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Regressor’s Tale of Cultivation RAW novel - Chapter (242)
인간은 무엇인가 (9)
“예…?”
“못 알아들은 척하지 마라.”
“….”
나는 조금 당황했다.
“…실험은 이해할 수 있어도, 저는 이제 뇌성체가 사라져서 쌍수는 의미가 없을 텐데 어째서 쌍수까지 준비하신 겁니까?”
“숨겨진 공법과 일반적인 뇌도공법이 영향을 주고받으면 어찌 되는지도 알아보고 싶어서 말이지.”
“흠….”
“자, 빨리 선택해라.”
나는 의아해져서 물었다.
“뭘 먼저 하든 상관은 없는 것 아닙니까?”
“음? 상관있지. 어느 쪽을 먼저 하든, 굉장히 알아봐야 할 게 많기 때문에 다른 한쪽은 자연히 다른 날로 밀릴 확률이 높다.”
“아, 그렇군요.”
“빨리 선택해라. 당장이라도 네 몸을 조사하고 싶어 근질근질거리는구나.”
‘거절할까.’
솔직히 지금으로선 머리가 복잡했기에 둘 다 별로 하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
그러나 그런 내 기색을 읽은 것인지 홍수령이 먼저 선수를 쳤다.
“만약 어느 쪽으로든 나를 도와준다면, 천인기에 오를 수 있는 단서를 주마.”
“에?”
“너도 이제 원영기 대원만이니, 곧 천인기에 오를 준비도 해야겠지. 천인기에 오를 때 헷갈리지 않게 내 깨달음을 나눠 주겠다는 거다.”
“흐음, 그냥 제 스승님께 물어봐도 되긴 합니다만.”
“흐흐, 진 원로는 깨달음을 말로 설명해 줄 수는 있어도 직접 체험시켜 주기는 어렵지. 하지만 네가 어느 쪽이든 오늘 나를 돕는다면, 천인기에 오를 때의 깨달음을 체화할 수 있을 것이다.”
그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홍수령의 과격한 방식이라면 도움이 될 수도 있겠어.’
어차피 이제 원영기 대원만에 올라왔으니, 밑천은 다 털렸다.
앞으로는 전명훈의 훈련과 더불어 내가 천인기에 오르기 위한 수련도 필요했으니 꼭 필요한 과정이었다.
거기에, 그녀가 말한 대로 천인기에 오르는 깨달음을 몸으로 미리 체험할 수 있다면 상당한 도움이 될 터였다.
“…좋습니다. 도와드리지요.”
“후후, 그럴 줄 알았다. 그럼, 자. 인체 실험이냐, 쌍수냐. 선택해라.”
나는 형틀과 침상을 번갈아 보았다.
“…그렇다면….”
나는 입을 열었다.
* * *
다음 날이 되었다.
“음… 꽤 뻐근하군요.”
나는 홍수령의 동부에서 나오며 말했다.
그녀는 상기된 얼굴로 뒤따라 나와 아침 햇살을 맞으며 웃었다.
“후후, 굉장히 만족스럽더군. 네 몸은 충분히 알아볼 가치가 있었다.”
“저 역시 어제는 감사했습니다.”
나는 어젯밤 홍수령이 체험시켜 준, 천인기의 등극에 필요한 깨달음을 되새기며 말했다.
“아마 진휘도 말로는 설명해 줄 수 있었어도 나처럼은 체험시켜 줄 수 없었을 게다. 오직 본문에서 나만이 체험시켜 줄 수 있는 방법이니 고마워하도록.”
“예, 확실히 그런 방법이긴 하더군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의 본명공법인 멸뢰내천궁과 비검의 흐름을 내게 체험시켜 주며 알려 준 것이었기에 분명 그럴 만도 했다.
어쨌든, 이것으로 천인기에 오를 때에 필요한 경험은, 조금 과격한 방식이었으나 어찌어찌 얻었다.
‘이래서 거대 종문이 좋긴 하구나.’
하계에서 산수로 떠돌아다니며 있었을 때는 얻기 힘든 경험이었다.
청문세가에서 스승님에게 선각후통에 대한 해설을 들었을 때와 마찬가지로 머릿속이 밝아지는 듯한 느낌.
나는 내 동부로 돌아오며 어제 느꼈던 것을 정리했다.
‘광기. 광기가 필요하다.’
내 원영을 관조하자, 이전과 달리 음양신이 딱딱 나뉘어져 있지 않고 음양오행의 칠색이 자연스럽게 섞여 있는 칠채의 원영이 금단 안쪽에 잠들어 있었다.
원영기 대원만에 이르며, 나는 일월오악도의 제좌에, 내 의식을 완전히 융합시킴으로써 원영을 완성시켰다.
나는 어젯밤 들었던 홍수령의 말을 기억했다.
―수도자들은 수선을 이어 갈수록 무정해진다고들 하지. 어째서인지 아느냐?
―바로 천지자연을 체내에 받아들이고, 천지자연과 하나가 되기 때문이다.
―너도 대원만에 이르며 확실히 느꼈겠지. 천지자연의 음양오행으로 일월오악도를 만들어, 네 의식과 완전히 합일시켰다. 네 자신도 모르게, 앞으로 너는 점차 무정해지며 종래에는 완전히 인간성을 잃고 식물이나 다름없는 상태로 인격이 지워질 것이다.
나는 어젯밤 홍수령에게 당했던 짓을 생각하며, 뻐근한 몸 곳곳을 주물렀다.
―천인기는 천인합일의 경지라고도 불리지. 그 경지부터 진정으로 체내에 만든 소우주와 체외의 소우주가 연결되며 천지영력을 부릴 수 있으니까.
―체내의 소우주가 열려 ‘진짜’ 천지자연과 접하면 어찌 되겠느냐. 그대로 네 알량한 인격은 대자연에 휩쓸려, 식물 인간이 되어 버릴 테지.
―그렇다면 그를 방지하기 위해서 어찌해야 하는가. 광기다. 광기, 광기가 필요하다. 인간의 광기를 모아 천지에 맞설 수 있게 만들어라. 광기로써 너 자신을 지켜라.
―그렇기 때문에 천인기 수사들부터는 대부분 제정신이 아니게 되지. 누구나 최소한 한 가지에는 미쳐야 한다. 이렇게, 이렇게! 이렇게!!!
나는 홍수령이 보여 준 광기를 떠올렸다.
어젯밤, 그녀도, 그녀에게 영향을 받은 나도 둘 다 광기에 휩싸였었다.
‘무엇에 미칠지를 선택해야 하는 건가.’
미쳐 버릴 것을 찾는 것.
그것이 천인기에 오르는 첫 단추다.
‘내가 가장 바라는 것….’
내가 가장 바라는 것에 광기를 집중시키면 되는가?
‘내가 가장 바라는 것은….’
나는, 동부에서 나와 전명훈을 찾아갔다.
일단 녀석의 훈련을 시작해야 했다.
* * *
“…뭐라고?”
전명훈은 얼굴을 꿈틀거렸다.
“앞으로, 오늘부터 내가 네 공법수련을 도울 것이다.”
“그게 대체 무슨 소리…입니까?”
그는 서은현, 아니.
‘금은현’으로 개명한 사내를 쳐다보며 물었다.
“내 스승님은 금진찬 님이…십니다.”
“그래, 네 스승님께도 허락받고 왔다.”
“아니, 그게 무슨….”
“잘 들어라, 전명훈.”
금은현은 전명훈을 바라보았다.
“태상장문이신 금벽호 님께서도 허락하신 일이다. 앞으로, 강력한 위협이 금신천뢰문을 노릴 것이다.”
“뭐?”
“그리고 그 위협을 막을 수 있는 건, 전명훈 너밖에 없다.”
“그 위협이 뭐냐, 아니, 뭡니까.”
“그건 네 수준이 너무 낮아서 알려 줄 수 없다. 잘못하면 네 정신에 해가 될 수 있으니까. 최소한 원영기에 들어서면 알려 주마.”
빠직.
전명훈의 이마에 힘줄이 돋았다.
‘이 자식, 나를 아주 대놓고 무시하는군.’
“뭐, 좋아. 아니, 좋습니다. 그럼 일단 어떤 방식으로 저를 가르치시려는 겁니까?”
전명훈은 자신의 정순지력을 뿜어내며 말했다.
“보다시피, 이미 영성도 6개나 만들었습니다. 앞으로 축기 4수까지 가는 데에 얼마 남지도 않았지요. 쌍수공법은 어마어마한 효율을 보이고 있는데, 여기서 더 효율 좋게 경지를 올릴 수 있는 방법이 있단 말입니까?”
“그렇다.”
“호오, 얼마나 대단하신 방법입니까?”
빈정거리는 듯한 전명훈의 말에, 금은현은 잠자코 저물도에서 몽둥이를 하나 꺼내 들었다.
“바로 이거다.”
“…예?”
그리고, 전명훈이 반응할 새도 없이 금은현이 든 몽둥이가 전명훈을 후려쳤다.
빠악!
“…! 끄아아아아아… 어?”
몽둥이에 맞고 날아간 전명훈은 어깨를 잡고 비명을 질렀으나, 이내 어깨에서 손을 뜨고 어리둥절한 듯이 어깨를 바라보았다.
‘뭐지, 어깨를 맞았는데?’
맞을 때는 아팠는데, 어째 상처도 없고 더 이상 통증도 없었다.
그가 의아한듯이 금은현을 바라보자, 금은현은 나무 몽둥이를 들어 보였다.
우우웅!
나무 몽둥이에서는 녹빛의 영기가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치유의 효과를 지닌 목(木) 속성의 영기다. 목(木)은 팔괘의 진(震)에 해당하니 뇌전을 상징하기도 하지. 나는 앞으로 목 속성 영기가 담긴 이 몽둥이로 너를 쫓아다니며 끊임없이 두들길 것이다.”
“….”
“그리고 네가 한 대 맞을 때마다, 네 뇌리로 내 의식공법을 통해 선각후통의 구결을 통해 뇌도공법에 대한 이해를 돕게 해 주마. 나는 금신천뢰문의 모든 공법을 전부 익히는 데에 성공했으니, 뇌도공법의 이해도 면에서 충분히 너를 가르칠 만한 소양이 있다.”
“….”
“물론, 너는 내게 반격을 해도 좋다. 내게 반격을 하며 내 공격을 떨쳐 내고, 내가 몽둥이 찜질과 함께 네 머릿속에 박아 넣는 선각후통의 지식들을 체화하는 것이, 이 수련의 중점이다. 나는 축기기 급의 힘만 써서 널 가르칠 것이니, 충분히 네가 내게 반격할 수 있을 것이다.”
“….”
“궁금한 게 있나?”
“…장로님, 생각해 보니 제가 지구에서 잘못했던 게 많은 것 같습니다. 부디 제발 용서해 주십시오.”
“나는 그런 사사로운 원한 때문에 이러는 게 아니다.”
뻐억!
그와 함께, 금은현은 전명훈을 두들기기 시작했다.
* * *
전명훈을 상대로 수련을 시작한지 약 한 달째.
퍽, 퍽, 퍽!
“크아아아!!!”
나는 전명훈을 실컷 두들기며 녀석의 몸 곳곳에 목 속성 영기를 불어넣어 주었다.
동시에 뇌도공법의 구결을 녀석의 뇌리에 불어넣어 주고, 집어넣은 목 속성 경기를 뇌전 속성으로 변화시켜 강제로 공법을 운용하게 하며 강제로 뇌도공법을 몸 곳곳에 체화시켰다.
녀석의 뇌도공법은 날이 갈수록 일취월장하고 있었다.
특히나 내가 계속 전명훈을 두드리면, 전명훈의 분노가 폭발하는 시점이 있었다.
“이 개자식아아아아!!!”
콰지지지직!
붉은 번개가 사방으로 넘실거렸다.
‘또 성장했군.’
기이하게도 전명훈은 화가 나면 공법이 반응하며 더더욱 성장이 빨라졌다.
‘천상금뢰지체는 화가 많을수록 성장이 빨라지는 건가.’
분노 조절 장애인을 위한 체질이 있다면 아마 천상금뢰지체이리라.
콰르르르릉!
나는 내게 붉은 벼락이 쏘아져 오기 전, 의념을 읽어 벼락을 피한 후 전명훈의 왼쪽 아래로 들어가 몽둥이를 올려쳤다.
뻐억!
“크아아아악!”
한 대도 피하지 못하고 계속 두들겨 맞자, 녀석은 눈이 뒤집혀서 번개를 뿜어냈다.
나는 몽둥이를 휘둘러 벼락 줄기를 모조리 쳐 냈다.
우웅!
몽둥이에 두른 강기가 찌릿거렸다.
‘뇌전의 힘이 더 강해졌군.’
공법의 성장은 순조롭다.
내가 녀석만 붙잡고 목 속성 영기와 선각후통의 깨달음을 끝없이 불어넣자 전명훈은 눈에 보일 정도로 성장하고 있었다.
한 달 만에 축기 2수에 접어들었을 정도로.
그러나 이상한 점이 있었다.
‘이 녀석, 도대체 왜….’
붉은 벼락이 뿜어진다.
나는 녀석의 틈을 파고들어 목 속성 영기로 전명훈이 익히고 있는 ‘칠뢰진경’의 다음 단계로 놈을 이끌었다.
그러나 전명훈은 격노한 상태로 붉은 벼락만을 뿜을 뿐이었다.
붉다, 붉다, 붉다.
‘왜… 도대체 왜 칠뢰진경의 다음 단계로 나아가지를 못하는 거지.’
전명훈은, 아무리 두들겨도 칠뢰진경의 첫 단계인 ‘적뢰진경’의 단계를 넘어서질 못하고 있었다.
이쯤이면 슬슬 적뢰진경의 다음 단계인 주뢰진경으로 넘어갈 때가 되었다.
주뢰진경의 구결도 넣어 주었다.
‘원래대로라면, 녀석이 축기 2수에 접어드는 순간 주뢰진경에 그대로 들어갔어야 맞다.’
하지만, 전명훈은 벌써 10개의 영성을 생성하고도 주뢰진경을 사용하지 못했다.
오성의 문제인 것이었다.
‘아예 체화를 못 하는 느낌이다.’
그렇다고 내가 무식하게 두들겨 패면서 가르치는 것도 아니었다.
저녁시간에는 전명훈을 치료해 주고, 오늘 하루 집어넣었던 선각후통의 구결들을 이해가 될 때까지 풀이해 줬다.
전명훈도 개념을 이해했고, 공법의 이해도가 높아졌다.
하지만, 이해도가 높아져도 자신의 몸으로 운용하는 체화 자체가 더뎠다.
‘자기 몸으로 주뢰진경을 운용하지 못해서 주뢰진경으로 못 나아가고 있어.’
그래, 여기까지라면 이해했다.
둔재라면 충분히 그럴 수 있다.
하지만 내가 가장 의아한 것은 이것이었다.
‘…그런데, 주뢰진경을 운용 못하는 건데 어떻게 축기 2수에서 계속 나아가는 거지.’
적뢰진경과 주뢰진경은 축기기 때에 익히는 공법이다.
그 중에서도 적뢰진경은 축기 1수 때에만 익히고, 그다음에는 주뢰진경으로 넘어가야지만 축기기 극성에 이를 수 있다.
그런데 전명훈은 어떻게 한 건지, 적뢰진경만 가지고서 윗단계로 나아가고 있는 것이었다.
퍼억!
“크악! 젠장할!”
콰르르릉!
전명훈이 내게 손을 뻗어 벼락을 쏘았다.
부웅!
나는 몽둥이를 휘둘러 벼락을 베어 버렸다.
‘또 위력이 올랐다.’
이제는 점차 본인 경지보다 위력이 높은 공격을 쓰기 시작했다.
축기 후기 급의 공격이었다.
‘…저 녀석… 분노하면서 적뢰진경을 진화시키고 있어.’
나는 붉은 벼락으로 휩싸인 전명훈을 보며 헛웃음을 흘렸다.
‘공법의 다음 단계로 나아가야 하는데, 다음 단계로 나아가지 못하니까 자기가 묶인 구간 자체를 아예 다른 공법으로 진화시키는 건가….’
이건 도대체 무슨 재능인 건가 싶다.
꽈릉!
다음 순간, 찰나 붉은 벼락 그 자체처럼 변한 전명훈이 내게 달려들었고, 나는 가볍게 피한 후 놈의 뒤통수를 향해 몽둥이를 휘둘렀다.
퍼억!
“크아아악!”
전명훈은 그대로 나가떨어져 굴렀다.
녀석이 운용하던 적뢰진경 역시 그대로 흩어졌다.
하지만 나는 어이가 없어서 웃었다.
“…공법이 흩어졌는데, 왜 느껴지는 법력이 더 늘어난 거지?”
“…이… 서은현 개 같은 새끼가….”
“미쳤군…. 도대체 어떻게 하면 화를 내는 것만으로 법력이 늘어나는 거냐?”
“닥쳐!!!”
콰르르릉!
나는 점차 빨라져 가는 전명훈을 보며 씨익 웃었고, 그대로 녀석을 향해 몽둥이를 휘둘렀다.
‘좋아, 계속 성장해라!’
전명훈은, 내 지도 아래 지난 생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빠르게 성장중이었다.
* * *
“후우….”
밤이 되었다.
밤이 되면 전명훈은 조금의 휴식과 함께 자기 동부로 돌아가 금소해와 수련을 시작한다.
그리고 밤늦게까지 수련을 한 후, 새벽에 조금 잠을 잔 후 다시 수련을 시작한다.
그게 최근 전명훈의 수련 일정이었다.
‘뭐, 축기기쯤 되면 정순지력 덕택에 잠을 거의 안 자도 문제없지만.’
연기기 시절이라면 녀석의 체력을 생각해서 조금 더 쉬게 해 줬겠지만, 어차피 축기기라면 이 정도는 대부분 버텨 내니 강행하는 중이었다.
나는 내 동부로 돌아와 원영을 관조했다.
‘천인기에 들어가려면, 광기가 필요하다.’
그렇다면 내게 필요한 광기는 무엇인가.
나는 무엇에 미칠 수 있는가.
“….”
원래라면 굉장히 쉬운 답이었다.
만상인연도가 증명해 주었으니까.
내가 맺어 온 인연들, 그 소중함을 지키는 데에 미칠 수 있을 터였다.
하지만, 양수진의 말을 들은 후부터 불편함이 느껴졌다.
―요는 ‘자유’다. 오직 ‘자유’를 지닌 존재, 혹은 ‘자유’를 획득할 가능성이 있는 존재만이 [인간]이며, 세계 인권 선언의 권리를 향유할 자격이 있는 존재이다.
―그러므로, 오직 우리 종명자만이 [인간]이며, 이 세계에 존재하는, 진선을 포함한 모든 존재가 [비인간]이다!
비인간.
운명에 의해 설정된 대로 움직이는 꼭두각시들.
나는 서휼의 말이 떠올랐다.
―이 세상은 운명의 아래에서 이뤄지는 연극이고, 우리는 연극 안에서 연기하는 연기자들일 뿐입니다. 연기자가 연기를 하는 것이, 어째서 감정이 아니라는 것이지요?
감정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서휼의 말.
그리고 감정을 극한으로 증명해서 경지에 오르는 심족조차, 운명의 노예라는 양수진의 말.
‘…뭐가, 뭐지.’
감정이 존재하지 않고, 내가 맺어 온 인연들이 사실 그저 운명 아래에서 춤추는 연극에 불과했다면 그동안 내가 해 왔던 것은 도대체 뭐란 말인가.
최근 전명훈을 창천개벽문의 방식으로 수련시키는 중, 굳이 몽둥이로 전명훈을 때리는 것도 이유가 있었다.
창천개벽문의 방식이라면 두 주먹만 있어도 충분하지만 굳이 내가 몽둥이를 드는 이유.
몽둥이로 단악검법의 기초를 되짚어 가며, 머리를 비우고 답천 너머로 도약하기 위해서였다.
답천 너머로 도약한다면, 양수진의 말에, 서휼의 말에 반박할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빌어먹을….’
단단한 심마(心魔)에 걸린 것이나 다름없었다.
부웅, 붕, 붕!
나는 무색유리검을 잡고서 단악검법을 처음부터 끝까지 펼쳤다.
무(武)를 펼치고 있으면 고민이 조금 사라지는 듯한 느낌이었다.
그리고, 단악검법을 1초부터 26초까지 계속 펼치기를 얼마나 반복했을까.
내가 검법을 펼치는 것을 멈췄을 때였다.
―[비인간]이다!
양수진의 목소리가 귓가에서 울리는 듯했다.
나는 무색유리검을 쳐다보며 이를 악물었다.
“젠장… 개소리하지 마!”
양수진을 만난 이후로, 머릿속이 혼란스럽다.
‘이 세계에 존재하는 인연들이 인간이 아니라 꼭두각시에 불과하다면….’
나는 무색유리검을 으스러지게 움켜쥐며 투명한 검신을 쳐다보았다.
‘나는 누구와 사랑을 했다는 거지?’
내가 쌓아 왔던 인연들은 대체 뭐였다는 거지?
그저 양수진 개인의 극단적인 사상이라고 하기에는, 양수진은 진선의 극점에 올라 세계의 진실을 보았을 확률이 높은 대선(大仙)이었다.
또한 굉장히 높은 존재가 영락했을 것이라 추정되는 서휼 역시 비슷한 말을 했다.
‘그럼 도대체 내가 해 온 건 뭐란 말이냐.’
양수진의 말이, 서휼의 목소리가 뇌리를 맴돈다.
천인기에 이르기 위해서는 광기가 필요하다고 했다.
뭔가에 미치지 않으면 정신이 천지영기로 흩어져 버린다는 경지가 천인기.
하지만, 내가 미칠 수 있는 것은 내가 쌓아 온 인연이었다.
그러나 위대한 존재들이 내가 쌓아 온 인연을 거짓에 불과하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나는 도대체 어찌해야 한단 말인가.
툭….
나는 무색유리검을 잡고 땅에 닿도록 늘어뜨렸다.
검을 휘두를 힘이 나지 않았다.
‘날이 갈수록… 심마가 심해지는군.’
나는 멍한 표정으로 동부 바깥으로 나와 달을 바라보았다.
‘난 뭘 어떻게 해야….’
그렇게, 멍하니 번뇌에 사로잡혀 있을 때였다.
찌이잉―
“…어?”
나는, 저 멀리 어디선가.
뭔가가 내 의식을 자극하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
츠츠츠츳!
나는 내 의식이 어딘가로 끌려가는 것을 느꼈다.
‘이건…!’
* * *
알록달록한 색채가 감도는 공간.
나는 그 공간 안에서 눈을 떴다.
‘이곳은….’
누군가의 꿈속이다.
그리고, 나는 그 누군가가 누군지 바로 알 수 있었다.
우우웅!
나는 기묘성심전을 운용하며 내 의식을 꿈의 파장에 맞게 변화시켰다.
이 꿈속에서, 내 기묘성심전으로 인해 일렁거리던 주변이 안정된 공간으로 변했다.
나는 나를 ‘부른’ 존재를 향해 말했다.
“드디어, 성공했구나.”
그리고, 하얀빛 속에서 누군가가 이곳을 향해 걸어왔다.
연분홍빛 궁장을 입은 그녀.
“연아.”
김연이었다.
그녀가, 마침내 기묘성심전을 대성하여, 그녀에게 연결해 놓은 기괴고를 통해 나를 꿈속으로 불러들인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