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Regressor’s Tale of Cultivation RAW novel - Chapter (288)
나의 이름은 (3)
우우웅!
‘음, 본체가 태수가 되었군.’
나는 흑색귀골곡 입곡소 옆.
대귀동이라는 곳에 앉아 좌선을 하며 본체의 신호를 받았다.
사실 본체라는 말도 이상한 게.
본체와 나는 현재 시각과 청각 등 감각과 모든 생각 및 감정을 공유 중이었기에, 사실 둘 사이에 구분 따윈 없었다.
‘아니, 이름이 다르긴 하지.’
서립이라니.
생각나는 대로 짓긴 했다만 이만큼 끔찍한 이름이 어디 있단 말인가.
새삼 몇 번을 생각해도 끔찍하고 자괴감 드는 이름이었다.
“이, 이곳에서 기다리면 됩니까?”
“그래. 대귀동에서 조금만 기다리면 된다.”
“알겠습니다!”
입곡소를 지키는 백골 원영기 수사.
백진에 의해, 대귀동으로 남포를 입은 사내가 들어와 주변을 두리번거리다 내 옆에 앉았다.
느껴지는 기운은 원영 초기 수준이었다.
“아, 선배님. 선배님도 흑색귀골곡에 입곡하시려는 분이십니까?”
백진에게 듣기로, 일반적으로 천인기 수준의 비승자라면 충성 맹세를 하게 한 후 바로 흑색귀골곡 장로직을 내 준다 했다.
장로직에서 신뢰가 쌓이면 원로가 되는 것이었고.
하지만 ‘서립’은 아직 원영 중기 수준이었기에 바로 장로직을 줄 수는 없고, 대신 시험을 쳐서 흑색귀골곡 음혼(陰魂) 제자가 될 수 있게 해 주겠다 하였다.
흑색귀골곡의 위계는 다섯 단계로 나뉜다 하였다.
연기기 수준 제자는 문령(門靈).
축기기 수준 제자는 시령(屍靈).
축기기에서 재능이 보이는 제자는 시혼(屍魂).
결단기 수준 제자는 귀혼(鬼魂).
원영기 수준 제자는 음혼(陰魂).
이상이 흑색귀골곡의 제자 위계였다.
그리고 원영기 대원만 제자 및 천인기에 오를 가능성이 높은 원영기 음혼은 호법(護法).
천인기는 장로(長老).
천인기 중에서 신뢰가 높거나 높은 충심을 보인 이, 혹은 문파 내에서 공적이 높은 이.
그리고 사축기에 오를 가능성이 높은 이들은 원로(元老)의 직위를 받는다.
여기에서 중경계부터는 색(色)으로 위계를 정하며.
사축기는 흑색(黑色) 원로.
합체기는 남색(藍色) 원로.
쇄성기는 청색(靑色) 원로로 불린다.
듣기로, 청색 급 원로는 광한계에는 존재치 않으며, 귀골곡 본종이 있는 명귀계에나 있다고 한다.
그리고 아마 내가 지난 생에 들었던 장익의 말대로라면, 지금은 명귀계에도 청색 원로는 없을 터였다.
아마 양수진의 부해계를 찾으러 가는 존자들의 원정대에 파견되었을 테니 말이었다.
‘흑색귀골곡도 역사와 근간이 깊기는 하군.’
창천개벽문이나 금신천뢰문에는 잘 해 봤자 사축기까지의 위계밖에 없었는데, 흑색귀골곡은 어찌 되었든 쇄성기까지의 위계가 있으니 말이었다.
그리고, 현재 나는 흑색귀골곡의 입곡 시험을 치르면 바로 ‘음혼’ 제자로 받아 주겠다고 한 것이었다.
듣기로는 본래 외부인은 아무리 원영기 대원만이라도 능력을 증명하지 않으면 음혼이 아닌 귀혼 제자 시험을 치르고 들어와야 한다고 했다.
다만 내가 원영 중기 수준으로 비승한 시점에서 흑색귀골곡에 능력은 증명된 것이었으니 음혼 수준에서 볼 수 있는 시험을 내 주겠다는 것이었다.
다만 이 방식에는 한 가지 귀찮은 점이 있었다.
“하하, 서 수사. 그래서 이 허남권이 그 귀물을 때려잡을 때 말입니다….”
음혼 시험을 치르려면 최소 5인의 인원이 모여야 했는데, 최소 아직까지는 허남권이라는 말많은 놈과 나 말고는 아무도 음혼 시험을 치를 준비가 안 됐다는 것이었다.
덕분에 나는 본체가 태수 칭호를 받으며 승승장구하는 동안 계속해서 이 음습하고 썩은 내 나는 대귀동에서 허남권의 헛소리를 들으며 대기하고 있어야만 했다.
‘흑색 원로 허령의 방계 후손이라 했던가.’
듣기로는 수계 청문세가처럼 본가에서 신경도 안 쓰는 방계 일족이라 했다.
하지만 그 방계 일족 중에서 어찌어찌 두각을 드러내 원영 초기에 도달하는 데 성공하여 특채로 음혼 시험을 보는 것이라 했다.
“하하, 사실 인족 육대종문 중에서 흑색귀골곡과 음혼귀시문 중 어디를 들어갈까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나는 귀 아프게 떠드는 허남권을 슬쩍 바라보며 속으로 한숨을 쉬었다.
녀석의 의념은 연분홍빛이었다.
‘이놈, 내 성별을 뭐로 아는 거지.’
아무래도 원유의 미모 때문에 나를 어찌해 보려는 거 같긴 했다.
“아무리 귀마께서 먼 선조 중 한 분이시라지만, 거의 30대 위쪽의 선조 분이시기에…. 사실 요새 음혼귀시문이 흑색귀골곡과의 경쟁에서 이겨
나가는 중이었잖습니까. 때문에 흑색귀골곡은 생각도 안 하고 있었는데, 하하, 그렇게 갑자기 흑색귀골곡이 음혼귀시문을 압도하고 병합해 버려 인족 육대종문이 인족 오대종문이 될 줄은 몰랐습니다.”
‘인족 오대종문이라….’
그랬다.
흑색귀골곡은 우리가 뇌령도에서 천겁을 맞을 시기 즈음, 하계에서 끌고 올라온 섭명함을 이용해 음혼귀시문을 흑색귀골곡에 병합해 버리는 데에 성공했다.
그 사실을 몰랐던 나는 인족 육대종문이라고만 알고 있었지만, 실상은 인족 오대종문으로 변해 버렸던 것이었다.
‘뭐, 듣자 하니 애당초 음혼귀시문부터가 예전 흑색귀골곡의 분파에서 갈라져 나온 마도 계열 문파라 하니….’
애당초 하나였으니 병합하는 데에 큰 문제는 없었다 한다.
“험흠. 그나저나 선자…?”
난 허남권의 추근거림에 짜증이 나서 그를 노려보며 말했다.
“별로 친해지지도 않았는데 무슨 선자요. 그리고 난 내가 여자라고 한 적도 없소.”
“아, 아니…!”
그 말에 허남권은 큰 충격을 받은 듯 동공이 풀려 내게서 뒷걸음질을 쳤다.
“그, 그 얼굴에 여자가 아니라고…?”
“….”
‘원유의 얼굴에 대해서는 신경 쓴 적 자체가 없었다만… 굉장히 불편하군.’
난 어찌할까 고민하다, 잠시 얼굴을 쓸었다.
우우웅!
그러자 혈마진해광의 마기가 내 얼굴을 덮으며, 원립이 쓰고 다녔던 것과 같은 흑색의 안개 같은 무면탈이 얼굴을 덮었다.
‘제길, 이러니까 진짜 원립이라도 된 느낌이군.’
아니, 사실상 10회차 당시 원유의 몸으로 갈아탔을 때의 원립과 다를 바도 없었다.
난 그 사실에 못내 기분이 더러워졌다.
‘흑마면(黑魔面)의 술법은 역겨워서 못 써먹겠어. 그냥 탈을 하나 사서 쓰고 다니든지 해야겠다.’
내가 아예 검은 가면을 써 버리자 허남권은 자기와 대화할 여지가 아예 사라졌다고 느낀 듯 쭈그러들어 대귀동 구석에 처박혔다.
그렇게 얼마나 대귀동에서 대기했을까.
사흘이 지났다.
저벅, 저벅….
백진이 세 명의 인원들을 이끌고 대귀동에 들어왔다.
“자, 이제 어느 정도 인원은 갖춰졌군. 이제 5인이 모였으니 입곡 시험을 보겠나? 아니면 다른 이들이 더 모일 때까지 기다리겠나. 5인은 최소 인원일 뿐이니 기다려도 되고, 당장 봐도 되네. 단, 이번에 떨어지면 자네들은 음혼이 아니라 귀혼 시험으로밖에 입곡할 수 없어.”
대머리에 문신을 한 근육질 사내와, 마치 시체 같은 흑포 사내.
그리고 하얀 소복을 입은 처녀 귀신 같은 여인.
대머리 문신은 원영 후기였고, 시체 사내와 처녀 귀신 여인은 각각 원영기 대원만이었다.
대머리 문신은 나와 허남권을 번갈아 보더니 혀를 차며 말했다.
“원영 중기? 얼씨구, 저건 또 초기로군. 저런 빈약한 것들이랑 시험을 볼 바에야 두 명을 더 기다리는 게 낫다고 본다만?”
그 말에 시체 사내는 아무 말이 없었고, 처녀 귀신 여인은 미친 것처럼 히죽히죽 웃을 뿐이었다.
‘가짜 광기군.’
괴군의 광증을 알고 있는 나로선 처녀 귀신 여인이 보여 주는 약한 광기가 굉장히 어설퍼 보였다.
“뭐, 뭐야. 왜 다들 아무 말도 없어?”
대머리에 말에 대답한 건 오히려 허남권이었다.
“어이, 네놈이 얼마나 잘났는지는 모르겠….”
콰아앙!
그리고, 대머리는 허남권에게 순식간에 달려들어 그의 머리통을 터트려 버렸다.
“…!”
허남권은 머리통을 재생시키며 고통에 몸을 마구 버둥거렸고, 대머리는 낄낄 웃으며 나를 바라보았다.
“이 정도 고통도 못 참고 발버둥 치기는. 거기 네놈은 어떠냐. 너도 두 명을 더 기다리는 것엔 이견이 없겠지?”
나에게 주먹을 들어 올리며 말을 거는 그 모습에, 나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
“미안하지만 나는 대귀동에 가장 먼저 와서, 상당히 오래 기다렸단 말이지. 더 기다리기는 싫은데….”
“인내심을 가질 수 있도록 도와주지.”
부웅!
그는 땅을 박차며 내게 달려들었다.
‘연체술을 익혔군.’
육신이 썩 튼튼한 게 보였다.
그러나 나는 당황하지 않고 팔을 뻗어 그대로 화경을 써 녀석의 주먹을 흘려 버렸다.
“어, 어어?”
놈이 당황하는 새, 나는 금나수를 펼쳐 그대로 놈의 팔을 뒤로 꺾어 제압했다.
뿌드드득!
“끄아아아악!”
“머리통 박살 정도로 고통을 못 이기네, 어쩌네 했던 것 치곤 엄살이 심하군. 내가 아는 녀석들이면 그대로 팔을 뽑거나 잘라서 탈출했을 텐데. 그 정도 깡도 없나.”
아마 수계 출신 수도자들이라면 이렇게 신체 일부가 잡힌 순간 아예 그 일부를 잘라 버리고 탈출했을 터였다.
아마 고환을 잡히지 않는 이상 절대다수의 수계 출신 원영기 수사라면 전부 도마뱀처럼 신체를 포기했을 터.
하지만 녀석은 광한계 출신인지 그 정도는 못 되는 모양이었다.
“너… 이 새끼…!”
쿠드드드드득!
녀석의 몸에서 강력한 시기(屍氣)가 뿜어지며 나를 밀어내는 듯했다.
하지만 나는 혈마진해광의 마기를 놈의 체내에 밀어 넣으며 도리어 놈의 영맥을 틀어막아 버렸다.
찐득거리는 혈마진해광의 핏빛 마력이 영맥을 틀어막자, 대머리 문신은 기운을 끌어올리지 못하고 그대로 내게 제압당했다.
“얌전히 있어라.”
“너…!”
나는 고개를 숙여 녀석과 눈을 마주쳤다.
흑마면 안쪽에서 내 안광이 번뜩였다.
아마 녀석이 마주치는 건 검은 흑마면 안쪽에서 붉게 번득이는 원유의 눈동자일 것이다.
“죽여 버리기 전에.”
“…!”
놈은 내 살기를 마주하자 그대로 얼어 버렸다.
일반적인 천인기 수사조차 상상도 못 할 정도로.
많고, 또 많은 전투를 치러 왔다.
내 서립이 내 분신이라곤 하지만, 그 살기는 이제 원영기 수사 따위가 감당할 수준은 아니었다.
“….”
그는 식은땀을 흘리며 내 눈을 피했고, 나는 고개를 돌려 이쪽을 흥미롭게 바라보는 원영기 대원만들을 보았다.
살기를 잠재우지 않은 나와, 시체 같은 사내 그리고 소복을 입은 여인의 눈이 마주쳤다.
“두 분은 지금 인원으로 시험을 보는 데에 이의 있습니까?”
시체 같은 사내는 내 안광을 마주하며 어색하게 웃어 시체 같은 인상을 억지로 지웠고, 소복을 입은 여인은 광증이 치료된 건지 예의 바르게 허리를 세우고 웃었다.
“이의 없습니다.”
“저, 저도요….”
나는 허남권을 바라보았다.
녀석 역시 내 살기를 느낀 듯 안색이 새하얘져 시체 같은 얼굴이 되어 있었다.
“저, 저도… 너무 만족스럽습니다.”
나는 만장일치된 의견을 수렴하여 백진에게 전달했다.
“다들 시험을 얼른 치르고 싶어 안달이 난 듯합니다.”
우리의 모습을 지켜보던 백진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럼, 흑색귀골곡 입곡 시험을 시작하도록 하겠다. 따라와라.”
그는 뒷짐을 지고 어딘가로 우리를 안내했고, 귀골곡의 계곡 안쪽을 따라간 우리는 어느새 가시넝쿨이 가득한 장소에 도착해 있었다.
나는 가시넝쿨의 정체를 눈치채고 안광을 빛냈다.
어느덧 우리의 앞에서 우리를 안내하던 백진의 모습은 사라져 있었다.
아무래도 진법에 진입한 듯했다.
[시험 내용은 간단하다.]백진의 목소리가 가시넝쿨이 가득한 공간을 채웠다.
[눈앞의 가시넝쿨은 특수하게 제작한 저주의 일종이다. 너희 다섯이 힘을 합쳐 그 저주 공간을 빠져나오면 시험은 합격….]콰악!
나는 백진의 말이 끝나기도 전, 가시넝쿨 줄기 하나를 잡았다.
“저주 반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