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Regressor’s Tale of Cultivation RAW novel - Chapter (250)
천겁 (1)
사락, 사락, 사락….
나는 가만히 앉아 김연이 비익무를 추는 것을 바라보았다.
그녀는 사뿐사뿐 한 치도 틀림없이 초식을 펼치고 있었다.
얼마나 그녀를 멍하니 보고 있었을까.
“은현 오빠? 시킨 비익무 1만 번 전부 다 했어요!”
그녀가 땀을 훔치며 내게 다가왔다.
“은현 오빠?”
그리고, 그녀가 나를 흔들었을 때쯤에야 나는 퍼뜩 정신을 차렸다.
“아, 미안. 잠시 넋이 나가 있었네.”
“흐음….”
그녀는 내 말에 잠시 나를 가만히 바라보더니, 이내 걱정스러운 듯이 내 이마를 짚어 주었다.
“은현 오빠, 최근에 자주 그런 거 알아요?”
“음? 아아….”
나는 머리를 부여잡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미안해, 주의할게.”
“아니, 제 말은 그게 아니라… 너무 무리하시지 말라는 거에요.”
“….”
“저도 기묘성심전을 한계까지 운용해 봐서 알아요. 은현 오빠, 지금 틀림없이 의식을 극한까지 움직여서 탈력한 거잖아요?”
“…그래.”
난 쓴웃음을 지었다.
숨기려고 했다만, 아무래도 바로 알아차리는 모양이었다.
전명훈과 김연을 가르치고, 화형한 홍범에게도 무공을 가르치며 독에 대한 얘기를 주고받기를 벌써 몇 달이 지났다.
나는 최근 들어, 점차 이렇게 멍하니 있는 상태가 많아졌고, 그녀의 말마따나 이는 의식을 극한으로 사용함에 따라 나타나는 결과였다.
“걱정해 줘서 고마워, 연아. 그럼 한번 비익무를 펼쳐 볼까?”
“네.”
그녀의 비익무를 봐 준 후, 그녀의 공력 운용에 대해 짚어 준 후 그날의 수련을 마쳤다.
“그럼 내일 보자, 연아.”
“네, 그리고 말씀드렸듯이… 무리하시지 마세요!”
“…그래.”
스스스….
나는 눈을 뜨며 일어났다.
“후우….”
몸에는 땀이 흥건했다.
기묘성심전으로 꿈을 꾸며, 육체는 계속 동부 속에서 잠을 자는 동안에도 검을 움직이도록 설정해 두었기에 밤새도록 검을 수련한 것이었다.
이제 곧 있으면 해가 뜰 시간.
하지만, 나는 해가 뜨게 놔두지 않았다.
‘가속….’
츠츠츳….
의식이 가속되며 점차 시간이 느려진다.
‘가속, 가속, 가속….’
등봉조극 때에는 의식을 가속시켜 봤자 10배 정도의 가속을 얻는 것이 다였다.
‘가속, 가속, 가속…!’
그러나 답천에 이른 후부터.
10배의 가속은 ‘기본치’가 되었고, 10배 이상으로 현 상태에 따라 얼마든지 많이 가속할 수가 있었다.
그렇게 얼마나 정신을 극한으로 압축해서 가속했을까.
나는 떠오르려던 아침 해가 지극히 느린 상태로 지평선 어귀에 걸쳐 있는 것을 보았다.
바람의 흐름이 느려져서, 허공을 떠다니는 먼지의 흐름이 육안으로 보일 정도로 느려진 것을 보았다.
풀들이 바람에 흔들리지 않고 굳어 있는 것을 보았다.
아침 이슬이 떨어지다 말고 허공에 멈춘 것을 보았다.
정확히는 멈춘 것은 아니었다.
그저 멈춰진 것처럼 보일 정도로 느리게 움직이는 것.
아니, 정확히는 내 의식이 그만큼 빠르게 가속하는 것뿐이었다.
내가 의식을 가속할 수 있는 최대치까지 의식을 가속시켰다.
등봉조극, 입천, 답천.
그리고 기묘성심전과 천인기에 달하는 거대한 의식 영역까지.
모든 의식의 힘을 총동원해서 아득할 정도로 시간을 압축해 정지에 가까운 세계에 진입하는 데에 성공했다.
치지지….
머리가 불타 버리는 것 같다.
당장이라도 이 미친 세계에서 나가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상단전이 과부하를 버티지 못해 터질 것 같은 느낌이었다.
치지지직….
이 상태는 본래 맨정신으로 그리 오래 유지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다.
하지만, 나는 버텨 냈다.
이 정신 나간 극정(極停)의 세계에서 억지로 억지로 버텨 내며 정지에 한없이 가까운 시간을 강제로 체험했다.
그리고, 나는 그 상태로 내가 익혀 온 무공.
만들어 온 무공.
사용해 왔던 무공들을 전부 검에 담아 펼치기 시작했다.
단악검법이 펼쳐졌다.
단악검법의 안쪽으로, 단맥도법의 무리가, 투괴암기술의 묘리가, 투괴무흔권의 무리가.
용형비호조의 무리가, 비익창과 비익무의 무리가 얽혀든다.
내 검은 계위 너머를 움직였기에, 무지막지한 속도로 휘둘러지고 있음에도 충격파가 비산한다거나 하는 일은 없었다.
그렇게, 나는 어두운 새벽.
동부에서 일어나, 누구도 모르게 조용히 단악검법 4만 2천 번을 순식간에 펼쳤다.
“후우….”
벌써 식은땀이 뻘뻘 흐른다.
정신이 나갈 것 같았다.
육체 자체는 힘들지 않았지만, 이 극정의 세계에서 강제로 버티고 있다는 것은 버티는 것 자체로 뇌를 불태우는 듯한 고통을 동반했다.
“흐….”
하지만 멈추지 않는다.
대신, 나는 한 마디를 내뱉었다.
“시간이… 부족하다.”
그랬다.
부족했다.
너무나도 부족했다!
당장이라도 그 공포스러운 진선이 하늘을 뚜껑처럼 열어젖히고 나타나 이쪽을 들여다볼 것만 같다.
그런데도 내게 주어진 시간은 고작해야 50년 안팎이다.
고작 50년을 가지고서, 둔재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그렇다면 어찌해야 하는가.
쥐어 짜내야 한다.
내 뇌를 곤죽이 되도록 쥐어 짜내서, 시간을 만들어서라도 최대한 더 나아가야 한다.
주어진 시간 안에 반드시 답천 그 이상에 도달해야 한다!
파앙!
마지막으로 단악검법을 펼치며, 계위를 넘어드는 감각을 조종하지 못해 충격파가 허공을 훌려 퍼졌다.
정지나 다름없는 세계에서 울려 퍼진 충격파에, 내 동부에 설치된 수호진법들이 발동했다.
쿠구구구!
본래라면 산이 뒤흔들려야 할 충격이었으나, 다행히도 수호진법이 충격을 흡수해 주어서 동부 안쪽의 공기만이 휘몰아치고 끝났다.
“후우… 후우….”
나는 잠시 숨을 몰아쉬었다.
뇌리를 옥죄었던 고통이 잠시나마 흩어졌다.
하지만 그게 끝.
나는 숨을 몰아쉬며 잠시 얻었던 휴식을 바로 포기한 채, 바로 다시금 단악검법을 펼치기 시작했다.
치이이―
머리에서 김이 나는 느낌이었다.
의식은 물론이고, 원영 그 자체가 쥐어짜이며 혹사당하는 느낌이었다.
이대로라면 분명 원영에 문제가 생긴다.
그러나 멈추지 않았다.
우우우웅!
저 한구석에 처박혀서 법력을 모으는 중인 원유에게, 원영에 가해진 부하가 저주로 전부 몰아넣어진다.
원유의 혈영 안쪽으로 내 원영에 가해진 부하가 들어갔다.
푸쾅!
원유의 머리통이 그대로 폭발해 버렸다.
그러고도 그치지 않았는지, 원유의 목 위쪽은 한동안 부글부글 끓어오른 후에야 제대로 재생되기 시작했으며, 원유의 혈영에 강력한 손상이 생겼다.
그만큼 내가 원유에게 떠넘긴 부하는 과중했다.
둔재에게 허락된 시간을 늘리기 위해 발악한 결과물이다.
결코 평범한 수준일 리가 없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다음 단계에는 오를 수 없었다.
여전히 점수(漸修)가 부족한 탓.
‘더, 더, 더…!’
아직도 부족하다면, 더 채워넣으면 된다!
나는 이를 악물고 해가 떠오를 때까지 의식을 극한으로 가속시킨 상태로 그렇게 단악검법을 휘둘렀다.
* * *
원래라면 헌위와 한 밀약을 지키기 위해, 금신천뢰문 내부의 내 추종자들을 끌어모아야 한다.
하지만, 최근 나를 추종하던 금신천뢰문의 어린 제자들은 나만 보면 슬금슬금 나를 피해 다니고는 했다.
파지지직….
그나마 꾸준히 수련을 시켜 주고 있는 전명훈만이 어김없이 내게 번개 세례로 아침 인사를 대신해 줄 뿐이었다.
부웅!
나는 몽둥이를 휘둘러 전명훈의 번개를 그대로 걷어 내었다.
최근에는 몽둥이를 부러지거나 망가지지 않도록 하는 것 외에, 딱히 기를 불어넣어 추가로 강화하거나 하지 않았다.
말 그대로 딱 연기기 초기 수준의 기운만을 불어넣은 채.
나는 전명훈을 향해 몽둥이를 들고 계속해서 연습했던 단악검법을 펼쳤다.
가속한다, 가속한다, 가속한다!
파아앙!
충격파가 내 몸 앞쪽으로 생겨난다.
공기의 흐름 하나하나가 내 몸에 부딪혀 일방적으로 튕겨 나가는 기분을 만끽하며, 나는 전명훈과 극정의 세계 안쪽에서 눈을 마주쳤다.
녀석의 눈동자 안쪽으로 언뜻 내가 비춰 보였다.
수염을 정리하지 않아 수염이 삐죽삐죽 난 채로, 산발이 된 머리를 하고 눈에는 핏발이 잔뜩 선 모습을 하고 있었다.
말 그대로 정상이 아닌, 미치광이인 듯한 모습!
‘…저러니까 날 추종한답시고 따라다니던 녀석들도 전부 사라졌지.’
문득 그런 생각을 하며 속으로 잠시 웃었다.
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몸을 단장할 시간 따위는 없다.
말을 거는 녀석들에게 친절하게 대답해 줄 시간 따위는 없다.
인사를 할 시간도 없다.
웃어 줄 시간도 없다.
남에게 쓸 시간 따위도 없다.
나는 미친 듯이 전명훈의 수련을 봐줌과 동시에, 내 수련도 끊임없이 반복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시간이 부족했다.
의식을 가속시킨 채로 하루 종일 생활하며, 원유에게 나눠 놓은 혈영은 하루 종일 수련과 법력 회복, 원영의 회복을 시킨다.
그리고 그런 원유에게 계속해서 부하를 떠넘기며 끝없이 무(武)에 대해 궁구하고 또 궁구한다.
무(武)를 궁구하며, 육신의 생명력을 극한으로 끌어올리는 작업을 반복하여 지족의 수행도 끝없이 천인기에 가깝게 만든다.
또한 천족의 수행 역시 천인기에 오를 수 있도록, 진휘와 홍수령에게 전해 들은 천인기의 깨달음과 가르침을 끊임없이 뇌리 한편에서 선각후통으로 분석하고 또 참오한다.
무(武)를 수련한다고는 했지만, 이제 무공은 내 일부나 다름없었고, 앉아서 법력을 수련하나 무공을 펼치며 법력을 수련하나 똑같은 경지가 되었기에 최근에는 굳이 좌선을 고집하지 않아도 법력이 운행되어서 천족의 수행도 같이 하기에 무리는 없었다.
천지족의 수행, 그리고 무공을 병행하여 수련하며, 나는 끊임없이 다음 단계를 갈구했다.
부웅!
어느덧 내 손에 들린 몽둥이는 그 자체로 검이 되었다.
얼마나 단악검법의 초식을 많이 펼쳤을까, 몽둥이 자체가 풍압에 풍화되어 단악검법을 펼치기 가장 적당한 목검의 형태로 바뀌는 중이었다.
그렇다면 내가 몽둥이가 목검이 될 정도로 휘둘러 대며 갈구하는 답천의 너머는 무엇일까.
답천 너머, 구현의 3단계는 다음과 같았다.
자신의 이상을 세계에 강요하는 경지.
그렇다면 이는 정확히 뭘 말하는 걸까?
이상을 세계에 강요한다는 건 대체 무슨 개 풀 뜯어먹는 소리인 걸까?
요는 대강 이러했다.
―완벽(完璧)은 무엇인가.
나는 장익의 가르침을 떠올렸다.
―‘완벽하다’라는 말. 혹은 ‘완전하다’라는 말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말이다. 왜 그런지 아느냐?
―…어째서입니까?
―가로 베기, 세로 베기, 찌르기를 완벽하게 해 봐라.
난 장익의 앞에서 그가 시키는 것을 해냈다.
―네가 한 기술이 완벽한 기술인가?
―…예, 그렇습니다만.
―그래, 맞다. 하지만 동시에 틀리기도 했다. 만약 너는 눈보라가 몰아치는 전장에서도 방금과 정확히 같은 기술을 쓸 건가?
―아닙니다.
―그럼 반대로, 용암이 이글거리는 화산 안쪽에서, 너는 눈보라가 몰아치는 전장에서와 같은 기술을 쓸 건가?
―절대 아닙니다.
―그럼 만약 네 양팔이 잘렸고, 다시는 재생할 수 없다고 하자. 네가 입으로만 칼을 물고 방금과 같은 기술을 펼친다고 할 때, 앞선 것과 같은 것을 펼칠 건가?
―불가능합니다.
―그래, 불가능하다. 그러므로 이 세상에는 완벽한 것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
나는 장익의 말을 떠올리며 단악검법을 휘둘렀다.
―네 검법도 같은 법칙 하에 만들어졌고, 너는 그 법칙 하에서 검을 휘두른다지만 그 법칙이란 네가 검을 휘두르는 대상에 따라, 장소에 따라 항상 변화한다. 즉, 너는 그 검법을 배운 후부터 지금까지 ‘한 번도 같은 검법을 휘두른 적이 없다’는 거다.
―……
부웅, 부웅, 부웅!
목검의 끝으로 장익의 조언이 따라붙는 듯한 기분이었다.
―1초 전과 1초 후의 공간은 미세한 공기의 흐름이 전부 바뀌어 버린다. 공기뿐이 아니라 기(氣)의 흐름. 상대의 심리. 너 자신의 심리 등이 1초 전과는 다르게 변화한다. 그러므로 1초 전의 네가 펼친 검법과 1초 후의 네가 펼친 검법은 ‘다른’ 검법일 수밖에 없다.
―…하면, 어찌해야 합니까.
그렇다면 어떻게 같은 무공을 펼칠 수 있단 말인가?
―너도 이 경지까지 왔다면, 네가 펼친 투혼이 단순한 전투 기술이 아니란 걸 알고 있겠지. 네 투혼에는 네 삶이 녹아있고, 네가 주장해 왔던 것들이 녹아 있다.
붕, 부웅, 부웅!
단악검법을 펼친다.
꽈아아앙!
폭음이 울려 퍼지며, 분명 연기기 급도 안 될 수준의 기력을 품은 내 검이, 결단기 대원만 수준의 전명훈의 뇌전을 그대로 떨쳐 내며 오히려 녀석에게 충격파를 쏟아부어 튕겨 내 버렸다.
―네 투혼에 녹아 있는 네 주장을 극한까지 갈고닦아라. 나는 ‘파괴’라는 주장을 갈고닦았다! 유화는 ‘안식’이라는 주장을 갈고닦았지. 네가 가진 주장은 무엇이지?
‘내가 가진 주장….’
―겉으로 펼치는 투혼은 얼마든지 변화하며, 계속해서 다른 정체성을 가질 수밖에 없다. 하지만! 마음은 변하지 않는다. 아니, 변하지 않는 마음을 네 투혼에 불어넣어라! 그리하면 외향이 어떻게 변화하든, 네 검이 어떻게 변화하든 절대로 불변하는 그 마음만은 남아서 이 세계에 법칙으로 새겨질 터이니.
그렇다.
쉽게 말하자면 자신의 무공의 특질을 일깨워서, 어떤 상황에서도 변하지 않을 기준을 만들라는 것이었다.
그것은 ‘기준’ 정도가 아니라, 정말로 ‘절대로’ 변하지 않을 수준으로 만든다면 그것은 아예 이 세계에 법칙으로 새겨지는 것이다.
천겁(天劫)은 역천을 행하는 수도자들에게 순천(順天)의 법칙을 집행하기 위하여 하늘이 행하는 것.
그렇다면 구현 3단계의 심족들이 행하는 천겁과도 같은 힘은, 어쩌면 자기 자신의 법칙을 집행하기 위하기에 하늘과 닮아 있는지도 몰랐다.
꽈아앙!
나는 다시 한번, 이번에는 고작해야 검기 한 번을 쓸 정도의 힘만을 목검에 불어넣은 채로 한 바퀴를 돌아 뇌신(雷神)처럼 변화한 전명훈을 그대로 튕겨 내 버렸다.
하지만 튕겨 내는 것에서 끝나지 않는다.
전명훈이 튕겨 나가는 것조차, 의식을 정지의 세계에 근접할 만큼 가속시키는 내게는 하품이 나올 정도로 느린 속도였다.
발을 굴러 앞으로 쏘아져 나가, 전명훈이 착지할 곳에 미리 도착한 나는 이제야 느릿느릿 튕겨져 오는 전명훈을 향해 다시 한번 목검을 내리쳤다.
전명훈은 느릿느릿 반응하려는 듯했지만, 제대로 막아 내지조차 못하고 목검에 머리가 반으로 갈려 버렸다.
내가 무공에 불어넣은 마음.
내가 주장하고 싶었던 바.
콰앙, 콰앙, 콰앙!
고작해야 검강 하나를 유지할 정도의 기(氣)를 두르고 휘두르는 목검에, 충격파가 몇 번이나 울려 퍼지며 전명훈을 수련시키는 훈련장은 물론이고, 인근의 산이 마구 박살 나기 시작했다.
피떡이 된 전명훈은 잠시 후 일어나서 핏발이 잔뜩 선 눈알을 부라리며 내게 달려든다.
그리고 계속해서 아까와 같은 상황이 반복된다.
전명훈도 진화하며 정말 개미 발자국만큼 앞으로 나아가고는 있었지만, 여전히 내 입장에서는 느렸다.
“서은현!!!”
전명훈은 눈에 핏발을 세우고 나를 죽이겠답시고 달려들었다.
그리고 수련이 끝나면 금소해와 함께 자기 동부로 돌아간다.
나는 금소해에게 업혀 동부로 돌아가며, 금소해에게 나에 대한 불만과 욕지거리를 털어놓는 전명훈을 잠시 멍하니 바라보았다.
그리고 전명훈의 수련 이후 내 동부로 돌아가며, 나를 은근슬쩍 피하고 저들끼리 왁자지껄 떠드는 금신천뢰문의 제자들을 보았다.
곳곳에서 들리는 쌍수의 소리와, 장로진, 원로진들이 지나가며 간혹 내게 인사하는 광경을 보았다.
나는 내 동부로 들어가기 전, 금신천뢰문의 절경을 한 번 내려다보았다.
이곳은 금신천뢰문.
양수진이 만든 실패작이자, 비인간들의 군집이었다.
“…아냐.”
나는 금신천뢰문을 내려다보며, 문득 내가 최근 왜 이렇게 정신이 나가 있었는지를 깨달을 수 있었다.
저 멀리서 홍수령이 싱싱한 신입 제자들을 납치하는 장면이 보였다.
그 모습을 보자 웃음이 나왔다.
“…나는 저능아로군.”
새삼스럽지만 다시 한번 깨달았다.
본문의 제자들에게, 홍수령에게, 연진에게, 진휘에게, 금벽호에게, 금소해에게… 금신천뢰문 자체에.
나는 멸망할 문파였기에 거리를 두려 했다.
홍수령에게도 정을 주지 않겠다고 머저리 같은 맹세를 했다.
하지만 보라.
벌써 이렇게, 나는 어느덧 이 금신천뢰문의 풍광을 보며 내 집 같다는 감정을 느끼고 있지 않은가.
이곳은 금신천뢰문.
나의 사문(師門)이자, 나의 식구들이 있는 곳이었다.
“…들리시오, 양수진?”
나는 하늘을 보며 말했다.
“나는 둔재에다 저능아, 병신이라서, 비인간이니 뭐니 잘 모르겠소. 운명이니 자유니 노예니. 솔직히 사람을 만날 때마다 그딴 걸 매번 생각하면서 살아온 적도 없소. 그러니….”
물론, 양수진의 논리는 아직도 완전히 반박하진 못했다.
하지만, 나는 반박하진 못해도 부정(不定)할 수는 있었다.
나는 선인이 아니다.
나는 이기심도 많다.
나는 욕심도 많고, 모든 문제를 해결할 만큼 능력이 뛰어나지도 않다.
그렇다고 성인군자 같은 도량이 있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눈앞에, 나와 연이 닿은 내 식구들만큼은.
“지킬 거요.”
멸망하게 두지 않겠다.
내 무공에 깃들어 있는 마음의 이름은, 진심(盡心).
삶을 선인처럼, 성인군자처럼 살아오지는 못했다.
그런 것이 불가능할 정도로 비인외도들이 많은 세상이었으니, 나 역시 지구에 있을 때를 기준으로 많이 잔혹해졌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신할 수 있는 것은.
매 사에 진심을 다해 왔다.
매 인연에, 매 순간에 진심을 다해 왔으니.
지금 이 순간 나와 연을 맺은 식구들이, 죽지 않도록.
“하늘이여.”
나는 하늘을 바라보며, 반드시.
반드시 가족들의 운명을 바꾸리라 맹세했다.
“이번에도, 바꿔 보이겠습니다.”
그리고, 세월은 흐르고 흘러 20년의 세월이 흘렀다.
전명훈이 마침내, 원영기를 앞두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