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Regressor’s Tale of Cultivation RAW novel - Chapter (24)
────────────────────────────────────
연단(2)
“김 형.”
“왜 그러냐.”
“왜 수도자란 놈들은 저리 무정(無情)한 겁니까.”
“···그걸 내가 알겠나.”
나는 수도자들의 행실을 생각하며 눈쌀을 찌푸렸다.
우리의 말 따위는 들은 척도 안 하던, 회귀 초반에 만나는 괴물들부터 시작해서.
막리세가의 잔혹무도한 단(團) 제조법.
그리고 죽은 이의 시체를 뒤지며, 시신을 묻어 주려는 우리를 오히려 나무라는 진씨세가 수도자들.
‘백 번 양보해서, 시체를 뒤지는 건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죽은 이를 묻어 준다는 것을 왜 시간 낭비라고 생각하는 걸까.
어째서 사고방식 자체가 다른 걸까.
“···어쩌면, 태어날 때부터 오기조원의 세상을 보던 이들이기에. 우리와는 사고방식 자체가 다를 수도 있지. 거기에 평생을 범인들은 사람 취급도 안 하던 이들이니.”
나는 답답함에 한숨을 쉬었다.
진씨세가 수도자들은 우리에게 다음 집결 장소를 알려 준 후, 마을에서 나와 막리세가 영지의 진법을 폐쇄한 후 비행법기를 타고 전부 어딘가로 날아가 버렸다.
우리는 현재 그들을 따라 달려가는 중이었다.
“···시야의 차이인가.”
아니면 태생적인 수도자들의 오만함인 것일까.
그도 아니면 수도자는 누구든 저렇게 되는 걸까.
나는 과연 내가 수도자가 되는 것이 맞을지, 잠시 고민을 해 보았다.
그렇게 우리는 진씨세가 수도자들의 인도를 따라, 막리세가의 또 다른 거점을 파괴하러 계속 이동하였다.
***
황실을 나온 지 5년이 흘렀다.
“흐하. 은현아, 봐라. 네 얼굴이다.”
“···.”
나는 저잣거리에서 떠돌아다니는 수배서에 내 얼굴이 적힌 걸 볼 수 있었다.
나뿐이 아니었다.
김영훈은 물론이고, 그를 따라나선 무수한 정사지간의 고수들이 수배서에 올랐다.
죄목은 역모죄였다.
“역모는 무슨, 그래 봤자 수도가문의 하부 세력 주제에. 진씨세가의 영지 내에 머무르는 우리를 어떻게 잡겠다는 건지. 거기에, 네가 만든 이 무공 덕에 운신에 거의 제약도 없고 말이다.”
“역용술이 도움이 되니 다행입니다.”
나는 5년에 걸쳐 내가 가진 의술 지식과 변용술 지식을 사용하여, 얼굴 근육을 조작해 용모를 바꾸는 역용술을 만들어 냈다.
덕분에 수배서가 내려져 있더라도 아무 문제 없이 거리를 나다닐 수 있었다.
“그나저나 다음 거점은 어디랍니까?”
“연산성 서쪽에 있는 구릉인데, 그곳에 막리세가의 연단로가 하나 있다고 하더구나. 이번에 없앨 연단로는 특히나 거대하다고 하니, 막리세가의 마도 수도자들이 훨씬 많겠지.”
“그렇겠지요.”
“그리고 내가 듣기로, 그곳에는 막리세가에서 기른 절정 고수들도 상당하다고 하더군. 단순 강시가 아닌 절정 고수들이기 때문에 우리도 조금 긴장해야 할 거다.”
절정 고수라.
나는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회귀햇수 35년차.
‘회귀 후 약 10년만에 절정 중기에 올라 검사를 손에 넣고. 25년째.’
내 경지는 변함이 없었다.
‘내 재능은, 삼화취정을 아직도 보지 못하는가.’
삼화취정.
해당 경지에 대한 단서는 김영훈은 물론이고, 그를 따르는 다른 삼화취정의 고수들 역시 꾸준히 알려 줘 왔다.
‘세 번째 색.’
적의(敵意)를 뜻하는 붉은 의념.
자의(自意)를 뜻하는 푸른 의념.
그 밖에, 세 번째 의념을 찾아내어 읽어야 도달하는 경지인 것이다.
그러나.
‘무공을 겨룸에 있어, 나와 너. 이 둘 외에 뭐가 있단 말인가?’
하지만 분명, 나와 너 이상의 것이 존재한다.
그것이 존재함을, 삼화취정이라는 경지 자체가 증명하고 있으니까.
욱신.
나는 욱신거리는 손의 비명을 무시하며, 검을 쥐고 거리를 거닐며 주변의 의념을 느꼈다.
다른 이들의 의념이 보인다.
내 의념이 보인다.
그러나 그 너머의 것은 아무리 눈을 치켜떠도 보이지 않았다.
‘깨달음은 아직도 찾아오지 않는군.’
그렇다고 김영훈에게 삼화취정에 대해 물어보아도, 나는 그의 말을 잘 이해할 수 없었다.
애당초 김영훈은 절정경에 오를 당시, 절정 초기, 중기를 밟지 않고 바로 삼화취정에 도달했으니.
그런 그에게 절정 중기에서 삼화취정으로 넘어가는 것을 묻는 것도 어불성설이었다.
물론 다른 삼화취정의 고수들에게도 어찌하면 삼화취정으로 넘어갈 수 있는지를 물었지만, 돌아오는 답은.
―무아지경(無我之境)에 빠져 보시게.
―너도 없고 나도 없음을 이해하면 된다네.
―순수한 무(武)에 대해서 탐구해 보면 된다네.
등의 형이상학적인 대답뿐이었다.
‘누구는 무아지경에 안 빠지고 싶어서 이 자리에 머무르고 있나.’
찢어질 듯한 손의 통증을 무시하며 검을 휘두르기를 수 년.
아무리 검신합일을 유지하고, 수 번이나 생사를 건너뛰는 싸움을 해도.
나에게, 팍 하고 경지를 건너뛰는 기적은 일어나지 않았다.
절정경에 이를 때만큼 절망적이지는 않았을지라도, 이 위로 올라가는 데엔, 또다시 엄청난 재능과 노력이 필요한 것이었다.
‘절정 고수들이 많이 포진하고 있다라···.’
연산성 서쪽에 위치한 막리세가의 거점.
‘절정 고수들이 많다면, 그들과 싸우며 조금이라도 무언가를 얻을 수 있겠지.’
나는 어쩐지, 이번에 진씨세가가 찾아낸 그 거점이 함정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진씨세가의 수도자 중 하나가, 어떤 경위로 거점을 알아냈는지, 거점의 무력 수준이 어떤지에 대해 듣고 내렸던 판단이었다.
‘막리세가 측에서도, 진씨세가와 김영훈을 잡고 싶어 한다.’
거기에, 황실의 배신자인 나 역시.
그렇기에 어쩐지 이번에는 만반의 준비를 하고 우리를 맞이할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걱정이 안 되는군.’
나는 옆에서 걷는 김영훈을 흘깃 보았다.
그는 최근에 한 권의 책을 쓰고 있었다.
책의 제목은, 조수월무결(眺修越武訣)이었다.
‘조수월무경 6권의 심득을 압축시키고, 다시 심화시켜 완전히 하나로 통합한 심득서라고 했었나.’
월수궁무록, 조수월무록, 조수월무경과 마찬가지로.
내가 들여다봐도 이해가 되지 않는 심득서였다.
하지만 어쨌든 한 가지는 확실했다.
김영훈은, 지난 삶의 경지를 뛰어넘었다.
그리고, 그런 그라면 이제 결단기 수도자 앞에서도 유의미한 타격을 입히고 빠르게 도망칠 수 있다!
‘함정도 소용은 없다.’
우리는 이번에도 유유히 그들의 거점을 파괴하고 나갈 것이다.
***
연산성.
‘내가 회귀 이전 최초의 삶에서 처음 떨어졌던 곳이군.’
굉장히 오랜만에 와 보는 곳이었다.
‘이곳에서 비누를 만들고, 약초를 캐고, 술을 빚고, 도적 떼한테 살려 달라고 빌고···.’
그때의 비참했던 기억들이 새록새록 떠오른다.
“자, 서쪽으로 가 보지.”
“···예.”
주 씨네 딸은 태어났을까.
금 대감네 집은 아직도 하인들이 고개를 뻣뻣이 들고 다니나.
성 씨네 감나무는 감이 여전히 잘 열릴까.
나는 얼마간 연산성을 바라본 후, 김영훈을 따라 서쪽으로 달렸다.
지금은 누구도 기억하지 못하는, 오직 나만의 추억.
이 추억을, 오직 나만 아는 것으로 바꿔 버린 것은 내 회귀 능력.
분명 기적과도 같은, 너무나도 고마운 능력이었지만,
그렇기에 이 능력은 없어져야만 했다.
앞으로도 나만 알고 있을 이 추억들은 쌓여만 갈 테고, 그럴수록 내 정신은 버티기 힘들어질 테니까.
그러므로 나는 반드시 이전 세계로 가, 내 능력을 없앨 것이다.
그리고.
‘그때까지, 나는 인간일 것이다.’
인간으로서, 인간의 생을 살아갈 것이다.
절대로.
막리세가의 수도자들처럼 마도에 물들어, 인간의 도리에 어긋나는 짓은 하지 않을 것이다.
물론.
‘더러운 마도 놈들이, 내 앞에서 더 날뛰게 만들 수도 없지.’
인간의 도리를 어긴 이들 역시, 손이 닿는 한 벌해야 할 것이다.
타닷!
김영훈과 함께 뛰어 도착한 곳에는 이미 적포를 입은 진씨세가의 수도자들과,
다른 절정 고수들이 모여 있었다.
“이번 막리세가의 거점은, 함정일 확률이 높다는 의견이 진씨세가의 장로회의에서 나왔다. 그리하여, 진씨세가 장로회의 3분지 1이 친히 친전을 나섰다.
그러므로 너희 무림인들 역시 만전을 다해 싸워야 할 것이다.”
적포의 수도자들 중에는, 상당한 의식 영역을 가지고 있는 축기기 수도자들이 상당 숫자 끼여 있었다.
“알겠소. 걱정하지 마시오. 나는 늘 최선을 다해 싸우고 있으니.”
“흠, 좋다. 그럼 진법을 열겠다.”
우웅―
진씨세가의 장로 중 한 명이 수결을 맺자, 허공이 이지러지기 시작했다.
우리는 진씨세가의 장로들을 따라 진법으로 들어갔고, 곧이어 이전과 마찬가지로 마을을 볼 수 있었다.
이번 마을은 여태까지의 막리세가의 영지보다도 두 배 정도는 거대했으며, 초가집뿐이 아닌, 기와가 쌓인 저택들도 상당수 보였다.
그리고.
“···역시 함정이었나.”
막리세가의 수도자들이, 마을 앞에서 진을 치고 수결을 맺고 있었다.
“결(結)!”
막리세가의 수도자들이 일시에 수결을 맺으며 주언을 외친다.
동시에, 지금까지와는 비할 수 없는 거대한 결계가 막리세가의 영지를 둘러쌌다.
“수(水)!”
동시에, 수십 명의 수도자가 다시 결인을 맺으며 또 다른 법술을 사용했다.
촤아아!
동시에 수도자들의 뒤쪽에서 거대한 물살이 흘러나오며, 결계 바깥에 있는 우리에게 덮쳐 왔다.
물에서는 시체 썩는 냄새가 물씬 풍겨 왔으며, 한 방울이라도 몸에 닿으면 큰일 날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그때였다.
“장로회는 앞으로!”
진씨세가의 축기기 수도자들이 앞으로 나서며 결인을 맺었다.
“염(炎)!”
화르르르!
불꽃의 장벽이 생겨났다.
거대한 불의 벽이, 수류를 막아서고, 그대로 증발시키기 시작했다.
“밀고 나간다!”
치이이이―
진씨세가의 수도자들이 한 발씩 앞으로 나서자, 거대한 불의 벽 역시 그에 맞춰 앞으로 나가기 시작했다.
“범인! 우리가 길을 낼 테니 너는 결계를 뚫어라!”
“알겠소!”
파앙!
김영훈이 땅을 박차고 달려 나갔다.
그러던 그는, 어느 순간 허공으로 뛰어올라, 다시 허공을 밟고 결계로 달려갔다.
그리고.
우웅!
김영훈이 손을 뻗자, 그의 손에 기운이 뭉치는 듯하더니, 그의 장심(掌深)에서 강기의 환(丸)이 튀어나왔다.
‘저게, 김영훈이 6권의 조수월무경을 압축하고 통합하며 얻은 경지.’
강기가 허공에서 복잡하게 뭉치지 않고, 체내에서 단출하게 방출되며 순식간에 환(丸)을 이룬다.
모르긴 몰라도, 그는 지난 삶의 김영훈이 얻은 경지에 도달하고, 다시 그 경지를 뛰어넘어 새로운 경지를 개척한 것이리라.
‘거기다가 지난번처럼 강기를 압축하는 데에 비해, 훨씬 준비 시간이 짧다!’
나는 전투 시작 전, 김영훈이 내 품에 넣어 준 조수월무결을 떠올렸다.
‘이 구결을 다시 다음 생의 김영훈에게 전달한다면.’
또 다시 저 경지를 뛰어넘을 것이다.
콰아아앙!
김영훈이 환을 날려, 결계를 때렸다.
또 다시 폭음이 울리며 광풍이 분다.
그러나, 이번에는 결계가 조금 흔들릴 뿐 요지부동이었다.
‘역시, 이번에는 막리세가도 준비를 단단히 했어!’
하지만 김영훈은 당황하는 기색이 없이 다시금 장심을 뻗었다.
그리고 또 다시 강기의 환이 튀어나왔다.
꽈아앙!
연속으로 결계에 폭음이 울린다.
결계에 금이 간다.
그리고, 김영훈은 다시 장심을 내밀었다.
콰아아앙!!
결계에 금이 많아졌다.
김영훈은 다시 장심을 내밀었다.
이어지는 공격에, 결계에는 점차 균열이 생겨갔다.
그리고, 어느 순간.
파캉!
김영훈의 공격을 견디지 못한 결계에 바람구멍이 뚫려 버렸다.
“전부 결계로 향해라!”
“막리가 놈들의 사업장을 불태워 버려라!”
진씨세가의 수도자들이 김영훈이 뚫은 구멍을 향해 달려들어 갔고, 절정 고수들 역시 그 틈을 파고들어 결계 내부로 들어갔다.
“죽어라, 이 마두 놈들.”
그리고, 나 역시 검을 잡고 결계 안으로 들어섰을 때였다.
파앙!
파공성이 들리며, 기다란 뭔가가 내게 짓쳐들어왔다.
극(戟)이었다.
카앙!
나는 검사를 뿜으며 극을 막아섰고, 뒤이어 내게 극을 내지른 자의 용모를 확인할 수 있었다.
그리고, 나는 동공이 흔들리는 것을 막을 수 없었다.
“···대주?”
어좌 암중 호위대 대주.
일전의 내 상관이, 나를 막고 있었다.
그리고 그의 뒤쪽으로, 암중 호위대의 대원들이 도열해, 병장기를 들고 있었다.
“···오랜만이구려.”
“···나는, 반역도 놈 따위는 모른다.”
부웅!
대주가 극을 휘둘러 왔다.
그의 극에서 일곱 개의 붉은 의념이 뻗어 나왔다.
나는 붉은 의념에 대항해 내 의념으로 그의 의념을 막았다.
붉고 푸른 나와 그의 의념이 허공에서 교차한다.
“반역도라니. 대주, 현 황실이 어떤 짓을 하고 있는지 아시오?”
“···알고 있다.”
부웅!
그가 극을 휘둘러 왔다.
나는 그와 의념의 간합을 겨루며 극을 피하고 검사를 늘어뜨려 휘둘렀다.
“알고 있다니. 알고 있으면서 충성을 한다는 말이오? 그게, 인간이 할 짓이오?”
“···우리는 인간이기 이전에, 황제 폐하의 수족이다. 수족은 생각하지 않는다. 명받은 대로 움직일 뿐! 폐하께서 너를 잡으라고 명을 내리셨으니, 나 또한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답답하기는! 황제의 눈에 우리 같은 범인은 그와 같은 인간이 아니오! 우리는 그의 백성이 아니라, 그가 기르는 가축일 뿐!”
대주가 극을 들고 회전해서 찍으며, 세 번을 찌른 후 다시 기사(氣絲)를 늘어뜨려 나를 베어 왔다.
나는 월악보를 밟아 대주의 공격을 피하며, 산수화의 초식으로 찌르기를 받아치고 검에 검사를 씌워 그의 기사를 받아쳤다.
“충의도 바칠 대상이 따로 있지, 그에게 충의를 바쳐 봤자 돌아오는 것은 힘없는 민초들의 죽음일 뿐이요!”
우리 둘의 간합이 얽힌다.
그리고, 내 간합을 뚫고 대주의 무릎이 내 허리를 노렸다.
“커헉!”
나는 대주의 발차기를 맞고 허공에 붕 떠서 한 바퀴를 돈 후 착지했다.
‘실력이 늘었다. 대주··· 저 자는.’
삼화취정의 경계에 있다!
“···그쪽은 다른가?”
그때, 대주가 음울한 얼굴로 내게 물어 왔다.
“너희가 함께하는, 진가의 전 황조 놈들은 다르냔 말이다.”
“그 마도 놈들보다는···.”
“아니. 너와 함께 온 그 진가 황조 역시, 수도자다. 현 황조와는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범인을 벌레로 보는 것은 똑같다! 네가 지금 옳은 편에 서 있는 듯싶으냐? 틀렸다! 그저 범위와 정도의 차이일 뿐.
그자들 역시 연국의 백성들을 갈아 넣는 건 똑같을 거다. 전혀 다를 게 없는, 똑같은 놈들이란 말이다!”
“···.”
붕, 붕, 붕!
그가 극을 휘두르자, 바람이 대주의 품으로 빨려들어 가는 듯했다.
의념이 회전하며, 내게 쏘아져 왔다.
‘막을 수 없다!’
내 기산심천처럼, 사전에 알아도 저지할 수 없는 성격의 공격이었다.
“어느 쪽이나 다른 게 없다면, 난 적어도 지금 바친 충의를 되돌리지 않겠다!”
극의 움직임이, 한 곳으로 귀일하며, 내게 쏘아져 온다.
그의 극에 있던 기사(氣絲)가 점차 강화되며, 진화하기 시작했다.
파아앗!
찬란한 빛이 터져 나온다.
강기(罡氣)!
“···그게 당신의 생각이라면.”
나는 내게 짓쳐들어오는 강기를 보며, 검에 힘을 뺐다.
“그 역시, 존중하겠습니다.”
검의(劍意)를 빼자, 내 검에 맺힌 검사(劍絲)가 사라지고 순수한 검기만이 남는다.
나는 그 상태로 내게 짓쳐들어오는 극에 검을 가져다 대고, 그 극의 힘을 내 검에 받아 내었다.
단악검법.
공곡전성!
“···!”
대주의 눈에 당황함이 어렸다.
그리고 나는 내 검에 담긴 그의 강기를, 한 바퀴 회전해서 그대로 되쳤다.
번쩍!
빛이 번뜩인다.
그리고, 휘광의 폭풍이 잦아든 자리에는, 오른손이 잘려 나간 대주가 서 있었다.
“···내 패배군. 역시 네 검법은 몇 번을 견식해도 기오막측해.”
“···제게는 과분한 검법이지요.”
“과분? 그럴 리가. 방금 전의 네 초식만 해도, 삼화취정의 깨달음이 있는 초식이었다. 내가 본 초식 중 가장 아름다운 초식이었어.”
그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
“평생을 무를 수련하며 삼화취정에 도달하기를 바랐건만, 도달해 보니 결국 수도자의 하위 호환에 불과했다. 전설상의 경지인 오기조원이 아닌 이상, 영원히 무림의 무공은 수도자들의 아류(亞類)에 불과하겠지. 하하하, 서은현. 알겠는가? 수도자들의 앞에서는 아무 것도 의미가 없다.”
“···.”
“이 무공에 아무것도 의미가 없으니, 결국 남은 것은 내가 의미를 부여하는 수밖에. 내가 부여한 의미는 충의(忠意)였고, 내가 충의를 바칠 대상이 지금의 황제였을 뿐이다.”
그는 어쩐지 서글프게 웃었다.
“너와 내가 가진 의(意)가 다른 것이, 아쉬울··· 뿐···이다.”
쿨럭, 쿨럭···.
대주는 피를 토하며, 그 자리에 쓰러졌다.
더 이상 생기가 흘러나오지 않았다.
죽은 것이었다.
“···너희는 왜 싸움에 끼어들지 않았지?”
나는 다른 암중 호위대 대원들을 바라보며 물었다.
나와 대주가 싸울 때, 그들이 끼어들었다면 나는 죽었을지도 몰랐다.
“···대주의 부탁이었습니다. 저희가 끼어들면, 부대주님이 암기와 독을 쓰기 시작할 테니, 순수한 무(武)를 겨룰 수 있게 해 달라고 하셨습니다.”
“···아직도 나를 부대주라 불러 주는군.”
“한 번 상사는 영원한 상사. 또한, 한 번 충(忠)을 바친 대상 역시 영원한 충성의 대상입니다.”
“그래, 너희 역시 현 황조에게 충의를 유지하겠단 거군.”
나는 내 이전 부하들을 향해, 서글픈 미소를 지어 주었다.
“미안하다.”
오늘 너희를, 죽여야 할지도 모른다.
파바밧!
내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암중 호위대 전원이 병장기를 꺼내 들고 내게 달려들었다.
촤악!
나는 우선 독을 뿌리고 암기를 꺼내들었다.
투괴암기술(鬪怪暗器術).
쌍살사(雙殺蛇).
피잉, 피잉!
두 개의 암기에 각기 다른 효과를 지닌 독을 묻혀 대원들에게 던졌다.
총 열한 명의 대원들은 전부 독이 묻은 암기에 부딪히지 않고 최소한의 동작으로 피했다.
단악검법.
산수화.
입산.
유릉.
심산.
산수화로 검을 난무한 후, 하단세로 전환해 균형을 노리고, 구불구불한 찌르기로 견제한 후.
파고들어 벤다.
“하압!”
그러나 대원들은 빠르게 피한 후, 각자 병기를 내게 휘둘렀다.
투괴암기술.
삼두사(三頭蛇).
슈칵!
암기 세 개를 왼손에 끼운 후 가장 가까이 있는 대원에게 호조처럼 휘둘렀다.
세 번을 연이어 휘둘러 거리를 벌린 후, 암기에 독을 묻혀 시간차로 쏘아 냈다.
피잉, 피잉, 피잉!
내게 달려들던 세 명의 대원이 암기를 피하는 사이, 그 뒤에서 오던 대원들이 그들을 뛰어넘어 병장기를 휘둘렀다.
검, 도, 참마도, 연검, 비수.
각기 다른 무기가 나를 향해 짓쳐들어왔다.
단악검법.
괴암.
붕, 붕, 붕!
나는 몸을 회전하며 공방 일체의 태세로 검을 휘둘렀다.
동시에 주머니에서 독분(毒粉)을 꺼내 주변으로 퍼뜨렸다.
투괴암기술.
환무사(幻霧蛇).
독분의 사이사이로, 또 다른 독을 묻힌 암기들이 날아가 대원들을 노렸다.
녀석들이 암기를 피하려는 틈을 타.
단악검법.
입산.
하단세로 전환하여 균형을 노렸다.
“크윽!”
“제길, 이게 같은 절정 중기···?”
“과연 부대주님이십니다.”
우득.
나는 해독단을 꺼내 씹으며 검을 으스러지도록 잡았다.
손이 깨질 듯한 통증을 호소해 왔으나 그대로 무시하며.
“입 열지 마라. 살고 싶으면 귀식대법을 써. 방금 뿌린 독분은 피부로는 중독되지 않으니까.”
빠르게 면포에 마비산을 묻혀, 검 날에 바른 나는 대원들을 향해 다시금 기수식을 잡았다.
‘검법이 아닌, 도법(刀法)이지만.’
같은 뿌리이기에 비슷하게는 사용할 수 있다.
단맥도(斷脈刀).
산바람.
오연(五連).
피잉!
가공할 속도의 찌르기가, 반응하기도 힘든 속도로 다섯 번 허공을 갈랐다.
“끅, 끄극···!”
다섯 명의 호위대원들이 마비산을 묻힌 칼을 맞고 자리에 쓰러졌다.
‘아직 여섯 남았다.’
내게 달려드는 여섯 명의 대원들을 보며, 나는 다시 암기를 꺼내 쥐었다.
투괴암기술.
홍사(紅蛇).
앞서 달려오는, 쌍검을 든 대원을 향해 세 개의 암기가 시간차를 두고 날아간다.
첫 번째 암기는 그의 미간으로,
두 번째 암기는 바로 그 뒤쪽에 이어서 그의 발목으로.
세 번째 암기는 다시 그 뒤에 이어 그의 단전으로.
그 암기들의 의념의 궤도는 마치, 한 마리 붉은 뱀을 보는 듯했다.
티딩!
그의 쌍검이 두 개의 암기를 쳐 냈으나, 세 번째 암기는 쳐 내지 못했다.
나는 득달같이 달려들어 월악보를 사용해 월악을 사용했다.
촤악!
대원의 가슴 앞섬과 함께, 그의 피부가 약간 베였다,
곧이어 그는 마비산에 중독되어 그 자리에 쓰러졌다.
“계속 덤빌 거냐.”
나는 남은 나머지 대원들을 향해 물었다.
“역시 부대주님이십니다.”
“능히 백전노장이시로군요.”
“그 막대한 실전 경험에서 오는 실력 차이는 도무지 어찌할 수 없습니다만···.”
그들은 각기 창, 월도, 쌍수대검, 권(圈), 검 등의 병기를 들고 나를 보며 웃었다.
“수도자들이 어차피 모두 똑같다면, 지금 충의를 바친 대상한테나 잘 하자는 대주님의 생각에 너무 공감이 되어서 말입니다.”
나는 씁쓸하게 웃었다.
“맞는 말이다.”
어차피 진씨세가가 황조를 되찾는다 한들, 어쩌면 범인들의 처지는 달라지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조금은, 조금은 달라지리라는.
그런 얄팍한 희망을 품으며, 내 행동을 밀어붙이는 것일 뿐이었다.
“모두 덤벼라.”
권이 내게 날아왔다.
창이 내게 짓쳐들어온다.
월도가 권의 반대쪽에서 휘둘러진다.
쌍수 대검을 쥔 녀석이 창의 반대편에서 검을 휘두른다.
검을 쥔 녀석은 날듯이 뛰어올라 나를 내리찍어온다.
그 사이에도 무수한 의념의 간합이 나를 노린다.
붉은 선과 푸른 선이 수많은 궤도를 그리며 내 주변에서 튀겼다.
뇌가 익어 버릴 것만 같았다.
어떻게 하면 이 위기에서 빠져나갈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그리고, 나는 문득 그 무수한 간합 속에서, ‘세 번째 색’을 보았다.
푸콱!
창이 내 허리춤을 스치고 지나갔다.
창에 실린 기운에 허리춤의 살이 그대로 뜯겨 나갔다.
투괴암기술.
삼두사.
피잉!
나는 세 개의 암기를 손가락에 끼운 채, 암기에 마비산을 묻혀 창을 휘두른 대원에게 하나를 던졌다.
내 암기는 아주 간단하게 녀석의 간합을 뚫고 어깨를 맞혔다.
권(圈)이 회전하며 내 머리를 노린다.
나는 암기를 던져 권의 궤도를 꺾고, 권을 던진 녀석에게 마지막 암기를 던졌다.
이번에도 역시 내 암기는 녀석의 간합을 쉽게 뚫고 그의 허벅지에 꽂혔다.
두 명의 대원이 전투불능이 되었다.
남은 건 셋.
뭔가가, 보인다.
나와 저들의 간합 사이.
붉지도, 푸르지도 않은 세 번째 색이.
슈칵!
쌍수 대검이 오른쪽에서 왼쪽 아래로 휘둘러진다.
나는 허리를 꺾어 대검을 피했다.
그러나 대검에 맺힌 검사에 내 이마에서부터 왼쪽 턱까지, 기다란 자상이 생겨났다.
월도가 내 허리를 노리고 베어 온다.
위로 피하면 위에서 내리찍는 녀석에게 꼬챙이가 될 거고, 아래로 피하면 다음 기수식을 준비하는 쌍수 대검에게 베일 것이다.
하지만 붉고 푸른 간합이 이어지는 와중.
생사를 건 싸움 속에서, 내 시선은 막 나타나기 시작하는 세 번째 색에 가 있었다.
단악검법.
유곡.
천지.
유곡의 초식으로 검으로 내리찍는 녀석의 궤도를 비틀어 흘리고, 천지로 월도를 휘두르는 녀석의 행동을 찰나간 정지시킨다.
그 사이, 다시 기수식을 완성시킨 쌍수 대검의 대원이 내게 다시 대검을 휘둘렀다.
나는 찰나, 월도와 검을 든 대원의 팔 다리에 마비산이 묻은 암기를 날린 후.
쌍수 대검의 대원을 향해 홀연히 검을 내밀었다.
단악검법.
공곡전성!
청색과 적색이 겹치는 그 사이.
그곳에 나타난 색상은, 자색(紫色)이었다.
대원의 의념과 내 의념.
둘 중 누구의 것인지 도무지 알 수 없는 그 자색의 의념이, 나와 그의 사이에서 내게 새로운 궤도를 보여 주고 있었다.
나는 그 처음보는 궤도를 따라, 공곡전성의 초식으로 쌍수 대검 대원의 초식을 되쳐 버렸다.
카앙!
내 검에, 녀석의 대검이 그대로 잘려 나갔다.
대원은 무기가 잘려 버리자 품에서 비수를 꺼내고 달려들려는 듯 했지만, 내가 암기를 꺼내 던지는 것이 더 빨랐다.
“커, 커헉··· 마치, 그 움직임. 대주님을, 뵙는 것 같았습니다.”
“···.”
“···저희를 전부 죽이실 수 있으셨잖습니까. 그랬다면 훨씬 편하게, 상처 없이 가능하셨을 텐데. 왜 그런 어려운 길을 택하신 겁니까···? 죽이진 않더라도, 팔다리 하나쯤 자를 각오를 하셨다면, 훨씬 더 제압이 쉬웠을 텐데···!”
나는 쓰러진 쌍수 대검의 대원에게, 짧게 말해 주었다.
“너희가, 나를 부대주라 불러 줬잖느냐.”
“···큭. 재밌으신 분이십니다.”
“···.”
“방금 그 움직임. 대주님의 것과도 비슷해 보였습니다. 간합을 넘어서 갑작스레 치고 들어오는 공격··· 붉은 빛이 보이지 않았는데 갑자기 간합을 뚫고 들어오는 그 능력···. 새로운 시야를 얻으신 겁니까···? 삼화취정에··· 오르신 겁니까···?”
나는 그 질문에, 씁쓸하게 고개를 저었다.
“아니다. 미안하지만, 나는 그 경지에 이르지 못했다.”
“그럼···.”
“감을 잡고 있다. 서서히, 그 영역에 접어들고 있어.”
세 번째 색상.
자색의 의념은, 간혹 보였다 안 보였다 했다.
계속해서 안정적으로 보이지 않았다.
그렇다면, 자색을 안정적으로 보기 위해서는.
계속해서 생사를 건 싸움이 필요하리라.
그리고 그때.
누군가가 내게 다가왔다.
이번에도 내게 익숙한 이였다.
암중 호위대로 있을 당시, 두세 번 호위해 본 대상.
황태자.
막리현이었다.
“놀랍군. 부대주의 실력이 이 정도라니. 아버님이 나를 보내신 이유가 있으셨군.”
“오랜만입니다. 태자 전하. 아까부터 보고 계셨다면 어째서 중간에 안 끼어드신 겁니까?”
“어째서기는, 내가 끼어들면 재미가 없지 않은가? 그리고 태자라 부르지 말게. 오늘 나는 막리세가의 방계 출신을 대표해서 온 거지, 황족의 신분으로 온 게 아니니까.”
“재미라··· 자칫하면 호위대 전원이 제게 죽었을 수 있었습니다만. 태자 전하께는 그게 재미입니까?”
“태자라 부르지 말래도··· 뭐. 자네가 자꾸 태자라 부르니, 한 가지 알려 주겠네. 왜 내가 황태자가 된 건지 아는가?”
황태자가 그의 영역을 부풀리기 시작했다.
그의 붉은 의념이 주변 공간을 잠식한다.
“내가, 어린 나이에 아버님과 같은 연기기 사성에 이르렀기 때문이지! 삼화취정이니 뭐니 해도, 연기기 일성, 이성, 삼성 정도들과 겨우 맞서는 수준이네. 자네가 이 나를, 연기기 사성에 다다른 나를 감히 이길 수 있겠는가?”
“···다시 묻겠습니다. 이게 재밌냐고 물었습니다.”
“쯧, 재미없기는. 이제 그만 말하고 덤비게나.”
하여간, 황제를 호위할 때도 사사건건 암중 호위대에게 말을 걸던 짜증나는 녀석이었다.
말을 하면서도, 늘 우리의 필요성에 의문을 표하던 잘난 놈이었었다.
하지만, 저 녀석에게는 그런 심술을 부릴 자격이 있었다.
강하니까.
무림인 따위는 몇이 덤벼들든, 상대가 안 될 정도로 강하니까.
일반 삼화취정 고수들조차, 저 녀석을 상대하려면 목숨을 걸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나는 삼화취정에 들어간 것도 아니고, 그저 경계를 막 밟은 상황.
녀석에게 대적하다간, 필히 죽는다.
하지만.
어째서일까.
내 입가에, 웃음이 맺혀 있다는 게 느껴진다.
‘아아, 그래.’
죽어도 좋기 때문이다.
깨달음의 실마리를 얻었는데, 바로 다음 순간 죽는들 대수겠나!
“···잘 있어라, 암중 호위대 전원. 나는 이제··· 죽으러 가겠다.”
오늘 아침에 깨달음을 얻었으니.
저녁에는 죽어도 좋다.
이 깨달음을 체화하기 위해서.
나는 오늘 죽을 것이다.
나는 황제의 아들, 황태자를 향해 검을 들고 달려들었다.
미약하게 보이는 자색의 빛을 보며, 나는 수 번의 회귀를 하면서도 엄두를 못 냈던 한 가지를, 어째선지 할 수 있을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나는 그대로 검을 휘둘렀다.
그동안 머릿속에 박아 두기만 하고, 절대 이해할 수 없었던 무학.
천무(天武)에 이르는 기록(錄)!
황태자의 붉은 의식 영역으로 진입하며, 나는 그토록 바라 왔던 무공을 사용했다.
“월수궁무록(越修窮武錄).”
다음 순간, 서은현의 신형이 마치 허깨비처럼 사라져 버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