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Regressor’s Tale of Cultivation RAW novel - Chapter (326)
잘 가라 (6)
“따라와라.”
개전(開戰)의 서막은 서은현이 열었다.
츄아아앗!
빛.
총천연색의 별빛이 그의 손에서 빛나는 듯하더니, 그대로 종선(縱線)의 참격이 되어 구체에 직격했다.
콰드드드득!
구체 위로 별빛의 흠집이 남는다.
나는 귀왕화를 시전했다.
주변이 귀기로 충천해 있어서인지, 서은현에게 부서졌던 18개의 머리 역시 순식간에 원형을 되찾았다.
대막사해성.
식마귀몰(食魔鬼沒).
쩌억, 쩌억, 쩌억, 쩌억…!
18개의 머리가 동시에 입을 벌렸다.
그리고 입에서부터 어마어마한 흡입력이 뿜어지며, 인근에 있는 귀기와 음기를 모조리 빨아 마시기 시작했다.
어마어마한 힘이 충천한다!
오오오오―
18개의 머리의 눈두덩이에서 시퍼런 귀화가 무지막지하게 치솟아 올랐다.
동시에 주변의 음기는 일시적으로 약해져, 귀신 떼들이 뒤로 물러났다.
그러나 끝이 아니다.
저주일맥이었던 비율에게 전수받은, 축기기 공법이었던 음혼귀주문의 다음 단계.
원영기부터 익혀서 사축기 대원만까지 익힐 수 있는 공법.
흑색혈루화(黑色血淚花).
츠아아아아―
18개의 두개골 머리에서, 시커먼 검은 색의 눈물이 떨어졌다.
눈물은 대지에 흩뿌려지며, 인근의 대지 위에서 시커먼 저주문의 꽃봉오리를 틔우기 시작했다.
‘이미 한참 전에, 나는 음혼귀주문을 독자적으로 진화시켜서 흑색혈루화에 근접했던 거로군.’
저주문의 꽃봉오리는, 내가 10회차 당시 흑색귀주번으로 만들어 냈던 흉측한 덩어리와 상당히 닮아 있었다.
거기에서 느껴지는 흉함 역시 상당히 닮아 있었고.
아마 그 당시 백란축성문을 발견하지 못했다면, 흑색혈루화를 얻었을 터였다.
물론, 내가 거기에 근접했다곤 하지만 이 흑색혈루화 역시 흑색귀골곡의 저주일맥이 수 대에 걸쳐 만들어 낸 역작.
그 당시 내가 흑색귀주번으로 만들었던 저주문의 꽃봉오리는 거기가 ‘끝’이었지만, 흑색혈루화는 여기서부터가 ‘시작’이다.
끼야아아아아―
끄아아아아―
흐아아아아아!!!
꽃봉오리가 피어난다.
동시에 귀신 떼의 귀곡성보다 큰 비명 소리가 일대를 채우기 시작했다.
검은색의 꽃들은 꽃이라기보단 차라리 몇 갈래로 갈라진 뱀의 아가리 같았고, 그 안쪽에는 눈알 같아 보이는 것이 뒤룩뒤룩 움직이고 있었다.
보통 흑색혈루화를 한 송이 피워 내면 1성.
세 송이를 피워 내면 2성.
다섯 송이를 피워 내면 3성으로 분류하며, 각각 원영 초기, 중기, 후기 정도의 경지에 해당되었다.
여덟 송이는 4성으로 원영기 대원만.
열 송이는 5성.
스무 송이는 6성.
서른 송이는 7성.
쉰 송이를 만들어 화단(花壇)을 만들어 내면 8성으로, 여기까지가 천인기 대원만에 해당하는 경지였다.
이후 백 송이를 피워 내면 9성, 이백 송이를 피워 내면 10성, 삼백육십 송이를 피워 내면 11성으로 사축기 후기에 해당되었고, 일천 송이를 피워 화원(花園)을 만드는 데에 성공하면 12성으로 대성한 것이었다.
그리고, 내 주변으로는 세는 게 불가능할 정도로 많은 흉측한 꽃들이 피어나며 삽시간에 직경 10리를 꽉 메웠다.
그 흉험함에, 구체를 지키던 귀신들마저 움찔거리며 뒤쪽으로 물러섰다.
촤라라라락!
내가 의지를 일으키자 주변으로 음풍이 휘몰아쳤다.
그 음풍에, 흉화(凶花)들의 꽃잎이 흩날렸다.
시커먼 저주로 이뤄진 꽃잎들이 내 앞에 모이며 검(劍)을 형성했다.
부웅!
나는 정신을 집중하며 저주로 이뤄진 화검(花劍)을 휘둘렀다.
콰아아앙!
화검의 검상이 서은현이 남긴 별빛의 검상 위로 덧씌워졌다.
그러나 아직도 구체에는 흔적만이 남았을 뿐 구체는 뚫리지 않았다.
[저주 동화.]그러나 내 화검의 검상은 그대로 구체 안으로 스며들어 간다.
느껴진다.
저 구체는 온갖 고통과 원망, 슬픔의 집합체였다.
귀신들의 한이 서린 거대한 힘의 응집체.
그 안쪽에, 나의 고통이 담긴 저주문을 자연스럽게 덧씌워서 동화시켰다.
마치 간첩처럼, 나의 흑색혈루화의 꽃잎들이 구체 안으로 스며든다.
나와 서은현이 눈빛을 주고받았다.
우우우웅!
서은현이 남긴 검흔(劍痕)이 총천연색으로 빛나기 시작했다.
* * *
어전 일 보란 무엇인가.
서은현은 눈을 빛냈다.
그가 500년 동안 스스로를 참오하며, 무형검의 본질을 읽어 갔다.
그리고, 그는 천겁화되어 한껏 비대해진 무형검을 벼려 냈다.
깨달음은 이미 자신의 안에 있다는 걸 알아챘다.
그는 자신이 익혀 온 무(武)가 가진 마음을 일깨웠고, 다시 그 마음과 스스로를 일체시켰다.
그리하여 얻어 낸 어전 일 보.
어전 일 보의 실체란 다음과 같았다.
본인의 영혼이 뭉개져 죽어 버릴 것을 각오하고서, 본인의 심상 세계를 본인의 무(武)의 안쪽으로 압축한다.
서은현의 의해은산과도 일맥상통하는 깨달음.
진정 자신의 마음이 무에 통해 있다면 무의 안쪽에 들어가도 죽지 않는다.
서은현은 알게 모르게 의해은산으로 어전 일 보의 깨달음을 예습해 왔던 것이었다.
그렇게 본인의 모든 것을 걸고 본인의 무(武) 안쪽에 본인의 마음을, 본인의 심상을 담아내어 무예의 마음과 본인의 마음을 합일시키는 데에 성공한다면 무인이 익혀 온 무예는 혼의 계위에 완전히 들어선다.
태열전 같은 경우 혼의 계위 안쪽.
심상의 근원에서 뿜어지는 힘으로 전투를 이어 가고, 장익 같은 경우 혼의 계위로 올라간 투혼을 중심으로 기의 계위의 힘을 막대하게 끌어모아 내지른다.
어전 일 보에 도달한 이들은 모두가 혼의 계위에 달한 일격(一擊)을 얻을 수 있다.
그 일격을 사용해서 상대의 심상에 자신의 심상을 박아넣을 수도 있고, 자신의 심상을 바깥에서 구현시켜 분신을 만드는 것도 가능하다.
장익이 성계에서 무수한 휘하 심족들의 심상에 박도를 박아넣어 일격을 지원하고, 유사시 박도를 통해 분신을 만들어 파견하는 것도, 김영훈이 본체와 힘의 총량을 제외하곤 완전히 같은 분신을 만들었던 것 역시 그런 이치를 통한 것이었다.
그리고 어전 일 보는 천지족의 사축기부터 합체기까지의 경지에 대응된다.
어째서인가.
그 이유는 심족들이 자신의 ‘모든 것’을 벼려 몰아넣은 어전일보의 ‘일격’이 실상 차원마저 가를 정도로, 합체기 태수의 전력을 다한 일격에 준할 정도로 강하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어전 일 보의 일격은 말 그대로 ‘모든 것’을 불어넣어야 한다.
심족들은 자신의 심상을 한 번 압축해서 날리는 ‘일격’을 날리고 나면 빈사 상태가 되어 버리기 다반사였다.
무예의 마음과 자신의 마음이 합일한 후인 만큼 전체적인 기량이 상승하지만, 어전 일 보의 심족들의 주력기는 ‘심상을 담은 일격’에 있었다.
한 번 쓰면 전투력이 방전되어 버리는, 도박 같은 동귀어진의 일격.
그렇기에 어전 일 보 초기의 심족들은 사축기 취급을 받는다.
그러나 어전 일 보에서의 공격에 익숙해지고, 능숙해지고, 더욱더 심상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지면 그들이 ‘심상의 일격’을 날릴 수 있는 횟수가 증가한다.
본인의 기량이 점차 더 올라가며 심상의 힘을 극한으로 끌어올릴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될수록 처음에는 한 번의 동귀어진의 수였던 일격은, 점차 이 격, 삼 격으로 증가한다.
그리고 심상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지고 높아지면, 어느 순간 심족은 ‘심상의 일격’을 난사(亂射)할 수 있게 된다.
그렇기에 어전 일 보의 후반에 올라 심상의 힘을 능숙하게 다루며 심상의 일격을 난사할 수 있는 심족은 어엿한 한 명의 합체기급으로 인정받았다.
그리고, 일반적인 심족들이 심상의 일격을 날린 후 빈사 상태가 되는 것은 그들의 연약한 육신으로 다룰 수 없는 힘을 다루었기 때문이었다.
그 말인즉….
츠아아아아앗!
“이 격.”
사축기 지족의 육신을 가지고 있는 서은현은, 한두 번 심상의 일격을 날린 것 정도로는 빈사 상태가 되지 않는단 뜻이었다.
일순간 서은현의 몸이 예기(銳氣)에 휩싸이는 듯 싶더니, 그가 검을 내질렀다.
콰드드드득!
다시금 빛의 상흔이 구체 위에 새겨졌다.
“삼 격.”
번쩍!
다시 한번.
“사 격.”
다시 한번.
서은현의 일격은 꽂히고, 꽂히고, 꽂혀, 총 일곱 개의 상흔이 구체에 박혔다.
“후우….”
서은현은 땀을 닦아 냈다.
구체에 박힌 빛이 더더욱 밝아진다.
오직 심족인 서은현과, 그의 시야를 가진 서립.
그리고 마찬가지로 심족의 시야를 가진 괴군에게만 보이는 빛이었다.
저 빛은 검흔임과 동시에 서은현의 분신들이었다.
“지금이다, 서립!”
서은현이 외쳤다.
서립이 수결을 맺었다.
[저주 반전.]그리고.
번쩍!
구체 안으로 흘러들어간 검은 꽃잎들이 일순간 새하얀 꽃잎으로 반전되었다.
퍼엉!
구체 위쪽에 어마어마한 휘광이 몰아치며, 커다란 바람구멍이 뚫렸다.
그와 동시에 7개의 검흔이 하나로 합쳐지며 구체 안쪽을 파고들었다.
“가자!”
[부탁드립니다! 어르신!] [오냐!]부우우웅―
서은현과 서립이 구체 안쪽으로 들어갔고, 그 뒤로 어마어마한 괴뢰 떼들이 따라 들어갔다.
두 사람이 얼마나 서은현의 참격을 쫓아갔을까.
그들의 눈앞.
저 멀리 섭명함이 보였다.
“공간이 왜곡되어 있군.”
서은현은 밖에서 본 구체보다 큰 안쪽의 공간을 달리며 뇌까렸다.
부우우웅!
괴뢰 떼들이 섭명함에 달라붙어 섭명함을 끄집어내려 했다.
그러나, 섭명함은 그 자리에 붙박인 것처럼 꿈쩍하지 않았다.
섭명함의 아래쪽.
시커먼 귀신들이 물처럼 모여서 섭명함을 붙들고 있었다.
서립이 귀화를 이글거리며 호령했으나, 귀신들은 두려움에 떨지언정 물러서지 않았다.
서은현 역시 귀신들을 담담히 노려보았다.
귀신들은 서립보다도 서은현을 더더욱 무서워하는 듯했으나, 여전히 비키지는 않았다.
서은현은 혀를 차며 말했다.
“떼어 내야겠군. 나는 섭명함을 떼어 낼 테니 너는 빛을 쫓아가라.”
서은현이 서립을 보며 어딘가를 가리켰다.
그곳에는 서은현이 날렸던 7개의 참격이 합쳐진 참격이 섭명함 너머, 어둠의 공간을 뚫으며 계속 나아가고 있었다.
[저기는….]“내 시야로 봤을 때, 저 중심 깊은 곳에 그녀의 심상이 있었다. 아마 중심에 강민희 본체가 있겠지. 가라, 서립.”
[….]서립은 서은현을 바라보았다.
[서은현.]“뭐냐.”
[왜 강민희를 구하러 온 건지… 이유를 말해 주지 않았다.]서은현은 그 말에 잔잔한 미소를 지었다.
“얼마 전까지도 본체라고 부르더니, 이제는 말해 줘야만 아는 거냐.”
어쩐지 책망하는 듯한 말투.
그러나 그의 표정은 그와는 반대로 기쁨으로 물들어 있었다.
“너도 내게서 비롯되었으면 알고 있잖나.”
서은현은 서립에게서 등을 돌렸다.
쿠구구구구―
서휼이 변형시킨 창령성광오채대법의 별빛이, 서은현의 전신에서 빛나기 시작했다.
그의 몸이 점차 창호자처럼 거대해지기 시작했다.
서은현은 별이 빛나는 밤을 몸에 품은 거인(巨人)이 되었다.
[사람은 태어나서 자라기까지, 필설로는 표현할 수 없는 은혜를 받아 온다.]서립은, 그 모습에서 그의 기억.
아니, 서은현의 기억 속에 있던 한 거인의 모습을 겹쳐 보았다.
[그 은혜를 갚기 위해, 이 세상에 보답하기 위해 발버둥 치는 건 우리의 임무이자 의무이며 특권이지.]쿠드드드득!
별의 거인이, 귀신들로 인해 땅에 붙박인 섭명함을 쥔 채 땅에서 뜯어 내기 시작했다.
“차, 창호자 님이다!”
“창천개벽문에서 구하러 왔어!”
섭명함에 남아 있던 몇몇 흑색귀골곡의 제자들이, 별의 거인을 보며 환호성을 질렀다.
[불가능한 꿈을 향해 끝없는 고난을 이기며 나아가고, 견딜 수 없는 고통을 견딘다. 그렇게 발버둥 치며 살아가는 게… 우리들이다.]서립은 멍한 얼굴로 거인의 등을 바라보았다.
[네가 네 의지로 발버둥 쳤기에, 네가 네 의지로 헤쳐나가고자 했기에, 네가 네 의지로 믿음을 가지고 별에 닿으려 했기에… 나는 너를 돕기로 했다. 가라, 서립. 지성이면 하늘도 돕는다는 말은 거짓일지 몰라도, 나는 너를 도울 거다.] [….]서립은 침묵했다.
그리고는 등을 돌려, 서은현의 참격을 쫓아갔다.
‘쫓아가기만 하는구나.’
그의 등 뒤에서 흑색귀골곡 제자들이 환호하다가, 바깥으로 나가 기묘성채를 마주치자 비명을 지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아마 곧 서은현도 그를 쫓아올 터였다.
다시 앞지를 터였다.
아니, 이미 저 앞에서 어둠을 사르고 있는 서은현의 참격들이 서은현의 분신이나 다름없기에 이미 앞지른 상태였다.
‘나는 네 등만 보고 있군.’
서립은 서은현을 따라 달려나가며 이를 악물었다.
이미 그와 갈라진 것은 인지했다.
회귀는 어찌 될지 몰랐지만 이미 둘은 타인이었다.
그리고 서은현은 서립을 존중해 주고 있었고, 언제든지 그의 품에서 독립할 수 있게 밀어주었다.
그러나 서립은 마음 한구석이 답답한 것을 느꼈다.
왜인지는 그 자신도 몰랐다.
얼마나 어둠의 길을 따라 달렸을까.
파아아앗!
서은현의 참격이 힘을 전부 소진하고 사그라들었고, 서립은 마침내 길의 끝에 도달할 수 있었다.
그곳에는 팔척귀물의 형상을 한 거대한 귀도성모가 몸을 웅크리고 자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