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Regressor’s Tale of Cultivation RAW novel - Chapter (310)
서를 위해 서를 향해 (3)
나는 강민희의 앞에 섰다.
어느덧 전명훈이 명귀계로 떠나고 5년이 지났다.
나를 봉양하던 비율은 어느덧 다시 대묘역으로 돌아갔고, 강민희 역시 샛길을 관리하기 위해 다시 샛길로 나가야 할 날이 되었다.
“늘 느끼는 건데 말이지, 이 세계에선 특히 시간이 더 빨리 흘러가는 거 같아. 널 처음 봤을 때만 해도 원영기 대원만이었는데, 이제는 천인기 후기 장로라니.”
나는 현재 천인기 대원만을, 새로 알게 된 구결로 쌓아 보려 본래의 구결로 쌓은 경지를 깎아 냈다.
때문에 현재 내 경지는 천인 후기였다.
하지만 일부러 경지를 깎아 냈음에도, 나는 은연중에 이 정도는 큰 문제가 안 될 거라는 자신감이 있었다.
“다음에 나오실 때는 사축기가 되어 있겠습니다.”
“내가 다음 나올 때 즈음이면 아마… 50년 뒤려나? 50년 안에 사축기에 이르겠다고?”
“아… 엄청 노력하면 될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글쎄. 아무리 너라고 해도 사축기는 포커가 아닌데.”
“포커요?”
“그런 게 있어.”
강민희는 씨익 웃으며 내 어깨를 두들겨 주었다.
어느덧, 나는 서립으로서 그녀와 상당히 친해져 있었다.
단순히 그녀가 나를 귀왕이라고 의심해서 친해진 체하는 게 아닌, 진심으로 마음을 여는 중이었다.
그리고 나는 그럴수록 그녀에게 미안해져 가는 마음이 커지고 있었다.
“자, 그럼. 난 이만 간다. 열심히 해 봐, 서 장로.”
강민희는 내게 손을 흔들며 뒤를 돌아, 붉은 도안 위쪽으로 걸어갔다.
쿠구구구구―
그리고 시커먼 음기를 뿜어내며 팔척귀신의 형상이 된 그녀는 도안 아래로 내려갔다.
나는 잠시 그녀를 바라보다 수결을 맺어 도안의 문을 닫았다.
50년 뒤면 이제 강민희가 다시 나올 터였다.
‘수련하자. 열심히.’
나는 본체에게 받은 본체의 증표.
본체의 저물도를 꺼냈다.
우웅!
본체의 저물도 안쪽에서, 나는 시커먼 두개골을 하나 꺼냈다.
육극음뢰신의 공법서였다.
두개골 안쪽에는 한 마리 망령이 깃들어 있었고, 나는 귀왕으로서 망령에게 명령했다.
[공법 구결을 불러라!]내 명령에 망령은 화들짝 놀라며 두개골 바깥으로 기어 나와 육극음뢰신의 구결을 읊기 시작했다.
육극음뢰신은 상당히 효용은 있어 보였지만 결국 서휼이 허곽에게 귀띔을 해서 알려 준 구결이었기에 그동안 수상쩍어서 익히지 않고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흑색귀골곡의 공법들 역시 어느 정도 몸에 익었으니, 수상쩍은 점이 있다면 바로 알아차릴 수 있을 터였다.
나는 내 동부로 돌아와 육극음뢰신의 공법 구결을 전부 끝까지 들은 후, 그제야 허곽이 어떤 의도로 내게 육극음뢰신을 전달했는지 알 수 있었다,
‘허곽, 이 양반도 은근 악질적이군.’
육극음뢰신은 최소 결단기부터 익힐 수 있었으며, 총 7단계로 나뉘어 있었다.
그러나 정작 제대로 위력을 발휘할 수 있는 건 원영기인 2단계부터였고, 결단기 경지의 1단계 수련법만으로는 음뢰(陰雷)라는 것을 쌓을 수 있을 뿐 다룰 수가 없었다.
거기에 시간이 지날수록 음뢰의 양이 늘어나기에, 적당한 시기에 원영기에 올라 음뢰를 제어하지 못하면 금단이 터져 죽거나 주화입마에 걸릴 수도 있는 위험한 공법이었다.
그리고 허곽이 내게 준 육극음뢰신 구결은 1단계 수련법만이 적혀져 있었다.
‘이건 뭐, 멋대로 육극음뢰신을 익혔으면 지금쯤 고생깨나 하고 있었겠어….’
무조건 흑색귀골곡에 들어와서 육극음뢰신의 후반부 구결을 받지 않고서는 못 배기게 만들어 놓은 악질적인 구조였다.
아무래도 서휼이 그때 허곽에게 속삭였던 걸로 보아, 서휼의 생각인 듯했다.
‘거지발싸개 같은 서휼 놈.’
나는 서휼을 욕해 준 후, 공법 서고로 가, 육극음뢰신을 찾아보았다.
그리고 나는 서고지기인 송길에게 육극음뢰신 공법에 필요한 공적치 점수를 듣고, 눈알이 튀어나올 것만 같은 기분을 느꼈다.
“…공적치, 1천 점이란 말이오?”
“그렇네. 육극음뢰신은 금신천뢰문의 태극진뢰신에 대응해 흑색귀골곡의 천재들이 야심 차게 만들어 낸 뛰어난 공법이니 말이지. 귀도공법에 상극이나 다름없는 뇌전의 힘에 대한 저항력을 갖추었으며, 파사현정에 대해서도 상당한 저항력을 가진 공법이라네. 동시에 같은 귀물들을 상대할 때도 음뢰를 이용해 어마어마한 이득을 볼 수 있지. 이론상 약점이 없는 공법이라네.”
“….”
‘금신천뢰문 기록소에는, 태극진뢰신에게 맞붙으면 상성 때문에 와르르 무너지는 종이호랑이 같은 공법이라고 대차게 까이는 어투로 기록되어 있었는데….’
솔직히 말하자면, 서립의 육신은 이미 태극진뢰신을 익히고 있다.
애당초 원유의 육신이었고, 연위가 잠시 깃들어 태극진뢰신으로 강제로 천인기에 올렸던 전적이 있었으니 말이었다.
그런데 굳이 태극진뢰신과 붙으면 두들겨 맞는다는 육극음뢰신을 찾아 익힐 필요가 있을까.
나는 고민하다가, 일단 육극음뢰신을 익혀 보기로 했다.
‘공적치가 1천 점이나 되는데, 그래도 값은 하겠지.’
어차피 천인기 장로가 된 이후, 임무를 상당히 많이 수행했기 때문에 공적치도 상당히 쌓여있는 상태였다.
나는 육극음뢰신을 받아, 대막사해성과 융합하며 익혀 보기 시작했다.
* * *
‘…얼마나 시간이 지난 거지.’
나는 내 심상 속에서 조용히 집중을 하며 생각했다.
생각해 보면, 이렇게 오랫동안 심상에 앉아서 수련한 적은 없었다.
‘생소한 기분이군.’
나는 언제나 동공(動功)을 수련했다.
단악검법도, 무형검도, 기타 등의 공법들도.
언제나 동공으로 수련하며 강해져 왔다.
오히려 그랬기에, 이런 식의 정공(停功)은 그다지 수련한 적이 없었던 것 같았다.
강제로라도, 나 자신을 참오하며 심상에서 이렇게 오랜 시간을 보낸 게 도대체 얼마 만인가.
의식을 집중하며 심상을, 무형검을 느꼈다.
현재 내 육신 자체에는 무형검의 길이 터 있었다.
무(武)는 결국 육(肉)과 떼어 놓고 생각할 수 없었기에, 그것만으로도 서휼은 내 육신만으로 무형검의 형태를 빌어 사용할 수는 있을 터였다.
물론 그것조차도 점차 내가 심상을 확고히 할수록 불가능해질 터였지만 말이었다.
‘무형검을, 내 심상을 오롯이 내가 장악한다.’
누구도 손댈 수 없다.
이것은 오직 나의 것.
오직 나만이 이룩했으며, 나만이 가질 수 있는 검이다.
이것은 나의 검이다.
나는 이 개념을 확장시키면, 심상을 만상인연도와 연결시켜 다시 육신의 주도권을 뺏어 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나는 그러지 않았다.
‘조급하지 말자.’
생각해 보면, 나는 늘 조급해 왔다.
너무나도 해야 할 게 많았으니까!
언제나 천재들에게 뒤처지지 않고 따라가려면, 언제나 극악한 운명 속에서 가진 것만이라도 구해 내려 발버둥 치려면.
한시라도 쉬는 것은 사치일 뿐이었으니까.
그랬기에 나는 조급해야만 했다.
나에게 노력이란 조급함이었으며,
조급하지 않은 것은, 휴식한다는 것은 크나큰 사치이자 죄악이었다.
‘죄가 아니야.’
악도 아니었다.
사람은 애당초 선하지도 악하지도 않게 태어났다.
인간이 추구해야 할 것은 선악이 아닌, 성장이다.
도를 아침에 구하면 저녁에 죽어도 좋은가?
인간은 모두가 늘 그렇게 살아가고 있다.
저녁에 죽어, 다시 아침에 살아나며 늘 하루하루, 한 발 한 발 나아가는 것이 인간인 것이다.
삶을 살아가면 그 자체로 세상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알려 준다.
오직 조급하게 쉬지 않고 노력해서만 뭔가를 얻을 수 있다는 건, 어찌 보면 나의 교만함일 수도 있었다.
오직 노력하는 나만이 더 나아질 수 있다는 건, 나보다 노력하지 않는 이들 전부를 부정하는 생각일 수도 있었다.
그러니….
‘조급하지 말자.’
천천히, 내가 할 수 있는 것부터 확실히 하자.
나는 무형검을, 나의 심상을 더더욱 확실히 장악해 갔다.
그 본질에 접속해 가며, 점차 무형검을 완전히 얻을 때까지.
* * *
50년이 지났다.
콰릉, 콰르르르릉!
나는 천겁을 맞으며, 마침내 천인기 대원만을 새로 얻었다.
‘기이한 기분이군.’
새로 얻은 천인기 대원만 구결은 상당히 길었다.
그리고 굉장히 단순하기도 했고.
그러나 단순한 만큼 강력한 느낌이었다.
그러나 나는 오히려 기묘한 기분이었다.
‘만약 진 정통 기축을 얻는다고 하면, 오히려 그 정통 기축들과는 부조화를 일으킬 것 같군.’
정말로 이게 제대로 된 구결이 맞긴 할까?
조금 의아해졌지만, 또 그렇게까지 이상할 건 없었기에, 나는 그러려니 하며 경지를 안정시켰다.
이제 남은 것은 사축기 승급뿐.
‘증룡진인의 저물도가 열리기 전까지, 충분히 도달할 수 있다…!’
나는 자신감을 가지고서 계속해서 수련을 이어 나갔다.
‘…그건 그렇고.’
그리고 나는 문득, 뭔가 이상한 느낌을 받았다.
‘강민희가 샛길에서 나올 때가 됐는데?’
강민희가, 샛길에서 나오지 않고 있었다.
나는 기이한 기분이 들어, 귀혼각 강민희의 집무실에 들어가 그녀의 분체에게 질문했다.
“혹시 본체가 어찌 되셨는지 아십니까?”
강민희의 분신은 곰방대를 피우며 말했다.
“…50년 동안 두문불출하더니… 몰랐나 보구나.”
“예?”
이어진 그녀의 말에, 나는 화들짝 놀랐다.
“명귀계와 혈음계에서 습격자들이 있었어. 조금 나와서 활동했던 이들은 전부 아는 건데, 몰랐나 보구나.”
“…전혀 몰랐습니다.”
“틀어박혀서 수련만 하지 말고 좀 나와서 친구도 사귀고 하렴.”
“음….”
‘저 말을 강민희에게 듣다니.’
본인부터 지구에서는 친구가 김연밖에 없었으면서 나한테 훈수라니.
썩 재밌는 기분이었다.
“그럼 원로님은 현재… 샛길에서 휴양 중이신 겁니까?”
“그렇게 됐네. 원래는 50년에 한 번씩은 광한계로 나와서 바람 좀 쐬어 줘야 하는데 말이지…. 뭐, 다른 흑색 원로님들 얘기를 들어 보니, 내 재능 정도면 50년이 아니라 100년도 샛길에서 맨정신으로 버틸 수 있을 거래. 나도 그렇게 생각하고.”
“…그렇습니까.”
나는 약간 불길한 기분이 들었다.
“그래도 기왕 요양하실 거면 광한계로 나와서 요양하시는 게 낫지 않으십니까? 샛길에서 명귀계 존재가 습격이라도 하면….”
“아, 괜찮아. 지난번에 습격한 명귀계 습격자는 다른 샛길을 통해서 광한계로 와서, 다시 광한계에 있는 우리 샛길로 들어와 나를 공격한 거였거든. 정상적으로는 우리 샛길을 통해서 명귀계 쪽에서 습격자가 올 일은 없어.”
“…그래도 원로님은 망자가 아니시지 않습니까.”
“그건 그렇긴 한데, 어지간한 망자보다도 더 귀기에 친숙해서 괜찮아.”
나는 괜찮다는 말로 다 넘기려는 그녀를 보며 걱정이 들었다.
‘귀도성모….’
아직도 생각났다.
수억에 달하는 귀신 떼를 이끌고 다니며, 미친 듯이 울부짖고, 귀조를 휘둘러 기묘성채를 반으로 쪼개 버리던 그녀의 모습이.
“본체는 그럼 언제 다시 오십니까?”
“음, 아마 30년 정도 후라면 다시 광한계로 돌아올 거야.”
“그렇군요.”
‘그럼 그때 의해은산으로 정신을 조금 돌봐줘야겠어.’
비록 봉령휴로 한 번 정신을 봉합해서, 이전 생보다는 귀도성모에 대한 걱정이 조금 덜했다.
하지만 그래도 불길한 건 어쩔 수 없는 일.
나는 그녀를 기다리기로 하며, 다시 동부로 돌아갔다.
“…잠깐.”
그리고, 나는 문득 기이한 기분이 들어 자세를 잡았다.
우우우웅!
허공에 강환을 띄운 후, 회전시키며 합일했다.
그렇게 무형검을 만들어 내려 했으나, 어느 순간 손 위에서 완성되어 가던 무형검은 그대로 흩어져 자연지력이 되었다.
“…?”
‘도대체 무슨 일이지?’
무형검이, 어째서인지 더 이상 나오지 않았다.
무형검이란 강환을 합일해 만든 형상에, 나의 심상을 비춰 내어 만들어 내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내 심상이 더 이상 비취지 않았다.
‘이런 제길, 어떻게 된 거냐…?’
나는 식은땀을 흘리며 몇 번이고 무형검을 다시 띄워 보려 노력해 보았다.
그리고, 전부 실패했다.
* * *
위이이이잉―
나는 유리검 산의 중턱에 몸을 누인 채, 눈을 감고 손 위쪽에 의지를 집중했다.
내 손 위로는 삼태극이 회전하고 있었다.
기이하게도, 무형검을 장악하고, 심상을 더욱더 내게 속하게 할수록 나는 어떠한 현상을 보게 되었다.
의(意)가 삼 분할되며 저절로 삼태극을 그렸다.
‘삼(三)….’
나는 어쩐지, 무인의 직감으로 태극보다는 ‘셋’이라는 숫자 쪽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느꼈다.
나는 이전 삼태극을 완성할 때 느꼈던, ‘나로서 완성되어 갔던 느낌’을 떠올리며 의식을 더더욱 집중했다.
무형검의, 혼의 계위의.
나 자신의 본질에 다가간다.
마음(心)이라는 것의 본질에 다가가 손에 쥔다.
더욱더.
더욱더!
피이이잇―
무형검을 변화시킨 삼태극을 손 위쪽에서 회전시키며, 나는 점차 뭔가를 알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 * *
‘어쩌면 본체와 분리된 게 영향이 생긴 건가?’
하지만 속단할 수는 없었다.
나는 한참을 고민하다가, 일단 의해은산의 초식을 사용해 보았다.
의해은산 자체는 ‘무형검’이 아닌 ‘단악검법’에 속한 무공 절학이었기에 쓰는 것에 손색은 없었다.
‘그래, 이 정도면 된다.’
의해은산만 쓸 수 있다면, 충분히 강민희의 정신을 붙들어 두는 건 할 수 있었다.
그렇게 생각했다.
30년이 지났다.
샛길에 있던 강민희는, 돌아오지 않았다.
그리고 어느 순간부터 강민희의 분체 역시 그녀의 집무실에서 홀연히 사라져 버렸다.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내 일갈에, 허곽 및 흑색 원로들이 헛기침을 했다.
“샛길이 막혔다니요? 샛길을 관리하는 것이 본곡이 아닙니까?”
허곽이 헛기침을 하며 말했다.
“아무래도 강민희 원로가 샛길 안쪽에서 뭔가를 한 것 같군, 서 원로.”
나 역시 80년 새 흑색귀골곡 원로의 호칭을 받을 수 있었다.
흑색귀골곡에 들어온 지 100년도 안 되어 사축기를 눈앞에 두고 있는 인재였으니, 나 역시 상당한 주요 자원으로 인식되고 있는 것이었다.
“어떻게 샛길을 여는 건 불가능합니까?”
“지금 본곡의 술법과 기물, 그리고 심지어 대묘역에 계신 사축기 귀왕 선배들과 흑색 원로들이 전부 힘을 합쳐서 시도해 봤네. 하지만 전부 실패했네. 이건 힘의 문제라기보단, 구조의 문제야. 안쪽에서 단단히 틀어막고 있어서 여는 게 불가능해.”
“그러면… 방법이 정말 없는 겁니까?”
“으음… 한 가지 시도할 수 있는 방법이 있긴 하지.”
허곽의 말에 나는 눈을 빛내며 물었다.
“어떤 방법입니까?”
“광한계, 인족 영역과 한참 멀리 떨어진 곳… 삽풍역이라는 지역이 있네. 그곳은 샛길을 ‘하나 더’ 만들 수 있을 정도로 음기가 굉장히 강한 곳이라 하지. 그곳에서 샛길을 하나 더 만든 후, 샛길에서 샛길로 넘어가서 강 원로를 끄집어내면 가능성이 있다네.”
“샛길에서 샛길로 넘어가는 게… 가능한 겁니까?”
“같은 힘으로 만들어진 샛길은 가능하지. 이곳의 샛길과 그곳에서 만들 샛길 역시 섭명함의 힘을 기반으로 만들 터니 충분히 건너갈 수 있어.”
“그렇군요…. 그건 그렇고, 삽풍역이라고 하셨습니까?”
“그렇네.”
‘삽풍역….’
나는 어디선가 그 이름을 들어본 적이 있는 것 같은 기분을 느꼈다.
‘만상인연도를 쓰면 바로 기억할 수 있는데, 제길….’
만상인연도는 무색유리검에 각인되어 있었고, 현재 무색유리검은 서휼화되어 가는 본체에게 있었다.
나는 머리를 굴려 보던 와중, 삽풍역이라는 이름을 어디선가 들어 본 적이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아, 삽풍역.”
증룡진인의 저물도가 숨겨졌다는 사토역(死土域)의 옆 구역이었다.
‘흑린어령문에서 420년 후 만나기로 한 장소 역시 삽풍역에서 합류해 사토역으로 가기로 했었다.’
이렇게 되면 오히려 잘된 일이었다.
삽풍역에서 샛길을 만들다가 약속 시간에 흑린어령문 일행을 만나서 사토역으로 가면 되니까.
거기다 흑색귀골곡 함대가 인근에 있으니 유사시 도움을 받을 수도 있었다.
‘그런데 뭐지?’
나는 왠지 삽풍역이란 이름에 어딘지 모를 불길함을 느꼈다.
어째서인지는 알 수 없었다.
* * *
우우웅―
어둠 속.
서은현의 동부 안.
상냥한 미소를 짓고 있는 서은현의 주변으론, 희뿌연 만상인연도의 안개가 피어올라 있었다.
부드러운 미소를 짓고 있는 서은현.
아니, 그의 몸을 차지한 서휼은 희뿌연 안개를 쿡쿡 찔러 보았다.
“후후, 제 탁혼살명과 비슷한 원리의 술법이군요.”
그는 곤란하다는 듯이 턱을 쓰다듬으며 희뿌연 안개를 쳐다보았다.
“역시… 이건 위험하네요. 함부로 파고들었다간 자칫하면 제가 역으로 서 도우에게 세뇌될 수도 있으니 말입니다. 하하… 이런 무시무시한 술법을 만들어 놓고도 제대로 활용을 안 하셔서 제게 당하시다니, 억울하시겠습니다. 서 도우…. 자아, 그럼….”
쿠구국―
서휼의 손가락이, 만상인연도의 희뿌연 안개 속으로 들어갔다.
“이 술법의 기둥을 찾아 보도록 할까요? 제 탁혼살명과 비슷하다면, 근원이 되는 기둥을 찾아낼 때 숨겨진 것을 볼 수 있을 테니 말이지요.”
그는 비릿하게 웃으며 그의 안에서 목소리를 듣고 있을 서은현에게 말했다.
“서 도우가 가진 육신의 자질… 조금 빌리겠습니다. 당신이 가진 육신의 재능이라면, 이 술법의 기둥을 찾는 일쯤이야 너무나도 쉬운 일일 테지요.”
육(肉)의 자질을 이용해서, 술법의 근원을 역추적하는 술법.
“탁혼살견(濁魂煞見)의 술.”
서휼이 가진 상식으로 비춰 볼 때.
천인기 수준으로 합체기 태수급의 힘을 내는 재능의 소유자라면, 한 번에 기둥을 찾을 수 있을 터였다.
“자기 자신의 재능으로, 자기 자신의 가장 큰 비밀을 까발리게 되다니, 비참하시겠군요. 후후후후….”
서휼은 웃었다.
그리고 서은현은 심상 속에서 집중하느라 딱히 그의 말을 듣고 있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