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Regressor’s Tale of Cultivation RAW novel - Chapter (294)
복수자 (2)
얼마나 흑린어령문의 정문 앞에서 기다렸을까.
정문 앞에 모인 저주술사들이 만 명을 넘었을 때 즈음.
쿠우웅!
흑린어령문의 정문이 열렸다.
열린 문 안쪽에서는 흑색의 장포를 입은 소년이 단정한 차림새로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본문의 임무 요청에 이리 많은 분들이 모여 주심에, 크나큰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사실 아시는 분들은 아시겠지만, 본문에서는 이전에도 이와 같이 특수한 전문 분야의 인력을 구한 적이 몇 번 있습니다.”
소년의 설명이 이어졌다.
“사실 저희 흑린어령문에서 구하는 것은, 정말로 뛰어난 실력을 가진 일류 이상의 저주술사 열 명 정도입니다. 한 마디로… 여기 모여 주신 분들 중에서 절대다수는 안타깝지만 돌아가 주셔야겠습니다. 아시는 분은 이미 아시겠지만요.”
그 말에 곳곳에서 불만 섞인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이, 그게 무슨 말이냐!?”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마라!”
“나는 여기 오기 위해서 더 좋은 임무를 포기하고 왔다고!”
나는 감흥 없는 눈으로 팔짱을 끼고 어떻게 일이 돌아가는가 지켜보았다.
소년은 싱긋 웃으며, 시끄럽게 떠드는 저주술사들의 아우성을 모조리 무시하고는 한쪽 손가락을 올렸다.
“아시는 분은 알고 계시겠지만… 어쨌든 그럼 지금부터, 여러분이 저희 측에서 요구하는 수준의 저주술사인지 시험을 시작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쿠구구구구!
그와 동시에, 소년의 등 뒤에서 거대한 괴물의 형상이 나타났다.
‘…!’
그 괴물은 강력한 요력(妖力)을 품고 있었으며, 동시에 기괴한 시기(屍氣)를 품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저 괴물에게서 강력한 기시감을 느꼈다.
“이 녀석의 이름은 비(泌). 아시는 분은 아시겠지만, 공허간의 시(尸)들의 조각을 잡아서 광한계 요족의 사체와 융합한 것입니다. 굉장히 흉폭하고 죽이기 어려운 놈들이지요. 거기다가 저희가 특수하게 개조했기 때문에 저주를 흡수해서 육신의 힘을 더더욱 키우는 녀석들입니다.”
소년은 그렇게 말하며 허공으로 날아올랐다.
쿠웅!
비라는 괴물이, 상반신을 바닥에 짚었다.
땅이 울리며 찌릿찌릿하는 위기감이 작렬해 왔다.
“지금부터, 비를 피해서 흑린어령문의 정문을 지나 이 안쪽으로 들어와 주신 분들에 한해서만 차후의 일에 대해서 논의를 하겠습니다. 그럼 모두 건투를 빌겠습니다.”
소년은 이내 정문 안쪽으로 사라졌으며, 비는 그대로 움직이며 흑린어령문의 정문을 그 비대한 몸집으로 완전히 틀어막았다.
“이런 빌어먹을! 대형 종문이라고 너무 막 나가는 게 아니냐! 나는 오기만 하면 임무를 준다고 들었단 말이다!”
“정말 너무들 하는구만. 여기까지 오는 데에 쓴 비용만 해도 얼마냔 말이다!”
“퉤, 잘 먹고 잘살아라!”
실력이 애매한 저주술사들 100여 명이 우르르 장내를 빠져나갔다.
그리고 자리에 남은 이들은 그래도 어느 정도 저주에 대해 자신이 있는 이들.
‘다들 애매한 녀석들이군.’
나는 혀를 차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하나같이 자신이야 있는 것 같았다만, 애매하게 저주에 대해 파고들어서 헛된 기대감을 품고 남은 이들이 더 많은 것 같았다.
저런 이들 역시 이번 관문에서 걸러지리라.
‘굳이 구경 같은 걸 할 이유는 없겠지.’
난 말없이 비를 향해 걸어갔다.
내가 정문으로 다가가자 비는 이를 드러내며 그르렁거렸다.
‘시(尸)라….’
공허간에서 봤던 그 괴물들.
이 괴물들은 시(尸)라는 명칭이 있는 모양이었다.
비가 나를 향해 앞발을 들어 내리치려 했다.
나는 신경 쓰지 않고서 뒷짐을 지고 생각에 잠겼다.
쿠우웅!
녀석의 앞발이 쇄도했다.
하지만 다음 순간, 내가 몸에 두르고 있던 시커먼 저주문들이 그대로 놈의 앞발을 통째로 녹여 버렸다.
녀석은 비명을 지르며 몸을 뒤틀었고, 나는 태연하게 비의 몸을 녹여 버리며 그대로 전진했다.
동시에 나는 놈의 몸을 파고들며 녀석에게서 느껴지는 기운을 분석했다.
‘확실히 공허간의 그것과 닮았군.’
나는 비율에게 질문했다.
“비율, 시(尸)가 뭔지 알고 있나?”
[예, 주인님.]“읊어 봐라.”
[알겠습니다. 시(尸)란, ‘허물’입니다.]비율의 설명이 이어졌다.
[개열기 진인(眞人), 준선(准仙)들께서 진선(眞仙)으로 우화(羽化)할 때에 반드시 벗어야 하는 껍질들입니다. 그러한 껍질들은 대부분 공허간에 버려지며, 수억 년간 불멸하며 공허간을 이동하는 이들을 습격하곤 하지요. 시들은 시간이 지날수록 잘게 쪼개지며 약화되어 가고, 종래에는 결국 먼지로 변해서 성계로 배출됩니다. 그리하여 새로운 별이 탄생하는 양분이 되는 것이지요.]“호오….”
공허간의 괴물.
시들이 사실은 우화등선할 때에 남겨 놓는 개열기들의 허물이었다니.
새로운 사실이었다.
‘합체기부터는 체내에 소세계(小世界)가 생겨나고, 개열기에 이르면 그 허물조차도 작은 세계에 해당할 정도로 강력해지는 건가…?’
“…우화등선할 때에 남기는 허물이라면….”
지구의 도가와 이 세계의 도가는 엄연히 달랐다.
하지만 비슷한 부분은 차고 넘쳤고, 우화등선도 그중 하나였다.
“개열기 수사들이 여태껏 수련해 온 그들의 육신(肉身)인 거로군. 맞나?”
[맞습니다. 사실상 개열기 진인들의 시신의 잔해라고 할 수 있지요.]“호오….”
나는 시에 대한 설명을 들으며, 마침내 비의 몸을 뚫고 그 반대편에 도달하는 데에 성공했다.
촤악!
꽤 천천히 걸어왔음에도 내가 가장 먼저 도착한 듯했다.
저 뒤쪽에서 저주술사들이 고함을 지르며, 각종 저주로 비의 몸을 뚫으려는 시도를 하는 듯했지만 어림도 없어 보였다.
거기에 내가 뚫고 온 길은 꿈틀거리며 순식간에 재생되어 버렸다.
“안녕하십니까, 대인. 대인의 성함과 소속 문파를 말씀해 주십시오.”
나를 향해 비를 소환했던 소년이 다가와 웃는 얼굴로 질문했다.
“서립. 흑색귀골곡 소속이다.”
“알겠습니다.”
소년은 내 이름을 기록하고, 다음으로 넘어오는 저주술사들에게 다가가 이름과 소속을 물었다.
‘음, 저 녀석….’
나는 소년을 보며 눈에 이채를 띄었다.
‘천지쌍수 수련자군.’
작아 보이는 체구 안쪽에, 요족의 강력한 생명력이 느껴졌으며 동시에 천족의 힘도 여실히 느껴졌다.
기이하게도 소년의 힘은 천족과 지족의 힘이 서로를 가려 주고 있어, 제대로 경지를 읽기가 힘들었다.
나는 삼태극을 얻은 경험으로 소년이 원영기 대원만이라는 걸 바로 알아냈다.
하지만 아마 천지족 공법 중 하나만 익힌 이들이라면 소년이 어떤 경지의 강자인지를 이해조차 하지 못할 듯싶었다.
얼마간 소년을 관찰하고 있었을까.
3천 명의 저주술사들이 비를 뚫고 흑린어령문 정문 너머 광장에 모였다.
소년은 잠시 기다리다가, 비 너머에서 기척이 전부 사라진 후에 입을 열었다.
“다른 분들은 포기하신 모양이군요. 좋습니다. 아시는 분들은 아시겠지만, 일단 정문을 통과하신 분들께는 보상이 미미하게라도 나가니 그 점 유의해 주시기 바랍니다. 다만 본 임무를 받기 위해서는 몇 번의 시험을 통해 인원을 더 걸러야 하니 그 점도 양해해 주십시오.”
그리고, 저주술사들을 모아 놓고 저주를 시험하는 시험들이 줄줄이 이어졌다.
나는 매 시험마다 첫 번째로 돌파하며 주변을 살폈다.
‘시험에 쓰인 저주술사들의 저주가 어딘가로 흘러가고 있군…’
흑린어령문은 저주술사들의 저주를 어딘가로 축적하고 있는 것 같았다.
‘이만한 이들의 저주를 전부 응축한다면, 상당히 무시무시한 저주가 탄생하겠어….’
고독(蠱毒)과도 같았다.
저주를 모으고 모아, 한 군데에 집어넣어 극악한 저주를 탄생시킨다.
‘도대체 이런 저주를 끌어모아 뭘 하려는 거지?’
그렇게 생각하며 얼마나 있었을까.
어느새 소년이 말한 10명의 인원만 남고 모두가 탈락했다.
“그럼 흑색귀골곡 소속 저주술사 세 분, 구(舊) 음혼귀시문 소속 저주술사 네 분, 방량문 소속 저주술사 한 분, 망귀문 소속 저주술사 한 분, 산수 출신 저주술사 출신 한 분. 이렇게 모두 열 분이 모여 주셨습니다. 아시는 분들은 아시겠지만, 저희 흑린어령문은 능력 있는 분들을 우대합니다. 그러니 이번 임무가 실패하더라도 이 자리에 모이신 분들과는 좋은 관계를 맺고자 선수금을 드리겠습니다.”
소년은 우리 열 명에게 각각 저물도 하나씩을 건넸다.
“허, 허어…! 미리 약속된 공적치 말고도 이만큼이나 더 보수를 주다니…!”
“역시 흑린어령문….”
나 역시 흑린어령문의 씀씀이에 감탄했다.
‘인족과 지족 사이에서 교역을 중개하며 막대한 수수료를 챙긴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어마어마한 액수로군….’
난 저물도에 담긴 영석을 확인하며 혀를 내둘렀다.
재물에는 별로 관심이 없는 나조차도 액수를 보고서 얼떨떨해질 정도였다.
“험험, 그럼 임무를 설명해 주시지요.”
나와 같이 흑색귀골곡에서 나온 천인기 저주술사가 헛기침을 하며 말했다.
“예,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우선 여기 계신 분들이라면 알아차렸으리라 생각합니다만… 사실 저희는 저주술사분들의 저주를 모아 두고 있습니다. 그렇게 하여 고독 항아리처럼 저주를 가둬두고 흉악한 저주를 만들어 두려고 하는 중이지요. 현재 문파의 대진을 통해서 저주를 강화시키고, 증폭시키고 있는 중입니다.”
음혼귀시문의 저주술사로 보이는 음산한 사내가 입술을 핥으며 말했다.
“흑린어령문에는 저주술사가 마땅치 않을 테니… 우리더러 그 저주를 다뤄 달라는 건가?”
“그렇습니다. 저희를 도와 해당 저주를 증폭, 강화시킨 후. 그 저주를 나중에 저희가 찍어 주는 좌표를 향해 날려 주시면 된답니다.”
“뭐, 그 정도라면 쉽지. 오히려 그 정도로 강력한 저주를 다룬다면 우리 역시 개안을 할 수 있을 테니 우리에게도 좋은 일이고…. 최대한 일이 늦게 끝났으면 좋겠군.”
음혼귀시문의 수사는 턱을 쓰다듬으며 만족스럽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흑색귀골곡에서 나온 천인기 저주술사 중 한 명이 음혼귀시문의 잔당들을 보며 비릿하게 웃었다.
“그러게 말이다. 최대한 늦게 끝나야지. 지금이야 흑린어령문의 체면이 있으니 가만히 있다만, 임무가 끝나자마자 너희들은 우리에게 압송될 테니 말이다.”
음혼귀시문 잔당들은 그 말에 도리어 흑색귀골곡 수사들을 비웃었다.
“멍청하긴. 이건 강시로 만든 저주인형이다, 어리석은 놈들. 저주인형을 백날 잡아 봐라. 우리를 쉽게 소탕할 수 있을 것 같으냐? 흐흐흐….”
“본 곡이 두려워서 도망치기만 하고 제대로 붙으면 털리기나 하는 머저리들이 누구보고 하는 소리인지 모르겠군.”
“네놈들을 두려워하는 게 아니라 섭명함을 두려워하는 거다. 섭명함이 없으면 아무것도 아닌 놈들 주제…!”
“흐흐, 억울하면 네놈들도 신물을 가져오면 될 게 아니냐? 제놈들 손으로 신물을 분실한 주제에 비참한 변명이군.”
음혼귀시문 잔당과 흑색귀골곡 장로들의 사이에서 불똥이 튀기는 듯했다.
그 모습에 흑린어령문의 소년이 다가와 우리를 중재했다.
“다 좋습니다만, 사적인 대화는 임무가 끝난 후에 해 주셨으면 좋겠군요.”
그 말에 두 집단은 서로를 잠시 흘겨본 후 서로 시선을 돌렸다.
“그럼 본격적인 임무는 내일부터 시작될 테니, 오늘은 저희가 제공해 드리는 숙소에서 여독을 풀어 주시기 바랍니다.”
소년은 우리를 흑린어령문의 숙소로 안내했다.
우리는 숙소 바깥에서 흑린어령문의 요지가 아닌 곳 중 일부는 견학해도 된다는 허락을 받았다.
나는 그 말에 호기심이 생겨 흑린어령문 곳곳을 돌아다녀 보았다.
“흑린어령문은 규모가 크군….”
“아무래도 역사가 유구한 종문이니 말입니다.”
내 안내역을 위해 따라온 소년의 분신이 싱긋 웃으며 말했다.
소년은 사상원영의 비술로 분신을 만들어서 흑린어령문의 문중 중 중요하지 않은 자리들을 안내해 주고 있었다.
나는 그와 함께 흑린어령문 곳곳을 산책하던 중, 흑린어령문의 변두리에 도착했다.
그리고 나는 변두리 근처에서, 어마어마하게 거대한 계곡을 발견했다.
‘음?’
특이하게도 계곡에는 천지영기가 풍부했고, 또 그렇게 경사가 가파르지도 않아 건물을 짓기도 어렵진 않아 보였다.
그런데도 저 계곡에는 흑린어령문 건물은커녕 인간의 흔적조차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계곡의 앞쪽에는 흑린어령문의 상징인 교룡(蛟龍)이 승천하는 기호가 그려져 있었다.
“저 계곡은 왜 저렇게 텅 비워 둔 거요? 천지영기가 짙고, 건물을 세우기도 나쁘지 않아 보이는데….”
내 말에 소년은 쓴웃음을 지으며 말해 주었다.
“아시는 분은 이미 아시는 전설입니다만… 사실 흑린어령문의 본래 부지는 저 계곡이 있던 자리였습니다. 사실 예전에는 계곡이 아니라 산맥이었던 곳이지요.”
“어떤 사연이 있는 거요?”
“예. 문파의 개파와 관련된 일이지요… 저희 흑린어령문의 상징은 [승천하는 교룡]입니다. 한데, 사실 문파 초창기에는 다른 상징이었습니다.”
“다른 상징?”
“예. [꼬리를 문 검은 뱀]이 흑린어령문의 상징이었지요. 저희의 시조께서는 흑룡왕이시니, 감히 주제넘게 용(龍)을 상징으로 쓸 수는 없고, 그
렇다고 그분과 너무 관련이 없는 상징을 써도 곤란하니, 그분이 용이시라면 우리는 그분을 따르는 뱀이란 뜻으로 [검은 뱀]이 문파의 상징물로 채택되었었습니다.”
소년의 설명이 이어졌다.
“그런데, 문제는 흑룡왕께서 문파의 개파식에 참석하신 후에 생겨났지요. 그분은 문파의 상징인 [검은 뱀]의 문양을 본 후, 격노하시며 어찌 저렇게 불길하고 흉한 것을 상징으로 삼을 생각을 하셨냐고 꾸짖으셨습니다.”
‘흑룡왕이 격노했다고?’
그는 높은 확률로 진선의 찌꺼기일 존재가 틀림없었다.
지난 생에서도 중경계에서는 두려울 것이 없다는 듯한 태도를 보여 줬었고, 실제로 그런 태도를 보여 주었다.
그런데 그런 그가 ‘격노’라는 표현을 쓸 정도로 분노할 이유는 뭐가 있는 것일까?
“결국 흑룡왕께서는 [검은 뱀]의 상징이 새겨졌던 문파 구관을, 산맥째로 함몰시키셔서 계곡을 만들어 버리셨지요. 그런 후 다시는 [검은 뱀] 같은 흉하고 불길하고 끔찍한 상징은 쓰지 말라고 하시며, ‘승천하는 교룡’의 상징을 직접 만들어 주시고는 나가셨습니다. 그 이후로 흑린어령문에서 [검은 뱀]은 구관 부지와 함께 일종의 금기가 되었지요.”
“흐음… 그렇군.”
나는 그제야 홍범의 요수공법을 구매할 때 얻었던 뱀족 공법 상인의 말을 이해할 수 있었다.
흑린어령문에서는 검은 뱀을 불길하게 여겨, 뱀족 공법은 항상 떨이로 팔아치워 버린다는 상인의 말.
이제 보니 흑룡왕 현음과 관계되어 있는 듯싶었다.
‘흑룡왕은 연의 연을 보고 개열기가 개입했느냐며 격노했었지…. 그렇다는 건, 검은 뱀의 상징 또한 개열기 진인과 관련 있는 건가?’
일단은 그렇게 생각하는 게 맞아 보였다.
‘어쩌면 개열기가 아니라… 최악의 경우에는 진선이 관련되어 있을지도 모르지….’
나는 최악의 상황을 가정하며, 본체에게로 의식을 집중했다.
* * *
“어떠냐, 홍범. 최근에 요수공법을 익힐 때 뭔가 문제가 있거나 하느냐?”
“어떤 문제를 말씀하시는지요?”
마침 홍범이 도착해서 나와 대화를 나누는 중이었기에, 나는 홍범에게 직접 질문했다.
“예를 들어… 어떤 존재의 시선이 느껴진다거나, 혹은 갑자기 네가 너 자신이 아닌 거 같다거나… 어떠한 ‘부름’이 느껴진다거나… 네 체내에서 뭔가가 자라나는 느낌이라거나 그런 게 없느냐?”
그 말에 홍범은 껄껄 웃으며 말했다.
“전혀 없습니다. 아무런 문제도 느낀 적은 없습니다, 주인님.”
“음, 그런가?”
홍범이 뭔가 문제를 느끼지 못한다면 검은 뱀과 관련된 존재가 진선일 확률은 조금 줄어드는 것 같았다.
‘진선보다는 개열기 쪽이 맞을 것 같군.’
“그래. 불편함은 더 없는 거겠지?”
“예, 없습니다. 다만….”
“다만?”
“최근 제 독공에 조금 정체가 온 것 같습니다.”
“뭔가 필요한 게 있느냐?”
“필요한 것은 이미 찾았습니다. 지하 정보 거래소에 찾아가서, 제게 꼭 필요한 독의 소재지를 찾아내는 데에 성공했습지요.”
알아서 내버려 둬도 쭉쭉 성장하는 홍범을 보며, 나는 흡족하게 웃고는 말했다.
“영석이 필요하면 말하거라. 얼마든지 내어 주마.”
“마음은 감사하나 괜찮습니다. 독을 가진 주인이, 현재 극독 제조와 관련된 임무를 하나 내렸는데… 그 임무를 완수하면 제가 원하는 독을 주겠다 합니다. 그리고 그가 원하는 독을 제조하려면 지족 진룡맹 깊숙한 곳까지 갔다 와야 할 듯싶습니다.”
홍범은 나를 보며 조심스럽게 물어보았다.
“혹 제가 지족 영역까지 갔다 와도 괜찮겠습니까? 만약 주인님께서 허하지 아니하시면 가지 않겠습니다.”
“그럴 리가 있느냐. 네 성장에 도움이 되는 일이니 다녀오거라.”
“감사합니다.”
홍범이 무형지독으로 나를 소금산의 주가 내린 꿈속에서 구해 준 건 상당히 깊은 인상으로 남았다.
녀석이 성장한다면 결과적으로 내게도 이득이니 잘된 일이었다.
“그나저나, 지족의 인물이 네게 무슨 독을 원하더냐?”
“산공독의 일종인 듯합니다. 의뢰자 쪽은 합체기 태수도 경지가 내려가는 독을 원하는 거 같은데… 가능할지는 그쪽에서 제공하는 재료의 상태를 봐야 할 듯합니다.”
“허, 뭔가 거창한 계획이라도 꾸미나 보군.”
합체기 태수에게도 통할 독이라니.
생각만 해도 무시무시한 독인 듯싶었다.
나는 홍범을 격려해 준 후 내보냈다.
얼마 후, 홍범이 나가고 전명훈이 동부 안으로 들어왔다.
“그래, 할 얘기가 있다고?”
전명훈은 씨익 웃으며 바로 본론을 꺼냈다.
“명귀계로 가 볼 예정이다. 그리고 명귀계로 가려면 필연적으로 흑색귀골곡의 도움이 필요하지.”
“내가 도와줄 수 있긴 하다만… 조금 시간이 필요할 수도 있다.”
“아니, 괜찮다. 어쩌면 지금 당장 가는 것도 가능할 수 있어!”
“음?”
그리고, 이어진 전명훈의 말에 나는 흠칫 놀랄 수밖에 없었다.
“명귀계로 간 금신천뢰문 제자들을 통해, 강민희가 어디 있는지를 알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