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Regressor’s Tale of Cultivation RAW novel - Chapter (356)
지축(地軸)
1만 년치의 수명이 모였다.
지난 세월 간 수축을 쌓기 위해 하계 곳곳에 뿌려 놓은, 나의 힘을 빌려주는 제사 의식.
그 제사 의식을 통하여 7천 년어치의 수명을 쌓았고, 나는 나에게 주어진 시간 동안 내 수명에서 3천 년어치를 떼어내서 1만 년어치를 채웠다.
이제 남은 것은, 이 수축을 완전히 압축하여 내 것으로 만들고, 명귀계에 내가 수축을 얻었노라고 고하는 의식뿐.
우우웅―
나는 어둠 속에서 제단을 형성하며 눈앞에 형성된 빛의 기둥을 바라보았다.
1만 년치의 수명이 모여 만들어진 기둥.
이 기둥을 마지막으로 한 번만 더 제련하면 그대로 수축이 완성된다.
그러나 어째서일까.
나는 이 기둥을 보며 무언가 마음에 안 드는 것이 있는 것 같았다.
‘왜지.’
더 이상 하계 생령들의 수명을 가져오는 것도 아니다.
내 동료들을 구할 힘이 부족한 것도 아니다.
그렇다고 지금 내가 여기서 머뭇거리고 있을 때도 아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바깥에서 동료들이 혼신의 힘을 다해 광음역을 지키고 있었다.
그런데 나는 왜 여기서 주저한단 말인가.
‘내가 노력을 덜 한 것인가.’
그렇지도 않았다.
나는 항상 수명을 받아 가며 최소한의 대가만 받고 최대한의 이득을 넘겨주었다.
그리고 내 수명을 뜯어서 남은 3천 년어치의 축을 세울 때도 지옥과도 같은 고통을 느껴야만 했다.
그만큼 내 수명을 생으로 잡아 뜯는다는 건 상당한 고통이었고 동시에 고행이었다.
‘그런데 도대체 왜?’
어째서 나는 마지막 순간에 망설이는 것인가?
“…후우.”
나는 숨을 들이쉬었다.
그리고, 더는 망설이지 않고 수축제를 올리기 시작했다.
이제 이 수축을 쌓았다는 것을 명귀계에 고하기만 하면 끝이다!
더 이상 낭비할 시간 따윈 없다!
화르르르륵!
수축의 주변 12방위에서 시퍼런 귀화가 타올랐다.
“지축 제의를 시작한다!”
우우우웅!
나는 진정으로 지축기에 오르기 위한 첫발을 밟기 위해 손을 들어 올렸다.
지축.
어째서 중경계의 첫 단계는 사축기가 아닌 지축(地軸)이 되어야만 하는가.
지축이란 곧 별의 축(軸)을 의미하였다.
별의 북쪽과 남쪽.
끝과 끝.
극(極)과 극(極)을 잇는 중심!
그것이야말로 지축이다.
그러니 사람과 사람을 잇고 세계와 나를 잇는 인력을 쌓는 이 단계를 지축이라고 부르지 않으면 무엇이라고 부르겠는가?
‘아니… 내가 그런 논리로 붙인 게 맞나?’
생각해 보면 그런 논리로 생각하고 사축기를 지축기라 생각한 것이 아니었다.
문득, 머릿속에 ‘이름’이 ‘새겨졌’다.
[이 경지는 지축이라 부르는 것이 맞다]라는 사실이 너무나도 명확하게 머리에 틀어박혔고, 나는 그 때문에 지축기라는 이름을 입에 담고 그 후에 저런 논리를 가져다 붙인 것이었다.‘…도대체 뭐지?’
나는 잘 이해가 가지 않았지만 그대로 지축제의를 시작했다.
칠성제의와 비슷하다.
다만 칠성제처럼 하늘에 대고 제를 지낼 필요는 없고, 그저 용맥의 흐름이 원활한 곳에서만 하면 되었다.
수의 축을 중심으로, 12개의 시(時)를 상징하는 명귀계의 기운을 차례대로 수축에 불어넣으면 끝이다.
그때였다.
“…!”
나는 문득 지하실의 천장을 바라보았다.
저 위쪽.
[하늘]에서 불길한 기운이 맴돌기 시작했다.‘뭣… 천거 현상? 아냐… 이건…!’
* * *
전명훈은 폭풍이 되었다.
그의 주변으로 뇌운(雷雲)이 자욱하게 끼는 듯하더니, 무수한 벼락의 비를 사방으로 흩뿌렸다.
뇌전에 극상성인 귀물들은 그대로 비명을 지르며 물러났고, 진인들에게 침식된 ‘신자’들 역시 ‘천겁’이나 다름없는 전명훈의 뇌창에 기겁하며 물러섰다.
치지지직!
전명훈은 뇌창으로 전장을 지배했다.
그 순간만큼은 그가 이곳의 왕이었다.
콰지지지직!
붉은 뇌전이 휘몰아친다.
사방으로 쓸린다.
폭풍처럼 몰아친다.
송곳처럼 치른다.
불꽃처럼 태운다.
전명훈이 여섯 개의 팔을 움직일 때마다 전장이 붉은 뇌전의 바다가 되어 튀겨지는 듯했다.
콰지지지직!
그러나, 전명훈은 점차 표정이 안 좋아지고 있었다.
‘이제 슬슬 부하가 오고 있군.’
그가 전신으로 뿜어내는 이 적뢰의 정체는, 전명훈이 변형시킨 천겁.
그는 천겁으로 적들을 상대하는 중이었고, 그 천겁은 현재 전명훈이 ‘타인의 도움을 받는다’고 판단하여 점차 강해지는 중이었다.
천겁은 전명훈에게 영약이자 법보였기에 어느 정도는 강해져도 상관이 없었다.
그러나 느껴지고 있었다.
점차 손에 들린 천겁이 묵직해지고, 두꺼워진다.
그리고 점차 전명훈도 감당키 힘들 만큼 뜨거워지고 있었다.
‘계속 이럴 수는 없어.’
종래에는 천겁이 전명훈마저 다룰 수 없을 만큼 광폭화해서 도리어 전명훈을 공격할 터였다.
물론 전명훈이라면 천겁에 피해를 입지는 않겠지만, 그 정도로 강해진 천겁이라면 흡수했다가 그의 단전이 폭발해 버릴 가능성이 컸다.
콰르르릉!
그는 뇌성을 울리며 속으로 식은땀을 흘렸다.
‘제길, 조금만 더 버티란 말이다, 전명훈!’
그는 스스로를 몰아붙이면서 천겁을 휘두르며 춤추었다.
하지만 점차 그의 손에 들린 천겁은 뜨거워졌고, 전명훈은 마침내 천겁을 다루는 것을 포기했다.
콰지지지직!
전명훈의 손에 들린 천겁이 휘광을 비추며 그의 손안에서 벗어났다.
그리고, 천겁은 전명훈을 뒤덮고 그의 체내로 들어가기 시작했다.
그의 수명이, 수행이, 미친 듯이 폭증키 시작한다.
콰르르르릉!
[그아아아아아아!]전명훈의 덩치가 더더욱 커졌다.
그리고 어느 순간!
콰르르르르!
전명훈의 몸은 뇌운 그 자체가 되었다.
오로지 뇌운으로 이뤄진 육비의 거신이 포효를 터트리자, 인근 전체가 쩌렁쩌렁하게 울렸다.
콰르르르르!
그리고, 전명훈을 중심으로 반투명한 막 같은 것이 생겨나 주변으로 퍼져 나간다.
그 장막은 미친 듯이 크기를 불리더니, 광음역을 그대로 뒤덮었다.
그 모습을 본 사대세력의 귀왕들이 헛웃음을 터트렸다.
“…미쳤군. 어떻게 돼먹은 거지? 싸우던 도중에 합체기에 오르다니….”
전명훈이, 마침내 천지합일의 과정을 마친 후 합체기의 경지에 오른 것이었다.
[다들 덤벼라, 드디어 경지에 올랐느니, 모조리 씹어먹어 주마.]쿠구구구구!
전명훈의 영역 안쪽에서 그의 목소리가 울려 퍼져 나와 사방으로 전달되었다.
그를 바라보던 이들의 눈에 긴장이 서렸다.
“사축기일 때도 어마어마한 실력을 자랑했건만, 과연 합체기일 때는 얼마나 강해졌을지….”
“역시 마교의 대호법…!”
하지만 그들의 걱정과는 반대로, 전명훈은 긴장에 차 있었다.
‘합체기에 올랐으나, 오히려 승급 천겁을 맞을 때보다 전력은 한참 약해졌다.’
그가 가장 강해지는 순간은 승급 천겁을 맞을 때였다.
오히려 천겁을 맞고 경지에 이른 순간은 천겁을 맞던 순간보다 한참 약한 것이었다.
‘허장성세가 먹힐까?’
그리고, 그때였다.
전명훈과 광음역을 향해 공격을 퍼붓던 96명의 귀왕들이 물러섰다.
전명훈의 눈에 희색이 돌았다.
‘머, 먹힌 건가?’
그리고 바로 그때였다.
분명 폐관 수련 중일 서은현으로부터 전음이 들려왔다.
[전명훈, 조심해라. 놈들이 뭔가 미친 짓을 하려는 모양이다!] [뭐…?]그리고.
쿵, 쿵, 쿵, 쿵, 쿵, 쿵, 쿵!
지금껏 합체기 귀왕들과 함께 공격을 퍼붓던 7인의 신자.
진인의 침식체들이, 뒤로 물러선 귀왕들과는 반대로 더더욱 광음역을 향해 튀어나왔다.
[침식체들을 내세웠단 건… 진인들의 힘을 빌리겠단 건가…? 이런 미친…!]쿠구구구구!
일곱 명의 신자들이 여러 개의 머리를 달각거리며 각자 하늘을 향해 손 및 신체 말단을 뻗었다.
그리고, 하늘에서부터 빛이 내려와 신자와 진인들이 이어지는 듯했다.
‘마, 막아야…!’
쿠릉, 쿠르르릉!
그러나 전명훈이 따로 움직이기도 전.
하늘에 다시금 먹장구름이 끼며 진인들의 시선을 가린다.
진인들에게 힘을 빌리려던 신자들이 진인들과 연결이 끊겼다.
전명훈은 그 모습을 보며 희색이 되었다.
[늦었잖나! 굼벵이 같은 놈!] [이거 미안하군….]쿠구구구구!
뇌운으로 이뤄진 육비 거신의 옆쪽으로, 19개의 머리를 가진 귀왕이 날아왔다.
육비 거신은 수결을 맺으며 하늘을 가리켰다.
서은현이 수축을 쌓게 되며, 언제라도 쌍색의 천겁을 떨어뜨릴 듯이 꿈틀거리던 먹장구름은 천겁을 떨어뜨리지 못했다.
[내 힘으로 천겁이 떨어질 시기를 좀 늦췄다. 숨 돌릴 틈은 될 터…. 어쨌든, 서은현… 된 거냐?] [됐다. 이제… ‘샛길’만 열면 돼!]전명훈은 살짝 한숨을 쉬었다.
현재 서은현이 쌓은 오복축은 두 개.
그리고 연위의 말에 의하면, 샛길을 여는 데 필요한 오복축은 셋이었다.
물론 서은현이 쌓은 축 두 개에, 합체기에 도달한 전명훈이 힘을 합치면 오복축이 셋인 걸로 취급하여 샛길을 열 수는 있었다.
하지만 문제는 전명훈이 서은현과 함께 샛길을 여는 데에 집중하면 전력에 공백이 생길 수밖에 없었다.
[나랑 네가 없이… 버틸 수가 있단 말이냐?]전명훈의 질문에, 서은현은 뒤를 돌아보았다.
광음역 전체에서 그를 따르는 신도들이 나와, 폐관을 마친 서은현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전명훈을 비롯해서 다른 동료들, 수호귀왕들, 객으로 온 유혜 등. 그의 모든 인연들이, 그를 바라보는 중이었다.
서은현은 웃었다.
[걱정 마라.]우우우우웅!
그의 체내에서 인력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전명훈은 그 광경을 보며 화들짝 놀랐다.
[너…! 분명 축이 2개라고…!? 나를 속인 거냐!?] [음… 너를 속인 게 아니라, 분명 지난번에 경지를 깎고 광한천원의 구결로 전환하면 축 하나를 더 쌓은 셈 칠 수 있다고 설명해 줬는데 네가 안 들은 거 아니냐?]서은현은 끌끌 웃으며 혀를 찼고, 전명훈은 도리어 역정을 냈다.
[이런, 젠장! 그런 좋은 게 있었으면 두들겨 패서라도 익히게 했었어야지!] [소해 손 잡고 ‘나는 빨리 경지에 올라야 한다’며 말 안 듣던 게 누군데. 어쨌든, ‘샛길’은 나 혼자 열 수 있다.]38개의 눈두덩이 안쪽에서 믿음직한 눈빛을 보내며 서은현은 전명훈을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니, 교단의 수호는 네게 맡긴다, 전명훈!] [하… 알겠다. 교주!]서은현은 무극교전 방향으로 날아가 수결을 맺기 시작했다.
[자, 그럼… 샛길을 열겠…!]그리고.
쿠구구구구!
전명훈이 잠시 봉인해 놓아 그대로 천겁을 머금고 있던 하늘의 먹장구름.
그 천겁의 상징이, 걷히기 시작하였다.
[…뭐?]다음 순간.
지이이이잉―
거대한 [의지]가 지상에 임하기 시작했다.
―진인들의 이름으로 합의했노니, 현 시점 명귀계 모든 곳에서 일어나는 천벌들이여. 모두 1년 뒤로 밀릴지어라. 천겁을 내리는 구름들이여, 흩어지거라.
지이이이잉―
진인들의 의지가 전장에 울려 퍼진다.
서은현이 승급하며 만들어 낸 먹장구름이 너무나도 허무하게 흩어졌고, 진인들의 의지가 다시 지상에 강림한다.
쿠구구구구!
7명의 신자들에게 하늘의 별빛이 떨어졌다.
[그아아아아아!] [가아아아아!] [그어아아아아아!]신자들이 하나같이 고통스레 비명을 지르기 시작했다.
서은현의 뒤쪽에서 불안하게 전장을 바라보고 있던 이들 중, 유혜의 눈빛이 일순간 그들을 보며 흔들렸다.
“자, 잠깐! 차조귀 님…!?”
그녀는 신자들 중, 진인들의 빛을 받아들이며 고통스러워하는 한 신자를 보며 외쳤다.
“차조귀 님! 왜 거기 계십니까! 차조귀 님!”
그러나 차조귀가 변이한 신자는 그녀의 말이 들리지 않는다는 듯.
하늘의 빛을 받아들이며 읊조릴 뿐이었다.
[구…한다… 반드시… 구한…다….]7명의 신자의 뒤쪽에 있던 96명의 합체기 귀왕들이, 각기 12명씩 신자의 뒤쪽에 모여 수결을 맺기 시작했다.
우웅, 우웅, 우우우웅―
합체기 귀왕들이 영역을 전개한다.
하나의 차원 장막이나 다름없는 그들의 영역이 윙윙 울리며 하늘을 향해 뻗은 기둥이 되었다.
그리고, 그 기둥들은 7명의 신자에게 떨어지는 빛의 끝자락.
천공을 향해 귀왕들의 인력을 분사하였다.
마침내, 천공에 균열이 생겨났다.
쩌저저저적!
분명 크게 달라진 건 없어 보였다.
어두운 명귀계의 하늘에는 여전히 별들이 떠 있었고, 별들은 지상을 굽어볼 뿐이었다.
달라진 것은, 하늘에 생긴 투명한 ‘균열’뿐.
그러나, 그 균열을 통하여 [위]의 [힘]들이 쏟아져 내렸다.
――――――!
알 수 없는 외침과 함께, 7명의 신자들이 일제히 광음역 방향을 향해 각자의 손가락을 뻗었다.
다음 순간.
꾸구구구구국!
광음역 전체에, 가히 저항할 수 없는 무게가 실렸다.
콰아앙!
콰지지지직!
육극귀왕 전명훈이 펼친 그의 영역이 그대로 박살 났다.
전명훈은 죽지는 않았지만, 그대로 바닥에 엎어져 숨소리도 내지 못한 채 오체투지한 모양새가 되었다.
무극교전 위쪽에서 ‘샛길’을 열려 하던 서은현 역시 그대로 땅으로 처박혔다.
[끄…으으으윽!]서은현은 전명훈처럼 땅에 오체투지한 자세가 되지는 않았으나 그 역시 땅에 붙박여서 제대로 할 수 있는 것이 없어졌다.
심지어 인력은 점차 강해지고 있었다.
덜걱덜걱덜걱덜걱!
광음역 귀물들의 육신인 저주인형들이 하나같이 새하얀 수증기를 뿜으며 망가져 갔다.
진인들이, 무극교단을 말살하려 하고 있었다.
* * *
‘이런 미친….’
어마어마한 압력이었다.
이대로라면 무극교단은 물론이고 광음역 전체가 으스러져 한줌 가루가 될 판이었다.
꾸구구구국!
나는 내게 떨어지는 압력을 참으며, 샛길을 만들려 했던 인력을 모조리 동원해 광음역에 떨어지는 권능을 막아섰다.
그 덕에 교도들과 전명훈은 상당히 압력에서 벗어났지만 도리어 내가 받는 압력의 면적은 더 늘어났기에, 전신이 터져 버릴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웃…기…지…마라…!”
영언을 쓸 기운조차 없이 육성으로 외쳤다.
내가 샛길을 열 틈새도 없이 그냥 이 자리에서 짓눌러 터트리려는 듯한 기세.
이전의 말로는 내쫓든가 소멸시키든가.
두 개의 선택지가 있는 듯했으나, 실상은 그저 소멸시키고자 했던 의견이 주였던 모양.
“끄…그그그극…!”
그러나 분하지만, 지금의 내겐 이를 막을 힘이 없었다.
느껴진다.
이 무지막지한 우주적인 힘은, 진인들이 ‘부상당한 상태’에서 내는 것이었다.
심지어 본인들의 본신지력조차 아니고, 그저 신자를 통해 간접적으로 힘을 들이붓고 있다.
직접적으로 힘을 쓰면 또다시 내게서 [역원뿔]을 볼까 두려운 모양.
그러나, 그 미약하고도 간접적인 힘만으로도 우리는 죽으려 하고 있었다.
나는 억울해져서 하늘을 향해 외쳤다.
“진인들이여! 우리가 무얼 그리 잘못했단 말이오!”
그러나 답은 들려오지 않았다.
하지만 어쩐지 알 것 같았다.
벌레.
우리는 그들에게 벌레나 마찬가지였으니까.
굳이 벌레에게 정성들여 설명해 줄 필요는 없으리라 여긴 것일 터.
그래.
그들이 이러는 이유는 사실 뻔하다.
내가 역겹다거나, 내가 그들에게 [역원뿔]을 보여 준 것에 분노해서 저러는 것이 아니다.
그저 ‘내 뒤에 있다고 착각하는’ 존재가 자신들을 무시하고 적대한다 느꼈기에, 그 존재의 장기말이라고 생각되는 나에게 분풀이를 하는 것일 터.
‘우습군.’
그런 존재는 존재하지도 않는다.
몇 번이나 이런식으로 희롱당하고 조롱당했는가.
억울하고 분했지만 할 수 있는 것은 없었다.
그저, 진인들의 힘에 의해 조금씩 짓이겨지는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일 뿐이었다.
‘이번에도… 거대한 존재들에게 죽는가….’
알 수 있다.
진인들의 의지에 짓눌려 죽는 것이, 바로 이번 회차의 결말이다.
다른 결말은 없었다.
‘그렇군… 이것이… 우리의 끝….’
나는 눈을 감았다.
그리고 죽음을 받아들였다.
‘이왕 이렇게 죽는다면….’
나는 방금 완전히 쌓는 것에 성공했던 수축을, 다시 분해하기 시작했다.
‘돌려주자.’
츠츠츠츠츠츠―
지난 세월동안, 무극귀왕으로서 하계의 존재들에게 힘을 빌려주고 대가로 받았던 ‘수명’.
나는 그 수명들로 인하여 그들과 연결된 인력을 감지했다.
‘돌려주겠다.’
인력을 통해, 내 축을 찢어 다시 내려 준다.
공령지를 통해, 무수한 빛이 쏟아졌다.
내 수축에 쓰인 수명들이 다시 원주인에게 돌아가는 것이었다.
어차피 죽을 몸, 내가 할 수 있는 것들이나마 하고 가기로 마음먹었다.
어차피 내 것이 아닌 것, 돌려주는 게 좋으리라.
츠츠츠츳―
그리고 바로 그때였다.
누군가가 내 귓가에 속삭이는 듯한 소리가 들렸다.
―아깝지 않나. 이러니 저러니 해도 그것은 공정한 거래의 대가. 결국 너는 시간과 힘만 쓰고 아무것도 얻은 게 없는 게 아닌가. 무의미한 일이 아닌가.
내 심마일까.
내게 남아 있는 욕망일까.
상관은 없다.
대답은 정해져 있다.
“원래부터 아무것도 없었다.”
어차피 인생은 실패와 허무의 연속이다.
그저 무수한 실패와 무의미의 산에, 티끌 같은 무의미 한 톨이 추가될 뿐이다.
“빈 몸으로 왔으면 빈 몸으로 가야겠지.”
나는 마지막 힘을 다해, 멸신겁천을 먹여 주기로 했다.
그러나 그때였다.
―훌륭하구나.
심마나, 욕망이라고 생각했던 [목소리]가 웃는 것이 느껴졌다.
오싹!
‘뭐, 뭐지?’
바로 다음 순간, 나는 갑자기 내 가슴 어림에서 느껴지는 미친 듯한 통증에 비명을 질렀다.
“흐아아아아아아아!”
아프다!
너무 아파!!!
콰직, 찌지지지직!
[누군가]가!내 수명을 찢고 있다!
나는 사축기에 오르며 1만 년의 수명을 하늘로부터 받았다.
그리고 그중 3천 년의 수명을 수축을 쌓는 데에 사용하여, 내게 남은 수명은 소경계 수행 때 얻은 수명과 전부 합쳐 약 1만 년어치의 수명 정도.
그러나, [누군가]가 내 남은 수명을 찢었다.
순식간에 내 수명 중 7천 년어치의 수명이 뜯겨 나갔다.
생살을 잡아 뜯는 고통을 몇 번이나 겪어 온 나였지만, 수명을 그대로 우악스레 잡아 뜯는 이 고통은 도저히 익숙해질 수가 없는 고통이었다.
영혼의 깊은 곳에서부터 몰려오는 고통에 나는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그러나 그때, [누군가]는 내게서 뜯어 낸 수명을 3천 년어치만 남은 수축에 부여했다.
우우우우웅!
하계의 인연들에게 다시 돌려줘 3할밖에 남지 않았던 수축이 다시금 10할로 완성된다.
그러나 바로 그 순간.
나는 뭔가, 알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수선(修仙)이란 곧 ‘빼앗는 것’이다. 마도의 것을 빼앗고, 정도의 것을 빼앗고, 요괴의 것을 빼앗고, 적의 것을 빼앗아 나를 드높이는 것. 그게 곧 수선이다! 내 의지를 막아서는 이의 것은, 그게 누구든지 빼앗아라. 악귀라도 빼앗고, 적이라도 빼앗고, 동료라도 빼앗으며, 설령 천년만년해로가 약정된 정혼자의 것이라도 빼앗아서 나를 완성시키는 게 곧 수선이란 말이다!
‘어째서’ 나는 방금 전 수축을 쌓기 전 망설였는가.
‘어째서’ 나는 수축을 쌓는 마음에 들지 않았던가.
그래, 그것은 분명 오복축을 쌓는 방식이 남을 쉽사리 갈취할 수 있는 마도에 가까운 것이어서였는지도 몰랐다.
하지만 지금.
‘순수한 나의 수명으로만’ 축을 쌓은 지금.
나는 ‘어째서’ 내 마음에 걸림돌이 남았는지를 이해했다.
나는 눈앞에 있는 연위의 환영을 바라보았다.
아니, 그것은 연위를 가르친 금신천뢰문의 환영이었으며 곧 양수진의 환영이었다.
“…어찌, 남의 것을 빼앗아 나를 드높일 수 있단 말입니까.”
나는 오직 나 자신으로밖에 드높일 수 없다.
“수선(修仙)은 곧 참오.”
오로지 스스로를 돌아보고, 스스로를 깨달으며, 자기 자신을 이겨야 완성되는 것이 곧 수선이다.
다른 이에게서 빼앗은 것이 어찌 나의 것이 된다는 것인가!
그리고, [목소리]가 웃었다.
―그래, 바로 그것이다.
진인들에 의해 전신이 으스러져 가는 와중이었지만, 그 와중에 나는 머리를 땅에 찧으며 [목소리]를 향해 깊은 감사의 마음을 느끼며 고개를 숙였다.
“어떤 분이신지는 모르지만, 깊은 깨달음을 주심에 감사드립니다.”
―너는 나를 모르느냐?
“예?”
‘무슨 말인지?’
나는 [목소리]는 어째서인지 나를 아는 것 같다는 느낌에 의아한 표정이 되었다.
―네가 나를 부르지 않았느냐. 몇 번이나.
“그게 무슨….”
그러나 다음 순간 이어진 [목소리]의 말에, 나는 머리가 하얘지는 느낌을 받았다.
―수선(修仙)이란 곧 참오다.
우우우웅―
방금 내가 내뱉었던 말.
단순히 내 생각을 정리했다 생각했던 모양이었지만 착각이었다.
이것은 ‘이미’ 내 안에 있던 구결이었다.
―자그마한 소금 알갱이들이 모여 바다를 이루듯이.
아까 전 ‘지축’의 경지에 대해서 이름을 알아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아, 그렇구나.’
내가 특별히 깨달음으로 알아낸 것이 아니었다.
나는 ‘이미’ 이 구결을 통해 알고 있었던 것이었다.
―참오를 통하여 산(山)을 쌓아 가라.
나는 홀린 듯이 눈앞에 나타난 역원뿔의 환영을 향하여 손을 뻗었다.
―소금의 산을 쌓는 것만이 가장 빨리 하늘에 도달하는 것일지니.
그동안, 서휼을 통해 한층 걸러졌던 정보만을 가지고 사용해 왔다.
그러나 지금 이 순간, 나는 이 공법의 [원본]을 읽을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구결의 주인이, 나에게 허락하였다.
파사사사사사―
내 주변에서 새하얀 기운이 알갱이처럼 시작했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하늘 위쪽에서 진인들이 내 몸을 짓누르고 있었지만, 소용없었다.
이제야 알았다.
진정한 지축기의 수행법을.
우선 수많은 하계의 생령들과 계약하여 대가를 받은 후 그들에게 일을 해 준다.
그런 후 마지막에는 자신의 수명을 바쳐 생령들에게 받은 수명 대신 축으로 쌓고, 생령들에게 받은 대가는 돌려준다.
그래, 자신이 얻은 복(福)을 돌려주는 것이다.
육극(六極)이란 존재하는 것이 아닌, 복이 없어진 상태를 이르는 말.
그렇게 복이 없어진 공(空) 속에서, 육극을 느끼며 오복(五福)과 육극(六極)을 전부 깨닫는 것이 바로 지축기인 것이다!
파사사사사―
나는 주변에서 휘몰아치는 백색의 알갱이 같은 기운을 보며 웃었다.
이전에는 이걸 사용하면 양팔이나 신체 말단이 소금화되는 둥 제어가 되지 않았으나, 이제는 아니다.
완벽하게 제어가 된다.
알 것 같다.
헌원은 도대체 무슨 정신머리인지, 이 공법을 거꾸로 사용하고 있었다.
이 공법의 이름은 태산열제공이 아니다.
본래 하나인 기운을 일곱 조각으로 찢는 역천의 공법 같은 게 아니다.
도리어 정확하게 그 반대.
‘일곱 종의 기를 하나로 합하여….’
위이이이잉―
음양오행의 기력이, 내 양손 사이에서 하나로 합쳐졌다.
‘역원뿔… 아니. 산(山)을 형성해 내는 신통.’
그것이 태산열제공이라는 이름이 잘못 붙은, 이 기이한 공법의 진짜 효과!
촤아아아아아!
양 손에서 뭉친 기운을 하늘로 쏘아올려 터트렸다.
이전에 태산열제공으로 어렴풋이 보여 준 것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거대하고 거대한 역원뿔 형상의 산이 하늘을 메웠다.
새하얀 빛이 천지사방을 휩쓸었다.
그 빛에 휩싸인 진인들의 ‘신자’들의 몸이 소금으로 변해 녹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소금의 안쪽에서, ‘신자’들의 원래 형상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신자’들에게 씌인 진인들의 힘이 물러가는 것이었다.
또한 이 신통의 효과는 이것이 끝이 아니었다.
―――――――!!!!!!!!
―――!!!
―!!!!!!!!!!!
―――――――――――――!!!!!!
쿠구구구구구!!!
천지가 흔들린다.
아니, 명귀계 전체가 미친 듯이 뒤흔들린다.
이전 역원뿔을 진인들에게 보여 준 것과는 차원이 다른 반응이었다.
비유하자면 이전의 것은, 삼척동자에게 어른이 실수로 명치를 맞은 것이었다면.
이번의 것은 삼척동자에게 어른이 커다란 칼로 쑤셔진 상황이었다.
진인들이 소금산의 형상을 보며 ‘제대로’ 치명상을 입은 게 느껴진다.
내 힘은 진인들에 비하면 벌레였지만, 이 소금산 너머에 있는 존재는 절대 그렇지 않았으니까.
광음역을 짓누르는 압력은 사라졌다.
남은 것은 명귀계의 계면 바깥에서, 정말로 정신 나갈 듯이 발광하는 진인들뿐.
진심으로 고통스러워서 발작하는 것이 느껴진다.
나는 하늘을 쳐다보며 미소를 지었다.
파사사사사―
19개의 머리를 가진 귀왕의 형상에서 벗어난 나는 진정 내 힘과 내 수명으로만 쌓은 축들을 가지고 손을 뻗었다.
두 개의 정통 축, 그리고 그 축에 맞먹는 광한천원의 축이 맞물리며, 허공을 열었다.
본래는 흑색귀골궁의 특수한 비술과 섭명함으로만 여는 게 가능한 ‘샛길’이, 나의 손에 의해 열린다.
우우우웅―
샛길은 넓어지고 넓어져 광음역 전체를 뒤덮을 수준이 되었다.
나는 샛길을 연 후 뒤를 돌아보았다.
저 건너편에서는 사대세력의 합체기들이 어안이 벙벙한 표정으로 이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 사이에서는 진인들에게서 벗어난 신자들이 자신의 삶을 찾은 것에 감격을 표하고 있었고, 어느새 날아간 유혜가 차조귀와 부둥켜 안고 울고 있었다.
개열기들에게는 치명적이었지만 정작 그 이하 경지들에겐 하나도 치명적이지 않았던 빛살을 거두며, 나는 마지막으로 명귀계 자체에 고개를 숙였다.
그동안, 명귀계에서 쌓은 인연들에 대해, 이 세계 그 자체에 감사를 올리는 것이었다.
“그럼, 안녕히 계십시오.”
쿠구구구구구!
이제 다시 돌아갈 때가 되었다.
그리운 광한계로.
그렇게, 광음역은 명귀계를 뒤로하고 샛길로 진입하였다.
* * *
천왕천역.
천역의 중심에 있는 빛의 궁전.
그 안쪽에서, 8명의 거대한 존재들이 당황한 기색을 물씬 뿜어내고 있었다.
: : 지축천역(地軸天域)에서 태산상제가 갑자기 발광하고 있다. : :
: : 저 무슨 말도 안 되는 권능인가. 간신히 유폐해 놓은 천역이 뒤흔들리고 있어. : :
: : 이대로면 간신히 유폐한 산의 신이 다시 빠져나올 터. : :
: : 빨리 천벌의 신 당시처럼 산의 신 전용의 유폐 천역을 창조해야 한다. 저대로 본인의 천역에 유폐한 상태는 불안하다. : :
: : 갑자기 이게 무슨 일이란 말인가. 저 자가 도대체 왜 발작하는가. : :
: : 알 수가 없군. 미친 자 같으니. 일단 우리 중 몇이 직접 가서 천역을 단단히 수복해 놓아야 한다. 그러지 아니하면 저 자가 광명의 결계를 부수고 다시 나올 터…. : :
: : 괴물 같은 자 같으니… 과연 천존과 맞먹는 상제답다…. : :
: : 당연한 일이지. 타락했다지만 한때 고귀한 존재였으니…. : :
의견을 주고받던 8명의 인영들은, 이내 결정을 내렸다.
: : 어선에 관한 심각한 상황이니 전원이 움직이도록 하지. : :
: : 광명상제에 영광 있으라. : :
스스슷!
말을 마친 인영들은 어딘가로 홀연히 사라졌다.
장내에는 오로지 빛의 좌만이 홀로 떠 있을 뿐이었다.
* * *
고력계.
북향함대의 주기지.
그 안쪽에서, 백의의 여인이 옥빛 노리개를 쓰다듬고 있었다.
그녀는 씁쓸한 얼굴로 그 앞에 누워 있는 귀신을 쳐다보았다.
“송 어르신, 이제 가시는 건가요?”
귀신은 껄껄 웃으며 말했다.
[늙은이가 드디어 갈 때가 되었나 보구나. 그동안… 정말 즐거웠다.]“어르신… 분명 방도가 더 있을 거예요.”
늙은 귀신은 편안한 얼굴로 백의 여인의 손을 잡았다.
[내가 가면… 내 제자를 잘 부탁….]그때였다.
우우우우웅!
“…?”
[…?]백의 여인의 손에 있던 옥색 노리개가 마구 진동하기 시작하며, 기이한 열기를 내뿜었다.
“이, 이게 왜 이러지?”
노리개가 내뿜는 열기는 점차 강해졌다.
그리고 어느 순간.
콰아아아아앙!
“…어?”
백의 여인과 늙은 귀신은 세계 전체에 울려 퍼진, 거대한 폭음을 들을 수 있었다.
쿠구구구구!
폭음이 울린 후 노리개는 온도가 더는 올라가지도 내려가지도 않은 채 고정되었고, 세계 전체에 진동이 울렸다.
늙은 귀신이 당황하며 말했다.
[처, 천기가 흔들리는군. 설마….]그가 기함하며 말했다.
[어떤 이계의 존재가, 고력계에 진입한 게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