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Regressor’s Tale of Cultivation RAW novel - Chapter (358)
유붕자원방래 불역락호 (1)
“예, 예? 서란이라니요, 그게 누굽니까?”
나는 눈앞의 요수를 보며 작게 한숨을 쉬었다.
‘거짓말투성이군.’
하도 거짓말만 뱉어 대길래, 처음에는 서휼인 줄 알았다.
‘외모도 가짜, 결단기라는 것도 거짓말, 서란을 모르는 것도 거짓말….’
안 그래도 서란의 외모를 빌린 덕에 서휼이 생각나자 한 줄기 살심이 치밀어오르는 듯했다.
내 살기를 느낀 백린이 격노하며 외쳤다.
[네 이노오오오옴!!! 제대로 대답하지 못하겠느냐아아아!!!]사축기 수행인 백린의 노호성에, 요수는 혼이 날아갈 듯이 켁켁거렸다.
“됐다.”
내가 한 손을 들어 올리자 백린이 노갈성을 내지르는 걸 그만두었고, 홍범이 앞으로 나서서 백린의 말을 통역해 주었다.
“한 번만 더 거짓말을 하면 죽이겠네.”
“음….”
그럴 생각까진 없었지만, 눈앞의 요수는 거짓말이 너무 심한 것 같아 일단 조금 강하게 나가기로 했다.
홍범의 협박이 효과가 좋았는지, 서란의 모습을 한 요수는 입에 거품을 물 듯이 발작하며 고개를 처박았다.
“죄송합니다, 나으리! 제발 용서해 주십시오! 아, 이제 됐다!”
촤아악!
눈앞에서 수증기가 일어나는 듯하더니, 요수의 모습이 변했다.
요수는 안개 속에서 비단잉어의 모습으로 변하는 듯하더니, 순식간에 다시 화형을 했다.
“…일단, 네 진짜 이름부터 말해 봐라.”
나는 얼굴에 알록달록한 비늘이 돋은 여인의 모습으로 화형한 비단잉어 요괴에게 말했다.
그녀는 체념한 듯 한숨을 쉬며 입을 열었다.
“…제 이름은 육요입니다, 나으리. 그리고 서란이라는 분은… 이전에 성란도에 오신 그 분을 잠시 만난 적이 있습니다.”
“오호, 그래. 어쩌다가, 어떻게 만난 거지?”
“그것이….”
그녀가 망설이려는 기색을 보이자, 홍범이 백린에게 눈치를 주었다.
백린은 귀화를 험악하게 피워올리며 육요에게 한 걸음 다가갔다.
“히익, 마, 말하겠습니다. 사실 그분이 성란도에서 찾을 게 있다 하셔서 성란도를 안내해 드렸습니다.”
“흠….”
나는 그녀의 의념을 읽으며 눈을 찌푸렸다.
또 거짓말이었다.
내가 홍범에게 눈짓을 주자, 홍범이 다시 백린에게 눈짓을 줬다.
백린은 격노하며 뼈만 남은 손아귀로 육요의 머리통을 틀어쥐었다.
홍범이 말했다.
“마지막 기회다. 교주께서는 거짓을 알아챌 수 있으시니 제대로 말해라.”
“크윽… 알겠습니다. 마, 말하겠습니다. 사실 용족의 모습을 한 서란 님의 얼굴을 훔치고 그분을 등쳐먹기 위해 제가 접근했었습니다!”
“….”
나는 어질어질한 그녀의 대답에 머리를 부여잡았다.
“그래서, 서란에게 무슨 짓을 한 거지?”
“벼, 별 짓은 하지 않았습니다. 그분의 얼굴과 품행을 잘 관찰하고, 기운을 조금 받은 후에….”
“숨기는 것 없이 제대로 고하여라. 또 뭘 숨기려는 것이지?”
“아, 아니… 사실 기운을 받기 위해 미약을 먹이고 잠자리만 좀….”
“….”
“어, 어쨌든 그렇게 ‘기운을 받은 후’에 그분의 아내분께 걸려 죽기 직전까지 몰렸다가 허리를 한 줌 뜯겼습니다. 도망치면서 서란 님의 저물도에서 고석 열 개 정도를 훔치긴 했지만 그것 외에 다른 걸 훔치진 않았습니다. 믿어 주십시오! 여, 여기 그분의 아내분께 뜯긴 자국도 아직 남아 있습니다!”
육요는 자신의 결백함을 증명하려는 듯 배를 보여 주었다.
그녀의 배 부분에는 사나운 맹수 같은 것에게 뜯겨 나간 듯한 자국이 남아 있었다.
‘…어지럽군.’
이 요수 놈이 서란에게 미약을 먹이고 기운을 뺏어간 것이나 서란에게 금품을 갈취했단 것도 그렇지만 서란이 결혼을 했다니!
나는 무슨 표정을 지어야 할지 모르는 상태가 되어서 녀석에게 질문했다.
“그래서, 그 후에 서란은 어찌 되었지?”
“얼마간 아내분을 피해 도망쳐 다니시다가, 차후에 성란도에서 찾던 걸 찾으셨는지 다른 섬으로 가셨습니다.”
“어디로 갔는지는 아느냐?”
“어… 제가 알기로는 응우도라는 곳입니다. 이곳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입니다만….”
“어느 방향이지?”
“성란도에서 서남쪽 방향입니다. 저쪽 방향인데, 새하얀 영기의 결정들이 하늘에 응집된 것으로 유명한 섬이지요.”
나는 홍범에게 말했다.
“홍범, 서란을 모셔 와라. 용형은 방금 이 녀석을 통해 보았고, 이제 인간형 얼굴을 알려 줄테니….”
“아, 괜찮습니다. 어린 시절에 뵈었던 분이라 기억 납니다.”
“음…? 뭐?”
확실히 홍범도 수계 출신이고, 녀석이 새끼 지네일 때 서란과 송진과 마주한 적이 있긴 했다.
그런데 아직 영성도 얻기 전의 일을 기억한다고?
난 조금 놀랐지만 홍범에게선 한두 번 놀란 게 아니니 그러려니 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뭐, 알겠다. 그럼 다녀오거라.”
“존명.”
파앗!
홍범은 축지법을 통해 육요가 가리킨 곳으로 사라졌고, 나는 그녀에게 물었다.
“어쨌든 보았듯이, 우리는 명귀계에서 넘어와 고력계의 상황을 잘 알지 못한다. 네 얘기 속에 나왔던 고석은 무엇이고, 고력계의 세력 편성은 대강 어찌 되며 이곳의 특징은 뭐가 있는지를 설명해라.”
“아… 예, 알겠습니다. 우선 고석이란….”
그녀는 자신의 저물도에서 빛나는 보석 같은 것을 한두 개 꺼냈다.
“이게 고석이란 것입니다. 고력계에서 화폐 취급이 되지요.”
“보아하니 영기를 충전하는 용도는 아닌 듯한데, 그건 무슨 돌이지?”
“아, 고석은 고력계에서만 나는 특이한 물질입니다. 저 심해 깊숙한 곳이나, 심해 마물들에게서만 얻을 수 있는 돌이지요. 고석의 특징은 바로 ‘귀환’입니다.”
“귀환?”
“바로 그렇습니다. 고석은 ‘역사를 축적하는 돌’이라고도 불리며, 지금까지 자신이 지나온 길을 끝없이 기록하고, 특정한 자극을 주면 자신이 지나온 길을 표시해 주지요.”
콰직!
그녀가 고석 하나를 으스러트리자, 고석에서 빛이 뿜어지며 육요가 전명훈에게 잡혀 온 경로대로 희미한 빛의 실이 나타났다.
“호오….”
“물론 이렇게 하나에만 자극을 주면 지나온 길을 표시해 주는 정도의 역할입니다만. 열 개 이상의 돌에 동시에 자극을 주면 고석에서 ‘인력’을 뿜어 한 번에 심해에서 해상으로 다시 복귀할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고석은 ‘귀환석’이라고도 불리지요.”
“신기하군. 한데 바다 밑이 그렇게나 위험한가? 수계 법술을 쓰는 자라면 귀환석은 필요 없을 텐데?”
그러나 내 말에 육요는 잠시 나를 이해 못 하겠단 눈빛을 보냈다.
하지만 이내 우리가 명귀계에서 왔단 걸 깨달았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아아, 죄송합니다. 다른 세계에서 오신 분들이나, 비승자들은 모르긴 하더군요. 듣자 하니 다른 세계에는 바다가 ‘물’로 채워져 있다는데, 그 때문에 가끔 비승한 지 얼마 안 되는 분들은 수영을 즐기겠다고 심해에 무작정 뛰어드는 웃지 못할 참사도 일어나긴 하지요.”
“…그럼 네 말은, 저 밑에 있는 바다가 물로 채워진 게 아니라는 거냐?”
이상했다.
눈에 보이는 것뿐이 아니라, 이 바다 전체는 진짜 바다처럼 진한 수기(水氣)를 머금고 있었다.
물의 기운이 가득한 곳인데, 정작 바다가 아니라니 기이한 소리였다.
육요는 고개를 끄덕이며 설명해 주었다.
“예, 저 밑의 존재하는 건 물과 굉장히 비슷하게 생겼지만 물 같은 게 아닙니다. ‘차원’이지요.”
“뭐라?”
나는 당황해서 되물었고 육요는 침착하게 말을 이었다.
“고력계의 심해는, 무수한 ‘차원’이 겹쳐지며 생겨난 곳입니다. 차원의 밀도가 너무나도 높아 물과 비슷한 형상으로 고여 있습니다만, 엄밀히 말해서 절대 다른 것이지요. 저 밑으로 들어가면 순식간에 공간이 뒤틀리며 왔던 곳을 알 수가 없게 됩니다. 심해에는 온갖 차원의 진귀한 보물들이 즐비하지만, 그만큼 심해 마물같은 괴물들도 많고 한 발짝이라도 잘못 디디면 그대로 깊숙한 차원 어딘가에 떨어져 버리는 무시무시한 공간이지요. 그래서 심해에 들어가면 다시 돌아올 수 있게 해 주는 귀환석이 ‘반드시’ 필요한 것입니다.”
“허어….”
나는 너무나 신기한 기분이 들어 아래쪽의 바다를 내려다보았다.
한참 동안 바다를 보고 있자니, 문뜩 나는 저 아래쪽에서 별처럼 빛나는 뭔가를 볼 수 있었다.
‘아, 그렇군.’
별 같은 게 아니라, ‘진짜 별’이었다.
저 바다 아래쪽에 ‘하늘’이 고여 있는 게 보였다.
그러나 내가 본 밤하늘은 파도에 묻히듯 그대로 흩어졌으며 이내 뭔가 다른 아른아른한 형상들이 비쳤다.
“도대체 왜 고력계엔 저런 것이 존재하는 거지?”
“음… 저도 잘은 모릅니다만, 내려오는 전설로는 멸망한 세계의 흔적이라 합니다.”
“멸망한 세계의 흔적?”
“예. 이제는 존재하지 않는 고대의 세계라고들 하지요. 심해에서 비치는 차원들은 상상할 수도 없는 예전에 멸망한 세계이고, 고력계의 심해는 그런 멸망한 세계들의 조각을 받아들여 형성된 것입니다.”
“….”
나는 그 말에 고력계로 비승하는 조건을 얼핏 알 것 같았다.
“고력계에도 비승자들이 있었다 했었나?”
“그렇습니다.”
“고력계로 비승하는 조건은 알고 있나?”
“예, 대강 알고는 있습니다만….”
나는 내가 어째서 고력계에 도착했는지를 알 것 같은 기분이 들어, 그녀에게 내 추론을 물어보았다.
“혹시 그 비승 조건이, ‘멸망한 세계의 힘’이나 유물을 가지고 있을 것인가?”
“아, 예. 맞습니다. 그렇게 들었던 것 같습니다.”
소금산의 주인의 구결을 전해 듣고 태산열제공을 사용하며 확실히 알 수 있었다.
소금산의 주인은 죽은 존재다.
그리고 진선은 그 자체로 세계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거대한 존재들이다.
그렇다는 건, 멸망한 세계의 흔적이라는 건….
‘죽은 진선들의 흔적, 혹은 그에 준하는 무엇인가. 그것이겠군.’
나는 찜찜한 표정으로 아래쪽의 바다를 느꼈다.
개열기 진인들 수십 명이 관음하는 중인 명귀계야말로 가장 음산하고 소름 끼치는 곳이라 생각했지만, 아무래도 틀렸던 것 같았다.
고력계에는 진선들의 시체가 바다처럼 쌓여 있으니, 고력계야말로 더더욱 소름 끼치는 세계가 아니겠는가.
그녀는 내 찝찝한 기분을 아는지 모르는지, 눈알을 데굴데굴 굴리며 설명을 이었다.
“…어쨌든, 다음은 고력계의 기본적인 영역에 대해서입니다. 고력계는 크게 세 개의 영역으로 나뉘어 있습니다. 첫째, 나으리와 제가 있는 수류(水流) 지역. 일단… 다른 세계에서 오시는 분들은 많이들 착각하시곤 하는데, 일단 하늘을 봐 주십시오.”
“음?”
나는 그녀의 말에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명귀계와는 달리 파란 하늘이었다.
태양이 없던 명귀계, 진마계와는 달리 고력계에는 그래도 비슷한 게 있었다.
하늘에 둘러진 길쭉한 고리가 그것이었다.
그러나 나는 하늘을 보던 와중 흠칫 놀랐다.
‘천기가… 읽히지 않는다고!?’
내가 당황하고 있자 그녀가 설명해 주었다.
“우선… 다른 세계의 하늘은 끝없는 허공이라고 하더군요. 어떤 느낌인지는 모르겠지만, 고력계에서는 하늘을 부를 때 정식 명칭이 존재합니다. 궁창(穹蒼)이라고 부르지요. 그리고, 궁창은 비어 있는 허공 같은 게 아닌 ‘또 다른’ 심해입니다. 하늘로 쭉 올라가시다 보면 궁창에 도달하셔서 심해로 빠지게 됩니다.”
“…그러니까….”
나는 단박에 그녀의 말을 이해했다.
하늘도 땅도 바다다.
어떻게 그런 구조가 존재하는가.
간단하다.
“이 세계, 그러니까 우리가 숨 쉬고 있는 이 공간은 일종의, 물속의 공기 방울이라 이건가?”
“바로 그렇습니다!”
그랬다.
이 세계는 일종의 공기 방울이다.
거대한 바다 안쪽에 있는 공기 방울.
그 안쪽에서 고력계의 생물들이 삶을 영위하는 것이었다.
“일단 수류지역에 대해서 설명을 마저 드리자면, 이런 ‘공기 방울’ 하나를 하나의 ‘해역’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이렇게 많은 해역들이 무수히 많이 뭉쳐 있는 것이 고력계이지요. 수류지역은 이 고력계 전체 중에서도 외곽에 있는 해역들을 일컫습니다.”
그녀의 설명이 이어졌다.
“그리고, 중앙으로 갈수록 해역의 크기가, 그러니까 공기 방울의 크기가 커집니다. 그 중에서 가장 중앙에는 가장 크기가 큰 해역이 있습니다. 일종의 작은 공기 방울 중앙에 굉장히 큰 공기 방울이 있다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그리고 그 큰 공기 방울을 ‘도거(道去)’ 지역이라 부릅니다.”
“음?”
나는 문득 이름이 익숙해서 멈칫했다.
수류.
도거.
그렇다면 그다음은….
“그럼 다음 지역은 봉양역인가?”
“어, 아닌데요.”
“….”
“봉양역이란 역은 없습니다만… 흠흠. 어쨌든 도거역은 가장 거대한 해역이고, 그 자체로 인력을 지니고 있어서 다른 작은 해역들을 도거역에 끌어당겨, 해역들이 심해 곳곳으로 흩어져 버리는 일을 방지해 준답니다. 그리고 마지막 지역인… 치제(廌祭) 지역입니다.”
“…!”
“치제지역은 도거지역의 중앙에 있는 거대한 대륙입니다. 사실 고력계에 있는 해역들에는 전부 섬뿐인지라 대륙은 치제지역이 유일하지요. 어쨌든 치제지역에는 고력계의 성사님이신 해린 성사께서 거하시고 계시며, 고력계 전체를 돌보십니다. 해역들의 중심인 도거역이 수도인 느낌이라면, 치제역은 그중에서도 특히 신성시되는 땅으로 천겁을 맞을 때 등 중요한 시기에 들르는 대륙이지요.”
“….”
나는 생각에 빠졌다.
봉양지역은 없다 했지만, 빼놓고 봐도 수류, 도거, 치제.
익숙한 이름이었다.
‘증룡진인의 저물도.’
그의 저물도 역시 수류층, 도거층, 봉양층, 치제층이 존재했다.
그리고 그의 저물도에서도 봉양층은 본디 도거층과 치제층의 중간에 만들어진 중간 지대라 봐야 했으니, 진짜 층은 수류층, 도거층, 치제층뿐.
‘하긴, 생각해 보면 고력계는 강녕… 그리고 강녕의 주인인 선수 해태의 후임이 바로 증룡진인이었으니….’
나는 계속 설명하란 뜻으로 육요에게 눈짓을 보냈다.
“예, 그럼 고력계의 세력에 대해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일단 고력계에는 큰 세력이랄 것이 없습니다. 오로지 성사 해린께서 다스리시는 해왕전(獬王殿)만이 고력계의 최고 세력이지요. 고력계의 존자들께서 일전에 파벌 싸움을 하다가 해역 몇 개가 날아간 적이 있었는데, 성사께서 그 뒤로 존자들을 숙청하신 후 해왕전 외에 다른 큰 세력을 금하시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덕분에 고력계에는 해왕전 말고 다른 큰 세력은 없고, 해역의 지배자들인 궁(宮)들이 소소하게 존재할 뿐이지요. 궁 아래로는 수십 수백 개의 섬들이 존재하고, 섬들의 주인인 도주(島主)가 존재합니다. 그들끼리 사소한 알력 다툼을 할 뿐이고 그 외에 큰 세력 다툼은 없습니다.”
“그렇군… 그럼 성사는 해역 수준의 작은 다툼에는 관여하지 않는단 건가?”
“그런 셈이지요.”
‘마음껏 포교해도 되겠어.’
물론 어차피 무극교단이 명귀계에서 잘 먹힌 이유는 육신을 만들어 줘서였고, 고력계 생물들에겐 의미가 없을 테니 크게 먹히진 않을 터였다.
하지만 그래도 한 해역의 주인이 귀찮게 할 때 반격할 수는 있다는 의미였으니 상관 없었다.
나는 육요에게 질문했다.
“그나저나, 궁금한 게 있군. 그렇다면 저 아래 섬이란 건 도대체 뭐냐. 아래 있는 게 물이 아니라 차원이라면, 저 섬들은 차원 위에 둥둥 떠 있는 건데 어떻게 멀쩡할 수 있는 거지?”
“아…! 그야 저 섬들은 고석이 뭉쳐 있는 섬입니다. 곳곳에 고석 광맥이 묻혀 있어 절대 가라앉지 않습니다. 거기다가 고석은 원래 위치를 기억하고 그곳으로 인력을 발하는 특성이 있기에 차원이 흔들려도 그 자리에 붙박여 있지요.”
“고석이란 게 화폐라 하지 않았나? 누가 다 캐 가면 저 섬들은 가라앉는 거냐?”
“그렇습니다. 그래서 보통 섬에서 고석을 캐는 행위는 엄격히 금지되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런 짓을 하다 걸리면 도주들에 의해 심해 마물을 낚는 미끼가 되어 매달리게 되지요. 그 미끼에 의해 심해 마물이 달려들면 마물을 사냥해서 마물에게서 고석을 얻어내 미끼가 캐낸 만큼 고석을 돌려받는 방식이지요. 그렇게 본인이 캐낸 고석의 열 배만큼의 고석을 채취하면 그제야 풀어줍니다. 물론 미끼는 대부분 그 전에 죽기 때문에 일종의 사형 선고입지요.”
“흐음, 그렇군.”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당분간은 이 근처에 떠 있도록 하지. 그 심해 마물이란 걸 사냥해서 광음역 전체를 가라앉지 않게 할 정도의 고석을 얻어낸 후에 착륙한다! 알겠나?”
[존명!]내 말에 주변의 수호귀왕들이 우렁차게 대답했다.
나는 육요에게 말했다.
“일단 설명은 고맙다. 어찌 되었든 유용한 정보를 주었으니 귀빈으로 모시도록 하지.”
“아, 아닙니다. 저는 쓸모가 없으니 그냥 근처에 던져 주시면 알아서 사라지겠습니다. 헤헤….”
“미안하지만 현지인이 조금 더 필요해서 말이지. 여봐라, 백린. 이 녀석을 귀빈실에다가 데려다 놓거라.”
[예, 교주님.]백린은 우렁차게 대답하며 육요를 끌고 그대로 어딘가로 사라졌다.
육요는 공포스러운 얼굴로 나를 바라봤지만, 나는 백린의 따뜻한 마음씨를 알고 있었기 때문에 신경 쓰지 않고 하늘을 바라보았다.
천기가 읽히지 않았다.
‘재밌군. 하늘이 없는 세계라….’
그렇다면 이 세계는 천족이 살아남기가 굉장히 어려울 터였다.
물론 차원의 조각이라는 것들에서도 별빛이 보이긴 했기에 칠성제는 어찌 지낼 수도 있을 터였지만, 천기가 제대로 읽히지 않으니 정보전에서 압도적으로 밀릴 터.
‘지족이 가득한 세상이라….’
재밌는 곳이었다.
그리고 바로 그때, 저 멀리서 익숙한 그림자가 날아왔다.
시커먼 지네 요수가 하늘을 가르며 이쪽으로 오고 있었다.
쿠웅!
홍범이 내 앞에 내려앉았다.
“다녀왔습니다, 주인님.”
“수고했다, 그리고….”
나는 홍범의 머리 위쪽에 앉아 있는 두 명의 인영을 바라보았다.
“오랜만이네, 친구.”
검은색의 옷을 입고 있는 반인반룡.
서란이었다.
* * *
북향함대 주 기지.
방금 전까지 자리에서 누워 있던 늙은 귀신이 손가락을 잘근잘근 씹으며 방 안을 마구 돌아다니고 있었다.
“이런 빌어 처먹을, 제자가 위정해역에 있는데, 위정해역에 이계의 존재가 쳐들어왔단 말인가? 심해 마물인지, 공허간의 시인지는 모르겠지만 옆 해역까지 충격이 전해질 정도면 필시 어마어마한 존재가 들어왔다는 것일 텐데… 제자가 무사해야 하는데…. 호, 혹시 남은 천리안 없는가?”
늙은 귀신을 보며, 백의 여인은 뜨겁게 달아오른 옥색 노리개를 거머쥐었다.
그녀가 저물도를 꺼내더니 그 안에서 뭔가를 뒤졌다.
“으음, 천리안은 전에 이 해역을 점령할 당시 전부 사용했나 보네요. 더 없어요.”
“크윽… 아! 그 이전에 위치 추적 장치 같은 걸 만들어 본다 하지 않았더냐?”
“예… 하지만 송 어르신이 천리안 같은 기물이 있는데 왜 그런 걸 만드냐면서 더 만들지 말라 하셨잖아요.”
백의 여인은 조금 뚱한 표정으로 늙은 귀신을 바라보았고, 늙은 귀신은 그녀에게 쩔쩔 매며 말했다.
“으음, 미안하다. 다 쓸모가 있는 것을…. 그래서 정말 개발 안 했던 게냐?”
“흠… 시험작이 있긴 있어요. 다만 중간에 개발 중단한 거라 천리안만큼 효과가 뚜렷하진 않고, 서란의 위치를 대략 측정하는 정도예요.”
백의 여인은 저물도에서 작은 수정 같은 것을 꺼냈다.
그녀가 수정에 영기를 불어넣자, 수정이 빛나며 해역의 지도 같은 것이 그 위로 떠올랐다.
지도 위쪽에는 커다란 시커먼 구체가 떠올라 있었다.
“이, 이건….”
“위정해역의 상황이에요. 위정해역 상공에 뭔가 불길한 것이 떠올랐군요. 거기다가 이 크기… 생명체라면 ‘최소’한 합체기 대원만급의 존재에요. 어쩌면 그 이상일 수도 있죠.”
“내, 내 제자는? 제자는 어디있지?”
“서란에게 준 망령들이 있죠? 서란에게 준 망령과 똑같은 기운을 가진 망령들을 가지고 계시나요? 특정할 만한 기운이 필요해요.”
“여기! 제자가 가진 제귀령과 한 쌍으로 만들어진 제귀령이다. 조금 낡긴 했지만….”
늙은 귀신은 품에서 녹이 슬고 다 낡아서 볼품없어 보이는 방울을 하나 꺼냈다.
“본질적인 기운은 틀림없이 같다.”
“네, 그거면 충분해요.”
백의 여인은 귀신에게서 그 방울을 받아 수정 위에 떠오른 지도에 가져다 대었다.
그러자 지도가 반응하며, 하나의 붉은 점을 만들어 냈다.
늙은 귀신의 눈이 커졌다.
지도에 있는 붉은 점은, 지도에 떠오른 커다란 검은 구체의 중앙에 위치해 있었다.
그가 머리를 쥐어뜯으며 소리쳤다.
“당장! 당장 북향함대를 출동시켜라! 위정해역으로 향해야 해! 내 제자가 이계의 사악한 존재의 배 속에 있어!!!”
회귀수선전(回歸修仙傳) 360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