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Regressor’s Tale of Cultivation RAW novel - Chapter (337)
노괴의 발광 (5)
‘흠, 저건 또 뭐지.’
분명 오혜서가 맞다.
하지만 너무나도 기묘한 위화감이 드는 오혜서였다.
나는 무표정한 상태로 내색하지 않고 입구로 걸어갔다.
분명 오혜서는 맞다.
하지만 인간이라면 당연히 느껴져야 할 기본적인 심장 박동이나 생명의 파동.
그리고 의식의 파동 같은 게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그렇군. 투영인가.’
나는 주변 동료들에게로 의식을 집중했다.
기이하게도 동료 중 누구도 오혜서를 보고 반응이 없었다.
그녀가 평소 회사에서 어떤 인기인이었는지를 생각하면 전부 오랜만에 봐서 반갑다는 듯 아는 척을 해야 한다.
그러나 이런 반응이란 건….
‘나한테만 보이는 거군. 아, 그래.’
나는 그제야 기묘한 위화감의 정체를 눈치챘다.
김영훈과 같은 감각!
그 지각을 가지고 있는 나였기에 보이는 것이었다.
본래 오혜서는 우리에게 모습을 드러낼 의도가 없었지만, 이곳에서 우리에게 무언가를 하려는 ‘의도’ 자체가 그녀의 투영으로 비치는 것이었다.
‘소름 끼치는군….’
이 감각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면 나 역시 그녀를 인지하지 못한 채 그냥 지나쳤을 터였다.
나는 일단 그녀를 알아차리지 못한 척 전신의 반응을 통제하며 흑색귀골곡으로 걸어갔다.
우우웅―
짝―
오혜서는 싱긋 웃으며 양손을 부딪쳤다.
[선수(仙獸). 유리공작.]번쩍!
맑은 휘광이 터져 나오는 듯하더니 일순간 동료들의 눈에 몽롱한 빛이 맴돌았다.
나는 체내에서 만상인연도를 끌어올렸다.
어선들을 직시하고, 이번 회차에서 [사라진] 존재들을 인식한 탓일까.
만상인연도를 조금 운용하니 유리공작의 빛에 저항할 수 있었다.
그러나 나는 오혜서가 뭘 하려나 보기 위해 일단은 똑같이 몽롱해진 시늉을 했다.
[선수, 음귀현무.]그와 동시에 대막사해성을 익힌 내 명각에 명계의 외곽이 보였다.
명계의 외곽 곳곳이 일렁이며 ‘변형’되기 시작했다.
‘오혜서….’
나는 그녀가 무슨 짓을 하려는지 눈치채고 총천검을 날릴까 고민했다.
그녀는 지금 명계의 외곽을 음귀현무의 힘으로 변형시키고 있었다.
명계의 외곽은 이 세계과 겹쳐 있는, 일종의 특수한 계위에 위치한 곳이었다.
겹쳐 있을지언정 완전히 같지는 않았지만, 서로 영향을 준다.
명계의 외곽이 뒤틀리며 현실과 뒤틀어졌다.
대막사해성의 감각에, 수많은 귀신들이 갑작스러운 재해를 맞아 비명을 지르는 게 느껴졌다.
귀신들은 절대다수가 명계의 외곽에 본체를 두고 있고, 현실에 드러나는 건 일종의 투영에 불과했다.
물론 귀왕급이 아닌 멍청한 귀신들은 본인의 본체가 명계의 외곽에 있단 것조차 대부분 인식하지 못하지만, 여하튼 귀신들이 사물을 통과하거나 하는 등의 신기를 보이는 원리는 전부 본체가 다른 계위에 있단 것을 응용한 것이었다.
그렇기에 명계의 외곽 자체를 몰아내는 파사현정의 힘이나, 계위를 뛰어넘는 힘이 아니면 본래 귀신에게는 피해를 주기가 힘들었다.
하지만 오혜서는 명계의 외곽 자체에 손을 대서 흑색귀골곡 전체에 어떠한 진법을 깔고 있었다.
동시에 그녀에게서 뿜어지는 유리공작의 빛이 우리는 물론, 흑색귀골곡 전체의 귀신들까지 전부 바보로 만드는 건지 점차 공포에 찬 귀곡성은 잦아들고, 멍청하게 귀신들이 ‘우우’ 거리는 소리만이 울릴 뿐이었다.
‘아마 흑색귀골곡 내에 있는 인간들도 전부 바보가 되었겠지.’
그러나 나는 속으로 코웃음을 쳤다.
‘조잡하군.’
진정한 귀도공법에서 기인하는 게 아닌, 그저 선수의 힘을 빌려 펼친 신통이다.
내 눈앞에서는 그저 조잡할 뿐이었다.
그녀가 깔아 놓은 진을 어떻게 파해할지, 그녀가 명계의 외곽을 뒤틀어 버린 걸 어떻게 다시 원래대로 돌리고 오히려 역이용해서 오혜서를 잡아 버릴 수 있을지에 대한 상념이 무수히 많이 떠오른다.
머릿속이 불꽃으로 번뜩이는 듯했다.
‘대막사해성에 인력을 실어서 명계의 외곽을 비틀면 너무 쉬운 일인데 말이지.’
무공이나 정도공법을 익힐 때는 한 번도 없었던 느낌.
마치 눈앞에 환한 길이 보이는 느낌이었다.
서립이 마공에 보였던 재능의 근원이 나이기 때문일까.
‘어처구니가 없군. 이렇게 쉬워 보인다니….’
나는 속으로 헛웃음을 들이키며 내색하지 않았다.
오혜서는 우리가 흑색귀골곡 안으로 들어가도록 놔두었고, 나 역시 일단 오혜서를 놔두었다.
뭔가 수작을 부리려는 것 같았지만, 제대로 수작을 부리려 할 때 그녀의 수작을 역전시켜서 혼내 줄 자신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음, 뭐지? 뭔가 이상한데….”
가장 먼저 위화감을 느낀 건 방대한 의식을 가진 김연이었다.
그녀는 자신의 정신이 순간 몽롱해졌단 걸 알았는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러나 전명훈, 오현석 등은 전혀 알아차리지 못했고 나도 일부러 알려 주지 않았기 때문에 그저 갸웃거릴 뿐이었다.
얼마 후.
우리는 흑색귀골곡의 섭명함 정박항으로 향하는 길목을 지키는 문지기를 만났다.
“태수 서은현이 흑색귀골곡 소속 제자 강민희를 만나러 왔다.”
내 말을 들은 문지기 강시는 화들짝 놀라더니, 소매에서 귀신을 한 마리 불러내어 섭명함 쪽으로 보냈다.
강시를 본 오현석과 전명훈이 눈살을 조금 찌푸렸고, 김연은 괴뢰를 하도 많이 봐 와서 그런지 그저 그런 느낌이었다.
“예, 어르신. 일단 내곡에 전음귀를 보냈으니 곧 답이 올 것입니다!”
얼마 후, 섭명함 쪽에서 두 명의 인영이 날아왔다.
익숙한 허곽과, 허령이었다.
허령은 조금 긴장한 얼굴로 내 앞에서 예를 차렸지만, 허곽은 이해가 가지 않는단 얼굴로 나를 유심히 쳐다보았다.
“내 얼굴에 뭐가 묻었나?”
“아, 아닙니다! 실례했습니다.”
허곽은 뭔가 이해가 가지 않는단 얼굴이었지만 일단 입술을 짓씹으며 고개를 떨어뜨렸다.
“이제 보니 그때부터 경지를 숨기고 계셨던 것이로군요. 그때는 제가 미숙하여 감히 선배님께 무례를 저질렀습니다.”
허곽은 결국 나를 경지를 숨겼던 괴물이라고 생각했는지, 당시 비선대에서 있었던 일에 대해 고개 숙여 사과했다.
‘어차피 그때는 진짜 원영기에 불과했다고 하면 안 믿겠지?’
오히려 선배가 자기를 놀린다고 생각할 테니, 나는 그냥 대충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오냐. 그건 그렇고 알다시피 흑색귀골곡의 제자 강민희를 만나러 왔다만?”
내 질문에 허령이 어색하게 웃으며 말했다.
“아하하, 선배님. 송구합니다만, 제자 강민희는 현재 흑색귀골곡의 비지에서 폐관 수련을 하고 있습니다. 혹 어떤 연유로 그 아이를 만나려 하시는지….”
“별거 아니다. 그냥 고향 사람이라서 만나려는 것이야. 흠, 그나저나 지금 그녀의 경지가 어떻게 되지?”
“현재 그 아이는 천인기에 진입했습니다.”
“흐음….”
나는 허령과 허곽을 쳐다보았다.
‘거짓말을 하는군.’
내가 강민희의 현재 경지를 들으면 뺏어가기라도 할까 걱정하는 걸까.
“일단 데려와 봐라. 천인기면 최소한 분체는 만들 수 있는 경지잖나? 폐관을 해서 못 움직인대도 분체는 보낼 수 있겠지.”
“예, 예! 분체가 아니라 본인을 불러오겠습니다!”
허령은 그 말과 함께 허곽에게 눈짓했고, 허곽은 냉큼 달려가 강민희를 찾으러 갔다.
그사이 허령은 우리를 섭명함 바깥.
흑색귀골곡의 가장 높은 산봉우리 끝에 있는 화원으로 안내했다.
츠츠츳―
그곳에 도착하자 온갖 기화요초가 펼쳐져 있었고, 귀기나 음기는 눈을 씻고 찾아봐도 보이지 않았다.
‘딱 빈객을 접대하기 좋은 장소군.’
우리는 허령의 안내에 따라 화원의 중심에 있는 정자로 들어가 앉았다.
짝짝―
허령이 손을 부딪치자 아름답게 생긴 강시들이 차를 타 왔다.
“우선 흑색귀골곡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서 태수님. 요 근래 태수가 막 되셨다 들었습니다.”
“그렇지.”
“대단하십니다. 저희 인족의 미래가 한층 더 밝아졌군요.”
허령은 내게 아부를 하며 얼마간 잡담을 했다.
그리고, 문득 얼마 후 그가 슬쩍 운을 띄우며 본론을 말했다.
“혹시… 태수님께서는 휘하 세력이 되실 문파를 위해 흑색귀골곡에 방문하신 겁니까?”
“음….”
딱히 그런 건 아니고 그냥 강민희를 만나려고 온 것이었지만 어째 그런 식으로 내 행보가 설명되는 것 같기도 했다.
“자세한 건 강민희를 보고 나서 말하지.”
“아, 예. 예! 당연합니다!”
그리고 얼마 후.
허곽이 저 멀리서 천인기 수준의 제자와 함께 이쪽으로 날아오고 있었다.
강민희였다.
나는 그 모습을 보며 눈을 살짝 찌푸렸다.
‘분체로군.’
본체를 데려온다 했으면서 결국 천인기 수준인 분체를 데려온 모양이었다.
‘하기야 백 년 만에 사축기가 된 제자를 웬 수상쩍은 태수 놈에게 보여 봤자 도움 될 게 없다 여길 수도 있지.’
얼마 후 강민희가 정자 안으로 들어왔다.
그녀는 내 얼굴을 보며 살짝 입술을 깨무는 듯하더니 내 맞은편에서 사무적으로 인사를 했다.
“안녕하십니까, 서은현 태수님. 오랜만에 뵙습니다.”
나는 그 모습에 약간 씁쓸함을 느끼면서 고개를 저었다.
“예의는 됐어. 그리고….”
나는 그녀를 바라보며 질문했다.
“너라면 눈치는 챘겠지? 너희 문파에 미꾸라지가 한 마리 들어온 거 같은데, 어떻게 할 거냐?”
흠칫!
강민희는 내 말에 비릿한 미소를 지었다.
“미꾸라지라기보단… 날파리인 듯싶습니다. 그리고 날파리라면 본래 때려잡는 게 제맛입니다만….”
역시 그녀도 오혜서의 분탕질을 눈치챘는지 눈을 빛냈다.
오혜서가 유리공작의 빛을 뿌렸어도, 어차피 눈앞의 강민희는 분체일 뿐이고, 본체가 조종하는 셈이니 아무 영향이 없을 터였다.
허곽과 허령은 우리의 대화를 잘 모르겠다는 듯 의아한 표정을 지었고, 나는 강민희에게 질문했다.
“날파리치곤 꽤 큰데… 천인기 수준으로 어떻게 잡으려는 거지? 최소한 인력을 다룰 수준은 되야 한다만?”
내 말에 강민희는 눈을 빛냈다.
그리고, 내 말에 숨겨진 가시를 읽어 낸 허곽과 허령이 흠칫 몸을 떨었다.
“…죄송합니다, 선배님!”
“…저희가 너무 교만했습니다. 벌을 내려 주십시오!”
역시나 각자가 최소 몇천 년을 살아온 노괴들이 아니랄까 봐, 순식간에 내 앞에서 무릎을 꿇는 처신을 보여 주었다.
하지만 동시에 아직 내가 강민희의 본체를 숨긴 것을 완전히 묻진 않았으니 그에 대해선 언급하지 않고 일단 죄를 구하는 노회함까지.
‘방심할 수 없는 노괴들이군.’
나는 혀를 차며 물었다.
“지금 내가 느끼기에 그대들 문파에 이상이 생긴 것 같은데… 알아챈 게 나와 여기 강 수사뿐인 것 같군. 외부인인 내가 힘을 쓰면 그대들이 꺼려 할지도 모르니 기회를 주겠네. 어찌할 건가?”
내 말에 두 사람은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더니 강민희를 쳐다보았다.
강민희가 둘에게 무어라 전음을 보내는 것 같았고, 얼마 후 두 사람의 얼굴이 경악으로 물들었다.
“그, 그런 일이 있었다고?”
“우린 왜 아무것도….”
두 사람은 땀을 뻘뻘 흘리는 듯하더니 말했다.
“…너와 태수님밖에 감지가 안 되는 상황이라면, 어쩔 수 없군…. 잠시 문을 열어 줄 테니 나오거라, 민희야.”
강민희가 고개를 끄덕였고, 두 사람은 내게 허리를 숙여 사죄를 했다.
“저희가 주제넘었습니다. 감히 선배님께 제자의 경지를 숨긴 죄를 청합니다.”
“애당초 고향 사람이라지 않았나. 강 수사의 재능에 대해서는 원래 잘 알고 있었네. 원래도 뛰어난 사람이었으니.”
“….”
강민희는 내 말에 무언가 말하려 하는 듯했으나, 허곽과 허령을 슬쩍 보더니 다시 입을 앙다물었다.
“그럼 문을 열겠다!”
꾸구구구국!
허령과 허곽이 즉석에서 그 자리에 어떤 진법 같은 걸 그리더니, 인력을 뿜어내기 시작했다.
쿠구구구국!
‘음기가 강한 날에만 나올 수 있는 줄 알았는데, 그냥 평소에도 사축기 원로 둘이 힘을 쓰면 나올 수 있나 보군.’
얼마 후, 정자의 한 가운데에서 공간의 균열이 열리는 듯하더니 안쪽에서 어마어마한 한기가 뿜어졌다.
츄아아아―
한기가 원형으로 퍼져 나가며, 시커먼 어둠 속에서 한 여인의 모습이 드러났다.
스르륵―
어둠을 자신의 몸에 들러 흑포로 바꿔 입은 그녀는, 푸른 귀화가 은은히 타오르는 눈을 내 쪽으로 돌렸다.
강민희였다.
츠츠츳―
그녀의 천인기 분체는 그녀가 광한계에 올라오자마자 그대로 그녀에게 흡수되었고, 나는 인근에 있는 명계의 외곽이 요동치는 느낌을 느꼈다.
나는 강민희의 본체를 보며 빙긋 웃었다.
“오랜만입니다, 강 사우.”
“아… 그것참 오랜만이네요, 서 태수님. 다만 공적인 자리니 공사 구분은 해 주셨으면 좋겠군요.”
강민희는 대놓고 불편하다는 티를 내며 억지웃음을 지었고, 전명훈과 오현석은 ‘그럼 그렇지’라는 표정이었으며 김연은 살짝 안절부절못하는 모습이었다.
“뭐, 일단 날파리부터 때려잡으면 되겠습니까?”
난 싱긋 웃으며 인력을 끌어올렸다.
“일단 그게 우선 순위긴 하죠.”
강민희는 귀기를 뿜으며 저 아래쪽 섭명함 부근을 내려다 보았다.
“그럼, 우선 꼬인 외곽을 정리해야 하니 두 분 원로님들께서….”
그리고, 강민희가 뒤틀린 명계의 외곽을 향해 손을 뻗었을 때였다.
[어머나, 우리 영업 개발부 정모인데 저만 빼놓고 이렇게 놀기 있나요?]낭랑한 음성이 갑자기 어딘가에서 튀어나왔다.
그 음성에 김연, 강민희, 전명훈, 오현석이 전부 놀란 안색이 되었다.
심지어 나조차도 너무나 갑작스러워서 흠칫 놀랄 정도였다.
[아하하, 나도 좀 끼워 줘요~]꿈틀, 꿈틀!
“…!”
내 ‘그림자’가 갑자기 꿈틀거리더니, 그림자 안쪽에서 새하얀 옷을 입은 여성이 빙긋 웃으며 나타나 양팔을 벌렸다.
‘어떻게!? 못 느꼈건만!?’
이상하다.
이 느낌은 오혜서의 느낌이 아니었다.
나는 순간 뭔가를 알아챘다.
‘이건 오혜서의 권능이 아니야. 이건… 탁혼만천!?’
순간, 나는 그동안의 경험과 사실들을 조합해서 어떠한 추론을 엮어 낼 수 있었다.
‘서휼! 그 자식이 내 그림자에 탁혼만천을 걸어 놓고, 오혜서가 서휼의 탁혼만천을 통해서 이 자리에 자기 능력으로 나타난 거야!’
오싹!
탁혼만천이 그림자 같은 추상적인 개념에 통한다는 것도 어처구니없는데, 여기에 오혜서의 권능이 합쳐지니 목덜미가 서늘해졌다.
서휼은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원격의 거리에서 나를 저격할 수 있었다는 게 아닌가?
그 자리에 탁혼만천의 힘을 빌려 나타난 오혜서의 투영은 환하게 웃으며 읊조린다.
[선수 유리공작, 음귀현무, 파산마원, 흑룡, 태호, 청붕, 백익천마.]위이이잉―
그녀의 발밑에 태극의 형상이 서리더니, 태극 아래에서부터 신령스러운 선수들의 형상이 떠오른다.
“잠깐, 너…!”
강민희가 격노하며 오혜서에게 손을 뻗었고, 나 역시 총천검을 들어 갑작스레 난입한 오혜서에게 뻗었다.
하지만 다음 순간.
“후후, 후후후….”
“후후후후….”
허령과 허곽이 갑자기 꿈에 나올 것 같은 웃음을 지으며 동시에 결인을 맺었다.
오혜서와 서휼이, 동시에 힘을 쓴다.
“혈음귀곡미궁(血陰鬼谷迷宮).”
[만령지선상(萬靈地仙狀).]공간이, 비틀린다.
순식간에 새하얀 공간으로 주변이 뒤집힌다.
주변을 둘러보자 동료들은 보이지 않았다.
오혜서와 서휼의 합작에 걸려 버린 것이었다.
* * *
“후후, 감사합니다, 혜서 양. 덕분에 그 괴이를 포획할 수 있었습니다.”
새하얀 공간.
그 안에서 푸른 장포를 입은 서휼의 투영과, 백의를 입은 오혜서의 투영체가 서로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그나저나, 굳이 제가 숨겨 놓은 술법을 드러내며 나타날 필요가 있었습니까? 그림자에 숨길 수 있었던 건 비밀이었는데 말이지요.”
“어머나, 굳이라니요. 재밌잖아요?”
“재미라… 후후.”
서휼은 오혜서를 바라보며 빙긋 웃었다.
마치 오혜서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안다는 듯한 그 표정.
오혜서 역시 얼굴은 웃고 있었지만 서휼을 보며 맹렬하게 두뇌를 회전시키고 있었다.
‘이 작자는 무슨 생각을 하는 거지.’
‘내 계획을 아는 건가.’
‘그럴 리가. 하지만 서휼의 법술은 생각을 읽어 낼 가능성도 있으니 조심해야 해.’
‘표층 심리에는 쓸데없는 잡생각들을 띄워 놓고 중요한 생각은 안쪽에서 해야겠어.’
‘뭐, 좋아. 어쨌든 서휼은 조금 있으면 명계의 외곽을 변형시켜 만든 이공간에서 나갈 테니까 그 틈에 서은현과 몰래 접촉해 봐야겠어.’
오혜서의 머리가 맹렬하게 돌아갔다.
그리고, 서휼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저는 이 공간에 오래 있으면 곤란하니 잠시 나가서 저들을 완전히 사로잡을 준비를 하고 있겠습니다. 혜서 양은 잠시 이곳에서 공간을 유지시켜 주시지요.”
“맡겨만 주사와요.”
오혜서는 서휼을 배웅하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섰고, 서휼은 백색의 공간에서 나가려 등을 돌렸다.
그때였다.
쿠웅―
어디선가 육중한 굉음이 들렸다.
서휼은 뒤를 돌아보더니 후후 웃었다.
“저런. 뭐, 저럴 줄 알았습니다.”
“예?”
오혜서는 순간 상황 파악이 안 되어 소리가 울린 진원지를 보았다.
“무슨….”
그리고.
콰장창!
백색의 공간에 금이 가며, 그 안쪽에서 뻗어 나온 손이 오혜서의 발목을 붙잡았다.
“아니, 이건 또 무슨!!!”
오혜서의 눈에 동공 지진이 일어났고, 서휼은 황급히 인력을 써서 백색의 공간의 문을 열었다.
“아니, 잠깐! 대군님, 서휼! 같이 가!”
오혜서가 황급히 서휼에게 소리쳤으나 서휼은 후후 웃으며 문을 넘어간 후 망설임 없이 문을 닫아 버렸다.
콰아앙!
츠츠츠―
백색의 문은 환하게 빛나는 듯하더니 백색의 공간에서 흩어져 버렸다.
오혜서는 헛숨을 들이키며 등 뒤에서 그를 바라보는 38개의 눈동자와, 저 앞에서 들리는 서휼의 목소리에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후후, 혜서 양. 무사히 현실로 돌아오시길 기원합니다. 혜서 양의 육신은 제가 잘 지켜 드리겠습니다.]“서휼…! 당신…!”
끼야아아아―
키야아아―
흐아아아아아―
백색의 공간이 오염되며, 더러운 꽃들의 화원으로 변화한다.
콰악!
꿈에 나올까 무서운 존재의 팔이 오혜서의 어깨를 짚었다.
[오랜만이군, 오 사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