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Regressor’s Tale of Cultivation RAW novel - Chapter (293)
복수자 (1)
쿠릉, 쿠르르릉!
“이런 빌어먹을, 지족 따위가 어찌 이런 힘을!”
“네놈, 감히 이런 짓을 하고도 무사하리라 생각하는 게냐!? 천족의 수배가 두렵지 않단 말인가!?”
“천족의 수배라…. 미안하지만, 이는 흑룡왕께서 허하신 일이다.”
나는 싱긋 웃으며 말했다.
“흑룡왕께서 진마계로 진입해, 우리 용족이 준비해 왔던 진정한 계획을 시작하려면, 우선 진마계의 입구가 깨끗해야 하니 말이지.”
콰아앙!
용조가 휘둘러진다.
동시에 진마계의 입구를 지키던 사축기 수사들은 피를 토하면서도 나를 향해 악착같이 달려들었다.
‘이 녀석은 독수로군.’
나는 독기를 흩뿌리며 내게 독을 주입하려 달려드는 사축기 수사를 보며 싱긋 웃었다.
콰아앙!
그와 내 주먹이 부딪쳤고, 나는 일부러 틈을 보여 그의 독기가 체내에 흘러들어 오게 했다.
하지만 독기가 들어와서 전력이 약해졌어도 둘 정도는 충분히 상대가 가능했다.
나는 빠르게 둘을 몰아붙이며, 한 명의 몸을 터트려 버렸다.
콰아앙!
그는 그대로 죽어 버렸고, 난 그의 혼이 영혼의 통로를 통해 부활할 수 없도록 혼을 움켜잡았다.
그런 후, 독공을 익힌 녀석을 상대하며 그를 향해 최후의 일격을 날리려던 때.
“커헉! 크윽…!”
나는 일부러 몸 안에서 독이 발작한 척을 하며 실수인 척 녀석들의 혼을 놓쳤다.
육신은 둘 다 죽였지만, 부활은 허용하게 한 것이었다.
나는 다급한 표정으로 연기하며 외쳤다.
“이런 빌어먹을! 안 돼! 목격자를 놓치면…!”
파아앗!
사축기 수사들의 혼은 혼의 계위를 통해 어딘가로 날아가 버렸고, 나는 그 자리에 멈춰서 씨익 웃었다.
‘이걸로, 이제 천족 측에서도 헷갈리겠지?’
천족이 전부 바보도 아니고, 대뜸 서휼 얼굴을 드러내 놓고 계획을 꾸미겠다고 하면 무조건 믿을 리는 없다.
서휼이 직접 그런 짓을 한다기보다는 누군가 서휼을 음해하려 그의 흉내를 낸다고 생각할 확률이 높았다.
하지만 목격자를 없애서 증거를 인멸하려는 시도를 한 이상, 천족 측에서도 이게 ‘진짜’ 서휼일 가능성을 무시하진 못할 것이다.
‘인족 측에서는 가까운 시일 내에 지족 측에다가 서휼에 대해 강력히 항의를 하고, 수배를 넣어 버리겠지.’
그럼 규련도 눈치챌 것이다.
서휼이 마냥 죽지는 않았다는 것을.
그녀는 서휼이 흑룡왕과 모종의 관계가 있다는 걸 알고 있으니, 오늘 서휼의 얼굴로 흑룡왕과의 관계를 말한 것이 그녀에게 전해진다면 정말로 희망을 가질 확률이 컸다.
‘서휼의 음험함을 생각하면 정말로 안 죽었을 확률도 있으니 마냥 거짓말도 아닐 수 있지.’
원유를 통해서 처음부터 끝까지 내 모든 것을 감시했던 15회차의 서휼을 떠올리자 문득 소름이 돋는 게 느껴졌다.
사축기 수사들이 죽고, 이미 진마계 입구 주변을 지키던 천인기 이하 수사들은 전부 도주한 후였다.
나는 편안한 마음으로 용조를 휘둘러, 선수의 힘과 요족의 힘을 최대한 많이 묻혀 진마계의 입구를 붕괴시키기 시작했다.
완전히 닫은 건 아니고, 진마계에 있는 인족 측에서 계멸천공진에 신경 쓰지 않고 차원문을 끝없이 두드리면 충분히 열릴 정도였다.
진마계 태수들 역시 인족의 퇴로가 막혔다 해서 함부로 인족을 멸하려 하진 않을 터였다.
‘마족들 사이에서 인족의 인상은, 미치광이 집단이니….’
한때 마족의 편에 섰던 나는 마족이 인족을 어찌 생각하고 있는지 알고 있었기에, 진마계가 어떻게 나올지 유추가 가능했다.
‘오히려 궁지에 몰렸으니만큼 크게 자극하려고 하진 않을 거야. 그저 봉쇄를 한 후, 포위망을 점점 좁혀 가는 식으로 몰아가겠지.’
나는 씨익 웃으며 다시 걸음을 돌려 천부산 방향으로 향했다.
‘홍범에게 독을 해독해 달라고 하고, 천인기 대원만 경지를 더더욱 안정시킨 후….’
내가 앞으로의 계획을 생각할 때였다.
부우웅!
내 전음부가 울리며, 전명훈이 연락을 걸어왔다.
“무슨 일이냐, 전명훈.”
―금신천뢰문의 잔해를 뒤지던 중, 한 가지 발견한 게 있다.
“뭐지?”
―태상장문께서, 예전 금위와 싸우고 나서 작성한 기록이다.
‘금벽호가 연위와 전투한 후의 기록?’
“그 기록이 어때서 그렇지?”
―기록에는… 태상장문에게, 금위가 패배한 후 ‘진정한 정통 기축’에 대해 고했고, 태상장문은 그를 알아내기 위해 명귀계로 몇몇 금신천뢰문의 제자들을 파견했다고 하셨다.
이어진 전명훈의 말에, 나 역시 흠칫 놀랄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나는 태상장문께서 명귀계로 파견한 제자들과 대화를 주고받을 수 있는 송수신 법보를 제작했다는 걸 알고, 그를 찾아냈다. 그리고… 법보를 확인한 결과. 바로 사흘 전 신호가 잡혀 있었다!
“그 말은…!”
―명귀계에 가서 포기했던 금신천뢰문의 제자 중 몇몇… 그들이, 아직 살아 있다!
녀석은 희열에 찬 목소리로 소리쳤다.
명귀계로 파견 나간 제자는 그리 많지 않았다.
기껏해야 네댓 명 정도 될까?
하지만 전명훈에게 제자들은 숫자 이상의 가치를 지니게 된 모양이었다.
‘고작 네댓 명 정도의 제자들 가지고 반응이 격하군.’
나는 네댓 명 정도의 제자들보다는, 그들이 발견했다는 진정한 정통 기축에 대한 정보에 더 관심이 갔다.
‘그것만 있으면 서휼의 비밀에 다가가고, 녀석을 넘어설 수 있다…!’
거기에 진 정통 기축은 일반적인 정통, 외법 기축보다도 훨씬 강하니 내 전력은 비약적으로 상승할 터였다.
‘음, 잠깐… 뭐지? 뭔가 이상한데?’
나는 그렇게 생각하던 와중 뭔가 위화감이 든다고 느꼈다.
* * *
“흠….”
‘나’는 집무각에서 흑린어령문에 지원을 가는 임무를 신청한 후, 동부로 들어와 눈살을 찌푸렸다.
‘뭐지, 본체가 조금 이상해진 느낌이다.’
지구식 표현으로는 조금 사이코패스가 된 것 같았다.
거리낌 없이 서휼의 얼굴 거죽을 뒤집어쓰는 행동이나, 규련의 행동을 이역만리에서 통제하려는 듯한 태도나, 전명훈의 말에 이상하게 공감을 하지 못하는 둥.
뭔가가 갑자기 결여된 느낌이었다.
‘서휼, 그 뱀 새끼가 뭔갈 한 건가?’
일단 무슨 일이 생길 때 의심해 보는 건 무조건 서휼 아니면 진선이다.
‘기이한 느낌이군.’
현재 나와 본체는 생각을 공유하고 있다.
그렇기에 ‘내’가 이상을 느끼는 건 본체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정작 본체에게로 의식을 돌려 보면, 이상하게도 아무런 이상이 느껴지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도리어 본체는 지금 서립의 몸으로는 쓸데없는 걱정이 너무 많이 든다고 생각하고 있다.’
나는 서휼이 만나자마자 나에게 세뇌를 걸었던 것을 떠올렸다.
‘어쩌면, 그때 인지했던 세뇌는 그저 눈속임이고, ‘진짜’ 세뇌는 나도 모르게 성공시키기라도 했던 건가?’
그러나 본체 쪽으로 의식을 돌리면 너무나 비약적인 추측이라고 넘겨 버리게 된다.
‘…찜찜하군.’
나는 귀선규마결을 수련하며, 귀골곡에서 공적치를 모아 귀골곡의 의식공법들도 얻어 봐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어쩌면 의식공법들을 모아 익히다 보면 본체에 이상이 생긴 건지, 아니면 내가 과대망상증이 생긴 건지를 알 수 있을 터였으니 말이었다.
“후우….”
영성을 내뱉고 다시 들이쉬기를 얼마나 반복했을까, 나는 점차 검은 기운이 몸을 감싸는 게 느껴졌다.
얼마 후.
내 주위로 검은 기운이 몰리며, 여섯 자루의 검(劍)을 형성해 냈다.
귀선규마결의 수련법은 다음과 같다.
첫째, 음기를 축적한 후, 음기를 통해 귀기를 간접적으로 조종해 귀기로 이뤄진 검을 만든다.
푸콱, 푸콱, 푸콱!
검들이 내 전신에 박히기 시작했다.
둘째, 귀기로 이뤄진 검을 몸 곳곳의 영맥(靈脈)에 박아 넣으며 체내의 영맥을 가닥가닥 끊어 놓는다.
이때 끊어진 영맥은 일부로라도 재생시키지 않는다.
셋째, 점차 끊어져 가는 영맥에 의해 신체는 죽음에 가까운 상태로 돌입하게 되고, 그렇게 빈사 상태가 된 상태에서 ‘죽음’을 인지하게 한다.
넷째, ‘죽음’의 인지에 익숙하게 될 때까지 그 과정을 반복하고, 익숙해지는 데에 성공하면 그때부터 주언(呪言)을 통해 ‘죽음’을 가까이한 상태에서 ‘힘’을 끌어모은다.
다섯째, 어느 정도 ‘힘’을 끌어모은 후, 그 ‘힘’을 통해 다른 혼백의 혼에 있는 그 ‘힘’을 빨아들여 공법을 수련한다….
‘다섯째부터는 굳이 필요 없다.’
귀선규마결에서 말하는 ‘힘’이란 곧 ‘죽음’이었다.
그리고 나는 굳이 다른 혼백에서 죽음을 추출할 필요가 없이, 본체에서부터 죽음을 끌어오면 그만이었다.
우우웅!
푹, 푹, 푹, 푹!
원유의 육신에 귀기의 검을 박아넣은 상태에서 생명력의 흐름을 끊었다.
그리고 나는 내게 익숙한 그 기분으로 빠져들었다.
한없이 친숙한 죽음.
그 어둠이,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손에 잡힌다.
‘뭐지, 이건?’
자신이 ‘숨을 쉬고 있다’고 인지하며 숨을 쉬는 사람은 몇이나 될까?
아마 그렇게 많지 않을 것이다.
기껏해야 아주 맑은 지역에서 공기를 들이쉬거나, 격한 운동을 한 후 숨을 헐떡일 때나 ‘숨’의 존재를 느끼는 사람들이 대다수일 터였다.
그만큼 ‘숨’이라는 건 자연스러운 것이었다.
그리고, 나는 마치 ‘숨’처럼, 내가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죽음’을 두르고 있었음을 깨달았다.
육체를 가사 상태로 만들고, 의식을 침잠시킨 후, 주언을 통해 혼에 두른 죽음을 분리해서 원영과 융합시킨다.
‘이게… 끝?’
나는 너무나도 간단한 과정에 의아함을 느꼈다.
“뭐지, 극악한 난이도라고 하지 않았나?”
나는 의문이 들어 비율에게 질문했다.
자줏빛 성욕 괴물 고자 대머리가 되는 걸 ‘아주아주 사소한 부작용’이라고 표현했던 비율이, 무려 ‘조금 어렵다는 부작용이 있다’고 표현한 귀선규마결이었다.
당연히 귀선규마결 또한 ‘조금’ 어려운 정도가 아니어야 했다.
‘어쩌면 귀선규마결의 후반부가 급격히 어려워지나?’
나는 귀선규마결의 후반부 구결을 살폈다.
뭔가 더 어려운 부분을 찾아보았지만 딱히 그런 건 보이지 않았다.
하나같이 숨 쉬는 것과 같이 평범하고 평온한 수련 방식이었다.
‘혹시 내가 모르는 숨겨진 구결이 존재하는 건가?’
“비율, 혹시 귀선규마결을 전부 익히면 나타나는 숨겨진 구결 같은 게 있나?”
[예? 그런 게 있었으면 진즉 발견됐겠지요. 허허, 귀선규마결을 대성해서 흑색 원로에 오르신 분도 계셨으니 말입니다.]“극악한 난이도라고 하지 않았나? 그런데 하나같이 평범한 수련 방식이라서 묻는 거다.”
내 말에 비율은 의아하다는 듯 되물었다.
[예? 어느 부분이 평범한 수련 방식인 겁니까? 하나같이 몸을 검으로 꿰고, 귀화로 지지고, 전신을 썩히는 둥 어마어마한 난이도입니다만?반적인 제자들은 귀선규마결을 익히기 시작하면 그 고통을 견디지 못해 발광해 버립니다. 그래서 귀선규마결을 익히려면 반드시 정신수양도 병행해야 합지요.]
“흠….”
‘그게 어마어마한 난이도라고? 대창천개벽문에서는 매일 하는 건데….’
본체와 미묘하게 시선 차이가 벌어진 나였지만, 이번만큼은 본체 쪽에서도 이해가 되지 않아 혀를 찼다.
‘나약하기 짝이 없군.’
[첫째, 둘째, 셋째 단계도 문제는 문제입니다만. 사실 가장 큰 문제는 네 번째부터입니다. 다섯 번째는 오히려 쉽지요. 생자로 평생을 살아온 사람이 어느 날 갑자기 ‘죽음’의 힘을 느끼기는 결코 쉽지 않습니다. 아무리 가사 상태에 가까워진다 해도 절대로 진정한 ‘죽음’을 겪은 건 아니기 때문에 ‘죽음’을 다루는 건 불가능에 가깝습니다.]비율의 설명이 이어졌다.
[그렇기에, 1, 2, 3단계를 몇 번이나 반복해도 재능이 없는 이들은 4단계로 못 넘어가는 이들이 수두룩합니다. 4단계로 넘어가려면 몇 번 죽고 부활하는 과정을 통해서, 더더욱 죽음에 한없이 가까이 다가가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습니다. 평생을 수련해도 귀선규마결 4단계를 못 넘어가는 이들이 수두룩합지요. 오히려 죽어서 귀왕이 된 후에야 귀선규마결을 제대로 수련하는 이들이 더 많습니다.]“흐음….”
나는 그의 말을 들으며 순간 이해가 되지 않아 미간을 찌푸렸다.
“4단계가 죽음의 힘을 다루며 원영과 죽음을 융합해 귀왕화시키는 단계라 하지 않았나?”
[그렇습니다.]“그게 어려운 거라고?”
[예.]“….”
나는 숨 쉬듯이 지나친 단계가 그렇게 어려운 줄은 몰랐기에 떨떠름한 기분이었다.
‘뭐지, 이게 맞는 건가?’
말 그대로, 항상 내 곁에 있던 것을 움직여 본 느낌이었다.
‘오히려 상쾌하기까지 한 느낌이었는데, 이걸 다른 사람들은 어려워한다는 건가?’
나는 너무 쉽게 귀선규마결의 어려운 단계를 이미 지나쳤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
‘혹시 이것도 서휼의 농간인가?’
사실 굼벵이 같은 재능을 가진 내가 빠르게 공법을 익힌다는 것보다는, 서휼이 나도 모르게 손을 썼다는 것이 더 신빙성이 있는 것 같았다.
나는 얼마간 혼란스러워하며, 귀선규마결의 구결대로 죽음을 움직여 원영을 변화시켜 나갔다.
츠츠츠츳―
원영이 시커멓게 변하기 시작하며, 점차 눈매가 찢어지고 전신이 검은 연기와 귀화에 휩싸이기 시작했다.
얼마 후 나는 내 금단 안쪽의 원영이 자그마한 귀왕처럼 변했다는 걸 깨닫고 눈을 떴다.
“이봐, 비율.”
[예, 주인님.]“혹시, 이거… 귀선규마결을 대성한 건가?”
[경하드립니다, 주인님. 사실 위대한 존재께서 익히기에 많이 모자란 공법이었겠지요. 이런 모자란 공법을 바친 저희를 용서해 주십시오….]“….”
‘내가 귀선규마결을 받은 지 얼마나 지났지?’
귀선규마결을 받고, 집무각에서 임무를 받고 동부로 돌아와서 공법을 익히기 시작한 시간을 전부 더해도 한 시진이었다.
‘한 시진 만에 처음 받은 공법을 대성했다고? 내가?’
물론 공법을 익힌 시간이 짧아 힘 자체도 크게 부족하고 더 채워 나가야 할 점이 많은 게 느껴졌다.
하지만 알 수 있었다.
나는 귀선규마결의 극의를 깨달았고, 이 상태에서 귀선규마결을 연공하면 어마어마하게 빠른 속도로 법력을 쌓을 수 있으리란 게 느껴졌다.
* * *
내가 귀선규마결을 대성했단 걸 깨달은 지 약 일다경 후.
나는 흑린어령문에 신청한 임무가 받아들여졌다는 통보를 받고, 임무 수행 장소로 모이라는 정보를 전달받았다.
얼마 후, 나는 흑색귀골곡 바깥, 흑린어령문이 있는 곳으로 향하는 전송진에 올라타 전송되었다.
파아아앗!
눈을 뜨자 보인 것은, 마치 한 마리 용(龍)을 닮은, 산맥만큼 거대한 검은 궁궐이었다.
궁궐의 배치는 용이 꿈틀거리는 것처럼 지어져 있었고, 궁궐의 정문에는 흑린어령문이라는 글자가 써져 있었다.
정문 바깥에는 나 말고도 수백 명의 수사들이 먼저 와 있었는데, 하나같이 저주의 기운을 품은 것이 느껴졌다.
[주의하십시오, 주인님.]“음? 뭐냐?”
[저기 음혼귀시문의 잔당들이 보입니다. 아마 주인님께서 흑색귀골곡 소속이란 걸 알면 어떻게든 저주를 걸려 할 것입니다.]나는 비율의 말에 한쪽을 쳐다보았다.
그곳에서는 귀기(鬼氣)와 시기(屍氣)가 적절히 섞인 독특한 기운을 뿜는 녀석들이 보였다.
“그런데 ‘잔당’이란 놈들이 저렇게 대놓고 돌아다녀도 되나?”
나는 그들을 보며 눈을 빛냈다.
“저 자들, 음혼귀주문을 익히고 있군.”
[…예. 그렇지요.]비율의 고백이 이어졌다.
[부끄러운 일이지만, 사실 음혼귀시문에는 저희 흑색귀골곡 저주 일맥이 어마어마하게 포함되어 있습니다. 강시술과 저주인형을 만드는 저주공법이 서로를 상호 보완해 주기 때문입니다.]“그런가…. 무슨 느낌인지 알 것 같다.”
나도 원유를 저주인형으로 자주 써서 알고 있었다.
‘죽지 않고 재생까지 하는’ 저주인형은 몇 번을 써도 망가지지 않기 때문에 어마어마한 효용을 자랑했다.
아마 저쪽도 나와 비슷한 방식으로 강시를 제작해 저주인형으로 활용하는 듯싶었다.
“그나저나 비율. 혹 흑린어령문에 대해서는 알고 있는 게 없나? 예를 들어… 흑린어령문에서 갑자기 저주공법이 필요한 일은 어떤 일이라든가….”
[송구하옵니다. 저도 이런 일은 처음인지라…. 애당초 흑린어령문은 저주공법과는 아무런 상관도 없는 문파입니다. 다만….]“다만?”
[흑린어령문은 종종 자신들과는 아무 관계 없어 보이는 임무를 내리거나, 수배를 내걸건 합니다. 그때는 보통 높은 확률로 지족(地族)과 관련된 일입니다. 흑린어령문이 지족의 수주를 받아 진행하는 일이지요.]
“지족이라….”
나는 머리를 굴리며 과연 어째서 흑린어령문이 저주술사들을 불러모았는지를 고민하기 시작했다.
* * *
어두운 밀실.
그 밀실 안쪽에는 검은 물로 이뤄진 수경(水鏡)이 떠올라 있었다.
그리고 수경 앞에는 두 명의 인물이 가부좌를 틀고 앉아 있었다.
우우웅―
한 인영이 수경에 손을 대며 뭔가를 중얼거렸다.
얼마 후, 수경이 요동치며 흑색의 옷을 입고 있는 사내가 수경 위로 떠올랐다.
[안녕하십니까, 관주사자 어르신. 말씀하신 대로 저주술사들을 끌어모았습니다. 다만 독공을 익힌 독수(毒修)들은 쉽게 구해지지가 않더군요. 양해해 주십시오.]“그래. 이해한다. 독수들은 주로 우리 지족 측에 많이 포진해 있으니….”
수경에 손을 댄 인영의 앞에 앉은 인영.
지족 진룡맹 관주사자 규련은 고개를 끄덕였다.
“하나 독수를 구하지 못한 만큼 저주술사들이라도 확실히 구해야 할 것이다.”
[명심하겠습니다. 그럼 이제 슬슬 전송을 부탁드립니다.]“여기 있다.”
규련은 품에서 한 장의 종이를 꺼내 수경으로 던졌다.
종이에는 백의를 입은 남성이 그려져 있었다.
“인족의 새로운 태수(太修)…. 그자에게, 할 수 있는 한 많은 저주술사를 동원해서 저주를 퍼부어라.”
그녀의 눈이 세로로 찢어졌다.
“나 역시 뛰어난 독술사들을 구해서 극독을 준비할 테니….”
뿌득….
이를 간 그녀는 자신이 건낸 종이 안쪽의 인물.
서은현을 노려보았다.
‘정보를 취합해 보면 서은현이란 녀석은 절대 내 힘으론 이길 수 없다.’
하지만 약자가 강자를 상대하는 법은 무수히 많았고, 그중 가장 유명한 것이 바로 저주(詛呪)와 독(毒)이었다.
‘독(毒)에 한해서는 충족(蟲族)을 따라올 놈들이 없으니 충족과도 접선해 봐야겠어. 저주술사들을 이용해 녀석에게 저주를 걸고, 독수를 고용해 극독을 제조한 후 녀석을 함정으로 끌어들여 살포한다. 그렇게 된다면… 내 복수에도 승산이 생길 터!’
규련은 흑린어령문과의 연락을 끊고, 어두운 밀실을 나오며, 표독스러운 얼굴로 읊조렸다.
“기다려라, 원수 놈…! 반드시 이 원한을 갚아 주겠다! 무슨 짓을 해서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