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Regressor’s Tale of Cultivation RAW novel - Chapter (353)
마교 (5)
나는 광음역 위쪽에서, 저 멀리 보이는 황량한 대지를 바라보았다.
금신천뢰문의 제자들이 들어갔다고 하는 난계 지역의 시작점.
끝도 없이 펼쳐진, 생명력 없는 사막.
본래 이런 대지는 명귀계에서 흔한 편이었다.
생명력이 깃들기 힘든 대신 특정한 속성을 지닌 귀물들이 지내기 썩 좋은 편이었으니까.
하지만, 나는 이 사막이 그런 곳과는 본질적으로 뭔가가 다르다는 걸 눈치챘다.
‘귀물조차도… 보이지 않는다.’
너무 황량하다.
본래 명귀계에는 발에 채이는 게 귀물이었다.
명석한 귀물들도 있었으나, 이지가 없어 멍청한 망령들도 한둘이 아니었다.
특히 그런 망령들의 경우엔 정말 온갖 형태로 명귀계 곳곳에 자리했다.
하지만, 없다.
그 흔한 망령들조차도 보이지 않는다.
보이는 것은 끝도 없이 펼쳐진 황량한 대지.
그리고….
까각, 까가각, 까각….
황량한 대지 한가운데 덩그러니 놓인, ‘누군가의 두개골’.
나는 그 두개골을 보며, 저것이 바로 진인에게 침식된 수사의 유해라는 걸 눈치챘다.
부웅―
콰아앙!
나는 빠르게 몸을 날려 그 두개골 앞에 내려앉았다.
‘이건….’
자세히 보니, 이것은 단순한 두개골이 아니었다.
까각, 까각, 까가가각―
살아 있기라도 한 듯, 연신 입을 까딱거리는 이 두개골은 꽤 소름 끼치는 형상이었다.
그러나 이 두개골의 실체를 감지한 나는, 이것이 보이는 것보다도 훨씬 소름 끼치는 상태라는 걸 알았다.
콰각!
나는 머리통을 잡고, 땅에서 뽑았다.
콰가가각―
그러자, 황량한 대지 아래쪽에서 척추뼈같이 생긴 몸체가 같이 뒤따라 나오는 듯하더니, 일정 길이를 더 뽑아내자 척추뼈에서 수백 가닥의 징그러운 섬유 같은 것이 돋아나서 뽑혀 나오기 시작했다.
[균사(菌絲)인가.]이 땅에 내려앉기도 전 의식 영역으로 대충 확인해 본 것이긴 했지만, 역시 징그럽다.
진인에게 침식당한 수사는 원래는 평범한 귀물이었을 터였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 점차 몸체가 이런 버섯 같은 균사로 변해, 이 대지 아래에 뿌리내렸을 터였다.
우우웅―
의식 영역으로 대지 밑을 관찰해 보았다.
어마어마한 분량의 균사가 대지 아래쪽에서 꿈틀거리는 중이었다.
수천, 수억 가닥 따위로는 그 숫자를 헤아리는 게 불가능할 정도로 많은 균사였다.
‘북쪽으로 갈수록 균사 다발들이 더더욱 많아지는군.’
나는 대지 아래쪽을 침식한 균사들을 인지하며, 저 먼 곳을 내다보았다.
‘침식당한 자의 유해가 저 먼 곳에서부터 유해를 뻗어 이곳까지 균사로 이 얼굴을 피워 낸 건가.’
나는 땅에서 뽑혀 나왔음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까각거리는 두개골을 쳐다보았다.
두개골은 재미없게도 내 죽음을 보면서도 아무 반응이 없었다.
‘이미 침식당한 몸이라 상관 않는단 건가.’
나는 귀력이나 인력, 영력 등으로 이것을 자극해 보았다.
하지만 이 두개골 버섯은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 이를 딱딱거리며 내 손에서 꿈틀거릴 뿐이었다.
그때였다.
꿈틀, 꿈틀―
두개골 버섯이, 내 손 위에 균사를 내리기 시작했다.
균사가 내 손을 헤집으며 안으로 뿌리를 뻗는다.
‘놀랍군. 창령성광오채대법을 끌어올리고 있었는데, 이 단단한 육신을 그냥 뚫고 들어온 건가.’
나는 잠시 감탄하며 내 팔을 침식하는 균사를 몰아내 보려 했다.
그러나 내가 익힌 어떤 법술로도 균사를 몰아낼 수는 없었다.
‘쯧… 그냥 잘라 내야 하나.’
내가 속으로 혀를 찰 때였다.
파직!
마지막으로 사용해 본 힘에, 균사가 움찔거리며 반응했다.
[…호오.]그것은 만상인연도의 안개였다.
거기에 더해, 균사는 총천검의 힘에도 반응했다.
천겁의 기운을 머금은 총천검이기 때문일까, 균사는 총천검의 힘이 닿자마자 생명력이 죽어버리며 내 손 안쪽에서 물러났다.
우우웅―
나는 총천검과 만상인연도의 힘을 결합해서 빠르게 손 안쪽에서 균사를 몰아내고, 내 손에 들린 두개골 버섯 역시 터트려 버렸다.
퍼석!
총천검에 닿은 두개골 버섯은 그대로 재가 되어 손 아래로 쏟아져 내렸다.
콰지지직!
전명훈이 내 옆으로 날아와 물었다.
“이 땅에 대해서 뭔가 알아낸 거냐.”
[그래.]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해 주었다.
[이 균사들은 천겁에 약하다. 다만 단순한 ‘뇌전신통’에 약한 게 아니라, 육극음뢰신의 흑뢰에는 반응이 거의 없다. 그러니 네 적뢰천겁공으로 최대한 천겁을 흉내 내서 앞으로 나아가면 될 듯하군.]“그런가. 알겠다.”
[그럼 출발하도록 하지.]나와 전명훈은 다시 광음역으로 돌아왔다.
쿠구구구구―
나는 광음역의 결계 위쪽에서 출발 신호를 보냈고, 광음역이 점차 북쪽을 향해 움직이기 시작했다.
동시에 전명훈은 광음역의 북쪽 끝에서 육비 거신으로 변하더니, 육색의 깃발을 꺼내 들어 마구 휘두르기 시작했다.
콰릉, 콰르르릉!
육색의 깃발에 따른 형형색색의 뇌전들이 허공에서 뭉치더니, 적색으로 하나 된다.
전명훈은 그의 앞에 있는 적색의 뇌전 구체를 향해 주언을 내뱉었다.
그러자 뇌전 구체가 폭발하는 듯하더니, 천겁과 한없이 닮은 기운을 가진 뇌전이 광음역의 전방에 장막처럼 펼쳐졌다.
콰지지지직!
광음역은 대지 밑의 균사들을 그대로 지워 나가며 앞으로 전진했다.
우우웅―
나는 정신을 집중하며 의식 영역으로 광음역을 감싼 채 혹시나 무슨 일이 생기지는 않을지를 관찰했다.
그리고 광음역의 거대한 동체가 사막에 진입했을 때였다.
쿠구구구구!
대지 전체가 부르르 떠는 듯하더니, 대지 아래에서 꿈틀거리던 균사들이 일제히 포자를 뿜어냈다.
‘나나 전명훈이 들어왔을 땐 아무 반응이 없었다만, 큰 먹이가 들어오니 반응하는 건가.’
하지만 소용없다.
위이이잉―
심족에게 의식 영역은 곧 권능이자 힘.
그들의 구현은 절대다수가 의식 영역에 의거하여 펼쳐진다.
하지만, 그들은 처음 얻은 의식 영역이 거의 변하지 않는다.
김영훈도, 장익도.
처음 오기조원의 경지에서 얻은 의식 영역을 가지고 천지를 뒤덮을 의식 영역을 지닌 수사들 앞에서 온갖 묘기를 부려 그들을 이겨 내는 것이었다.
하지만, 나는 심족의 힘을 가진 채 천지족의 의식 영역을 가지고 있었다.
내 의식 영역은 이 광음역 전체를 뒤덮고도 남는다!
콰르르르르!
광음역을 둘러싼 내 의식이 폭풍이 되었다.
무형의 폭풍은 총천연색으로 휘몰아치며, 포자들을 일일이 전부 튕겨 내었다.
튕겨 나간 포자들은 그대로 재로 변해 사막으로 떨어졌고, 우리는 그렇게 이 거대하고 황량한 사막을 그대로 주파하여 갔다.
* * *
약 한 달이 지났다.
얼마나 거대한 사막 위를 이동했을까.
“저것인가.”
우리는 마침내, 이 일대 전체를 뒤덮은 균사를 뿌린 근원지.
침식당한 수사의 유해 근처에 도달하는 것에 성공했다.
콰지지지지직!
전명훈이 육비에서 붉은 뇌전을 뿜어내며 울부짖었다.
그러자 천지사방으로 적뢰의 폭풍이 몰아치며 균사를 모조리 걷어 내었다.
콰지지지직!
그는 그렇게 균사를 걷은 후, 광음역 전체에 적뢰로 결계를 쳐 놓은 후 나를 바라보았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나와 전명훈, 그리고 오현석 셋이 광음역에서 빠져나와 침식당한 유해 앞으로 걸어갔다.
오현석 같은 경우, 그가 만들어 내는 보랏빛 기운에 닿으면 포자도 그대로 흡수된다는 사실이 지난 한 달간 밝혀졌기에 문제없다 생각하여 데리고 나온 것이었다.
그것은 거대한 잔해였다.
[끔찍하군.]나는 눈앞의 거대한 잔해를 보며 혀를 찼다.
이 잔해는, 아직도 ‘살아’ 있는 것이 분명했다.
전명훈은 혀를 내두르며 잔해와 나를 번갈아 보았다.
“꽤 닮은 것 같군. 역시 이거하고 닮은 네가 교주랍시고 앉아있으니 마교라 몰리는 거였어.”
[….]인정하긴 싫었지만, 진인에게 침식당한 수사의 잔해는 나와 꼭 닮아 있었다.
균사의 중심에서 균사들에게 힘을 공급하는 그것은, 시커먼 몸체를 가지고 있었고, 시커먼 몸체 사이사이에서 새하얀 두개골들이 돋아 있었다.
실제로 명각으로 살펴보아도 죽음이 꽤 한 군데에 겹쳐 있는 기괴한 모습이었다.
정말로, 이것은 내 겉모습과 상당히 ‘닮아’ 있었다.
‘쯧, 괜히 마교라 불린 건 아니긴 하군.’
“그럼 나와 현석 형님은 주변을 둘러보면서 본문의 제자들을 찾아보겠다.”
전명훈과 오현석은 약 30장 크기의 이 거대한 잔해를 뒤로한 후, 주변을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난 혀를 차며 눈앞의 이것을 동정했다.
‘그건 그렇고… 아직 살아 있는 것 같은데, 꽤 비참하군.’
이 두개골들에게선 각각 감정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그 감정들은 서로 얽히고설켜 하나의 의식 영역을 이루고 있었다.
그랬다.
이 잔해는 끔찍한 꼴일지언정 살아 있는 것이었다.
‘꿈을 꾸고 있는 건가?’
진인의 시선을 받고, 긴 꿈을 꾸며 이 대지를 황폐화시키는 듯한 침식자.
과연 이 자는 원해서 이런 꼴이 된 것인가.
우우웅―
나는 총천검을 꺼내 쥐며 고민했다.
‘벨 수 있나?’
하지만 잠시 고민하던 나는 총천검을 다시 흩었다.
‘못 벤다.’
벤다는 시도 자체는 가능할 터였다.
하지만, 나는 어쩐지 이 잔해의 안쪽에서 느껴지는 끝이 보이지 않는 불길함에 총천검을 뻗는 것을 그만두었다.
함부로 베었다가는 상당히 낭패를 볼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찾았다! 여기 녀석들이 있어!”
저 멀리서 전명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쪽으로 가마.]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그쪽으로 향하려 걸음을 옮겼다.
그때였다.
오싹!
흉(凶)한 느낌이 등골을 핥고 지나간다.
나는 황급히 고개를 돌려 총천검을 들었다.
이윽고 내 눈에 들어온 것은, 눈두덩이 안쪽에 새하얀 빛으로 이뤄진 ‘눈동자’가 생겨난 잔해였다.
수십 개의 머리를 단 잔해의 눈 안쪽에서 눈알이 생겨나, ‘나’를 주시하고 있었다.
나는 황급히 그 자리에서 물러나려 했으나, 순식간에 주변의 환경이 변화했다.
파사사사삭!
[…!]주변이 조각 나며, 나는 어느새 밤하늘 위로 떠올라 있었다.
[이곳은….]그리고 아래를 내려다본 순간, 38개의 눈두덩이에서 피가 터져 나왔다.
푸콱!
[크으으윽…!]여자!
사지가 기괴하게 꺾인 채 몸 곳곳에 구멍이 뚫려 죽은 ‘여자’를 본 것 같았다.
나는 머리가 마구 부풀어오르는 느낌에 이를 악물었다.
‘방금, 뭘 본 거지?’
도저히 서 있을 수가 없어 자리에 주저앉은 나는 겨우겨우 정신을 차렸다.
‘아래를 보면 안 된다….’
그때였다.
콰드드드득!
갑자기 나를 짓누르는 힘이 어마어마하게 강해져, 나는 그대로 머리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그 자리에 오체투지 하듯이 머리를 처박아 버렸다.
투명한 막 같은 것이 있어 아래로 떨어지지는 않았지만, 아래쪽은 여전히 휑하게 보이고 있었다!
‘아, 안돼…! 아래를 보면…!’
그리고 그때였다.
[…?]‘아래’쪽엔 내가 봤던 여자는 없었다.
그저, 너무나 광대해서 인지하는 것만으로 머리가 아픈 ‘세계’가 있을 뿐이었다.
[명…귀계…?]그랬다.
아래쪽에 있는 것은 명귀계 전역이었다.
‘뭐지? 방금 웬 여자를 본 것 같았는데….’
나는 눈을 찡그리며, 인력을 강제하여 내 머리를 함부로 처박은 누군가를 인지하기 위해 의식을 뻗었다.
하지만 인근 수천 리 안에서 감지되는 것은 없었다.
인근에는 밤하늘의 별들이 떠서 어둠을 밝히고….
오싹!
나는 그제야 내가 갑자기 어디로 온 것인지를 이해했다.
‘미친… 설마 이곳은…!’
명귀계의 상공.
아니, 그보다 더 높은 곳.
명귀계의 차원 바깥!
[진인]들이 거하며 명귀계를 들여다보는 장소!그것을 인지하자마자, 뇌리로 웅장한 음성이 윙윙 울렸다.
[귀하는 누구인가.]“…!!!”
느껴진다.
수십 개의 ‘시선’이 내 몸에 박혀들고 있다!
‘이런 젠장, 진인들이 명귀계 안의 있는 존재를 계면 바깥으로도 불러낼 수 있단 말인가!?’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지만, 나는 일단 방금 뇌리에 울린 음성에 대답해야겠다는 생각에 입을 열었다.
[저는….] [네게 물은 것이 아니다. 벌레야.]콰지지직!
순식간에 내 턱이 바스라져, 나는 말을 할 수 없게 되었다.
아니, ‘의지’ 자체를 바깥으로 뿜어낼 수가 없어졌다.
마치 ‘말’ 그 자체가 봉인당한 듯했다.
[우리는 귀하의 말이 명귀계에 진입하여 곳곳을 휘젓는 동안 상의를 해 보았소. 하지만 상의를 하던 중 두려운 진실을 알게 되었지. 우리 중 누구도 저런 것을 침식한 적이 없다는 것.]공포스러운 시선들이 내 몸을 뚫어낼 듯이 꽂힌다.
[그렇다면 한 가지밖에 생각할 수 없소. 진선 이상의 존재가, 우리의 인지를 뛰어넘어 누군가를 침식해 조종하고 있다고 말이오.]진인들이 내게, 아니.
내 뒤에 있다고 착각하는 존재에게 계속해서 말을 걸었다.
[귀하께서는 어떤 분이신지 말씀해 주시고, 우리에게 맡기실 일이 있으시다면 맡겨 주시기 바라외다. 우리 역시 나름대로 명귀계를 관찰해 오며 알아낸 것이 많고, 무량한 세월 동안 곳곳에 우리를 모시는 신자들을 배양해 왔소.]쿠구구구구구!
그들이 말을 할수록 내 전신이 짜부라지는 듯했다.
[귀하여, 부디 우리에게 기회를 주시면 감사드리겠소.]그리고, 나는 팔을 뻗었다.
우득, 우드드득―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콰드드득!
우주적인 단위의 인력이 내 몸을 뭉개 버리려는 것 같았지만 견뎌 냈다.
어째선지, ‘할 수 있을’ 것 같았기에 말이었다.
[…!] [어찌 필멸자가 초월자의 권능을 쐬며 일어났단 말인가!] [그렇군. 저것의 뒤에 계시는 존재가 힘을 빌려주는 건가?] [어찌 우리의 시선을 뚫고 몰래 저것에게 힘을 불어넣어 준다는 것이오!]나는 수많은 음성을 뚫고 주변을 둘러보았다.
무수한 별들.
그리고, 별인 척 흉내를 내고 있는 ‘시선’들.
대략 쉰 명 정도일까.
그래, 50명의 개열기 진인이 내 앞에서 준엄한 시선을 보내고 있는 중이었다.
기긱, 기기기긱―
나는 삼태극이나 회로를 끌어올려 했지만 불가능하단 걸 알아챘다.
‘그렇군.’
나는 진인들이 무슨 짓을 했는지를 이해했다.
‘나를 끌고 온 게 아니다. 내 정신을 잠시 계면 바깥으로 끌어올렸을 뿐. 내 육신은 아직도 저 아래에 있겠지.’
나는 안광을 빛냈다.
그리고, 있는 힘을 다해 내 심상을, 그리고 그 안쪽에 억눌려 있는 ‘무언가’를 밀어붙였다.
쿠국, 꾸구구구구국!
진인들의 인력에 엎어졌던 몸을 일으켰듯이, 그들이 봉한 나의 ‘말’을 끄집어낸다.
[위대한… 진인들께… 이 벌레가 아뢰나이다.]꾸구구국―
말 한마디 내뱉는 게 힘들다.
금방이라도 전신이 으스러질 것만 같았다.
하지만 견딜 수 있다.
왜냐하면, 이 자리에 있는 것은 실제 내가 아닌 나의 정신.
오로지 정신만이 불려 왔기에 천족과 지족의 수행이 있어야 하는 삼태극이나 회로는 못 불러오지만, 반대로 정신력만 충분하다면 버틸 수 있는 것이다!
[저는… 누구의… 조종도 받고 있지, 않습니다. 부디 저를 보내 주십…시오.]그러나, 내 말에 진인들은 잠시 두런거리는 듯하더니 의지를 보내 왔다.
[벌레야. 우리의 앞에서 말을 꺼낸 그 업적을 인정하여 알려 주겠다. 진정 위대한 존재라면, 네가 알아채든 말든, 너의 운명과 역사를 움직여 네 행동을 얼마든지 유도할 수 있다. 감히 우리 앞에서 네 같잖은 의견을 드러내어 우리의 대화를 방해치 말라.]우득, 우드드드득!
역원뿔이나, 어선급의 이름을 부르면 어찌 될까?
당장이라도 그런 짓을 하고 싶었지만, ‘말’ 자체가 봉인당해서 내 의견조차 간신히 꺼내고 있는 와중이었다.
때문인지 강력한 힘을 가진 ‘말’을 꺼내는 건 불가능했고, 마찬가지로 그러한 이름이나 상징들 역시 꺼낼 수 없었다.
[귀하여, 부디 우리에게 대답해 주시오. 우리는 흉(凶)한 그대의 신자가 명귀계를 헤집고 다녀도, 불길한 죽음을 겹겹이 쌓은 몸으로 괴이한 가르침을 가진 종교를 창설할 때에도, 광한계와 연결된 회로를 가진 저주인형들로 명귀계의 천기를 어지럽혔을 때에도 침묵하였소. 기어이 그대의 신자는 우리의 신자에게 다가가 천겁을 그 앞에서 꺼내 들어 소멸시키려고까지 하였소. 아무리 귀하가 진선일지언정 대라선도 아닐진대 우리에게 그리 모욕적으로 대할 수는 없소.]그들은 나에 대해서는 신경조차 쓰지 않고 나조차 모르는 누군가에게 대고 혼잣말을 해 댔다.
나는 이를 악물었다.
어쩐지 그때가 떠올랐다.
50명의 축기기 수사들을 마주했을 때의 절망감.
지금이야 배를 벅벅 긁어 줘야 할 귀여운 것들이었지만, 그 당시만 해도 나는 벌레가 된 기분이었다.
무너진 건물 안에서 겨우겨우 숨을 죽이고 떨며, 김영훈의 뒤쪽에서 숨어 있는 벌레 취급을 받는 것.
완전히 그 당시로 돌아간 기분.
상황 자체도 비슷했다.
그 당시 막리세가의 장로들은 나 따위는 신경조차 쓰지 않고 김영훈을 쫓는 것에 급급했고, 이 진인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꿇어라. 감히 그 건방진 눈알을 우리에게 들이대지 말아라.]콰드드드득!
가공할 압력이 나를 내리눌렀다.
[….]하지만 나는 우주적인 그 거력을 맞으면서도 바닥을 보며 꿇지 않았다.
그 당시와 모든 것이 같은 상황.
하지만 달라진 것이 있다.
[몇 번이고….]꾸구구국―
의지를 모은다.
[몇 번이고… 벌레 취급을 받아 왔다.]우우우웅!
나는, 고개를 쳐들었다.
[하지만 벌레일지언정, 네놈들의 장난감은 아니다.]온 의지를 집중해, ‘말’을 목젖까지 끌어올렸다.
[대화를 하고 싶다면 제대로 대우하라. 그리하지 않으면 벌레에게 독침을 맞을 것이야.]쿠구구구구―
노기(怒氣).
가공할 노기가 하늘을 메운다.
진인들이 분노하고 있다.
지난날과 같은 상황이지만 달라진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몇 번의 생을 거치며 나의 의지를, 나의 열망을 끊임없이 단련해 왔다는 것!
지금이라면, 입이 찢어질지언정 할 말은 할 것이다!
[그아아아아아!]총천검을 통해, 혼의 계위에 있는 내 정신력을 기의 계위로 전환시킨다.
오행지력과 음양지력이 내 전신을 덮었다.
[태산!]꾸우우웅!
양 손안에 빛이 휘몰아쳤다.
단순한 태산열제공이 아니다.
이 안쪽에, [내가 보았던 것]의 형상을 각인한다!
[열제!]하늘을 향해 태산열제를 흩뿌리며, 나는 [역원뿔]을 그들에게 보여 주었다.
――――――――!
―!!!!
―――――!!
――――――――!!!!
알아듣기 힘든 괴성이 우주 공간을 뒤흔들었다.
아니, 그들의 함성에 아래쪽의 명귀계 전체가 뒤흔들리는 듯했다.
[귀하여! 우리와 진정 척을 지겠단 말인가!?]쿠구구구구!
격노한 음성을 지닌 한 진인이 마구 소리쳤다.
[그대의 신자는 불행해질 것이다. 우리가 그들의 교단을 어떻게 해서든 이 땅에서 내쫓을 것이다. 그대의 신자는 모든 이들의 공적이 될 것이다. 그대의 신자가 하는 말은 누구에게나 왜곡되게 해석될 것이며, 그대의 신자는 소멸당해 명부에 떨어지거나, 아니면 다른 세계로 쫓겨 가는 것 외엔 어떤 것도 할 수 없으리라.]오오오오오―
격노한 음성을 느끼며 나는 히죽 웃었다.
파삭, 파사사삭!
귀왕화한 육신을 벗었다.
인간으로서의 내 모습이 드러났다.
나는 인간 서은현으로서 하늘을 올려다보며 말했다.
“개 같은 소리를 하는군. 그거야, 당신들이 진즉부터 하고 있던 게 아닌가?”
큰 귀신이니, 마교주니, 사악한 교단이니 하는 것도 한두 번이다.
지난 200년 동안 포교를 다니고 봉사 활동을 하고 곳곳에 이득을 안겨 준 것 밖에는 한 것이 없다.
심지어 내 외모와 모습을 두려워하는 이들이 있을까 봐 무극교전 바깥으로 잘 나가지도 않았다.
그런데도 모든 세력이 나를 적대하고 공적이라 소리쳤다.
200년이란 시간은 짧은 시간이 아니고, 그 시간 동안 누군가에게 잘 보이고 싶어 한다는 것은 간단한 의미가 아니다.
투자한 시간만큼은 서로서로 마음을 여는 것이 당연하다.
하지만 이상할 정도로 모든 이들이 잡혀 와서 교단을 직접 눈으로 확인하기 전까지는 기괴한 오해에 빠져 있다.
이 모든 것이 우연인가?
몇 번이고 운명에 농락당해 보았다.
이제 와서, 운명의 기시감을 느끼지 못할 것 같은가!?
“네놈들은 진즉에 본교의 정보를 왜곡하고, 우리의 인식을 비틀어서 명귀계 전역에 흩뿌리지 않았느냐. 명의 계위를 건드려 우리가 절대로 곳곳에 퍼져 나가지 못하게 200년간이나 억압하고 있지 않았느냐! 그런데 대화 좀 제대로 하게 해 달라고 부탁하니까 언제는 선심이라도 써 줬다는 듯이 으르렁거리는 거냐!”
역원뿔을 본 후 미친 듯이 꿈지럭거리는 진인들을 향해 일갈하며, 나는 빙긋 웃었다.
아까 전부터 다시금 명귀계로 돌아갈 방법을 찾았다.
그리고 이제야 찾았다.
“잘 있어라, 나는 이만 가 본다.”
어차피 알고 있다.
이 자들은 혈음과의 약속 탓에, 절대로 중경계에는 간섭할 수 없다.
현음에게서 직접 들은 사실이니 확실할 터.
어차피 이놈들이 백날 내 뒤에 있는 존재에게 말을 걸어 봤자, 그런 건 존재하지조차 않으니 결국에는 본인들을 무시한다 여기고 나를 죽이려 할 터.
그럴 바에야 시원하게 내 쪽에서 엉덩이를 걷어차 주고 돌아가는 것이 낫다.
“명부 환생판관장 명귀진군 유수련이시여! 다시 들여보내 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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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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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다시 진인들이 발광한다.
나 역시 영혼이 붕괴되는 듯한 충격을 받았다.
하지만 오히려 고위 정보는 높은 존재들에게 더 위험하니 그들이 더욱더 충격을 받았을 터였다.
그리고 어쨌든.
꾸구구구국!
[이름]을 부름으로써 명귀계와 나 사이에 강력한 ‘인력’이 생겨났다.“그럼 이만, 안녕히 계시지요!”
파아아앗!
주변이 백열하는 듯하며, 나는 다시 명귀계 안쪽으로 돌아갔다.
* * *
쿠구구구구구!
서은현이 사라진 우주 공간.
그곳에서, 무수한 의지들이 무량한 시공간을 격해 교신하였다.
무수한 의지들이 떠드는 내용은 시끄러운 듯했지만, 내용은 하나였다.
대체 어떻게 벌레 따위가 초월자들의 의지를 정면으로 쐬며 말대답까지 하고, [끔찍한 것]을 흩뿌린 뒤 도망쳤는가.
그리고, 그들 중 서은현의 뒤쪽에 있는 존재에게 말을 걸던 진인이 있던 별이 밝게 빛났다.
[그렇군. 지(地)를 완성(完成)해 가는 도중인 건가? 하나 어찌 그게 가능하단 말인가? 어찌 필멸자가, 오복은 그렇다 쳐도 육극을 모두 그 안에 융화(融化)시킨단 말인가.]그는 혼란에 빠졌으나, 이내 다시 별빛을 일렁이며 의지를 굳혔다.
[됐다. 알 것 없지. 그것의 뒤에 있는 존재가 힘을 써 주는 것일 터. 그리고 그자가 우리를 이리 무시하니, 어쩔 수 없다. 그자가 저것을 통해 이곳에서 권능을 발휘하지 못하게, 명귀계의 모든 세력을 통해 없애 버리거나 쫓아 버릴 것이다!]우우우웅!
그 진인의 말에, 우주 공간 곳곳에 있는 별빛들이 번쩍이며 찬성의 의지를 표했다.
(回歸修仙傳) 355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