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Regressor’s Tale of Cultivation RAW novel - Chapter (291)
나의 이름은 (6)
“굳이 위 선배님 앞으로 이런 서신을 보냈다는 것은….”
“그래. 그녀도 자네가 인족에서 태수로 임명되었다는 걸 알고 있다네. 그리고, 지족 측에 있는 첩자들로부터 온 정보다만….”
위령선은 저물도에서 옥간을 꺼내서 읽더니 설명해 주기 시작했다.
“최근 황룡족에서 용왕이 한 명 탄생했다는 정보가 있네. 용족 측에선 결정적인 순간에 터트리기 위해 지금 쉬쉬하고 있다네만…. 아무래도 굳이 태수가 된 자네에게 시비를 거는 규련, 그녀가 용왕이 됐을 확률이 크지. 고작 1만 살밖에 안 된 나이로 사축기 대원만이 된 관주사자 규련이라면 자질도 충분하니 말이야.”
“흐음….”
용왕이 된 규련이라.
나는 이전 생의 그녀에 대해 떠올려 보았다.
완전한 합체기도 아닌, 준 합체기 수준만으로 입에서 뿜는 광선의 힘은 어마어마할 정도였다.
그래, 딱 그 정도였다.
‘상대할 수 있을 거 같은데….’
만약 진 정통 기축으로 합체기에 오른 서휼이라면 조금 무섭겠지만, 규련 정도라면….
‘음, 안 무섭군.’
규련에겐 미안하지만, 순수하게 전투력 측면에서 그녀는 위령선과 비슷하거나 조금 아래다.
위령선은 애당초 전투에 적합한 공법을 익힌 게 아니었기에, 인족 총연맹 합체기 중 최약체라 할 만한 사람이었다.
그런 최약체와 비교해도 그녀는 지금 그렇게 강한 상태가 아니었다.
물론 황룡족이니만큼 합체 초기에 이르고 나서 경지를 안정시키고 경험을 쌓는다면 또 몰랐지만, 지금 상태의 그녀는 덤빈다고 한들 전혀 무섭지 않았다.
그리고 내가 의아한 것은, 그녀 자신도 그것을 알고 있을 거란 점이었다.
“위 선배께 서신을 전달했단 건 제가 태수란 걸 알고 있다는 뜻이고, 그렇다는 건 요 몇 주간 제가 천인도에 들어오며 뭘 했는지를 들었다는 소리 아닙니까?”
“그래. 아마 용족 측에서도 인족에 심어 둔 간자를 통해 그 소란은 전부 전해 들었을 테지. 자네의 전투력과 잠재력에 대해서도 다들 잘 알고 있을 걸세.”
천족 사축기 건곤성 감찰 선사들을 갈아 버리고, 서휼을 일격에 쳐 죽였으며, 위령선과 정면으로 붙어 그의 영역 안쪽에서 그를 격파한 내 요란스러운 행적은 이미 천족 곳곳에 알려져 있었다.
지족에서도 천족에 숨겨 둔 간자들을 통해 이런 정보들을 다 전달받았을 테고, 그런데도 내게 이렇게 협박을 하는 이유는 대체 뭘까.
‘서휼 때문인가?’
그녀는 서휼이라면 눈이 돌아가 버리곤 하니 그럴 수도 있었다.
‘서휼이 아니라면, 지난 생의 나처럼 대놓고 그녀를 배신한 모습을 보여 줘도 변론의 기회는 줄 정도로 이성적인 게 그녀다. 내가 서휼을 죽인 걸, 서휼이 뭔가를 해서 그녀에게 전달했다 했을 때 규련은 눈이 뒤집혔겠지. 그렇다면… 이 사건은 규련이 아닌 서휼의 한 수라고 봐야겠군.’
머리가 복잡해졌다.
‘서휼은 산 건가, 아니면 죽은 건가?’
혼백을 분해하고 천원지방을 흩어 확실하게 죽였고, 서휼의 죽음에 분노하는 규련을 보면 분명 죽은 게 맞았다.
그런데 너무 공교로웠다.
‘만약 규련이 폭주해서 내게 달려들어 내가 그녀를 죽인다 친다면?’
서휼이 살아 있다고 한정할 때, 서휼은 계속 그녀를 떨쳐 내고 싶어 했으니 그가 원하던 걸 얻는 게 된다.
‘서휼은 확실히 죽였다.’
녀석이 부활하려는 것조차 혼의 통로를 끊어 완전히 시도 자체를 차단했다.
그런데도 규련이라는 말을 들고, 그 빌어먹을 웃음과 함께 한 수를 두고 있는 듯한 서휼의 환영이 눈앞을 스치는 듯했다.
‘…뱀 같은 놈.’
나는 도저히 상상하기 싫지만, 서휼이 아직 죽지 않았다고 가정해 보기로 했다.
‘만약 녀석이 살아 있다면, 녀석에게 득이 되는 일은 뭐고, 또 해가 되는 일은 무엇일까.’
득이 되는 일은 규련을 죽이는 것이다.
그렇다면 해가 되는 일은 무엇인가.
“…서신을 전달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위 선배님. 규련에 대해서는 제가 나중에 해결해 보겠습니다.”
“흠, 위험한 일이다 싶으면 발을 빼게. 자네는 지금 인족의 미래야. 자네가 사축기에 오를 수 있게 맹주께서 힘을 쏟고 계시니, 뭔가 하고 싶은 일이 있으면 우리에게 말하게.”
“…예. 알겠습니다.”
나는 현재 인족 총연맹 천인도.
천부산에 있는 동부에서 보호받고 있었다.
요새는 매일같이 합체기 태수들이 내 동부에 들락거리며 사축기의 구결과 가르침을 주고 있었고, 빨리 사축기에 오르라며 온갖 영액과 영단, 영과를 선물로 주고 갔다.
‘사축기라….’
원영기 대원만에서 바로 천인기 대원만에 오른 터라, 사실상 준비만 완료되면 사축기에 오르는 것도 꿈만은 아니었다.
안 그래도 천인기 수준에서 합체기 급 전력을 내는 내가, 사축기에 이르면 얼마나 강해질지를 다들 궁금해하는 눈치였다.
그중에서도 인족 총연맹주인 준제는, 천인기에서 사축기로의 승급을 도와주는 영액인 청안루(淸安淚)라는 영액을 찾아다닌다 하였다.
‘사축기에 오르면, 헌원도 그렇게까지 무섭진 않겠지.’
물론 헌원의 전력을 생각할 때.
사축기에 이르러도 쉽지는 않겠지만, 최소 지난번처럼 무력하게 죽어 버리진 않을 터였다.
나는 내 동부를 나가는 위령선의 뒤를 쳐다보며 쓰게 웃었다.
‘첩자, 첩자 하는데, 어째 진짜 첩자 짓을 하게 되는 거 같군.’
나를 사축기에 이르게 해 줄 테니 얌전히 있으라는 태수들의 마음은 고마웠지만, 서휼의 의도를 막으려면 움직일 수밖에 없었다.
‘서휼에게 가장 해가 될 행동은, 아마 괴군을 끌어들이는 거겠지.’
나는 곧바로 목표를 정했다.
‘최대한 빠르게 오현석을 광한계로 불러들이고, 인마대전을 마무리 짓는다. 그리고 창호자가 죽지 않게 하고… 김연을 찾으러 간다.’
김연을 납치하고, 괴군에게는 서휼이 결혼을 준비하니 진룡맹으로 가라고 귀띔해 주면 좋아 죽을 터였다.
‘흑룡왕 현음도 미치광이가 진룡맹 본부를 폭격하는데 인마대전에 개입할 엄두는 못 내겠지.’
서휼이 진짜 죽었는지, 안 죽었는지는 불확실하다.
하지만 이미 내 손에 한 번 처참하게 죽고, 자기가 죽었단 걸 구실로 규련을 움직인 이상 서휼은 규련이 살아 있을 동안은 대놓고 움직일 수 없다.
그렇다면 서휼이 전면에 나서 활동하지 못할 동안.
나는 할 수 있는 일이 굉장히 많아진다.
‘이번 생, 서휼이 전면에 나서지 못할 동안….’
한 가지 목표를 더 정했다.
김영훈은 고력계에 있었으니 어쩔 수 없다 치고.
오혜서는… 알아서 잘 살고 있을 테니 알 바 아니고.
그 둘을 제외한,
전명훈.
강민희.
오현석.
김연.
이 네 사람의 동료는 다시 만날 수 있도록 유도해 보는 것.
그것이 새로운 목표였다.
* * *
‘전명훈이야 본체와 붙어 있으니 쉽고, 오현석은 인마대전을 해결하면 만날 수 있고, 김연도 괴군에게서 납치해 오면 다시 볼 수 있다. 그럼 남은 게 강민희인데….’
이렇게 되면 ‘서립’의 역할이 중요해졌다.
‘나’는 흑색귀골곡의 대묘역 안쪽에서 본체의 감정을 전달받으며 한숨을 쉬었다.
‘젠장, 강민희고 뭐고… 귀왕을 받아들여야 뭘 할 게 아닌가.’
귀왕이란 것들이 하나같이 도망만 다니니, 한숨만 턱턱 나올 뿐이었다.
‘어떻게 해야 하나….’
내가 고민을 할 때였다.
문득, 나는 음혼귀주문에 생각이 닿았다.
‘생각해 보면, 음혼귀주문으로 귀왕을 덮었을 때는 귀왕이 최면에 걸린 듯이 나에 대한 공포를 잘 느끼지 못했었지?’
그렇다면, 만약 내 몸을 음혼귀주문으로 덮으면 귀왕들이 느끼는 죽음이 조금 옅어질까?
‘당장 시험해 봐야겠군.’
츠츠츠츠―
나는 무수한 저주문을 쏟아 내며 전신을 고통으로 뒤덮었다.
스아아아아―
시커먼 저주문에 전신이 덮였다.
나는 찌릿거리는 통증에 멈칫거리면서도, 대묘역의 분위기가 뭔가 바뀌었음을 깨달았다.
‘통했다!’
역시나, 꽤 간단한 방법으로 해결이 된 것이었다!
쿠구구구구구!
대묘역이 진동하며, 저 멀리서부터 무수한 귀왕들이 파도처럼 몰려오는 게 보였다.
[이런 제길, 왜 내 묘(墓)를 떠나서 다른 구역까지 갔던 게지?] [형님도 그러셨소? 다들 그런 모양이오. 아무래도 뭔가 단체로 뭐에 홀렸나?] [귀신이 곡할 노릇이군. 무슨 일이 있었는지 기억이 안 나니 원….]비명을 지르며 혼비백산했던 아까와 달리, 귀왕들은 상당히 이성적인 모습으로 돌아와 날고 있었다.
그리고, 귀왕들이 내 위쪽에 왔을 때였다.
[허어, 네 녀석은 흑색귀골곡의 제자더냐?]나는 그들을 보며 예의바르게 말했다.
[신입 음혼 제자 서립, 흑색귀골곡의 어르신들께 인사 올립니다.]저주문에 뒤덮인 내 목소리가 진득한 저주를 머금고 공간을 윙윙 울렸다.
그 모습에, 내 주변의 귀왕들이 화들짝 놀라는 게 느껴졌다.
[잠깐, 네놈 몸을 덮고 있는 게….] [저주문이더냐?] [말도 안 되는!? 저렇게 물 샐 틈조차 없이 빼곡하게 몸을 뒤덮는 저주문을 개인이 만드는 게 가능하다고?] [대진(大陣)으로만 제작이 가능한 저주문의 수량이 아닌가?] [너 이노옴! 무슨 사술을 썼느냐!?]‘흐음, 대묘역의 귀왕들에게도 신기한 일인가?’
아무래도 음혼귀주문으로 바다만큼 많은 저주문을 토해 내는 일은 꽤 쉽지 않은 일이었던 듯싶었다.
무수한 귀왕들이 내 주변에서 웅성거릴 때였다.
[네 이놈, 그게 무슨 사술이냐 묻지 않았느냐!]한 귀왕이 노한 얼굴로 나를 내려다보며 소리치고 있었다.
나는 그쪽을 바라보았고, 천인기 수준의 귀왕 중 한 명과 눈이 마주쳤다.
[이것은, 흑색귀골곡의 음혼귀주문입니다.] [뭬야!]그러자 그 귀왕은 이상하게도 더욱더 격노하며 외쳤다.
[감히 사문의 존장을 상대로 거짓을 고해! 헛소리하지 마라! 바른대로 말하지 못할까!? 네놈, 뭔가 특수한 법보를 연화시켰다든지, 아니면 대묘역 바깥에서 저주용 진법과 연결되어 있다든지 그런 게 아니더냐!?]그 귀왕은 눈이 뒤집힌 채로 나를 향해 쏘아붙였고, 나는 저주문을 손 위에 들고 피워 올리며 말했다.
[의심이 가시면 한번 보시면 되지 않겠습니까. 이 후배가 만든 저주문은 분명 음혼귀주문이 맞습니다.] [이놈이 끝까지 거짓말을….]그 귀왕은 몸을 부르르 떨며 내게 다가오더니, 음혼귀주문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얼마나 그가 음혼귀주문을 쳐다보았을까.
[말도 안 돼…. 거, 거짓말하지 마라.]그 귀왕은 목소리를 떨면서 말했다.
[음혼귀주문은… 108개가 끝이다. 108개로 끝나게 만들어져 있단 말이다…!]나는 그의 말투에 기이함을 느끼며 물었다.
[어찌 공법의 한계를 그리 재단하십니까? 제자가 저주에 얄팍한 재능이 있어 저주문을 조금 더 만들었을 뿐입니다.] […네가 정말로 음혼귀주문을 그렇게 개조했단 말이냐?] [개조까지는 아니오라….] [닥쳐라! 웃기지 말란 말이다! 우리 일파(一派)의 노력은 뭐였냔 말이다! 네놈, 계속 사문의 존장에게 거짓을 고한 죄로 벌을 받아도 할 말이 없으렷다!]귀왕은 갑자기 분기탱천하더니, 시커먼 귀조를 뻗어 내 몸을 덥석 움켜쥐었다.
나는 흠칫 놀라며 그를 떼어 내려 했다.
[잠깐, 어르신. 거기는 만지면 아니 됩니다!] [시끄럽다, 이 녀석. 감히 나와 내 일맥을 모욕한 죄로….] [아니, 잠깐…!]그러나 그는 막무가내로 귀조로 내 몸과 몸을 뒤덮은 저주문을 긁어 냈고, 마침내 그의 귀조에 내 몸을 뒤덮던 저주문들이 벗겨져 나갔다.
“이런 젠장!”
그와 동시에, 내 혼(魂)이 또다시 대묘역에 모습을 드러냈다.
그리고.
[끼야아아아아아!] [키야아아악!] [히야아아아악!]귀신들이, 다시 미쳐 날뛰기 시작했다.
[큰 귀신이다아아아!] [잡아먹힌다! 도망쳐어어어!] [히야아아아!]주변에 몰려 있던 수십 수백의 귀왕들이 일제히 도망쳤으며, 귀조로 내 저주문을 뜯어 내던 귀왕 역시 정신이 나가서 마구 발광하다가 도망
기 시작했다.
빠득….
나는 이마에 힘줄이 올라온 걸 느끼며, 이 사태를 만든 귀왕을 향해 손을 뻗었다.
콰르르르르―
시커먼 저주문의 파도가 거대한 손으로 변해 그 귀왕을 움켜쥐었다.
[끼야아아악!]친절하게 음혼귀주문을 음의 법력으로 전환시킨 것도 아니었기에, 귀왕은 고통에 울부짖었다.
그러나 고통에 울부짖으면서도, 나에 대한 공포는 희석되었는지 귀곡성이 아닌 다른 ‘말’을 내뱉기 시작했다.
[끼아아악! 끼아악! 히야악! 위, 위, 위대하신 분이시여! 당신께서 비천한 저희 일맥의 비술(秘術)을 진화시켜 주셨나이까?]“음?”
[아아아, 명부의 사신께서 저희의 비천한 비술인 음혼귀주문의 가능성을 끌어올려 주시니, 이 기쁨을 말로 다 표현할 수가 없나이다. 부디 제가 이 은혜를 갚게 해 주소서….]나는 그의 말을 들으며, 그가 어떤 귀왕인지 눈치챌 수 있었다.
[당신을 봉양하겠습니다. 주님께, 귀의(歸依)하나이다. 주님, 부디 이 종을 거두어 주십시오.]그는 내가 만들어 낸 음혼귀주문에 취한 채, 내 죽음의 기운을 느끼며 눈이 풀린 채로 시커먼 귀체를 움직여 양손을 모으고 무릎을 꿇었다.
[귀의하나이다… 귀의하나이다… 귀의하나이다….]“…당신….”
난 헛웃음을 흘리며 귀왕에게 질문했다.
“설마… 음혼귀주문의 창시자인 겁니까?”
[음혼귀주문은 저희 일파에서 개발해 온 저주공법의 시작점입니다. 축기기용 공법으로, 그 공법을 만드신 선조분은 축기기 대원만에서 돌아가셨지요. 그것을 저희 할아버님이 이어받아 결단기용 저주공법을 만들고, 아버님이 이어받아 원영기용 저주공법을 또 만들고, 제가 이어받아 제 대에서 비로소 천인기용 저주공법을 따로 만들어 내는 데에 성공했습니다….]그랬다.
그는 흑색귀골곡에서 저주공법을 연구하는 일파의 귀령이었던 것이었다.
[음혼귀주문은 108개의 저주문을… 결단기용 공법은 500개의 저주문을, 원영기용 공법은 1080개의 저주문을, 천인기용 공법은 3000개의 저주문을 다룰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귀인께서 다루는 그런 막대한 저주문에 대한 것은 듣도 보도 못했나이다. 필시 명부의 귀인이시기에 가능한 신기(神技)인 게지요….]그는 내게 더욱더 머리를 조아리며, 시퍼런 눈물을 뚝뚝 흘리며 간청했다.
[부디 이 비천한 종을 거두어 주십시오. 당신께 귀의하게 해 주십시오. 제가 당신을 봉양하겠나이다….]“…으으음….”
결국, 나는 나를 봉양하겠다고 간절히 청하는 이 귀왕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 * *
“앞으로 봉양하실 귀왕은 전부 다 정하신 겁니까?”
나를 제외한 대머리 문신, 시체 사내, 소복 여인, 허남권은 일제히 창백해진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자세히 보니, 그들의 체내에는 시커먼 기운이 깃들어 있었다.
하나같이 최소 천인기 급의 귀왕을 봉양하기로 한 듯 했다.
읍연은 고개를 끄덕이지 않는 나를 보며 물었다.
“서 대인께서는 어떠신지요?”
나 역시 어색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뭐… 일단 정했다.”
‘내가’ 봉양하는 게 아닌, ‘나를’ 봉양하는 귀왕을 고르긴 했다만.
어쨌든 정하긴 정한 거였다.
나는 내 금단 안쪽.
원영의 옆쪽에서 다소곳이 앉아 있는 귀왕을 감지하며 물었다.
‘이봐, 비율(悲潏).’
[예, 주님. 부르셨습니까.]‘대묘역 안쪽에서는 다들 그렇게 난리를 쳤으면서, 왜 사당 안에서는 조용한 거지?’
[주님께서 입고 계신 그 육(肉)이 주님의 본질을 감추고 있기 때문입니다. 대묘역에서는 혼의 본질이 드러나게 되기에 모두가 주님의 본질을 보는 은혜를 얻었으나, 대묘역 바깥에서는 감히 본질을 함부로 볼 수 없는 것이지요.]나를 봉양하게 된 저주공법 일파의 귀왕은 비율이라는 이름을 가진 귀왕이었다.
그는 나에게 충성 맹세를 한 후 내 금단에 자리 잡으며 음혼귀주문의 법력을 지속적으로 공급받았다.
그러면서 반쯤 제정신을 차린 비율은 나를 전폭적으로 지지하고 돕겠다고 맹세하였다.
“그럼 다들 봉양할 귀왕을 정하신 것 같으니, 이제 공법서고로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우리는 읍연을 따라 사당에서 나와 섭명함의 다른 공간으로 이동했다.
얼마나 갔을까, 우리는 ‘섭명서고’라고 적힌 서고의 앞에 설 수 있었다.
“서고지기님, 입곡소 백진 대인의 시동, 읍연입니다. 들어가게 해 주십시오.”
그리고 서고 안쪽에서 영언이 들려왔다.
[읍연을 제한 열 분은 모두 들어오시오.]아무래도 우리의 체내에 있는 귀왕들까지도 포함해서 말하는 듯했다.
우리는 서고 안쪽으로 들어갔고, 서고지기의 얼굴을 볼 수 있었다.
그리고, 나는 그를 보자마자 흠칫 놀랐다.
‘송진?’
그는 송진이 간혹 보여 주었던, 그의 생전 모습과 너무 닮아 있었다.
“어서 오시게. 본인은 흑색귀골곡의 서고지기인 송길이라 하네. 본 곡에서는 귀혼 아래의 제자들에겐 스승을 붙여, 스승이 제자에게 공법을 추천하게 되어 있지만… 음혼 제자들부터는 공법을 선택할 수 있는 기회를 주지. 다들 서고를 돌아다니며 원하는 공법을 한 가지씩 고르시게. 제한 시간은 한 식경을 주지.”
나는 잠시 송길의 얼굴을 쳐다보다, 공법서고 안쪽으로 걸음을 놀렸다.
‘송진의 형제인 모양이군….’
아는 척을 할까 하다가, 그만두었다.
어차피 송진도 고력계에서 서란과 잘 지내고 있을 테니 굳이 말할 필요는 없을 터였다.
[주인님, 제가 주인님께 알맞은 공법을 추천해 드려도 되겠습니까?]“음?”
나는 비율의 말에 잠시 고민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흑색귀골곡의 공법은 그가 더 잘 알 터였다.
[예, 그럼 제가 말하는 곳으로 가십시오. 주인님께서 마음에 드실 법한 공법들을 추천해 드리겠습니다.]얼마 후.
나는 비율에 의해 일곱 권의 공법서들을 뽑게 되었다.
공법서들은 다음과 같았다.
은람마공(銀籃魔功).
자양광마공(紫陽狂魔功).
시식비례본(屍食秘禮本).
안혼진결(安魂眞訣).
염마비전의(閻魔秘傳意).
비혼진마공(費魂眞魔功).
귀선규마결(鬼仙奎魔訣).
[이 중에서 어떤 공법을 고르셔도 주인님과 가장 잘 맞는 공법일 것입니다. 모쪼록 즐거이 골라 주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