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Regressor’s Tale of Cultivation RAW novel - Chapter (306)
호(護) (6)
키기깅―
시커먼 손톱이 공기를 찢는다.
나는 강민희의 귀조를 피하며 재빠르게 뒤로 굴렀다.
슈캉―
순식간에 귀조가 내가 있던 허공을 스치고 지나가며 한음택의 지형지물을 잘라 버렸다.
그녀의 귀조가 스친 자리로는 시퍼런 한기가 육안에 보일 정도로 피어올랐다.
‘젠장.’
맞으면 죽는다.
그게 여실히 느껴졌다.
이 몸으로 무형검과 괴군의 회로를 써 봤자 천인기 수준에 불과하다.
사축기인 그녀를 막을 수 있을 리가 만무했다.
‘내가 서은현이라는 걸 알아챈 건가?’
뭔가 그건 아닌 것 같았다.
나는 그녀의 의념을 살펴보며 눈을 흘겼다.
‘검붉은 증오의 의념이… 착 가라앉아 있다.’
만약 내가 분체로 온 걸 알았다면 증오보다는 분노가 활활 타올랐으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면 한 가지였다.
‘나를 다른 누군가로 착각한 건가?’
그렇게밖에 생각할 수 없었다.
나는 황급히 뒤로 물러서며 강민희에게 외쳤다.
“원로님, 도대체 왜 이러십니까. 착각하신 게 아니신지요?”
그러자 강민희는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
“착각일 리가 없지. 그 어둠… 이 기시감… 그리고 익숙한 행동들…. 너는 그 녀석이야.”
“[그 녀석]이 뭡니까?”
“글쎄, 너한테 이름이 있었던가? 잘 모르겠네. 계속 그림자라고만 불러 와서 말이지. 어떨 때는 엄마를, 어떨 때는 아빠를, 어떨 때는 친구를, 어떨 때는 생판 모르는 사람을 흉내 내 온 게 네 정체성이잖아? 이번에도 모르는 사람을 흉내 낸 거겠지.”
‘이런 젠장.’
틀림없다.
서은현이 아닌, 나를 다른 누군가와 착각하는 듯했다.
그 누군가는 내가 두른 죽음의 형상처럼 짙은 어둠을 품고 있는 존재인 것 같았고.
‘새삼, 머리가 좋은 거 같아도 가끔 좋은 머리를 너무 믿고 이상한 결론에 빠지는 게 강민희의 특징이었지.’
그래서 등선향에 오기 1년 반 전.
우리가 그렇게 싸우고, 그녀가 밀어붙였던 프로젝트 덕분에 그녀는 회사에 상당한 손해를 끼치게 되었다.
‘뭐, 그 덕분에 나도 세계 인권 선언을 외우게 되었으니, 결과적으로 손해는 아니었다만….’
어쨌든.
그녀는 천재적인 본인의 재능을 너무 믿고 나아가다가 실수를 하는 경우가 간혹 있곤 했다.
이번 일도 같은 맥락인 듯했다.
‘상태를 봐서는, 해명은 한다 해도 들어 주지 않겠어.’
콰과과광!
그녀의 귀조에 의해 날아간 참격이, 한음택의 지평선 너머에서 푸른 빛과 함께 폭발하며 하늘을 물들였다.
귀기와 한기가 전신을 얼려 왔다.
점차 몸이 둔해지기 시작했다.
강민희는 내게 근접전을 시도해 오며 귀조를 휘두르다, 순식간에 귀조를 늘려 내 오른팔에 꽂았다.
동시에 그녀는 귀조의 길이를 줄여 내게 다가와 오른팔로 목깃을 잡았다.
그녀가 나를 자신에게 확 끌어당겼다.
‘이건, 밭다리 후리기!’
그녀가 힘의 흐름을 잡는 듯하더니, 나는 그대로 강민희에 의해 넘어지기 시작했다.
강민희는 못 하는 것이 없었다.
업무면 업무, 운동이면 운동, 외국어면 외국어.
대인 관계와 도덕을 제외하면 팔방미인이 그녀였었다.
그중에서도 강민희가 가진 유명한 일화가 있었다.
전명훈이 대리 시절, 여직원들이랑 자취방에서 작은 파티를 열던 오혜서의 자취방에 찾아간 적이 있다고 했다.
그는 그 자리에 있던 강민희에게 껄떡대면서 은근슬쩍 성추행을 하려 했고, 강민희는 바로 전명훈을 잡아서 메쳐 버렸다는 이야기였다.
그 후에 전명훈은 발목이 부러져 전치 6주를 당했다.
실제로 놈이 목발을 짚고 다니면서 한동안 강민희 쪽은 쳐다보지도 못했던 적이 있었으니, 빼도 박도 못할 일이었다.
‘오혜서가 얘기해 줬었지, 아마?’
그 당시 오혜서의 증언에 따르면, 전명훈의 발목을 부러뜨리고 담배를 한 대 피면서 덤덤하게 택시를 잡아 병원으로 보냈다고 했다.
전명훈은 쪽팔렸는지 자동차 사고 때문에 목발을 짚고 다닌다 했지만, 정작 오혜서 덕분에 부서 내 모든 사람들이 알게 된 사건이었다.
김영훈과 오현석이 신고할까 했지만, 양측 다 별말이 없었기 때문에 어찌어찌 넘어간 사건이기도 했다.
‘역시, 강하군.’
강민희는 강했다.
등선향에 오기 이전, 범인 시절에 내공을 못 썼다뿐이지 벌써 일류 무인의 기량을 가지고 있었으니 말이었다.
나는 허공에서 몸을 뒤틀며 발을 땅에 박아 넣고, 그 다리를 박차며 강민희에게 쌍장을 부딪쳤다.
혈마진해광이 발동하며 내 쌍장과 그녀 사이에 거대한 핏빛의 바다가 소환되기 시작했고, 나는 그 바다를 이용해서 그녀에게서 떨어져 나왔다.
그리고 나는 뭔가를 깨달을 수 있었다.
‘강민희….’
츠츳!
의념의 선이 내 목을 노렸다.
나는 이어지는 귀조의 참격을 황급히 피하며 식은땀을 흘렸다.
그녀는 어느새 지구 시절 배운 유도와 귀조 등을 이용한 전투 경험으로, 자력으로 절정경에 오른 것이었다.
김연처럼 월도겁천에 도달한 내 도움도, 오현석처럼 일문성체를 타고난 채 창호자에게 고기 완자가 되도록 맞아 가며 수련한 경험도, 김영훈처럼 무학에 특화된 재능도 없이, 순수하게 본인의 노력과 재능만으로 오른 절정경.
‘과연, 천재다.’
* * *
‘미치겠군.’
나는 속으로 혀를 차며 의식을 서립 쪽으로 집중시켰다.
서립 쪽에서도 엄청난 일이 일어나고 있었고, 내 앞에서도 충격적인 사실이 쏟아져 나오고 있었다.
“헌원과 정혼자셨다는 겁니까?”
“그래. 애정보다는 이익을 위해서 약혼을 했지. 물론 헌원 놈이 지금이야 많이 삭았다만, 젊었을 땐 꽤 잘생겼어서 나도 싫지는 않았다. 녀석도 내게 꽤 호감이 있었던 것 같고.”
연위의 이야기가 이어졌다.
“처음에는, 애정이라기보단 우정이었지. 아니, 흑룡왕을 잡으면서 서로가 전우애를 느낀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서로 간의 합도 상당히 잘 맞았고…. 아마 그대로 관계를 쭉 이어 갔다면 전우애가 연정으로 발전할 여지도 있었을 게야. 헌원이 다른 여자를 사랑하기 전까지는.”
그녀의 얼굴에 씁쓸함이 감돌았다.
“헌원은 금신천뢰문의 다른 여인을 사랑하게 되었다면서, 내게 미안하다고 말해 왔다. 나는 조금 아쉽긴 했지만 수락했다. 어찌 되었든 금신천뢰문에 이득이 될 테니까. 오히려 정략혼이 아니라 연애혼이라면 더더욱 봉래궁에서 금신천뢰문에 이득을 줄 테니 기꺼이 약혼을 파기하려 했지. 그리고… 그의 마음을 빼앗은 당돌한 제자가 누구인지 보려고 했다.”
눈앞에서는 헌원과 연위의 충격적인 과거사가.
한쪽에서는 강민희와 서립의 끈질긴 추격전이 펼쳐지고 있었다.
나는 빠르게 두뇌를 회전시키며, 서립과 함께 강민희가 서립을 ‘누구로’ 착각하는지를 돌려보았다.
이상하게 머리 회전이 빨라졌고, 인간과 인간의 관계도가 내 눈앞에 펼쳐진 느낌이었다.
어떻게 하면 저 관계도를 뒤틀어서 내게 최대한의 이득이 될 수 있는지.
그러한 생각과 계획이 무수히 쏟아져 나오는 듯했다.
‘기이한 기분이군.’
원래 나한테 이런 재능이 있었는가 싶었다.
나는 관계도를 뜯어 보며, 강민희가 서립을 공격하면서 조금씩 조금씩 설명해 주는 ‘그림자’라는 존재를 역추적해 갔다.
그리고, 관계도를 통해 역추적을 해 보던 나는 뭔가 이상함을 느꼈다.
‘그녀가 그림자라고 부르는 사람은, ‘지구에서부터’ 강민희와 함께했던 무언가다.’
그렇다는 말은 종명자 중 하나라는 소리였다.
하지만 그녀가 말하는 특징은 ‘서은현’이었다.
하지만 서은현은 ‘그림자’와는 또 달랐다.
‘뭐지, 도대체? 그림자는 누구인 거지?’
나는 서립에게 지령을 내려 강민희에게 몇 가지 질문을 던져 보라고 했다.
서립은 내 명령에 따라, 내가 즉석에서 써 준 대사를 강민희에게 던졌다.
* * *
“후후, 강 사우. 왜 그러십니까. 그저 장난이었지 않습니까. 회사에 들어와서 장난을 한 게 마음에 안 들었던 겁니까?”
[너… 역시 녀석이 맞았구나. 회사뿐이 아니야. 내 인생 전반에서! 너만 없었으면! 나는 지금쯤… 녀석이랑도 무난하게 잘 지냈을 거야!]강민희는 어느새 팔척귀신의 형상으로 변해 내게 귀조를 더더욱 흉악하게 몰아쳐 왔다.
* * *
‘강민희의 반응으로 보아, 회사 이전에서부터 그녀에게 영향을 끼친 존재다. 강민희는 아버지를 여의었으니, 어머니? 아냐. 한 번 만나 뵌 적 있는 그녀의 어머니는 저런 말을 할 성격이 아니야. 그렇다면….’
나는 빠르게 뇌를 회전시켰고, 어떠한 결론에 이를 수 있었다.
‘강민희에겐, 나도 몰랐던 어떠한 정신적인 병이 있다. 그리하여 그녀는 정신적인 병에 의하여 지속적으로 환상을 보아 왔고, 그 환상으로 인해 자신의 불행을 설명하려 한다. 지금도 서립의 특성을 보고 자신의 환상이라 착각하는 것이다.’
지금껏 나를 치료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조금 과민 반응이었던 거 같지만, 어쨌든 내가 그렇게 판단했다는 건 뭔가 이유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 보니, 치료받아야 할 대상은 내가 아닌 강민희인 모양이었다.
그리고, 나는 이어지는 연위의 말에 흠칫 놀랐다.
“헌원이 사랑하던 금신천뢰문 제자의 이름은 천라(天羅). 우리 금신천뢰문에, 천라란 이름을 가진 여제자는 없다. 성별 전환 공법을 익힌 남제자까지 찾아봐도 없었지. 심지어 나는 그 당시 수계에 연락해서 수계 본종에까지 문의해 봤었다. 그러나 수계에도 없었지. 헌원은… 어느 순간 존재하지 않는 여인을 만들어 사랑하는 정신병이 걸린 것이었다.”
“…!?”
밝혀진 진실에, 나는 어처구니가 없는 것이 느껴졌다.
‘정신병 때문에 금신천뢰문을 사랑하고, 정신병 때문에 나와 전명훈이 금신천뢰문을 지키지 못했다 하며 죽이려 했던 건가?’
순간 헌원에게 짜증이 몰려왔지만, 문득 이상함이 느껴졌다.
합체기 수사는 단순히 힘만 강한 괴물이 아니었다.
의식 영역이 커지고, 장대해진다는 것은 그만큼 많은 것을 인지하고, 많은 것을 이해하며 정신 자체가 성장한다는 의미였다.
합체기쯤 되면 미치는 것도 쉽지 않았다.
정신조차도 너무 강해지니 말이었다.
그렇다면, 그런 헌원이 정신병이 걸리는 건 도대체 어떤 이유인가?
“왜 그가 정신병에 걸린 것입니까?”
연위는 한동안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그녀의 의념에서 일말의 씁쓸함과, 일말의 안타까움.
일말의 공포가 흘러나왔다.
“왜 그렇게 됐는지를 수소문해 봤다. 백방으로 알아본 과정이야 말하기조차 아득하지만…. 거두절미하고 결과부터 말하자면, 나는 명귀계에 가서 헌원의 정신병이 어떤 이유로 걸렸는지를 알 수 있었다.”
‘존재하지 않는 여인을 만들어 사랑한 헌원.’
나는 그런 헌원에, 지금 서립과 싸우고 있는 강민희가 어쩐지 겹쳐지는 느낌이었다.
그녀 역시 존재하지 않는 것을 만들어 증오하고 있었다.
‘어쩌면, 강민희의 문제를 해결할 실마리가 있지 않을까?’
나는 연위의 말에 집중했다.
“어떤 이유로 걸린 겁니까?”
“…신(神).”
“신…?”
“헌원은, 신(神)이라고 불릴 정도의 위대한 고위 존재를 직시(直視)함으로써, 정신에 강한 균열이 생긴 것이었다. 너무나 격차가 큰 존재는, 꿈에서라도 나오게 된다면 정신에 문제가 생기게 된다.”
위대한 존재.
진선(眞仙).
즉, 헌원과 같이 어쩌면 강민희의 정신병은 진선과 연관이 되어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그리고… 그 고위 존재의 여파인지는 모르겠지만, 광한계는 어느 순간 금신자의 흔적 및 어떤 이들의 흔적을 지우고자 했고, 나는 백운의 명에 의해 금신천뢰문을 내 손으로 지웠다. 그리고 음혼귀시문의 신물과 명귀계에서 배운 비술을 써 헌원의 정신을 강제로 봉합시켜 치료했지.”
연위의 입에서, 4만 년 전의 비사가 흘러나왔다.
“그리고 정신이 치료된 헌원은, 내가 자신의 정인을 죽였다고 굳게 믿게 되었다. 정신을 치료하는 과정에서 기억이 왜곡된 게지. 그 이후는 아는 바와 같다. 나는 음혼귀시문의 신물을 희생시켜 나를 죽이려는 헌원의 경지를 깎아내리고 치명상을 입혀 건곤성에서 요양하게 만들었지.”
이것이 4만 년 전의 진실.
연위는 광한계 성반기 성사 백운의 명을 받아 금신천뢰문을 자신의 손으로 멸했고, 그 와중에도 헌원을 치료하려 했다.
헌원의 치료는 성공했으나, 그 대가로 헌원의 기억은 왜곡되어 연위를 죽이려 하게 되었다.
나는 연진의 안에서 씁쓸한 의념을 흘리는 연위를 보며 생각했다.
‘기구하군.’
그리고 문득 나는 기묘하다는 생각을 느꼈다.
‘헌원이 기구한 건가, 연위가 기구한 건가?’
나는 왜인지, 위대한 존재에게 정신을 농락당한 헌원 쪽이 더 기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 * *
‘빌어먹을 본체 같으니. 강민희가 더 날뛰잖냐!’
내가 강 사우 어쩌고를 한 이후, 강민희는 완전히 눈이 돌아가 내게 달려들고 있었다.
‘그건 그렇고 헌원이 기구한가? 나는 연인에게 배신당한 연위 쪽이 기구한 느낌이다만….’
본체와 나의 기묘한 의견 차이였다.
부웅!
촤아악!
강민희의 귀조에 의해 내 뱃가죽이 움푹 뜯겨 나갔다.
‘이대로는 안 된다.’
이대로라면 죽어 버릴 터였다.
죽는 거야 문제는 없었지만 흑색귀골곡에 만들어 둔 신분이 그대로 날아간다는 건 뼈아팠다.
‘서립의 신분으로 증룡진인의 저물도에 함께 가는 것까지 약조받았는데, 이렇게 기회를 날려 먹을 수 있나…!’
절대 안 될 일.
나는 빠르게 머리를 굴렸다.
원유의 혈체는 천족공법을 익히고 있었다.
무형검 등의 입천도 사용이 가능했고, 괴군의 회로도 사용할 수 있었다.
하지만 지족공법은 익히지 못했다.
‘천지심괴가 어우러지지 않아 두 경지 차이는 극복이 안 된다.’
그렇다면 이 상황에서, 일말의 설득도 안 통하는 강민희에게 어떻게 해야 이길 수 있을까.
어떻게 해야….
그렇게 고민을 하던 와중.
나는 문득 내 체내에 있는 귀왕화된 원영을 관조했다.
‘잠깐, 그게 가능할까?’
미친 생각 같기는 했지만, 나는 왠지 서립의 몸이라면 가능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두 경지 차이가 극복이 안 된다면, 한 경지 차이로 만들면 되는 것이다.
그러니까.
‘강민희에게 도망치면서, 즉시 이 몸을 천인기로 만든다!’
우우우우웅!
주변의 음기와 강민희에게서 느껴지는 귀기를 흡수하며, 나는 빠르게 천인기 구결을 향해 정신을 도야시키기 시작했다.
‘천인기에 오른다!’
지금, 당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