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Regressor’s Tale of Cultivation RAW novel - Chapter (285)
은자(隱者)
나는 싸늘한 표정으로 홍범과 전명훈에게 눈짓을 주었다.
내 눈짓을 알아본 둘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빠르게 움직여 서휼의 퇴로를 막았다.
각기 삼 방위에서 그를 막게 된 우리를 보며 서휼이 웃었다.
“긴장 푸시지요, 도우들. 사실 도우들에 대해서는 전부 조사하고 왔습니다.”
서휼의 시선이 전명훈에게 갔다.
“금신자의 본명공법을 이어받아 70여 년 만에 천인기에 오른 전 도우.”
그는 전명훈에게서 홍범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보다도 훨씬 빠른 기간 내에 원영기에 오른 홍 도우. 비록 아직 천인기에는 못 올랐지만 그 천재성에 대한 소문은 곳곳에서 들린다 하더군요.”
그는 홍범에게서 나로 시선을 돌렸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공법을 배운 지 하루 만에 연기기 6성에 다다르고, 말도 안 되는 속도로 원영기에 오른 후… 금신천뢰문의 멸문에 기여하고 굳이 잔당들을 데리고 수계로 내려갔다 오신 서 도우.”
그가 싱긋 웃으며 말했다.
“세 분 모두… 보통 분들이 아니리라 사료됩니다. 그렇지요?”
“….”
난 싸늘한 표정으로 입을 꾹 닫고만 있었다.
‘안 읽히는군.’
이미 이 시점에서 심족의 눈에 대항하는 법기를 만든 듯했다.
‘흐릿하게 보이긴 한다만….’
그 너머로는 잘 보기 힘들었다.
겁천에 이르고 나서 흐릿하게 보이니, 어쩌면 김영훈이라면 서휼의 법기를 뚫고 보는 것도 가능할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할 말이 뭐냐.”
내 질문에 서휼은 반갑다는 듯이 웃으며 양팔을 벌렸다.
“세 분이 보시기에 변변찮겠지만, 저도 세 분의 계획에 동참할 수 있을지를 여쭙고자 합니다.”
“흠?”
“홍 도우와 전 도우의 진체(眞體)는… 대강 짐작이 갑니다. 후후, 그들밖에 존재하지 않겠지요. 물론… 서 도우는 도저히 제가 아는 분 중엔 없습니다만.”
그는 재밌다는 듯이 말했다.
“제가 아는 분 중에 없다면 [두 곳] 중 하나겠지요. 명계 소속이시거나, 혹은… 그쪽 소속이실 테니까요. 다만 지난번 흑색귀골곡의 백골귀마가 보였던 반응으로 보아, 높은 확률로 명계의 귀인(貴人)이시겠지요?”
서휼은 따스한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
“명계 분… 그리고 전 도우와 홍 도우의 진체…. 세 분의 목표라면 짐작이 갑니다. 그런 분들이 이 천역에 오셨다는 건 한 가지 목표 외에는 생각할 게 없으니까요.”
“….”
‘뭐라고 지껄이는 거지, 저놈?’
일단 뭐, 헛소리를 들어 둬서 나쁠 건 없었으니 그냥 들어 두기로 했다.
“뇌성해(雷聖海)로 가셔서 금신자의 유품을 회수하시려는 것이겠지요. 그렇지 않겠습니까?”
그는 자신의 추측이 맞다 확신하는지, 부드러우나 확신에 찬 얼굴로 우리를 둘러보며 물었다.
나는 전명훈과 홍범의 표정에 나사가 풀려 버렸단 걸 깨닫고, 혹여나 서휼이 그들의 표정을 보지 않도록 이쪽으로 일단 주의를 끌었다.
“…틀리진 않다만, 굳이 네게 말해야 할 필요성은 못 느끼겠군.”
나는 말을 하며, 동시에 홍범과 전명훈에게 심어(心語)를 보냈다.
심어의 경우에는 아무런 전조가 없기 때문에 서휼은 알아채지 못했다.
내 의지를 전해 들은 둘은 빠르게 자신의 감각을 차단했다.
나는 옆에서 어어거리고 있던 연진 역시 다시 도원도 안쪽으로 걷어차 넣어 버린 후 서휼에게 말했다.
“우리와 협력하고 싶다고 했나? 그럼 네놈은 누구였으며, 여기서 이러고 있는 경위. 네놈의 목적을 읊어 봐라.”
이왕 녀석이 착각하고 있는 것.
아예 녀석의 밑천을 털어먹자는 생각으로 질문을 던졌다.
그러나 서휼의 대답은 간결했다.
“저는 혈음(血陰)입니다. 대답이 되었겠지요?”
“….”
‘그게 도대체 무슨 말이지?’
그리고 또한, 서휼의 의도에서 불순함이 느껴졌다.
심족의 시야로 인해 녀석의 의념과 속내는 알기 힘들었지만, 의도를 읽는 감각에는 서휼이 내게 가지는 불순한 의도가 뻔히 보였다.
‘거짓말이군.’
혈음이 뭔지도 모르겠거니와, 일단 녀석은 혈음조차 아니다.
‘혈음이라….’
나는 양수진의 말을 떠올리며, 녀석이 ‘혈음’이란 존재가 맞는지 한번 떠보기로 했다.
“네가 혈음이면, 이미 인과 연은 찾았겠군. 그렇지 않나?”
“….”
내 질문에, 처음으로 여유만만하던 서휼의 입이 다물어졌다.
표정은 변하지 않았지만, 나는 흐릿하게나마 읽히는 녀석의 의념과 심상이 심상찮게 진동하는 걸 읽어냈다.
흐릿하게밖에 읽을 수 없었지만, 흐릿하게 읽은 것만으로도 녀석의 심상은 상당히 요동치고 있었다.
“…광한이 거대하니, 어찌 쉬이 찾겠습니까.”
그는 내 말에 모른 척하거나 부정하지 않고, 그냥 찾지 못했다는 식으로 넘겼다.
나는 씨익 웃었다.
‘승기를 잡았다.’
정보 격차의 차이로, 처음으로 서휼과의 말싸움에서 승기를 잡은 것이었다.
‘일단 녀석은 혈음이란 놈이 아니다. 그를 사칭하고 있을 뿐이야.’
“솔직히 못 믿겠군. 인과 연의 소재지조차 모르는 네가 혈음이라고?”
“…후후, 뭐… 어찌 생각하셔도 상관은 없습니다. 분명한 건 제가 혈음과 깊이 관계된 이라는 겁니다. 어찌 되었든 세 분이 원하시는 걸 드릴 수 있다는 것이지요.”
“우리가 원하는 게 무엇인 줄 알고?”
“무엇이든 드릴 수 있습니다.”
그 말에 나는 잠시 고민하다가 씨익 웃었다.
“나는… 네가 말한 양수진의 선보도 그렇다만, 그와는 별개로 소금산의 주인이 남긴 흔적도 찾고 있다.”
“소금산의 주인?”
내 말에 서휼은 잠시 당황하는 듯하더니 그제야 이해했다는 듯이 웃었다.
“아, 그렇군요. 왜 헌원이 당신을 미친 듯이 쫓아왔나 했는데… 당신은 설마 태산열제공을 노리시는 겁니까?”
“뭐, 그런 셈이지.”
‘태산열제공과 소금산의 주인에 대한 것도 알고 있다니….’
과연 보통 녀석은 아닌 것 같았다.
“어선(御仙)의 흔적을 찾아서 무얼 하시렵니까? 그 오래된 신(神)을 찾는 것이 천존(天尊)의 명이십니까?”
“…!”
나는 갑작스럽게 어선이라는 말을 꺼내는 서휼의 말에 정신이 뒤집히는 듯한 충격을 받았다.
하지만 신기하게도 한순간에 몸이 녹아내렸던 그때처럼 고통스럽진 않았다.
마치 내성이 생긴 것 같은 느낌이었다.
나는 간신히 ‘어선’이란 단어에 담긴 충격을 견뎌 내며 내색하지 않고 마주 웃었다.
‘이 자식… 나를 시험해 보려 했다.’
나뿐이 아닌 전명훈과 홍범 역시 마찬가지일 터였다.
다행히 그들은 내 요청대로 감각을 차단한 탓인지 영향이 없었다.
아마 전명훈 역시 어선을 직시한 덕에 내성이 생기긴 했겠지만, 홍범은 어찌 될지 모르니 조심하는 게 좋았다.
“가장 오래된 분께서 산(山)의 신의 흔적을 원하신다.”
나는 아무렇지도 않게 명계의 주인에 대해 은유하며 서휼에게 말했다.
그러자 서휼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사정이 있었군요. 알겠습니다.”
어선이라는 단어의 충격을 받고도 멀쩡히 견디며 도리어 다른 지식을 꺼내는 나에 대해서 인정한 모양이었다.
“태산열제공을 노리신다면 그 역시 도와드리겠습니다.”
“네가 어떻게?”
“헌원에겐 자식들이 많잖습니까.”
그는 빙긋 웃으며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태연하게 말을 꺼냈다.
“한둘 납치해서 세뇌하면 되지요.”
“….”
마치 소풍이라도 다녀온다는 듯이 말하는 그의 어투에, 나는 조금 어이없음을 느꼈다.
“그나저나….”
“음?”
나는 은근슬쩍 내 쪽으로 천천히 다가오는 서휼을 보며 눈을 찌푸렸다.
그는 굉장히 친근하게 다가오며 뭔가 말을 하려 했다.
“이 정도 성의라면, 제가 도우들과 조금 함께해도 되지 않겠습니까?”
“아직 나는 납치한다고 한 적이 없는데?”
“저런, 납치 세뇌가 싫으시다면 그냥 헌원의 자식들과 ‘친구’가 되어서 알아내도록 해 보겠습니다.”
이놈의 반응을 보아, 틀림없이 규련 때처럼 사람의 마음을 제멋대로 주물럭거리며 토해 내게 하겠다는 뜻이었다.
“그 정도면 어찌… 괜찮으신지…?”
그는 살갑게 내 어깨로 손을 뻗어 오며 물었다.
그리고.
콰아악!
나는, 녀석의 팔을 붙잡았다.
“어깨를.”
“…?”
“내 어깨를… 만지지 마라.”
나는 이를 빠득 갈며 놈을 노려보았다.
“죽여 버린다.”
“….”
서휼은 조금 당황한 듯 하하 웃더니 손을 뺐다.
“죄송합니다. 아무래도 제가 서 도우의 신경을 거슬리게 했나 보군요.”
“잘 아는군. 뭐… 네가 우리를 돕는 것에 대해서는 생각을 조금 해 보마. 나중에 결정하기로 하지. 필요할 때 연락할 테니 꺼져라.”
나는 지금까지는 잘 버티고 있었지만, 계속 이놈과 말을 하다 보면 놈이 뭔가 빈틈을 찾아낼까 두려웠기에 일단 서휼을 눈앞에서 치워 버리기로 했다.
“알겠습니다. 차후에 뵙도록 하지요. 그리고 소금산의 주인과 그 후계가 남긴 공법에 대해서는 저 역시 힘써 보도록 하겠습니다.”
“…마음대로.”
“또한 뇌성해에 대해서는 4만 년 전 부서진 금신자의 사당을 연구해 보시면 뇌성해 입구 공략이 조금 빨라집니다. 이 정보는 귀인의 기분을 나쁘게 한 대가로 그냥 드리지요.”
“흐음….”
좋은 정보였다.
그가 말하는 뇌성해라는 지역은 아마 현재 쇄성기 존자들이 찾고 있다는 양수진의 부해계라는 곳과 깊은 관련이 있는 곳일 테니까.
하지만 문제는 정보의 제공자가 서휼이라는 것.
이 녀석이 누구에게 얼마나 어떻게 거짓을 말하는지는 서휼 본인밖에 모른다.
이 말이 어디서부터 믿을 수 있는 정보인지는 모른다는 것이다.
‘이 정보에서 느껴지는 의도 자체는 불순하진 않다. 그냥 나에게 호감을 사려는 것 정도? 그리고 거기에 더해서 나를 떠보려는 의도도 조금 있긴 하군.’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역으로 서휼을 떠보았다.
“그나저나, 4만 년 전. 그때 네게 있어 가장 인상 깊었던 일은 뭐였었지? 난 헌원이 산의 신에게 관심을 받았던 일이 가장 재밌었다만?”
“하하, 특이하시군요.”
서휼은 재밌다는 듯이 웃었다.
“4만 년 전의 가장 큰 사건은 등극(登極)이 아닙니까? 그분이 좌(座)를 손에 넣은 사건 때문에 모든 삼천세계와 천역이 진동했고, 천존들께서도 축하하셨던 그 사건. 그 때문에 사실상 삼천세계의 모든 사건이 영향을 받은 게 아닙니까. 금신자의 후예들이 박해받은 것 역시 그 여파 중
하나일 뿐이고…. 그런 대사건 외에, 헌원 따위와 관련된 그런 소소한 사건을 손에 꼽으시다니….”
나는 내가 모르는 정보를 내뱉으며 나를 바라보는 서휼과 눈을 마주쳤다.
“…어쩌면, 태산의 주인과 연관된 일이라 한다면 저조차 모르는 내막이 있었겠군요. 좋은 정보 감사합니다.”
잠시 나와 눈을 마주치던 서휼은 눈꼬리를 초승달처럼 휘며 웃었다.
“태산의 주인과 관련된 흔적을 찾고자 하는 듯하니… 이미 알고 계실지도 모르지만 한 가지 더 알려 드리겠습니다.”
“말해 봐라.”
서휼은 씩 웃으며 내게서 등을 돌렸다.
“헌원이 감찰안(監察眼)을 얻은 것은, 저희가 비승한 직후입니다. 괴군이 날뛸 때 틀어박혀 있던 것 역시 갑자기 그 당시에 새로운 신통을 얻어서였다 하더군요.”
“…!”
“그리고… 헌원은 그러한 신통을 수련한 적이 이제껏 없다고 합니다. 그런데 갑자기 저희가 비승한 그 시기에 딱 맞춰서 그러한 신통을 얻었다…. 이게 뭘 뜻하시는지는 알고 계시겠지요?”
이어지는 그의 말에, 나는 조금 소름이 돋는 것을 느꼈다.
“[누군가]가… 그에게 지금 눈을 [빌려] 주고 있다는 겁니다. 후후후….”
두근, 두근, 두근….
나는 등에서 식은땀이 흐르는 걸 느꼈다.
서휼의 말 뜻이 바로 이해가 갔다.
헌원이 괴군이 날뛸 때 그를 잡지 않았던 건, 그 순간 그가 ‘어떤 존재’에 의해 영안 신통을 대여받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영안 신통을 부여해 준 존재는 우리가 비승한 직후에 굳이 헌원에게 그 신통을 대여해 주었다.
그리고 그 존재는 태산열제공과 연관된, 서휼의 표현에 의하면 ‘태산의 주인’과 관계된 존재일 확률이 높았다.
이 모든 사실들은 한 가지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었다.
‘태산의 주인은, 어쩌면 종명자들이 비승하자마자 헌원의 눈을 통해서 우리를 감시해 왔다.’
오싹, 오싹!
나는 헌원의 눈에 떠올랐던 감(監) 자가 유난히 뇌리에 남았던 이유가 짐작됐다.
그 시선은 어쩌면 헌원의 시선이었지만 헌원의 시선이 아니었던 것이리라.
“…좋은 정보를 알려 줘서 고맙다, 서휼.”
“별말씀을. 그럼 차후에 뵙겠습니다.”
서휼은 빙긋 웃으며 자리를 벗어나려 했다.
그리고 나 역시 빙긋 웃으며 입에서 다시 한번 무색유리검을 꺼냈다.
“그럼 잘 가라.”
부웅, 푸콱!
내 일검에, 서휼은 그대로 반으로 갈라져 죽었다.
서휼의 원영이 그대로 흩어져 쪼개지는 게 보였다.
녀석의 천원지방(天圓地方)이 흩어져 버렸다.
서휼은 그렇게 죽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