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Regressor’s Tale of Cultivation RAW novel - Chapter (364)
유붕자원방래 불역락호 (7)
북향화가 서란과 친해진 이유는 송진을 통한 만남 덕이기도 했고, 시호와 서란의 약혼 같은 당사자는 웃지 못할 재미난 사건 덕이기도 했다.
그러나 어찌 되었든 그녀가 서란과 말을 트게 된 이유 중 하나는, 그녀의 어린 시절 아명이 바로 서란과 같은 란(蘭)이었기 때문이리라.
그녀는 어린 시절을 기억했다.
아직도 눈을 감으면 아스라이 피어나는 목련 향기가 그녀의 코를 간질이는 듯했다.
―란아.
그녀의 아명(兒名)을 사랑스럽게 부르는 여인의 목소리가 울렸다.
―아니, 이제 아명도 뗄 때가 됐지, 향화야?
북향화는 침상에 누워 있는 채 초췌한 모습을 한 여인에게 달라붙어 있었다.
―아니에요! 그냥 란이라 불러 줘요. 향화는 이상하단 말예요.
―후후, 괜찮아. 예쁜 이름이야.
―아닌 거 같은데.
잠시 초췌한 여인에게 달라붙어 있던 향화와 그녀에게, 굳은 얼굴의 중년인이 탕약을 한 사발 가지고 왔다.
―약을 지어 왔어, 연아.
―고마워요.
향화의 아버지, 북중호였다.
북중호는 딱딱하나, 어딘가 슬픈 얼굴로 초췌한 여인.
향화의 어머니인 연에게 약을 먹여 주었다.
연은 약을 받아 마신 후 마른기침을 했다.
그녀의 눈에서는 날이 갈수록 생기가 말라 갔다.
―향화야, 엄마가 없어도 잘 살 수 있니?
향화는 고개를 저었다.
―엄마, 어디 갈 거예요?
그녀는 연의 가슴에 머리를 파묻으며 울먹였다.
―안 돼! 가지 마세요! 요새 이상한 꿈도 꾼단 말이에요. 오늘 밤에도 무지갯빛 새가 날 깔아뭉갰어요! 혼자 자기 무서워!
―…우리 향화. 이제 아명도 뗐으니까 혼자 잘 줄도 알아야지. 정 무서우면 아빠랑 같이 자렴.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북향화는 연에게 파묻혀서 울먹였다.
그녀도 어린 나이였지만 대강은 알고 있었다.
죽음이란 걸 이해하기도 힘들었지만, 이제 그녀의 어머니인 연은 곧 다시는 못 볼 것이라는 예감쯤은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본인에게서 떨어지지 않는 북향화를 보며, 연은 잠시 한숨을 내쉬더니 침상 옆에 있는 옥색 노리개를 그녀에게 건냈다.
―뚝, 향화야. 엄마가 선물 줄게. 이거 받으렴.
―이게 뭐예요?
―엄마가 어릴 적에 친구랑 한 약속이 있거든.
연은 상냥하게 북향화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북향화는 노리개에 얽힌 약속을 들었다.
―…그러니까, 나중에 그 애의 자식을 만나게 되면 휘아는 잘 지내느냐고 물어봐 줘.
―네! 그리고 약속도 잘 지킬게요! 여자면 자매를 맺고, 남자면 혼례를 맺고!
―꼭 원하지 않으면 안 그래도 된단다. 그것보단 그냥 안부나 물어봐 주렴.
―아니에요, 약속은 꼭 지킬게요! 반드시!
북향화는 연의 손을 잡고 꼭 다짐했다.
연은 북향화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녀는 어머니의 상냥한 손길을 받으며, 어머니의 옥색 노리개를 품에 안고 잠들었다.
그녀의 손에선 목련향이 났다.
* * *
“…엄….”
북향화는 그녀의 어머니, 연의 꿈을 꾸며 눈을 떴다.
어디선가 기묘한 꽃향기가 나며, 어쩐지 가녀린 손가락이 북향화의 뺨을 쓰다듬고 있었다.
“…엄마…?”
북향화는 자신의 뺨을 쓰다듬는 손을 잡으며 흐릿한 눈동자를 또렷이 떴다.
그리고 그녀는 흠칫 놀랐다.
“핫!”
그녀의 뺨을 쓰다듬던 건 한참 전에 죽은 북향화의 어머니, 연이 아니었다.
연분홍빛 궁장을 입은 김연이었다.
북향화는 경계 어린 표정으로 침상에서 상반신을 일으켰다.
그녀는 빠르게 주변을 둘러보며 상황을 파악했다.
‘고문실이나 감옥 같은 곳은 아니고, 깨끗한 침상에… 구속 법술이나 금제도 펼쳐져 있지 않아. 포로가 아니라… 손님 대접을 해 주는 건가? 내 법기는… 하나도 없군.’
북향화는 그 사실들에, 긴장을 모두 풀지는 않았지만 경계심을 조금은 누그러뜨리고 김연에게 물었다.
“…어떻게 된 거죠? 분명 일향함에 자폭 명령을 내렸는데….”
김연은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
“그깟 장난감 배의 자폭 명령을 취소시키는 게 뭐가 어려웠겠니?”
북향화는 그녀의 작품을 무시하는 발언에 눈이 돌아갈 뻔했지만, 간신히 참아 내고는 자신의 뺨을 매만졌다.
“그나저나, 남의 얼굴은 왜 그리 그윽하게 만지시는 건가요?”
“네 머리에 들어간 의식 실을 뽑아내고 있던 거야. 머리통이 작아서 뽑기도 편하더라. 하긴, 그렇게 작은 머리통을 가지고 있으니 법기들도 그 모양이지.”
울컥!
북향화는 다시 한번 그녀의 작품을 무시하는 발언에, 이마에 힘줄이 돋아 말했다.
“…머리통 커서 좋으시겠네요.”
그리고 역시나 김연의 이마에도 힘줄이 돋아났다.
“맞아, 너보다 키가 좀 크긴 하지, 땅딸보야.”
“이름이 김연이라 했었죠? 제발 개명 좀 해 주시면 안 될까요? 제가 아는 훌륭한 분하고 이름이 겹치는데, 그분에 대한 모욕 같네요.”
“어머나, 본인 키가 달리는데 왜 갑자기 다른 사람이 나오실까? 나도 마음에는 안 들어도 우리 스승 이름 부를 수는 있는데?”
“하, 얼마나 잘나신 분 문하에서 배우셨길래 그러시죠?”
“고력계 사람인 너는 들어도 몰라.”
“왜, 말하기가 부끄러우신가요?”
“흥, 정말로 모른다니까? 뭐, 괴군이라는 이상한 칭호가 있긴 하지만 괴뢰술 하나는….”
“….”
그리고, 다음 순간 북향화의 입이 딱 벌어졌다.
김연은 그녀의 이상한 분위기를 감지했는지 의아한 눈초리가 되었다.
북향화는 잠시 멍한 표정이 되더니,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당신, 당신 스승이… 괴군 조연…인 건가요?”
“…그렇다만?”
“…기묘성채 타고 다니는 곱사등이 일문법재?”
“뭐야, 어떻게 알고 있는 거지? 너, 고력계 태생 아니었어?”
그리고, 북향화는 김연의 질문에 대답하지 않고 멍해진 눈초리가 되었다.
얼마간 멍한 상태가 되어 있던 북향화는 김연보다 기세가 낮아졌다.
“…어, 어떻게 그분의 제자가 이런 재수 없는 인간인 거지…?”
김연은 확 기분이 나빠졌지만, 북향화가 그녀의 눈을 마주치지 못하고 시선을 내리까는 것을 보자 피식 웃었다.
“넌 그 재수 없는 사람한테 패배해서 잡힌 거고?”
“…으으, 다, 당신한테 패배한 게 아니에요.”
“변명은. 그건 그렇고 너 몇 살인데 당신, 당신 거리니?”
김연은 북향화에게 나이를 물었고 북향화는 눈치를 보다가 대답했다.
“…271.”
“나보다 동생이네.”
김연과 그들 일행이 등선향에 떨어졌을 당시, 김연의 나이는 26세였고, 북향화는 18세였었다.
비록 수도자가 되며 그 정도의 나이 차는 아무것도 아니게 되었지만, 김연은 북향화를 기선 제압해 놓고자 팔짱을 끼며 말했다.
“언니라 불러.”
북향화는 우물쭈물하는 듯했으나, 그녀의 머릿속에 김연이 괴군의 제자란 것이 떠올랐다.
“어, 언….”
“뭐라고?”
“언….”
“더 크게 말해 주겠니?”
“언청이 같은 게!”
그러나 북향화는 결국 자신의 작품을 무시한 김연을 인정할 수 없었고, 결국 그녀의 속마음이 터져 나왔다.
김연의 이마에 힘줄이 튀어나오며 그녀의 섬섬옥수가 북향화의 어깨를 잡았다.
잠시 북향화를 노려보던 김연이었지만 한숨을 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됐다. 내가 애랑 뭐 하는 거람.”
“흥, 생긴 건 그쪽이 더 애 같거든요?”
“그래, 넌 얼굴 삭아서 좋겠다. 칭찬 고마워.”
그녀는 북향화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뭐, 너랑 기 싸움 하다가 깜빡할 뻔하긴 했는데… 너, 서란이라는 용과 시호라는 여우, 그리고… 김영훈이라는 분의 동료지?”
잠시 열불이 뻗쳤던 북향화는 감정이 가라앉히며 고개를 끄덕였다.
대우가 좋아서 잠시 잊고 있긴 했었다만, 엄밀히 말하면 그녀는 김연과 싸우다 잡혀 온 상황이었다.
‘도대체 어찌 된 상황이지? 일단 서란과 시호, 김영훈 대인을 호의를 담아 부르는 걸 보면… 예전부터 그들과 연이 있던 건가?’
그리고 김연은 북향화에게 대략적인 상황을 설명해 주었다.
“은현 오빠… 아니, 우리 교주이신 무극귀왕께서 하계에 있던 시절에 서란과 시호 둘과 만난 적이 있다고 하셨거든.”
“…그럼 김영훈 대인과는 무슨 관계죠?”
“그분은 원래 우리 회사… 음… 뭐라고 설명해야 하지? 그래, 대충 원래 우리 동료셨어.”
“…!”
북향화는 놀라운 사실에 눈을 크게 떴다.
‘김영훈 대인이… 귀물들의 수상쩍은 교단 출신이셨다니. 과연, 마교 출신이셔서 유독 별호에 신마(神魔)가 들어가는 게 많았던 건가!?’
그녀는 긴장에 찬 눈으로 김연을 올려다보며 물었다.
“…저는 어떻게 하실 거죠?”
“넌 일단 우리 동료의 동료니까 적대는 안 할 거야. 하지만 어쨌든 네가 함대를 이끌고 온 바람에 본교에 손해를 끼치기도 했지. 그래서 그 관련으로 교주님을 배알한 후에 결정할 거야.”
“교, 교주….”
북향화는 ‘교주’라는 말에 침을 삼켰다.
교주라는 자의 정체는 대강 짐작이 갔다.
북향함대 전력의 사실상 삼분지 이를 차지하는 존재이자, 북향화에게 ‘정복왕’의 칭호를 넘겨 주다시피 한 자.
그리고 그녀의 함대에게 ‘무패 함대’라는 이유를 안겨 준 결정적인 이유 중 하나.
그 김영훈과 호각으로 맞서 싸우다 못해, 마지막에는 김영훈이 구조 신호를 보내게까지 만들었던 존재!
10초 안에 김영훈과 전장 전역을 움직이며 결투하고, 북향화의 북향함대가 자랑하는 해권 결계를 그냥 뻥 뚫어 버린 괴물 같은 수사.
‘아마 그자가 교주일 터.’
그녀는 식은땀을 흘렸다.
“…그분은, 어떤 분이시죠?”
그 말에, 김연의 얼굴이 붉어졌다.
“그분은… 그래. 대단한 사람이지.”
북향화는 김연의 반응을 보며 한 가지를 알 수 있었다.
‘이 여자, 교주라는 자를 연모하고 있군.’
그리고 그녀는 김연의 반응을 통하며 교주란 존재에 대해 한 가지 선입견을 가지게 되었다.
‘이 재수 없는 인간이 좋아하는 걸 보니, 교주란 존재도 굉장히 뒤틀리고 해괴한 사람이 틀림없어. 아니, 귀신들의 교단이니 어쩌면 사람도 아니겠지!’
얼마간 서은현에 대해 떠들던 김연은 문득 북향화의 의념을 보고 불쾌한 듯이 눈을 찌푸렸다.
“…뭔가 불순한 생각을 하는 것 같은데, 일단 일어나서 옷부터 갈아입고, 무극교단에서 쓰는 예절과 언어부터 주입당하고 가야겠네. 빨리 일어나!”
“예? 아니, 잠깐! 뭐 하는 거야! 꺄아아악!”
김연은 짜증스러운 얼굴로 북향화를 일으켜 옷을 갈아입히며, 기묘성심전으로 무극교단의 언어 등이나 예절을 주입시켰다.
* * *
“아니! 세상에 스승님이 걱정하고 계셨다니, 그걸 생각 못 했군요. 스승님께는 죄송하게 되었습니다.”
서란은 김영훈이 깨어나자마자, 그들이 이곳에 온 이유를 전해 듣고 탄식을 터트렸다.
깨어난 김영훈은 어딘지 달관한 얼굴로 서란에게 상황을 설명해 주었고, 또 우리를 반겨 주었다.
나와 전명훈, 오현석 등을 보며 오랜만에 만난 동료들과 회포를 풀었으며, 강민희나 오혜서의 소식을 전해 듣고 안타까워 하기도 했다.
“아하하하! 그나저나 형님! 왜 이렇게 또 힘이 없어 보이십니까? 폭탄주 한 잔 하셔야지요?”
오현석은 원래부터 김영훈과 형 동생 하던 사이였으므로, 반로환동한 김영훈에게 기껍게 다가가 껄껄 웃었다.
그러나 김영훈은 가장 친하던 동생인 오현석이 웃으며 다가왔음에도 어딘지 공허해 보이는 눈을 하며 힘없이 웃을 뿐이었다.
‘…나 때문은 아니겠지.’
나는 김영훈의 애병을 너무 심하게 다 박살 냈나 싶기도 했지만, 김영훈 쪽에서 딱히 아무 말 없는 듯해서 일단 입을 닫고 있었다.
그리고, 그렇게 얼마간 서란, 시호를 비롯해서 김영훈, 오현석, 전명훈 그리고 내가 귀빈실에 모여 오랜만에 즐겁게 껄껄 웃고 있을 때였다.
내 의식 영역에 귀빈실로 다가오는 두 사람이 잡혔다.
두근, 두근―
김영훈과 동료들이 오랜만에 만나 무극교단의 귀주를 꺼내 마신 탓일까.
아니면 이전의 그림자를 떨쳐 내지 못한 탓일까.
나는 괜스레 심장이 두근거리는 기분이었다.
그리고 얼마 후.
귀빈실의 문이 열렸다.
익숙한 두 명이, 얼굴을 비췄다.
김연.
그리고… 북향화였다.
오랜만에 만난 북향화는, 하필이면 그날 함께 사위를 추었던 그때의 옷과 비슷한 옷을 입고 있었다.
* * *
김연은 북향화의 옷을 갈아입히며 생각했다.
‘최대한 수수하게!’
서은현이 북향화를 처음 보고 뭔가 의념을 움찔거렸던 것은 그녀 역시 기억하고 있었다.
그랬기에, 김연은 무극교단의 처녀 귀신들이 입고 다니는 새하얀 소복을 걷어서 북향화에게 입혔다.
‘외모가 최대한 빛을 발하지 않게 하면, 은현 오빠도 큰 관심을 안 가지겠지?’
그런 다음 김연은 북향화에게 기묘성심전으로 몇 가지 정보를 주입한 후, 그녀를 서은현에게 데리고 갔다.
얼마 후, 김연과 북향화는 서은현과 무극교단의 간부진, 그리고 정복함대의 간부진이 있는 자리에 도착했다.
북향화는 김연에게 끌려가다시피 걸어가며 긴장했다.
그리고 마침내 귀빈실에 도착해, 그곳에 앉아 있는 서은현과, 긴장 속에서 눈을 마주쳤다.
“…어.”
그녀의 눈이 커졌다.
북향화는 서은현을 보며 입을 뻐끔거리다, 다시 닫기를 얼마간 반복했고, 마침내 입을 열었다.
절로 모르게 울렁거리는 가슴에 손을 가져다 대면서.
“…당신이셨군요.”
그녀가 북향함대를 만들며, 수계 전체를 뒤지면서 찾아 헤맸던 존재.
그녀의 어머니인 연이 만들었던, 옥색 노리개를 가져온, 약속의 상대.
그리고, 서은현은 옅게 웃었다.
그의 의념이 요동쳤고, 그는 뭔가를 추억하는 듯한 표정이 되었다.
둘 사이에 묘한 기류가 흐르는 걸 가장 빨리 알아챈 건 김연이었다.
김연은 무표정하게 북향화의 뒤통수를 쳐다보았다.
그녀는 북향화의 체내에 그녀가 알아채지 못하게 기묘성심전을 이용해 분혼 한 줄기를 불어넣었었다.
다음에 혹시라도 싸울 때 언제라도 다시 꼭두각시처럼 조종할 수 있게.
북향화는 잠시 멍하니 서은현을 바라보며, 품 안에서 옥색 노리개를 꺼냈다.
“…지난번에, 제게 이걸 주고 가셨었죠?”
서은현은 그 옥색 노리개를 바라보았다.
북향화는 떨리는 목소리로 할 말을 찾았다.
어째선지 할 말이 잘 생각나지 않았다.
그러나 가까스로, 그녀는 연의 말을 떠올렸다.
―안부나 물어봐 주렴.
북향화는 서은현에게 가까스로 질문했다.
“이 노리개… 그러니까, 당신. 당신이 노리개의 원주인은 아니고, 받은… 것이셨죠?”
서은현은 잠시 멍한 표정을 짓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북향화는 서은현에게 질문했다.
“당신께… 노리개를 전달하신 분은, 잘…계셨나요?”
다소 뜬금없는 질문 같았지만, 북향화에겐 나름 중요한 질문이었다.
노리개를 전해 주러 온 상대에게, 이 질문을 하기 위해 그녀는 천색성을 떠나지 않기로 맹세하기도 했었으니까.
그래, 이것은 연의 유언이었다.
그리고 서은현은 잠시 눈을 감았다.
* * *
‘잘 계셨냐… 라.’
나에게 저 노리개를 준 것은 10회차의 북향화였다.
그녀와 마지막 사위를 추었던 순간이 떠올랐다.
마지막에 나와 입을 맞추고, 하늘로 올라가던 그녀의 순수한 혼이 떠올랐다.
그래, 그녀는 분명 어떠한 원한도 남기지 않고 저승으로 갔다.
그러니 분명.
잘 있었을 것이리라.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북향화와 눈을 맞추고 대답해 주었다.
“…제게 노리개를 주셨던 분은, 어떤 한도 남기지 않고 하늘로 떠나셨습니다.”
“그렇군요… 다행이에요.”
어쩐지 그녀가 질문한 바와 내가 대답한 바는 다른 듯했지만 나는 10회차 당시의 그녀를 떠올리며, 마음을 굳혔다.
“그러니, 소저께서도 걱정하실 필요 없습니다.”
눈앞의 그녀와 이전의 그녀는 다른 사람이다.
확실히 하자.
지금부터 나와 마음을 쌓아 갈 수 있을 것이고, 동료로서 좋은 관계를 맺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내가 사랑을 주고받았던 그녀와는 타인이다.
“앉으시지요, 소저. 무극교단과 소저의 정복함대는 좋은 동료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북향화는, 살짝 멍한 표정으로 자리에 걸터앉았다.
왠지 내게 다른 뭔가를 기대하고 있던 듯했지만, 지금 당장은, 나와 아무런 관계가 쌓이지 않은 그녀는 내가 마음을 준 사람이 아니었다.
* * *
북향화는 서란이나 시호가 무사한 걸 보고, 무극교단에 대해 들으며 오해를 풀었다.
그러나 그녀는 어쩐지 멍한 표정이었다.
‘아… 분명, 내가 들어야 했던 말이 맞아.’
분명 그녀는 어머니의 유언에 따라 안부를 묻고, 가능하면 의자매나 혼례를 맺기로 했다.
물론 교주의 옆에는 김연이라는 자가 있는 것 같았기에 혼례는 욕심내지 않았다.
하지만 어째서일까.
북향화는 마음 한편이 쓸려 나간 듯이 괴로웠다.
‘처음부터 그랬지.’
저 사내가 처음 노리개를 전해 주러 왔을 때도 그랬다.
이상한 기분이 들었었다.
그녀는 쓴웃음을 지으며, 왁자지껄한 분위기의 귀빈실에서 잠시 양해를 구하고 나왔다.
가슴이 이상했다.
그녀는 왜 그런지에 대해서 나름 합당한 이유를 찾아냈다.
‘…이제, 뭘 목적으로 살아야 하지.’
그녀의 인생 목적 중 하나는 어머니의 유언을 따르는 것이었다.
어머니인 연의 말에 따라 노리개도 전달받았고, 안부도 물었다.
모든 목적을 이뤘기 때문에 이리 공허한지도 몰랐다.
아니, 어쩌면 목적을 이루며 더 이상 어머니를 추억할 수 없었기 때문인지도 몰랐다.
어머니의 말을 따르며, 더 이상 그녀를 추억할 수 없다는 슬픔.
그리고 저 사내를 본 순간 어딘지 모르게 북받쳐 오르는 감정.
그 밖의 여러 가지 감정이 북받쳐 올랐다.
그리고, 그녀의 옆에 김연이 나타났다.
북향화는 울적한 표정을 가리고 물었다.
“뭐예요?”
“…감시하러 따라나왔어.”
“하. 웃기시네요, 정말. 유치하기도 하고.”
그러나 김연은 북향화의 말에 트집을 잡지 않고 말했다.
“울고 싶으면 울어.”
“예?”
“인생 선배이자 네 상위 호환이나 다름없는 괴군의 제자로서 조금 받아 줄게. 갑자기 울고 싶어질 때가 있긴 하지.”
“그게 무슨….”
그러나 북향화는 자신도 모르게 눈물을 흘리고 있단 걸 알아챘다.
김연은 북향화를 쏘아보던 아까의 표정은 풀고 잠시 그녀에게 다가가 등을 두드려 주었다.
결국 북향화는, 김연의 품 안에서 울음을 터트렸다.
왜인지는 몰랐다.
어머니를 더 추억할 인생의 목표가 해결된 탓인지.
아니면 마음을 싱숭생숭하게 하던 서은현 때문인지.
그도 아니면 하필 그녀의 어머니와 이름이 똑같은 김연 때문인지.
그래, 어쩌면 김연에게선 기묘한 꽃향기가 나기 때문일지도 몰랐다.
북향화 본인의 어머니에게서 났던 목련 향처럼.
“….”
김연은 의식을 뻗어, 누군가가 그녀들을 의식 영역으로 감시하지 못하게 막은 후, 뜬금없이 감정이 터져 버린 북향화를 안아 주며 토닥여 주었다.
여전히 김연은 북향화가 싫었다.
그리고 김연이 싫은 건 지금 그녀의 품 안에서 우는 북향화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김연은 단 한 가지 이유 때문에 북향화의 급작스러운 감정을 받아 주었다.
서은현도, 김연이 힘들 때 똑같이 해 주었으니까.
김연은 기묘성심전의 시야를 통해 북향화의 감정을 읽었다.
감정이란 총천연색이어서 전부 읽을 순 없었지만, 그녀의 마음에는 부모에 대한 걱정과 슬픔이 섞여 있었고, 그녀는 북향화의 모습에서 과거의 그녀를 겹쳐 보았다.
얼마간 김연에게 감정을 토해 냈을까.
북향화는 눈물을 훔치며 말했다.
“…일단 고맙단 인사는 드릴게요, 언니.”
회귀수선전(回歸修仙傳) 366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