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Regressor’s Tale of Cultivation RAW novel - Chapter (222)
공연이 끝나고 (2)
“흐음….”
서휼은 무표정한 얼굴로 규백을 쳐다보았다.
그 모습은 마치 눈 앞의 규백을 관찰하는 것만 같았다.
“진심이라…. 전횡 장로도 마지막에 그 비슷한 말을 했던 것 같은데, 너도 비슷하군.”
저벅, 저벅….
서휼은 규백에게 다가갔다.
“정말, 내 진심이 보고 싶나?”
“당연하잖아?”
“…후회할 텐데.”
서휼은 표정이 없이 공허한 얼굴로, 손가락을 튕겼다.
따악!
그가 손가락을 튕기자, 내 몸을 압박하고 있던 유호덕의 문자가 서휼에게로 돌아갔다.
한 마디로, 서휼은 현재 내가 천뢰번의 주인과 연결되는 것보다도, 광한지약을 더더욱 위급하게 여겼다는 것이었다.
치직, 파지지지직!
나는 전신이 빠르게 번개로 화하는 걸 보면서, 서휼과 규백의 결말을 눈에 담았다.
우우우웅!
서휼의 주변.
사방(四方)으로 네 개의 축(軸)이 떠올랐다.
수(壽), 부(富), 강녕(康寧), 유호덕(攸好德).
네 개의 축은 서휼을 중심으로 네 개의 탑을 만들어 냈다.
‘음?’
마치, 원립을 보호하던 네 개의 보탑 법보와도 비슷한 그 모습에, 나는 눈을 찌푸렸다.
쿠구구구구!
그리고 원립의 보탑 법보가 결계를 펼쳐 원립을 보호했듯이, 서휼의 사축은 서로 연결되며 장막을 만들어 냈다.
“탁혼살목(濁魂煞目)의 주(呪).”
우우웅!
그리고, 서휼과 규백의 위쪽으로 시뻘건 눈알이 떠올라 사축의 위쪽에 천장을 만들어 냈다.
천장이 완성된 서휼의 장막은 눈 깜짝할 사이에 규백과 서휼을 뒤덮었다.
우우웅―
그와 동시에, 나는 저 안쪽에서 음산하고 역겨운, 그리고 형용할 수 없이 구역질이 나는 듯한 느낌을 느꼈다.
‘저건….’
마치, 서휼의 심상을 그대로 저 안쪽에 재현이라도 하는 것 같은 느낌!
김연의 형상은 평온한 모습으로 여전히 저 안쪽에 손을 뻗고 있었고, 광한지약도 문제없이 발동되고 있었다.
그러나 나는 어쩐지 불길한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어찌 보면 저것은 서휼의 밑천 중 하나다.
그 서휼이 최초로 얼굴에서 미소를 지우고 꺼낸 밑천 중 하나인데, 과연 어떻게 될까.
우우웅―
그때였다.
나는 만상인연도에서 기이한 느낌이 드는 것을 느꼈다.
‘왜지, 뭔가 또 있는 건가?’
그러나 나는 만상인연도를 관조하던 중 한 가지를 알아챘다.
‘저건…!’
서휼이 사용하는 탁혼살목의 주.
나는 저것이, 어째서인지 만상인연도와 굉장히 닮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렇군….’
오혜서가 나를 읽으며 보았다는 희뿌연 것은 높은 확률로 만상인연도일 터였다.
그녀가 나를 보며 ‘희뿌옇다’라고 표현할 만한 것은 그것밖에 없었으니까.
그렇다면 구태여 그녀가 내 만상인연도를 흔들어 보려 했던 이유는, 어쩌면 그녀가 읽고 있는 서휼 역시 나와 비슷한 공법을 익혔기에 어찌하면 서휼을 공략할 수 있을지 시험해 보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오혜서가 만상인연도를 사용하는 나를 완전히 읽을 수 없었다는 것은… 서휼 역시 완전히는 못 읽었다는 소리다.’
파직, 파지지지직….
나는 완전히 번개로 변해 기화하려는 몸을 다잡았다.
우우우웅!
선수 흑룡의 진혈에 담긴 힘이, 천뢰번의 주인에게 귀의하려는 나를 반대쪽에서 잡아당긴다.
파직, 파지지직!
죽을 때가 되어서야 알 수 있었다.
흑룡 진혈의 힘은 축복이나 강력한 힘 같은 것이 아니었다.
이것은 재액(災厄)이었다.
꿀럭, 꿀럭….
흑룡의 힘이, 나를 집어삼키려고 하고 있었다.
내가 번개로 변해서 귀의하는 것을 막아 준다거나 하는 친절한 것이 아니었다.
말 그대로, 먹잇감을 뺏기기 싫기에 나를 잡아당기는 것일 뿐.
막상 내가 천뢰번의 주인을 직시해서 전신이 뇌전화되는 이 상황에 처하지 않았다면, 나는 오히려 흑룡 진혈에 서서히 잡아먹혔으리라.
하지만 어쨌든 나는 양쪽에서 나를 잡아당기는 진선 급 존재들의 힘 사이에서 균형을 맞추며 몸의 형태를 다잡았다.
우득, 우드드득….
번개로 변해 가는 내 몸은, 반인반룡의 형체를 취하며 흑뢰(黑雷)를 뿜어냈다.
‘조금이라도 균형을 잃으면, 흑룡의 힘이나 번개의 힘이 바로 나를 잡아먹을 터다.’
꿈틀, 꿈틀….
나는 저물도에서 백홍주를 꺼내 마셨다.
무색유리검들이 나와 바로 연동된다.
‘흑룡의 힘….’
꿈틀, 꿈틀….
나는 만상인연도 사이로, 무언가 질척거리고 꿈틀거리는 태음(太陰)의 힘이 기어다니는 것을 발견했다.
꿀꺽….
식은땀이 흐른다.
느껴진다.
전신이 뇌전화되는 저주는 몰라도, 흑룡 진혈은 다음 생으로 이어진다!
왜냐하면, 흑룡의 힘이 내 역사(歷史)를 침식하는 것이 만상인연도를 통해 너무나도 여실히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뇌전화보다도 더 위험하다.’
정했다.
생의 마지막이 코앞이니, 정말로 마지막 순간에는 천뢰번의 주인의 힘에 전신을 정화하여, 흑룡의 힘을 떨쳐 내야 한다.
기나긴 역사를 쌓아온 회귀자인 나에게는, 흑룡의 힘이야말로 더더욱 큰 재액이다.
후우우―
나는 번개와 흑룡의 힘 사이에서 균형을 잡으며 주변에 떠오른 3천 개의 무색유리검 중 하나를 손에 쥐었다.
무색유리검은 근 백 년간 금단 속에서 연화된 덕에, 한 자루 한 자루가 청동검에서 동네 대장간에서 파는 철검 정도 수준으로 단단해지고 예리해져 있었다.
“무색유리검, 합(合).”
우우웅!
3천 개의 무색유리검이 각기 열 개씩 겹쳐졌다.
3백 개의 무색유리검은 하나하나가 싸구려 수준에서 상당히 좋은 철검 수준으로 올라갔다.
다시 무색유리검이 열 개씩 겹쳐진다.
30개의 무색유리검은 좋은 철검 수준에서 최상위 제련 기술로 만들어진 철검 수준이 되었다.
무색유리검은 다시금 겹쳐졌고, 3개의 무색유리검은 하나하나가 명검(名劍) 수준으로 단단해지고 예리해졌다.
그리고 마지막 3개의 무색유리검이 다시 합쳐졌다.
스스슷!
3개의 명검이 합쳐지자, 한 자루의 보검(寶劍)이 탄생했다.
무색유리검 최후 단계.
총천(總天).
보검 수준의 무색유리검에 법력을 주입하자, 3천 개의 회로가 작동하며 만상인연도로 인해 힘이 증폭되기 시작했다.
‘힘은 충분하다.’
남은 것은, 규백을 도와 서휼의 최후를 보러 갈 뿐.
무색유리검에 다시 무형검을 덧씌우며 다시 한번 무색유리검을 강화했다.
쩌엉!
무색유리검이 휘둘러지며 서휼의 장막이 흔들린다.
그러나 장막에는 흠집도 없었다.
‘계속.’
몇 번이고, 몇 번이고!
쿠웅, 쿵, 쿵!
나는 우공이산의 오의를 사용하며 점차 파괴력을 증폭시켰다.
천, 지, 심 세 가지의 힘을 섞은 나의 힘은 점차 올라가며, 사축기 수준에 이르기 시작했다.
쩌엉!
쩌엉!
쩌엉!
한 번 부딪칠 때마다 점차 울림은 커졌다.
그리고, 어느 순간 오혜서가 뿜었던 유리공작의 빛에 당했던 유화가 다시 일어났다.
그녀는 딱히 상황을 더 묻지 않았다.
대신 내가 서휼의 장막을 후려치는 것을 보며, 상황을 파악한 건지 말없이 연주를 시작했다.
쿠르르릉!
천뢰.
뇌겁(雷劫)과도 같은 소리가 그녀의 주변으로 울려 퍼지며, 서휼의 장막에 몇 번이나 내리꽂혔다.
나와 그녀의 일격이 몇 번이고 서휼의 장막에 꽂힌다.
하지만, 서휼의 장막은 흔들림이 커질지언정 금이 갈 기미도 보이지 않았다.
김연의 형상은 의식을 가지고 있지는 않는 것인지 그저 광한지약을 주재하고만 있었고, 나는 김연의 형상을 통해 규백과 서휼의 생존 여부를 파악하며 끊임없이 서휼의 장막을 후려쳤다.
얼마나 그러고 있었을까.
쿠구구구구구!
저 멀리서, 익숙한 성채가 날아왔다.
공간 도약이 아닌, 정식으로 봉명주 최상층의 입구를 때려 부수고 들어온 것이다.
괴군의 기묘성채가 마침내 이곳에 도착했다.
‘과연 괴군은 우리를 보며 어찌할까.’
당장 나를 잡아서 괴뢰 재료로 삼고 서휼은 따로 잡겠다고 할지도 몰랐다.
하지만 예상외로, 기묘성채는 당장 나를 공격하거나 하지 않았다.
대신, 안쪽에서 진중한 노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서휼의 사축장막인가. 오행이 아니라 다른 무언가로 기축을 쌓았군. 일반적인 사축기가 아니라, 합체기 수사의 고유 영역이라 해도 믿을 정도로 견고하군. 거기다가 안쪽에서 무언가로 인력(引力)을 강화해서, 저 장막의 견고함은 합체기 최정상이나 다름이 없다.”
나는 괴군의 목소리를 들으며 흠칫 놀랐다.
‘저 목소리는….’
괴군이, 제정신인 상태다.
어째서인지는 모르지만, 분명 괴군은 정신이 맑았다.
“조연 선배님. 부디 서휼을 잡는 데에 힘을 빌려주십시오.”
“그것도 좋겠지. 다만, 나는 내 제자를 보러 왔다.”
끼이이익….
기묘성채의 문이 열리며, [그녀]와 함께 괴군이 뒷짐을 지고 나타났다.
괴군은 김연의 형상을 보더니 눈가를 씰룩였다.
“흠, 본체가 아니군. 의식체만이 이곳에 와 있어. 그리고… 의식으로 법칙을 건드리는 건가? 도대체 뭘 하는 거지?”
괴군은 입맛을 다시며 말했다.
“왜 연이의 본체를 이곳에 데려다 놓지 않은 게냐.”
“조연 선배님께서 도착하시면 다시 연이를 잡아가실까 봐 연이의 본체는 숨겨 놓았습니다.”
“하하하, 좋구나. 좋은 판단이다.”
괴군은 껄껄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뭐… 그건 그렇고. 연이는 현재 의식으로 법칙을 건드리며, 뭔가를 관리하는 것 같은데…. 아니, 뭔가를 진행한다고 해야 하나? 지금 뭘 하는 거지? 상황을 설명해 보아라.”
나는 괴군에게 규백과 서휼.
그리고 광한지약과 김연에 대하여 간략하게 설명하였다.
“그렇군… 규련이라고 했나? 하하, 아마 살아 있었으면 나처럼 됐을 수도 있겠어.”
규련과 규백의 이야기를 들은 괴군은 규련에 대해 짧게 평하였다.
“…?”
내가 이해가 안 된다는 얼굴로 괴군을 쳐다보자, 괴군은 씹어뱉듯이 뇌까렸다.
“[그녀]가 이렇게 된 것은… 서휼이 판을 만들어 놓은 탓이었으니 나 역시 서휼에게 연인을 잃은 것이나 다름없다. 흐… 어찌 되었든 오늘은 복수를 하기에 최적의 날이기도 하겠구나. 서휼을 사랑하는 이에 의해서 몰락하는 서휼이라니….”
괴군은 비릿한 미소를 지으며 손을 들어 올렸다.
우우우웅―
27기에 달하는 합체기 급 괴뢰.
그리고 기묘성채 그 자체와 [그녀].
총 29기의 합체기 괴뢰들이 일제히 서휼의 장막을 향해 각자 포구를 들이밀었다.
“발포.”
괴군이 손을 내리자, 천지를 불사를 빛살이 서휼의 장막에 내리꽂혔다.
합체기 최정상 급의 방어력?
30여 기에 달하는 합체기 괴뢰들의 일제 사격 앞에서는 아무 소용도 없었다.
서휼의 장막은 순식간에 누더기가 되었다.
물론 합체기 최정상 급의 장막이라는 괴군의 분석답게, 누더기가 되어서도 구멍은 뚫리지 않았다.
하지만 괴군은 평온한 표정으로 손을 다시 한번 들었다 내리쳤다.
“2격.”
쩌어어어엉!
서휼의 장막이 있는 곳을 제외한 봉명주의 층 바닥 부분에 어마어마한 구멍이 파였다.
“3격.”
번쩍!
봉명주 4층의 바닥이 무너져 내려, 3층과 4층 사이에 구멍이 뚫렸다.
그리고 마침내.
서휼의 장막에 커다란 바람구멍이 뚫려 버렸다.
괴군은 뒷짐을 지고 말했다.
“구멍은 뚫어 줬으니, 서휼을 끌고 나오는 것 정도는 너희가 하거라.”
말만 보아서는 나와 유화에게 임무를 내린 것 같았지만, 나는 괴군이 나와 유화에게 복수의 기회를 주었다는 것을 깨닫고 그에게 감사를 표했다.
“기회를 주심에 감사드립니다.”
“시끄럽다, 어서 가라! 지금은 기묘성심전이 공명 중이어서 정신이 맑지만, 언제 다시 미쳐 버릴지 모르니 시간이 없다!”
“…예.”
우리는 장막 안쪽으로 들어갔다.
우우웅!
밖에서는 조그마한 장막이었지만, 안으로 들어오자 어마어마하게 거대한 공간이 펼쳐져 있었다.
‘사축기에 이르러 축을 세 개 이상 쌓으면… 합체기 때에 얻는 고유 영역의 기초가 되는 공간을 얻는다.’
그리고 그 공간 안쪽에선, 수사는 어마어마하게 강해지고 할 수 없었던 일도 할 수 있게 된다.
우웅―
저 멀리서, 광한지약의 기운이 나를 끌어들이는 것이 느껴졌다.
나는 서휼과 규련의 광한지약의 증인.
광한지약의 기운을 느낄 수 있었다.
장막의 안쪽은 역겨운 냄새가 진동하는 어둠의 공간이었다.
바깥에서는 장막에 커다란 바람구멍을 뚫었다 생각했으나, 어둠의 영역을 헤엄쳐 나가고 있자니, 우리가 들어온 구멍은 어느새 저 뒤쪽에서 작아져 있었다.
‘춥다….’
나는 이 공간의 느낌이 어쩐지 서휼의 심상 그 자체와 비슷하다고 느꼈다.
춥고, 더럽고, 끈적하고, 역겹고, 어둡다.
이곳에 자리하는 것만으로도 정신이 오염되는 기분이다.
수많은 사람들을 잡아먹었던 원립의 심상이 똥 밭이었다면, 서휼의 심상은 원자력 발전소가 폭발한 자리 같았다.
이곳에 오래 있으면, 서휼의 어둠에 물들어 미쳐 버릴 수도 있을 것 같았다.
파앗!
저 멀리, 희미한 황금빛이 보였다.
“규백…!”
그것은 규백이었다.
규백은 황금빛 빛살을 가슴에서 뿜으며 어둠의 한복판에 서 있었다.
“규백, 괜찮으십니까?”
나는 유화와 함께 그녀에게 날아가며 외쳤다.
그러나 규백은 답이 없었다.
나는 규백의 심상을 읽으며 침음성을 흘렸다.
상당한 충격을 받은 상태였다.
이 어둠 속에서 무엇을 본 것일까.
“규백…?”
그리고 그때.
저벅, 저벅….
어둠 속에서, 서휼이 걸어 나왔다.
무표정한 얼굴로 걸어 나온 서휼은 나를 보며 입을 열었다.
“괴군을 불러오셨군요, 서 도우. 하지만 문제없습니다. 괴군이 온다 할지라도 저는 충분히 도망칠 수 있습니다.”
“…규백에게 무슨 짓을 한 거지?”
“그녀가 원하던 것을 주었을 뿐입니다. 진심을 보여 달라기에, 저장해 놓았던 진심을 보여 주었을 뿐이지요.”
“….”
아무래도 서휼이 익힌 만상인연도와 비슷한 술법은, 기억이 아닌 감정을 저장해 놓는 류의 술법이었던 듯했다.
“자. 어떻나, 규백. 이래도 내가 그대에게 입맞춤을 해 주었으면 하나?”
서휼은 무표정한 얼굴로 규백에게 한 걸음 다가갔다.
흠칫!
규백은 서휼의 행동에 놀라 한 걸음 뒤로 물러섰다.
서휼은 텅 빈 얼굴로 말했다.
“…감정이란 참 재미있지 않습니까. 감정에 따라 제 진심을 받아들일 수 있을 것처럼 말하더니, 감정을 확인하고 나서는 오히려 무서워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는 규백을 쳐다보며 명령하듯 말했다.
“그 정도가 네 진심이다. 규백. 광한지약의 증인이 모였으니, 술자가 원한다면 다시 푸는 것도 가능하지. 광한지약을 해제해라, 규백. 내가 네게 진심을 주는 것 따위 말고도, 네가 풀려 하면 풀 수 있다는 것쯤은 알고 있다.”
“아, 아아….”
규백은 덜덜 떨리는 손으로 무언가 수결을 맺으려 했다.
그 모습에, 나는 우렁차게 외쳤다.
“안 됩니다, ‘규련’ 선배님!!!”
“…!”
그 말에 규백은 화들짝 놀란 얼굴로 나를 쳐다보았다.
“난… 나는….”
“서휼의 속내가 얼마나 구더기 같은지, 얼마나 오물 같은지는 잘 압니다. 그렇기에 규련 선배님께서 어떤 충격을 받으셨을지도 이해합니다.”
북향화인줄 알고 청혼했는데 알고 보니 원립이었다면 어떨까.
상상만 해도 정신이 혼미해지고 구토가 나온다.
아마 규련의 심정은, 그런 심정일 것이다.
“하지만! ‘규련’ 선배님께서는 서휼에게 복수하고 싶으신 게 아니었습니까!”
“…나는, 규련이 아니야.”
한참이나 약해진 규백은 서휼에게서 뒷걸음을 치며 말했다.
그녀는 서휼에게서 무엇을 본 것일까.
단순히 서휼의 심상을 본 것은 아닐 것이다.
아마 더더욱 깊숙한 것.
나조차도 보지 못했을, 더더욱 추악한 무언가를 본 것이 틀림없었다.
“얄궂군요. 서 도우. 감정은 저런 것입니다. 누군가를 좋아했다가도, 누군가의 다른 면모를 보면 확 스러져 버리는 것. 그것이 감정입니다. 객체에게 감정은 폐 안의 공기량. 그것만으로도 충분합니다. 그게 감정의 전부입니다.”
“아직도 폐는 금에 대응하니, 감정은 금속성이다 같은 논리를 펼치는 거냐.”
씹어뱉듯이 서휼에게 차갑게 말을 내뱉은 난 규백을 바라보았다.
나는 그녀가 뭘 봤는지 모른다. 그렇기에 규백을 이해할 수 없다.
하지만, 규련은 이해할 수 있다.
“분명, 당신은 규련 선배가 아닙니다. 독립된 개체니까요. 하지만 규련 선배의 의지가 형을 빚어 태어난 것이 바로 당신입니다. 단순한 찌꺼기가 아닌, 규련 선배가 가지고 있던 무수한 일면 중 하나가 바로 당신입니다!”
그렇기에 그녀는 분명 규련이기도 하다.
“한 가지 여쭤보겠습니다.”
“쓸데없기는.”
서휼이 나를 향해 손가락을 뻗었다.
공간 전체가 우그러지며, 막대한 인력이 나를 짓눌렀다.
그때, 유화가 나를 막아섰다.
“멈춰라, 백녕.”
그리고 공간의 인력이 옅어지며, 어둠 속에서 녹빛이 꿈틀거렸다.
서휼의 옆에서 백녕의 형상이 떠올랐다.
“…스승님….”
유화는 서휼에게서 나와 규백을 지켜 주며 백녕과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사제가 각기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나는 그 둘을 잠시 보다 규백의 눈을 바라보았다.
“규련 선배는, 서휼에게 받은 것을 돌려주고 싶어 했지요. 그렇기에, 당신은 규련에게서 태어난 첫날 ‘서휼을 죽여 버리겠다’고 한 게 아닙니까?”
“…맞아. 하지만….”
규백은 입을 떨며 머뭇거렸다.
나는 그런 그녀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서휼을 죽이기 힘들어진 것입니까?”
“…미안, 하다. 녀석의 진심을 확인한 순간… 나는 녀석의 진심을 받아낼 자신이… 없어졌다.”
“알겠습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면, 제게 맡겨 주실 수 있으십니까?”
“뭐…?”
“제 손에, 서휼에 대한 당신의 감정을 맡겨 주시겠습니까?”
“…할 수, 있는 거냐?”
“해내 보겠습니다.”
“…알겠어.”
규백은 천천히 내게 다가와 나를 안아 주었다.
나 역시 규백의 몸을 꼬옥 안아 주었다.
규백이 무언가 수결을 맺었다.
츠스스….
그녀의 가슴에서 뿜어지던 황금빛 사슬이 옅어졌다.
그녀는, 스스로 광한지약을 해제한 것이었다.
서휼에 대한 복수를, 서휼을 옭아맬 기회를 멍청하게 차 버린 것이 아니다.
나에게 그녀의 마음이 깃든 것이 느껴졌다.
“흐음? 이거 참. 허무하게도 끝나는군요.”
이윽고 규백의 몸은 차가워졌다.
심장이 없는 상태로, 합체기 준 요왕이었던 경험을 살려 기를 억지로 순환시키며 생을 연명했던 규백은, 그렇게 죽었다.
나 역시 흑룡과 뇌전의 힘 사이에서 버티고는 있다지만 얼마 있으면 완전히 잡아먹힐 터였다.
유화 역시 이 공간 안에서는 절대로 혼자서 서휼을 당해 낼 수 없다.
그렇다면 어찌해야 하는가.
죽기 전.
최후의 힘을 짜내, 서휼에게 일격을 먹인다.
스아아아아―
총천의 단계에 도달한 무색유리검이 총천연색으로 빛났고, 희뿌연 만상인연도가 서휼의 어둠 속에서 펼쳐졌다.
츠츠츠츳!
나는 뇌전으로 변화하는 육신을 관조하며 눈을 감았다.
김연에게 매일같이 의해은산을 사용하며, 나는 끊임없이 뇌전으로 변하는 육신에 대해, 그리고 무공에 대해 참오했다.
그리고 번개로 변해 흩어지는 육신을 보며, 뇌전은 무엇인가에 대해 참오하며, 뇌전에 대해 깨달았다.
‘지금부터….’
“귀의하나이다….”
단순히 귀의한다는 말로 진선을 불러올 수는 없다.
어쩌면 ‘시선’을 받을 수는 있겠지.
서휼도 시선을 받는 게 두려워서 나를 막아섰을 터겠고.
하지만, 나에게는 진선의 시선보다 두려운 것이 있다.
그렇기에 진선의 시선을 받는 것을 감수하고서, 그때 보았던 ‘눈’을 강하게 떠올리며 더더욱 빠르게 전신을 뇌전화시켰다.
파치지지지지직!
구현 3단계.
월도답천 너머의 단계에 달하면 공격의 속성이 천겁과도 같이 변화한다.
그렇다면.
이미 전신이 천겁으로 변화하는 도중인 내가 월도답천을 사용한다면, 그것은 ‘다음 단계’의 경지와 똑같은가?
정답은.
치지지지지직!
‘9할 이상 비슷하다!’
전신을 휘감은 번개와 답천의 무형검이 자연스럽게 합일하며, 번개의 색이 무색으로 물들었다.
쿠릉, 쿠르르릉!
번개의 본질은 찰나(刹那).
우리의 삶도 찰나.
그렇기에, 삶을 극대화한 월도답천의 너머는 천겁과도 비슷한 형질을 띄는 것이다.
더욱더 정확한 것은 내가 ‘정말로’ 다음 단계에 이르러야 알 수 있겠지만.
“문제를 내지.”
나는 히죽 웃으며 서휼에게 무색유리검을 겨눴다.
“지금부터.”
지금은, 이 정도만으로도 충분하다.
쿠르르릉―
“네게 추가될 천겁은, 총 몇 개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