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Regressor’s Tale of Cultivation RAW novel - Chapter (300)
그녀가 당황하는 게 심어로 느껴졌다.
콰득!
나는 즉시 그녀의 양팔을 붙잡았다.
[놀랍군. 이걸 파해해? 도대체 얼마나 전투 경험이 많으면 처음 보고 파해한 거냐?]태열전은 찬탄성을 터트리며 즐겁다는 듯이 웃었고, 나는 등 뒤에서 느껴지는 예기에 식은땀을 흘리며 손아귀에 더더욱 힘을 주었다.
댕겅!
그녀의 양팔은 그대로 날카로운 검에 잘린 것처럼 잘려 나갔다.
나는 망설이지 않고 대천도피안의 초식으로 원영의 안쪽에서 통합한 힘을 폭발시키며 검무를 추기 시작했다.
힘을 방출하지 않으면 죽어 버리는 검무(劍舞)!
이 정도의 초식이 아니라면 안 된다.
내 검무가 그대로 그녀의 상반신을 쓸어내렸고, 동시에 뒤쪽에서 날아오는 유엽도를 막아 냈다.
나는 유엽도를 보며 장익과 싸웠던 때를 떠올리고는, 더욱이 태열전에게 공격을 퍼붓지 않고 일단 바로 자리에서 빠져나갔다.
파앗!
나는 시운도에서 빠져나와 인족 영역 바깥에서 다시 한번 단악의 초식을 준비했다.
그리고, 그 짧은 찰나.
아쉽다는 듯한 심어가 울려 퍼졌다.
[스승님과 붙어 봤다고 했나? 안 속는군.]짙은 연분홍빛의 거미줄이 사방팔방으로 만개하며, 내가 방금 전까지 있던 자리를 죄이고 있었다.
아마 멍청하게 승기를 잡았다 생각하고 그녀를 계속 공격했다면, 유엽도가 만들어 낸 영맥의 결계 안쪽에서 그대로 공간째 쥐어 터졌을 터였다.
나는 점차 그녀와 붙으며 그녀가 익혀 온 투혼이 어떤 느낌인지 알 수 있었다.
‘유엽도를 쓰는 건 그냥 장익에게 배웠기 때문이다.’
아마 그녀와 싸우는 대부분의 적은 유엽도를 그녀의 무기로 착각하고 유엽도에 신경을 집중할 터였다.
하지만 그녀와 무를 겨뤄 본 나로서는 그녀가 ‘유엽도’의 도법(刀法)으로 심족이 된 게 아니라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심천탱화도라 했었나?’
나는 심어로 울려 퍼졌던 그녀의 절학명을 떠올리며 소름이 돋는 걸 느꼈다.
‘내 예상이 맞다면… 아마 태열전은 심법(心法) 그 자체로 경지에 올랐다.’
나로 치자면 용맥기공만을 대성해서 어전 일 보에 이른 것이었다.
그리고 자신의 내공심법에 맞는 성질의 초식을 그때그때 구현해서 사용하는 것뿐.
그녀가 쓰는 절학의 본질은 기공 그 자체에 있었다.
우우우웅!
저 멀리.
시운도에서 피어오르던 연분홍빛의 빛이 점차 압축되기 시작했다.
그것은 검붉은 빛이었다.
동시에 그녀의 심어가 다시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스승님은 약자들을 지키기 위해 최강(最强)을 원하셨지만, 나는 최고(最高)를 원했지. 스승님의 사보멸천도는 천지영기를 흡수해서 무한히 체급을 키우는 게 가능하지만, 내 것은 그 반대야.]문득, 나는 그녀와 마주하며 또다시 한 가지를 깨달을 수 있었다.
‘그렇군… 그녀의 힘의 비밀은 저기에 있던 것인가.’
아무리 압도적인 힘을 거느리고 있다 해 보았자, 맞지 않으면 의미가 없다.
상대를 맞춰서 쓰러뜨리는 것.
그것이 무학의, 전투의 본질 중 하나다.
나는 방어와 회피를 무시하는 무한한 자유의 무형검을.
김영훈은 반응이 불가능한 속도의 능광도를.
장익은 방어가 의미 없는 파괴력의 사보멸천도를 앞세워 상대에게 공격을 ‘꽂아 넣는’ 방식을 사용했다.
하지만 그녀의 것은 완전히 궤가 틀렸다.
필중(必中).
그녀의 공격을 앞에 둔 상대는 절대로 회피할 수 없다.
오로지 정면에서 막아 내야만 한다.
나는 내가 그녀의 공격을 회피할 수 없었던 것을 떠올렸다.
김영훈의 공격보다 한참은 느렸지만 피하지 못하고 막아야 했던 이유.
전투 중에 한 번도 피하지 못했던 이유.
그것은, 그녀의 심천탱화도가 가진 속성 때문이었다.
[나는 도리어 내 마음(心)과 영맥을 연결해서, 마음 안쪽에서 힘을 끌어온다. 인간의 혼(魂)이 지닌 그 가능성을 끌어내는 것이다.]그녀가 수련해 온 심공(心功)을 앞에 둔 이들은, 그 투명한 마음 앞에서 자기 자신의 가능성을 비춰 보게 된다.
단순히 파괴력을 겸비한 무식한 공격이 아닌, 마음을 거울로 상대가 자신의 가능성을 마주보게 하는 것.
그것이 그녀의 심천탱화도가 지닌 본질이었다.
‘회피를 할 수 없었던 게 아니라, 회피를 했다면 상대는 점차 마음이 꺾여 가며 전투 중에 주화입마가 올 확률이 올라가겠군.’
무조건 정면 대결을 강요하는 절학.
그것이 그녀의 투혼.
그것이 그녀의 무(武)였다.
꾸득, 꾸드드득!
나는 안쪽에서 폭발하는 기운을 검에 불어넣으며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녀 역시 나를 바라보았다.
심천탱화도.
제육화(第六華) 마노증천왕(瑪瑙憎天王).
검붉은 빛의 파도가, 혈해(血海)처럼 펼쳐지며 나를 덮쳐 왔다.
느껴진다.
혈해의 바닷물이 한 방울이라도 몸에 닿는다면 그대로 전신의 껍질이 벗겨질 것이다.
피부쯤이야 재생된다 했지만, 혈해에서 느껴지는 본질은 ‘벗겨진다’였다.
아마 피부만 발라지는 게 아닌 영혼의 표면층이 그대로 발라져서 벗겨질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그대로 의식이 해체되어 기의 계위로 떨어지고, 원영이 흩어져서 죽어 버리리라.
말 그대로 의식 영역으로 정보를 파악하는 수도자들에게 있어서는 최악의 상성을 자랑하는 일격이었다.
‘음? 뭐지?’
나는 순간 내가 너무 빨리 상대의 일격을 분석해 냈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른 공격들과 달리 이번 공격은 어쩐지 기시감이 들었다.
‘왜지, 어디서 본 것 같은 느낌이….’
하지만 모르겠다.
어디서 봤는지를 떠올릴 수가 없었다.
‘됐다. 지금은 그런 걸 생각할 때가 아니야.’
나는 태열전의 공격에 대한 파해법을 떠올렸다.
‘의식을 분해하는 공격이라면, 분해하지 못하는 것으로 상대한다.’
아까 전의 혼돈의 구체가 헌원에게 최악의 상성이었다면.
이번 공격은 헌원이 도리어 상성의 우위를 점할 수 있는 공격이었다.
물론 적중한다면 얘기가 다르지만, 헌원이라면 적중하기 전에 너무나도 손쉽게 이 공격을 지워 버릴 수 있다.
기(氣)는 분해할 수 없다.
온갖 속성을 함유한 기는 그 자체로 완전하며, 속성이 떨어져서 존재하는 것이 불가능했다.
도리어 그런 속성을 가진 기를 억지로 분해하는 헌원의 태산열제공이 괴이하고 기괴한 공법인 것이었다.
‘기(氣)는 생명, 생명은 곧 역사….’
존재가 살아오며 쌓은 역사는, 절대로 바뀔 수 없다.
츠츠츠츠츳!
검에 새하얀 안개가 휩싸이기 시작했다.
선수의 힘이 대천도피안 안쪽에서 다른 천, 심족의 힘과 섞였다.
나는 일 보를 내디뎠다.
동시에 일 검이 정지된 세계에서 흩뿌려졌다.
퍼엉!
일 검에 만상인연도에 저장된 한 사람이 손을 들었다.
혈해의 바닷물 한 방울이 터져 나갔다.
이 검.
다른 이가 손을 들었다.
바닷물 두 방울이 터져 나갔다.
삼 검.
사 검.
오 검….
내 검은 마치 광선과 같이 뿜어져 나갔다.
새하얀 검격이 천수관음의 손처럼 천지사방으로 뻗어 나가며 광선을 뿜는 것 같았다.
무수한 광격이 혈해에 맞섰고, 그때마다 만상인연도의 인연들이 한 명씩 손을 들어 올렸다.
혈해의 바닷물은 한 방울씩, 확실하게 터져 나갔다.
새하얀 안개의 바다에서 무수한 인연들이 손을 뻗으며 혈해를 지워 나갔다.
몇 번일까.
도저히 세지도 못할 정도로 검격을 퍼부었다.
그리고 마침내, 나는 내가 통합해서 폭발시킨 대천도피안의 힘이 모조리 소모되었다는 것을 인지할 수 있었다.
파앙!
하지만 동시에, 나는 혈해의 마지막 한 방울을 터트렸다.
치이이이―
전신에 힘이 없다.
대천도피안은 이렇듯 전신의 힘을 전부 소진시킬 때까지 사용해야 했지만, 대가로 나는 완전히 무력(無力)해졌다.
태열전은 그런 나를 보며 혀를 내둘렀다.
“스승님과 헌원 말고 아무도 그런 식으로 제육화를 막아 낸 적은 없었는데… 놀랍군.”
나는 폐가 쥐어짜이는 듯한 고통 속에서 웃었다.
“본래는, 이런 식으로 파해하는 게 아닌 모양이군요.”
정신이 흔들리는 것 같았다.
너무 기력을 쥐어짜 내서 당장이라도 피를 토하며 죽을 것만 같았다.
휘이이이이―
허공에 떠 있던 나는 기력을 유지하지 못해 아래로 떨어지기 시작했다.
인족 영역인 운도지대의 바깥.
기암괴석이 즐비한 산악지대.
아마 떨어지면 그대로 육편이 될 터였다.
하지만 나는 마지막 남은 힘을 쥐어짜 내 미리 몸에 깔아 놓은 괴군의 회로를 발동시켰다.
내 몸은 도저히 움직일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지만, 꼭두각시처럼 억지로 움직이며 한 방울 남은 힘을 강제로 증폭시켜 몸을 보호했다.
쿠웅!
나는 완전히 쓰러져서 호흡을 골랐다.
다행히 떨어져서 육편이 되지는 않았지만, 정말로 검을 들 힘조차 없었다.
숨조차 쉬기 힘들었다.
타앗!
태열전은 내가 떨어진 산맥의 반대쪽 산봉우리 끝에 착지하며 말했다.
“본래는 그런 무식한 방식이 아닌, 정면으로 부딪쳐서 혼이 해체되는 걸 견디는 거다. 의식을 무(無)에 가깝게 만들어서 공(空)에 도달하면 제육화를 넘기듯 무시할 수 있지. 스승님도 그런 방식으로 파해가 가능했지만, 스승에게 이런 절기를 쓴 게 괘씸하다며 절학을 통째로 박살 내
버리셨고, 헌 수사의 태산열제공은… 너무 상성이 극악이라 어쩔 수 없이 파해됐다. 그리고 혈해를 한 방울 한 방울 다 터트린 파해법은… 네가 처음이다. 어떻게 한 건지 나도 감이 안 잡히더군….”
“…영…광….”
나는 말을 잇지 못하고 숨을 몰아쉬었다.
말 한마디도 제대로 뱉기가 힘들었다.
한순간에 천 년은 나이를 먹은 것 같았다.
그리고 동시에, 나는 뭔가를 알 수 있었다.
상대에게 자신을 마주 보는 것을 강제하는 절학.
‘그렇군….’
심천탱화도는….
“…그… 절기들….”
나는 그녀의 절학에 대한 깨달음을 얻었고, 이에 대한 감상만은 반드시 말해야 한다는 생각에 힘을 쥐어짜 냈다.
심어는 은근히 상단전을 쥐어짜 내는 방식이라, 지금으로선 성대로 말하는 게 더 나았다.
“그건… 상대를… 죽이기 위한 절기가… 아니군요….”
뼈와 살을 분리시키는 절기나, 피부를 박피하는 절기, 전신 경맥이 뒤틀려 죽어 버리는 절기 등 결과만 보면 무시무시한 절기들이었지만, 직접 다 맞아 본 나는 알 수 있었다.
‘무(無)…. 하나같이, 자기 자신을 무(無)로 만들면 모조리 무화되는 공격들이다….’
상대방을 강제로 공(空)의 상태에 들어가게 만들어 깨달음을 주는 절학.
오직 상대에게 ‘깨달음을 가르치기 위한’ 절학이 바로 그녀의 입천인 것이었다.
나는 피를 토해 가며 그녀에게 내가 알아낸 것들을 말했다.
태열전은 진심으로 놀라워하는 듯했다.
“놀랍군…. 어떤 기재도 한 번의 대련에서 그걸 알아낸 자는 없었다. 심족에서 내로라하는 천재들도 마찬가지였다. 스승님 정도만 본질을 알아채셨고 버릇없다면서 두들겨 맞았었는데…. 후후, 재밌군. 너는….”
그녀의 눈에 이채가 감돌았다.
“얼마나 고행(苦行)을 해 온 거냐. 최소 일천 년 이상 광인처럼 고통받아 오며 일념(一念)에 집중치 않으면 얻을 수 없는 통찰력이다. 너는… 어떤 일념을 그렇게까지 관철해 온 거지?”
덜걱, 덜걱, 덜걱….
나는 몸이 덜걱거리며 일어서는 걸 느꼈다.
내 의지가 아니었다.
‘아아… 그래.’
내 몸은 사실상 의식만 깨어 있다뿐이지, 가사 상태나 다름이 없었다.
그런데도 내 몸은 일어났다.
찌이이잉!
나는 이 순간, 하릴없는 공(空)을 느끼며 기묘한 일체감을 느꼈다.
그것은 여태껏 느낄 수 없었던 무형검과의 진정한 일체감이었다.
모든 것이 비워진 몸 안쪽에서, 무형검의 마음이 가득 차오르며 내 몸을 움직였다.
영훈 형님의 말이 떠올랐다.
무형검을 얻기 전.
그러니까, 등봉조극일 당시.
내가 쇄천봉에서 수련할 때.
그는 내가 기절한 다음에도 일어나서 하루 일과대로 수련하는 것을 보았다고 했다.
하지만 나는 정작 기억이 끊기면 내가 수련했다는 것을 알 수 없었다.
그렇다면, 그때 내 몸을 움직인 것은 누구였을까.
‘그렇군. 너는… 그때부터 나와 함께 있었더냐.’
무(武)에도 마음이 있다.
내가 겁천에 올라서 한 일은, 마음을 부여한 것이 아닌 그저 일깨웠던 것일 뿐.
그리고 이 마음의 시작은, 굉장히 내게 익숙한 것이었다.
무형검이 처음으로 ‘벤다’가 아닌 다른 말을 내뱉었다.
―조문도석사가의(朝聞道夕死可矣).
“…아침에 도를 얻으면, 저녁에 죽어도 좋다.”
무형검의 말을 내 입으로 전하며, 나는 미소를 지었다.
“삶에서, 단 하나의 도(道)라도 더 얻기 위하여 노력해 왔을 뿐입니다.”
“네 도는 무엇이지?”
“만상인연(萬象因緣)입니다.”
“….”
태열전은 잠시 그 자리에 서 있더니, 유엽도를 봉우리에 꽂아 넣고 결인을 맺기 시작했다.
우우웅!
그리고, 법술 실력이 형편없어 제대로 형상도 취하지 못하던 분체가 점차 명확히 형상을 잡기 시작했다.
멀리 있던 태열전의 본체가 본신의 힘을 소비해서 자신의 모습을 더더욱 뚜렷하게 드러내는 것이었다.
그녀의 모습은 가사(袈裟)를 입은 채 머리를 민 비구니의 모습이었다.
그녀는 자신의 손을 합장하며 내게 예를 취했다.
“함부로 그대를 가르치려 했던 것을 사과하겠습니다. 부디 받아 주십시오.”
“덕분에 큰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사과는 필요 없습니다.”
그녀 덕에 겁천의 진정한 사용법을 알게 되었다.
나는 무형검과 하나된 채, 완전히 힘이 빠진 허공(虛空)의 상태에서 움직여 그녀의 예를 받았다.
천족과 지족의 천인기는 체내의 소우주가 체외의 천지자연과 경계를 없애며 천지영기의 무궁한 힘을 끌어모은다.
그러나, 심족의 구현 3단계.
내 월도겁천은 정반대였다.
혼(魂)의 안쪽에서 마음을 얻은 자신의 무학으로 하여금 무한한 힘을 퍼 올리는 것.
그것이 오늘에서야 제대로 깨달은 월도겁천의 사용법인 것이었다.
그녀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아마 그대의 수양 수준이면 내가 없었어도 금세 깨달았을 것입니다. 그 의지에 경의를 표합니다.”
후우….
숨을 몰아쉬었다.
나는 의념을 통로로, 심상 깊은 곳에서부터 ‘힘’이 솟아오르는 것을 느꼈다.
이 힘의 근원은 어디인지 알 수 없었다.
아마 힘의 근원을 알아내는 날은 마음이 무엇인지 규명하는 날이리라.
본래라면 이 힘은 자신이 궁구해 온 무.
즉, 구현으로밖에 사용할 수 없다.
일반적인 심족이라면 몸이 망가져 가는 상황에서도 자신의 구현을 사용하며 적에게 맞서는 정도로밖에 사용할 수 없을 터였다.
하지만 내 무형검에 의해, 혼의 계위에만 머무르던 그 ‘힘’은 기의 계위로 내려와 생명력이 되어 몸 전체에 활력을 불어넣었다.
그 모습을 본 태열전은 헛웃음을 흘렸다.
“정말 기오막측하군요. 그런 식으로 사용하는 힘이 아닌데, 계위를 넘어서 그런 걸 가능하게 해 줄 줄이야… 당신의 깨달음도 역시 재밌습니다.”
내가 회복하는 걸 기다려 준 그녀가 말했다.
“이제까지 6초식을 부딪쳤으니, 남은 4초식을 겨뤄 볼까요?”
“좋습니다.”
그녀는 자신의 옆에 꽂아 두었던 유엽도를 하늘로 던져 올렸다.
동시에 그녀의 주변이 어둡게 가라앉는 느낌이 들었다.
심천탱화도.
제칠화(第七華).
“흑요마천왕(黑曜魔天王).”
나에 대한 경의를 표하듯, 지금껏 심어로 울려 퍼지게 했던 절학명이 아닌, 그녀는 직접 절학명을 입으로 뱉으며 초식을 전개하기 시작했다.
흑색의 유리가 천지간을 채우는 느낌이었다.
매끄러운 흑요석의 단면이 사방을 덮으며, 나는 검은 유리에 비친 수많은 나 자신의 잔상을 보았다.
하나같이 나의 잔상들은 삿된 감정에 번들거리는 눈을 하고 있었다.
여섯 번째 초식보다도 더더욱 노골적으로 심마(心魔)를 불러일으키는 초식이었다.
‘일종의 최종 관문이군.’
앞선 여섯 절학으로 상대에게 공을 체험시키고, 마지막 초식으로 완전히 혼의 계위를 타격하며 공(空)을 체현하지 못했다면 그대로 영혼이 유리장처럼 깨져 버린다.
나는 바로 이번 절학의 본질을 눈치채고 마음을 가라앉혔다.
이번 절학은 도리어 기(氣)의 계위가 포함되지 않은 순수한 혼의 계위의 공격이었다.
아마 헌원도 이 공격만은 태산열제공으로 해체할 수 없을 터였다.
일종의 환상인 셈이었다.
그러나, 나는 이게 환상이란 걸 깨닫고 문득 기묘한 기분이 들었다.
‘나에게 환상은 절대로 듣지 않는데….’
그러나 생각을 하고 보니, 나는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 뭐지, 그게 무슨 소리지? 아니다. 내가 환상에 듣지 않는다는 근거는 어디에도 없다. 그런데 이 기분은 도대체….’
나는 기묘한 이질감이 뇌리에 머무는 듯한 기분을 느꼈으나, 만상인연도나 무형검으로 나 자신을 관조해 보아도 아무런 이상이 없었다.
‘모르겠군. 일단 눈앞의 환상부터 깨도록 할까.’
나는 일단 마음을 가라앉히며 심상을 끌어올렸다.
환상이 듣지 않는다는 것은 근거가 없는 자신감이었지만, 심마(心魔)에게 휘둘리지 않을 자신은 충분했다.
츠츠츠츠츳!
이내, 검은 유리 안쪽에 비치는 풍경이 바뀌기 시작했다.
하나같이 삿된 감정을 품고 있는 내가 아닌, 산(山)이었다.
그것은 유리로 이뤄진 도산(刀山)이었다.
내가 ‘힘’을 끌어올리는 곳.
나는 이 도산의 중심.
나조차도 파고들 수 없는 어떤 곳에서 힘을 퍼 오고 있다.
‘아마… 그 힘을 퍼 오는 곳을 찾아내는 것이 내가 나아가야 할 길이겠지.’
흑색의 유리에, 유리의 산이 비췄다.
유리의 산은 흑색의 유리를 또다시 비추며, 서로가 서로를 비추는 무한한 잔상이 시작되었다.
그리고 나는 그 잔상의 끝에서 흑색 유리의 주인.
태열전을 들여다볼 수 있었다.
흑색의 유리와 무색의 유리가 서로를 들여다본다.
‘이것이 그녀의 심상….’
그녀의 안쪽은 하나의 탱화도(幀畫圖)였다.
일곱 명의 거대한 천왕(天王)들이 거대한 탱화(幀畫: 그림으로 그려진 불상) 안쪽에서 백색의 연꽃 아래에 원을 그리고 앉아 인자한 미소를 띠고 있었다.
그들은 한 명 한 명이 능히 하늘을 떠받칠 수 있는 거신(巨神)으로 보였는데, 누구 하나 앉은 자리를 함부로 벗어나지 않고 얌전히 가부좌를 틀고 있었다.
연꽃 아래는 우물이 아닌 뜨거운 불지옥이었는데, 신기하게도 그 안에서는 누구도 고통받고 있지 않았다.
그 기묘한 탱화는 너무나도 신성해 보였다.
기이하게도 연꽃 위는 누군가가 앉을 수 있는 자리가 있는 것 같았는데, 그 자리에는 누구도 올라가 있지 않았다.
츠츠츠츳!
나는 어느새 그녀의 심상에서 나와 다시 그녀와 눈을 마주했다.
“놀랍군요. 무색 유리의 주인이시여.”
“제가 할 말입니다. 당신의 안에 있는 분들에 비하면 많이 부족합니다.”
분명 내 심상에 들어왔을 것이 뻔한데도, 그녀는 여태껏 내 심상에 들어왔던 이들과 다르게 어떤 고통도 받지 않은 듯했다.
“헌원은 흑요마천왕을 가장 공포스러워했습니다만, 도리어 당신은 가장 두려워하지 않는군요. 스스로를 속인 적 없는 이일수록 그분의 시선에서 자유롭지요. 이제 더 이상의 초수 교환은 의미가 없겠군요. 몸을 추스르십시오. 제 패배입니다.”
태열전은 빙긋 웃으며 자리에 앉았다.
나는 숨을 몰아쉬며, 천지영기를 끌어들여 다시 본격적으로 몸을 치료하고 내상을 회복하기 시작했다.
나는 동시에 그녀의 심상에서 본 존재들에 대해서 질문했다.
“…그분들은… 누구입니까?”
진선의 시선을 몇 번 받아 봤던 나였기에 알 수 있었다.
그들은 어떠한 초월자들임에 분명했고, 실존하는 신(神)들임에 틀림없었다.
태열전은 그 신들을 자신의 안에 봉양하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하계에서 비승하셨다고 하셨지요? 그러면 모를 수 있습니다. 큰 중경계에서만 발견되는 불도공법의 신화에 등장하는 가공의 인물들이니까요. 선도(仙道)밖에 없는 하계는, 특히나 부해계 출신은 불도공법에 대해서는 알지 못하니까 말이지요. 그분들은 칠화왕(七華王)이란 이름을 가진 가공의 인물들로서, 사바세계에 깨달음을 주러 내려오는 존재들이라 알려져 있습니다.”
“불도공법…?”
“예. 성계에서 가끔 발견되고, 중경계에서는 선가공법에 비해 밀리지만 간간이 명맥을 이어오는 공법체계입니다. 불도공법의 근간은 칠화왕들에게서 기인하지요.”
“칠화왕이란 분들은 어떤 존재들입니까?”
그녀는 천천히 설명을 해 주었다.
“말 그대로입니다. 여러 신화와 설화가 짜깁기되어 만들어진, 가공의 인물들이지요. 하지만 그 자체로 인세를 시험하러 온 시험관이자, 동시에 깨달음을 주는 존재들입니다. 이는 실존하는 신격이 아닌 가공의 개념을 존재로 의인화한 것이지요.”
“실존하지 않는단 말씀입니까?”
“그렇습니다. 가공의 개념일 뿐입니다. 그 증거로 칠화왕께는 어떤 제사 의식도 바칠 수 없습니다. 그래서 불도공법은 칠화왕의 개념을 공법에 넣되, 법력 수련 자체는 기존 선가공법에서 따 와서 수련하지요.”
‘실존하지 않는다고?’
그렇다면 뭐란 말인가.
천벌의 주인을 마주쳤을 때.
저승의 천존을 마주쳤을 때와 같이 느낀 그 느낌.
그 느낌은 분명 실존하는 신들의 느낌이었다.
“어쨌든 그분들의 존함을 읊어 보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순간을 상징하는 금신천왕(金身天王).
순환을 상징하는 적주멸천왕(赤珠滅天王).
호법을 상징하는 유리호천왕(瑠璃護天王).
무한을 상징하는 은람천왕(銀籃天王).
결속을 상징하는 차거광한천왕(硨磲廣寒天王).
고통을 상징하는 마노증천왕(瑪瑙憎天王).
더러움을 상징하는 흑요마천왕(黑曜魔天王).
이상의 일곱 분을 칠화왕이라고 하며, 일종의 개념을 의인화한 존재들입니다. 그리고….”
말을 하던 그녀는 자신의 몸을 바라보더니 말했다.
“더 얘기를 나누고 싶으시면 천인도 아래, 운도 지대의 밑바닥에 태열사(太涅寺) 라는 이름의 절이 있습니다. 그곳에 본체가 있으니 그곳으로 찾아오시지요.”
말을 마친 태열전의 분체는 그대로 기운이 흩어져 사라져 버렸다.
아무래도 나와 대련하며 분체를 유지할 기운을 전부 소진한 모양이었다.
나는 방금 전 그녀와의 대련을 상기하며 생각했다.
‘불도공법이라….’
굉장히 의식을 많이 자극하는 게 느껴졌었다.
어쩌면, 의식을 자극하는 불도공법에 내 정신에 생긴 이상을 치료할 방법이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연이와 함께 가 봐야겠다고 생각하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 * *
우득, 우드드득….
쿠구구구―
함몰해 버린 산맥.
그 아래쪽에서, 시커먼 거체가 올라왔다.
흑룡왕 현음은 노기가 가득한 눈으로 자신의 동부를 박살 내 버린 존재를 향해 눈을 돌렸다.
[어떤 버러지 같은 놈이 감히….]그리고, 흑룡왕의 눈에 기묘성채가 띄었다.
우우우우웅!
괴군에 의해 완전하게 가동되는 기묘성채를 보며, 흑룡왕의 눈이 순간 바싹 졸아들었다.
[광한천군…? 어, 어찌….]그러나 다음 순간, 그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 아니군. 절대 녀석은 아니야. 네놈은 도대체 뭐냐. 누구길래 광한의 힘을 티끌만큼이나마 배양하는 데에 성공한 것이냐? 내가 그것들조차 내게로 거두어들였거늘. 광한계에서 어찌 그게 가능하다는 거냐?]잠시 기묘성채를 노려보던 현음은 씨익 웃었다.
[그래. 그렇군. 광한계에서 불가능하다면 타 천역에 광한이 남겨둔 힘인가. 그렇다면 그대는 타 천역의 진선의 화신일 터. 하하, 우리가 몰살당했던 곳이 이 일월천역일진대, 천존이나 빛도 아닌 주제에 어찌 이곳에 함부로 발을 들일 생각을 했을까. 이유는 한 가지밖에 생각할 수 없지. 윗분들께서 내 힘이 필요해진 게야! 그대여, 내게 전할 전언이 있는가? 윗분들이 내게 어떤 전언을 전하려 하는가. 얼른 고하라.]그리고, 기묘성채에서는 어리둥절한 영언이 들려왔다.
[…? 서휼 찾아왔는데 도대체 뭐라고 지껄이는 거야. 죽어라.]딸칵!
번쩍!
뭔가를 누르는 소리와 함께, 기묘성채에서 뻗어 나온 6줄기의 괴광선이 현음의 입에 처박혔다.
현음은 그대로 괴광선을 맞고 목이 반대로 꺾인 채 뒤쪽으로 날아가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