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Regressor’s Tale of Cultivation RAW novel - Chapter (346)
망인 (7)
어두운 지하실.
“후우, 이제 전부 완료했어요.”
“좋아, 이제 그것만 새기면 완성되겠군.”
38개의 눈을 가진 괴물과, 그 옆에 서 있는 한 여인이, 눈앞에 있는 자그마한 인형을 보며 웃었다.
자그마한 여자아이 형태의 인형.
그리고 그 안에 봉인되어 버린 위음문의 문주, 음와는 분노에 치를 떨었다.
“이 사악한 마교도 놈들, 나를 이 꼴로 만들어 놓고 무슨 짓을 할 셈이냐!”
“후후, 걱정 마라. 별짓은 하지 않을 거다. 안심해라.”
“걱정 마시죠, 얌전히만 계셔 주신다면 위협을 가하진 않을 테니까요.”
김연은 그런 음와를 슬쩍 집어들었다.
음와는 김연의 손 안에서 마구 발버둥 쳤지만, 괴뢰 곳곳에 박혀 있는 봉인주술이 그녀의 모든 힘을 봉하고 있어 힘을 쓸 수 없었다.
“오히려 감사하셔야 할 거요. 아마 계속 귀체로 교주님의 앞에 계셨다면 정말 미쳐 버렸을 수도 있으니까.”
어느새 지하실로 내려온 연위가 벽에 기댄 채로 음와에게 말했다.
“해당 괴뢰에 들어간 귀물은 교주님의 진정한 죽음을 느껴도 인식을 방해해서 제대로 느끼지 못하게 하지. 지금 당신이 비명을 지르며 멍청하게 크아악 거리는 게 아니라, 또렷한 이지를 가질 수 있는 것 역시 교주님의 은혜이니 감사하시기나 하시구려.”
“크으윽, 이 마교도 놈들이 나를 이런 꼴로 만들어 놓고 대체 뭐라 지껄이는 거야! 빨리 나를 풀어 줘라!”
“흐음. 잠시 줘 봐라, 연아.”
연위는 김연에게서 음와를 받아들더니, 잠시 후 어딘가로 음와를 던졌다.
“흐아앗! 지금 나를 어디로 던지는 거냐 이 마교도 놈들! 으아악, 힉!”
그리고, 던져진 음와를 두툼한 손을 가진 누군가가 받아들었다.
“앞으로 위음문주의 감화는 자네에게 맡기겠네, 제1 수호귀왕 위시혼.”
“감사합니다, 군사님.”
시후종의 종주이자, 무극교단에 뜻을 바치기로 한 위시혼이었다.
“위시혼! 이 배신자 놈! 어떻게 당신이 나를 배신할 수 있단 말이야!”
음와는 위시혼의 손안에서 꼬물거리며 마구 소리를 질렀고, 위시혼은 그런 음와를 안쓰러운 눈으로 보며 말했다.
“오히려 당신들을 생각했기 때문에 무극교단에 입교한 것이오. 그리고 당신도 무극교단에 대해 마음을 돌리면 제대로 된 괴뢰 육신을 받을 수 있을 거고, 교주님의 은총인 회로도 각인받아서 이전보다도 강한 힘을 가지게 될 것이오.”
“힘만을 바라며 우리를 배신한 배신자에게서 아무것도 듣고 싶지 않다! 어서 나를 내보내 줘!”
“당신을 내보내는 것은 차후의 일. 일단 나와 함께 무극교단에 대해서 알아보도록 합시다.”
위시혼은 음와를 데리고 나갔다.
무극교전에서 나온 위시혼은 그의 손아귀에서 빽빽거리는 음와를 놓치지 않도록 소중히 잡고 어딘가로 이동하려 했다.
그때였다.
콰르르릉!
문득 하늘이 붉게 물들며, 전명훈이 위시혼의 옆에 내려앉았다.
전명훈의 손에는 새하얀 두개골이 하나 잡혀 있었다.
음와는 그 모습을 보며 비통하게 울부짖었다.
“백리이이인!!! 당신마저!!!”
그러나 수행이 봉인당한 그녀와 다르게 위시혼은 뭔가를 눈치챘는지 전명훈에게 물었다.
“잠깐, 대호법. 그 두개골은….”
“그래, 놓쳤다.”
전명훈은 무심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두개골을 들어보았다.
그 말에 음와는 비로소 안심한 듯 위시혼의 손아귀에서 안도의 한숨을 내뱉었고, 위시혼은 눈을 찌푸렸다.
“내가 백린에 대해서도 미리 설명해 주었잖소. 비상시가 되면 구명법술인 ‘백골탈각지계(白骨脫殼之計)’로 육신을 버리고 원영만 빠져나갈 수 있다 하지 않았소?”
전명훈은 위시혼을 바라보며 말했다.
“분명 원영이 몸을 버리고 빠져나간다고 설명을 해 줬었지.”
“그렇소! 그런데 어찌 놓친 거요!”
“그런데 원영이 수천 조각으로 분리되어서 각자가 축지법을 쓰며 도망친단 말은 안 하지 않았나.”
“음…! 그, 그건… 백골탈각지계 극성(極成)에서나 쓸 수 있는 신통인데…?”
전명훈은 혀를 쯧 찼다.
“아무래도 네가 모르는 사이 구명공법을 대성이라도 했었나 보군. 뭐, 어쨌든 이번에 처음 본 법술이라 조금 당황해서 놓쳤을 뿐이다. 다음에도 똑같은 법술을 보면 절대 안 놓친다.”
전명훈의 말에도 위시혼은 침음성을 흘릴 뿐이었다.
“복잡하게 되었구려….”
“뭐가 복잡하단 거지?”
“백린은 천인기 시절 흑색귀골궁의 한 원로에게 은혜를 입힌 적 있소. 시간이 지났으니 그 원로도 흑색귀골궁의 흑색 원로가 되었을 터. 어쩌면 그가 흑색귀골궁의 지원을 등에 업고 교에 도전해 올 수도 있단 말이오.”
“흠….”
그 말에 잠시 고민하는 듯하던 전명훈은 피식 웃었다.
“뭐, 상관은 없다. 우리에겐 교주가 있잖나.”
위시혼은 ‘교주’를 절대적으로 신뢰하는 전명훈을 보며 한숨을 쉬었으나, 다시금 서은현을 떠올렸다.
19개의 머리에 38개의 안광을 가진 존재.
‘뭐… 교주라면 괜찮을지도 모르겠군.’
위시혼은 무극교전으로 들어가는 전명훈을 돌아본 후, 고개를 돌려 음와를 데리고 무극교단의 다른 곳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 * *
“흐음, 흑색귀골궁이라….”
무극교전 지하.
공령지 뒤쪽 교좌에 몸을 뉘인 무극귀왕 서은현이 교좌의 팔걸이를 톡톡 두들겼다.
“일단 연위 님은 어찌 생각하십니까?”
연위는 전명훈의 보고에 고개를 저었다.
“걱정할 건 하나도 없다. 어차피 이 백음역은 봉래도와 유명귀궁 사이의 불가침 지역. 흑색귀골궁이나 화도서천궁이 이곳에 개입하려 하면 오히려 유명귀궁과 봉래도 쪽에서 막아 줄 거야. 자기들이 못 먹은 떡을 다른 거대 세력에 넘겨줄 정도로 놈들이 착한 놈들은 아니니까. 오히려 흑색귀골궁이 오면 유명귀궁이나 봉래도의 후원을 받을 수도 있을 게다.”
“흐음, 그렇군요.”
서은현은 보고를 받고 고개를 끄덕였다.
“하면 지금은 일단 경거망동하지 않고, 천천히 세력을 키우는 것에 집중하는 게 좋겠지요?”
“그래, 그게 좋을 거다. 천천히, 느리지만 빠르게 무극교단의 괴뢰 제공이라는 이점을 살려서 백음역을 집어삼키는 게 가장 우선이다. 백린이란 놈이 흑색귀골궁을 데리고 왔다 해도 백음역을 네가 지배하고 있으면 지배권을 인정하고 물러갈 수밖에 없을 거다. 후후….”
“알겠습니다. 하면 앞으로 200년 정도는 경거망동하지 않고 세력을 키우며, 수축을 쌓는 것에 집중하도록 하지요.”
그렇게 침입자를 저지한 후, 무극교전에서의 짧은 회의는 끝이 났다.
* * *
부웅, 붕, 붕!
김연은 회의가 끝난 후, 자신에게 배정된 훈련장으로 와 기수식을 잡았다.
‘어떻게 하면 이 감정이 뭔지 알 수 있을까.’
단순히 오기조원의, 의념의 색상을 보는 시야로 구분하면 된다고도 생각했다.
하지만 기이하게도, 김연이 느끼는 감정의 색상은 ‘무색(無色)’이었다.
그녀는 도대체 자신의 감정이 무엇인지 알 수 없었다.
‘기쁨은 금색, 분노는 적색, 슬픔은 검푸른 색, 즐거움은 은색, 사랑은 연분홍색, 증오는 검붉은 색, 욕망은 흑색.’
이것이 그녀가 기묘성심전과 오기조원에 통달하며 눈에 담은 색상들이었다.
오기조원에 도달하며 분명 그 색상들이 통합되며 무색이 되어 의식 영역을 이루는 걸 확인하긴 했었다.
그렇다면 그녀가 보는 이 무색의 감정은 분명 ‘모든 감정’이었어야 옳다.
하지만 김연은 알 수 있었다.
‘달라, 모든 감정이 아니야.’
분명 오기조원에 달할 때 본 것과 같은 무색이었지만, 김연은 자신의 감정이 만드는 또 다른 무색이 상당히 특이하고 또 특별한 감정이란 걸 알 수 있었다.
‘이 감정은 뭘까.’
그녀는 본능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이 감정의 ‘이름’을 알아내는 그 날.
그녀는 이 감정의 진짜 색상을 볼 수 있을 터였다.
“후우….”
그녀는 비익무를 반복했다.
동시에 연리지심의 내공심법을 반복해서 운용하며 내공심법에 익숙해졌다.
우우웅―
정순지력이 그녀의 체내 경맥을 무섭도록 빠른 속도로 휘몰아쳤다.
우우웅―
김연은 허공을 향해 손을 뻗었다.
그녀의 손길에 따라 정순지력이 허공에 맺히며, 그녀가 의식을 불어넣을 때마다 그녀의 뜻대로 움직였다.
이기어강의 초입 단계.
허공에 강기를 불어넣고, 강기에 의념을 입력해서 자유자재로 움직이는 것을 연습하다 보면 등봉조극이란 경지에 도달한다 했다.
‘등봉조극에만 오르면 내가 압도적으로 강해질 거라 했지.’
서은현은 그렇게 말했었다.
김연은 의식의 힘을 직접적으로 활용하는 등봉조극에만 올라도 어마어마하게 강해질 거라고.
서은현의 말은 틀린 것이 없었다.
합체기 수준의 의식을 지닌 그녀가 등봉조극의 가속을 사용하기 시작하면 직접적인 전력이 말도 안 될 정도로 뻥튀기될 터였으니 말이었다.
그러나 그녀는 연리지심을 운용하며 그런 생각을 했다.
‘압도적으로 강해지면, 이 감정의 이름을 찾을 수 있을까.’
그녀가 감정의 이름을 찾으려는 건 단순히 자기만족이 아니었다.
기묘성심전에 의하면, 기묘성심전을 대성한 순간 못 읽어 내는 의념이 없어야 했다.
하지만 그녀는 한 가지 의념을 못 읽어 내고 있었다.
그러므로 그녀는 아직 기묘성심전을 대성하지 못했단 것이었다.
‘기묘성심전을 대성해야 해.’
괴군은 그녀에게 깨달음을 담은 법구를 남겨 주었다.
김연은 그 법구에서부터 괴군 본인을 저지할 수 있는 깨달음을 얻었고, 그 깨달음을 얻기 위해서는 기묘성심전을 대성해야 한다는 걸 알았다.
하지만, 그녀는 간혹 헷갈리기도 했다.
자신이 기묘성심전을 위해 이 감정을 알아내려 하는 건지.
아니면 감정을 알아내기 위해 기묘성심전을 대성하려는 건지.
‘…모르겠네.’
그녀는 비익무를 반복했다.
반복하고, 반복하고, 또 반복했다.
‘모르면 일단, 은현 오빠가 말해 준 대로 하자.’
그녀는 몰라도, 그는 분명 맞을 것이다.
여태까지 계속 그래 왔으니까.
한 발 한 발을 디디며, 그녀는 옛 기억을 떠올렸다.
* * *
“안녕하세요, 오늘부터 함께하게 된 오혜서 주임입니다. 오 주임이라고 불러 주세요.”
그녀가 사원이 되고 얼마 후.
이웃 부서에서 새로운 사람이 부서 이동을 해 왔다.
오혜서라는 사람이었는데, 듣기로는 원래 있던 부서에서 부서 내 따돌림이 이뤄졌었다고 했다.
그리고 따돌림의 주모자인 관리부 팀장 한 명이 징계 위원회에 회부되었고, 그 후 해직 처리되어 회사를 나가게 되었으며, 따돌림의 피해자인 오혜서는 트라우마 때문에 해당 부서에서 있고 싶지 않으며 다른 부서로 이동하기를 희망했단 것이었다.
“헉, 저런. 힘드셨겠어요.”
“음, 아니에요. 그래도 임 팀장님 빼고는 모두들 잘해 주셔서 그렇게 힘들진 않았어요.”
김연은 부서 이동해 온 첫날부터 그녀에게 말을 거는 오혜서와 자기도 모를 정도로 순식간에 친해졌다.
“저는 영업 개발부 일은 잘 모르니까, 김연 씨가 잘 가르쳐 주세요.”
“에이, 아니에요. 저는 사원이고 주임님은 주임이신데….”
“그래도 먼저 계셨던 분이 훨씬 잘 하시죠. 그렇죠, 민희 씨?”
강민희는 커피를 한 잔 마시며 그녀를 슬쩍 보고는 무표정한 얼굴로 대답했다.
“예, 뭐.”
“…흑, 대답을 짧게 해 주시니까 슬퍼요.”
별 신경을 안 쓰는 강민희를 보며 오혜서는 우는 시늉을 하며 장난을 쳤고, 그 모습이 꽤 호감이었는지 부서의 남자 직원들이 장난스레 그녀에게 말을 걸곤 했다.
점심시간, 김연은 강민희와 함께 햄버거를 먹으며 오혜서에 대해 말했다.
“민희 언니, 이번에 들어오신 오 주임님 정말 대단하지 않으세요? 따돌림당하고 오신 건데도 그렇게 항상 밝게 지내시는 게 정말….”
“흠….”
강민희는 심드렁하게 감자튀김을 씹으며 말했다.
“걔… 엄청 찝찝하던데.”
“에, 예? 왜요?”
“그야 이번에 나간 관리부 임 팀장. 나가기 전에 오혜서한테 사과하는 걸 봤거든. 그동안 괴롭혀서 미안하고, 자기가 왜 그랬는지 모르겠다면서 신경 못 써 줘서 미안하대. 정말 울면서, 진심으로 사과하는 거 있지?”
“엇, 그런 사람이 왜 따돌림을….”
“그게 이상하단 거야. 나도 임 팀장은 좀 아는데, 엄청 착한 분이셔. 마음도 약하시고, 동물도 좋아하고, 고아원에 봉사도 다니시는 분이야. 특히 SJD에서 후원하는 고아원, 오란도란한 집에 엄청 자주 봉사를 가셔서 윗분들도 엄청 좋게 봤고, 승진도 예정되어 있었거든. 그런데 그런 사람이 뭐가 아쉬워서 오 주임을 따돌렸을까.”
김연은 강민희의 감자튀김을 뺏어 먹으며 생각하는 표정을 지었다.
“음, 그냥 첫눈에 봐서 마음에 안 들은 게 아닐까요?”
“그럴 리가 있니. 첫눈에는 마음에 안 들어도 이 회사에서 상사한테 욕먹어 가며 일 같이 하면 친해질 수밖에 없는데…. 여튼 난, 어째 정말로 따돌림 같은 게 있었던 게 아니라고 생각해.”
“예? 그럼 뭔가요?”
“그건 말이지… 근데 내 감자튀김 어디 갔니?”
점심시간에 강민희에게 조금 찜찜한 소리를 듣긴 했지만, 그녀는 그래도 오혜서를 보면 호감이 치솟는 걸 느꼈다.
아니, 오혜서는 사실상 모두에게 호감을 사는 사람이었다.
금세 강민희의 말을 전부 잊어버린 김연은 오혜서와 친하게 지냈다.
심지어 오혜서는 능력도 좋아, 부서 이전을 한 지 사흘 만에 강민희를 제치고 부서 내의 최고 엘리트가 되었다.
어느새 오혜서와 김연도 언니 동생 하는 사이가 되었다.
서은현이 시키는 일은 항상 쉽지 않은 일들이었지만 언제나 오혜서는 본인이 어려운 일들은 전부 맡고, 김연에겐 쉬운 일들만 시켰기에 자연히 서은현보다 오혜서 쪽과 말을 많이 하게 되었다.
“아, 혜서 언니. 이거 다 했어요.”
“으음, 고마워. 아, 연아. 이거 실수했네?”
“네? 아, 죄송해요.”
“괜찮아, 우리 사이에 뭘.”
또한 오혜서는 김연이 무슨 실수를 해도 그냥저냥 넘어가는 편이었다.
하지만 서은현은 반대였다.
“김 사원님, 이거 문서명이 틀렸잖아요.”
“죄, 죄송합니다.”
“서식도 조금 오류가 있네요. 저번에 준 B12 서식 쓴 거 맞아요?”
“사실… 다른 거 썼습니다. 죄송합니다.”
“…그 서식 쓰라 했잖아요. 왜 이상한 거 써요?”
“죄송합니다.”
‘혜서 언니는 항상 이 서식으로 달라 하셨는데….’
“다시 해 오세요.”
정색하는 서은현에게서 서류를 받아 처음부터 다시 하며, 김연은 입을 살짝 내밀었다.
분명 처음에는 그랬었다.
하지만 언젠가부터 시간이 지나며, 뭔가가 이상해지기 시작했다.
“어머, 연아. 이거 또 틀렸다.”
“아, 그런가요?”
오혜서는 항상 그녀가 작업한 서류에서 실수를 찾았다.
하지만 서은현은 어느 순간부터 말이 없어졌다.
“아, 고마워요. 가 보세요.”
“어… 주임님?”
“예?”
“저 실수한 거 없나요?”
“음, 실수한 거 없는데요?”
“다른 분은 이거 틀렸다 하시던데…?”
“엥? 누가 그래요?”
“오 주임님이….”
“아… 혜서 씨가요? 뭐지? 내가 틀렸나? 우리 전부 이렇게 쓰는데….”
잠시 문서를 뒤적여 보던 서은현은 고개를 저었다.
“김연 씨, 이거 틀린 게 없는데요? 그냥 혜서 씨가 뭐 다른 걸 짚어 준 거 아닐까요?”
“아… 역시 제가 잘못 기억했나 보네요. 죄송합니다.”
“뭘요, 요새 많이 성장하셔서 늘 도움 되고 있어요.”
서은현은 그녀의 실력이 늘어가는 만큼 더 이상 그녀에게 한소리를 하지 않았다.
하지만 오혜서는 처음 그대로, 실수를 하지 않았음에도 억지스럽게 실수했다고 하며, 웃으며 넘어간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왜지?’
김연은 뭔가 싸함을 느꼈지만 일단 넘어갔다.
하지만 오혜서 때문에 한 사건이 생긴 적이 있었다.
회식이 끝난 후였다.
모두가 조금씩 취한 상태.
김연은 특히 조금 헤롱헤롱한 상태였다.
김연은 동료들이 헤어지기 전, 문득 오혜서가 서은현을 따라가는 걸 보았다.
‘어? 뭐지? 혜서 언니….’
그녀는 오혜서를 쫓아갔다.
처음에는 단순히 인사나 하려는 마음이었다.
하지만 어느 순간, 오혜서가 사라졌다.
‘…?’
어둠 속 어딘가로 숨어 버린 듯, 도저히 오혜서를 볼 수가 없었다.
하지만 오혜서 특유의 향수 냄새는 계속 코끝을 맴돌았다.
오혜서는 분명 주위 어딘가에 있었다.
오혜서는 사라지고, 향수 냄새는 코끝에 남고, 그 향기의 근원은 서은현 근처에 있는 이 기묘한 상황.
어느 순간 김연은 홀린 듯이, 오혜서를 찾기 위해 서은현을 쫓아갔다.
하지만 김연이 오혜서를 찾는 것보다, 서은현이 엉성하게 그를 쫓아오는 김연을 발견하는 게 먼저였다.
“…어….”
“…김연 씨?”
서은현과 눈이 마주친 김연은 멍청한 얼굴로 입을 벌렸다.
‘아, 혜서 언니 쫓아온 건데….’
어째 상황이 이상해졌다.
서은현은 김연을 보며 조금 당황한 듯 물어왔다.
“왜 여기 계세요?”
그리고, 김연은 잠시 말문이 막혔다.
평소에도 조금 어렵게 생각하던 서은현이었다.
그리고 지금 상황은 그녀가 서은현을 스토킹하다 걸린 것 같은 상황이 아닌가.
“어… 그게….”
‘혜서 언니가 서 주임님을 스토킹하고 계시길래 혜서 언니가 도대체 뭘 하는가 싶어서 따라와 봤는데요.’
김연은 그렇게 말하려 했지만, 정작 나온 건 다른 소리였다.
“혜…혜… 서 주임님… 스토킹….”
그리고 서은현은 잠시 그녀의 말을 해석하는 듯하더니 청천벽력 같은 소리를 내뱉었다.
“저 스토킹하셨다고요?”
“앗, 아아, 아니….”
다행히 서은현은 빙긋 웃었다.
“아하하, 농담이에요. 술 취하셔서 말이 잘 안 나오시나 보네. 일단 이리 오세요. 부축해 드릴게요. 그러니까… 누가 스토킹하는 거 같아서 저한테 도와달라 하신 거 맞죠?”
“으…아….”
뭔가 말하고 싶었지만 긴장한 탓인지, 아니면 술에 취한 탓인지 말이 잘 나오지 않았다.
변명하고 싶었지만 말이 안 나왔기에 그냥 그런 셈 치기로 했다.
철퍽!
“어….”
“아니, 김연 씨…. 못 걸으시겠어요?”
“…우으….”
“하… 저 앞에서 택시 불러 드릴게요. 거기까지도 못 걸으실 거 같아요?”
김연은 어째 속이 안 좋아졌다.
그녀는 못 걷겠단 뜻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어쩐지 억울했다.
자신은 그냥 오혜서를 쫓아온 것뿐인데, 왜 벌써 엎어져서 이렇게 평소에 마음에도 안 들던 상사 앞에서 이러고 있단 말인가.
서은현은 한숨을 쉬며 그녀를 어찌어찌 들어서 업었다.
“일단 저 앞에 버스 정류장까지만 업어 드릴게요. 거기서 택시 불러 드릴 테니까….”
“…주임…님… 감…사….”
그리고, 서은현의 등에 업혀 정류장으로 가던 김연은 문득 취기와 설움이 섞이며, 온갖 감정이 안쪽에서 끓어오르는 걸 느꼈다.
그리고 김연은, 그 끓어오르는 뭔가를 서은현의 등에다가 쏟아부었다.
“가, 감… 부웨에엑….”
“흐아아아아! 김연! 이게 뭔 짓이야!”
그다음부터는 제대로 기억이 나지 않았다.
서은현이 식겁하며 비명을 지르다가, 자신의 상태를 보고 괜찮냐고 여러 번 물었었다.
그리고는 집이 어디냐고 몇 번을 묻고는 김연이 대답을 못 하자, 근처 모텔로 데리고 가서 김연을 얌전히 눕혀 줬었다.
“하… 미치겠네. 이거 빨아지려나.”
김연은 모텔 침대에 누운 상태에서 비몽사몽으로 말했다.
“죄송…합니다….”
“아… 됐어요. 취하면 그럴 수… 있…겠죠. 후…. 푹 주무세요. 김연 씨 폰으로 알람 맞춰 놨으니까 내일 출근 제때 하시고, 만약 정 못 일어나시겠으면 연락이라도 주세요. 객실 열쇠는 옆에 놔두고 가요.”
말을 마친 서은현은 객실을 나갔다.
모텔에 올 때는 상당히 긴장했던 김연이었지만, 어째 별일은 없었다.
‘아, 서 주임님. 정말….’
그녀는 침대 안에서 눈을 감으며 서은현에 대해 생각했다.
‘감사…하….’
얼마 후 그녀는 곯아떨어졌다.
그날 그녀는 악몽을 꾸었다.
악몽 속에서, 그녀가 눈을 뜨자 그녀의 침대 옆에서 누군가가 김연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그녀의 손톱에 줄자를 들이대는 꿈이었다.
그 뭔가는 어쩐지 흥겨운 노래를 흥얼거리고 있었는데, 어둠 속에서 보이는 그것의 눈은 소름 끼칠 정도로 무감정한 존재의 것이었다.
그 존재에게선 진한 장미 향이 느껴졌다.
오혜서가 쓰는 것과 같은 향이었다.
김연은 비명을 지르고 싶었지만, 꿈속에서는 입이 막혀 있어서 비명을 지를 수 없었다.
검은 존재는 꿈속에서 김연의 입을 벌린 후 이빨 개수와 상태까지 센 후 사라졌었다.
다시 꾸기 싫은 악몽이었지만, 어쨌든 아침은 왔고, 김연은 어젯밤의 일을 떠올리고, 미쳐 버리는 줄 알았다.
“…아, 뒈져 버릴까.”
‘나… 서은현 주임님한테 뭔 짓을 한 거지.’
회사에서 따귀를 맞아도 할 말이 없을 거라고 생각하며, 김연은 침울한 기색으로 출근했다.
하지만 예상과 다르게 서은현은 별말은 없었다.
“오셨어요, 김연 씨?”
“아, 네…. 저, 주임님. 어제… 감사합니다.”
“아, 뭐. 많이 힘들어 보이시길래 도와드렸어요. 다음부턴 좀 적당히 마시세요. 그리고 오늘 이사님 오신다 하니까 이거 표 정리 좀 부탁드려요.”
어제 무슨 일이 있었든, 서은현은 서은현이었다.
별달라진 건 없었다.
하지만 김연의 마음은 그날 조금 달라졌다.
* * *
콰아아앙―
김연은 눈앞에 생겨난 거대한 참흔을 바라보았다.
스릉―
그녀의 손끝에 달린 비도가 윙윙 울고 있었다.
아직도 기력이 충천하다는 듯.
“흠….”
김연은 옛 기억을 떠올리며 쓰게 웃었다.
‘그때, 은현 오빠가 날 뭐라 생각했을까.’
어쩌면 그런 일이 있었기 때문에 그녀를 이성으로 안 보는 것일 수도 있었다.
하지만 정작 그 사건 이후, 김연은 서은현에게 조금 더 호감이 생겼다.
이전에는 싸늘하고, 가끔씩만 웃어 주는 일 중독 노동 악귀 서은현이었다면, 어느 순간부터 서은현의 행동이 조금 더 마음에 들었다.
있지도 않은 실수를 은근슬쩍 만들어 내는 오혜서보다, 있는 그대로 평가하기 때문일까.
아니면 업무 실력이 성장하면서 조금씩 웃어 주는 모습이 많이 보이기 때문일까.
서은현에 대한 그 마음.
첫 씨앗이 심어졌던 건 입사 첫날이었지만, 싹이 자라기 시작한 건 분명 그때부터였었다.
싹은 천천히 자라났다.
싹은 줄기가 되었고, 마음에 뿌리를 내리며 점차 굵어졌다.
김연은 지난 세월을 되돌아보며, 자신의 마음을, 무공을 갈고닦았다.
지난 세월을 되짚으며, 그녀가 자리잡은 교단에서의 세월도 흘러갔다.
수 년이 흘렀다.
오현석이 원영경의 경지를 되찾았다.
수 세월이 흘렀다.
* * *
오현석이 원영기에서 천인기 대원만이 되고, 전명훈이 오행축을 전부 쌓아 사축기 대원만이 되며, 홍범이 사축기 중기가 될 정도로 긴 세월이었다.
그동안 김연의 수선 경지는 상승하지 않았다.
상승한 것은 오직.
콰과과과광!
“기묘귀왕께서 또 힘을 쓰신다!”
“피해!!!”
“좌호법님의 사원이 박살 났습니다!”
그녀가 갈고닦아 온 무(武).
그것뿐이었다.
위이이잉―
김연은 자리에 선 채로 내공을 운용했다.
그녀의 경맥 안에서, 연리지심이 끊임없이 회전하며 하나로 이어진다.
그녀의 순수한 무공 경지는 어느덧 오기조원의 극한에 이르렀다.
하지만 김연이 익힌 무공의 힘은, 절대 오기조원의 그것이 아니었다.
쿠구구구구―
백음역 전체에 한순간 연분홍빛 광채가 흩뿌려진 듯했다.
화르르르―
연리지심의 내공이 김연의 전신에서 타오르고 있었다.
“후우우….”
그녀가 숨을 내뱉자, 그녀의 몸을 뒤덮던 정순지력이 체내로 들어갔다.
“아, 아니. 이게 무슨….”
그녀의 훈련장으로 달려온 홍범이 그녀를 보며 뜨악한 표정을 지었다.
“김연 대인, 방금 그것….”
“아, 홍범 씨 오셨나요? 아하하, 조금 세게 나갔네요.”
“…그거, 괴뢰의 힘이 아닌 김연 대인 본인의… 무공입니까?”
“네. 잘은 모르겠는데, 어느 순간부터 출력이 엄청 증폭되더라고요.”
“…놀랍군요. 허허, 심지어 아직 오기조원의 경지인 것으로 아는데….”
“걱정되게 해 드려서 죄송해요. 아이고, 엄청 부서졌네. 그래도 복구는 제가 괴뢰들 가지고 할 테니까 너무 걱정은 마세요.”
홍범은 잠시 어안이 벙벙한 표정으로 김연을 바라보다가 머리를 흔든 후 말했다.
“아, 놀라서 달려오긴 했지만, 그것보다 군사님께서 모이시라고 하셔서 말입니다.”
“연위 님께서요?”
“예, 무극교전으로 오시라 하십니다. 김연 대인은 물론 수호귀왕들과 호법들을 전부 소집하셨습니다.”
“으음, 무슨 일이죠?”
김연은 의아한 표정으로 홍범을 뒤따라갔다.
얼마 후.
무극교단의 교주인 무극귀왕 서은현이 거하는 무극교전.
그 지하실에, 여러 명의 인사들이 모였다.
대호법 육극귀왕 전명훈.
좌호법 기묘귀왕 김연.
우호법 멸혼귀왕 오현석.
수호법 홍범 등을 비롯한 무극교단 사대호법을 비롯해.
제1 수호귀왕인 위시혼.
제2 수호귀왕 음와부터 시작해, 12명의 수호귀왕들 역시 지하로 모였다.
전명훈은 서은현의 그림자를 보며 눈을 빛냈다.
“서은… 아니, 교주. 교주도 육극음뢰신을 익히셨구려. 그것도 벌써 대성하셨군.”
[…네놈 때문에 안 익힐 수가 없었다. 젠장. 좀 참지 그랬…. 후, 아니다. 못 참을 만한 모욕이긴 했지. 뭐, 잘 했다.]“잘 아는군. 솔직히 너도 비슷한 걸 당했으면 눈 돌아가지 않았겠나.”
얼마간 서로 간에 잡담을 하던 그들은, 얼마 후 마지막으로 연위가 들어오자 입을 다물었다.
서은현 역시 전명훈과 잡담을 멈춘 후 눈을 빛냈다.
[그럼, 모두 모였으니 회의를 시작하도록 하지.]그 말에 사대호법을 제한 모든 수호귀왕들은 서은현을 보며 무릎을 꿇었고, 얼마 후 서은현이 19개의 고개를 들어 말했다.
[과한 예는 거두라. 군사는 간부진을 소환한 이유를 설명하라.]“예, 교주님. 우선 여러분. 안 좋은 소식이 생겼습니다.”
연위는 딱딱하게 굳은 얼굴로 말했다.
이어진 연위의 말에 전명훈을 제외한 사대호법은 물론이고, 12명의 수호귀왕들 역시 화들짝 놀랐다.
“봉래도, 유명귀궁, 그리고 흑색귀골궁 세 개의 세력에서 저희 무극교단을 사교(邪敎)로 지정하고, 교주님을 백음역의 공적으로 지정했습니다.”
* * *
나는 교좌에 앉아서 지끈거리는 머리를 부여잡았다.
‘이렇게 될 줄은 몰랐군.’
벌써 명귀계에 온 지도 230년 차.
어느덧 동료들은 하나둘 사축기에 걸맞은 전투력이나, 혹은 사축기에 오르기를 눈앞에 두었다.
거기에 나 역시 수축을 7할 이상 쌓는 데에 성공했다.
심지어 하계 곳곳에는 이미 무극교단의 지부가 세워져, 내 힘을 빌리는 이들도 점차 많아지고 있었고, 점차 수축이 세워지는 속도는 빨라졌다.
하지만 어느 순간, 무극교단의 움직임을 통해, 유명귀궁과 봉래도에서 내가 뭘 하고 있는지를 알아챘다.
그들은 내가 백음역에서 오복축을 쌓는다는 걸 알아챘고, 오복축이 뭔지도 몰랐던 위음, 백맥, 시후 삼대문파가 백음역을 다스릴 때와는 달리, 오복축이 뭔지 아는 내가 이곳을 다스린다는 걸 탐탁잖게 생각한 모양이었다.
결국 그들은 나에게 유명귀궁과 봉래도 중 한 곳의 세력으로 들어오라고 협박 아닌 협박을 해 왔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전명훈이 유명귀궁과 봉래도에서 온 사절단을 죽여 버렸다.
이유는 전명훈이 금소해의 손을 쓰다듬는 것을 목격한 두 사절단이 전명훈을 조롱했기 때문이었다.
그 결과 양대 세력이 나를 공적으로 지정했고, 거기에 더해 지난번에 놓친 백린이 흑색귀골궁의 세력까지 끌고 와 나를 적대하며, 나는 결국 삼대세력에 공적으로 지정 당해 버렸다.
연위는 그 사실을 알게 되자 머리가 아프다는 듯 한 가지 제안을 했다.
―이왕 이렇게 된 것. 무극교단을 버리자.
―예? 그게 무슨 말입니까?
―어차피 수축도 7할이나 쌓았고, 하계에 네 힘을 빌리는 세력도 왕성해졌다. 백음역의 무극교단은 버리고, 다른 공령지를 찾아서 거기서 교단을 또 세우면 된다. 이름만 조금 바꿔서 교단을 내면 문제없다.
―그럼 교도들은 어찌합니까?
―알게 뭐냐? 네가 진짜 교주인 줄 아느냐? 역할에 너무 빠지지 마라!
―아니, 본인이 제일 즐겼으면서….
―말도 안 되는 소리. 어쨌든 내일 핵심 간부진들만 모아서 그리 발표하거라.
나는 연위의 말을 떠올리며 한숨을 쉬었다.
[하아아아….]19개의 입에서 시퍼런 숨결이 뿜어져 나왔다.
서로 불안에 떨던 수호귀왕들이 내 반응에 기립하며 경청할 자세를 취했다.
나는 옆에서 눈빛을 보내는 연위를 잠시 쳐다본 후 말했다.
[무극교단은 물러서지 않는다. 돼지 같은 삼대세력 놈들이 오든 말든, 본좌는 이 땅을 버리지 않을 것이다.]연위에겐 미안하지만, 공적이 되었으면 뭐가 어떻단 말인가.
꾸드득―
나는 허공을 움켜쥐며 미소지었다.
[이젠, 나를 따르는 이들을 지킬 정도의 힘은 있다.]더 이상 선악의 갈래에서 고민할 정도로 약하진 않은 것이다.
[나를 믿어라! 내가 너희를 지킬 것이다. 믿는 자에게 복 있으라!]“교주! 교주! 교주! 교주! 교주! 교주! 교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