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Regressor’s Tale of Cultivation RAW novel - Chapter (234)
인간은 무엇인가 (1)
빛을 조심하라.
분명, 이름이 기억나지 않는[그]에게서도 들었던 이야기였다.
“[빛]은… 도대체 어떤 존재인 겁니까?”
“어선(御仙) 중 하나지.”
“어선?”
“진선의 한계와 한도를 벗어난 이들을 어선이라 부른다. 상제(上帝)와 천존(天尊)이 그들이며, 전 삼천세계를 통틀어 열 존재밖에 없다. 육상제(六上帝)와 사천존(四天尊)이 그들이지.”
꿀꺽.
나는 침을 삼켰다.
육상제와 사천존이라는 말을 듣자마자, 전신에 힘이 빠진다.
동시에 머리가 멍해지기 시작했다.
주륵, 주르르륵….
어쩐지 기분이 붕 뜨는 듯한 느낌이었다.
그리고, 나는 어째선지 내 몸이 녹아내리고 있다고 생각했다.
‘아니, 아니야….’
아니다.
착각이나 생각이 아니었다.
내 몸은, 실제로 양수진의 앞에서 촛농처럼 녹아내리고 있는 중이었다!
“정신 차려라.”
“허, 헉!”
‘내, 내가 어떻게 된 거지!?’
나는 공포에 질리며 비명을 지를 뻔했다.
그러나 그때였다.
딱!
양수진이 어둠 속에서 손가락을 튕긴다.
그와 동시에 내 몸은 원래대로 돌아와 있었다.
“아직 네게는 존재를 아는 것만으로도 버거웠나 보군.”
“…???”
나는 이해가 가지 않아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바, 방금 그건….”
“세계의 극점에 있는 존재들의 지식을 받아들였으니 유전자 단위에서 네 몸이 공포에 질려 소멸하려 한 거다. 그나저나 이상하군…. 아무리 어선들이라 해도 그냥 존재를 아는 것만으로는 원래 이렇게 반응이 심하지 않은데. 어선 중 하나가 주시하고 있는 게 아닌 이상….”
잠시 혼자 중얼거리던 양수진이 다시 한번 손가락을 튕겼다.
치직, 치지지직!
그와 동시에 찌릿거리는 정전기가 주변에서 마구 일어나기 시작했다.
“아하, 그렇군. 명계의 주인께서 당신의 영지에 종명자가 진입했음을 눈치챘다. 이쪽으로 강림하고 있어.”
“…예?”
“너무 걱정은 마라. 생전의 나와 맺은 언약 때문에, 명계의 주인이라고 해도 나와 너의 대담 장소까지 찾아오는 데엔 시간이 꽤 걸리지. 제아무리 본인이 제공한 땅이라고 해도 말이다…. 그러니 우리가 대화를 나눌 시간은 충분하다.”
나는 너무나 급작스러운 정보의 범람에 뭐라고 할 수가 없었다.
‘명계의 주인? 상제? 천존?’
내가 혼란스러워 어쩔 줄을 몰랐다.
하지만, 나는 그 와중에도 일말의 정신을 부여잡았다.
“명계의 주인이란 분도, 당신이 말한 어선입니까?”
“그래. 천존 중 한 분이시지. 종명자를 감시하는 데에 혈안이 된 ‘빛의 주인’은 상제 중 하나고. 아, 네가 금신천뢰문을 통해 나와 만나게 된 것이라면 이미 알고 있겠지만, 천뢰번의 원주인 역시 ‘천벌의 주인’으로서 상제 중 하나다.”
“…!”
나는 갑작스럽게 알게 된 정보에 흠칫 놀랐다.
‘짧은 시간에 엄청난 정보들을….’
나는 숨을 들이쉬었다.
“그렇다면… 당신은 [빛의 주인]이란 존재가 [제(帝)]의 명을 받아 종명자를 찾는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이전에 쇄천봉에서 보았던 당신의 잔영 역시 종명자를 누군가가 쫓고 있다고 했습니다. 그 존재들은 동일 인물입니까?”
나는 말을 하면서도, 혹시나 내가 잘못 말하는 게 있을까 봐 조심스럽게, 느릿느릿 말을 내뱉었다.
혹시라도 말을 잘못 내뱉었다가 내가 말하는 대상이 나를 주시하게 될 수도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양수진은 문제가 없다고 여긴 것인지 딱히 나를 제지하거나 하지 않았다.
“동일 존재다. 내가 어선들을 상제니 천존이니 하면서 예우를 하기는 했다만, 사실상 그 존재야말로 진정한 제(帝)겠지. 나머지는 그저 참칭자에 불과할 뿐….”
“그 존재는… 누구입니까? 누구이길래 종명자들을 노리는 겁니까?”
나는 침을 삼켰다.
이제야, 우리를 노리는 존재에 대한 명확한 진실이….
“나도 모른다.”
“…예?”
그러나 양수진은 어둠 속에서 혀를 찰 뿐이었다.
“그야 나는 본체가 [그 존재]를 만나서 담판을 짓기 전에 분리된 사념이기 때문이다. 본체는 그 존재와 만난 후 소멸해 버렸고, 우리 선대의 종명자들도 그 존재와 대면한 후 대부분 같은 꼴이 되었으니 그저 우리를 별로 반가워하지 않는 존재가 아닐까, 하고 추측할 뿐이지.”
“….”
“다만, 그 존재에 대해서 잘 알고 있을 법한 이는 알고 있지. 나중에 성장하면 그분을 찾아가 보거라.”
“그 존재가 누구입니까?”
“지금 이 공간 밖에서 미친 듯이 문을 두드리고 계신 분. 명계의 주인… 사후세계와 윤회를 관장하는 저승의 천존. 그분은 어떤 상제와 천존, 모든 어선과 진선을 통틀어서 가장 오래된 존재이시니 차후에 그분에게 여쭈어라.”
나는 이해가 가지 않아 물었다.
“왜 차후에 물어야 한다는 겁니까? 지금 여쭈면 되는 게 아닙니까?”
“…저승의 주인께서는 참 묘한 분이시다. 그분은 종명자들이 약할 때는 종명자들을 잡아들여 명계 밑바닥에 가둬 두려고 늘 혈안이 되어 있다. 하지만 종명자들이 본인들만큼 강해지면 그때는 선선히 협력해 주시지.”
“….”
“지금 상태의 네가 그분의 손에 잡힌다면 명계 밑바닥에 처박힌 채 영세영겁을 봉인당할 뿐이다.”
꿀꺽….
나는 침을 삼켰다.
그 말대로라면….
‘나와 동료들… 그리고 종명자들은 모두, [빛]뿐만이 아닌 ‘저승의 주인’이란 존재 역시 조심해야 한다는 건가?’
“…하면, 저승의 주인이란 분은….”
“이제 그 얘기는 슬슬 그만하지. 명계의 밑바닥이라면 다른 어선이나 [그 존재]의 시선을 거의 걱정할 필요가 없지만, 다름 아닌 저승의 천존만큼은 그 힘과 시선이 더더욱 선명해지니 말이다. 네가 그분을 떠올리고 언급하는 것만으로도 그분과 너 사이에 인력이 생기고 있다.”
“…!”
나는 그 말을 듣자마자 절로 소름이 돋아 나도 모르게 입을 틀어막았다.
“뭘 궁금해하는지는 대략 짐작이 간다. 다만 저승의 주인께서는 종명자들이 명계에 진입하기 전이라면 잘 개입하지 않으니, 살아 있는 동안에는 명계에 가지만 않으면 크게 걱정할 필요는 없다. 물론, 그분이 명계 밖을 벗어나지 않는 것은 무슨 제약이 있는 게 아니라 그분의 개인적인 문제이니 너무 안심하지는 말고.”
“…예. 일단 알겠습니다.”
‘천존이란 존재가, 명계 밖을 벗어날 수도 있다고?’
나는 소름이 끼치는 것을 느꼈다.
인지조차 되지 않는 까마득한 존재가 무슨 짓을 하든지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있는 게 없다는 공포감이 엄습했다.
‘…공포에 잡아먹히지 말고, 남은 시간을 이용해서 알아야 할 걸 알자.’
“…일단, 어선들에 관한 것 외에 저를 부르신 이유가 뭡니까?”
“좋군. 빠르게 어선들에 대한 공포에서 벗어나다니, 정신력이 뛰어나구나.”
양수진은 내가 질문을 돌리자 훌륭하다는 듯이 칭찬을 해 주었다.
“너를 부른 이유는 우선… 네가 내 명을 물려받은 후예인지, 아니면 그냥 종명자인지를 알기 위해서이다.”
“당신의 명…?”
“그래. 종명자들이 부여받는 명은 정해져 있고, 불변한다. 선대 종명자들이 전부 [그 존재]에게 사라지면 후대 종명자들이 다시 명을 부여받아 이 세계에 태어나지. 물론 명을 부여받고 얻는 능력은, 명을 이룩하기 위해 세계가 최적의 힘을 제공하는 것이기 때문에 매번 다르지만….”
“…저는 당신과 같은 명을 가졌습니까?”
“음….”
내 물음에 양수진은 어둠 속에서 잠시 나를 쳐다보는 듯했다.
“아닌 것 같군. 전혀 다른 명을 가졌다. 하지만….”
‘하지만?’
나는 양수진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네 역사에 심상찮은 고통과 절망의 굴곡이 져 있는 걸로 봐서, 네 명도 나 못지않게 추악하구나. 큭큭….”
“예?”
명이 추악하다고?
내가 의아해할 때였다.
“우선… 내가 금신천뢰문을 왜 세웠는지부터 설명해야겠군.”
양수진이 이어 설명을 시작했다.
“내 본명공법은 적뢰천겁공(赤雷天劫功)으로, 천상금뢰지체, 혹은 나와 똑같은 명의 보유자만이 익힐 수 있는 공법이다. 이 공법을 이용하면 천상금뢰지체가 지닌 힘을 극한으로 끌어내는 게 가능하지. 천상금뢰지체가 아니더라도, 나와 똑같은 명을 부여받은 종명자라면 능히 공법을 익혀 천상금뢰지체를 얻는 게 가능한 공법이다.”
“…!”
“그리고, 너는 금신천뢰문의 모든 공법을 익히고, 공법 간에 숨겨진 구결을 찾아, 우리 고향에서 유명했던 그것의 마지막을 읊어 찾아온 거겠지?”
“맞습니다.”
“금신천뢰문의 모든 공법을 합치면 나오는 공법은, 멸신겁천공(滅神劫天功). 너도 공법을 운용해 보아서 알겠지만, 사실상 그건 공법이 아니다. 일종의 축문이자, 제례 의식이지.”
“…어째서, 이런 걸 만드신 겁니까?”
나는 양수진에게 질문했다.
홍수령에게 이 무명 공법.
양수진이 ‘멸신겁천공’이라고 말한 공법을 알려 주었을 때 그녀가 어떤 반응이었는지가 기억났다.
―뇌도공법의 속성을 잃게 하는, 제의의 일종이라고?
―그 무슨… 시조님이 만드셨을 금신천뢰문의 공법의 극한이, 금신천뢰문의 정체성을 잃어버리는 제의란 말이냐?
―도대체, 12만 년 역사의 본문은 뭘 위해… 정체성을 잃어버리기 위해 끝없이 달려왔단 말인가…?
“금신천뢰결(金神天雷訣)에 도달하기 위해서였다.”
“금신천뢰결…?”
“세계 인권 선언은, 존재의 권리를 보장하는 선언이다. 그리고 나는 그를 통해서 ‘인간’의 권한과 자유를 통해, 내 명(命)을 바꾸려 평생을 노력했다. 명을 바꾸는 것이야말로 나의 숙원이었으며 비원이었으니….”
꾸욱….
어둠에 가려 보이지는 않았으나, 나는 양수진이 주먹을 쥐고 있다는 걸 느꼈다.
“우리 종명자들은 대다수가 비참하지. 하지만 그중에서도, ‘좋은 명’을 부여받은 종명자가 있는가 하면, 나나 네놈 같이 ‘추악한 명’을 부여받은 종명자도 있다. 큭큭… 나는 추악한 내 운명을, 다른 종명자의 운명과 교체하기를 바랐다. ‘지금의 내 운명’을 상징하는 것이 적뢰천겁공. ‘내 운명을 비틀기 위한 의지’가 상징하는 것이 멸신겁천공. 그리고 마지막으로… ‘운명을 바꾸는 데에 성공한 나의 미래’가 금신천뢰결이었다. 정녕 나의운명을 바꾸어서 기쁨을 얻는 데에 성공했다면, 금신천뢰결이 탄생했겠지. 하지만….”
양수진의 목소리에서 힘이 빠졌다.
“결국 보다시피 실패했다. 나는 [그 존재]와 대면하기 전까지 시도했지만 결국 운명을 교체하는 건 허상에 불과했지.”
“…그렇다면, 금신천뢰문이라는 건….”
나는 양수진의 말을 들으며, ‘금신천뢰문’의 존재 의의를 얼핏 눈치채고 흠칫 몸을 떨었다.
“당신의 운명을 바꾸기 위한… ‘의식의 대상’이었던 겁니까?”
“그래. 정확히는 운명을 바꿀 때 쓸 제의의 준비물이었다. 결국 성공하지 못한 실패작이지만 말이지.”
나는 양수진의 말투에 내심 어이가 없어 쏘아붙였다.
“당신의 후예들에게 실패작이라니… 말씀이 지나치신 게 아니신지요? 세계 인권 선언을 구결에 집어넣으신 분께서 어찌 그리 말씀하십니까?”
“으음?”
그러나, 양수진은 도리어 내 말에 의아해하는 듯했다.
“이상한 소리를 하는군.”
“예?”
“세계 인권 선언이 뭐가 어쨌단 말이더냐? 그건 인간의 권리와 자유를 보장하는 선언이다.”
“예, 그런데 어째서….”
“한 가지 묻지. [인간]이란 뭐냐?”
“예?”
나는 어이가 없어 되물었다.
“존엄하고 자유로우며 지성을 지녔으며….”
“그래. 잘 아는군. 요는 ‘자유’다. 오직 ‘자유’를 지닌 존재, 혹은 ‘자유’를 획득할 가능성이 있는 존재만이 [인간]이며, 세계 인권 선언의 권리를 향유할 자격이 있는 존재이다.”
꽈아악….
양수진이 어둠 속에서 주먹을 쥐며 외쳤다.
“그러므로, 오직 우리 종명자만이 [인간]이며, 이 세계에 존재하는, 진선을 포함한 모든 존재가 [비인간]이다!”
“…예?”
나는 그 황당하고도 극단적인 주장에 아연해져, 절로 모르게 입을 벌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