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Regressor’s Tale of Cultivation RAW novel - Chapter (318)
군(君)이 아니다 (2)
꾸르륵, 꾸륵….
서휼이 청린갑 안쪽에서 뭐라고 꾸르륵거렸다.
하지만 나는 씨익 웃을 뿐이었다.
“뭐라는 거냐. 안 들리는군.”
대부분의 물리력을 무화시키는 호숫물.
그것이 청린갑의 정체였다.
서휼은 법력을 뿜어내며 벗어나려 해 보려는 듯했다.
하지만 내가 청린갑에 힘을 더욱더 불어넣자, 서휼은 몸 전체가 으스러지며 더 이상 저항을 하지 못했다.
‘저거 내 몸인데….’
그 사실을 떠올리자 짜증이 났지만, 녀석을 봉인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었다.
푸확!
나는 청린갑을 사용할 때마다 점차 몸에 이상이 생기는 걸 깨닫고 일단 귀왕화를 풀었다.
‘아무래도 피가 흐르는 육신이 아니면 청린갑을 사용하는 게 불가능한 것 같군….’
치이이―
청린갑을 한 번 제어할 때마다, 점차 갈증이 생겨나고 있었다.
나는 필멸자인 내가 청린갑을 다룰 때 생겨나는 모종의 부작용이리라 짐작했다.
‘청린갑의 부작용이 심해지면 어찌 될지 모른다. 최대한 빨리 서휼을 어디다가 봉인하는 게 좋겠어.’
그때였다.
“어, 어르신. 혹시 저 흉수를 잡으신 겁니까?”
“음?”
나는 봉양층의 끄트머리에서부터 조심스레 내 눈치를 보며 올라온 이들을 흘긋 보았다.
입구에서부터 보았던 한령족, 엽타족, 영린족 등의 천족들이었다.
“그렇다만, 무슨 일이냐?”
“저 흉수가… 저희의 동료를 죽이고 그 유품을 빼앗아 갔습니다!”
“부디 동료의 유품을 회수할 수 있게 해 주십시오.”
‘음, 서휼이라면 충분히 그럴 수 있지.’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무슨 유품을 빼앗았는지 말해 봐라.”
“예, 우선 저 흉수의 품을 뒤져 보시면 붉은 옥간이 하나가 있을 것입니다.”
“그래, 음….”
나는 청린갑을 제어해 옥간을 꺼내 보려 했으나, 예상외로 서휼의 품이 단단하게 봉인되어 있단 걸 깨달았다.
‘뭔가 중요한 법보라도 빼앗은 건가?’
그렇지 않고서야 서휼이 저렇게 애지중지할 이유가 없었다.
“어, 어르신. 저 흉수가 펼친 봉인술식에 대해서 본 만큼이라도 설명드리겠습니다. 술식을 역으로 짚어 나가시며 해체하면 꺼낼 수 있을 것입니다.”
“알았다. 설명해 봐라.”
엽타족의 족원이 내 옆으로 다가와 허공에 영기의 흐름을 띄웠다.
“우선 이렇게 음한지력을 모은 후, 음한 속에서 태극이 팔괘의 힘을 기반으로 빠져나가게 하고….”
우우웅―
“그런 다음 다시 힘을 한 바퀴 좌회전시킨 후 꼬리를 물게 해서 원을 그립니다. 그 원을 이렇게 압축한 후….”
위이이잉―
엽타족 족원의 손 위로, 맹렬하게 회전하는 영기의 흐름이 생겨났다.
“이렇게….”
부웅―
나는 인정사정 볼 것 없이 강환으로 사고를 가속시킨 후, 있는 힘을 다해서 엽타족 수도자의 머리통을 후려쳤다.
꽈아앙―
엽타족 수도자는 그대로 저 멀리 날아갔으나, 그가 남긴 음기의 륜이 내게 날아들었다.
내가 손을 내밀어 음기의 륜을 받아치려 할 때, 순간 몸이 굳었다.
키이잉―
영린족 수도자 네 명이 동시에 영안 신통을 펼치며 나를 구속하고 있었다.
‘이 자식들이….’
결국 나는 엽타족 수도자가 만들어 낸 륜을 피하지 못하고 얻어맞았다.
콰드드득!
어마어마한 한기가 나를 덮쳐 왔다.
귀왕화를 푼 상태였기에 한기가 몸을 굳힌다.
그렇다고 음기에 강한 귀왕 형태로 몸을 바꾸면 청린갑을 다루는 데에 차질이 생긴다.
음한기의 운무 속에서 이를 악물며, 나는 괴군의 회로 및 등봉조극으로 의식 가속을 시작했다.
그때였다.
푸콱!
“…허?”
나는 한기의 운무 속에서, 뜬금없이 튀어나와 내 등을 찌른 이를 보며 헛웃음을 지었다.
“왜 네놈들이 여기서 나오는 거냐…?”
그것은 흑린어령문의 천인기 대원만 수사였다.
방금 전까지 나를 봉인한 이들이 나타난 것이었다.
그들은 전부 한령족 수도자들의 술법을 몸으로 받아, 한기 속에서 완벽히 기척과 의념, 영기의 파동을 감추고 나를 기습했다.
나는 그들을 바라보며 헛웃음을 흘렸다.
“아, 그렇군. 알 것 같다….”
울룩, 불룩!
흑린어령문 천인기 수도자는, 한껏 ‘상냥한’ 웃음을 지으며 몸이 부풀어 오르더니 내 뒤를 찌른 상태에서 폭발했다.
번쩍!
쿠르르르릉!
왈칵!
“끄윽…!”
나는 피를 한 움큼 토해 내며 뒤로 물러났다.
천인기 대원만 수사, 그것도 사상원영으로 사축기 초기급의 실력을 낼 수 있는 흑린어령문 수사의 자폭이다.
대막사해성을 사용하면 회복할 순 있지만 꽤 시간이 걸릴 터였다.
나는 피를 닦으며 눈앞의 엽타족, 한령족, 영린족, 흑린어령문 수도자들을 보며 헛웃음을 흘렸다.
그들은 모두 하나같이, 상냥하기 짝이 없는 부드러운 표정을 짓고 있었다.
“왜 그러십니까, 서 도우. 제대로 붙어 보자고 하지 않으셨습니까.”
“…너희, 아니… 너.”
나는, ‘서휼’을 노려보며 으르렁거렸다.
“누가 본체인 거냐.”
그들은 전부 역겹도록 상냥한 미소를 띠며 동시에 말했다.
“제가.”
“제가.”
“제가.”
“본체입니다.”
“본체랍니다.”
“본체이지요.”
그리고, ‘서휼’들의 합공이 시작됐다.
한령족 수도자들의 몸을 가진 서휼이 웃으며 한기를 내뿜는다.
동시에 엽타족 수도자들이 한기를 받아 정밀하게 조작하여 위력을 증폭시킨 후 내쏜다.
흑린어령문 수도자들은 한령족 수도자들의 지원을 받아 한기 속에 숨어서 선수진혈을 끌어올린 후 근접전으로 나를 노렸다.
영린족 수도자들은 후방에서 특유의 영안 신통으로 내 움직임을 제약하거나, 환술을 걸거나, 내 움직임이나 법술을 미리 예측했다.
“흑린어령문의 사상원영 비술은 정말로 편리하지요. 외부에 힘을 따로 저장해 놓고 필요할 때마다 불러 쓰니 얼마나 매력적입니까. 그 자체로도 천, 지족의 힘의 조화를 극대화시켜 경지 하나를 뛰어넘지요.”
서휼이 웃으며 내게 공격을 쏟아부었다.
“그리고, 서 도우 덕에 괴군 노야의 힘 역시 사용할 수 있게 되어, 정말….”
우우우웅!
사축기 초기였던 흑린어령문 수도자의 몸 위쪽으로 괴군의 회로가 새겨졌다. 생명체에게 새기면 고통이 상당할 텐데도, 서휼이 차지한 흑린어령문 수도자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순식간의 녀석의 힘이 사축기 후기까지 불어났다.
“이렇게 감사를 표해야겠습니다.”
“크윽….”
나는 눈을 찡그리며, 전신에서 저주를 풀풀 피웠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점차 밀리고 있었다.
‘청린갑! 청린갑이 내 정신력을 좀먹고 있다…!’
뿌드득―
청린갑에 가둬 둔 내 본체의 봉인이 풀리지 않도록 집중할 때마다, 점차 갈증이 심해졌다.
하지만 동시에 미친 듯이 한기를 쏟아내며 나를 얼려 죽이고자 하는 서휼들 때문에 추워 미칠 지경이었다.
‘귀왕화를 하지 않으면, 결국 한기 때문에 몸이 굳어 버린다…!’
그렇다고 귀왕화를 사용하면 청린갑을 제어하기가 힘들어진다.
어느 쪽이든 진퇴양난이었다.
그때였다.
푸확!
푸른 한기를 꿰뚫으며, 서휼이 한령족 수도자의 몸으로 등 뒤에서 내 어깨를 잡았다.
“후후, 서 도우. 드디어 잡았군요.”
울룩, 불룩…!
한령족 수도자의 몸이 꿈틀거린다.
어마어마한 한기가 그 체내에서 증폭되는 게 느껴졌다.
‘아, 안 돼…!’
나는 녀석에게 어깨를 잡힌 상태에서, 더는 참지 못하고 귀왕화를 해 버렸다.
콰드드득!
18개의 머리가 우람하게 솟아올랐다.
동시에 귀체로 변한 내 몸 사이사이로, 기분 좋게 한기가 흡수되었다.
나는 눈에서 귀화를 빛내며 이를 악물었다.
[젠장할….]촤르르르―
결국 청린갑을 제어하는 데에 실패했다.
청린갑 안쪽에서 풀려난, 본체의 몸을 가진 서휼이 빙긋 웃었다.
“자, 그럼. 이제부터 제대로 다시 해 볼까요?”
[빌어먹을 자식….]도대체 어떻게 한 건지는 감도 안 잡혔다.
‘기괴고 같은 것으로 기생시킨 건가?’
[너를 살해하면 들러붙는 게 아니었나?]나는 서휼이 ‘들러붙어’ 있는 타 종족 수도자들을 둘러보며 귀기를 끌어모았다.
귀왕화를 사용했으니, 이제 놈에게 밀릴 걱정은 없다.
“뭐, 일종의 그 비슷한 방법이라 할 수 있지요.”
[….]왠지는 모르지만, 나는 저 발언이 거짓말이라는 게 느껴졌다.
녀석의 화법은 어쩌면 전부 반대로 해석하는 게 좋을지도 몰랐다.
‘그렇군. 서휼을 살해하면 놈이 들러붙는 게 아니다.’
녀석은 모종의 다른 방법으로 기생을 시도하는 게 틀림없었다.
“자, 그럼. 어디 서 도우가 공들여 키운 분체를 제대로 사용해 볼까요?”
우우웅―
본체의 몸에 괴군의 회로가 번쩍이고, 등 뒤로 8쌍의 날개가 돋아났다.
천, 지, 괴의 기운이 융합하며 사축기 수준의 힘을 낸다.
아까 전 교염과 녹주를 죽이고 흡수해서 증폭시켰던 기운은 전부 다한 모양.
그러나, 나는 심장이 바싹 졸아드는 기분을 느꼈다.
[너…!]나는 황급히 내 허리춤을 보았다.
내 허리춤에 있던 저물도가, 어느새 서휼의 손에 가 있었다.
‘한령족 놈이 자폭할 때 가져간 건가? 어떻게? 놈이 그렇게 은밀하게 움직일 수 있다고? 잠깐, 이건 설마….’
나는 최악의 가정하며 놈에게 소리쳤다.
[네놈, 네가 어떻게 월수궁무록을 사용하는 거냐?]“아, 의식을 자르는 이 공법의 이름이 월수궁무록이었습니까? 어렵지 않더군요. 기묘성심전을 사용할 수 있게 되었으니, 그를 통해서 의식을 벼려 베어 내기만 하면 되는 것 아닙니까.”
나는 속이 뒤집히는 기분이었다.
단순히 월수궁무록이 서휼의 손에 들어간 게 화가 나는 게 아니었다.
내가 익혀 온, 내가 개발해 온, 내가 노력해 온 무의 영역이 더러운 저놈의 손에 침범당하는 듯한 기분이었기 때문이었다.
“어디 보자, 여기에 넣어 놨었는데…”
놈은 태연하게 내 저물도를 뒤지더니, 그 안에서 해란과를 꺼냈다.
“아, 찾았군요. 그럼 잘 먹겠습니다.”
우적, 우적….
녀석은 내 본체로 해란과를 씹어먹기 시작했다.
그와 동시에, 녀석의 기운이 폭증하기 시작했다.
꾸구구구국!
“창호자의 공법을 요수공법으로 진화시켜 놓다니, 서 도우도 대단하시군요. 인간족에 꼭 맞는 요수공법이라…. 죄송하지만, 이 서 모가 조금 변형시키겠습니다.”
번쩍!
그와 동시에, 본체의 몸에서 기운이 폭발하더니 녀석의 경지가 올라갔다.
천인기 대원만에서, 사축기가 된다!
쿠구구구구!
봉양층의 상공에 암운이 맺히기 시작했다.
천겁이 시작되는 것이었다.
‘왜 내 앞에서 승급을 시도하는 거지?’
그러나 나는 서휼을 당최 이해할 수가 없었다.
도대체 왜 내 앞에서 저런 짓을 하는 것인가?
내가 기습하기라도 하면 놈은 천겁을 이겨 내지 못하고 죽거나, 주화입마에 빠질 확률이 높아진다.
‘그만큼 자신이 있다는 거냐?’
우우웅―
나는 음혼귀주문으로 만든 귀검을 뽑으며 저주문을 끌어올렸다.
[진짜로 죽어 봐라, 서휼…!]그렇게, 서휼을 향해 고환 적출과 고통 물약, 그리고 진선의 [이름]을 보았던 고통이 담긴 저주의 귀검을 던지려 했을 때였다.
콰악!
문득 내 왼손이, 귀검을 투척하려는 오른손을 움켜쥐었다.
그리고, 내 어깨에 달려 있던 얼굴들이 까드득거리는 듯하더니 18개의 얼굴 중 6개의 얼굴이 소름 돋는 목소리로 나를 자극했다.
[후후, 서 도우. 진정하시지요.] [서 도우께서도 분체가 사축기에 오르면 좋은 게 아닙니까?] [지족의 방식으로 오른 후, 시간을 들여 천족의 방식으로도 올라 드릴 테니 걱정하실 필요는 없습니다.]나는 그들의 목소리를 들으며 침묵했다.
[….]쿠릉, 쿠르르릉!
서은현 본체의 몸에 쌍색의 천겁이 떨어졌고, 나는 말없이 귀화를 이글거렸다.
[…너, 뭐냐.] [무슨 말입니까.] [아무리 죽이면 기생하는 게 아니라 해도, 어떻게 이렇게 쉽게 기생할 수 있는 거냐.]오히려 ‘죽이면 기생하는 게 아니’라면 더더욱 기생이 어려워야 했다.
나 역시 기괴고를 흑린어령문 수사들에게 붙이기 위해 그들을 한참 밀어붙여야 했고, 기괴고를 붙이고도 그들의 정신을 한 번에 잠식시키지는 못했다.
심지어 나는 월수궁무록을 써서 기괴고를 상대에게 붙인 것이지만, 월수궁무록 사용자끼리는 서로를 알아채기가 쉬웠다.
한 마디로, 서휼이 내게 월수궁무록 비슷한 법술을 써서 기생을 시도했다 해도, 이렇게 알아채기 힘든 건 말이 안 되었다.
촤르르르륵!
나는 귀왕화를 해제한 후, 다시 녀석들이 나를 공격하려는 기색이 보이자 청린갑을 끌어와서 몸에 둘렀다.
청린갑은 내 몸 크기로 압축되며, 투명한 물이 되어 나를 둘러쌌다.
서휼들의 공격은 전혀 내게 먹히지 않았지만, 나 역시 내 안쪽에서 내 몸의 주도권을 뺏으려 하는 서휼의 시도에 의해 멈춰 있어야만 했다.
[후후, 얌전히 제게 몸을 맡기십시오. 어차피 길고 긴 인생을 살아오셨는데, 잠시만 꿈을 꾸신다고 생각하시면 됩니다.]“너 같은 사갈한테 몸을 내 주느니 괴군에게 가서 서 장군이 되는 게 낫겠군.”
[정말요?]“음… 아니, 다시 생각해 보니까 조금 아닌 거 같기도 하지만, 어쨌든 네놈한테는 뺏기지 않을 것이다.”
[후후, 하면 계속 청루 안쪽에 이렇게 무력하게 봉인되어 있으시렵니까?]콰지지직….
어느새 본체의 천겁이 끝났다.
그와 동시에, 본체는 조금 더 해룡족의 느낌이 나는 요수공법의 힘을 몸에 두른 서휼이 되어 있었다.
녀석이 사축기에 완전히 올랐다.
우우우웅―
그리고 그의 주변에 있던 흑린어령문 수도자들이 사상원영의 비술을 써서 외공간과 봉양층을 연결하는 게 느껴졌다.
“수(壽), 부(富), 유호덕(攸好德).”
파아앗!
그가 아까 보여 주었던 강녕을 제한 세 개의 축이, 외공간에서부터 이쪽으로 날아왔다.
놈이 필시 어딘가에 숨겨 놓았던 축들을 지금 다시 돌려 놓는 것이리라.
우웅, 부웅, 즈우웅!
세 개의 축은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서휼의 체내로 들어갔다.
녀석은 순식간에 사축기 대원만의 기운을 내뿜었다.
거기에 놈의 몸 위에 덧씌워진 사축기 서 장군의 기운이 연동하자, 어마어마한 힘의 증폭이 일어난다.
‘합체기…!’
이제 놈은 명백한 합체기 요왕급의 전력이었다.
서휼이 빙긋 웃으며, 청린갑을 둘둘 두르고 있는 내 앞으로 왔다.
“서 도우. 잠시만 몸을 빌리면 아니 되겠습니까?”
그는 나와 5장의 거리를 둔 채 내게 제안하듯이 팔을 벌리며 말했다.
“저 역시 도우의 몸을 평생 가지고 있지는 않을 겁니다. 단지 잠시만, 영겁을 살아왔을 도우의 기준에서 아주 잠시만 대여해 주시면 됩니다. 그조차 힘드시겠습니까?”
“네 말은 믿을 수가 없다.”
“그렇군요…. 아쉽게 되었습니다.”
서휼은 얼굴 표정을 바꾸지 않은 채, 등을 돌렸다.
“하면 어쩔 수 없이, 억지로 그 몸을 받겠습니다.”
찌이이잉―
그와 동시에, 어마어마한 의식의 힘이 내 정신을 강타했다.
‘이, 이건…?’
세뇌(洗腦).
강력한 세뇌였다.
도저히 이 암시와 세뇌를 견딜 자신이 없을 정도로, 고통스럽고 무시무시한 세뇌였다.
‘도대체 뭐야, 이건…!’
단순히 상대의 의지를 꺾는다는 개념이 아니었다.
이건 차라리, ‘나’라는 존재를 해체하는 개념이었다.
‘아… 이런 젠장….’
내 정신이 흐릿해져 갔다.
그것을 끝으로 내 시야가 암전되었다.
그렇게 생각했다.
―네가 내게서 태어났다면, 그래도 조금 의지를 보여 봐라.
찌이잉―
번쩍!
“끄허어억!”
나는 머리를 쪼개는 듯한 통증과 함께 눈을 부릅떴다.
동시에, 나는 내 앞에서 등을 돌리던 그 자세 그대로 머리통을 부여잡고 무릎을 꿇은 서휼을 보았다.
부웅―
순간, 서휼의 머리통에서 백색의 참격(斬擊)이 아주 빠르게 지난 것 같은 환영이 보였다.
그리고 서휼이 처음으로 비명을 질렀다.
“끄으으으윽…! 서 도우…!”
그는 비명을 지르면서도 웃음을 잃지 않으며 눈앞을 바라보았다.
나 역시 그의 시선이 향한 곳을 바라보았다.
그곳에는, 백의를 입고 있는 ‘내’가 서 있었다.
‘아아….’
느껴진다.
눈앞의 존재는….
“잘 지냈나, 서립?”
서은현.
나의 본체다.
부웅―
그가 한 손을 들어 올렸다.
그의 손에는, 어쩐지 총천연색으로 빛나는 한 자루의 검(劍)이 들려 있었다.
눈이 부실 정도로 밝다.
그 검은 그야말로 천지사방 모든 빛을 구현한 듯한 형태였다.
“후후, 서 도우. 어떻게 하신 겁니까? 이해가 안 되는군요. 역시 서 도우십니다.”
그는 본체를 바라보며 웃었다.
본체는 무표정하게 검을 휘둘렀다.
분명히 너무나도 눈에 띄는 빛의 검.
그러나, 너무나도 이상하게도 서휼은 그 빛의 검을 인지하지 못했다.
부웅!
슈캉!
빛의 참격이 서휼의 어깻죽지를 베어 냈다.
“후후, 전혀 인지하지도 느껴지지도 않는 공격…. 무엇인지 알 것 같군요.”
그리고 그 말에, 본체는 미소를 지으며 나를 바라보았다.
“잘 들어라, 서립. 저 말의 뜻은 ‘그거 어떻게 한 거냐!’라는 뜻이다.”
“….”
저벅, 저벅….
본체는 내게 다가와 빛의 검을 내 머리에 대고 휘둘렀다.
빛의 검은 내 머리를 투과해서 나를 쓸고 지나갔고, 그와 동시에 내 안쪽에서 속삭이던 서휼의 목소리가 일거에 쓸려 가는 게 느껴졌다.
“놈은 이 빛을 볼 수 없어. 이건 우리에게만 보이는 거니까.”
“본체… 너….”
“서립.”
그가 나를 보며 말했다.
“나는 본체가 아니다.”
“뭐?”
“나는 서은현이다.”
* * *
나는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고 있는 서립을 보며 웃어 주었다.
새롭게 탄생한 무형검을 쥔 채, 녀석을 등 뒤에 두고서, 나는 서휼을 바라보았다.
“함께 싸우자, 서립. 저 괴물을 이 자리에서 쫓아내고, 무색유리검을 되찾아야지.”
서휼이 내 안에서 월수궁무록 등 내 기술을 훔쳐 내는 동안, 나는 녀석의 정체를 훔쳐 냈다.
무시무시하고 말도 안 되는 괴물이다.
그러니, 내 몸을 되찾으려면 반드시 서립의 도움이 필요했다.
서립은 내 옆에 섰다.
“이해가 안 되지만 어쨌든….”
그가 웃으며 귀기를 끌어올렸다.
흑백의 옷을 입은 우리는 동시에 서휼에게 달려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