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Regressor’s Tale of Cultivation RAW novel - Chapter (233)
검은 뱀 (10)
“어….”
전명훈은 지금의 상황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왜…?”
단지 멍청하게, 허공에다가 되물을 뿐이었다.
‘내가, 단약이라고?’
단약을 만들 때, 약성에 생명력을 축적시키기 위해 생명체의 생명력을 뽑아 쓴다는 말은 들은 적 있었다.
그리고 금소해에게 축기단 등의 단약을 만들 때 인간을 사용한다는 말도 들은 적 있었고.
―물론 본문에 들어와서 비승까지 함께 하려면, 축기기 정도는 축기단 없어도 도달할 수 있을 정도로 자질이 뛰어난 이들이 아니고선 불가능하기 때문에 딱히 축기단 같은 걸 먹은 이들은 많지 않아.
금소해가, 금신천뢰문에는 천영근자들이 수두룩하기 때문에 축기단 같은 걸 볼 일은 거의 없을 것이라고 말한 것도 기억났다.
전명훈 자신도 인간으로 만든 단약 같은, 야만적인 단약은 먹을 일 없으리라 생각했다.
‘그런데… 내가 단약?’
전명훈은 주변을 둘러보았다.
스승인 금진찬에게 잡혀 온 뇌옥의 내부.
―앞으로 13시진 후, 단약사가 보조 재료들을 전부 숙성시키면 너를 천상금뢰단(天上金雷團)으로 제련하는 과정이 시작될 것이다, 그 전까지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거라.
전명훈은 금진찬의 마지막 말에, 아직도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내가, 여기서 이렇게 죽는다고? 10년간 개처럼 칠성제만 지내다가?’
억울했다.
화도 났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무서웠다.
‘씨발…. 내가, 이렇게 죽는다고? 정말로?’
전명훈이 뇌옥 내부에서 머리를 감싸 쥔 채 굳은 표정을 지었다.
10년 동안 조금 기른 머리가 그의 손아귀 사이로 흘러내렸다.
‘빌어먹을… 도대체 왜 이렇게….’
그가 절망하고 있을 때였다.
그그극….
전명훈의 뒤쪽 벽.
그곳의 일부분이 갑자기 빠지기 시작했다.
그와 동시에 안쪽에서 금소해가 나타났다.
“…! 소해…!”
전명훈은 화들짝 놀라 자리에서 일어났다.
금소해는 눈을 찌푸리며 자신의 입에 손가락을 가져다 대었다.
“쉬잇! 조용히 해! 간수들 눈 피해서 어떻게 여기까지 왔는데… 조용히 하고 이쪽으로 와.”
전명훈은 침을 삼켰다.
바보라도 알 수 있었다.
금소해가 찾아온 지금만이 기회라는 것을.
그는 소리를 죽인 채 금소해에게 다가갔다.
“소해, 나, 날….”
“구해 주러 온 거 맞아. 제발 조용히 좀 해. 이쪽으로 와.”
얼마 후, 전명훈이 갇혀 있던 뇌옥 안쪽은 완전히 빈 공간이 되었다.
그리고, 비어 버린 뇌옥으로 금진찬이 걸어왔다.
“흠, 소해가 잘 해 주겠지.”
그리고 그 뒤쪽에서 홍수령이 걸어나오며 말했다.
“이제 금 원로는 다음 계획을 시작하러 출발하시지요.”
“알겠소. 홍 원로야말로 제시간에 문파 대진을 해제했다가, 녀석이 탈출에 성공하면 대진을 발동시키시오.”
“당연하죠.”
금진찬은 고개를 끄덕이며 잠시 전명훈이 나간 석벽을 쳐다본 후, 뇌옥 바깥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그는 뇌옥을 나가기 전 홍수령의 얼굴을 슬쩍 보며 물었다.
“그나저나 홍 원로는 최근 안색이 안 좋구려. 무슨 일이 있소?”
“흠, 재미없는 사실을 알아서 말이지요.”
“재미없는 사실이라, 최근 홍 원로와 서 장로 사이에 쌍수가 없다는 소문이 들리는데… 혹 서 장로의 하초에 무슨 문제라도….”
“하초를 잘라 버리기 전에 닥치시지요.”
“험험….”
홍수령의 표독스러운 한마디에, 금진찬은 헛기침을 하며 빠르게 뇌옥을 나섰다.
뇌옥 안쪽에서, 홍수령은 잠시 허공을 바라보다가 헛웃음을 흘렸다.
“시조님에게 금신천뢰문은… 당신의 후예들은 도대체 뭐였던 것이란 말인가….”
* * *
“소해, 정말 고마워. 정말로!”
뇌옥 건물에서 완전히 빠져나오자, 전명훈은 식은땀을 훔치며 금소해에게 감사를 표했다.
금소해는 작게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됐어. 지금 장로님들과 원로님들은 전부 단약사와 함께 회의 중이셔. 단약도 엄청난 단약인 만큼 원로님들은 물론이고 태상장문님까지도 전부 모여서 만들어야 하는 단약인가 봐. 그 덕분에 한 시진 정도는 원로, 장로님들이 공백이시니까….”
그녀는 전명훈을 비행법기가 모여 있는 곳으로 데리고 갔다.
금신천뢰문의 출전봉은 배 형태의 비행법기들이 잔뜩 정박되어 있는 곳이었다.
그녀는 출전봉에 정박된 비행법기 중, 금신천뢰문의 제자 5백 명을 동시에 태울 수 있는 소형 함선 형태의 비행법기에 법력을 불어넣었다.
“타. 초장거리 이동용 법기야. 법기 자체에 걸려 있는 비둔술 덕분에 수천 리도 무리없이 주파할 수 있어. 이걸 타고 뇌령도를 떠나.”
“…고마워. 그런데… 같이 안 가는 거야?”
“내가 남아서 문주님한테 네가 금신천뢰문 인근에 숨어 있다고 거짓을 고할게. 그럼 시간은 벌 수 있겠지.”
전명훈은 금소해를 바라보며 물었다.
“소해… 왜 나한테 이렇게까지?”
“…알 거 없어. 시끄러우니까 빨리 올라타.”
금소해는 귀찮다는 표정으로 전명훈을 함선 법기에 태웠다.
결단 초기인 금소해가 작정하고 전명훈을 태우자, 전명훈은 저항할 수 없었다.
“잠깐, 난 조종하는 법을 모르는데….”
그리고 전명훈이 걱정할 때였다.
츠츠츠츳!
거대한 그림자가 전명훈의 뒤쪽에서 치솟아 올랐다.
“너는… 홍범?”
거대한 검은 지네, 홍범이었다.
쿠구구구!
전명훈은 홍범에게서 느껴지는 영기의 파동과 의식의 크기를 보며 기함했다.
“잠깐, 너…! 벌써 결단기에 도달한 거냐?”
[아직도 기껏해야 금소해 님과 같은 결단 초기일 뿐입니다. 전명훈 님께서 칠성제 때에 천거를 겪지만 않았어도 능히 저를 뛰어넘으셨겠지요.]“…정말 엄청난 재능이구나, 너는… 그나저나 넌 왜 온 거지?”
[함선을 대신 조종해 드리러 왔습니다.]“네, 네가? 비행법기를 조종할 줄 안다는 말이냐? 어떻게?”
[주인님께서 함선을 조종하는 법을 가르쳐 주셨습니다.]“허어….”
전명훈은 탄성을 터트리려다가 문득 의문이 들었다.
“잠깐, 네가 장로님의 애완 요수라면… 너는 네 주인이란 분에게 종속된 게 아니냐? 그럼 네가 나와 함께 움직이면….”
그는 의심의 눈초리로 홍범을 바라보았고, 홍범은 차분하게 설명을 하기 시작했다.
[제 주인님께서는 명훈 님의 탈출을 지지하십니다. 애당초 천상금뢰지체 같은 인재가 천거 조금 겪었다고 단약이 되는 걸 원치 않으시는 분이시지요. 장로님 말고도, 금신천뢰문의 원로분들 중 몇몇 분들 역시 그런 입장이십니다.]“뭣…!”
[영원히 도망치시지는 않으셔도 됩니다. 전명훈 님께서 몇 주 정도만 도망치시면, 그 이후에는 전명훈 님을 지지하는 원로와 장로진들께서 전명훈 님을 다시 구조하러 가실 것이니까요.]홍범의 설명에 전명훈은 그제야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었다.
“…의심해서 미안하다. 그리고, 너 역시 고맙다.”
[그저 장로님들의 명령이었을 뿐입니다.]홍범은 말을 하며, 자신의 몸을 줄였다.
홍범의 거체가 줄어들며 전명훈이 탄 함성의 키를 잡았다.
“그럼, 전명훈.”
금소해는 팔짱을 낀 채로 전명훈을 바라보며 말했다.
“나중에 건강하게 보자.”
“…고마워, 소해.”
그는 입술을 악물었다.
‘내 자신이 부끄러워지는군.’
여태껏 금소해를 ‘공략할 대상’ 내지는 ‘미래의 쌍수 상대’로 여기고 계속 껄떡대기만 했던 그였다.
거기에 문파의 또 다른 여제자들에게로 틈만 나면 눈을 돌려 댔었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 전명훈은 스스로에게 다짐했다.
‘만약, 내가 무사히 금신천뢰문을 벗어나고, 내가 다시 무사히 이곳으로 돌아오게 된다면… 그때는 오직 금소해만 바라볼 것이다.’
그리고, 홍범의 조종에 의해 비행법기가 하늘로 날아올랐다.
별들이 무수히 떠오른 광한계의 밤하늘 아래.
전명훈이 탄 함선은 금신천뢰문의 대진을 유유히 통과해 날아갔다.
전명훈은 금신천뢰문을 돌아보며 생각했다.
‘반드시 다시 돌아오고 말리라…!’
그리고, 금소해는 떠나가며 손을 흔드는 전명훈을 바라보았다.
그녀의 입에서 한숨이 튀어나왔다.
“하… 저 머저리 같은 놈….”
지난 10년간 많이 친해졌다지만, 금소해는 전명훈을 전혀 이성으로 보고 있지 않았다.
그저 머리가 많이 안 좋은, 지켜 줘야 할 동생 같은 느낌으로만 보는 것이 금소해의 시선이었다.
“아니, 함선을 타고 나가면서도 문파 대진이 발동 안 하는 게 이상하지도 않나? 으휴….”
그녀는 한참은 멀어진 전명훈의 함선을 보며 혀를 찼다.
그리고 그런 그녀의 옆으로, 백의를 입은 한 명의 남성이 내려앉았다.
“너무 추궁하지 마시지요, 아가씨.”
“어머, 서 장로님?”
그녀는 얼굴을 붉히며 그녀의 옆에 다가온 ‘서 장로’, 서은현을 바라보았다.
‘홍 언니 원로님도 참 부럽지. 전명훈 같은 놈이 아니라 서 장로님 같은 분이랑 도려가 되다니….’
서은현은 잠시 전명훈이 사라진 곳을 쳐다보며 웃었다.
“그럼 이제 전명훈이 출발했으니, 대진(大陣)을 발동시켜 볼까요?”
“네, 고조부님께 말씀드리러 가 볼게요.”
금소해는 비둔술을 써서 금벽호가 머무는 금뢰전으로 날아갔고, 서은현은 출전봉 위에 서서 작게 미소를 지었다.
‘네놈은 정말 복 받은 거다, 전명훈.’
* * *
휘이이이―
전명훈은 밤하늘을 바라보며 한숨을 쉬었다.
“젠장할….”
모든 게 전부 완벽하리라고 여겼던 것이 다 틀어지기에, 10년은 너무나도 짧은 시간이었다.
10년 동안 죽도록 하늘을 부르짖어도 하늘은 그를 허락하지 않았다.
금소해와 쌍수를 맺을 수 있을 것이란 그의 기대도 무참히 깨어졌고, 문파의 어른들 역시 전명훈이 천거를 극복하지 못하는 걸 보고 점차 그에게서 관심을 돌리기 일쑤였다.
특히나 성질이 폭급한 금벽호가 그에게 찾아와서 그를 욕하고 갔다는 것은 유명한 일화였다.
―서은현은 손을 뻗자마자 어찌어찌해서 천거를 바로 뚫었다는데, 너는 못 하느냐?
―왜 못하느냐? 너는 천상금뢰지체다! 네가 서은현이 할 수 있는 걸 못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야! 상상도 못 할 둔재가 아닌 이상 그 정도는 해내야지!
―나와 내 벗들인 허곽과 청문선우는 연기기 때 축기기 급 법술도 충분히 사용할 수 있었단 말이다! 서은현도 하는데 왜 너는 못한단 말이냐!
―빌어먹을! 이따위 둔재에게 시간을 뺏기다니! 이 무슨 시간 낭비란 말인가! 으아아아아아!
특히나 아래로 여겨 왔던 서은현과 직접적으로 그를 비교하며, 격노를 내뿜었던 그 때의 기억은 금신천뢰문에서 있었던 최악의 기억이었다.
‘젠장할….’
금벽호와 있었던 일을 생각하자, 전명훈은 금신천뢰문에 있었던 얼마 없는 정마저 우수수 떨어지는 기분이었다.
“…정말, 너와 금소해, 그리고 몇몇 친구들만 아니었으면 진즉 나가 버렸을 문파였는데, 괜스레 남아 있어서 화를 당하는구나. 생각해 보면 태상문주부터 시작해서 늘 내게 분노와 한심함만 표출해 댔지.”
전명훈은 사람 몸통만 한 크기로 줄어들어 키를 잡고 함선을 운용하는 홍범을 보며 말했다.
홍범은 덤덤하게 대답했다.
[애정의 반대는 분노와 증오가 아닌, 무관심이라는 말이 있지요. 전명훈님께 보인 분노는, 원로진 분들께서 그만큼 전명훈 님을 놓고 싶지 않아 한다는 반증이 아니겠습니까?]“흥, 웃기는군. 그 분노마저도 처음에는 잔뜩 뿜어내다가 안 되니까 아예 관심을 거두지 않았느냐? 봐라, 내 스승조차도 한참 동안 나를 찾아오지 않았다가 단약 같은 걸 만든다 하니 이제야 나를 찾아와서 뇌옥에 가둬두는 것 말고 언제 나를….”
쿠르르릉!
전명훈이 홍범을 향해 분노를 토로할 때였다.
우르르르릉!
어마어마한 우레 소리가 울리며, 전명훈의 뒤쪽에서 거대한 뇌성벽력이 울렸다.
전명훈은 화들짝 놀라 뒤를 바라보았다.
무언가 싯누런 번개 같은 것이, 구름을 따라 그들이 탄 함선을 쫓아오고 있었다.
“호, 홍범!”
[위로 올라가겠습니다. 꽉 잡으십시오.]부우우웅!
홍범이 조종간을 움직였고, 그들이 탄 함선이 위쪽으로 올라가기 시작했다.
푸확!
전명훈과 홍범이 탄 함선 법기가 구름을 뚫고 올라갔다.
그리고, 그들을 쫓아오던 싯누런 무언가 역시 하늘로 떠올랐다.
쿠구구구구!
“아, 스, 스승님…!?”
그것은 거대한 금진찬의 모습이었다.
콰지지지직!
싯누런 번개들이 뭉쳐 이뤄진 거체(巨體)가 모습을 드러냈다.
마치 번개의 폭풍이 거인의 형태로 변화한 듯한 모습!
“호, 홍범! 스, 스승님이 쫓아왔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천인기 급의 힘은 느껴지지 않습니다. 아마 의식을 분리하여 신외화신의 술로 법술을 담아 보내신 것 같군요. 기껏해야 천인기 잔혼 정도의 힘일 뿐입니다.]“처, 천인기 잔혼이면 어느 정도란 말이냐! 네가 상대할 수 있느냐?”
[그러니까… 보통 천인기 수사의 잔혼은 결단 후기에서 대원만 즈음이라 하지요.]홍범은 태연하게 말했다.
[당연히 제가 붙으면 홍범 튀김이 된답니다.]그와 동시에, 금진찬의 모습을 한 번개의 거인이 함선을 향해 손가락을 뻗었다.
쿠구구구구!
어마어마한 뇌전의 힘이 몰리며 함선을 향해 쏘아졌다.
콰르르릉!
구름이 그대로 뜯겨져 나가며, 일대에 폭풍이 몰아쳤다.
전명훈은 비명을 지르며 함선의 난간을 붙잡았다.
“흐아아아아! 빠, 빨리 도망쳐다오! 제발!”
[예!]부우우웅!
그와 동시에 함선의 속도 역시 높아져 갔다.
그러나 금진찬의 신외화신 역시 빠른 속도로 그들을 쫓아오기 시작했다.
쿠릉, 쿠릉, 쿠르릉!
“흐아아아아!”
전명훈은 그들을 향해 쏘아지는 뇌전 줄기에 혼비백산하며 난간을 붙잡고 덜덜 떨었다.
우르릉!
그리고, 그 와중 뇌전 줄기의 일부가 전명훈을 향해 떨어졌다.
전명훈은 그 뇌전을 바라보며 비명을 질렀다.
“흐아아아아! 살려…어?”
파직, 파지직….
하지만 예상외로 아프지 않자 전명훈은 의아한 표정이 되었다.
뇌전 줄기는 자연스럽게 전명훈의 몸으로 흡수되었고, 그는 그의 체내에 있는 뇌전들이 법력으로 바뀌는 걸 보며 탄성을 질렀다.
“호오… 이거….”
그리고, 그를 지켜본 홍범이 말했다.
[전명훈 님, 전명훈 님은 뇌전에 면역이라 하셔도 이 배는 그렇지 않습니다. 방금 전 같은 상황이 일면 곤란하니, 후미에 가셔서 신외화신의 공격을 막아 주십시오.]“음…! 알겠다!”
조그마한 뇌전 줄기는 크게 영향이 없다는 걸 알아챈 전명훈의 얼굴에 자신감이 솟구쳤다.
그는 후미로 달려가 적뢰공을 끌어올렸다.
동시에 전명훈은 자신의 가슴 속에 있는 분노 역시 동시에 끓어올렸다.
파지지직!
전명훈의 주변으로 붉은 뇌전이 넘실거렸다.
“타아아앗!”
그가 결인을 맺자, 붉은 뇌전 줄기가 배를 향해 날아오는 뇌전의 잔재와 부딪혔다.
금진찬의 신외화신이 쏘아 대는 조그마한 뇌전 줄기의 잔재들은 전명훈의 적뢰공에 전부 상쇄되어 스러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신외화신이 쏘아 대는 뇌전의 잔재라 할지라도, 신외화신은 결단기 대원만의 실력이었고, 전명훈은 고작해야 연기기 6성이었다.
콰지지직!
“크윽….”
순식간에 전명훈의 법력이 닳아 버렸다.
하지만 전명훈은 이를 악물고 손을 뻗었다.
“와라!”
콰지지지직!
신외화신이 쏘아 대는 뇌전 줄기 중 하나가, 함선에 직격했다.
하지만 함선은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전명훈이 손을 뻗고 있었다.
그의 손 안쪽으로, 뇌전이 모조리 빨려들어가고 있던 것이었다.
파지지직!
순식간에 전명훈의 법력이 다시 차올랐고, 전명훈은 끝없이 붉은 뇌전을 뿜어 댔다.
쿠르르릉!
그리고 전명훈이 자신의 공격을 막는 것이 거슬렸는지, 금진찬의 신외화신이 더더욱 빠른 속도로 그들을 쫓아오기 시작했다.
“그, 그래!”
피이이이잇!
함선이 둔광에 휩싸이며, 전명훈은 어마어마한 빛살 속에서 앞으로 나아가기 시작했다.
‘제길, 구역질이 다 나는군.’
하지만 전명훈은 홍범의 조언대로 절대 적뢰공을 해제하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금진찬의 신외화신이 더더욱 가까운 곳에서 그를 쫓아오고 있었다.
거대한 뇌전의 거인의 얼굴이, 함선의 후미와 겨우 3장 거리밖에 되지 않는 곳까지 다가와서 뇌전을 쏘아 대고 있었다.
콰지지지직!
전명훈은 끊임없이 뇌전을 먹어치우고, 방출했다.
그 모습은 마치 빠르게 나아가는 함선의 후미에서 붉은 벼락이 뿜어지는 듯한 모습이었다.
“크으윽! 제기랄! 제자를 좀 내버려 두시지요! 홍범, 언제까지 이래야 하는 거냐!?”
[얼마 후면 뇌령도의 결계에 도착합니다. 결계만 넘으면 신외화신도 계속 쫓기는 힘들 겁니다!]“그래!”
콰지지직!
전명훈은 적뢰공을 계속 유지하고 있자니 토할 것 같았으나, 이를 악물고 참았다.
‘드디어…!’
그리고, 전명훈은 함선이 뇌령도의 끝자락에 도착한 것을 보고 눈을 빛냈다.
이제, 저 너머의 장막만 건너면 끝이었다.
[조금만 더 참으십시오!]“그래…!”
그리고, 그때였다.
[노오오옴!!!]쿠르르르릉!
전명훈과 홍범이 향하던 뇌령도의 끝자락에서, 또 다른 번개의 거인이 나타났다.
[감히 어딜 가려는 게냐!!!]그것은, 부문주 진휘의 형상이었다.
[네 이놈, 감히 사문을 벗어나 도망치려 해!]콰르르르릉!
어마어마한 수준의 낙뢰가 함선을 덮쳐 왔다.
[명훈 님!]다급하게 홍범의 음성이 들려왔고, 전명훈은 그를 향해 꾸역꾸역 덮쳐 오는 뇌전을 받아냈다.
‘모, 몸이 터질 것 같아!’
전명훈의 육신은 뇌전을 먹어치워 힘으로 돌렸지만, 그것도 어느 정도였다.
그의 한계 이상으로 뇌전을 주입한다면 법력이 한도까지 차올라 폭발할 수도 있었다.
그리고, 전명훈은 단전이 폭발할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이렇게… 죽는 건….’
그때였다.
홍범의 음성이 전명훈의 뇌리를 울렸다.
[방출하십시오! 적뢰공을 운용하시며 힘을 무작정 방출하셔야 합니다!]“…!”
전명훈은 이를 악물고 홍범의 지시에 따랐다.
그와 동시에, 붉은 벼락이 전명훈의 전신에서 뿜어졌다.
“흐아아아아아!”
일순간, 거대한 뇌전이 전명훈의 몸에서 뿜어졌다.
일대가 붉은 뇌전으로 뒤덮였고, 그곳에서 홍범과 전명훈이 탄 함선이 빠져나왔다.
[계속 적뢰공을 운용하십시오! 멈추시면 안됩니다, 아직도 금진찬 님께서 쫓아오고 계십니다!]“그, 그래!”
전명훈은 혼이 나갈 것 같은 얼굴로 말했다.
그가 덜덜 떨리는 손으로 뒤쪽에서 쫓아오는 금진찬을 향해 적뢰공의 벼락을 쏘아 댔다.
[뇌령도의 결계에는 동서남북, 네 군데에 결계가 약한 부분이 있어 그곳으로 나가야 합니다. 방금 동쪽에서 진휘 님을 만나 막혔으니, 이번에는 북쪽 끝으로 향해 뇌령도를 빠져나가겠습니다! 더 빨리 갈 터이니, 조금만 더 참아 주십시오!]“그래…!”
* * *
쿠릉, 쿠르릉!
전명훈이 빠져나간 뇌령도의 동쪽 끝.
그곳에는 전명훈이 방출해 놓은 붉은 뇌전들이 사라지지 않고 한가득 남아 있었다.
마치, 누군가가 일부러 뇌전을 잡아 놓은 듯한 모습이었다.
그리고 뇌전의 위쪽에서, 진휘의 신외화신이 결인을 맺었다.
[각항저방심미기.]쿠구구구!
그와 동시에, 전명훈이 내뿜은 뇌전이 붉은 기둥으로 화하며 뇌령도의 동쪽 끝에 내리꽂혔다.
동쪽 끝에 내리꽂힌 붉은 기둥으로부터, 전명훈이 적뢰공을 쓰며 날아간 북쪽으로 희미한 붉은 길 같은 것이 떠올랐다.
* * *
북쪽 끝.
[네 이놈, 전명훈! 어찌 사문을 버리고 도망치려는 게냐!]“제길, 당신들이 나를 단약으로 만들려 하는 게 아니었나!?”
전명훈은 북쪽 끝에서 자신을 막은 원로를 보며 소리를 질렀다.
콰르르릉!
또다시 어마어마한 뇌전이 전명훈에게 쏘아지며 전명훈을 튀겼다.
[그조차도 사문이 정했다면 받아들여야 하느니라!]“말도 안 되는 소리!”
콰지지지직!
전명훈은 그에게 쏘아진 뇌전들을 배가 터질 때까지 들이마신 후, 홍범의 조언대로 적뢰공으로 방출했다.
[명훈 님, 북쪽 끝도 막혔으니 서쪽 끝으로 가겠습니다!]“그래!”
홍범은 전명훈을 태운 함선을 조종하여 다시 움직였다.
그리고, 북쪽 끝에 나타난 원로의 신외화신은 또다시 전명훈이 방출한 붉은 뇌전을 모아 붉은 기둥을 만들었다.
쿠우웅!
붉은 기둥이 뇌령도의 북쪽 끝에 꽂혔다.
동시에, 붉은 기둥이 있는 곳으로, 뇌령도의 동쪽 끝에서부터 출발한 붉은 길이 도착했다.
[두우여허위실벽.]북쪽 끝을 지키던 원로가 주언을 외자, 동쪽 끝에서 도착한 붉은 길이 북쪽 끝 기둥과 이어졌고, 원로가 손을 뻗자, 북쪽 끝 기둥에서부터 더더욱 진한 붉은 길이 뻗어 나와, 적뢰공을 사용하는 전명훈이 도망친 곳으로 길이 뻗어 나갔다.
* * *
서쪽 끝도 마찬가지였다.
“제길! 홍범, 동쪽, 북쪽, 서쪽도 다 막혔잖냐!!”
전명훈은 악을 쓰며, 서쪽 끝을 지키는 원로가 쏘아 낸 뇌전을 적뢰공으로 방출한 후 홍범을 향해 소리쳤다.
[죄송합니다…. 남쪽, 남쪽까지만 가 보겠습니다!]“개소리하지 마라! 거기도 10할 확률로 막혀있을 게 뻔하지 않냐! 다른 탈출 방법을 생각해 봐야….”
콰르르릉!
전명훈이 다른 곳으로 갈 기미를 보일 때였다.
금진찬이 전명훈을 향해 뇌도법술이 아닌 다른 속성의 법술을 마구 쏘아 내기 시작했다.
전명훈은 식겁하며 소리쳤다.
“일단! 일단 어디라도 가라! 어디라도!!!”
홍범이 조종하는 함선이 남쪽으로 향하기 시작했다.
그들을 쫓아가는 금진찬은 서쪽을 지키는 원로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부우우웅!
북쪽에서부터 이어진 붉은 길이 서쪽에 도달했다.
[규루유묘필자참.]쿠구구구!
서쪽 끝에도 붉은 기둥이 생겨나 대지에 박혔다.
그리고, 서쪽 끝의 기둥으로부터 지금까지와는 차원이 다른 붉은 빛살이 뿜어지며 전명훈을 쫓아갔다.
* * *
“…이봐, 홍범.”
[예, 명훈 님.]“저기, 뒤쪽에서 스승님의 분신 말고도 뭐가 더 쫓아오는데?”
전명훈은 불길한 느낌에 홍범을 보며 말했다.
그들이 탄 함선 바로 뒤에서는 금진찬의 신외화신이 쫓아오고 있었고, 금진찬의 뒤쪽으로 붉은 ‘길’ 같은 것이 만들어지며 전명훈과 홍범이 탄 함선을 추격해 오고 있었다.
홍범은 흘긋 뒤를 보며 말했다.
[용맥(龍脈)이로군요. 걱정하지 마시지요, 용맥을 다루는 류의 법술은 사용하려면 굉장히 오랜 시간의 준비 기간이 필요합니다. 사축기, 그것도 용맥을 다루는 데에 굉장히 정통한 사축기 수사가 아니라면 단시간에 용맥으로 뭔가를 할 수는 없습니다.]“그, 그런데 저 용맥이 날 쫓아오고 있잖아! 어떻게 된 거야!”
[으음, 그건 저도 잘….]“씨발! 이러다 나 단약 된다고! 어떻게 좀 해 봐!!!”
전명훈은 공포에 질려 홍범에게 마구 악을 써 댔고, 홍범은 담담하게 함선을 조종할 뿐이었다.
그리고 마침내, 전명훈과 홍범이 탄 함선이 뇌령도의 남쪽 끝에 도달했다.
그리고 전명훈은 완전히 절망한 얼굴이 되었다.
남쪽 끝.
그곳에서는, 그의 스승인 금진찬의 본체가 기다리고 있었다.
“명훈아, 어디를 그렇게 가느냐.”
전명훈이 무어라 할 새도 없이, 거대한 낙뢰가 전명훈에게 꽂혔다.
쿠르르릉!
빛의 기둥과도 같았다.
전명훈은 빛의 기둥 속에서, 배가 터져라 뇌전을 흡수하고, 다시 적뢰공으로 방출하며 겨우겨우 견뎌 냈다.
“왜 그리 사문을 도망치려 하는 것이야.”
“당… 연… 히…!”
전명훈의 눈에 핏발이 섰다.
뇌전을 먹어치우고 힘으로 바꾸기를 얼마나 반복했을까.
전명훈은 마치 붉은 벼락의 정령과도 같은 형태를 취하고 있었다.
“죽기… 싫어서…입니다…!”
콰르르르릉!
전명훈의 붉은 번개가, 금진찬의 뇌전을 떨쳐 냈다.
금진찬은 전명훈의 붉은 벼락에 손을 뻗었다.
허공으로 방출된 전명훈의 벼락이 금진찬의 손으로 모여들었다.
금진찬은 벼락을 기둥의 형태로 빚어내며 물었다.
“만약 죽이려 한 게 아니라면, 너는 본문에 계속 있을 것인가?”
어쩐지 금진찬의 얼굴에는 일말의 미안함이 깃들어 있었으나, 눈이 반쯤 돌아간 전명훈은 크게 소리쳤다.
“당연히 이딴 개 같은 문파, 바로 탈출해 버릴 겁니다! 지난 10년간! 나를 무시하고, 멸시하고, 둔재 취급한 곳이 아닙니까? 나를 죽이려 한 게 아니더라도 이딴 곳에는 더 발붙이고 싶은 생각 따위는….”
콰지지지직!
전명훈이 악을 쓰며 붉은 뇌전을 뿜어 댔다.
“더 없습니다!!!”
쿠르르릉!
그와 동시에, 전명훈을 따라오던 붉은 용맥의 길이 마침내 금진찬의 밑까지 따라왔다.
금진찬은 붉은 기둥을 대지에 박았다.
“…정귀유성장익진.”
쿠구구구구!
전명훈은 흠칫 몸을 떨었다.
뇌령도의 공기가 바뀌었다.
그리고, 뇌령도 곳곳에 붉은빛이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홍범, 종문으로 돌아가라.”
[예.]금진찬의 명령에, 홍범은 함선을 돌렸다.
너무나도 자연스러운 그 모습에, 전명훈은 소스라치게 놀랐다.
“자, 잠깐! 뭘 하려는 거냐, 홍범!!!”
부우우우웅!
홍범은 말없이 함선을 조종했고, 어느새 번개의 속도로 금진찬이 전명훈의 옆에 내려앉았다.
전명훈의 동공이 흔들렸다.
“스, 스승님…!”
“…명훈아.”
그리고, 금진찬은 전명훈의 어깨를 잡았다.
“미안했다, 그동안.”
“…예?”
쿠구구구구!
대지에서는 붉은 용맥이 끓어오르고 있었다.
그러나 그냥 용맥이 아니었다.
그것은 뇌전이었다.
그리고 특히나 전명훈에게 더더욱 익숙한 뇌전이었다.
전명훈 자신이 내뱉은 적뢰공의 뇌전이었으니까!
“저, 저게 어찌 된….”
자기 자신이 뿜어낸 힘을 알아본 듯, 전명훈은 혼란에 빠졌다.
뇌령도 전체가 전명훈의 힘으로 끓어오르는 듯했다.
금진찬은 미안하다는 듯이 뺨을 긁으며 말하였다.
“지난 10년간, 뇌령도 전체에 토목 공사를 하게 했다.”
그의 설명이 시작되었다.
* * *
나는 출전봉에 앉아 전명훈이 돌아오기를 기다렸다.
홍수령이 문파 대진을 조작하여, 뇌령도 곳곳에 흩어진 전명훈의 뇌전을 금신천뢰문 본파로 끌어모았다.
그리고 뇌운봉의 정상에서 금벽호가 직접 제의를 보조한다.
제의가 시작되는 동안, 금신천뢰문은 일순간 하나의 거대한 제단이었다.
“복도 많지, 전명훈. 문파의 태상장문부터 시작해서 모든 사형 사제들, 모든 문도들이 오직 너를 위해 10년간 뇌령도 전체에 토목 공사를 하고, 진법을 깔아 칠성제를 지내기 위한 기반을 만들었으니.”
오늘은 전명훈이 칠성제를 지낼 수 있는 시운의 날이다.
나는 밤하늘을 바라보았다.
이 계획은 나로부터 나왔다.
청문령이 용맥을 끌어모아 장생과를 맺히게 했던 그 때를 떠올려 시작한 계획.
‘천거 현상은 ‘자기 자신’의 힘으로만 뚫어야 한다.’
그렇다면 그 ‘자기 자신’의 범위란 어디까지인가?
법기를 들고 하늘을 향해 쏘면 그것도 자기 자신인가?
그렇다면 만약 내가 연기기 6성 정도의 법력으로도 사용할 수 있는 상품 법기를 만들어 준다면 그건 자기 자신의 힘인가?
‘나, 김연, 그리고 오현석의 사례를 전부 생각해 봤을 때….’
단순히 상품 법기를 사용해서 천거를 밀어 버리는 건 안 되었다.
김연 역시 자기 자신이 ‘직접’ 꼭두각시들을 조작해서 천거를 극복했듯이.
신외지물인 법기로는 천거의 극복이 불가능하다.
그게 가능했다면 청문령이 친구인 법기장인 공묘천색에게 부탁해서 그 당시의 내가 사용할 법기를 제작했으면 그만이었다.
요는, ‘자기 자신의 의지와 생명력’이 들어가 있어야만이 천거를 극복할 수 있었다.
그래서 계획한 것이, 이 복잡하고도 거대한 계획.
쿠구구구구!
붉은 용맥 너머로 전명훈이 뇌령도 사방에서 쏘아재꼈던 뇌전들이 점차 증폭되며, ‘전명훈 자신의 기운’을 증폭시켰다.
그리고 저 높이, 전명훈의 함선이 뇌운봉에 도착했다.
‘전명훈 자신의 기운을 용맥으로 증폭시켜 제단에 모은 후, 전명훈 자신의 의지로 그 기운을 모아 하늘로 쏘아올리면 된다.’
그렇게 하면 천거는 뚫릴 터였다.
‘저 진법을 만들기 위해, 금벽호와 금신천뢰문의 무수한 원로진들이 10년간 뇌령도 곳곳을 헤집으며 공사를 했지.’
진법의 역할은 전명훈의 기운을 증폭시키는 것과, 전명훈이 거대한 기운을 다룰 때에, 그 조작을 보조하는 용도였다.
‘놈이 이 거대한 기운을 제대로 제어해서 쏘아 올릴 수 있을 리가 없으니 말이지.’
금신천뢰문의 진법사가 총동원되었다.
놈 하나를 위해서.
“다들 대단한 의지로군…. 제자 한 명을 위해서 말이지.”
나는 뇌운봉에 내리는 전명훈을 보며 읇조렸다.
모르긴 몰라도, 아마 내가 없었던 회차의 전명훈 역시, 문파의 원로들이 어떻게든 힘을 총동원해서 놈을 돕지 않았을까.
“천상금뢰지체, 금신자 양수진의 재림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든지 못할까.”
어느새 내 곁에 다가온 홍수령이 말했다.
“어쩐 일로 오셨습니까?”
“호법을 서 주려 왔다.”
그녀는 팔짱을 낀 채로 말했다.
“네놈, 원영 중기에 들어서려는 거겠지?”
“…들켰군요.”
“다들 전명훈에게만 정신이 팔려 있는데, 그래도 네놈의 쌍수도려인 이 몸쯤이나 되니 널 신경 써 주는 거다. 감사히 여기고, 마음 놓고 양신을 형성해라.”
“감사합니다.”
* * *
“…그랬던 거군요.”
전명훈은 금진찬의 설명을 듣고, 그제야 이해할 수 있었다.
‘…무관심이, 아니었어.’
“이쪽으로 와라, 전명훈.”
금벽호가 전명훈에게 손짓했다.
뇌운봉의 위쪽에는 칠성제의 제단이 세워져 있었다.
‘다들, 나를 위해서….’
“…지금부터, 칠성제를 시작한다. 어느 칠수에 지낼 거지?”
“…저는 재능이 미욱하니.”
‘이토록 오랫동안 준비했었구나. 다들….’
“청존칠수께… 제를 지내도록 하겠습니다.”
‘나를, 생각해 주고 있었구나.’
무려 10년에 걸친 토목 공사.
전명훈 혼자만 몰랐던, 전명훈을 위한 거대한 계획이었다.
칠성제가 시작되었다.
전명훈은 각항저방심미기, 동방과 목(木)을 상징하는 청존칠수에게 제를 지내었다.
그리고, 하늘의 별빛을 내려받기 직전의 단계.
쿠구구구구!
먹장구름이 하늘을 뒤덮었다.
그와 동시에.
쿠구구구구구!
뇌령도 전체에 퍼져 있던 붉은 용맥이, 뇌운봉으로 올라왔다.
서은현이 입안하고, 금신천뢰문의 원로진과 진법사들이 실체화하여, 마침내 모두에 의해 완성된 계획.
청문령이나 서은현은, 영기가 부족한 수계에서는 시도할 수 없었지만, 영기가 썩어 넘치는 광한계였기에 가능한 방법.
뇌령도 전체의 영기를 무식하게 끌어모아, 한 인간의 법력을 증폭시킨다.
그리고 진법으로 정제해서, 증폭된 법력에서 순수한 ‘전명훈’에게서 비롯된 성질만을 남긴다.
그렇게 정제하고 정제해서 남은 기운은, 본래 증폭시켰던 기운의 수억 분지 일도 안 되는 미욱한 수준.
하지만 증폭한 진법의 크기가 뇌령도 전체에 달할 정도라면, 수억 분지 일도 안되는 미욱한 수준조차 축기기를 가볍게 뛰어넘는다!
전명훈은 자신의 주변에서 맴도는, ‘자기 자신의’ 기운을 체내로 끌어당겼다.
체내에서 기운을 한 번 순환시킨 후, 하늘을 향해 뿜었다.
콰르르르릉!
전명훈의 적뢰공은 하늘에 닿지 못했다.
중간에 기세가 꺾여 시들었다.
하지만, 전명훈은 주변에 넘실거리는 무한한 힘을 끝없이 빨아들였다.
‘단순히 번개를 흡수해서 법력화하는 것과도… 차원이 다르다!’
뇌전을 법력화할 때에 일어나는 힘의 소모가 없다시피 할 정도!
전명훈은 무한한 힘을 계속해서 퍼 올리며 하늘로 뇌전을 쏘아 올렸다.
시들었던 적뢰공의 기세가 무한히 증폭되며, 붉은 벼락 줄기가 하늘로, 점차, 조금씩 올라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마침내.
뇌운봉의 끝자락에서, 전명훈은 하늘을 향해 힘껏 고함을 질렀다.
“하늘이여!!!”
콰르르르르릉!
붉은 벼락이, 하늘의 구름을 찢어발기며 별과 인간을 잇는 길을 낸다.
전명훈은 하늘을 향해 손을 뻗으며 천지영성을 내려받았다.
그렇게, 전명훈은 칠성제를 지내고 연기기 7성에 진입하는 데에 성공하였다.
* * *
쿠릉, 쿠르르릉!
금신천뢰문의 한 구석.
모두의 관심이 천상금뢰지체 전명훈에게 간 사이.
원영 중기로의 승급을 시도하는 한 사람이 있었다.
서은현이었다.
쿠르르르릉!
하늘이 일렁거리며, 쌍색의 천뢰를 떨구었다.
서은현은 눈을 감은 채 뇌도공법을 운용했다.
쿠구구구구!
원영기부터는 모든 수사들이 천겁을 맞는다.
결단기에서 원영기로 승급할 때는 한 줄기의 벼락.
원영 초기에서 중기로 승급할 때는 두 줄기의 벼락이 떨어진다.
쌍색의 천뢰가 서은현의 몸을 강타했다.
하지만 뇌전으로 자신의 몸을 보하는 서은현은 멀쩡했다.
쿠르르릉!
원영 중기에 이를 때 내리치는 두 번째 천겁이 다시 한번 벼락 줄기를 떨어뜨렸다.
방금 전보다 더더욱 맹렬한 기세를 지닌 천겁이었다.
꽈르르릉!
서은현은 두 번째 천겁을 맞았다.
빛의 기둥이 서은현을 내리찍고 있는 것만 같은 풍경!
그 빛의 기둥 속에서, 서은현은 눈을 감고 자신의 내부를 관조했다.
* * *
고작 10년 만에 둔재인 내가 어떻게 금신천뢰문의 공법 9천여 개를 익힐 수 있었는가.
그것은 내가 천뢰번의 주인에게 받은 저주 덕에, 뇌전에 대한 지식과 재능을 얻게 된 것도 있었으나, 동시에 다른 이유도 있었다.
‘금신천뢰문의 9천여 개 공법은, 본래 모두 하나였다.’
공법을 점차 익혀 갈수록, 나는 금신천뢰문의 공법 구결들 중 ‘이어지는’ 구결들이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그리고, 나는 40여 개의 공법을 2, 3성까지 익혀 냈을 때 이 ‘이어지는’ 구결의 ‘원문’을 알아낼 수 있었다.
그 구결의 원문은 나도 아는 것이었다.
원문을 이전부터 알고 있었으며, 그 의미를 이해하고 뇌도공법에 접목시킬 수 있었기에 9천여 개의 뇌도공법 전부를 짧은 시간 안에 익힐 수 있었던 것!
그리고, 금신천뢰문 공법들의 원문이란 다음과 같았다.
―제1장. 모든 존재는 태어날 때부터 자유로우며 그 존엄과 권리에 있어 동등하다. 존재는 하늘로부터 이성과 감성을 부여받았으며 서로 평등함을 인지하고 행동하여야 한다.
―제2장. 모든 존재는 존재, 계위, 시야, 경지, 출신, 기타의 물질계 또는 명계, 선계, 부해계 또는 기타의 신분과 같은 어떠한 종류의 차별이 없이, 이 제의가 규정하는 모든 권리와 자유를 향유할 자격이 있다. 더 나아가 존재가 속한 운명 또는 역사가 상위 존재에 대한 제약을 받느냐에 관계없이, 그 존재 또는 영혼의 운명적, 천부적 또는 계위적 지위에 근거하여 억압이 있어서는 아니 된다.
―제3장. 모든 존재는 생명과 운명의 자유와 보전에 대한 권리를 가진다.
―제4장….
이건 일종의 ‘공법 구결’이라기보단, 제의를 지내며 외는 축문의 일종이었다.
그리고, 나는 이 ‘축문’의 원문을 알고 있었다.
‘세계 인권 선언….’
지구에서 봤던 세계 인권 선언에서 단어만 이 세계에 맞게 바꾸고, 언어에 주술력을 부여하여 문장이 ‘힘’을 가지게 만든 것.
그것이, 금신천뢰문의 모든 공법을 익혔을 때 나타나는 구결이었다.
파지지지직!
나는 구결의 1장부터 29장까지를 속으로 되뇌며, 구결에 담긴 주술력과 힘에 따라 법력을 운용했다.
이처럼, 내가 세계 인권 선언을 이미 알고 있었으며 천뢰번의 주인이 부여한 저주의 반작용으로 뇌전 법칙의 이해를 가지고 있었기에 9천여 개의 공법을 10년 안에 전부 익히는 데에 성공한 것이었다.
‘양수진은, 정말로 나와 같은 세계의 사람인 건가.’
이제는 확신이 든다.
양수진이, 종명자들이, 지구의 존재들이라는 확신이.
파지지지직!
구결의 1장부터 29장까지를 외자, 나는 뇌전의 힘이 극한에 도달한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일순간.
퍼엉!
극한에 도달한 뇌전의 힘이, 나를 압박하는 천겁을 떨쳐 냈다!
우우우웅!
그와 동시에 막혀 있던 수행이 노도처럼 몰아쳤다.
은은히 푸른빛이 돌았던 내 원영.
음신(陰神)이 절반으로 갈라지더니, 나머지 절반이 붉게 물들기 시작했다.
미간에서부터 선이 생겨나, 음신의 영역과 또 다른 원신, 양신(陽神)의 영역을 나누었다.
‘드디어….’
음양신(陰陽神)을 전부 생성하는 데에 성공했다.
하지만 나는 뒤이어 닥쳐올 후폭풍에 이를 악물었다.
금신천뢰문 9천여 개를 합쳐 만든 구결은 분명 일순간 천뢰의 위력을 극대화시킨다.
그 덕에 내가 체내에 흐르는 뇌력을 증폭시켜 원영 중기에 이르른 것이었고.
하지만, 정작 천뢰가 극한에 도달한 다음에는….
피시싯….
내 주위를 맴돌던 뇌전이 점차 희미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단전에 가득하던 뇌전의 힘이 점차 흐물거리는 듯하더니 무색(無色)으로 흩어졌다.
이내, 나는 완전히 뇌도공법을 익히기 이전과 같이 변해 버렸다.
단전의 ‘힘’은 여전히 원영 중기가 맞았다.
뇌도공법으로 쌓았던 수행도 남아 있다.
하지만, 9천여 개의 공법을 합일한 구결을 왼 이후로, 뇌도공법의 뇌전 속성은 완전히 무속성(無屬性)이 되어 버려 도저히 찾을 수가 없어졌다.
그랬다.
나는 금신천뢰문 공법을 모조리 합일하여, 그 동력으로 원영 중기에 이르는 데에 성공했다.
하지만, 금신천뢰문 공법을 합일시킨 공법은, 이제 더는 금신천뢰문의 공법이라 부를 수 없게 되어 버렸다.
“원영 중기에 이른 걸 축하한다.”
홍수령이 안타깝다는 듯이 혀를 차며 말했다.
“다만… 정작 뇌도공법의 이점을 완전히 포기하고, 그냥 평범한 영기로 바꿔 버리는 그런 말도 안 되는 구결을 외는 걸 선택하다니… 도대체 왜 그런 거냐? 전명훈도 칠성제를 지내는 데에 성공했고, 놈이 원영기에만 올라도 공법 간 부조화를 해결할 수 있었는데….”
“뭐, 수행이 떨어진 건 아니지 않습니까.”
나는 별거 아니란 듯이 허허 웃었다.
“이왕 이렇게 된 거, 이 무명 구결을 더 연구해 보지요.”
“더 연구할 게 뭐가 있느냐. 역대 장문들이 숨긴 이유도 뻔해지는군. 익히면 그냥 뇌전 속성을 다룰 수 없게 되는 멍청한 공법이기 때문이잖느냐.”
“뭐, 그건 그렇습니다만….”
“뭐가 그렇다는 거냐, 멍청한 놈! 됐다, 난 전명훈 놈이나 축하해 주러 가려니까 여기서 혼자 정말 잘 한 건지나 잘 생각해 보고 있어라.”
홍수령은 어쩐지, 내가 뇌도공법을 잃게 된 것이 마음에 안 드는지 허공을 날아서 전명훈이 있는 뇌운봉으로 날아가 버렸다.
그러나 나는 가만히 앉아서 이 무명 구결을 참오했다.
‘이건 10할 확률로 양수진이 남긴 구결이다.’
거기다가 세계 인권 선언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공법 구결.
분명 무언가가 있으리라.
어차피 양수진의 안배를 두 번이나 마주했던 나로서는, 이 공법 구결을 익히는 건 선택이 아닌 필수였다.
나는 아무런 속성이 없어져 버린 이 무명 구결을 다시 한번 처음부터 운용했다.
‘흐음, 변화가 없나.’
하지만 무속성의 법력을 운용해 봤자 바뀌는 건 없었다.
심지어 법력을 쌓는 속도도 무지하게 느렸다.
‘이 구결… 공법이 맞긴 한가?’
내가 그리 생각하며, 마지막 29장의 구결을 외웠을 때였다.
문득, 나는 이상함을 느꼈다.
‘세계 인권 선언은 30조로 이뤄져 있는데….’
세계 인권 선언을 표절해서 1조를 1장으로 붙여놓은 무명 구결은 29장까지밖에 없었다.
나는 마음속으로 세계 인권 선언의 마지막 조항을 떠올렸다.
“이 선언의 어떠한 규정도 어떤 국가, 집단 또는 개인에게 이 선언에 규정된 어떠한 권리와 자유를 파괴하기 위한 활동에 가담하거나 또는 행위를 할 수 있는 권리가 있는 것으로 해석되어서는 아니 된다.”
한 마디로 세계 인권 선언을 악의적으로 해석하면 안 된다는 조항.
내가 그 마지막 조항을 떠올렸을 때였다.
우우우웅!
“…!”
내 염상과 동시에, 무명 구결이 갑자기 제멋대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 이게 무슨…!’
내가 뭔가를 하려고 해도 요지부동이었다.
무속성의 법력이 노도처럼 움직이며, 전신을 꽉 채웠다.
그리고 무속성의 법력은 내 상단전으로 흘러들어 왔고, 상단전에서 중단전으로, 중단전에서 하단전.
금단 안쪽에 있는 원영으로 미친 듯이 흘러 들어갔다.
그리고 그 순간이었다.
파아아아앗!
나는, 문득 내가 기이한 공간으로 진입했음을 깨달았다.
‘이곳은….’
촤르르르르륵!
어둡다.
깊고 깊은 어둠.
그리고 춥다.
마치, 예전 봉명주 최하층에서 [그]를 만났을 때와 같은 느낌.
내가 긴장하며 주변을 둘러볼 때였다.
“후대(後代)인가.”
“…!”
어느새, 내 앞에서 누군가가 육성으로 내게 말하는 것이 느껴졌다.
“당신은…!”
나는 앞을 보려다가 움찔하고는, 아래를 쳐다보고 조심스레 물었다.
“당신은… 금신자이십니까?”
“그래. 후대냐고 물었다.”
“예… 저는 금신천뢰문에 입문하여….”
“종명자가 아니라면 절대로 이곳에 들어올 수 없거늘. 내숭은 그만 떨지.”
나는 눈앞에 있을 존재.
금신자 양수진에게, 조심스럽게 물었다.
“…금신천뢰문 공법을 전부 합쳤을 때 나타나는 구결… 그건….”
“그래, 너도 알 만한 것이지.”
“….”
“중요한 건 그게 아니다. 내가 명계의 주인에게 부탁해서 [빛]이 전혀 들어오지 않는 명계의 밑바닥에, 후대를 위한 자리를 만들고 사념을 남겨 놓은 이유를 들어야 하지 않겠느냐.”
나는 긴장을 끌어올렸다.
“우선 시작 전에 한 가지를 경고하겠다.”
금신천뢰문의 시조.
천뢰번의 주인에게서 천뢰번을 빼앗아 온 자.
무수한 풍파를 일으킨 존재, 금신자 양수진과의 대담이, 그렇게 시작되었다.
“[빛]을 조심해라. 그자는 제(帝)의 의지에 따라 네 곁에, 언제, 어디에서, 어떻게든. 네가 상상하지조차 못한 방식으로 네 주위를 맴돌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