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Regressor’s Tale of Cultivation RAW novel - Chapter (290)
나의 이름은 (5)
나는 한참 동안 대묘역을 걸어 다녔다.
대묘역에 있는 묘비는 정말 끝이 없었고, 아무리 걷고, 가끔 날아다녀도 도저히 끝이 보이지 않았다.
‘뭐, 그런 건 문제가 안 되지.’
진짜 문제는, 허곽이 말했던 ‘귀왕’들은 눈곱만큼도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도대체 어디로 가야 귀왕이란 놈들을 만날 수 있는 거지?’
이곳을 나가든 말든 하는 건 일단, 귀왕이란 이들을 만나는 것에서부터 시작해야 하지 않겠는가.
‘기이한 공간이군.’
나는 아무리 걸어도 끝나지 않는 묘비의 평원을 보며 생각했다.
이렇게 끝이 없을 수는 없다.
하다못해 광한계에 이 정도 크기의 평원이 있다곤 해도, 계속 이동한다면 뭔가 변화가 생기는 게 맞았다.
최소한 천지영기의 변화는 있어야 했건만, 이 기이한 공간은 그런 것조차 없이 끝없이 펼쳐지기만 했다.
‘그리고, 뭔가 기시감이 드는데….’
난 이 대묘역을 보며 어딘지 모를 기시감을 느꼈다.
처음에는 몰랐지만, 어째서인지 계속 보다 보니 예전에 와 본 듯한 느낌이 들었다.
‘흐음….’
난 잠시 걷던 도중 원영에 집중을 해 보았다.
그때였다.
“음?”
나는 뭔가가 이상하다는 걸 깨달았다.
“잠깐, 이건….”
우우웅!
손가락을 펼치며 체내의 마기를 움직였다.
그러자 마기가 손끝에서 흘러나오며, 내 앞에 거울의 형상을 만들어 냈다.
그리고, 거울을 본 나는 흠칫 놀랄 수밖에 없었다.
‘얼굴이…!’
어느 순간, 내 얼굴은 원유의 그것이 아닌, 본체 서은현의 얼굴로 변해 있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옷차림조차 원유의 혈색 장포가 아닌, 내가 평소 입고 다니는 도복으로 변해 있었다.
변한 것이 있다면, 도복의 색(色)이었다.
내 도복은 완전한 흑색(黑色)으로 변해 있었다.
‘언제 내 모습이 변한 거지? 아니, 그보다, 이렇게 변하면 혹시 정체가 들키는 건가? 아니, 아니다….’
나는 내 상태를 관조하며 내가 왜 갑자기 원래 모습으로 변했는지를 깨달았다.
‘그래. 이 대묘역이란 곳은, 저도 모르게 혼(魂)의 모습이 대묘역에 반영되는 거야. 서립이란 이름을 써도 나는 결국 서은현이니 내 원래 모습
으로 어느 순간 변한 거고.’
아마 대묘역을 나서면 바로 서립의 형태로 돌아갈 터였다.
‘그런데 이상한 게 있군….’
나는 흑색으로 변한 도복을 바라보았다.
‘어째서 도복은 흑색이 된 거지?’
그리고 나는 어째서인지 내가 묻고는 스스로에게 답변할 수 있었다.
‘죽음…. 이 대묘역에서 바뀐 내 모습은, 죽음과 관련되어 있다. 아마 백의가 아닌 다른 옷을 입고 온 이들도 전부 흑의로 옷의 형태가 바뀌었겠지….’
문득 나는 ‘죽음’이라는 단어에 어째선지 귀왕들을 볼 수 없는 이유를 알 것만 같았다.
‘예전 서란과 섭명함을 찾았을 때… 섭명함 인근에 있던 귀무에 살던 잡귀들은 나를 큰 귀신이라고 불렀지….’
어쩌면, 나에게 쌓여 있는 ‘죽음’이 그때보다 더더욱 강해졌기 때문에 뭔가 일어난 걸지도 몰랐다.
‘예를 들어, 귀왕들이 안 보이는 게 아니라 내 기운을 느끼고 다 어딘가로 도망쳤다거나….’
왠지 그쪽이 신빙성이 있는 듯했다.
“흐음….”
그렇다면, 방법은 한 가지였다.
나는 가부좌를 틀고 자세를 잡은 채 숨을 들이쉬었다.
귀왕들이 내게서 도망치고 있는 중이라 그들을 볼 수 없는 것이라면….
‘놈들이 도망치는 속도보다 더 빠르게 쫓아가 보면 되겠지.’
지금까지는 대묘역이랍시고, 뭔가 흑색귀골곡의 성지 같은 느낌의 공간이었기에 느릿느릿 걷거나 비둔술도 쓰지 않고 날아다녔다.
하지만 아무래도 내가 너무 예의를 차렸나 보다.
‘이 빌어먹을 놈들, 손님이 왔으면 반갑게 맞아 주지는 못할망정….’
나는 체내의 정순지력을 이용해 주변으로 강환을 띄우기 시작했다.
‘감히 접대조차 하지 않고 내뺀다고?’
하나, 둘, 셋, 넷….
일곱, 여덟, 아홉….
그리고.
열, 열하나, 열둘….
계속해서 내 주변의 강환들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의념의 세계에서 내 주변의 분신들이 점차 늘어났다.
등봉조극 시절에는 9개가 강환의 최대한도였다.
입천 때에는 무형검에 녹아들어 강환이 사라졌고, 답천 때에는 내단과 하나 되어 최대 10개의 강환을 가지고 가속을 했었다.
물론 답천 때에는. 애당초 무형검으로 가속을 하는 것만으로 가속의 효율이 10배를 가볍게 뛰어넘어서 강환을 더 만들 필요를 못 느꼈다.
그리고 겁천에 이른 지금.
나는 내가 만들 수 있는 강환의 개수가 ‘제곱’되었다는 게 느껴졌다.
무형검에 ‘마음’이 깨어나게 되며, 무형검이 각각 10개.
나 자신이 각각 10개.
그리고 무형검과 내가 얽히게 되며, 정신이 증폭되며 10*10. 즉, 100개의 강환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이 느껴졌다.
주변으로 100명의 의념 분신이 나타난다.
“합(合).”
파바바바밧!
100개의 의념 분신들이 내게 날아들자, 세계가 느려지기 시작했다.
원유의 몸은 길이 들지 않아서 무형검을 사용해도 10할의 위력을 낼 순 없다.
하지만 단순히 강환으로 가속시키는 정도라면, 문제가 없다.
번쩍!
나는 100배 가속한 상태에서 비둔술을 사용해, 어느 한 곳을 향해 미친 듯이 날아가기 시작했다.
쿠구구구구구!
이 속도는 천인기를 훌쩍 뛰어넘어, 사축기 초기 수준의 속도에 달할 정도!
얼마간 그렇게 대묘역을 날았을까.
나는 저 멀리, 의념의 파동들이 넘실거리는 것을 확인하며 미소를 지었다.
‘역시, 찾았다!’
역시나 귀왕들이 안 보이는 게 아니라, 녀석들이 내 기운을 느끼고 도망치고 있었던 것이었다.
점차 공포를 느끼는 의념들이 가까워졌다.
그리고, 나는 끔찍한 귀곡성이 울리는 걸 느꼈다.
[끼야아아아아아!] [큰 귀신이 왔다아아!!!] [피해! 피해에에에!]“흐음….”
번쩍!
나는 빠르게 녀석 중 한 놈에게 쇄도했다.
대강 천인 중기쯤 되어 보이는 놈에게 쇄도해, 내 손의 계위를 높여 혼(魂)을 잡을 수 있도록 한 후 녀석을 붙잡자, 천인 중기의 귀왕이란 놈은 자지러지게 비명을 지르기 시작했다.
[히야아아아아악! 흐아아아아악! 끄아아아악! 히, 히야아아악!]“….”
나는 공포에 벌벌 떨고 있는 이 놈을 보며 어찌해야 할지를 고민했다.
‘백란축성문이 정신을 도야시켜 주는 데엔 최고인데….’
공포에 질려 있는 이 녀석의 정신을 되돌리려면 백란축성문이 제격이었다.
그러나 아무래도 백란축성문을 쓰면 이 귀왕이 그대로 녹아 버릴 것 같다는 불길한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조금만 써 볼까….’
우우우웅!
나는 손톱만 한 백란축성문을 띄워 녀석에게 불어넣었다.
그리고, 나는 여태까지보다도 더더욱 끔찍한 귀곡성을 들어야 했다.
[나 죽는다아아아!!! 끼야아아아악! 히야아아아악!]“….”
아무래도 백란축성문은 항마의 속성을 가지고 있기에, 귀기로 가득한 귀왕에게 주입하면 치명상인 듯했다.
‘이런 빌어먹을, 어찌해야 하지?’
나는 잠시 고민하다가, 음혼귀주문을 일으켰다.
쿠구구구!
주변으로 진득한 저주문의 기운이 일어났다.
‘이걸 놈에게 주입하면, 고통에 몸부림칠 텐데….’
단순히 항마 속성의 반대 기운을 가진 음혼귀주문이라고 멋대로 불어넣으면 안 되었다.
음혼귀주문의 본질은 ‘고통’이었고, 그 기질이 귀신과 맞든 안 맞든 이 녀석은 고통에 겨워할 수밖에 없었다.
잠시 고민하던 나는 음혼귀주문을 법력화해, 음(陰)의 법력을 귀왕에게 불어넣어 주었다.
동시에 음의 법력을 백란축성문의 방식으로 운용하며 귀왕의 정신을 도야시키기 시작했다.
츠츠츠츳!
얼마 후, 자지러지게 비명을 지르던 귀왕은 점차 비명 소리를 줄이더니 입맛을 다셨다.
[으…아….]“괜찮으십니까?”
[어….]“…상태가 이상한데.”
아무래도 음의 법력으로 정신을 도야시키는 건 처음이다 보니 뭔가 이상한 상태가 된 모양이었다.
‘정신을 도야시킨 게 아니라, 어째 최면을 건 느낌인데….’
“뭐라고 말 좀 해 주시겠습니까?”
[말.]“…젠장.”
내가 나지막이 욕설을 내뱉자, 갑자기 귀왕은 엉엉 울기 시작했다.
[죄송, 죄송합니다. 귀인(貴人)께 무례를, 무례를 범해서, 범해서, 죄, 죄송….]“그만, 그만 우십시오. 도대체 왜 그러는 겁니까?”
나는 뭔가 제대로 된 언어를 말하기 시작하는 귀왕을 보며 눈에 희색이 돌아 묻기 시작했다.
내 질문에 귀왕이 되물었다.
[귀, 귀인…. 어떤, 어떤 걸 여쭙는, 것입, 니까?]“일단, 왜 나를 보고 다들 도망치는 겁니까?”
[그야, 귀인께서, 귀인이시기 때문입니다. 저희, 저희를, 저희를 제발, 명계로 데려가지 마십시오.]“…혹시 생전에도 그렇게 말씀을 더듬으셨습니까?”
나는 하도 이 귀왕이 덜덜 떨며 말하는 것이 답답해 물었다.
내 질문에 귀왕은 눈물을 흘리며 고개를 저었다.
[아닙, 아닙니다. 귀인 같은, 대단한 귀신을 만나면, 그 아래의, 귀령들은, 대부분 이지(理智)를 잃습니다.]“이지를 잃는다고요?”
[그렇, 습니다.]내가 음의 법력을 더 넣어 주며 그의 혼 주변을 둘러싸자 그는 점차 안정되며 또박또박 말을 하기 시작했다.
[귀도공법의, 핵심입니다. 강력한 귀기를 쌓을수록, 명계(冥界)를 확실히 인지할수록, 더더욱 강한 귀신이 됩니다. 그리고 강한 귀신일수록한 귀신을 쉽게 부릴 수 있습니다. 강한 귀신이 근접하면 약한 귀신은 지성이 낮아지고, 이지가 흐려지며, 오로지 본능만이 남아 강한 귀신께 복종하든가, 도망치든가, 둘 중 하나를 선택하게 됩니다.]
“흐음….”
나는 그제야 어째서 최소 원영기 이상의 귀왕들이 어째서 나를 보며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완전히 정신이 나가 버려 도망쳤는지를 이해했다.
“…아니, 잠깐. 예전에 송진이라는 흑색귀골곡 원로의 잔혼을 만난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자는 저를 보고도 그렇게 정신에 문제가 생기진 않았습니다만….”
문득 말하고 보니, 송진을 만났을 당시의 나는 정작 지금만큼 죽지 않았을 당시의 나였다.
[흑색귀골곡 원로의 잔혼이, 귀인을 보고도 멀쩡했다면… 둘 중 하나입니다….]이제 귀왕은 아예 최면에 빠져 버린 듯 몽롱한 목소리로 내게 답하기 시작했다.
어째 음혼귀주문을 녹인 법력에 취한 듯한 느낌이었다.
[잔혼이라고 했지만, 사실 잔혼이 아닌 살아 있는 자의 분체였거나… 혹은 섭명함과 연결되어 있었을 확률이 높지요.]“섭명함 때문인가….”
섭명함에는 단순한 공간 전송 말고도 꽤 여러 가지 기능이 있는 듯싶었다.
나는 귀왕을 보며 질문했다.
“일단, 나를 보며 다들 도망치는 이유가… 내가 ‘큰 귀신’이기 때문인 겁니까?”
[맞습니다. 귀인께서는 혹… 명계의 나찰(羅刹)이나 야차(夜叉), 아니면 수라(修羅)나 염마(閻魔)가 아니십니까? 명부(冥府)의 사신(死神)께서 흑색귀골곡에 강림하신 겁니까?]“아니… 난 그런 게 아닙니다.”
아무래도 ‘귀왕’이란 경지에 상관없이 ‘명계’를 인지할 수 있는 귀혼을 뜻하는 단어인 듯했다.
“오해가 있으십니다. 저는 그저 흑색귀골곡에 방금 입곡한 제자이며, 생자(生者)이지 큰 귀신 같은 게 아닙니다.”
[저승의 가장 밑바닥에서 명계의 신의 눈길을 받았던 분이 아니라면, 귀인만큼 위대한 죽음을 두르고 계실 수 없습니다. 귀인께서는 지금 생의 몸으로 그런 일이 가능하다는 농을 하고 계시는군요. 귀인께선 분명 명계의 신을 보필하셨던 급 높은 사신(死神) 중 하나이실 수밖에 없나이다….]
“엄….”
[부디 정해진 명에 따라 명계로 가지 않고, 아직도 구차하게 구천에 남아 있는 저희를 너무 책망치 마소서…. 저희는 그저 후손들을 위하여 대묘역을 짓고 방주(方舟)를 만들어 천역의 순환을 기다리는 것뿐입니다.]그는 완전히 음의 법력에 취한 상태에서도 내 기세에 질렸는지 묻지도 않았던 것까지 술술 말했다.
[비록 12만 년 전 그 망나니에게 광한계 지부의 섭명함 12척이 모조리 박살 났다지만, 수계에서 섭명함을 이끌고 올라왔기에 종말의 때에 중경계의 혼들을 수거하는 것쯤은 문제가 없습니다…. 명계의 대선들께오서도 저희를 그냥 두시는 게 편치 않으십니까…. 부디 흑색귀골곡을 멸하지 말아 주시옵소서….]귀왕은 나에 대해, 명계에서 죽음을 거부하는 흑색귀골곡을 벌하러 온 사신쯤으로 착각한 건지, 꺼이꺼이 울며 제발 흑색귀골곡을 용서해 달라고 빌기 시작했다.
나는 어찌해야 할지 몰라 울어 대는 귀왕을 일단 풀어 주었다.
귀령은 높은 귀신을 만나면 이지를 잃는다는 게 정말이라는 듯.
내 음의 법력에서 벗어나자마자 방금 나눴던 대화를 다 잊어버린 듯이 발광하기 시작했다.
[히야아아아악! 큰 귀신이다! 큰 귀신이야!!! 히야아아악!]그렇게 말하던 녀석은 재빨리 대묘역 어딘가로 도망쳐 버렸고, 나는 지끈거리는 머리를 부여잡았다.
‘제길, 여기저기서 난리로군.’
나는 갑자기 본체 쪽에서 일어난 일에 대해 미간을 찌푸렸다.
* * *
“…이게 뭡니까?”
‘나’는 천인도 천부산에 동부를 얻고, 전명훈에게 이쪽으로 오라는 전음을 보낸 후 내게 보내진 서한을 보며 눈을 찌푸렸다.
내게 서한을 전달해 준 위령선은 혀를 차며 말했다.
“일단… 지족 진룡맹 관주사자라는 자가 보낸 서한이네.”
“…그분이… 도대체 왜 저한테 이런 걸….”
“글쎄, 나야 모르지. 무슨 원한을 샀는지 곰곰이 생각해 보게나.”
나는 내 앞으로 온 살해 협박 서신을 받으며 한숨을 쉬었다.
서신에는 용혈(龍血)로 원한이 가득한 살해 협박이 적혀져 있었는데, 필체만 봐도 소름이 돋을 정도였다.
‘빌어먹을 서휼 놈.’
아무래도 자신이 누구에게 죽었는지를 규련에게 전달한 것 같았다.
―최대한 빨리 너를 죽이겠다. 기다려라.
“…미치겠군.”
나는 규련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