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Regressor’s Tale of Cultivation RAW novel - Chapter (260)
천겁 (11)
우웅, 우우웅.
여기는, 어디지?
나는 아찔한 정신을 부여잡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웨엑… 우웨에에엑….”
갑자기 헛구역질이 나와 입을 벌리자, 뱃속에서 내장 조각과 함께 피가 한 움큼 쏟아져 나왔다.
“거헉… 커헉….”
나는 내 몸을 바라보았다.
내 몸은 노릇노릇하게 익어, 연기를 내뿜고 있었다.
‘아, 그렇군.’
생각났다.
나는 방금 전까지 전명훈과 싸우고 있었고, 전명훈이 내 근처까지 온 후 천뢰 혁대를 사용해서, 인근에 천뢰번을 소환했다.
그리고, 녀석이 천뢰번을 휘둘렀던 게 마지막 기억이었다.
“허헉.. 컥….”
나는 숨을 몰아쉬며 주변을 바라보았다.
휘이이이이―
홍범과 금위가 심혈을 다해 만들어 펼친 진법이, 모조리 날아가 있었다.
홍범의 독기는 전부 증발해서 사라져 있었고, 곳곳에서 금신천뢰문의 제자들은 힘을 얻어 압도적인 뇌력을 내뿜고 있었다.
무수한 천인기, 원영기의 수도자들이 나를 둘러싸고 있었다.
그리고, 저 앞에서는 전명훈이 천뢰번을 쥔 채 나를 내려다 보고 있었다.
“전… 명… 훈…!”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려 했으나, 다시 다리에서 힘이 풀려 자리에 주저앉았다.
자세히 보니, 다리 근육이 아예 타 버려 움직이는 것조차 신기한 상태였다.
“천뢰, 번을…!”
나는 이를 악물었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처음부터 홍수령의 말을 듣지 않고, 몇몇 정도는 죽이거나 인질로 삼아서 쫓아내야 했을까.
아니면 전명훈이 덤비지조차 못하게, 갈기갈기 녀석의 육신을 찢어 버렸어야 했을까?
아니면 녀석의 수행을 폐해 버리고 목숨만 살려서 보냈어야 했을까?
모른다.
하지만 이미 결과는 이리되었다.
천뢰번이 놈의 손에 들어갔다.
“전…명, 훈….”
나는 타버린 성대에 힘을 몰아 어떻게든 재생시키며, 말을 짜냈다.
“천뢰, 번은… 하계에… 봉해져야, 한다….”
“…이유를 설명해라.”
“이유를, 설명하면… 너희 모두… 미쳐 버린다….”
“납득할 수 없군.”
“제발… 나를 믿어…줘….”
“…우리도 너를 믿었었다. 네가 우리를 배신하고 천뢰번을 훔치기 전까지는.”
전명훈은 차가운 얼굴로 내게 쏘아붙였다.
“너는 우리의 믿음을 배반했다. 믿어 달라고? 진즉부터 믿어 줬었다. 태상장문이, 장문이, 차기 장문인이, 네 스승이, 네 추종자들이, 내 연인이, 문파의 모든 제자들이…. 그리고 이 내가.”
그는 잔뜩 일그러진 얼굴로 외쳤다.
“너를, 믿어 줬단 말이다. 그런데 너는… 그 모든 걸 배반하고 도망쳤다.”
“아…냐….”
“설명을 못 한다고? 아니, 너는 그저 우리를 불신하는 거다. 네가 무슨 세상을 보고 있는
는 나도 모른다. 하지만, 너는 자신이 보는 세상을 우리와 공유하지 않으며 너 자신만이
가를 할 수 있다고 믿고 있는 것뿐이야. 설명을 못 하는 게 아니라, 너는 그냥 설명을 하지 않는 것뿐이다!”
“….”
“마지막 기회다. 설명해라.”
나는 입술을 깨물었다.
어선들에 대해서, 천벌의 주인에 대해서.
정려에 대해서, 양수진과 종명자와 무수한 거대 존재들에 대해서.
도대체 어떻게 입을 열어야 한다는 말인가!?
나는 이를 악물었다.
하지만, 나는 끝끝내 입을 열 수 없었다.
전명훈은 차가운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설명할 수 없단 거냐.”
“….”
“알겠다.”
그는 품을 뒤적이더니, 뭔가를 꺼냈다.
그것은 시조령이라는 글자가 음각된 영패였다.
“나, 시조님과 같은 천상금뢰지체이자, 금신천뢰문 차기 문주 금진찬의 제자, 동시에 배신자 서은현의 추적대장인 전명훈이 시조령으로서 명한다!”
철컹!
심장이 내려앉는 소리가 들려왔다.
“오늘 이 순간 부로, 서은현을 금신천뢰문의 아래에서 영구 제명하겠다! 서은현, 너를 영구히 파문(破門)한다!”
쿠우우웅!
그와 동시에 시조령에서 익숙한 의지가 느껴졌다.
그것은 양수진의 의지였다.
폐(廢)!
거대한 폐(廢) 자가 허공에 새겨지더니, 천천히 나를 향해 내려왔다.
번쩍!
폐 자는 내 몸에 새겨지는 듯하더니, 이내 사라져 버렸다.
치이이이―
그와 동시에, 나는 무언가를 느꼈다.
철컹, 철컹, 철컹!
천기가 변화한다.
그리고, 천기 너머.
운명 너머, 나와 이어져 있던 금신천뢰문의 인연이 완전히 끊이지는 것이 느껴졌다.
‘…아아….’
동시에, 나는 내 체내에 흐르던 투명한 기운이 변화하는 걸 느꼈다.
제례용 공법답게, 운명의 변화에 직결되어 변화하는 공법.
멸신겁천.
멸신겁천공이, 내게 완전히 종속되는 게 느껴진다.
동시에 나는 멸신겁천공의 의도를 알 수 있었다.
‘…그랬던 건가.’
적뢰천겁공을 익힌 이가 금신천뢰문을 이끌며, 그들과 가족이 된다.
그리고 가족에게서 버림받음으로써 그들 자체를 부정하고, 운명으로 하나로 엮여 있던 그들과 나를 부정함으로써 ‘나’와 ‘가족이었던’ 이들이 분리된다.
분리된 이들은 이제는 나와 아무런 상관이 없는 비인간이다.
그러니 한때 나 자신을 구성했던, 나의 일부였었던 이 비인간들을 제물로 바쳐, 운명을 비틀고.
비튼 운명으로 새로운 미래에 도달해라.
그랬다.
삼라만상 모든 것을 비인간으로 보았던 양수진은, 이 세계 전체를 갈아서라도 자기 자신이 행복해지고자 했다.
모든 것을 희생해서, 오로지 자기 자신을 완성함으로써 행복에 다가가는 마공(魔功).
그것이, 멸신겁천이었다.
속닥속닥속닥….
어쩐지 양수진의 목소리가 귓가에서 들려오는 듯했다.
―제물로 바쳐 버려라.
―너 자신이 제사장이 되어, 나를 버린 비인간들을 구축하여 희생 제물로 삼아 운명의 액을 막아 버리고, 운명을 비틀어서 새로운 미래를 손에 넣어라.
―처음은 금신천뢰문.
―다음은 더더욱 많은 이들.
―다음은 더더더더 많은 이들을 갈아넣고.
―끝내에는 이 세계마저 갈아넣어, 너 자신만을 완성시켜라.
아니, 이건 양수진의 목소리가 아니었다.
내 마음속의 심마(心魔)였다.
“지금부터, 죄인 서은현을 봉인(封印)하겠다!”
척, 척, 척, 척!
금신천뢰문의 장로와 원로진들이 각자 결인을 맺으며, 나를 중심으로 방위를 잡고 진법을 펼쳤다.
계속해서 멸신겁천이 내게 속삭인다.
내 마음속의 심마가 나를 유혹한다.
멸신겁천을 사용하라고.
멸신겁천을 사용해 저들에게 재액을 떠넘기고 운명을 바꾸라고.
하지만, 나는 가만히 있었다.
그저 가만히, 심마의 목소리를 무심히 흘려들으면서.
하늘을 보며 한 줄기 눈물을 흘렸다.
‘비인간이었으면, 내가 지금까지 노력해 올 필요가 없었잖나.’
멸신겁천이, 내 심마가 내게 속삭인다.
지금 당장 제물을 바치고 운명을 바꾸라고.
하지만, 애당초 내가 바꾸고 싶었던 미래는 ‘제물’들을 구하고 싶었던 미래였다.
“…나는….”
나는 있는 힘을 짜내서 자리에서 일어나려 했다.
천인기 원로들이 내 움직임에 흠칫 했지만, 봉인의 술법을 멈추지는 않았다.
“나는….”
나는 억울하고, 너무나 억울하여 눈물을 흘리며 하늘을 향해 손을 뻗었다.
“문명 사회에서 온… 지구인이다….”
나는, 운명이 없는 세계에서 온, 인간이다.
그렇다면, 운명이 있는 세계의 존재들은 운명의 노예이니 비인간이며.
그들의 운명은, 어떻게 해도 변할 수 없단 말인가?
“하늘이여….”
나는 하늘을 향해 손을 뻗으며 눈을 감았다.
봉인의 법술이 나를 휘감으며, 어둠이 주변을 덮어 갔다.
‘운명은… 정말로….’
* * *
쉬이이이―
전명훈은 눈 앞의 작은 옥구슬을 바라보았다.
“봉인, 완료되었습니다.”
천인기 원로들이 이마에 땀을 닦으며 말했다.
서은현이 봉인된 작은 구슬.
전명훈은 그를 보며 이를 악물었다.
서은현을 포획하면 가슴이 뻥 뚫릴 줄 알았건만.
이상하게도 찜찜했다.
무언가 피하지 못한 액운이나 대흉이 있을까 싶어 하늘을 바라보았으나, 천기는 이상이 없었다.
문득, 전명훈은 천뢰번을 바라보았다.
‘왜 서은현은 천뢰번의 이름을 부르지 말라고 한 거지?’
왜인지는 모르지만.
정말로 뜬끔없이, 전명훈은 천뢰번의 이름을 불러 보고 싶다는 충동이 들었다.
“ㅈ….”
그리고.
찌이이잉!
전명훈의 머리에 아직까지도 박혀 있는 오행혈주번이 윙윙 울며, 그의 말을 방해했다.
“크윽, 제길… 이 금제도 어떻게 제거하든지 해야겠어.”
그는 천뢰번의 이름을 부르는 건 나중으로 넘기고, 서은현을 봉인한 옥구슬을 집어들었다.
“금위는 주변에 없나?”
“지하에 공령지가 있고, 공령지 아래쪽에 누군가가 있었던 흔적이 있습니다만, 현재는 아무도 없습니다. 아무래도 도주한 것 같습니다.”
“그런가….”
전명훈은 주변을 수습했다.
금위.
그러니까 연진은 빠르게 도망쳐서 잡을 수 없었으나, 배반자 서은현을 포획했다.
“이 괴뢰는 봉래궁에서 가져가지.”
봉래궁 역시 많은 인원을 보낸 만큼, 전리품으로 서 장군을 가져가고자 했고, 금신천뢰문 측에서는 허락할 수밖에 없었다.
“너도 항복해라, 홍범.”
“예.”
홍범은 딱히 격렬히 저항하지 않고, 자신의 운명에 순응이라도 하듯이 순순히 잡혔다.
홍범 역시 원영기 장로들에 의해 봉인되어, 서은현보다 작은 옥구슬 안에 갇혔다.
“…이제.”
전명훈은 하늘을 바라보며 말했다.
“다 끝났다.”
그는 하늘을 바라보며, 약간은 시원하게, 약간은 섭섭하게 읇조렸다.
“정말로 다 끝났다….”
이젠, ‘집’에 갈 시간이었다.
* * *
전명훈 일행은 금신천뢰문에 복귀했다.
전명훈의 소식을 들었는지, 금신천뢰문의 모든 제자가 나와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전명훈은 금신천뢰문의 정문 앞에서, 말없이 천뢰번을 꺼내 들어보였다.
“…!”
“…!!”
“…!!!”
곳곳에서 귀가 떠나가라 어마어마한 함성이 울렸다.
함성에 땅이 윙윙 울릴 정도.
전명훈은 모두의 함성을 받으며, 금벽호의 앞으로 자랑스레 다가가 천뢰번을 반납하였다.
금벽호는 대견하다는 듯이 전명훈의 어깨를 두드려 주었다.
“한때, 너를 가르치는 걸 시간 낭비라고 생각했었다.”
“….”
“내가 틀렸다. 과욕이었던 게지. 너야말로 진정한 금신천뢰문의 후계자이며, 제자다.”
금벽호는 잠시 전명훈을 바라보다가, 그의 손을 잡아들고 외쳤다.
“모두 들어라! 본래 차차기 장문인이었던 제자는 본문의 믿음을 저버리고 천뢰번을 절도하여 파문당했다! 그 덕에 본문의 차차기 장문인의 자리는 빈 상태다!”
금벽호의 말에 전명훈은 그를 놀란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너희에게 묻겠다! 누가, 그 누가 차차기 장문인의 위에 머물러야 하는가!”
“전명훈 사형입니다!!!”
“전명훈 사형!”
“전명훈, 전명훈, 전명훈!”
곳곳에서 전명훈의 이름이 불렸고, 금벽호는 크게 웃으며 외쳤다.
“오늘부로, 전명훈에게 금씨의 성을 하사하며, 금명훈을 차차기 장문인의 위에 봉한다!”
“와아아아아!”
“금명훈! 금명훈! 금명훈!”
그렇게, 금명훈은 문도들의 환호 속에서, 비로소 ‘집’이 정상으로 돌아왔다는 안도감을 느꼈다.
정말로 간만에, 활짝 웃었다.
금명훈도 웃었고, 금소해도 웃었으며, 금벽호도 웃었다.
금신천뢰문의 모두가 웃었다.
그리고, 정려도 웃었다.
[아하하, 아하하하하하! 아하하하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