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Regressor’s Tale of Cultivation RAW novel - Chapter (273)
기둥 (2)
“어… 음….”
전명훈은 멍청하게 허공을 바라보았다.
빠르다.
엄청 빠르다.
뭐가 뭔지 알 수 없을 정도로 빨랐다.
슉, 슈슉, 슈슈슉, 슉!
그는 멍하니 그의 눈앞에서 빠르게 부딪치다가 갑자기 답천사막 방향으로 가서 사라진 서은현과 김영훈이 있을 곳을 바라보았다.
‘뭐가 어떻게 된 거지?’
그는 이해가 되지 않아 머리를 긁적였다.
대충, 서은현과 김영훈이 갑자기 서로 칼을 꺼내더니, 서로의 눈을 쳐다보며 미친 듯이 웃고는 칼을 들고 달려들어서 미친 듯이 부딪치기 시작한 것.
그것이 방금의 일을 전명훈의 시선에서 본 것이었다.
‘김 부장… 회사에서부터 등산 같은 걸 좋아하는 이상한 사람이라고 생각은 했다만…. 서은현 그놈도 그 정도로 미쳐 있을 줄은….’
전명훈은 둘이 사라진 방향을 향해 끌끌 혀를 찼다.
한 1, 2분쯤 지났을까.
파밧!
김영훈과 서은현이 돌아왔다.
“돌아오셨습니까?”
전명훈은 두 사람을 보았다.
서은현은 의복의 술법으로 옷을 단정히 정리했지만, 김영훈의 옷은 곳곳이 너덜너덜해져 있었다.
“어, 그래! 재밌게 놀았다!”
“…뭐, 부장님이 재밌으셨으면 됐겠죠.”
전명훈은 그러려니 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것보다, 부장님. 이제 가시죠.”
“음? 가? 어디로?”
“어디로라니요. 원래 여기에 온 게 서은현이랑 칼부림하려고 온 겁니까?”
“난 그러려고 온 건데?”
“….”
전명훈은 김영훈을 이해하는 걸 포기하기로 했다.
“…뭐, 일단 서은현. 어차피 너한테 할 말이었으니까 부장님은 상관없겠지. 따라와라.”
전명훈은 그렇게 말하며 허공으로 떠올랐다.
* * *
‘나한테 할 말?’
그게 무슨 말이지?
나는 전명훈의 말에 의아해하다가, 곧이어 그의 의념을 보며 기분이 착 가라앉는 것을 느꼈다.
방금 전 김영훈과 겨루며 내 무의 수준을 확인했을 때의 기쁨과 흥분이 싹 날아간 것 같았다.
파직!
전명훈은 한 줄기 적뢰가 되어 허공을 날아 서쪽으로 갔다.
나는 역시 그의 뒤를 따라왔고, 김영훈도 나를 쫓아왔다.
쿠릉, 쿠르릉!
나는 전명훈을 뒤쫓아 가며, 결인을 맺었다.
착, 착, 착!
수결을 맺자, 주변의 영기가 움직이며 의복의 술법이 발동되었다.
의복의 술법.
결단기 이하는 호신강기의 도움으로 의복도 잘 찢어지지 않는다.
하지만 원영기 이상의 수도자들은 한 번 전투를 치를 때마다 호신강기마저 뚫는 공격이 많아, 옷이 찢어지거나 불타 버리는 경우가 많았고, 그렇기 때문에 의복을 수복할 술법을 필요로 했다.
그렇기에 만들어진 술법이 법력을 꼬아 옷을 만드는 법술이었다.
원영기 시절에는 한 가지 의복밖에 만들 수 없었다.
하지만 천인기가 되니, 인근의 천지영기가 몰리며 꽤 여러 가지 의복을 만들 수 있게 됐다.
츠츠츳!
내 새하얀 의복이 김영훈처럼 새카만 옷이 되었다.
전명훈도 나를 흘긋 뒤돌아보더니 그 역시 의복의 술법으로 검은 옷으로 갈아입었다.
파바밧!
각자 상복(喪服)으로 갈아입은 우리는, 마침내 서쪽.
금신천뢰문이 ‘다시’ 자리를 잡은 쇄천봉에 도달했다.
수도자들답게, 벌써부터 토목 공사는 전부 끝나서 쇄천봉 곳곳에 전각이 솟아 있었다.
동시에 전각이 용맥을 제압하여 진법을 만들어, 문파의 결계대진을 이루고 있었다.
거기에 행정 체계 역시 거의 복구된 듯했으니, 사실상 수계에서 금신천뢰문은 명맥을 잇는 것에 성공한 것이었다.
나와 전명훈, 김영훈 등이 상공에 나타나자, 금신천뢰문 곳곳에서 하뢰 제자들이 우르르 몰려나왔다.
광한계 출신인 이들이 3만여 명, 현계 출신인 이들이 3만여 명.
총 6만여 명의 제자들.
그중에서 연기기는 오히려 더 적어 3천 명밖에 되지 않았고, 절대다수가 축기기였으며 결단기 수도자들도 1천 명이었다.
한 마디로, 현 금신천뢰문의 하뢰 제자들만 해도 수계 전체의 전력을 합친 것보다 많았다.
그리고, 그중에서 가장 수행이 높은 결단기 대원만의 제자.
금진찬의 후손인 금해민이 허공으로 떠올라 우리에게 예를 취했다.
“제자가, 천뢰(天雷) 원로님들을 뵙니다.”
“그래. 장문인은 준비하라. 서 원로가 깨어났으니 이제 마땅히 위령제를 지낼 것이다.”
그새 금해민을 새 장문인으로 임명한 듯, 전명훈의 말투는 자연스러웠다.
“…왜 네가 장문직을 맡지 않았지?”
나는 그에게 물었다.
전명훈은 자조 섞인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자격이 없다. 내가 동향(同鄕)인 너를 조금만 더 믿어 줬어도 그런 일은 없었을 텐데.”
“….”
“나는 금씨(金氏)를 유지할 자격이 없다. 그래서 나는 장문직을 맡지 않는다.”
“…그러냐.”
“금해민도 칠뢰진경의 성취가 훌륭하여 원영기가 코앞인 녀석이니, 녀석 정도면 문제없겠지.”
나는 말없이 전명훈을 따라갔다.
얼마 후, 나와 전명훈, 김영훈.
그리고 금해민은 쇄천봉 아래쪽.
무수한 깃발들이 꽂혀 있는 곳에 도달했다.
번(幡: 세로 깃발)이 아닌 기(旗: 일반적인 깃발)였다.
앞으로, 금신천뢰문에서는 번(幡) 형태의 깃발 법보는 금지될 예정이었다.
무덤 안에 시신은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그날 그 자리에 있던 이들은 한 사람도 시신을 남기지 못했다.
홍수령 역시 내가 음혼귀주문을 써 흙으로 만들어 주었으니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전명훈은 시신이 없는 가묘(假墓) 하나하나를 돌아다녔다.
수만 개나 되는 그 모든 가묘를 전부 돌아다니며, 금해민에게 술병을 받은 그는 술병을 부어 주었다.
나는 전명훈을 뒤따랐다.
김영훈은 외부인이었기에 우리를 뒤따르지는 않았고, 그저 저 멀리서 가만히 조의를 표할 뿐이었다.
나와 전명훈.
그리고 금해민에 이어, 무수한 금신천뢰문의 제자들이 우리의 뒤를 따랐다.
수만 개나 되는 무덤에 일일이 술을 부어 주는 건 굉장히 오래 걸리는 일이었다.
우리는 약 이레가 걸려서야 대부분에 무덤에 술을 부어 줄 수 있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원로진들의 무덤만이 남았고, 나는 홍수령의 무덤에는 내가 직접 술을 부어 주었다.
금진찬과 금민의 무덤에는 후손인 금해민이 술을 부었다.
그리고, 금벽호와 금소해의 무덤 앞에 다다른 우리는 잠시 멈춰섰다.
그들의 무덤은 묘지의 끝자락에 있었다.
주르륵….
전명훈은 천천히 술을 부었다.
얼마 후, 술이 떨어지자 그는 금해민에게 다시 손을 내밀었다.
이레 동안 꼬박꼬박 술을 챙겨 들고 와 술이 떨어질 때마다 전명훈에게 들려 주던 금해민이 약간 의아한 눈으로 전명훈을 바라보았다.
나는 전명훈의 의념을 읽으며 금해민에게 눈짓을 주었다. 내 눈짓을 받은 그는 냉큼 술을 꺼내 주었다.
전명훈은 그 술병을 열어, 다시 금소해의 무덤에 전부 부었다.
그리고 그가 다시 손을 내밀었다.
전명훈은 그렇게, 금소해의 무덤에만 스물한 병의 술을 부었다.
땅이 축축해지다 못해 걸쭉해질 정도였다.
주르륵….
그렇게, 전명훈의 손이 마침내 멈췄을 때.
나는 전명훈의 눈시울이 붉어졌다는 걸 알아챘다.
“…오늘.”
우우웅!
그가 입을 열자, 자연스럽게 천지영기가 진동하며 곳곳으로 전명훈의 말이 전달되었다.
[본 금신천뢰문은 옛 선우(仙友)들을 떠나보냈다.]그의 말이 이어졌다.
[많은 이들이, 먼 옛적부터 이어지던 요물(妖物)의 농간에, 거대한 뇌선(雷仙)에게 죽었다. 모두 그 날을 기억해라. 그 거대한 존재에게 죽었던선우들을 기억해라. 본문의 선배들, 원로들, 무수한 벗들이 그날 명을 달리했다. 그들은 수계에서부터 함께해 온 이들도 있었고, 광한계에서 새로 만난 이들도 있었다. 경지를 높이던 이들도 있었으며, 막 수선을 시작하던 이들도 있었다. 남성도, 여성도 있었으며, 아직 어린 수도자도, 수명이 얼마 남지 않은 이들도 있었다. 남녀가 쌍수하며 즐거움이 절정에 달한 수도자들도, 꿈이 있던 수도자들도, 열심히 노력하던 수도자들도 있었다!]
그의 목소리는 여태껏 없었을 정도로 무거웠다.
동시에 나는 전명훈에게서 풍기는 의념을 바라보았다.
아직도, 녀석의 노기는 풀리지 않았다.
하지만 지난 생과는 달리, 이번에는 그 노기를 나눠 가질 이들이 있었다.
[기억해라, 금신천뢰문의 제자들이여. 오늘은 새로운 금신천뢰문이 탄생한 날로 기억되어야 한다. 오늘은 우리가 한 가지를 기억에 새기는 날이 되어야 한다.]파직, 파치치직!
전명훈의 몸에서 붉은 전기가 튀기기 시작했다.
[이 분노(忿怒)를 기억해라! 이 노기를 이해해라! 제자들이여, 이 자리에서 맹세하겠다. 나, 금신천뢰문의 천상금뢰지체를 타고난 전명훈은, 반드시! 반드시!]그가, 하늘을 향해 부르짖었다.
[진선경에 이르러, 우리를 짓밟은 거선(巨仙)에게 복수할 것이다!!!]그 말에 곳곳에서 함성이 터져 나왔다.
“저희도 돕겠습니다!!!”
“함께하게 해 주십시오!”
[그래, 너희 역시… 나와 갈 수 있는 곳까지 함께 하게 될 것이다!!!]그 말에 곳곳에서 함성이 터져 나왔다.
“으아아아아아!!!”
“아아아아아!”
“아아아아아아!”
그건 마치, 전사들이 전투에 나가기 전 지르는 함성과 같아 보였다.
아니, 그건 어쩌면 비명 같아 보이기도 했다.
가족을 잃은 이들이 고통을 이기지 못하고 내지르는 비명 같았다.
그리고, 전명훈 역시 비명을 지르기 시작했다.
[으아아아아아아!!!]나 역시, 그들과 한데 섞여 감정을 터트렸다.
“흐아아아아아아!!!”
우리는 한데 모여, 하늘을 향해 감정을 터트렸다.
콰르르르릉!
전명훈의 몸에서 튀기던 붉은 뇌전은, 점차 크기를 키워 가더니 하늘을 사르는 붉은 벼락이 되어 하늘에 꽂혔다.
쿠르릉!
[흐아아아아아아!!!]전명훈은 빛의 기둥 안에서, 하늘을 향해 적뢰천겁을 내리치며, 그렇게 울었다.
콰릉, 콰르릉!
얼마간 비명을 질렀을까.
뇌전을 뿜어내던 그는 뇌전을 뿜는 것을 멈췄다.
그리고 그는 그렇게, 위령제의 나머지 진행을 맡았다.
위령제가 끝나고, 제자들은 다시 쇄천봉으로 돌아갔다.
다만 몇몇 제자 중에 이번 참극에서 지인이나 친지, 혈육을 잃은 제자들은 무덤 앞에서 한동안 슬픔을 삼켰다.
전명훈은 금소해와 금벽호의 무덤 앞에서 한참을 서 있었다.
나 역시 그의 옆에서 홍수령의 무덤 앞에서 조의를 표했다.
그리고, 한 달이 지났다.
쏴아아아아―
이제 무덤 앞에 서 있는 이들은 나와 전명훈밖에 없었다.
다른 제자들은 이만큼 무덤 앞에 서서 슬픔과 분노를 다스리고 있을 체력이 없었다.
문득, 전명훈이 비를 맞으며 고개를 들어 올렸다.
“서은현, 그걸 알고 있나?”
“뭐냐.”
“이번에 깨달은 거다.”
철퍽!
그는 빗물이 흐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금소해의 무덤 앞에 꿇어앉아 무덤을 쓸었다.
달각―
문득 그가, 품에서 작은 목함을 꺼냈다.
그 목함 안에는, 바싹 튀겨진 하나의 [손]이 들어 있었다.
나는 손의 크기와 형태를 보며, 저 손이 튀겨지기 전 원래 형태를 추측했다.
그리고 그 손의 주인을 알 수 있었다.
‘금소해….’
전명훈은, 튀겨진 손을 목함에서 꺼내서 소중하게 껴안았다.
뚝, 뚝뚝….
그의 얼굴에서, 빗물인지 눈물인지 알 수 없는 것들이 떨어졌다.
녀석의 눈시울은 시뻘겠다.
“분노는, 어쩌면 이 세상에 꼭 필요한 걸지도 모른다.”
녀석은 금소해의 손을 껴안은 채 말을 이었다.
“분노는, 순환(巡還)이다. 막힌 부분들을 뚫어 주고, 잘못된 부분에 저항하고, 삶의 동력(動力)이 되기도 한다. 모든 의지를 잃더라도, 억지로라도 사람을 움직이게 한다는 거다. 마치… 천겁과도 비슷한 부분이 있겠지.”
나는 전명훈의 의념을 보았다.
그의 의념은 대다수가 시뻘건 색으로 물들어 있었다.
지난 생만큼은 아니었으나, 나는 저 의념이 지금 당장 죽어 버리고 싶은 전명훈을 간신히 붙잡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말 그대로, 녀석은 분노에 의해 살아가고 있었다.
“삶은… 곧 분노.”
녀석이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말했다.
“그걸… 알게 되었다. 이건, 소해의 손이야. 그리고 나는… 천벌을 내린 진선. 그 존재를 죽이고, 천뢰번을 다시 내 손에 넣어 내 것으로 만들 것이다. 놈들에게 그렇게 복수를 해서, 금신천뢰문의 원(怨)을 풀은 그 후에야….”
그는 덜덜 떨리는 손으로 금소해의 손을 들어 올렸다.
“소해를… 완전히 묻겠다.”
완전히 미치진 않았고, 한 줄기 이성은 남은 그였다.
하지만 이번에도 그의 삶은 분노로 점철될 예정이었다.
나는 그런 그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나는 전명훈의 분노를 인정(認定)하였다.
그의 고통을 이해하였다.
그리고.
“다만 전명훈.”
“…뭐냐.”
나는, 녀석에게 분노와 복수, 그 이후도 제시하였다.
“분노를 해갈한 다음에는, 꼭 금소해를… 이곳에 묻어 주기 바란다.”
“…그래. 알겠다.”
그렇게.
복수에 미친 낙뢰자는, 6만여 명의 생존자와 분노를 나누며, 복수 이후를 바라보는 전명훈이 되었다.
* * *
우리는 위령제를 전부 지냈다.
전명훈은 얼마간 금신천뢰문의 유이한 원로로서 금신천뢰문의 일들을 만기친람(萬機親覽)하겠다며 장문인인 금해민과 함께 정무를 보았다.
그리고 나는 기본적인 업무를 도와준 후. 김영훈과 다시 만났다.
“지난번엔, 같은 문파도 아닌데 조의를 표해 주시어 감사했습니다.”
“아니다. 사람이 그렇게 죽었다는데 조의를 표하는 게 맞지.”
“…감사합니다.”
난 ‘당연’하게 그런 말을 하는 김영훈에게 감사를 표했다.
얼마간 금신천뢰문을 나와 대산맥을 너머.
성제국에 도달해 근처 객점에 자리를 잡은 우리는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럼 영훈 형님.”
“왜 그러냐.”
나는 그에게 물었다.
“도대체 그동안, 하계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좀 이야기해 주시겠습니까?”
무슨 일이 있었기에 김영훈은 사축기 수준의 전력을 가지게 된 것일까.
여우 녀석은 어디 갔으며, 청문령이나 서란은 어느 수준이 됐을까.
그리고 향화는….
나는 궁금한 점이 산더미 같았다.
그러나 다음 순간, 나는 김영훈의 표정을 보며 흠칫 놀랐다.
그의 표정은 딱딱하게 굳어 있었고, 의념 역시 심하게 요동치고 있었다.
김영훈이 암울한 목소리로 말했다.
“…어디서부터 말해야 할까…. 일단… 그래. 내가 이 경지에 오르게 될 수 있었던 경위. 그러니까….”
이어진 김영훈의 목소리에, 나는 경악해서 객점이 있는 성(城)을 날려 버릴 뻔했다.
“내… 아니, 우리 최대의 적수였던 광인 청문령을 죽이게 됐던 이야기부터 시작해 주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