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Regressor’s Tale of Cultivation RAW novel - Chapter (241)
인간은 무엇인가 (8)
“험험….”
홍수령의 적나라한 발언에 금벽호는 헛기침을 하며 나를 바라보았다.
“금은현 장로는 어찌 생각하는가?”
“…조금 당황스럽기는 하군요. 다만 그녀와 혼인은 하지 않더라도 친분을 쌓는 것은 나빠 보이지 않습니다. 홍 원로님의 감정도 있을뿐더러, 저 역시 헌 선자가 무슨 의도로 청혼을 했는지 모르니 일단은 지켜봐야 할 것 같습니다.”
“흐음… 알겠다.”
금벽호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일단 금은현 장로와 홍수령 원로의 관계를 생각하고, 그리고 헌위 선자가 어떤 의도로 갑자기 청혼을 한 것인지 모르니, 혼례는 정중히 거절하는 것으로 하지. 오늘의 회의는 끝이다.”
그 말을 끝으로 금벽호가 축객령을 내렸고, 금뢰전 안의 원로진들은 저마다 비둔술을 써서 각자의 동부로 돌아갔다.
그리고 금뢰전 안에는 나와 홍수령, 그리고 금벽호만이 남게 되었다.
“홍 원로와 금 장로는 할 말이 남았는가?”
금벽호의 질문에 홍수령이 고개를 끄덕였다.
“예. 일단, 금은현 장로의 혼인 외에도, 제가 본 헌위라는 이에 대해서 말하고자 합니다.”
“말해보게. 홍 원로의 눈은 믿을 만하니.”
홍수령은 고개를 끄덕이며, 차가운 눈으로 말했다.
“헌위 선자는, 금은현 장로를 순수한 물건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금은현 장로뿐이 아닌, 본문까지도 말이지요.”
그에 나 역시 고개를 끄덕였다.
오늘 홍수령이 헌위에게 이를 드러내고 시비를 건 것은 단순한 질투심 같은 게 아니었다.
의념을 볼 수 있는 나와 그녀의 눈에는 분명하게 그녀의 감정이 보였다.
‘완전히 나를 물건과 수단으로 생각하는 의념. 그리고….’
나는 그녀의 심상을 떠올리며 속으로 쓴웃음을 지었다.
서휼만큼은 아니었지만, 상당히 삭막한 심상을 지니고 있었다.
굉장히 계산적인 성격에, 본래 모습을 감추고 있는 사람이었다.
한 마디로, 오늘 우리가 본 그 ‘말괄량이 기질’은 모조리 연기였다는 것이었다.
‘그나마 서휼에 비하면 새끼 도마뱀 정도로 귀여운 수준이긴 하다만….’
그런 심상이라면 언제든 뒤통수를 맞을 수 있을 듯싶은 심상이었다.
홍수령 역시 그녀의 의념에 대한 것을 금벽호에게 고하며 말했다.
“만약 그녀와 금신천뢰문 간에 친분을 맺더라도, 조심해야 합니다. 그런 의념을 지닌 자는 절대 믿을 수 없는 이들뿐입니다.”
“흠, 알겠네. 참고하지.”
금벽호는 홍수령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홍수령은 나를 보며 말했다.
“이제 그만 돌아가지.”
“아, 홍 원로님 먼저 돌아가시지요. 저는 태상장문께 한 가지 더 전할 말이 있습니다.”
“흠, 그러냐. 나도 오늘 시험해 볼 게 있으니, 태상장문과 일을 다 보면 내 동부로 오거라.”
“알겠습니다.”
홍수령은 공간을 열고 자신의 동부로 돌아가 버렸다.
“그래, 할 말이란 게 무엇인가, 금 장로.”
“예, 태상장문님. 태상장문께선, 제가 저 혼자의 힘으로 비승했다는 것을 아실 겁니다.”
“그래, 분명 그랬지.”
천뢰번은 결국 금신천뢰문에서 떼어 놓아야 한다.
하지만, 나는 이제 금신천뢰문의 차차기 장문인이며 원영기 대원만의 인재이자 동시에 금신천뢰문의 모든 공법을 익혀 낸 천재였다.
“제가 비승하게 된 것은, 사실 시조이신 금신자 님의 도움이었습니다.”
“…!”
물론 엄밀히 말하면 비승할 수 ‘있었던 것’은 내 답천의 무형검과 봉명인의 축복, 그리고 원유 덕이었다.
하지만 어쨌든 ‘비승하게 된 것’은 양수진이 승천문에 남겨놓은 안배 때문이었으니 틀린 말은 아니었다.
하지만 중요한 말은 빼놓고 말하니, 내가 비승할 수 있었던 것이 마치 금신자 때문이라는 것처럼 들렸는지, 금벽호는 몸을 부르르 떨었다.
“금신자 님께서 승천문 입구에 남겨 두셨던 비석을 아시는지요? 그곳에 그분의 안배가 있었습니다. 그 덕에 제가 광한계로 오게 되었지요.”
“…!”
“제가 금신천뢰문을 선택한 것 역시, 금신자 님의 안배를 받았기에 그분의 후예인 금신천뢰문에 가는 것이 맞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 말에, 금벽호는 몸을 부르르 떨더니 탄성을 질렀다.
“그랬군. 그랬던 거였구나…!”
금벽호는 이제야 이해된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처음 네 자질을 검사했을 땐 오영근이었는데, 어째서 비승한 후에는 뇌성체였는지… 그렇군! 시조님께서 네게 뇌성체를 부여한 것이었구나!”
‘오….’
금벽호는 내가 생각하지 못했던 것까지 완벽히 소설을 짜 맞춰 주었다.
“뭐, 어떻게 보면 그런 셈이지요.”
“그래, 금은현. 그래서 내게 전달할 말이 무엇이냐?”
“그것은….”
나는 잠시 뜸을 들였다.
천뢰번은 떼어 놓아야 하지만, 사실 가장 좋은 것은 금신천뢰문의 인물들이 직접 천뢰번을 수계에 가져다 놓게 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나는 잠시 고민했다.
일전 내 동료들이 서휼과 괴군의 품에 들어가지 않게 하기 위해 등선향 초입에서 힘을 쓴 적이 있었다.
결과는 대실패였다.
운명이 강제로 움직여, ‘어떤 방식으로든’ 동료들은 각자 ‘정해진’ 인물들에게 잡혀갔다.
나는 양수진의 말을 떠올렸다.
이 세상의 운명은 정해져 있다.
그렇다면, 전명훈이 금신천뢰문에 온 것도 정해진 운명이며, 금신천뢰문이 진선에 의해 멸망할 것 역시 정해진 운명이었다.
‘…내가 정해진 운명을 바꾸려 할 때마다, 언제나 운명이 꼬이며 다시금 복원력에 의해 정해진 결과로 바뀌게 되었다.’
이번에도 그럴까?
전명훈이 진선에게 금신천뢰문을 잃고, 정신이 나가 버려 낙뢰자가 되는 것 역시 ‘정해진’ 운명이라면 내가 바꾸려 해 봤자 의미가 없을 수 있었다.
‘의미가 있을까?’
“뭘 말하려는 거냐?”
내가 뜸을 들이자, 금벽호는 답답하다는 듯이 물었다.
나는 그를 쳐다보았다.
‘운명이 정해져 있기에, 자유 의지가 없는 비인간….’
그것이 양수진의 의견이었고, 나는 그의 의견에 좋든 싫든 공감할 수밖에 없었다.
말 그대로 운명이 흘러가며 ‘어떻게든’ 정해진 결과로 변하는 것을 몇 번이나 봐 왔기 때문이었다.
그렇다면, 내가 비인간에게 아무리 설명해 봤자 의미가 있는가?
내가 그를 설득하는 것은 어떤 의미가 있는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나는 말하기로 했다.
“…저는, 시조님의 안배에 따라, 그 비석에 적혀진 ‘진짜’ 내용을 보았습니다.”
“비석의 진짜 내용? 그건 본문에도 전해져 내려오는 내용으로….”
“그 내용은 거짓입니다.”
나는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나는 흑색성에서 본 비석의 윗부분의 내용을, ‘양수진의 안배’로 보았다며 그에게 설명해 주었다.
“…이상이, 비석의 원래 내용입니다.”
“…선보는 진선과 이어져 있다. 그러니 가지고 올라가면 아니 된다라….”
내 말에, 금벽호는 진중한 표정을 지었다.
‘먹힌 건가.’
고작해야 결단기 수준이었던 이전과는 달랐다.
오기조원으로 일반적인 수도자들보다 조금 큰 의식을 가지고 있는 데에다, 기묘성심전으로 의식을 단련해 원영기 대원만이지만 천인기에 달하는 의식을 지닌 나였다.
거기에 원영기의 극한에 10년 만에 이르고, 금신천뢰문의 모든 공법을 익히는 데에 성공했으며 금신천뢰문 차차기 장문인에 내정된 존재.
그것이 나였다.
한 마디로, 내가 금벽호에게 지니는 비중은 과거와는 차원이 달랐다.
또한 그런 내가 ‘양수진의 안배’를 내세우며 설득했기에 금벽호 역시 쉽사리 부정할 수는 없는 입장이었다.
“…그래서, 네 입장은 결국 천뢰번을 다시 수계에 가져다 봉인해야 한다는 것이더냐?”
“그렇습니다.”
“흐음….”
금벽호의 얼굴에 그늘이 졌다.
“….”
“….”
금뢰전에 침묵이 맴돌았다.
그리고 얼마나 침묵만이 자리를 지배했을까, 금벽호가 입을 열었다.
“어째서, 시조님의 성씨인 ‘양’ 씨가 아닌 ‘금’씨가 본문의 장문에게 내려오는지 아느냐?”
“그건 모릅니다.”
“네 스승인 진휘가 설명해 주었을 거다. 본문의 모든 공법은, 결국 ‘천상금뢰지체를 모방’한 공법이다. 한 마디로, 천상금뢰지체가 사용할 수 있었던 권능을 공법으로 열화해서 재현한 것이 본문의 공법들인 셈이지. 하지만… 천상금뢰지체는 단순히 혈통으로 전해져 내려오는 체질이 아니다. 말 그대로 하늘의 선택을 받은 이가 천기를 받아 가지고 태어나는 체질이지. 여타의 체질도 마찬가지다. 네 뇌성체나, 홍령체 등도 대부분 비슷하지.”
금벽호의 설명이 이어졌다.
“너도 알다시피 본문의 모든 공법을 합치면 나오는 멸신겁천은 일종의 제례 의식이다. 그리고, 역대 장문인들에게만 내려오는 사실이 하나가 있지. 그건 바로 금신천뢰문 자체가, 시조님께서 안배하신 일종의 ‘제의’라는 사실이 그것이다.”
“….”
“그리고 시조님께서 역대 장문에게 내리라고 지시한 ‘금’씨의 성 역시, 일종의 제의의 준비물이라고 한다. 어떤 제의인지는 모른다만, 이름에는 운명이 깃들어 있고, 이름을 개명함으로써 이뤄지는 제의이니 운명과 관련된 제의겠거니 했지.”
‘제의 때문에 안 된다는 건가?’
그 역시 문제는 없었다.
양수진 본인이 실패했다고 여기는 제의이니, 이것도 말해 주면 되리라.
“중요한 것은, 이 ‘제의’가 ‘금’씨의 성과 연결이 되어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시조께서는 천뢰번을 제의에 쓰는 깃발로써, 천뢰번에 운명을 연결해 놓았다는 것이야.”
“…?”
나는 어쩐지 이어지는 금벽호의 말에서 불길한 예감을 느꼈다.
“천상금뢰지체나 뇌성체, 혹은 일반적인 체질은 혈통으로 이어지는 게 아니라 천기로 이어진다. 물론 기문법재 같은 예외도 있긴 하지만… 대다수의 진기한 자질은 그런 식이지. 하지만, 소해가 가지고 태어난 ‘벽력체’ 등은 다르다.”
금벽호의 말이 이어졌다.
“금씨를 지닌 이들은 그 혈통들이 ‘벽력체’를 타고나게 된다. 그 성씨 자체에 운명과 천기가 깃들어 있어 혈통에게 체질을 부여하는 식이지. 그리고 후손이 이어지다 천기가 약해지면 그때부터 벽력체의 체질이 끊기고, 벽력체를 부여받지 못하는 후손부터는 ‘금’씨의 성을 더 이상 잇지 못한다. 아마 본래라면 소해의 자식부터는 벽력체를 잇지 못하고 다른 성씨를 가져야 하겠지. 뭐, 만약 전명훈과의 사이에서 자식을 가진다면 어떨지 모르겠다만….”
그는 한숨을 쉬었다.
“여하튼, 내가 이런 얘기를 하는 것은 한 가지다. 그런 ‘벽력체’라는 체질을 부여해 주는 운명의 인력이 어디에서 나오는지 아느냐?”
나는 금벽호의 말의 본의를 알아채고 얼굴을 굳혔다.
“…천뢰번이군요.”
“그래. 본문에 있는 금씨들만 해도 어마어마하다. 역대 장문들이 계속해서 후손을 남기고, 그 후손들이 또 후손을 남겼기 때문이다. 본문의 제자 중 1할 2푼 정도가 금씨 성을 지녔지. 한 마디로, 천뢰번을 하계에 둬야 한다면, 그 많은 제자들을 전부 다시 하계에 데려다 놓아야 한다는 말이다. 그들 대다수가 벽력체에 의지해 수행을 쌓았기에, 천뢰번이 하계로 돌아가면 벽력체가 소멸되고 쌓은 수행 자체가 모조리 무너질 수 있다!”
“…허.”
“본문의 원로와 장로들 중에서 금씨 성을 지닌 이들이 얼마나 많은지도 알고 있겠지. 문파 전체로 보면 1할 정도지만, 장로와 원로진 중에서는 오히려 7, 8할 넘는 비중을 지닌 것이 금씨들이다…. 한 마디로, 천뢰번을 하계에 봉인한다는 것은 본문의 주요 전력의 7, 8할을 다시 하계에 돌려보내야 한다는 것이다.”
나는 어이가 없어서 말을 금치 못했다.
천뢰번을 하계에 가져다 놓는 건 그럴 수 있다.
하나, 그렇게 되면 당장 문파의 전력이 어마어마하게 깎여 버린다.
그러나, 나는 금벽호의 말에서 이상한 점을 눈치챘다.
“잠깐, 그렇다면 여태껏 금신천뢰문은 비승을 어찌했습니까?”
“음?”
“뇌운각에 들어갔던 배신자에 대한 얘기는 들었습니다. ‘금위’라고 하셨었지요. 이전에도 금씨 성을 지닌 이들이 비승했다는 것일진대, 그들도 비승한다면 수행을 잃어버리는 게 아닙니까?”
금벽호는 한숨을 쉬며 고개를 저었다.
“본문에는 시조령이라는 게 있지.”
우웅!
금벽호는 품에서 금빛이 도는 옥패를 하나 꺼냈다.
옥패에는 시조령이라는 글자가 음각되어 있었다.
“시조령은 백 년에 한 번밖에 쓸 수 없는 물건이다. 본문의 중요한 일을 처리하거나, 혹은 문파의 대역죄인을 파문할 때에 쓰이는 법보이다.”
그의 말이 이어졌다.
“우리 문파의 천인기 원로는 대다수가 ‘금뢰’ 혁대를 받으나, 극소수는 ‘천뢰’의 백색 혁대를 받는다. 그리고 그 ‘천뢰’의 혁대는 시조령의 힘을 써서 천뢰번의 힘을 빌려 만드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래, 천뢰의 혁대를 받은 이는 비승할 수 있을 만큼 자질이 뛰어난 이들로만 선별되어 천뢰의 혁대를 받는 것이다. 그리고 이 천뢰의 혁대를 받은 이들은 천뢰번과 떨어져 다른 계로 가게 된다 해도 혁대의 힘이 금씨의 성을 유지시켜 주지.”
“….”
“시조령의 힘을 써 천뢰 혁대를 모두에게 줄 만큼 많이 만들려면 수만 년은 걸린다.”
“…그렇습니까.”
나는 안색이 어두워졌다.
금벽호는 내 안색을 보며 말했다.
“시조님의 말대로 진선이 본문을 노릴 것 같아 두려운 것이냐?”
“…예.”
“걱정하지 말아라. 아주 까마득한 예전부터, 광한, 진마, 고력, 명귀, 자금의 계는 진선들이 잘 찾아오지 않는 폐쇄된 계면이라고 전해진다. 흑색귀골곡에서 예전에 본 자료다만, 진선들이 이곳을 찾아오려면 상당한 시간이 필요하다고 전해진다 하더구나. 아무리 부족해도 천 년은 시간이 있을 터이니, 그 안에 전명훈을 키워 낸다면 천상금뢰지체의 힘으로 천뢰번에서 시조령 없이도 힘을 뽑아낼 수 있을 테니, 그 후에 천뢰번을 네가 말하는 대로 수계에 봉인하면 될 터다.”
“….”
금벽호는 걱정하지 말라는 듯이 내게 다가와 등을 두드려 주었다.
그리고,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생각했다.
‘이 역시 운명인가.’
마치 내가 정해진 운명을 비트는 것은 용납할 수 없다는 듯이, 세계 자체가 내 행보를 막는 느낌이었다.
‘고작해야 백 년 안에 천벌의 주인이 찾아온다고 하면….’
그건 믿지 않을 것이다.
나는 금벽호의 의념을 읽어내렸다.
안 그래도 내가 지금 천뢰번을 수계에 봉인하자고 한 얘기를 꺼낸 순간부터 걱정과 불안 등이 그의 뇌리를 지배하고 있었다.
한순간에 문파의 주요 전력을 모조리 잃을 수 있다는 걱정인 듯했다.
안 그래도 신경이 예민한데, 내가 문파의 전력을 잃게 되더라도 백 년 안에 진선이 쫓아오니 극단적인 처방을 해야 한다고 하면 분노할 터였다.
거기다가 흑색귀골곡에서 봤다고 했을 때, 걱정의 의념이 사라진 것으로 보아, 나름 천 년이란 시간에 근거와 자신감이 있는 듯했다.
그렇다고 내가 천벌의 주인은 ‘어선’이니 천 년이란 시간은 의미 없다고 할 수도 없었다.
내가 ‘어선’들의 존재를 안 것만으로 몸이 촛농처럼 녹아내렸고, 양수진의 보호 덕택에 겨우 살아났는데 금벽호에게 그런 것을 알려 주면 금벽호 역시 어찌 될지 몰랐다.
‘…결국 어쩔 수 없는가.’
나는 금벽호에게 인사를 한 후 일단 금뢰전을 나왔다.
‘…천뢰번을 훔쳐야 하는가.’
내게 주어진 선택지는 이제 두 개였다.
첫째, 원래 계획을 강행해서 문파의 전력 대다수가 수행을 모조리 잃든 말든 천뢰번을 수계에 가져가 봉인한다.
둘째, 전명훈을 원래 역사보다 강력하게 키워서 천상금뢰지체의 힘으로 금벽호가 말한 방식을 써 부작용을 없앤 후 봉인한다.
“일단, 두 번째로 가야겠군.”
나는 전명훈의 동부가 있는 곳을 바라보았다.
단순히 내가 천인기에 드는 걸 목적으로 하지 말고, 전명훈도 어떻게든 천인기에 들게 만든다.
전명훈의 동부로 귀를 기울였다.
요수공법을 익힌 내 청력은 전명훈의 동부에서 나는 쌍수의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저런 흘러빠진 방식으로 수련해서는, 전명훈은 천벌의 주인이 오기 직전까지 결단기다.’
조금 더 강압적인 방식으로 수련할 필요가 있었다.
‘앞으로 내가 직접 대창천개벽문의 방식으로 녀석을 훈련시킨다.’
천벌의 주인이 오기 전까지.
전명훈의 몸을 가루로 만들었다가 재조합하더라도 녀석의 수행을 증진시켜야 한다.
나는 전명훈의 수행 증진을 단기 목표로 삼기로 하며 동부로 걸음을 옮겼다.
“…아, 참.”
그러다 문득, 홍수령이 나를 불렀던 것이 기억났다.
‘시험할 게 있으니 동부로 오라고 했지.’
우웅!
나는 계위 너머로 손을 뻗으며 공간을 갈랐다.
그리고 바로 홍수령이 있는 그녀의 동부 앞으로 공간을 넘어갔다.
“어쩐 일로 저를 부르셨습니까?”
보통은 그녀가 내 동부로 찾아와서 얘기를 나누거나 깨달음을 나눴지, 나를 자신의 실험실로 부르는 경우는 거의 없었기에 나는 의아해졌다.
“아, 들어와라.”
동부 안쪽에서 홍수령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촤르르륵!
동부의 입구 쪽에 있던 진법이 해제되고, 내가 들어갈 수 있게 길이 터졌다.
내가 동부 안쪽으로 들어서자, 뒤쪽에서 진법 금제가 작동하며 다시 동부의 안팎이 차단되었다.
“어쩐 일로 저를….”
내가 홍수령의 동부 깊은 곳까지 들어갔을 때였다.
“무슨 일로 불렀긴.”
“…어?”
그녀는 십(十)자의 형틀과, 푹신한 침상 사이에 서서 팔짱을 끼고, 십자 형틀을 바라보며 말했다.
“금신천뢰문의 숨겨진 공법을 익혀 뇌성체가 없어졌다고 들었다. 네 몸을 실험해 보려고 불렀다.”
“…뭐, 실험하고 싶으시면….”
“그리고, 한 가지 더.”
그녀는 형틀에서 침상으로 시선을 옮겼다.
“쌍수 목적도 있다.”
“…예?”
“쌍수를 먼저 할 거냐, 실험을 먼저 당할 거냐. 선택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