고 있었고, 전명훈이 할 수 있는 것은 그저 비참하게 부르짖는 것뿐이었다.
“안 돼! 안….”
그리고, 전명훈은 그의 품속에서 연인의 마지막 말을 전해 들었다.
“금신…천뢰문을….”
전명훈이 사랑했던 사람.
금벽호의 현손녀이자, 금신천뢰문의 촉망받는 인재 중 하나였던 금소해는, 바들바들 떨며 전명훈에게 마지막 말을 짜 냈다.
“떠나지… 말아… 줘….”
그것을 끝으로, 그녀는 점차 재가 되어 흩어지기 시작했다.
전명훈은 비명을 지르며 금소해를 움켜잡으려 했다.
그러나 소용없다.
그녀의 육신은 가루가 되어 흩날렸고, 전명훈은 남은 부분이나마 움켜잡으며 절규할 뿐.
그리고, 전명훈은 이 번개의 빗속에서 뭔가의 음성을 들었다.
속닥속닥속닥….
그것은 천겁의 음성이었다.
번개가 그에게 속삭이고 있었다.
―참회하라….
―귀의하라….
―참회하라….
뭘 참회하라는 걸까.
누구에게 귀의하라는 걸까.
그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고통과 절망 속에서 전명훈은 번개의 소리를 들으며 눈을 부릅떴다.
속닥속닥속닥….
그에게 속삭이는 번갯불의 ‘말’ 중. 뭔가가 그에게 정보를 주고 있었다.
“아… 아아….”
그는 천겁의 목소리를 들었다.
천겁을 흡수해 가며 천겁이 속삭이는 진실을 전해 들었다.
지금 갑자기 그의 일상을 빼앗은 존재, 진선(眞仙)에 대해서.
“아아아아…!”
전명훈은 절망했다.
자신에게 갑자기 모든 것을 빼앗아 간 저 존재가 어떤 존재인지를 깨달았다.
모든 것을 앗아 갔지만, 모든 것을 걸어도 절대 닿지 못한다.
그는, 무력하다.
번개를 통해 진선에 대해 전달받으며, 그는 동시에 진선의 시선을 받게 되었다.
진선의 악의에 찬 시선을 보며, 전명훈은 미쳤다.
분노와 절망 속에서, 고통과 저 위대한 존재의 시선 아래에서.
그는 정신이 나가 버려 울부짖었다.
“흐아아아아아!!!”
그리고, 마침내 영겁과도 같았던 천겁의 시간이 끝났다.
“…어?”
전명훈은 잿더미 위에서 눈을 떴다.
“…여긴….”
그는 퀭한 눈으로 주변을 둘러보았다.
“아, 그렇군.”
그는 마침내 깨달았다.
“꿈이 틀림없어. 하, 하하… 합체기 태수의 딸과 혼담이 오고 가니, 별 사실 같은 악몽을….”
그리고, 그는 자신의 손에서 뭔가를 발견했다.
“아….”
그것은 ‘손’이었다.
잔뜩 말라 비틀어져, 번개에 튀겨진 손!
전명훈은 그 손이 무엇인지 알 수 있었다.
“아, 아아… 아아아아!”
그리고 그는 마침내 이곳이 꿈속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것은 현실이었다.
“으아아아아아!”
덜덜덜덜….
그는 양손을 떨며, 자신의 손 위에 있는 말라 비틀어져 튀겨진 손을 내려다보며 울었다.
그것은 금소해의 손이었다.
그가 사랑했던 연인은, 전명훈이 꼭 쥐고 있던 손 한 짝만을 남긴 채 이 세상에서 소멸해 잿가루가 되어 버렸다.
“아, 아흐아… 아아아아악…!”
고통에 울부짖으며, 전명훈은 연인의 손을 가슴에 품고 눈에 핏발을 세웠다.
위대한 존재를 본 광기와 고통 속에서, 그는 새롭게 각성하였다.
“아, 그래… 알겠어….”
그는 한 가지를 확실하게 깨달을 수 있었다.
“내 명(命)이 뭔지, 알 것 같아….”
피눈물을 흘리며, 잿더미 속에서 일어난 전명훈은 하늘을 노려보았다.
“…복수… 복수할 거다. 이 분노를, 해갈해야만 해…!”
진선이 내린 천겁을 먹어치워, 삽시간에 결단기에서 선통후각으로 원영기, 천인기에 도달한 전명훈은 섬뜩하게 웃었다.
“방해하는 놈은… 모두 죽여 버려도 되겠지.”
그렇게, 벼락을 몰고 다니는 낙뢰자 전명훈은 잿더미 위에서 태어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