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Regressor’s Tale of Cultivation RAW novel - Chapter (271)
천인기(天人期)
나는 칠색의 번개로 채워진 공간.
그 중심에서 피눈물을 흘리는 그림자를 바라보았다.
‘쇄천이라고 외쳤었나?’
생각해 보면 쇄천봉 위에서 일을 벌이고 있느니만큼 입에 담았었던 것 같기도 했다.
정신없는 틈바구니에서 워낙 김영훈과 전명훈에게 악을 쓰며 빠르게 말했으니 말이었다.
‘뭐, 그건 둘째 치고….’
나는 내가 마지막으로 멸신겁천을 사용했을 때를 떠올렸다.
분명, 양수진의 잔영이 보였고, 그가 손을 뻗음과 동시에, 나는 ‘떠밀리는’ 느낌과 함께 운명을 벨 수 있었다.
“당신이 도와준 거요?”
[…그래.]“…나는 저승의 밑바닥에서 당신이 남겨 놓은 분체와 대면하여 멸신겁천을 전수받고 왔소.”
[…그런가.]나는 그를 쳐다보며 말했다.
“한 가지 말해 두겠소. 나는, 당신의 ‘비인간’론에 대해서 매우 부정적이며, 동의하지 않소. 애당초 당신의 말대로라면 명을 따라가는 종명자라는 존재들 또한 비인간과 다를 바 없지 않소?”
[…그렇지.]“…?”
나는 묘하게 달관한 듯한 그의 말투에서 이상함을 느꼈다.
뚝, 뚝….
그리고, 그림자의 눈에서 흘러나오는 피눈물이 점차 굵어지기 시작했다.
[네가 만난 분체는, 내가 ■■과 대면하기 이전에 만든 분체…. 그는 자신감도 넘치고,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착각에 빠졌을 당시의 나이다.]“….”
나는, 양수진의 잔영에게서 느껴지는 암울하기 짝이 없는 절망감에 흠칫 몸을 떨었다.
[명을 발설했기에 ■■과의 결전에서 가능성이 없다고 여겨 명을 바꾸고자 했다. 물론 불가능하단 걸 알았지만, 그래도 내가 천벌의 권역을 손에 넣으면 승산이 있을 줄 알았지…. 하지만 틀렸다….]양수진의 잔영의 눈에서 흐르는 피눈물이 점차 많아져, 시커먼 그의 몸을 점차 붉게 물들여갔다.
[네 말이 맞다. 내 비인간론에는 심대한 모순이 있지.]그리고, 이어진 그의 말에 나는 흠칫 몸을 떨었다.
[우리 또한 비인간에 불과할 뿐이다. 먼지보다도 못한 장난감들일 뿐이야…. 우리가 쌓아 온 모든 것은… 전부 의미가 없다….]스르르….
완전히 붉게 변한 양수진의 잔영이 점차 흩어지기 시작했다.
[후대여… 네가 받은 명을 조심해라. 네가 일으킬 수 있는 기적에 대해 함구해라. 세계로부터 받은 선물을 숨겨라. 어선(御仙) 중에서 믿을 수 있는 건 단 하나뿐이다.]한 마디를 내뱉을 때마다 양수진의 잔영은 점차 흩어지며, 종래에는 완전히 허공으로 녹아 버렸다.
[함부로 명과 관련한 것들을 발설하면 티끌만 한 희망조차 짓밟히리니…. 너는 나의 전철을 밟지 말아라.]그 말을 마지막으로, 양수진은 완전히 사라졌다.
나는 그의 마지막을 지켜보며, 눈을 감았다.
* * *
깜빡―
눈을 뜨자, 모르는 천장이었다.
‘여기는….’
동굴 같았다.
그리고 예상외로 수계답지 않게 상당한 천지영기가 대기에 분포해 있는 것이 느껴졌다.
스르륵….
자리에서 일어나자, 부드러운 이불이 몸에서 흘러내렸다.
보아하니 동굴 같은 곳에다가 침구류를 준비해 놓고 나를 눕힌 모양.
그뿐이 아니라, 동굴 곳곳에 영초와 영액들이 즐비해 있었고, 침상 아래쪽으로는 생명력을 북돋는 진법이 펼쳐져 있었다.
“여기는….”
나는 묘하게 익숙함이 느껴지는 동굴을 보며 의식을 일으켰다.
우우우웅!
상단전의 안쪽에서 광대한 의식 영역이 뿜어져 나왔다.
쿠구구구구!
천인(天人)의 의(意)는 그 자체로 힘을 가지고 있다.
그렇기에 내가 의식 영역을 펼친 것만으로 천지가 흔들리며 천지영기가 움틀거리기 시작했다.
“후우우….”
반경 이백.
직경 사백 리(理)가 손 안에 들어온 것처럼 훤히 잡힌다.
이것이, 천인기 대원만에 달한 의식 영역의 크기였다.
그리고 나는 의식 영역을 펼치자마자 이곳이 어디인지 알 수 있었다.
“등선향…!?”
그것도, 나와 회사 동료들이 처음 머물렀던 그 동굴이었다.
아무래도 수계에서는 등선향이 가장 천지영기가 진한 곳이기에 이곳으로 데려온 듯싶었다.
우우웅!
“음?”
내가 침상에서 일어나자, 생명력을 북돋던 진법이 웅웅거리며 어딘가로 신호를 보내는 게 느껴졌다.
아무래도 전명훈이나 기타 금신천뢰문의 제자들이 이렇게 해 준 듯싶었다.
‘뭐, 기다려 보면 알겠지.’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동굴 바깥으로 나갔다.
“후우….”
정말, 오랜만이다.
나는 동굴의 앞에서 3명의 천인기 수사들을 처음 만났던 그때를 떠올렸다.
지금의 나는, 그 당시 천인기 수사들과 같은 경지에 도달하는 데에 성공했다.
만약 지금 그때로 돌아가면 어떻게 될까.
어쩌면 내가 그들에게 으름장을 놓으며 내 동료들을 내 제자랍시고 내가 데려간다고 했을지도 모른다.
스륵―
나는 가만히 하늘을 향해 한쪽 손을 올렸다.
그대로 손가락으로 하늘을 짚은 나는, 그대로 하늘을 향해 선을 그었다.
쿠구구구구구!
그와 동시에, 천지영력이 진동하며 내 의지에 의해 천기현상이 바뀌었다.
우우우웅!
금벽호가 진노하자 벼락이 떨어져 내린 것처럼.
내가 원하자, 저 하늘에 내가 손가락을 그은 모양대로 먹장구름이 뭉게뭉게 피어나기 시작했다.
쏴아아아아―
이것이 천인합일의 경지.
바라는 것만으로 비가 내리고, 자연의 힘을 자유자재로 다룰 수 있다.
콰악!
주먹을 쥐자, 하늘을 메운 먹장구름이 크기를 불리더니 이내 등선향 전체로 퍼져 나가며 비를 뿌리기 시작했다.
쏴아아아아―
삽시간에 등선향 곳곳에 비가 내리고 우천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스르륵….
내가 손을 펴고 팔을 내리자, 이내 비는 진눈깨비가 되더니 그대로 새하얀 눈이 되어 등선향을 물들였다.
나는 눈보라를 맞으며 허공으로 떠올랐다.
결단기에서의 비행은 금단을 중심으로 전신의 천지영기를 가볍게 하는, 일종의 ‘법술’이었다.
하지만 천인기에서부터는 의지가 일자 동시에 천지영기가 알아서 나를 띄워 놓는 느낌이 들었다.
법력이 소모되지 않는다.
나는 하늘로 날아올라, 먹장구름 위쪽에 도달했다.
쿠구구구구!
점차 눈보라가 거세지더니, 이내 용오름이 되어 등선향 곳곳을 헤집는다.
우우웅―
내 머리 뒤로 원형의 후광이 나타났다.
삼태극은 떠오르지 않고, 그저 순수한 천족 천인기의 힘일 뿐이었지만, 그 힘은 막강했다.
쿠구구구구―
내가 손을 휘젓자, 특별한 결인을 맺은 게 아님에도 회오리가 수십 개로 분화되며 등선향 곳곳으로 퍼졌다.
내가 양팔을 벌리자, 회오리는 곳곳으로 흩어지며 사라졌다.
그러나 하늘이 들끓으며 곳곳에서 천뢰(天雷)가 우르릉거렸다.
하늘이 번개의 바다로 뒤덮인다!
뒤이어 우박이 내리고, 해일이 일어 등선향 아래로 물이 떨어졌다.
나는 등선향의 위쪽에서 팔을 휘두르며 천지 현상을 마음껏 지휘하였다.
그리고 어느 순간.
퍼엉!
내가 주먹을 쥐자, 돌풍이 불며 천지 현상을 모조리 등선향 바깥으로 떠밀어 없애 버렸다.
“이것이… 천인경.”
의지에 의해 천지 현상을 감응하는 경지.
천지영기와 의식이 합일하였기에 의식의 크기가 곧 힘 그 자체가 되는 경지였다.
천인기에서부터는 자신이 익혀 온 공법의 속성을 천지 현상으로 일으킬 수 있게 된다.
지 속성 공법을 익힌 수사는 지진해일을.
수 속성 공법을 익힌 수사는 우천과 폭설을.
화 속성 공법을 익힌 수사는 가뭄과 산불을.
목 속성 공법을 익힌 수사는 천뢰와 숲의 생장을.
금 속성 공법을 익힌 수사는 폭풍과 자력(磁力)의 제어를.
그러한 천지 현상을 천인기 수사가 원하는 대로 부릴 수 있고, 그런 천지 현상을 ‘끌어올’ 수가 있게 된다.
천인기 수사들 사이에서는 이러한 천기의 조작을 [천기유도]라고 불렀다.
괴군이 예전 수천 리 바깥에 있던 원립의 목을 졸라 죽이려 했던 것도 같은 원리로, 저주를 하나의 천지 현상으로 만들어 원립에게 유도시킨 것이었다.
그리고, 이러한 속성별 유도는 원영 후기에서 어떤 속성을 중심으로 쌓았느냐가 중점이 되었다.
하지만, 나는 오월입도결과 오행장원전의 효과로 인해 오행 속성을 전부 천기유도시킬 수 있었다.
‘일반적인 요족들도 기본적으로 오행을 전부 천기유도시킬 수는 있다만….’
천족 수도자들에 비해 특화되지 않았다.
선수 혈통을 타고난 몇몇 요수들만이 오행 중에서 선수 혈통이 관장하는 영역의 속성에 특화되긴 했다만, 선수 혈통을 타고나지 않은 요수
은 그냥 자신의 육신을 천기유도를 통해서 무한하게 강화시키는 쪽을 택하곤 했다.
하지만 나는 천족 공법의 방식으로 오행을 전부 익혔기에, 오행 전부가 천족 수도자만큼 특화되어 있으면서도 지족 수도자처럼 전부를 다룰 수 있다.
이 자체만으로도 나와 일반적인 천인기 수사들은 상당한 차이를 보이는데, 겁천의 힘까지 섞여 삼태극을 그리면, 그리고 거기에 괴뢰의 회로까지 사용하면 나는 도대체 어느 정도로 강해지는 것인가.
난 나 자신조차 내 힘이 어느 정도인지 잘 모른다는 걸 깨달았다.
‘이건 앞으로 차차 알아가야겠군.’
나는 몸 상태를 확인해 보며, 뒤를 돌아보았다.
파직, 파지직….
“…일어났냐.”
“다 회복됐군.”
어느새, 김영훈과 전명훈이 날아와 나를 보고 있었다.
나는 씨익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예. 잘 잤습니다.”
“뒈져 버리는 줄 알고 놀랐다. 금신천뢰문의 제자들을 닦달해서 인근 수도가문들을 약탈시켜 원기 회복에 쓰이는 영초들로 약을 만들어 네놈 입에 쑤셔 넣느라 힘들었다.”
“…네가 쑤셔 넣은 거냐?”
“아니, 연진 시켜서 했지.”
“….”
그럼 왜 본인이 생색을 내는 걸까.
나는 전명훈을 보며 혀를 차고는 김영훈을 바라보았다.
“몸은 좀 괜찮아진 것 같군.”
김영훈은 씨익 웃으며 칼집에 손을 가져갔다.
“뭐, 솔직히 이런저런 말 할 것 없겠지?”
“….”
물론이다.
당장이라도 무형검을 뽑아 김영훈에게 휘둘러 보고 싶은 충동 때문에 손이 근질거리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욕망을 꾹 눌러 참으며 물었다.
“한 가지, 확인해 둬야 할 게 있습니다.”
“뭐냐?”
“영훈 형님은 지난번, 월도쇄천이라는 경지를 입에 담으셨습니다. 맞습니까?”
“그래.”
“하지만, 그때 연위의 반응. 그리고… 지금 제 눈으로 보니 더욱 확실해졌습니다.”
나는 침을 꿀꺽 삼키며 물었다.
“당신은… 월도쇄천이 아니지요?”
“….”
김영훈은 잠시 침묵하는 듯하더니, 작게 미소지었다.
긍정의 의미였다.
오싹, 오싹….
나는 피부 위로 소름이 돋는 걸 느꼈다.
그래, 이 정도는 되어야 내가 알던 ‘김영훈’이 아닐까.
그 당시 연위가 김영훈을 보며 기겁했던 이유.
그리고 내가 지금 그에게서 느끼는 기이한 위화감.
그리고 하계로 적강 도중 봤던 ‘황금빛 붕조’.
모든 것을 조합하면, 한 가지 결론이 나왔다.
“영훈 형님. 당신은, 쇄천 너머… 제가 아는 한 존재가 ‘어전 일 보’라고 부르는 경지에 이른 것이고, 지금의 당신은, 그러니까 우리와 함께 천겁을 극복했던 쇄천경의 당신은 분신이 아닙니까?”
“엥?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전명훈은 이해를 못 했는지 나와 김영훈을 번갈아 보았다.
느껴진다.
함천존자 장익이, 하계에 있을 때 머나먼 시공간을 격해 유화를 통해 자신의 ‘분신’을 파견했던 것.
지금의 김영훈은, 장익이 만들었던 것과 똑같은 어전 일 보에 도달한 김영훈의 ‘분신’이다.
그리고, 우리가 하계로 적강하며 보았던 황금빛 붕조가 그 당시 비승하던 김영훈 본체였던 것이었다.
나는 전신에 짜릿짜릿한 소름이 돋는 걸 느끼며, 히죽 웃었다.
“도대체… 어떻게, 어떻게 그 경지에 도달한 겁니까?”
그리고, 김영훈은 히죽 웃었다.
금빛이 은은히 도는 그의 눈동자에 내 모습이 비쳐 있었다.
내 모습은, 어쩐지 잔뜩 흥분한 모습이었다.
그래, 지금 입꼬리를 끌어올리는 김영훈과 비슷한 표정이다.
“알고 싶나?”
철컥!
그가 자신의 도 손잡이에 손을 올렸다.
나는 입에서 무색유리검을 꺼내며 말했다.
“당연하지요.”
“말이 필요한가?”
나는 고개를 저었다.
김영훈이 희열에 찬 표정으로 도를 잡으며 말했다.
“알려 주마.”
다음 순간, 능광도와 무색유리검이 찰나를 찢고 부딪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