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Regressor’s Tale of Cultivation RAW novel - Chapter (272)
기둥 (1)
나와 그가 동시에 일 보를 내디뎠다.
동시에 우리는 정지된 세계로 들어갔다.
나는 봐줄 생각 따윈 없이 전력을 개방했다.
‘장익의 분신을 떠올리면, 긴장을 놓으면 안 된다.’
일반적인 천, 지족 수도자의 경우.
분체나 신외화신을 만든다 해도 무조건 본체보다는 경지가 떨어지고, 낼 수 있는 힘 역시 한참은 달리게 된다.
하지만 심족의 경우는 달랐다.
‘오로지 힘의 크기만 차이가 있을 뿐, 쓸 수 있는 기술과 경지는 본체와 다를 바가 없다.’
아마 다른 게 있다면 힘의 크기 차이와, 육신의 유무로 인한 유지력의 차이일 뿐이었다.
그러니까 한 마디로, 지금 눈앞의 김영훈은 단기전 한정 본체 김영훈과 다를 바가 없다.
‘단기전이면 충분하지.’
나는 히죽 웃으며 검을 잡고 의식을 가속했다.
반경 2백 리에 달하는 의식의 크기가, 무형검에 의해 끝없이 가속된다.
동시에 겁천에 달하며 기본적으로 뇌속(雷速)을 얻었다.
거기에 방대한 의식을 가속시킨다.
천겁을 닮은 겁천의 순수 속도만 해도 뇌속에 근접하기에 전명훈을 따라갈 수 있을 정도였다.
거기에 의식의 가속까지 더해지자, 나는 전명훈은 따위로 볼 수 있을 정도로 빨라진 것을 느꼈다.
우리는 거의 동시에 정지된 세계에 진입하며 서로를 향해 검과 도를 뻗었다.
그리고 다음 순간.
파밧!
“…???”
나는 어느새 내 전신에 여덟 번의 참격이 꽂혀 있음을 눈치챘다.
순식간에 급소가 여덟 군데 베였다.
나는 의식을 끝없이 가속시켰다.
뇌가 과열된다.
그리고, 그제야 나는 어느새 내 위쪽에서 도를 들고 나를 향해 내리꽂으려는 김영훈을 인지할 수 있었다.
파밧!
나는 극순의 세계에서 몸을 움직이며 검을 찔러 들어갔다.
파앙!
하지만 김영훈은 또다시 순식간에 피해 버렸다.
‘미쳤군.’
세계가 정지에 가까워질 정도로 정신을 가속시키고 겁천으로 뇌속에 가까운 속도를 얻었음에도 불구하고, 간신히 육감에 의지해 따라가는 게 전부였다.
눈으로 좇을 수조차 없다!
내 무형검이 천변만화하며 그를 잡아 보려고 했지만, 속도 자체가 너무 차이가 나니 아예 뭘 해 볼 가능성 자체가 전부 막히는 느낌이었다.
‘빠르다.’
우리가 제대로 싸우면 등선향이 부서질 수 있었기에, 나와 그는 현재 힘을 최대 결단기 수준으로 제하고 싸우는 중이었다.
하지만 분명히 결단기 급의 힘으로 힘을 제한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 둘은 절대로 결단기 따위가 따라올 수 있는 속도가 아니었다.
번쩍!
어느새 내 앞쪽에서 검격을 날리는가 했던 김영훈이 내 오른쪽에 나타나서 능광도를 전신에 두른 채 뇌속을 초월한 속도로 발차기를 날렸다.
슈콱!
옆구리가 베이는가 싶더니, 나는 어느새 인지도 못 할 속도로 저 멀리 날아가고 있었다.
파아앗!
정지된 세계에서 정신조차 차리기 힘들 정도의 속도로 날아간 나는 문득 저 아래가 허전해짐을 느꼈다.
‘미쳤군.’
발차기 한 번에 등선향의 중심부에서 답천사막까지 밀려난 것이었다.
번뜩!
그리고 뭔가를 생각하기도 전, 김영훈이 어느새 내 위쪽에서 나타나 능광도를 수직으로 내리치려 하고 있었다.
나는 헛웃음을 흘렸다.
그래, 역시 나는 순수한 무(武)로는 그의 발끝조차 좇기가 힘들다.
그렇다면.
[갑니다.]나는 심어를 보내며, 요수공법의 힘을 끌어올렸다.
쿠구구국!
천지영기가 육신을 강화한다.
생명력이 끓어오르며, 육신의 잠재력 자체가 어마어마하게 올라갔다.
동시에 내 상중하단전 역시 생명력이 가득 차오르며 강화되기 시작했다.
한계까지 과열되었던 상단전이 강화로 인해 빠르게 안정을 찾았다.
여유가 생겼다.
하지만 나는 요수공법의 힘을 더한 상태에서 계속해서 머리를 더더욱 가속시키기 시작했다.
한계까지, 한계까지 가열한다!
시간이 더더욱 쪼개진 듯한 느낌이 든다.
그와 함께, 나는 황금빛에 둘러싸인 김영훈이 정지된 세계 속에서 움직이는 속도를, 점차 ‘쫓아가기’ 시작했다.
[흠.]김영훈은 정지된 세계에서 조금 놀랍단 듯이 미소를 지었다.
기분 탓일까.
아니면 정지된 세계에 너무나도 깊숙이 진입한 탓일까.
주변이 어두워지는 느낌이었다.
이 세상에 색채가 있는 건 오직 나와 김영훈뿐이었다.
[따라오는 건가.]파앗!
우리는 검격을 주고받았다.
마치 광선과 광선 같다.
서로의 팔이 수천 개로 분화하는 듯하더니, 무색의 광선과 금빛의 광선이 정지의 어둠 속에서 마구 부딪히는 듯한 느낌이었다.
‘됐다!’
나는 희열에 찬 미소를 지었다.
‘따라가고 있다!’
어느덧 나와 그는 벌써 수만 합을 주고받는 중이었다.
쿠구구구!
극순의 세계에서 주고받는 일격 일격에, 충격파가 사방으로 휘날리며 답천사막 곳곳에서 폭풍이 몰아치고 있었다.
그리고 폭풍의 중심에선 나와 그가 빛을 연상시키는 속도로 맞붙고 있었다.
나와 그의 움직임 하나하나에, 모래가 녹아 유리가 된다.
우리의 전투지 인근은 순식간에 흘러서 녹아내리는 유리의 바다가 되어 있었다.
나는 시뻘겋게 달아오르다 못해 물처럼 녹아 있는 유리의 바다를 수상비로 밟으며 김영훈과 눈이 마주쳤다.
[이대로 가면 제가 이깁니다.]이대로 하루 정도만 끌면 김영훈을 이길 수 있다.
왜냐하면 그 정도만 있다면 김영훈의 분체에 있는 기운을 모조리 소진시킬 자신이 있었으니까.
물론 조금 큰 기술을 쓰면 더더욱 그를 밀어붙일 수 있을 것만 같은 느낌이었다.
그렇게 생각했을 때였다.
[좋군.]김영훈은 정지의 어둠 속에서 황금빛에 휩싸여 미소지었다.
꾸웅!
그가 내 일격을 맞고 날아가 유리의 바다 한 곳에 처박혔다.
그는 날아가는 도중에 자세를 바꾸며 기수식을 잡았고, 다음 순간.
그가 심어를 보내 왔다.
[그럼, 서은현.]철컥!
그리고 나는, 천인기에 오른 천기안의 단기 예지에.
요수공법의 단기 예지에.
그리고 심족으로서의 의념을 보는 육감에.
내가 죽기 직전까지 썰리는 미래를 볼 수 있었다.
[이제부터, 가속을 시작하겠다.]‘뭐?’
그럼 지금 저게.
가속을 하지 않은, 순수한 능광도만의 공능이란 말인가?
다음 순간.
푸콱!
나는 내가 무심코 벌린 입안으로, 금색의 칼이 들어와 있음을 느꼈다.
능광도는 그대로 멈추지 않고 내 입안으로 계속 들어와 척추를 끊고 머리통 뒤쪽으로 튀어나왔다.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전신 곳곳에 황금빛 참격이 박히기 시작했다.
‘반, 반격해야….’
나는 전신이 무처럼 썰려 서은현 무채가 되는 걸 각오하면서 무색유리검을 든 채 그에게 휘두르려 했다.
하지만 찰나.
번쩍!
“…!???”
내가 뭔가를 인지하기도 전.
김영훈의 억센 손아귀가 내 얼굴을 붙잡고 어딘가로 날아와 있었다.
그의 손아귀 뒤쪽으로, 황금빛의 흔적이 일직선으로 쭉 이어져 남아 있었다.
다음 순간.
꽈아아아앙!
어마어마한 폭음과 함께, 난 [어딘가]에 부딪혔다.
왈칵!
나는 전신이 폭발할 것 같은 느낌과 함께 몸 곳곳에서 피를 분수처럼 뿜어냈다.
‘이, 이건…. 여긴…!’
서쪽 끝!
쇄천봉 너머, 내가 한때 북향화와 와서 봤던 [세계의 끝].
‘미친….’
나는 내가 어느새 답천사막의 중심부에서, 인식도 못 한 사이에 세계의 끝자락에 도달해 처박혔다는 걸 알고는 기가 막혀서 속으로 헛웃음을 지었다.
―――――!
소리조차 김영훈의 도격을 쫓아오지 못한다.
무수한 금광이 세계의 끝에 몰린 내 전신을 난도질하는 게 느껴진다.
분명 나도 정지된 세계에 진입하고,
요수공법으로 육신의 잠재력을 늘린 채, 거기에 머리가 터지기 직전까지 천인기의 의식을 가속시켰다.
일반적인 천인기 수사의 의식 영역은 직경 1백 리.
나는 ‘반경’이 2백 리였다.
오기조원과 기묘성심전, 천족, 지족의 의식이 전부 겹쳐지며 동급 수사보다도 의식의 크기 자체가 말이 안 될 수준으로 벌어져 있는 내가,
식이 뜨거워질 정도로 가속시켰음에도 김영훈의 발끝조차 쫓기가 힘든 것이었다.
이대로라면 못 쫓아간다.
그렇다면 어쩔 수 없다.
‘요수공법까지는 육체의 힘인지라 무공 느낌이 났다만, 안타깝게도 법술까지 써야 하는가.’
나는, 천족의 힘도 끌어올리기 시작했다.
* * *
―――――!
김영훈은 황금빛 안광을 빛내며, 어둠 속에서 서은현을 향해 수천 번 이상의 참격을 날렸다.
‘청문령만 해도 결단기 시절에 몇 번을 썰어도 안 죽었다만, 천인기라는 서은현이라면 얼마나 썰어야 할지 감조차 안 잡히는군.’
재생력이 둔해지면 참격을 멈추려고 했다.
하지만, 마치 불사신이라도 되는 듯 주변의 천지영기가 알아서 서은현의 몸으로 흘러 들어가며 생명력을 보충해 주고 있었다.
이곳에 천지영기가 존재하는 이상, 눈앞의 녀석은 불사신(不死身)이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이 불사신을 죽일 수 있는가.
김영훈이 내린 결론은 간단했다.
‘인근의 천지영기, 한 올 한 올 모조리 내 참격의 여파에 쓸려 나가 버릴 때까지. 끝없이 참격을 쏟아부으면 될 뿐!’
――――!
그가 한 번 능광도를 휘두를 때마다 뒤늦게 충격파가 터지고 천재지변이 일어나며 천지영기가 불타고 있었다.
서은현이 재생에 사용할 천지영기가 한 올도 남지 않게 된다면, 그때는 분명 김영훈의 승리였다!
그렇게 생각했을 때였다.
파아아아앗!
서은현의 몸 전체를 새하얀 빛이 뒤덮었다.
‘이건, 비둔술?’
김영훈은 피식 웃었다.
결단기 수도자들이 장거리를 이동할 때.
혹은 전투에서 속도를 높여 움직여야 할 일이 있을 때 쓰곤 하는 법술이었다.
금단에 각인해 둔 영력 흐름을 끌어올리는 것이 주가 되기에, 사실 법술보다는 결단기 수도자들의 고유 공능이라 해야 할 법술.
그것이 비둔술이었다.
하지만 김영훈은 걱정하지 않았다.
‘그래 봤자 어설프다. 결단기 수도자들의 비둔술은 절대 나를 못 따라온다. 아무리 천인기 수도자의 비둔술이라 할지라도….’
김영훈은 징지된 어둠 속에서 능광도를 들어 올리며 웃었다.
그리고 찰나.
우우웅!
능광도 끝자락을 통해, 서은현의 겁천.
무형검의 의지가 들려왔다.
―벤다.
방금 전이라면 무시했을 목소리.
하지만, 김영훈은 문득 등 뒤로 소름이 돋는 걸 느꼈다.
‘이건, 위험하다.’
그는 거의 본능적으로 뒷걸음질을 쳤다.
한 걸음의 뒷걸음질에, 그와 능광도는 정지된 어둠 속에서 순식간에 8백 리를 멀어졌다.
그러나, 김영훈의 황금빛 동공은 다음 순간 바싹 졸아들었다.
“뭣!?”
서은현이 쫓아왔다.
비둔술과 요수공법, 그리고 겁천.
모든 것을 사용하며 극한까지 가속된 서은현은, 백색의 빛이 되어 황금빛의 김영훈에게 검을 휘둘렀다.
김영훈은 히죽 웃으며 그에게 날아드는 서은현의 검격을 똑바로 쳐다보았다.
‘직격하면 분체가 소멸한다!’
김영훈의 분체는 단기전이라면 본체와 같은 힘을 가지고 있다.
한 마디로, 지금의 서은현은 본체 김영훈과도 대등한 공방을 나눌 수준이 된다는 의미였다.
‘하지만 아직도 나에 비해선 조금 느리다.’
김영훈은 서은현에 검에 능광도를 마주 대며, 그의 검에 실린 힘을 분산시키고 흘려냈다.
‘피해도 소멸한다. 흘려서 기운을 무화시켜야 해.’
담긴 힘만 봐도 느껴진다.
충격파만 맞아도 전신이 얼얼해질 수준이 분명….
“커헉!!! 커허허….”
다음 순간, 김영훈은 헛웃음과 함께 황금빛 빛무리를 칠규에서 한 움큼 토해 냈다.
김영훈이 찰나에 서은현을 서쪽 끝에 메어꽂았던 것처럼.
서은현의 일격에, 김영훈은 북쪽 대초원.
그 너머에 있는 북쪽 끝에 메어꽂힌 것이었다.
‘방금, 분체가 소멸할 뻔했군.’
김영훈은 기운을 모아, 박살 날 뻔한 분체를 수습하며 능광도를 들었다.
서은현은 김영훈만큼 빠르지는 못했기에 본인이 김영훈을 날려 놓고도 아직 그를 다 쫓아오진 못했다.
‘하지만 제대로 맞으면 뒈져 버리겠어.’
김영훈은 식은땀을 흘리며 웃었다.
웃음이 끊이질 않는다.
기쁘다.
기뻐서 미쳐 버릴 것만 같다!
‘바둑이 이후로 이 정도로 설렜던 건 원영기에 달한 광인(狂人) 청문령과, 북향함대를 단신으로 상대했을 때 정도였나?’
“흐하….”
사람이 심심하면 미쳐 버린다는 말을 아는가.
지금의 김영훈이 딱 그 상태였다.
파아아앗!
어느새 새하얀 빛이 북쪽의 끝으로 쫓아왔다.
부웅!
새하얀 빛무리 속에서 무형(無形)의 참격이 길쭉하게 뻗어 나오며 김영훈을 노렸다.
김영훈은 빠르게 그의 검격을 피했다.
꽈아아아앙!!!
그가 서 있던 곳.
세계의 북쪽 끝에 있던 세계순력이 움푹 우그러지며, 그대로 차원 장막의 일부가 찢겨 나갔다.
‘본체가 전력을 다해 북향함대랑 힘을 합쳐서 찢어 내야 했던 게 차원 장막이었는데….’
김영훈은 머리 뒤에 삼태극(三太極)을 두른 채 찢어진 차원 장막을 뒤로하고 그를 쳐다보는 서은현과 눈을 마주쳤다.
“하, 하하… 본체의 전력이….”
김영훈은 식은땀이 흐르며, 동시에 오싹오싹한 황홀한 희열에 정신이 나갈 것 같은 기분이었다.
“네게는… ‘그냥’ 일격(一擊)인 거냐?”
서은현은 말없이 양손을 펼쳤다.
그의 주변으로 3천 개의 무색유리검이 떠올랐고, 무형검이 무색유리검들을 이었다.
파앗!
그는 서은현이 반응할 틈새를 주지 않으려 능광도를 휘둘렀다.
무형검을 전신에 두른 서은현이 손을 휘두르자, 능광도의 참격은 그대로 튕겨 나가 버렸고, 김영훈이 있던 자리로 3천 자루의 무색유리검이
일제히 쏟아졌다.
피이이잉―
서은현이 검진(劍陣)을 열었다.
검진 속에서 검기가 증폭되며, 절로 소름 끼치는 흉험한 의념을 흘리기 시작했다.
꾸구구구구!
세계의 복원력에 의해 절로 복원되는 차원 장막을 뒤로한 채.
서은현은 희번덕거리는 눈으로 김영훈과 시선을 주고받았다.
두 사람은 광인이었다.
‘그래도 내가 세 수는 앞선다.’
김영훈은 씨익 웃었다.
아직도 서은현은 김영훈의 속도에 완전히 대응을 못 한다.
아직도 그가 서은현을 상대로, 속도 하나는 우위를 점할 수 있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정도면 충분하지.’
김영훈은 능광도를 잡으며 웃었다.
그의 머리가 맹렬하게 회전하며, 서은현의 움직임을 분석했다.
그의 의(意)를 읽었다.
상황과 상황을 이어 가며, 이 순간에 맞는 무공을 조합하기 시작했다.
* * *
‘아….’
왜일까.
나는 김영훈과 마주 보며, 그가 지금 무공을 ‘만들고’ 있다는 걸 알아챘다.
‘어떻게 이걸 안 거지?’
아무리 의념을 읽어도, 심상을 읽어도.
상대의 ‘상태’와 ‘배경’에 대해 짐작을 할 수 있을 뿐.
상대의 모든 걸 알 수 있는 건 아니었다.
지금 당장 무슨 생각을 하는지는 알 길이 없는 것이었다.
하지만 나는 어째선지 김영훈이 ‘무공’을 창조하고 있고.
그가 ‘어떤’ 무공을 창조하는지도 알 것 같았다.
‘아아….’
파앙!
나는 검진 속에서 무형검을 실처럼 압축시켜 도잠의 초식을 김영훈에게 휘둘렀다.
김영훈은 그 초식을 보고 흠칫하는 듯하더니 오른발을 앞으로 내디디며 세 번의 참격으로 도잠을 끊고는 기수식을 잡았다.
‘아아아…!’
나는 김영훈의 ‘의도’를 읽으며 계속해서 그와 합을 주고받았다.
느껴진다.
그가 ‘무슨’ 무공을 만들려는지.
‘어떤 의도를’ 가지고 ‘어떤’ 무공을 ‘어떻게’ 만드는지.
알 것 같다!
나는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한 건지를 깨달았다.
최근 느끼기 시작한 제4의 감각.
심족의 시야와는 약간 결이 달랐던, 그러나 굉장히 유사하며, 심족의 시야와 상호 보완을 하는 어떠한 감각.
그 감각이, 내게 알려 주고 있었다.
퍼벙!
뇌리에서 불꽃이 튀긴다.
내 머릿속에서, 김영훈이 만들려는 무공이 ‘예측’되기 시작했다.
나는 김영훈이 만드는 걸 ‘예측’하며, 그가 무공을 펼치기 전 그 무공에 맞는 완벽한 파훼법을 떠올렸다.
그리고 그다음엔 김영훈을 향해 의념으로 찔러 주는 듯하다가 그가 실제로 그 무공을 써 오면 그 무공을 파훼한다.
그러면 김영훈은 파해식의 역 파해식을 즉석에서 만들어서 다시 내게 반격했다.
내 감각으로도 그가 역 파해식을 또 만들어서 내게 반격하는 것까진 다 쫓아갈 수 없었다.
하지만.
퍼벙, 퍼버벙!
나는 머릿속에서 불똥이 튀기는 느낌과 함께, 뭔가를 깨달을 수 있었다.
“아아….”
그리고 나는 내가 뭘 깨달았는지를 알 수 있었다.
동시에, 나는 지금껏 내가 느껴 왔던 제4의 감각에 대한 정체도 알 수 있었다.
김영훈을 향해 가로 베기를 행하며, 동시에 보법을 바꿔 우하에서 좌상으로 올려 벤 후.
그의 능광도와 무색유리검을 마주 대며, 나는 그와 [대화]를 주고받았다.
그래.
이것은 [대화]였다.
동시에 기(棋)였다.
나의 ‘의도’와 김영훈의 ‘의도’가 서로 얽히며 서로가 대화를 나누는 것이었다.
‘그렇군….’
지금까지, 김영훈은 이런 세상에서 살아왔던 거구나.
나는 어느 순간, 완전히 김영훈과 합을 맞추며 순수한 무(武)의 기예로 그가 만들어 내는 무공의 파해, 파해의 역 파해.
그 역 파해에 대한 대응기를 만들어 가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파아앙!
우리는 정지된 세계에서, 서로에게 퍼부을 최종 일격을 준비했다.
하지만 마지막 순간.
김영훈의 능광도는 가속했고, 내 검은 가속하지 못했다.
파앙!
마침내, 정지된 세계가 풀렸다.
나와 그의 대련이, 끝난 것이었다.
“…아아….”
김영훈의 능광도가 내 목덜미에 닿아 있었고, 내 무형검은 아래로 늘어뜨려져 있었다.
하지만, 김영훈은 소리 없이 웃었다.
츠츠츳….
그의 낡은 도에 흐르던 황금빛 기운이 흩어졌다.
“…내가 졌다.”
김영훈은 자신의 입으로 패배를 시인했다.
“마지막에, 네가 검을 휘둘렀다면 네 목은 날아갔겠지만 내 몸은 터져서 곤죽이 됐겠지. 너는 머리통을 재생하면 끝이지만 나는 몸이 터지면 그대로 끝이니, 내 패배다.”
“…후후.”
나는 무색유리검을 다시 금단에 집어넣으며 손을 들었다.
그리고 눈을 닦았다.
김영훈은 나를 보며 웃었다.
“훌륭하다. 너도, 나와 같은 것을 보고, 같은 것을 듣고 있구나!”
“…그렇군요. 당신은… 이런 세계에서 살고 계셨던 거군요.”
나는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김영훈에게 검을 휘두르지 않았던 건 배려 따위가 아니었다.
오히려 그를 배려한답시고 검을 멈췄다면 김영훈은 오히려 화를 냈을 터였다.
내가 검을 휘두를 수 없었던 건, 북돋아지는 감정을 주체할 수가 없어서였다.
나는 오늘, 제4의 감각의 정체를 깨달았다.
내가 최근 각성하기 시작한 이 감각은,
‘김영훈과 같은’ 감각.
‘김영훈의 재능’과 동일한 범주에 있는 지각(知覺)이었다!
벌써 열일곱 번을 죽었다.
2,500년을 살아오며, 일류 이후로는 한 번도 검을 몸에서 떼 놓은 적 없다.
무(武)는 어느새 내 삶이었다.
그리고, 나는 마침내 김영훈이 가지고 있던 재능을.
후천적으로 개화(開花)하게 된 것이었다.
아직은 김영훈과 비교하면 그의 발가락에 떼만도 못한 수준이었다.
김영훈의 감각이 하늘 너머.
‘어딘가’와 이어져 ‘어딘가’에서 직접적으로 창조성을 내려받고 있다는 것이 정말로 여실히 느껴진다면, 내 재능은 물방울을 떨어뜨리고, 떨어뜨려.
물방울로 쌓아 올린 석순(石筍)이었다.
그조차 새끼손톱만큼도 되지 않는 크기였기에, 그처럼 하늘 너머에 닿으려면 천 년은커녕 천억 년은 필요할지도 몰랐다.
하지만, 아무것도 없던 땅에서 개화했다는 것이 중요했다.
지금은 그저 의도를 알아채는 게 고작이지만.
이 감각이 하늘에 닿는다면, 김영훈처럼 의도를 조합하고 분해해 실시간으로 무공을 창조하는 창조성을 손에 넣을 수 있을 터였다.
무는 내 삶이었다.
그리고, 내가 노력해 왔던 무는 결코 나를 배신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