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Regressor’s Tale of Cultivation RAW novel - Chapter (235)
인간은 무엇인가 (2)
“그게 도대체 무슨 말씀이십니까?”
나는 아연해져서 되물었다.
‘도대체 이게 일반인의 생각인가? 아니, 아니군. 그는 진선의 최고봉에 도달했던 존재….’
천인기만 되어도 한 구석이 돌아 버리거늘.
진선의 극점에 도달한 양수진이라면, 어쩌면 그의 논리와 상식은 이미 평범한 인간과는 도저히 간극을 좁힐 수 없을 정도로 멀어졌을지도 몰랐다.
나는 빠르게 정신을 수습하고 되물었다.
“…종명자만이 자유로우니 ‘인간’이란 말씀은, 다른 존재는 자유롭지 못하다는 겁니까?”
“그래. 이 세계의 삼라만상 모든 것은 운명의 인도에 따라 움직인다.”
어둠 속에서 양수진이 웃으며 말했다.
“이 세계의 문명 수준이 어째서 중세 수준에 머물러 있는지 아는가? 수십만 년의 역사를 지녔음에도 불구하고 어째서 늘 같은 생활상, 비슷한 문명을 영위하는지 아는가?”
어쩐지, 양수진의 웃음은 비웃음처럼 보였다.
“모조리! 모조리 운명의 노예이기 때문이다. 운명과 인력의 휘어짐에 따라 삼라만상 모든 존재는 영세영겁을 진화하지 못하고, 어리석게 같은 문명만을 답습한다. 이 세계에 사는 모든 존재는 생각하고, 말하고, 감정이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그들이 보이는 행동 하나하나, 말 하나하나, 감정 하나하나까지도 전부 운명에 의해 결정되어 있다. 누구도 자유 의지를 가지고 있지 않아!”
“…그렇다면.”
나는 양수진의 극단적인 사상에 거부감을 느끼며 물었다.
“심족(心族)은 어찌 설명하실 겁니까?”
“심족?”
“예, 그들이야말로 마음과 심상을 극도로 갈고닦아 운명에 저항하는 이들입니다. 말씀대로라면 심족이란 이들은 아예 존재하지 않았어야 합니다.”
“심족, 심족이라…. 하하, 아하하하하하!”
그리고, 내가 ‘심족’이란 말을 꺼내자마자, 갑자기 양수진이 폭소하기 시작했다.
“흐흐, 흐하하하하! 흐하하하하하하!”
쿠구구구구!
어둠 속이 쩌렁쩌렁 울렸다.
그것은, 마치 광기에 찬 광소같이 느껴졌다.
나는 어쩐지 이 광소가 굉장히 기분 나쁘고 섬뜩하게 느껴졌다.
동시에, 양수진이 굉장히 기분 나쁜 진실을 말하리란 것이 예감되었다.
“심족이 운명에 저항하는 자유로운 존재들이라고? 틀려….”
어둠 속에서, 양수진은 웃음을 거두고 말을 이었다.
어째서인지 양수진의 목소리는 굉장히 음울하고 꺼끌꺼끌했다.
“오히려, 심족이야말로 그들이 운명의 노예이자 장난감에 불과하다는 가장 직접적인 증거다.”
어째서인지 양수진의 목소리에는 일말의 노기(怒氣)가 깃들어 있었다.
어둠 속에서 그의 감정이나 의념을 읽을 수는 없었으나, 나는 양수진의 목소리에서 그가 먼 옛날 심족과 관련해서 어떤 일을 겪었음을 바로 알 수 있었다.
“너는 심족이 자연 발생했다고 생각하느냐?”
“천족과 지족이 약소 종족을 학대하니, 자연히 발생한 게 아니겠습니까?”
“그렇다면 수계에서는 왜 심족이 탄생하지 않았나?”
“그야 수계의 수도자들은 직접적으로 한 종족을 노예 취급하거나….”
“그럴 리가. 수계의 요족들이나 인족들도 서로를 잡아다가 목장을 만들어 사육하는 일은 빈번하게 해 댔다.”
“….”
나는 해룡족의 사례를 떠올려 입을 닫았다.
그 말대로였다.
수계에서도, 어쩌면 막리세가 출신으로 입천에 이른 존재가 있어야 했을지도 몰랐다.
하지만 없었다.
도대체 왜일까.
양수진이 어둠 속에서 팔을 움직였다.
그의 어슴푸레한 윤곽이, 한 손가락을 들어 올리는 게 보였다.
“그런데 왜 심족이 수계에서는 태어나지 않았을까? 왜 진마계엔 천, 지족에 대응하는 천마나 요마는 있어도 심족에 대응하는 마족은 없을까? 왜 광한계에만 심족이 있는 걸까? 왜 천인기에 대응하는 경지에 오르면 천겁을 추가시키는 미친 공능을 가졌음에도 그렇게 약세일까? 왜 천, 지족들은 심족들을 미친 듯이 혐오할까? 왜 혐오하다 못해 심족들을 박제해서 만든 법구 하나가 없을까? 왜 심족이 극점에 도달해서 나타나는 진선은 어떤 정보도 없고 누구도 모를까?”
“….”
말 그대로, 너무나도 많은 의문이었다.
양수진의 설명이 이어졌다.
“간단하다. 심족은, 원래 존재하지 않았던 존재들이다.”
“…!”
“그리고, 종명자가 나타나기 이전에 갑자기 와르르 나타났다가, 종명자들이 모두 사멸하면 동시에 전부 멸망하고 쇠퇴해서 역사 속으로 사라져 버리지.”
“…!!!”
양수진이 폈던 손가락을 접으며 말했다.
나는 양수진이 말해 준 정보에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그, 그게 무슨…!’
“알겠느냐? 심족이란, 종명자들이 이 세계에 발을 디딤에 따라 운명적으로 생겨나는, 또 다른 형태의 운명의 노예들일 뿐이다. 심족이야말로 정녕 이 세계의 존재들에게 자유 의지가 없음을 증명하는 존재들이지.”
나는 한동안 침묵했다.
너무 충격적인 사실이라서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이게 도대체 무슨….’
장익과 유화, 그리고 무수한 심족들은 도대체, 뭐란 말인가.
나는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하면, 왜 우리는 자유 의지가 있다는 겁니까? 우리야말로 정해진 명이 있고, 우리야말로 명에 따르는 존재들이 아닙니까?”
“우리는, 운명이 존재하지 않는 세상에서 왔으니 말이다.”
양수진은 당연하다는 듯이 말했다.
“운명도 신도 기적도 존재하지 않는 세상에서 온 존재들이고, 우리를 강제하는 명도 결국에는 남이 부여한 것이니… 우리는 언젠가는 반드시… 진정 자유로워질 수 있는 존재들인 것이다.”
“….”
나는 양수진의 극단적인 사상에는 공감할 수 없었다.
하지만 양수진의 목소리는 어쩐지, 자기 자신도 운명에서 자유로워지고 싶다는 듯한 느낌이 풍겼다.
‘자유로워질 수 있는 존재들이라면… 양수진조차 아직 자유로워지지는 못했다는 것이 아닌가?’
그러나 나는 이 말을 입 밖에 내뱉지 않았다.
“뭐, 궁금한 건 다 물었나? 이제 슬슬 명계의 주인께서 이곳의 장벽을 박살 내기 직전이라 네게 전해 줄 걸 전해줘야 할 성싶은데….”
“아직 궁금한 게 산더미 같습니다만….”
“뭐, 네가 궁금한 건 차후에 알게 될 게다. 지금 전해 주려는 게 더 중요하다.”
“…어떤 것을 전해 주시려 하는 겁니까?”
“멸신겁천(滅神劫天).”
어둠 속에서, 그가 내게 손을 뻗었다.
“멸신겁천은… ‘운명을 비트는 의지’ 그 자체. 결국 운명을 비트는 제례 의식이다. 비록 내 종명자로서의 운명은 교체할 수 없었지만….”
그의 어투는 어쩐지 씁쓸해 보였다.
“다른 진선들이 부여하는 운명은, 제의를 통해 극복할 방법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완벽히 통하는 건 아니다만….”
터억!
양수진의 손이 내 머리통을 움켜쥐었다.
그와 동시에, 나는 머릿속으로 어마어마한 지식의 격류가 휘몰아치는 걸 느꼈다.
“…!!!”
멸신겁천공… 아니, 멸신겁천의 제(祭)를 지내기 위한 구결이 뇌리로 흘러들어 왔다.
“지금 궁금한 것이 있더라도, 내가 지금 답을 못 해 주더라도… 멸신겁천을 통해 네게 인력을 부여했다. 언젠가, 네가 궁금한 것들을 전부 알게 될 것이다. 멸신겁천이 너를 그렇게 인도할 것이니….”
완전히 무속성으로 변한 뇌전의 힘을 통해, 운명을 조금이나마 비틀어, 압도적으로 불합리한 존재와의 싸움에서 조금이나마 승률을 올려 주는 제의.
그것이, 멸신겁천의 제의였다!
금신천뢰문의 공법 9500개 분량의 구결이 모조리 양수진에 의해 ‘제례용 구결’로 바뀌어서 뇌리로 흘러든다.
세계 인권 선언을 주축으로 한 무수한 축문과 구절들이 정신에 새겨진다.
나는 이를 악물고 정신이 무너지지 않게 하며 제례용 구결들을 받아들였다.
“이제 시간이 다 되어 가는군.”
쿠구구구구구!
어둠의 공간.
그곳으로, 어쩐지 스산한 기운이 감돌았다.
춥다.
아니, 추운 정도가 아니었다.
이것은….
‘추워추워추워추워추워죽어죽어죽어죽음죽음죽음죽음죽음죽음죽음….’
깊고거대한자가어둠저건너편에서나를주시하고있었으나 양수진이 내 어깨를 쳤다.
“기왕 공간을 제공해 주신 것, 후배와 편안히 대화를 나누게 도와주시지 어찌 그리 급박하십니까.”
양수진은 저 어둠 건너편을 향해, 어쩐지 조롱기 섞인 어조로 말했다.
“크흐흐… 그리도 종명자를 손에 넣고 싶으십니까? 당신조차 운명의 흐름에 따라 종명자는 손에 넣을 수 없습니다. 운명은 우리를 억압하지만, 동시에 지켜 주기도 하니 말이지요. 당신이라면 오히려 더 잘 알고 계시지 않습니까.”
우우우우우―
어둠 속에서 기이한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그 울음소리에는 기이한 지식과 진리가 섞여 있었고, 거기에 귀를 기울이면 무수한 지식과 지혜를 얻을 수 있을 것이라는 직감이 들었다.
‘더, 더 듣고 싶어….’
저 소리에 섞인 지혜에 집중하면, 어쩌면 귀도음화선근에 버금가는 뭔가를 얻을 수 있을지도 모른….
“멸신겁천을 운용해라.”
치직!
“…!”
양수진의 손이 내 등에 닿자, 갑작스레 체내에서 무속성의 법력이 움직였다.
동시에 나는 저 울음소리에 집중하고 싶은 기분이 싹 사라지는 걸 느꼈다.
“아무리 명계의 주인이 제공한 공간이라지만, 이곳은 본체가 전성기 시절에 직접 저승의 천존과 담판을 짓고 언약을 맺었던 장소…. 저승의 천존이라 하셔도 여기까지 진입하는 데에는 시간이 걸린다.”
쿠구구구구!
그러나, 양수진의 호언장담과는 달리 어째 저 멀리서 들리는 울음소리가 점점 더 커지는 것 같았다.
“자, 그럼, 한 30초 뒤면 그분이 도달하실 테니 이제 슬슬 돌려보내 주도록 하지.”
어둠 속에서, 나는 양수진의 몸이 점차 흩어지는 것을 보았다.
“몸이… 흩어지고 있습니다…!”
“그래, 명계의 주인의 배려 아래 이 공간에 사념을 밀봉해 두고 있었다만… 이제 밀봉이 풀렸으니 흩어지는 것뿐이다.”
양수진은 비누 거품처럼 흩어지며 말을 이었다.
“내 역할은 다했다. 종명자는 찌꺼기를 남길 수 없지만, 나는 명계의 힘을 빌어 사후에도 찌꺼기를 남기는 데에 성공했으니 이 얼마나 위대한 위업인가…. 후대여… 부디 너는 운명에 지지 말아라. 우리 종명자야말로 진정 [인간]이라는 것을 하늘에 알려라…!”
“….”
나는 흩어져 가는 양수진을 보며 착잡한 기분이 들었다.
그의 사상은 너무 극단적이었고, 듣는 이를 불편하게 할 정도였다.
하지만, 같은 고향에서 온 그가 정체불명의 존재에게 패배하고 저렇게 스러져 가는 것을 보니 마음이 좋을 수가 없었다.
“자아… 나는 간다. 후대여, 종명자들이 후대를 위해 남겨 놓은 전언은, 나뿐이 남긴 것이 아니니 계속해서 찾아보아라. 가장 보편적으로 찾을 수 있는 종명자의 전언은….”
스르륵!
그가 손을 뻗자, 나는 몸이 뒤로 밀려 나가는 것이 느껴졌다.
따뜻하고 빛이 비취는 곳을 향해 떨어져 나가며, 나는 양수진의 말에 집중했다.
“인과 연이 이름에 들어간 연인을 찾아라. 그들이 하나 되는 것을 축복해 주면, 최강(最强)의 종명자였던 존재의 잔영을 만날 수 있을 것이야….”
“…!!”
“유호덕의 찌꺼기가 그들에게 관심이 많으니… 힘을 기른 후에 혈음을 만나 보아라….”
츠츠츠츠츳!
나는 환한 빛에 휩싸이며, 어둠의 공간에서 빠져나왔다.
내가 마지막으로 본 것은 양수진의 사념이 어둠 속에서 흩어지며, 거대하고 깊은 존재가 어둠 속에서 나를 가만히 지켜보는 모습이었다.
찌이이잉―
머릿속으로, 양수진의 말이 울렸다.
―우리는 모두 언젠가는 명계에 갈 수밖에 없다. 후에 명계에 가게 된다면, 절대로 뒤를 보지 말고 최대한 빨리 곧고 좁은 길로 들어서라. 그것만이 네가 다음으로 갈 수 있는 길이리니….
그것을 마지막으로, 나는 눈을 떴다.
“허억…!”
저 멀리, 뇌운봉에서는 축제 분위기가 맴돌고 있었다.
전명훈이 연기기 7성에 도달한 것일 터.
내 체내에서는 원영 중기에 달한 수행이 느껴졌다.
차가운 밤공기와, 익숙한 광한계의 달이 내 머리 위 중천에 떠 있었다.
“허억, 헉….”
식은땀이 절로 흐른다.
‘돌아왔…다.’
“…살아 있군.”
마지막에 봤던 깊고 거대한 존재.
그 존재를 봤던 것 때문인지, 나는 ‘살아 있다’라는 것에 너무도 깊은 감사를 하게 되었다.
“…일단 다시 동부로 돌아가…서?”
철퍽!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려 했으나, 그대로 몸이 앞으로 고꾸라져 쓰러졌다.
“어…?”
순간 당황했으나, 이내 바로 알 수 있었다.
‘전신에 힘이 빠졌다. 그리고… 축축하군.’
전신이 식은땀 범벅이었다.
그리고 어쩐지 피부가 창백하고, 심장이 미친 듯이 두근거리는 것이 심상치 않았다.
‘명계에 갔던 것 때문인가? 아니… 그 깊고 거대한 존재를 본 탓이다….’
나는 그 사실을 깨달은 순간, 양수진이 내게 뭘 해 줬는지 알 수 있었다.
‘계속 나를 보호해 줬었군….’
천벌의 주인이란 존재를 한 번 직시한 것으로 회귀를 넘어서까지 저주가 따라왔는데, 그보다 더 위격이 높으리라고 예상되는 저승의 천존이 나를 직접 주시했다.
그런데도 고작해야 몸을 못 움직이는 것에 끝난 것은, 필히 양수진이 나를 그 존재의 시선으로부터 한참은 지켜 줬기 때문일 것이었다.
‘그래도, 일단 여기 엎어져 있을 순 없으니….’
나는 있는 힘을 다해 전신을 꿈지럭거렸고, 한참을 노력해 겨우 몸을 움직일 수 있었다.
나는 힘겨운 몸을 움직여 동부에 도착했고, 그대로 동부에 만들어 놓은 침상에 엎어져 기절해 버렸다.
축기기에 이른 후로는 딱히 잠을 잘 필요가 없었으나, 원영 중기에 이르고도 졸음이 쏟아질 만큼 명계에서 있었던 일은, 양수진의 비호를 받고도 어마어마한 피로를 야기했다.
* * *
다음 날이 되었다.
깜빡….
“…어.”
눈을 뜨자 보인 것은, 금벽호였다.
금벽호는 잔뜩 굳은 얼굴로 내게 말했다.
“손목을 줘 보거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