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Regressor’s Tale of Cultivation RAW novel - Chapter (298)
그녀 (2)
‘왜지? 서휼을 쫓아간다고 하지 않았나? 자기 객관화를 못 한 건가? 아니면 [그녀]는 그런 거랑 상관없이 나를 자동으로 추적하는 건가? 다리를 잘라? [그녀]가 쫓아왔다면 다리 하나를 자른다 해도 소용없어. 싸워야 하나? 도대체 어떻게 여기까지 쫓아온….’
머릿속으로 수많은 생각과 혼란이 얽혔다.
그리고 어느새, 우리는 전명훈의 회귀뇌격이 시작되었던 장소.
인족 총연맹으로 향하는 전송진이 있는 이종족의 도시 앞까지 도착하게 되었다.
“허억… 헉….”
나는 그제야 [그녀]의 실체를 제대로 파악할 수 있었다.
‘그렇군….’
[그녀]가 나를 따라온 것이 아니었다.오직 [그녀]의 왼팔!
왼팔만이 [그녀]와 분리되어 내 다리를 잡고 따라온 것이었다.
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내 다리를 붙든 [그녀]의 왼팔을 잡아들었다.
“뭐, 뭐냐, 그건?”
“그, 그건… [그녀]의 왼팔?”
전명훈은 의아한 기색이었고 김연은 안색이 하얘졌다.
나는 식은땀을 훔치며 고개를 저었다.
“괴군이 가진 최강의 괴뢰의 부품이다. 걱정할 건 없어. 이건 공격용이 아니고, 심지어 추적용조차 아니다.”
우우웅!
기묘성심전을 운용하며 [그녀]의 팔에 접속해 보자, 그 안에는 광증이 멎은 괴군의 의지가 들어있었다.
‘그렇군. 제자를 위한 교보재인 건가.’
비록 멀리 떨어져서 더는 가르칠 수 없게 되었지만, 광증이 멎은 괴군은 제자를 위해서 조금이라도 가르쳐 주고 싶었던 것이 있는 것이었다.
[그녀]의 왼팔에는 그 짧은 시간 내, 괴군의 기묘성채 전반에 대한 지식은 물론이고 기묘성심전의 여러 운용법과 괴뢰들의 조작법.그리고, 최종적으로는 ‘연의 연’을 발동하는 방법까지도 암시되어 있었다.
츠츠츠츳―
나는 [그녀]의 왼팔에 담긴 괴군의 의식을 읽었다.
점차 나는 홀린 듯이 그의 전언을 읽어 갔다.
―제자야. 듣거라.
문득, 나는 내 눈앞에 한 노인이 앉아 있는 듯한 환영을 보았다.
―네가 나를 원망할 것임은 이미 알고 있단다. 사무치도록 증오스럽겠지. 아마 나를 스승으로 생각지조차 않을 수도 있다. 나는 너에게, 미안하다는 말밖에 할 수가 없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네 힘을 빌려 이룩해야 할 것이 있다.
‘미안함’이라는 감정이 괴군의 전언 속에서 물씬 풍겨 왔다.
―나를 용서해 달라는 사치스러운 부탁은 않겠다. 대신… 나를 이용하거라. 내가 너를 이용하듯이, 너도 내가 보내 준 지식을 이용하여 최대한 성장하고 강해지거라. 너를 보아 온바, 네게도 원하는 것이, 사랑하는 이가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단다.
그는 미안함이 담긴 표정으로 이쪽을 바라보며 웃었다.
극성에 달한 내 기묘성심전에는, 어쩐지 그의 뒤쪽으로 하나의 장면이 보였다.
그것은 고목이었다.
아니, 추운 겨울날 잎과 꽃이 다 떨어져 버린 앙상한 벌거숭이 나무였다.
그리고 그 나무에는, 연분홍빛 끈들이 수없이 매달려 있었다.
‘아….’
저게 도대체 무슨 광경일까.
나도 자세히는 몰랐다.
다만 어째서인지, 기묘성심전의 다음 단계와 관계가 있다는 것만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이 기묘하고도 아름다운 세계에서, 네가 원하는 것을 찾기를 바라마….
츠츠츠츠….
나는 그 기묘하고도 아름다운 광경에서 잠시간 눈을 떼지 못했다.
그리고 어느 순간.
“헛!”
나는 흠칫 놀라 몸을 부르르 떨었다.
기묘한 기분이었다.
이것이 괴군이 [그녀]의 왼팔에 남겨 놓은 전언.
그리고, 나는 그 전언을 보며 한 가지를 벼락같이 깨달을 수 있었다.
괴군이 왼팔에 담아 놓은 그의 깨달음이, 내 정신을 각성시켰다.
‘그렇군… 지금 내 정신은 확실히 문제가 있다.’
나는 그제야 분신이 서립에게서 느껴지는 걱정이 과민 반응이 아니었음을 깨달았다.
아마 괴군의 깨달음으로 인한 각성이 아니었다면 죽었다 깨어났어도 이를 못 알아차릴 뻔했다.
‘감사합니다. 조연 어르신.’
나는 마음속으로 괴군에게 감사 인사를 올린 후 김연을 바라보았다.
“연아. 기묘성심전을 운용하면서 이 왼팔을 쥐어 봐.”
“예?”
그녀는 순순히 내 말에 따랐다.
그리고 그녀의 기묘성심전이 [그녀]의 왼팔과 접속하며, 그녀 역시 괴군의 전언을 받은 듯했다.
한동안 말이 없던 그녀는 입술을 짓씹었다.
심경이 복잡한 모양이었다.
자신을 고문에 가깝게 개조하고, 이용해 왔던 괴군.
아마 내가 조금만 더 늦게 구하러 왔어도 정신에 이상이 생겼을 수도 있다.
하지만 ‘괴군’과는 별개로, ‘조연’이라는 인간이 남겨 놓은 전언은, 그 전언에 담긴 기묘한 깨달음은, 사람의 마음을 흔들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김연은 얼마간 입술을 깨물더니 고개를 돌렸다.
“…저희, 계속 여기 있는 건가요?”
“아니. 여기서 전송진을 타고 인족의 영역으로 갈 예정이야.”
“그럼 거기로 가 주세요. 일단… 움직이고 싶네요.”
“그래.”
나와 전명훈, 김연은 그 자리를 벗어나, 인족 총연맹으로 돌아왔다.
* * *
“다행…이군.”
나는 안도의 한숨을 쉬며 손에 난 땀을 보았다.
본체가 잡혔을 때는 아무것도 하지 못했기 때문에 손에 땀을 쥐고 본체 쪽을 관조했었다.
하지만 다행히 괴군에게서도 무사히 탈출하고, 거기에 괴군의 기묘성심전을 통해 정신의 이상도 알아차린 모양이었다.
하지만 왜인지 나는 마음 한편에 불안감이 남아 있는 것을 느꼈다.
‘단순히 정신의 이상인 건가?’
그리고 본체가 한 것은 정신에 이상이 있는 걸 ‘발견’한 것이지 ‘치료’한 것이 아니었다.
어떻게든 해결은 해야 했다.
‘계속 지켜봐야겠어.’
나는 그렇게 결심하며, 흑색귀골곡에 도착해 귀혼각을 찾아가 보았다.
흑색귀골곡의 주요 전각은 전부 섭명함 안쪽에 있었기에, 섭명함을 찾아가면 되었다.
나는 섭명함 안으로 들어가, 그 안쪽에서 귀혼각을 찾았다.
“비율. 내 당부는 잊지 않았겠지?”
[예. 몇 가지만 물어보고 바로 빠지겠습니다.]당연히 내 경지와 직급으로는 바로 강민희를 만날 수 있을 리는 없었다.
하지만 천인기 원로였던 귀왕인 비율이라면, 그녀와 면담을 신청하면 바로 받아들여질 가능성이 높은 것이었다.
똑똑―
나는 귀혼각 부각주의 집무실 앞에서 문을 두드렸다.
얼마 후 집무실의 문짝 위로 시커먼 귀신 한 마리가 머리를 드러냈다.
[어인 일이냐!]그러자 비율이 내 몸 바깥으로 나오며 말했다.
[귀혼각 부각주 강민희를 만나러 왔다. 열어라.] [예, 어르신!]문지기 귀신은 귀왕인 비율을 보자마자 머리를 조아리며 바로 문 안으로 머리를 집어넣었다.
끼이이익!
나는 긴장되는 감정을 숨기고 안으로 들어섰다.
싸아아아―
부각주의 집무실은 추웠다.
단순히 오행 속성의 한기가 아닌, 죽음 그 자체로부터 비롯되는, 뼛속까지 시리는 한기가 내 혼을 자극하는 것이었다.
강민희의 집무실은 꽤 어두운 편이었으며, 곳곳에서 시퍼런 도깨비불 같은 것들이 날아다니고 있었다.
그리고, 강민희는 집무실의 한 곳에서 바닥에 염료를 사용해서 어떤 도안을 그리고 있었고, 나에 대해서는 신경도 쓰지 않고 있었다.
나는 문득 그녀를 보며, 정말 이전과 변한 것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업무랑 사람이 둘 있으면, 항상 업무가 먼저였었지.’
그녀의 얼굴은 어째 등선향에 오기 전.
야근을 며칠은 했을 때처럼 눈이 퀭했고, 피곤해 보이는 얼굴이었다.
나는 그녀를 보며 뭐라 운을 띄울까 고민하다 입을 열었다.
“강 대인, 제가 봉양하는 어르신께서 대인과 면담하실 것이 있으시다 하십니다.”
그 말에 비율이 내 몸에서 튀어나와 헛기침을 했다.
비율의 말에, 그제야 강민희는 도안을 그리던 것을 멈추고 이쪽을 바라보았다.
싸아아아―
나는 그녀의 시선에 방 안의 분위기가 더더욱 낮아지는 걸 느꼈다.
“…어쩐 일이십니까. 귀왕 선배님께서.”
강민희의 목소리는 작고, 힘도 없었다.
아마 평범한 사람이 들었다면 그냥 목소리가 작은 사람쯤으로 인식했을 터였다.
그러나, 비율은 강민희의 목소리를 듣자마자 귀체(鬼體)가 붕괴할 듯이 흔들리더니 덜덜 떨기 시작했다.
[으, 으으… 흠. 흠흠. 아니 별 건 아니고….]‘이게 무슨….’
나는 명각으로 주변을 둘러보며 기함했다.
그녀가 입을 열자마자 명각 자체가 뒤흔들리며, 명계의 외곽 곳곳에서 균열들이 마치 생명을 얻기라도 한 듯이 커졌다 작아졌다 하기 시작했다.
나처럼 직접적으로 혼에 죽음을 품고 있지는 않았지만, 죽음을 ‘부리는’ 것에 한해서는 그녀가 나보다 압도적으로 뛰어나단 것이 느껴졌다.
[여기 이 서립이란 녀석은 흑색귀골곡에 근래 들어온 녀석일세.]“그야 귀왕 선배께서 붙으셨으니 그렇겠지요.”
[거기에 비승자이지. 허곽 원로께서도 눈여겨보시는 인재라네.]“그렇군요.”
[그래서 말인데… 혹시 이 녀석이 귀혼각에 들어가게 해 줄 수 있는가?]그 말에 강민희는 무표정한 얼굴로 나를 보며 말했다.
“공적치가 몇 점이 있지?”
나는 어색하게 대답했다.
“아직… 없습니다. 임무를 수행 중인 것이 하나 있는데, 그 임무를 마치면 4백 점을 받습니다.”
“그렇더냐? 천 점을 채우고 오거라. 아니면 천인기에 오르고 오면 당주직을 한자리 내 주도록 하지.”
그 말에 비율은 다시 헛기침을 하며 말했다.
[험험… 원래 공적치 제도란 것이 분명 중요하기는 하지만… 그래도 이 녀석을 보면 알지 않나. 귀도공법에 어마어마한 재능을 가진 녀석이고 또 내 체면을 조금 봐서라도….]“선배님.”
싸아아아아―
강민희가 무표정한 얼굴로 비율을 바라보았다.
그녀의 눈에서는 은은한 귀화가 타오르고 있었다.
“계속 이리 말씀하신다면, 시혼각에 말씀드려 집법을 행하겠습니다. 부디 문파 내규가 허락하지 않은 일로 문제를 만들지 말아 주십시오.”
[으, 으으… 으으으….]강민희의 눈초리에 비율은 정신이 붕괴해 버릴 듯이 덜덜 떨기 시작했다.
나는 그 모습을 보며 속으로 피식 웃었다.
‘저 성격도… 아직도 유지되는군.’
솔직히 조금 놀랐다.
등선향에 오기 일 년 반 전.
그때 있었던 사건 때문에 그녀는 ‘규정’이란 것에 굉장히 집착하기 시작했다.
FM이라고 해야 할까?
원래는 FM은 내가 더 잘 지키고 그녀가 오히려 무시하는 쪽이었었다.
“더 할 말이 없으면 나가 주시지요. 방해가 됩니다.”
그녀는 우리를 향해 손짓을 했다.
그러자 음산한 귀풍이 불어오며 우리를 밀어냈다.
하지만 나는 비율을 체내에 집어넣고, 도리어 한 걸음을 앞으로 나아갔다.
“안녕하십니까, 강 원로님. 저는 흑색귀골곡에 최근 들어온 음혼 제자, 서립이라 하옵니다.”
“뭐냐.”
그녀는 세상 귀찮다는 듯이 나를 바라보았다.
“사람인지 귀신인지 구분이 잘 안 가는 녀석이구나. 너무 시커매서 원래 얼굴도 잘 안 보이는군. 훌륭한 귀도 재능이긴 하다만, 그렇다고 해서 특별 대우할 생각은 없다. 나가거라.”
“아, 제가 봉양하는 귀왕께서는 그걸 바라셨지만, 저는 다른 일로 원로님께 여쭙고 싶은 게 있어 찾아온 것입니다.”
“…뭐냐.”
나는 등선향에 떨어지기 전.
1년 반 전의 일을 떠올렸다.
“강 원로님께선 명귀계 본종과 소통하는 업무를 맡고 계신지요?”
“그렇다만.”
1년 반 전.
그녀는 대형 기획에서 큰 실수를 하나 하게 되어 어마어마한 꾸중을 듣게 되었다.
“한 가지 궁금한 것이… 지금 제 앞에 계신 원로님은… 본체가 맞으십니까?”
“아니. 이건 분체다. 본체는 ‘샛길’에 위치한 채 명귀계에서 흘러드는 기운을 흡수하며 경지를 안정시키고 있지.”
“경지를 안정시키다니요?”
“본체는 사축기에 이르렀으니 말이다. 아…! 이건 생각해 보니 기밀인데….”
강민희는 머리 아프다는 듯이 집게손가락으로 관자놀이를 눌렀다.
“뭐, 어차피 샛길 폐관에서 나오면 알려질 일이니 상관은 없으려나…. 그래도 혹시 모르니 말하고 다니지 말아라.”
“예.”
“…그런데 이상하군. 우리 어디서 만난 적이 있나?”
“…없는 것 같습니다. 어째서 그러십니까?”
그녀는 잠시 나를 바라보더니 도안 근처에서 일어나, 옆에 있는 의자에 털썩 앉았다.
“글쎄… 처음 보는 너한테 이런 기밀을 말하는 게 신기해서 말이다. 사실 샛길에 관한 것도 기밀이라 함부로 대화를 나누면 안 된다만… 휴, 됐다. 너 때문에 집중이 깨졌으니…. 이왕 이리된 거 잠시 쉬도록 하지.”
따악!
그녀가 손가락을 튕기자, 시퍼런 도깨비불들이 밝게 빛나며 방 안을 환하게 비췄다.
“뭔가 묻고 싶은 게 있으면 물어봐라.”
나는 변함이 없는 그녀를 보며 질문했다.
“명귀계라는 곳 자체에 대해서 질문하고 싶습니다.”
“본종에 관심이 있는 거냐?”
“그렇습니다.”
등선향에 떨어지기 일 년 반 전.
그녀가 했던 실수로 인해 징계위원회가 열렸고, 다행히 큰 징계는 먹지 않고 넘어갔지만 그녀는 상당히 충격을 받았었다.
그리고 징계위원회가 열리고 다음 주에 있었던 회식 날.
입사 초기에 사귀다 헤어진 우리는, 그날 다시 사귀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