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Regressor’s Tale of Cultivation RAW novel - Chapter (270)
겁천(劫天) (8)
천인기의 경지 구결은 다음과 같다.
천인 초기, 지선이립(志仙而立).
천인 중기, 불혹천명(不惑天命).
천인 후기, 천순종심(天順從心).
천인 대원만, 천원(天圓).
원영(元靈)이 아기의 형태로 세상에 처음 난 형태를 가진다면, 천인기에서부터는 원영이 천지영기와 합일되기 시작한다.
그는 즉, 천지영기를 통하여 세계의 풍파를 직접 겪는 경지이기도 하다는 것이었다.
그렇기에 천인기에서부터는 원영의 형태에 근본적인 변화가 생긴다.
가장 순수한 형태였던 아기 형태의 영력이 변화하며, 생명체의 생사입멸의 과정에 따라 ‘성장’하는 것이다.
천인 초기는 지선이립이라고 하지만, 사실 과도기인 ‘지선’과 제대로 된 초기인 ‘이립’의 단계로 나뉘는 것이 맞다.
지선(志仙)에서는 수도자로서 태어나 수선(修仙)에 뜻을 두는 단계.
원영의 형상이 유아의 형상에서 소년으로 성장한다.
이립(而立)부터는 원영이 체외로 나와서 활동해도 문제가 없을 정도로 단단해지고 커지며, 원영이 소년에서 청년의 형상으로 성장한다.
이는 생사입멸에서 시작의 단계를 상징하니, 생(生)을 계절이라 한다면 춘(春)이다.
천인 중기 역시 ‘불혹’과 ‘지천명’의 단계로 나뉜다.
불혹(不惑)에서는 원영의 형상이 완전히 수도자의 본신과 일치하게 된다. 수도자 본인의 생명력이 절정에 달하는 때이다.
지천명(知天命)에서는 수도자 본인의 생명력은 전 단계보다 조금 줄지만 대신 천기(天機)를 뚫어보는 능력이 극대화되며 단기 예지가 가능해진다. 또한 원영의 형상이 청년에서 장년이 된다.
이는 생사입멸에서 과도기를 상징하니 생을 계절이라 한다면 하(夏)이다.
천인 후기.
천순(天順)은 하늘의 소리에 귀가 트이게 된다. 귀가 트인다는 표현은 그저 표현일 뿐이고, 실제로는 천기를 읽는 ‘감각’ 자체가 한 단계 더 개화하게 된다. 원영의 형상은 노년이 되며,
이는 생이란 계절에서 그동안 수확한 결실을 확인하는 추(秋)이다.
종심(從心)은 그동안 모아 온 천인기의 ‘마음’.
즉 광기가 극의에 달하며, 천기에 미력하게나마 영향을 미칠 정도가 되었음을 의미한다. 의지력 그 자체만으로도 천지 현상을 비틀 수 있는 천재지변 그 자체가 되며, 원영의 형상은 ‘죽기 직전’이 되며 이는 계절의 끝인 동(冬)이다.
그리하여 천인 초기, 중기, 후기 동안 춘하추동(春夏秋冬)의 사계(四季)를 완성하면, 사계는 끝없이 순환한다.
연기기에서 수선의 기초를 닦고.
축기기에서 별을 만들고,
결단기에서 하늘을 그리며,
원영기에서 밤과 낮을 만들어 ‘하루’를 만들었다면.
천인기에서는 사계를 만들어 ‘하루’가 끝없이 흘러 ‘순환’함을 형상화하는 것이었다.
그렇게 순환의 기초가 완성된다면 마지막.
천인기 대원만인 천원(天圓)에 이르러 소경계.
즉, [하늘을 체내에 담아내는] 경지에 도달해 내는 것이었다.
한 마디로, 수도자로서의 천(天)을 완성해 내는 것이 바로 천인기.
그렇기에 천인합일(天人合一)이라 하여 천인기(天人期)라고도 불리는 것이었다.
그렇게 천인합일로 이뤄 낸 천원(天圓)에 이어.
사축기에서는 네 개의 축을 쌓아 사신사방(四神四方)을 만들어, 지(地)의 방위(方位)를 만들어 낸다.
하늘의 원.
땅의 방위.
천원지방(天圓地方).
이렇게 천인기와 사축기를 통해 천원지방을 만들어, 자기 자신을 하나의 ‘작은 세계’로 만든 후.
천원과 지방을 완전히 합치는 천지합일(天地合一)의 과정을 통하면 합체기에 도달하는 것이었다.
천지영기가 체내와 체외를 잇는다.
동시에, 나는 내 의지에 의해 주변의 천지영력이 자유자재로 움직이는 걸 깨달았다.
‘간다.’
수많은 천인기 수사들은 천인기에서 발목을 잡힌다.
단순히 단약만 많이 먹고 앉아서 천지영기만 무식하게 끌어모은다고 해결되는 경지가 아니기 때문이었다.
아니, 정확히는 천인기 수사들도 천인 중기까지는 꽤 쉽게 도달한다.
왜냐하면 그 자신들의 전성기를 원영으로 재현하는 것이 바로 천인 중기였으니까.
하지만 그들은 모른다.
삶의 마지막에 이르러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는 기분을.
죽기 직전에 이르러 주마등을 보는 기분을.
오히려 너무나도 기나긴 시간을 사는 천인기이기에, 인생의 가을과 겨울에 대해서는 수명이 거의 다한 천인기 노괴가 아닌 이상 잘 모르는 이들이 허다했다.
연위는 단순히 내 광기의 크기만을 보고 천인기 대원만이라고 했겠지만, 잘못되었다.
‘알고 있다….’
어렸을 적의 그 기억들은 물론.
삶의 절정기에 이르렀을 때도.
삶의 후반에 이르러 생을 되돌아보았을 때도.
죽기 직전에 이르러 내 인생의 겨울을 맞이했을 때도.
비참하게 지구에서 온 문명인 같은 소리를 내뱉으며, 추운 겨울날 감기에 걸려 죽어 가는 나였기에, 오히려 그런 나였기에 알 수 있다.
재밌게도, 사람의 삶의 처음과 끝은 매우 닮아 있다.
죽을 때가 되면 마치 아기 때처럼 몸이 작아지고, 아기와도 같이 정신이 어려진다.
단지 다른 점은 아기는 인간 어머니의 품에서 나왔지만, 노인은 대지 어머니의 품으로 돌아간다는 것뿐.
하지만 결국 본질을 떠올린다면 같다.
모든 생명체는 생명의 품에서 나와 생명의 원천인 자연으로 돌아간다.
그렇게, 이 세상은 영원히 순환(巡還)하는 것이다.
우우우웅!
내 안에서 원(圓)이 만들어졌다.
동시에 내 원영은 어린 상태에서 소년 상태, 청년 상태, 장년 상태, 노년 상태, 사망 상태로 끝없이 형태를 바꾸다, 마지막에는 다시 최초의 원영.
아기 형태로 되돌아갔다.
순환한다.
이것은, 천원(天圓).
우우우우웅!
범인(凡人)으로서의 기억이 천인(天人)의 극의에 도달한 핵심 깨달음이라니, 나는 기이한 아이러니함을 느끼며 원(圓)의 힘을 끌어올렸다.
내 머리 뒤쪽에서, 천지영기가 순환하며 원 형태의 후광을 만들어 냈다.
그와 동시에 저 하늘 위쪽의 천겁이 변화하며, 그 안쪽에서 천인기 수준의 천겁이 또다시 생겨나기 시작했다.
원영기에서 천인기로 올라가는 천겁은 천겁 다섯 개다.
그리고 천인 초기에서 중기로 올라가는 천겁은 10개.
중기에서 후기로 올라가는 천겁은 15개.
후기에서 대원만으로 올라가는 천겁은 총 20개다.
그리고 나는 한 번에 천인기 대원만이 되어 버렸다.
그렇다면 내게 떨어질 천겁은 몇 개인가.
“…어마어마하군.”
쿠르르르릉!
총 50줄기.
거기에 청색과 금색 천겁이 나뉘어 있으니….
“…100개? 흐하하….”
나는 히죽 웃으며 더더욱 기운을 끌어올렸다.
방금 전에는 천족의 공법으로 천인기에 도달한 것이니.
이제는 지족 공법의 차례.
창령성광오채대법이 마구 울기 시작했다.
지족 공법도 핵심 이치 자체는 천족 쪽과 비슷했다.
다만, 지족 공법은 천인기부터는 수도자의 세포 하나하나에서 폭발을 시작한다는 것이었다.
꾸과과과광!
전신이 폭발한다.
그렇게 세포 하나하나를 폭발시키며, 세포의 생명력을 원영과 공명해 세포의 노화를 원영에 각인한다.
그렇게 세포에 각인된 생명의 형태, 생로병사를 전부 원영에 각인시키면 천족과 마찬가지로 천원의 경지에 도달하며 천인기 대원만이 된다.
지족의 경우에는 더 쉬웠다.
범인 시절, ‘늙었’던 시절의 기억이 내 뇌리에 또렷하다.
이 영혼에, 자글자글한 주름이 손에 가득했던 기억이 너무나도 또렷했다.
촤라라라락!
나는 천겁 속에서 성장하고, 장년이 되며, 노년이 되었고, 죽기 직전의 형상으로 변화했다.
그리고 또다시 원래의 형상으로 돌아왔다.
그렇게 다시 한번 지족 공법으로도 원영을 보충하였다.
즈우우우웅―
머리 뒤쪽의 원 형태 후광에, 요기가 깃들었다.
천(天), 지(地), 심(心).
삼재(三才)가 천인(天人)에 달했다.
콰르르르릉!
나는 나를 향해 떨어져 내리는 100줄기의 천겁을 보며, 그대로 손을 뻗었다.
쩌어어엉!
100줄기의 천겁이 일제히 터져 나갔다.
더 이상 천겁 따위는 두렵지조차 않다.
왠지 모를 끝 모를 자신감이, 끝 모를 힘이 솟아나는 듯한 느낌이었다.
퍼엉, 퍼버버벙!
나는 하늘을 향해 무색유리검을 찔렀다.
한 번의 찌르기를 할 때마다, 정확히 하나의 천겁 줄기가 터져 나갔다.
퍼엉, 퍼엉, 퍼엉!
계속, 계속, 계속.
찌르고 찌르고 찌르며.
퍼버버버벙!
나는 그렇게, 일백 줄기의 천겁을 전부 터트렸다.
‘이제….’
나는 완전한 천인기다.
그리 생각할 때였다.
‘잠깐….’
키이이잉―
뭔가 이상한 느낌이 뇌리를 엄습했다.
동시에, 나는 아까까지만 해도 어느 정도 얼기설기 엮여 있던 천, 지, 심의 기운들이 ‘완전히’ 하나로 엮이는 걸 느꼈다.
‘이게 뭐지!?’
내 머리 뒤로 떠오른 천인기 대원만의 상징.
후광의 원 안쪽으로, 법력, 요력, 그리고 무형검의 기운이 흘러 들어간다.
그와 동시에 천지심의 삼재(三才)가 원 안에서 완전한 조화를 이루며 삼태극(三太極)을 그렸다!
철컹!
“…아아….”
느껴진다.
지금 이 순간.
천인기 안쪽에서, 삼재가 완전한 조화를 이뤘다는 것을.
동시에, 나는 삼태극을 얻음과 동시에, 수선이라는 과정 자체에 상관없이.
얼마나, 어떤 힘을 얻었는지 상관없이.
내가 ‘나’로서 완성되어 가는 듯한 느낌을 얻었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콰르르르릉!
나는 마치 활화산 같은 기력이 전신에서 터져 나옴을 느꼈다.
“그렇군.”
나는 하늘을 향해 공격하던 것을 멈췄다.
콰지지지지직!
김영훈의 몸에서 떠오른 [금신천뢰]의 글자가 금신천뢰문의 문도들을 강화시켰고, 그들이 행하는 위뢰제를 강화시키며, 현재 천겁의 힘은 합체기 대원만에서 합체기 초기 수준으로 줄어들어 있었다.
그러나 합체기 초기 수준일지언정 전명훈과 김영훈이 감당할 수준은 넘어섰고, 내가 대항을 멈추자 점차 천겁이 아래로 떨어지기 시작했다.
“서, 서은현! 뭐 하는 거….”
“…!”
전명훈은 나에게 버럭 소리를 질렀고, 김영훈은 나를 보며 뭔가를 느꼈는지 흠칫 놀라는 느낌이었다.
나는 기수식을 잡았다.
‘지금까지는, 단악검법의 새로운 초식을 무식하게 만들기만 해 왔지.’
하지만 오늘, 나는 단악검법의 새로운 완성형을 잡았다.
앞으로 만들어갈 단악검법은 총 36초를 끝으로 완성될 것이다.
단악검법(斷岳劍法).
제이십구초(第二十九招).
“대천도피안(大千道彼岸).”
일멸도차안의 초식이 내 검에 원영을 담고 ‘폭발’시키는 자멸기라면, 대천도피안은 천인기의 공능으로 천지영기를 검에 담고 1초에 1천 번 이상을 폭발시키며 그 안쪽에서 의해은산으로 내 힘의 모든 것을 담아내는 초식.
동시에 내 원영과 천지영기의 폭발이 이어져 있기 때문에, 끊임없이 검을 휘두르며 천지영기의 폭발을 외부로 방출시키지 않으면 내 원영이 폭발의 기운에 박살 나 버리는, 목숨을 건 기술이었다.
생명력 외에 전신의 기(氣)를 모조리 탕진하기 전에는 절대 멈출 수 없는 검무!
‘앞으로 일곱 초식.’
대천도피안을 만들었으니, 앞으로 일곱 조각을 더 채우면 단악검법의 검류가 완결될 터.
나는 그때를 기대하며, 삼태극에서부터 활화산처럼 터져 나오는 기운을 모조리 검에 집어넣었다.
전신의 기를 모조리 쉴 새도 없이 쥐어짜야 하는 이런 위험한 기술을 만든 이유는 하나.
“쉬고 있으시지요, 둘 다.”
삼태극에서 뿜어지는 활화산 같은 힘에, 전신이 그대로 폭발할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부웅!
나는 22초 단악을 통해, 끊임없이 검무를 추었다.
스르르릉!
검을 한 번 휘두르자, 파천황과도 같은 기운이 하늘을 자를 듯 나아갔다.
콰과과과광!
검기는 그대로 하늘을 갈라 버릴 듯 천겁과 맞부딪친다.
내리치던 천겁의 절대다수가 이 일격에 막혀 더 이상 떨어지지 않았다.
나는 끊임없이 검무를 추었다.
콰앙, 콰앙, 쩌어어엉!
빛이 번뜩이며, 천겁이, 점차 소멸하기 시작한다.
하지만 나는 멈추지 않았다.
[그아아아아아!]지금 이 순간.
나는 활화산(活火山)이었다.
힘이 무한(無限)한 듯 끝없이 분출된다.
삼태극을 등에 업은 채로, 끝없이 단악을 펼친다.
콰르르르릉!
거대한 검기가 날아가며, 하늘에 수십 개씩 공간 균열이 생기기 시작했다.
내가 한 번 펼치는 검격에 하늘이 문자 그대로 쪼개지며 천겁이 산산이 박살 나고 있었다.
월악, 입산, 등맥, 유릉….
첩첩산중, 산중호걸….
산외산부진, 우공이산, 의해은산, 일멸도차안, 도잠, 금강 일만이천, 대천도피안….
무수한 검초가 이어진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이 합쳐진, 일격.
단악(斷岳)!
번쩍!
검 끝이 허공을 사르며, 모든 초식을 일거에 전부 쏟아낸다.
그와 동시에, 검격은 빛살이 되어 천겁보다도 더더욱 거대한 검풍(劍風)이 되어 천겁을 잡아먹기 시작했다.
쿠구구구구!
천겁이 산산이 부서져 가는 모습이 마치 비현실 같다.
“후우….”
아직도 기운이 넘친다.
천겁은 분명 사라진 것만 같이 보였다.
하지만 알 수 있었다.
천벌의 주인이 남긴 악의(惡意)는 결코 이런 것 따위로 끝나지 않는다.
‘아직도 남았군.’
하늘에, 아직도 천기가 비틀려 있는 것이 보였다.
저 천기가, 저 천명이 남아 있는 한.
계속해서 천겁이 우리를 노릴 터.
쿠릉, 쿠르르릉!
내 생각이 맞다는 걸 증명하기라도 하듯.
내가 천겁을 걷어 낸 하늘에서 다시금 천기가 일렁이며 천겁을 생산해 내고 있었다.
“전명훈, 영훈 형님. 제가 마지막 일격을 넣겠습니다.”
나는 안광을 불태우며 두 사람에게 말했다.
“그것으로, 천기를 어떻게 해 볼 터이니 저 천겁만 조금 막아 주시지요.”
“….”
“하하, 뭐. 해 보도록 하마.”
전명훈은 내 전신에서 느껴지는 활화산 같은 힘에 당황한 듯 말을 잇지 못했고, 김영훈은 껄껄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타닷!
두 사람은 하늘을 향해 뛰어올라, 다시금 떨어지려는 천겁을 향해 각자 일격을 날렸다.
쿠르르릉!
그와 동시에 천겁이 쪼개진다.
‘…음?’
하지만 나는 문득 미간을 찌푸렸다.
천겁이 이상했다.
마치… 살아 있는 듯이 움직이며 전명훈과 김영훈을 피하는 것 같다.
‘저건…!’
나는 헛웃음을 지었다.
그랬다.
비록 수계에까지 쫓아오지는 못했지만, 느껴진다.
천벌의 주인….
아니.
정려!
저것은 분명 정려의 악의였다.
저 오밀조밀한 뇌력의 움직임은 정려가 뇌 속의 전기를 다루는 것과 굉장히 닮아 있었으니, 틀림없었다.
그랬다.
정려의 악의가 천겁에 녹아들며, ‘강한’ 우리가 아닌 ‘비교적 약한’ 다른 금신천뢰문의 제자들에게 비켜서 떨어지려는 것이었다.
전명훈이 당황했으나, 이미 천겁은 아래로 떨어지는 중이었다.
내가 마지막 일격을 포기하고 다시 한번 주변을 쓸어버리려 할 때였다.
우우웅!
하늘에서, 거대한 음양의 형상이 떠오르더니 사방으로 떨어지던 정려의 악의를 막아 냈다.
쿠구구구구!
그와 함께, 연위의 혼이 튕겨 나갔던 방향에서 그녀가 떠올랐다.
“흐아아아아!”
그녀는 연진의 몸을 입고서 칠규에서 피를 흘리며 사방으로 분산된 천겁을 막았다.
하지만 다음 순간, 천겁은 또다시 살아 있는 듯 움직이며 이번에는 연위에게 집중되었다.
그녀가 소환한 태극의 형상이 바스러지며, 그녀가 천겁에 노출되었다.
파지직!
번쩍!
내 양옆으로 붉은 뇌전과 황금빛 도광이 번뜩이더니, 김영훈과 전명훈이 내 옆에 다시 도착했다.
전명훈이 말했다.
“서은현, 제발! 준비 다 되었다고 말해라!”
“…전명훈.”
나는 녀석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나는 김영훈을 바라보았다.
“영훈 형님.”
씨익.
나는 히죽 웃으며 말했다.
“일단, 저 녀석까지만 구한 다음에 마지막 일격을 날려 보지요.”
내게서 심어로 계획을 전해 들은 김영훈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좋습니다. 그럼 갑시다!”
다음 순간, 내 의도를 전해 받은 김영훈은 빛살이 되어 나와 전명훈의 뒷덜미를 잡았다.
파아앗!
김영훈은 빛이 되었다.
마치 시간이 잘려 나간 듯한 느낌과 함께, 나와 전명훈은 어느새 김영훈에게 잡혀 천겁의 안쪽에 진입해 있었다.
“가라!”
김영훈은 그 안에서 나와 전명훈의 몸에 능광도에 기운을 실어 저 위쪽.
연진의 몸이 있는 곳으로 던졌다.
하지만 천겁은 위에서 내리치고, 우리는 올라가야 하는 상황.
제아무리 능광도를 둘렀어도 우리는 어느 순간 멈춰 서기 시작했다.
[전명훈.]나는 영언으로 말하며 그를 쳐다보았다.
[가라.]나는 그 자리에서 양손을 깍지 꼈고, 내 의도를 알아차린 전명훈이 눈을 빛냈다.
[…고맙다.]파직!
전명훈은 내 깍지 위에 발을 디뎠고, 나는 전명훈의 몸에 무형검을 씌워 준 후, 그대로 깍지 낀 손을 위로 떨쳐 올렸다.
나는 그 반동으로 빠르게 아래로 떨어져 내려, 김영훈보다도 밑에 떨어졌다.
그는 검을 전신에 입은 채 하늘로 올라가, 그대로 연위가 있는 곳에 도착했다.
[이번에는… 죽게 두지 않는다…!]그의 눈에는 핏발이 잔뜩 돋아나 있었다.
[절대로! 그 누구도!]전명훈은 연위를 꼭 껴안은 채 광기 어린 표정을 지으며 외쳤다.
[내 가족을 손대게 두지 않아!]콰지지지직!
그와 함께 전명훈의 전신에서 피어오른 붉은 뇌전이, 여섯 개의 손이 되어 연위와 전명훈을 향해 떨어져 내리는 천겁을 먹어치우기 시작했다.
콰지지지직!
천겁이 모조리 전명훈에게 흡수된다.
만천했던 천겁 줄기가 오로지 전명훈에게 먹히는 기이한 광경.
하지만 내가 한 번 없애 버렸던 천겁이 다시 모습을 드러내며 조금 기운이 약해진 상황이었었고.
이제 천겁의 기운이 다시금 올라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는 대지 아래에서 그동안 준비해 왔던 기운을 끌어올렸다.
우공이산을 끝없이 펼치며 축적해 놓았던 파멸의 힘이, 시커먼 죽음의 기운을 뿜는다.
그 죽음의 기운이 음혼귀주문과 공명한다.
“후우우….”
홍범은 내 저주를 저주독이라 표현했다.
그리고 정려는 정신을 명의 계위로 올리면 저주가 통하지 않는다 했다.
그 말은 즉 명의 계위로 올린 저주는 통한다는 뜻이었고, 멸신겁천의 재액(災厄)은 일종의 명의 계위의 저주였다.
그리고, 이는 운명에 작용하는 독(毒)이었다.
독(毒)은 무엇인가.
독이란, ‘과함’이다.
이 세상엔, 사실 ‘독’이라는 건 존재하지 않는다.
오로지 ‘과함’과 ‘덜함’만이 존재할 뿐.
그리고, 모든 ‘과한’ 것은 독이 된다.
일반적인 독도, 균도, 약도, 설탕도, 소금도, 심지어 산소마저도.
과한 것은 독이 된다.
그것은 기(氣) 역시 마찬가지이다.
그리고, 일반적인 생명체 이상으로 천지영기를 끌어모으는 수도자란 존재는, 하늘의 입장에서 강력한 독이기에 정화 작용으로 천겁을 내리치는 것이나 다름없다.
하지만, 그렇게 생각한 적은 없는가.
하늘에게 우리는 독이지만.
우리에게 하늘이 독일 수도 있다는 생각.
강력한 힘이 모인 것이 독이기에 정화하려는 것이 천겁이라면.
운명이라는 더없이 강한 힘을, 우리는 왜 정화하지 못하는가.
하늘은 우리에게 천겁을 내린다면, 우리는 왜 하늘에게 겁을 내릴 수 없는가.
“하늘이여.”
쿠구구구구―
“내가.”
나는 멸신겁천(滅神劫天)을 발동했다.
하지만 이번에도 원래의 멸신겁천과는 달랐다.
본래의 멸신겁천이 희생 제물을 써서 천기를 움직여 하늘의 재액을 불러왔다면.
이번의 멸신겁천은, ‘하늘을’ 희생 제물로써, ‘내가’ 하늘을 향한 재액이 되는 것이었다.
“너의 겁(劫)이 되겠다!”
물론 이건 그저 상징적인 것밖에는 될 수 없다.
하늘을 희생 제물로 삼고, 내가 재액이라고 선언하든 말든 결국 나는 하늘을 어찌할 힘이 없다.
나는 하늘 앞에서 벌레일 뿐이었다.
하지만 그 정도면 되었다.
제의의 결과로, 지금 이 순간.
명(命)의 계위가, 열렸다.
단 한 순간!
[받아라!]단 한 순간!
월도겁천(越道劫天)!
무형검(無形劍)은 계위를 넘어, 이 단 한순간에 명의 계위에 도달한다!
나는 그대로 하늘로 날아오르며, 김영훈을 지나, 연진을 껴안은 전명훈을 지나, 천겁을 사르며 겁천(劫天)이 되어 공간을 찢고 나갔다.
전신에 가득했던 활화산 같은 기운이, 이 일격에 모조리 소진되는 것이 느껴졌다.
“―――――!”
가히 필설로 형용할 수 없는 고통이 전신에 가득했다.
‘제발, 제발!’
도박에 가까운 일격!
과연, 제아무리 모든 것을 바친다 한들 필멸자의 몸으로 명에 도달할 수 있을 것인가!?
그러나 그때였다.
콰직, 콰지지지직!
문득, 나는 칠색의 번개에 둘러싸인 채.
피눈물을 흘리고 있는 그림자가, 쇄천봉 너머에서 나를 향해 손을 떠미는 듯한 환영을 보았다.
다음 순간, 나는 무언가가 등을 떠밀어 주는 느낌과 함께, 어딘가로 ‘진입’하였다.
쿠구구구구구!
나는 그렇게 전신이 터져 나가면서도 위로 올라갔다.
우공이산으로 끌어모은 충격력을, 저주를 모조리 쏟아부으며, 나 자신이 독이 되어 하늘에 겁을 내리겠다는 의지를 날카롭게 벼리며!
그리고 마침내, 나는 감히필설로형용할수없는거대하고거대한세상에도달하여그것을보았다마침내그것에도착한나는천겁의근원을향해….
휘둘렀다!
번쩍!
“…!”
휘이이이이―
나는 정신을 차리자, 내가 하늘에서 떨어지고 있단 걸 깨달았다.
전신에 있는 힘을 단 한 올도 남기지 않은 상태에서.
그런 상태에서 떨어지며 하늘을 보며, 나는 씨익 웃었다.
“운명(運命)을….”
보이는가, 하늘이여.
이 비천한 내가.
“베었다….”
휘이이이―
너를 이겨 냈다.
물론 전신의 힘을 쥐어 짜낸 지금.
이대로 떨어지면 그대로 죽을 터였다.
하지만 나는 그렇게 비참하게 추락사하리라는 걱정은 하지 않았다.
“서은현!”
“서은현!”
김영훈과 전명훈이, 동시에 내게 날아와 떨어지는 나를 받쳐서 쇄천봉으로 내려와 주었다.
“…끝났군.”
나는 피 칠갑을 한 채, 하늘을 보며 피식 웃었다.
내 검격으로 인해 사방이 쪼개지고 공간 균열로 가득해진 하늘이었다.
하지만, 그 사이사이로 보이는 천기는 어느덧 정상으로 돌아와 있었다.
내가 하늘을 볼 때.
전명훈의 옆구리에 끼워져 있던 연위가 꿈틀거렸다.
“어, 어… 여긴? 전… 아니, 금명훈 사형?”
그러나 연위는 다시 잠들었는지, 깨어난 것은 연진이었다.
연진은 전명훈을 올려다보며 말했다.
“으, 사형. 죄송한데 좀 내려 주시면 안 될까요?”
“….”
전명훈은 문득 연진을 내려다보다, 갑자기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그는 연진을 내려놓더니, 갑자기 연진을 껴안았다.
“끄아아아아아!”
절규와 원한, 그리고 안도.
여러 감정이 섞인 비명 소리가, 전명훈의 깊은 곳에서부터 터져 나왔다.
“흐아아아아! 아아아아! 아아아아아!!!”
“흐, 흐아! 사, 사형?”
연진은 당황하는 듯하면서도 전명훈을 어찌어찌 위로했고, 전명훈은 뜨거운 눈물을 줄줄 흘리며 내게 외쳤다.
“서은현!!!”
“…뭐…냐.”
“…미안하다.”
뚝, 뚝뚝뚝뚝….
다시 한번 문파가 망문한 것을 실감한다는 듯.
전명훈은 눈물을 끝없이 흘리며 외쳤다.
“미안하다, 서은현. 미안하다. 미안하다! 미안하다!!! 그리고….”
저 미안하다는, 단순히 내게 하는 것이 아니었다.
죽어버린, 지키지 못한 그의 가족들에게 바치는 ‘미안하다’.
동시에 나를 믿지 못했음을 자책하는 ‘미안하다’였다.
얼마간 녀석은 그대로 얼굴을 연진의 가슴에 파묻은 채, 그렇게 끅끅거렸다.
‘아직도… 해갈되지 못한 감정이 많이 남았는가.’
나는 얼마간 전명훈의 의념을 바라보다가 숨을 골랐다.
하늘의 벌은 끝났음에도, 인간의 감정은 남아 있었다.
“…전명훈.”
녀석의 의념은 암울했다.
검붉은색, 붉은색, 검푸른 색 등….
부정적인 의념들이 전부 섞여 있는 끔찍한 심연의 소용돌이.
아마 다른 이라면 저 심연을 본다고 해도 감히 위로할 엄두를 못 낼 것이다.
어떻게 위로해야 할지도 모를 것이다.
하지만, 나는 잠잠하게 입을 열었다.
“네 탓이, 아니다.”
그게 사실이든 아니든.
나는 원립에게 모든 것을 잃었던 때를 떠올리며, 그때의 나와 같은 심연으로 접어들려는 전명훈을 보았다.
아마 녀석의 분노를 이해할 수 있는 건.
어쩌면 이 자리에는 나뿐인지도 모른다.
“네 탓이… 아니야.”
나는 피를 한 움큼 뱉어 내며 피식 웃었다.
“그냥… 세상이 지랄맞은… 거겠지. 그러니….”
나는 전명훈의 의념을 보며 말을 이었다.
“용서해라. 전명훈… 너 자신을.”
사람이 분노에 미치면, 광기와 고통에 미치면.
얼마나 불행해지는지는 내가 가장 잘 알고 있기에, 감히 할 수 있는 위로.
그리고, 전명훈의 의념이 가라앉기 시작했다.
녀석은 천천히 고개를 들며, 느릿하게.
그리고, 고요하게, 대답했다.
“…너도, 내 기분은 이해 못 한다.”
“알아.”
사람은 사람을 이해할 수 없다.
아무리 가까워도 아무리 같은 일을 겪었어도.
타인이기에 자신이 될 수 없다.
하지만.
“그래도….”
녀석은, 눈물을 쏟아내며 머리를 들었다.
“…고맙다.”
꽈아악….
그는 연진을 더더욱 세게 끌어안으며 눈물로 얼룩진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말했다.
“고맙다, 정말 고맙다. 정말… 고맙다!”
연진이 숨쉬기 힘든지 켁켁거렸지만 전명훈은 아랑곳하지 않고 끌어안았고, 김영훈은 그를 보며 껄껄 웃었다.
저 고맙다는 무슨 의미일까.
내게 고맙다는 의미, 내가, 연진이, 금신천뢰문의 모두가 살아 줘서 고맙다는 의미.
자기 자신의 상황에 고맙다는 의미….
‘여러 가지가 있겠다만… 뭐 무슨 상관이냐.’
“…오냐.”
나는 녀석에게 대답을 해 준 후.
피 칠갑을 한 채, 그렇게 미소지으며 눈을 감았다.
우리는 그렇게.
천벌의 주인이 내린 운명을, 극복하였다.
‘그거면… 되었다.’
“서, 서은현? 죽지 마라!”
“잠깐, 서 대리?”
이것이, 나의 열여덟 번째 회귀….
“서은현!!! 죽지 마라!!!”
“안 돼!!! 잠깐!”
…인 줄 알았다.
왈칵!
나는 입에서 피를 토해 내며 말했다.
“…나, 아직… 안, 죽었….”
쿨럭, 쿨럭….
아무래도, 이번 생은 상당히 긴 생이 될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나는 그런 예감과 함께 미소를 지으며, 내 상태를 보러 화들짝 놀라 달려오는 둘의 모습을 마지막으로 의식을 잃었다.
* * *
쿠릉, 쿠르릉….
[이곳은 명을 깨닫지 못한 종명자가 기적 같은 확률을 통해 도달하는 곳….]나는 눈을 떴다.
칠색의 번개로 채워진 공간.
그곳에서, 나는 익숙한 잔영을 보며 입을 열었다.
“…양수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