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Regressor’s Tale of Cultivation RAW novel - Chapter (289)
나의 이름은 (4)
드드드드드!
공간 전체가 떨려 온다.
나는 내가 쥐고 있는 넝쿨의 저주가, 이 공간에 펼쳐진 진법과 이어져 있다는 걸 알아챘다.
저주가 반전되며, 저주에 알맞게 짜 맞춰져 있던 진법이 통째로 뒤흔들리기 시작했다.
파아아앗!
말라 비틀어진 가시넝쿨들은 이내 마구 꿈틀거리더니, 가시 곳곳에서 새순이 돋기 시작했다.
그리고 얼마 후, 새순 안쪽에서부터 눈부신 백색의 꽃이 피어 올랐다.
그리고 어느 순간.
퍼어어엉!
휘황찬란한 빛무리가 사방으로 몰아치며, 곳곳에 백색의 꽃잎이 흩날리고 가시넝쿨들은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렸다.
그와 함께, 공간에 자리 잡았던 진법 역시 점차 해체되는 듯하더니, 어느새 우리는 반경 3장은 될 정도로 작은 동공 안에 들어와 있었다.
우리의 앞쪽에는 백진이 무릎을 꿇고 비틀거리고 있었다.
“크헉! 커헉, 이런 빌어먹을… 항마(降魔)의 속성을 가진 극정(極正) 계열 공법…!? 네놈, 어떻게 그런 공법을 가지고 있으면서 마공을 함께 익히고 있는 게냐!? 아니, 애당초 항마법술을 익혔다 해도 그 진은 저주에 대한 이해가 없다면 절대 풀 수 없을 텐데…?”
아무래도 그 진법과 직접적으로 연결되어 있었던 듯.
백진은 입에서 새하얀 기운을 울컥울컥 흘리며 비틀거리는 중이었다.
난 씨익 웃으며 말했다.
“극마(極魔)에 이르면 탈마(脫魔)의 길이 보이기도 하는 법이 아니겠습니까.”
“크, 크흐흐흐… 방금 그게 극정 계열의 공법이 아니었다는 건가? 뭐… 알겠다. 다만 한 가지 알아 둬라.”
그가 눈두덩이에서 귀화를 피워 올리며 나를 바라보았다.
“흑색귀골곡 내에서는 마공을 수련한 이들이 절대다수이니, 그런 항마 계통의 법술을 함부로 쓰는 것을 금(禁)하고 있다. 이번이 처음이고, 따로 말해 주지도 않았으니 넘어가겠다만… 주의해 두거라.”
“알겠습니다. 하면 혹시 저희는 방금 그 공법을 쓴 것 때문에 탈락인 겁니까?”
“흐흐흐, 그야 당연히 아니지. 너희는… 최고점으로 통과했다….”
부스스스!
“…!”
나는 흠칫 놀랐다.
백진의 몸이 점차 새하얀 가루로 부스러지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점차 그의 목소리가 영언으로 변하며 공간을 울렸다.
[시험관을 죽이는 데에 성공했으니… 너희는 전부 이제부터 음혼(陰魂) 제자이다. 어처구니없게 죽어 버렸으니… 이후 절차는… 이 녀석이 안내해 줄… 것이다….]파사삭!
그 말을 남긴 백진은 소매를 휘둘러 한 마리 귀신을 꺼낸 후, 그대로 부스러져 죽어 버렸다.
나는 당황해서 얼떨떨하게 자리에 서 있었다.
‘아니, 죽었다고?’
너무 태연해서 죽는다는 게 아니라 무슨 피곤해서 자고 온다는 줄 알았다.
그러나 당황하는 나와 달리 나머지 수사들은 나를 존경의 눈으로 쳐다보는 중이었다.
“대단하시군요, 수사. 시험관을 죽이다니….”
“흑색귀골곡의 입곡 시험관들은 하나같이 동 경지보다 강하기로 유명한데, 천인기의 문턱을 밟은 시험관을 한 번에 죽이다니….”
“아까는 내가 무례했소. 사과하도록 하지.”
나와는 어딘가 근간부터 다른 이들의 말투에, 나는 아득해짐을 느꼈다.
그때였다.
[다섯 분 모두 따라오십시오. 음혼 제자 패를 나눠 드리도록 하겠습니다.]백진의 소매에서 나온 귀신 한 마리가 시커먼 귀기를 뿜으며 우리에게 말을 걸었다.
“…일단 다들 신분 패를 받도록 하지요.”
나는 당황을 감추고 귀신을 따라갔다.
귀신은 우리를 왔던 길을 되돌아서 가게 했다.
‘입곡소로 다시 가는 건가…?’
나는 귀신을 따라가며, 조심스레 귀신에게 질문했다.
“혹, 내가 흑색귀골곡의 호법을 죽여서 뭔가 벌을 받는 건가?”
[아닙니다. 백진 대인께서 수련이 충분치 못하셨으니 죽은 것뿐입니다. 걱정하실 필요 없습니다.]“아니… 문파의 전력이 줄어든 게 아닌가?”
[아… 서립 대인께선 비승하셨다고 하셨지요. 하면 흑색귀골곡의 사정을 모르실 법합니다.]귀신의 말에 나머지 넷의 표정이 경악으로 물들었다.
“비, 비승자셨다고?”
“어떻게 원영기의 몸으로 공간 압력을 뚫고….”
“공허간에는 무시무시한 괴물들이 수두룩하다고 들었는데…?”
“여, 역시 대단하십니다. 도대체 어떻게 비승하신 겁니까? 비승 당시의 경험을 여쭤도 되겠습니까?”
아무래도 지금까지 입문했던 문파들에서는 광한계 출신 제자들과 직접적으로 대면할 일이 많지 않았고, 애당초 문파 자체가 단체 비승을 한 문파였기에 비승자에 대해서 별로 신경 쓰지 않는 분위기였었다.
하지만 ‘개인 비승’에 대해서는 광한계에서 상당히 높이 쳐 주는 모양이었다.
더군다나 원유처럼 원영기의 몸으로 비승한 경우에는 더더욱.
난 그들에게 무어라 대답할까 하다가, 설명이 길어질 것 같아 짧게 답해 주었다.
“차후에 얘기를 나누도록 하지요.”
그렇게 말한 후, 나는 귀신의 답변을 기다렸다.
내가 백진을 죽인 것에 도대체 왜 이렇게 태연하단 말인가?
그리고, 이어진 귀신의 말에 나는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흑색귀골곡의 귀혼(鬼魂) 제자들부터는 곡 내에서 자체적으로 두 번에 한하여 부활(復活) 기회를 드리고 있습니다. 섭명함을 사용하거나 귀골곡의 특수한 대진(大陣)을 사용하면 어렵지 않지요. 물론 경지가 높을수록 부활에 자원이 많이 들어가기 때문에 흑색 원로 이상부터는 알아서 부활해야 합니다만….”
“…!!!”
‘부활 기회를 제공해 준다고?’
심지어 굉장히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말하는 귀신의 말에 나는 어이가 없어짐을 느꼈다.
‘그보다, 섭명함의 기능 중에 부활까지 있었다면….’
나는 그제야 어째서 괴군이 섭명함에 꼬라박아 섭명함 동력 장치를 훔쳤는지를 이해할 수 있었다.
동력 장치가 있는 섭명함은, 그 자체로 부활 기능을 갖춘 신물(神物)인 것이었다.
‘다만, [그녀]의 상태가 그런 걸 보면 제한이 있나 보군.’
내가 당황하자, 대머리 문신 사내가 친근하게 웃으며 말했다.
“모르셨습니까, 수사? 비승하셨다면 그럴 수 있겠지요. 인족 오대종문은 흑색귀골곡을 제외하고 전부 합체기 태수님들, 혹은 용왕님이 뒤를 봐주시고 계십니다. 그런데 합체기 태수를 보유치 않은 흑색귀골곡이 인족 오대종문인 이유 중 하나가 바로 극단적인 불사성(不死性)입니다.”
“불사성이야… 마공을 익힌 마수들은 대부분 가지고 있는 게 아니오?”
“강한 재생력을 의미하는 게 아닙니다. 흑색귀골곡 마수들은 그 특유의 질기디질긴 명줄로 유명하지요. 우선 흑색귀골곡에서는 소경계 수도자들에게 귀골곡 부활 대진으로 한 번, 섭명함으로 한 번. 각각 두 번의 자체적인 부활 기회를 제공합니다. 그리고 흑색귀골곡의 특수한 공법을 몇 개 더 익히면 부활 기회가 떨어져도 시(屍)의 형태로 부활할 수 있으며, 거기에서 죽으면 또 상대의 육체를 강탈하거나 할 수 있는 공법으로 부활이 가능합니다. 거기에 그런 식으로 계속 부활하다가 마침내 더 부활하지 못하게 되었을 때는 섭명함 내부에 있는 사당에 귀왕(鬼王)의 형태로 봉해져서 현세에 남아 삶을 이어 갈 수 있지요. 귀왕 형태에서는 죽이기가 더더욱 어려워지고, 만약 죽이는 데에 성공한다 하더라도 잔혼(盞魂)의 형태로 현세에 남는 비술도 있으니 죽는 것 자체가 더 힘듭니다.”
“….”
나는 그의 말을 들으며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원립이 선녀였군.’
대머리 문신은 분명 외부에서 흑색귀골곡으로 들어오려 하는 자였다.
한 마디로 외부인마저 알 정도로 알려진 부활 횟수가 원립에 비견될 정도라는 소리였다.
그렇다면 장로나 원로들이 개인적으로 가지고 있는 여벌용 목숨까지 생각할 경우, 일곱 번이 아니라 열네 번도 더 부활할 수 있을 확률이 높았다.
그리고 나는 그런 생각을 하던 와중 한 가지 무서운 진실을 발견했다.
‘아니, 그럼, 괴군이 흑색귀골곡의 삼분지 일을 궤멸시켰단 소리는….’
저 미친 부활 횟수들을 다 깎아 내고 기어이 섭명함을 박살 냈다는 소리다.
‘이런 정신 나간….’
나는 잔혼의 형태로 남아 있는 송진을 떠올리며, 그가 그런 형태가 되기까지 괴군에게 몇 번이나 죽었을지 가늠조차 되지 않아 몸을 부르르 떨었다.
[맞습니다. 저희 흑색귀골곡은 전해지기로는 광한계보다 그 역사가 오래된 곳입니다. 광한계의 역사가 49만 년이 될까 말까 하니, 그 긴 시간 동안 쌓아 올린 역사와 힘, 긍지는 그야말로 위대한 것이라 할 수 있지요.]“…그런 것 같군.”
나는 귀신을 따라 입곡소에 가서, 귀신이 나눠 주는 검푸른빛 명패에 이름을 각인했다.
‘서립’이라고 적힌 검푸른빛 옥패를 보며, 나는 착잡한 기분이 들었다.
[그럼 따라오십시오. 다섯 분에게 동부를 배정해 드리고, 문파 소개를 해 드리겠습니다.]귀신은 우리를 데리고 귀골곡의 깊은 곳으로 갔다.
귀골곡은 중심부로 갈수록 귀기가 더 짙어졌는데, 귀기가 진해질수록 우리를 안내하던 귀신은 형상이 더욱더 또렷해졌다.
그는 시커먼 두루마기를 입은 꼬마 도령이었다.
우리의 시선을 느꼈는지 녀석이 말했다.
[참, 제 소개를 안 드렸군요. 저는 읍연입니다. 생전에는 흑색귀골곡의 연기기 시동 중 하나였습니다. 다만 백 년 전 음혼귀시문의 습격으로 목숨을 잃었고, 제 스승이셨던 백진 대인께서 저를 거두셔서, 현재는 귀혼의 형태로 입곡소에서 안내역을 맡고 있습니다.]“…그렇군. 죽은 게… 괴롭진 않으냐?”
[죽을 때는 고통스럽고 공포스러웠습니다만, 이제는 많이 익숙해졌습니다. 그리고 스승님께서도 잘 대해 주시니 문제는 없습니다.]나는 흑색귀골곡의 특이한 ‘죽음’을 대하는 태도에 기묘한 기분이었다.
‘기이하군.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오히려 친숙히 여기는가….’
난 읍연을 따라가, 계곡의 깊은 곳에 있는 절벽에 도달했다.
“여기는….”
[흑색귀골곡의 자랑, 신물 섭명함을 정박해 두는 곳입니다!]절벽의 아래를 보자, 그곳에는 거대한 귀기의 근원이 있었다.
두 척의 섭명함이 막대한 귀기를 내뿜으며, 시커먼 흑수(黑水) 위에 떠 있었다.
자세히 보니, 저 흑수는 진짜 물이 아닌 어마어마하게 많은 혼령들이 모여 있는 응집체였다.
나는 그 응집체를 보며 눈살을 찌푸렸다.
읍연처럼 평안한 상태가 아닌, 하나같이 괴로워하는 원혼들이었기 때문이었다.
내가 눈을 찡그릴 때, 읍연이 아래를 가리켰다.
[아래쪽에 동부가 있습니다. 따라오시지요.]우리는 읍연을 따라 아래로 내려갔고, 절벽에 나 있는 동부를 배정받았다.
“후후, 귀기가 음산한 게 마공을 익히기 최상의 환경이군.”
“역시 대흑색귀골곡이야!”
“히히히….”
시체 같은 사내와 대머리 문신은 동부를 보며 감탄했고, 소복을 입은 여인은 다시 광증이 도지기 시작했는지 음산하게 웃어 댔다.
허남권 역시 너무 만족스럽다는 듯 주변의 귀기를 빨아들이며 콧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서 대인의 동부는 이곳입니다.]나 역시 섭명함과 가까운 곳에 귀기가 짙은 동부를 배정받았다.
[따라오십시오. 동부를 배정받았으니, 우선 문파의 어른들께 인사를 드리러 가야 합니다.]우리는 읍연을 따라 섭명함 안으로 들어갔다.
나는 익숙한 섭명함 내부로 들어가며 예전을 떠올렸다.
쿠구구구구!
섭명함은 마치 살아 있는 듯이 귀기가 곳곳에서 흘렀다.
‘차라리 하나의 용맥 같군.’
망가지지 않은 섭명함은 이 자체로 하나의 움직이는 등선향이나 다름없어 보였다.
얼마간 읍연을 따라갔을까, 우리는 섭명함의 깊숙한 사당에 들어왔다.
[제자 읍연이 어르신들을 뵙습니다.]끼야아아아아―
그와 동시에, 도저히 알아들을 수 없는 귀곡성이 사당 안쪽에서 마구 몰아쳤다.
그 막대한 귀곡성과 귀기에, 시체 사내는 바싹 얼어 버렸고, 대머리 문신은 예의 바른 얼굴로 자세를 잡았으며 소복 여인은 다시 정신병이 치료됐는지 화들짝 놀라 쭈그러들었다.
허남권은 내 뒤에 숨어 덜덜 떨고 있었다.
그러나 나는 정작 헛웃음을 키며 가만히 있었다.
‘다들 신나 하는데 이게 무슨 추태인 거냐.’
정작 사당 안쪽에 흐르는 의념은, 새로운 제자를 환영하는 기쁨으로 가득 차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읍연은 사당 안쪽의 어르신들.
흑색귀골곡의 귀왕(鬼王)들이 우리를 반겨 주고 있다고 설명해 주었다.
우리는 귀곡성이 울리는 사당 앞에 서서 읍연의 안내에 따라 절을 올린 후, 귀골곡의 입곡식을 간소하게 마쳤다.
[이제 입곡식이 끝났습니다. 대인들께선 이제 흑색귀골곡의 당당한 음혼 제자이십니다.]읍연은 박수를 치며 우리를 축하해 주었고, 대머리 문신은 머리에 흐르는 식은땀을 훔치며 물었다.
“그, 그런가. 고맙다.”
아무래도 그는 빨리 이 사당 안쪽에서 나가고 싶은 듯했다.
그러나 그의 기대와는 다르게, 읍연은 미소를 지으며 뭔가를 말하려 했다.
그때였다.
“입곡식은 다 치렀나?”
우우웅!
공간이 쪼개지며, 백골귀마 허곽이 사당 안쪽으로 들어왔다.
남자인지 여자인지 헷갈리는 외모를 한 그는 빙긋 웃으며 우리를 훑어보다, 허남권을 보고는 살짝 눈을 찡그렸다.
그리고 그의 시선은 나에게 닿자 바로 환하게 펴졌다.
“뭐, 어쨌든 다들 잘 입곡한 것 같구나. 나에 대해서는 잘 알겠지? 흑색귀골곡 광한계 지부 원로원주, 흑색 원로 백골귀마 허곽이다.”
우리는 그에게 읍을 하며 예를 취했다.
“본래 귀혼 미만의 제자들은 스승을 붙여 주는 게 관례다만, 원영기 음혼 제자들에게는 조금 특별한 방식을 쓰지. 너희는 지금, 이 자리에서 너희가 앞으로 봉양(奉養)할 귀왕(鬼王)을 고르거라.”
“예…?”
안 그래도 귀왕들의 귀기에 질려 얼굴이 하얘진 대머리 문신이 더더욱 하얗게 질려 되물었다.
허곽은 싱긋 웃으며 말했다.
“본래 흑색귀골곡에서는 최소 한 명씩 함께할 귀도도려를 고른다. 일반적인 도려와는 다르게, 음양 쌍수의 목적이 아닌 귀도공법의 수련이 목적인 도려이지. 그런 목적이기에 성별은 상관치 말고 다들 최소 한 명씩 귀혼(鬼魂)을 품고 다닌다. 다만 너희, 방금 입문한 원영기 음혼 제자들은 일반적인 귀혼으로는 혼(魂)이 귀도(鬼道)에 적합하게 물들지 않는다.”
이어진 허곽의 말에 대머리 문신은 기절할 것 같은 표정이 되었다.
“그러니 너희는 귀도도려를 정하기 전까지는, 혼이 귀도에 적합해질 수 있도록 이 사당에 계신 귀왕 중 한 분을 원영에 품어 봉양하며 혼이 귀기에 익숙해지도록 하거라.”
대머리 문신은 아득해진 표정으로 반쯤 혼이 나간 것 같이 되었다.
그러나 시체 같은 사내와 소복 여인은 오히려 좋다는 듯 표정이 밝아졌고, 허남권은 조금 귀찮다는 기색이었다.
“저, 어르신. 혹 저도 해야 합….”
허남권의 질문에 허곽은 짜증 난다는 듯이 손을 저으며 말했다.
“절차다. 너도 예외는 없다.”
“예….”
“그럼 다들 사당에 있는 위패들 쪽으로 걸어가거라.”
우리는 다 같이 사당에 끝없이 늘어져 있는 위패 쪽으로 걸어갔다.
그때였다.
파아아아앗!
갑자기 풍경이 뒤바뀌었다.
나는 어느새 일행과 떨어져 있었고, 주변은 시커먼 밤하늘 아래에 있는 무수한 공동묘지였다.
묘지는 하나같이 정갈한 묘비가 써 있었다.
곧이어 시커먼 하늘 아래.
허공에서 허곽의 목소리가 울렸다.
[너희가 진입한 곳은 섭명함 내부 사당을 통하거나, 혹은 특수한 방법으로만 진입할 수 있는 흑색귀골곡의 대묘역(大墓域)이다. 무수한 선조들의 귀혼이 귀왕이 되어 그곳에 계시지. 그곳을 돌아다니다 너희를 마음에 들어 하시는 귀왕께서 계시면 몸을 맡기거라. 이곳에서 너희를 택하는 귀왕에 따라 너희가 앞으로 익혀 나갈 귀도공법의 종류도 갈리니, 귀왕들께 잘 보여 보도록.]그 말을 끝으로 허곽의 목소리는 끊겼고, 나는 잠시 기다리다 주변을 둘러보았다.
“흠….”
그러나 얼마나 주변을 둘러보아도 딱히 귀왕들의 기색은 보이지 않았다.
“누구 계십니까?”
나는 대묘역을 돌아다니며 묘비들 사이를 뒤져 보았다.
그러나 귀왕은커녕 허접한 잡귀조차 보이지 않았다.
“…귀왕들이 어디 있다는 거지?”
***
흑색귀골곡 대묘역.
그곳에 있는 다른 공간.
허남권과 대머리 문신, 그리고 시체 같은 사내와 소복의 여인.
서립을 제외한 그들은 현재 전부 같은 풍경을 보고 있었다.
대묘역 전체에서 미친 듯이 울부짖으며 발광하는 귀왕들의 귀곡성에, 그들은 피를 토하며 바닥에 주저앉아야만 했다.
[끼야아아아아아!] [끼아아아아!] [끄아아아아아아!]“대, 대체 무슨….”
허령의 후손으로, 원래부터 귀혼에 대한 친화도가 남달랐던 허남권은 피를 한 움큼 토하며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평소에는 그가 주변에 다가가면 친근하게 말을 걸어 주었던 귀혼들이, 하나같이 미친 듯이 발광하고 있었다.
하얀 소복을 입은 여인은 엉엉 울며 귀왕들을 피해 도망 다녔고, 시체 같은 사내는 비명을 지르며 얼굴에 혈색이 돌 정도로 뛰어다녔다.
대머리 문신은 심장을 부여잡고 귀신들의 귀곡성에 주저앉아 칠공에서 피를 토했다.
그리고, 사당 밖에서 뒷짐을 지고 있는 허곽은 턱을 쓰다듬었다.
덜걱, 덜걱, 덜걱….
“흐음, 위패들이 흔들리는군….”
대묘역과 연결된 사당의 위패들,
중경계 수사는 산 몸으로 진입할 수 없는 것이 대묘역이었다.
허곽으로서는 그저 안쪽에서 ‘어르신’들이 새 제자들을 놀려 주고 있나 보다 하며, 껄껄 웃었다.
“선조들께서 반응이 격하신 걸 보니, 이번 제자들은 재능이 다들 뛰어나신가 보군. 읍연! 나는 가 볼 테니, 음혼 제자들이 대묘역에서 선택을 마치고 나오면 공법 서고로 안내해 주거라.”
[예, 대인.]허곽은 덜걱거리는 위패들을 보며 다시 한번 웃고는 사당에서 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