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Regressor’s Tale of Cultivation RAW novel - Chapter (365)
손을 잡고 (1)
북향화와 김연은 뭔가 불안한 증세를 보이는 듯했으나, 얼마 후 다시 들어와서 다시금 합류했다.
의념이 조금 안정된 것으로 보아 그렇게 걱정할 필요는 없는 것 같았다.
우리는 그렇게 회포를 푼 후, 다음 날 무극교전 회의실에 모였다.
“…일단, 이렇게 오늘 모여 주신 여러분께 감사드리겠소.”
나는 무극교단의 교주로서 교좌에 앉아 그들에게 말했다.
어제는 오랜만에 만난 동료들과의 회포를 푼 것이었다면, 오늘은 ‘무극교단을 침공한 북향함대의 지배자’들과 만나는 것이었기에 조금 엄숙한 목소리로 말했다.
북향함대의 대표는 어찌 보면 당연했지만, 이름대로 북향화가 나왔다.
“환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교주님.”
“다들 차나 한잔 들며 시작하도록 하지.”
난 무극교단의 시비 귀물들에게 시켜, 차를 가져오도록 했다.
얼마 후 꿀단지 하나가 각자의 앞으로 나왔고, 명귀계의 특산물인 매실차가 그들의 앞으로 나왔다.
“일반인들의 입맛에는 조금 시니, 앞에 있는 꿀을 타 드시길 권하겠소.”
특이하게도 명귀계의 귀신들은 매실과 소과나무 열매 등 신 열매를 매우 좋아했다.
덕분에 귀신들 중 목 속성 공법을 익힌 이들은 그런 신 열매들을 개량시켜 ‘더더욱 신’ 맛이 나도록 만들었다.
그렇기 때문에 명귀계의 특산물인 매실차는 다른 계면의 매실보다 더더욱 시다.
김영훈은 ‘셔 봤자 얼마나 시겠나’라는 표정으로 매실차를 들이켰고, 그대로 황금빛과 함께 잠시 장내에서 사라졌다 다시 나타났다.
광음역 바깥에다가 매실차를 뱉고 온 것 같았다.
“흠흠, 나는 물만 가져다주겠나.”
김영훈이 뱉고 온 것을 본 다른 이들은 매실차에 꿀을 들이붓다시피 넣어서 마셨다.
나는 매실차 대신 그냥 꿀차만 시켜 마시며 분위기를 환기시켰고, 다들 한 모금씩 차를 마신 후 회의를 시작했다.
“일단, 북향함대가 우리 광음역을 침공한 이유에 대해 듣고 싶소.”
어젯밤에 듣긴 들었다만 공식적으로 또 한 번 듣는 게 좋았다.
북향화는 차분히 서란을 가리키며 설명해 주었다.
“일단 저희 북향함대가 광음역에 들어와 파괴 행위에 일조한 것에 대해서는 크나큰 사과를 드립니다. 다만 저희가 이곳에 온 이유에 대해서는 상당한 오해가 있었다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일단 저희의 동료이자 북향함대의 간부진 중 하나인 서란 공이 이곳에 억류되어 있다고 섣부르게 판단하였고, 그 때문에 앞뒤 가리지 않고 들어오게 되었습니다. 다시 한번 이에 대해서는 죄송합니다.”
그녀는 크게 죄송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숙였다.
“사과는 받아들이겠소. 다만 말뿐인 사과만으로는 아니 되겠지.”
“예, 옳은 말입니다. 하여 저희 북향함대 측에서 의견을 조율해 본 바….”
사실 말이야 저렇게 하지만, 어젯밤 우리끼리 전부 의견을 나눈 것이었다.
“저희 북향함대는 천 년간 광음역 무극교단에 귀속되어 무극교단 귀속 용병으로 일하며 피해를 보상하고자 합니다.”
“호오… 좋소. 훌륭하구려.”
“단, 저희 측에서도 요구할 것이 있습니다.”
북향화는 어제 우리 앞에서 얘기하며 김영훈 및 서란, 시호 등과 의견을 조율한 문서를 내밀었다.
문서에는 우리가 북향함대에 불리한 처사나, 일방적인 차별, 혹은 무통보 계약의 해지 등을 금지하는 것에 대한 내용들이 기술되어 있었다.
물론, 어차피 김영훈만 해도 원래 하나였던 동료들이나 다름없었기 때문에 그런 것들은 애당초 불가능했다.
나는 웃으며 조항들에 서명을 했고, 북향함대 측에서는 일단 원래 본인들이 지배하는 해역으로 돌아가, 송진과 다시 한번 상의를 한 후에 서명을 하겠다고 전해 왔다.
나는 껄껄 웃으며 허락하겠다 했다.
어차피 송진도 사소한 오해 때문에 서란이 위협당했다 생각했을 뿐.
그 역시 내게도 은혜를 입은 바 있으니 충분히 수락할 터였다.
‘거기다가 송진과 서란의 목적은 현재로선 서휼에 대한 것이니, 어차피 서휼과 적대하는 나와는 손잡을 수밖에 없고.’
나는 그렇게 만족스럽게 북향함대의 세력.
즉 옛 동료들인 김영훈을 비롯해 송진, 서란 그리고 북향화 등과 다시금 자연스럽게 결합할 수 있었다.
그렇게 북향함대는 무극교단에 합류하였고, 나는 이들의 앞에서 연진을 불렀다.
“연진, 혹시 연위와는 다시 연락이 닿는 거냐?”
내 질문에 연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예, 선조님께서도 얼마 전부터 분혼을 다시 제 안쪽으로 보내셨습니다.”
“좋아, 그렇다면….”
우우웅!
나는 기묘성심전으로 연진의 상단전에 의식을 흘려넣어, 연위가 연진의 의식 바깥으로 나올 수 있게 도와주었다.
잠시 후 연진의 몸에서 눈을 뜬 연위는 주변을 둘러보며 한숨을 쉬었다.
“…연진의 몸에 미리 들어와서 얘기는 조금 들었다. 여기가 고력계라고?”
“예, 어쩌다 보니 그리되었군요.”
“…하아.”
연위는 골이 아프다는 듯 자리에 앉아 머리를 꾹꾹 눌렀다.
나는 연위에게 이곳에서 자리를 잡은 세력인 북향함대와 합류하였음을 알려 준 후 그녀에게 물었다.
“일단 선배님께 질문드리고 싶은 건 두 가지입니다. 첫째는 일단 고력계에 왔으니, 강녕축에 대해서입니다.”
연위는 한숨을 쉬더니 우리에게 설명을 시작해 주었다.
북향화와 시호는 오복축에 대해 처음 듣는 듯했기에 그녀의 말을 더더욱 신기해하며 들었다.
“뭐, 알다시피 고력계에서도 축을 쌓는 법은 명귀계랑 다를 게 없다. 다만, 여기서는 공령지에 차이가 있지.”
그녀의 설명이 이어졌다.
“고력계에는 공령지가 없다. 공령지란 본디 차원 표면과 연결된 작은 구멍 같은 것인데, 고력계에는 기본적으로 차원에 구멍이 없기 때문이지. 고력계의 [심해]가 고력계 전체를 마치 비늘 갑옷처럼 둘러싸고 있기에 이 세계에는 기본적으로 공령지가 존재치 않는다.”
‘심해가 갑옷처럼 세계를 둘러싸고 있다… 라.’
나는 문득 고력계의 심해에서 청린갑을 떠올렸다.
“하지만 분명 비승하는 이들도 존재하고, 축을 쌓을 방법도 존재하는 편이지. 대표적인 것이 바로 ‘감찰옥’이다.”
“감찰옥…?”
나는 이전 서란에게 받았던 옥을 떠올렸다.
분명 감찰옥을 통하면 하계에 의식 한 줄기를 내려보낼 수 있었다.
“고력계 해역의 ‘섬’이란 절대다수가 커다란 고석 덩어리지. 그리고 그 고석 덩어리에 있는 고석 광맥에선 간혹, 천지영기의 압력을 받아 특이한 고석이 탄생한다. 그것이 바로 감찰옥이다.”
서란도 그에 대해선 처음 알았는지 신기하단 표정으로 그녀의 설명을 들었다.
“감찰옥은 하계로 의식을 한 줄기 내려보낼 수 있게 해 주는 기물이지. 그리고 그러한 감찰옥을 수백, 수천 개 이상 모아 압축해서 제련하면, 감찰옥은 염정(鹽晶)이라는 새로운 광석으로 재탄생한다.”
“염정…?”
“그래. 이에 대해서는 합체기라도 솔직히 해역의 궁주쯤 되지 않으면 잘 모르지. 투명했던 감찰옥이 압력 속에서 수많은 감찰옥들과 섞이며, 소금처럼 새하얗게 변하고, 새로운 능력을 가진다. 단순히 의식만 내려보낼 수 있던 감찰옥과 다르게, 염정은 공령지와 똑같이 수십 줄기의 의식을 내려보낼 수도 있고, 염정을 핵으로 진법을 설치해서 비선대 역할을 하는 비선진을 설치할 수도 있다.”
“…허어.”
나는 염정이란 광석의 신묘함에 눈을 빛냈다.
“공령지와 똑같은 역할을 하는데, 광석이라면 다른 계면에서도 통합니까?”
“아하하, 다른 중경계에서도 고체 공령지를 가지고 다니고 싶단 거냐? 미안하지만 염정이 효과가 있는 건 고력계뿐이다. 다른 곳에서 염정을 사용하면 오히려 하계가 아니라 ‘고력계로’ 돌아오게 되는 열쇠로 변하지.”
“그렇군요….”
나는 아쉬움에 입맛을 다셨다.
그러나 다른 계면에서 사용할 수 없다고 염정이란 것의 가치가 없는 건 아니었다.
그녀의 말에 의하면, 염정이란 것이 곧 고력계에서 축을 쌓는 유일한 방법이었으니까.
“그렇다면 보통 염정은 어디서 구하지요?”
“보통 감찰옥은 고석 광맥이 꾸득꾸득 모여 있는 섬에서 한두 개 탄생하고, 그런 감찰옥을 수백 수천 개 모아 염정을 만들려면 거의 무조건 해역을 다스리는 궁주쯤 되어야 가능하지. 물론 궁주조차도 만들기 쉬운 물건은 아닌 만큼, 없는 궁주도 있다. 궁주가 염정을 가질 확률은 대략 반반 정도 되긴 하지.”
말을 마친 연위는 북향화의 세력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너희 북향함대가 해역을 셋 정도 정벌했다 하지 않았나? 염정을 발견하지 못했나?”
그녀의 말에 김영훈은 낭패한 표정을 지었다.
“…셋 중 두 개의 해역을 정벌할 때 염정을 본 적이 있소.”
“오오…! 두 개나…?”
“다만, 두 개 해역의 궁주들이 도망칠 때 염정만은 제 품 속에 넣고 달아났던지라 놓쳤지. 당시에는 염정이 그리 귀한지 몰랐는데….”
탁!
연위는 자신의 머리를 탁 짚으며 작게 한숨을 쉬었다.
“…하긴, 염정만 있으면 비선진을 만들어 인재 수급도 하고 하계에 자기 세력도 만들 수 있으니, 궁주들로서는 목숨만큼 중요하긴 했겠지….”
그녀는 작게 한숨을 쉬며 혀를 차고는 내게 물었다.
“그럼 지금 우리 수중에 염정이 없다면, 어떻게든 염정을 손에 넣어야 강녕축을 쌓을 수 있으니, 염정을 얻을 수 있도록 찾아보거라.”
“알겠습니다. 그리고 두 번째 질문은… 고력계에선 어찌 나갈 수 있는지입니다.”
나는 말을 하며 허공을 인력으로 살짝 일그러뜨렸다.
투웅!
인력을 통해 허공에 구멍을 내고, 차원 바깥으로 손을 뻗으려 했다.
그러나 들어올 때와 달리, 내 손은 그대로 튕기듯이 고력계 안쪽으로 돌아와야만 했다.
연위는 그 광경을 보며 말했다.
“고력계는 첩첩이 둘러싸인 [심해]들이 인력을 뿜고 있다. 때문에 고력계에 ‘진입 자격을 지닌 자’들은 그 인력에 이끌려서 고력계로 오게 되지만… 이미 고력계에 들어온 이들은 다시 나가려면 심해의 인력을 전부 뚫고 나가야 하기에, 들어올 때보다 나갈 때의 난도가 높지.”
“허어, 마치 대창천개벽문과 같군.”
오현석은 알아듣기 좋게 찰떡같은 비유를 해 주었고, 나는 바로 이해할 수 있었다.
“하지만 선배님께서 강녕축을 얻고 오셨단 건 빠져나올 방도가 있다는 거군요.”
“맞다. 일단 심해의 옅은 바다에서는 빠져도 인력을 다룰 줄 알고, 해상에 좌표가 있다면 빠져나올 수 있다.”
김연은 그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고력계 자체를 빠져나가는 것도 저러한 연해지대를 빠져나가는 것과 비슷하다. 무식한 인력과 바깥에서 끌어당겨 주는 인력이 있다면 빠져나갈 수 있다. 나는 그 당시 금신천뢰문을 통해 고력계를 빠져나왔었지만… 지금 너희는 힘들겠지.”
그 말에 나와 전명훈은 씁쓸한 표정이 되었다.
‘태수회도 딱히 나를 돕진 않겠지.’
아마 그들은 심족 첩자로 여겨지는 중인 내가 고력계에 있으니 꺼내 달라 한다면, 행복하게 잘 지내라는 말 외엔 아무것도 안 해 줄 터였다.
“…고력계에선 샛길을 열 수 없습니까?”
그러나 내 말에 그녀는 고개를 저었다.
“그런 게 가능했으면 고력계에도 흑색귀골곡이 지부를 열었겠지. 샛길로 들어오는 건 가능해도, 여기서 샛길을 열어 나가는 건 불가능하다. 심해가 샛길의 형성을 방해하니까. 고력계는, 흑색귀골곡이 자리를 잡지 못한 유일한 중경계야.”
그리고 서란이 도대체 무슨 헛소리를 하냐는 듯 연위를 보며 말했다.
“…아닌데요?”
연위는 얼굴을 찡그리며 서란을 바라보다, 흑색귀골곡의 흑색 장포를 입은 그를 보며 흠칫 놀랐다.
“뭐, 뭐냐. 나 때는 흑색귀골곡 없었는데?”
“하하, 200여 년 전에 스승님과 함께 고력계에 개파했지요.”
“엇….”
연위는 당황하다가 버럭 화를 냈다.
“중요한 건 그게 아니잖느냐! 어른 말에 끼어들다니, 이 발칙한 것! 조용히 하고 있어라!”
서란은 연위의 말에 일단 입을 다물며 물러섰다.
“뭐, 어쨌든. 고력계는 이렇듯 나가기가 굉장히 힘들다. 합체기 태수나 요왕들도 바깥에서 끌어 주지 않으면 나갈 수 있는 확률이 5할로 떨어진다. 나머지 5할의 확률은 실패해서 심해 안쪽의 미아가 될 확률이고.”
“으음….”
일단 합체기인 전명훈을 내보내서 우리를 끌어 보게 하려 했던 나는 바로 계획을 취소했다.
“아니, 그럼 선배님. 저희는 지금 고력계를 못 나간다는 게 아닙니까?”
“뭐… 지금 당장은 그렇긴 하지. 하지만 한 2, 3천 년만 기다리거라! 그 정도면 내가 수계 금신천뢰문에서 몇몇을 비승시켜 사축기로 만들어 놓을 테니까. 그 녀석들더러 끌어 주라 하면 되겠지.”
“….”
그러니까, 지금은 기다리는 것 외엔 방법이 없단 말이었다.
‘아니, 애초에 연위가 금신천뢰문에서 천인기 수사를 키워 낸다는 게 꼭 확정도 아니지.’
안 그래도 단체 비승으로 인해 척박해진 수계이건만.
연위가 아무리 노력해서 올려보내도 천인기 수준일 확률이 높았다.
금벽호나 허곽, 창호자처럼 올라가자마자 사축기에 도달하는 수준은 못 될 터였다.
‘최소 2, 3천 년이고 길게 잡으면 5, 6천 년도 더 기다려야 할 수도 있단 건가.’
나는 침음성을 흘렸다.
일반 수사라면 기다릴 수 있겠지만, 내겐 너무 긴 시간이었다.
‘1천 년만 지나도 강민희가 광한계 안계 지역의 50분의 1을 명귀계처럼 바꿔 놓고 괴군이 준쇄성기에 도달한다. 장익이 돌아와 강민희를 죽이겠지.’
그렇게 둘 수는 없었다.
“…조금 더 빠른 방법은 없습니까?”
“있긴 하지. 시조 금신자께서 만드신 금술(禁術)을 써서, 수계 금신천뢰문 제자들의 영육(靈肉)을 하나로 합쳐 뇌수(雷獸)라는 괴물을 합성하면 된다. 뇌수는 지성이 없지만, 만들어진 초기 유체 상태에선 사축기 수준의 인력을 지닌 괴수이니, 내가 뇌수의 몸을 차지하고 비승해서 너희를 끌어 준다면 한 달 안에 광한계에 올 수 있을 거다.”
“…당연한 질문입니다만, 뇌수에 합성한 제자들은 다시 못 되돌리겠지요?”
“그건 그렇지.”
전명훈이 연위를 노려보며 물었다.
“선조님, 혹시 그 짓을 하실 생각은 아니시겠지요?”
“내가 미쳤느냐. 시조께서도 평생토록 다섯 번 이상은 쓰지 않은 끔찍한 비술이거늘. 금술을 쓰신 후에 ‘내가 직접 허락하기 전에는 절대 금술이 다시 나오면 아니 된다’라고까지 하셨으니 그런 짓은 할 수 없다.”
“…그렇다면 다행이군요.”
난 한숨을 쉬었다.
어차피 연위가 한다고 하면 내가 수계에 있는 김영훈의 분신에게 연위를 죽이라 해서라도 막을 작정이었기에 의미는 없는 방법이었다.
“…염옥을 통해 만든다는 비선진으로 하계에 내려갔다가 비승할 순 없습니까?”
“오, 만약 염옥을 통해 하계에 적강하면 ‘무조건’ 고력계로 다시 비승하게 되어 있다.”
“…후우.”
나는 한숨을 쉬었다.
이래서는 안 된다.
“일단… 제가 나중에 인족 총연맹 태수회와 연락이라도 해 보겠습니다.”
필요하다면 장익 욕을 통한 사상 검증이라도 해서 돌아가야 할 때였다.
돌아가서 강민희를 구하고, 서휼이 다시 ‘눈’을 찾아 무슨 짓을 하기 전에 녀석과 오혜서를 어떻게든 봉쇄해야 한다.
난 연위에게 질문했다.
“나가는 법 외에, 다른 계면과 연락할 수 있는 방법은 혹시 없습니까?”
“연락 자체는 그리 어렵지 않지. 감찰경이라는 기물을 쓰면 된다. 감찰옥으로 만들어진 기물인데, 네가 지금껏 다녀온, 너와 인력으로 연결된 이계에 의지를 보낼 수 있게 해 주는 기물이지. 그 외에 전음부처럼 아는 사람이랑 대화하게 해 주는 기능도 있고….”
“감찰경은 보통 어디에서 구합니까?”
그녀는 북향화 일행을 쳐다보았다.
“보통 해역의 궁주들이 가진 경우가 많으니, 해역 점령하면서 얻은 적이 없는지 물어보거라. 감찰경도 귀하긴 하지만 염옥에 비해서는 아니니, 아마 그것도 가지고 도망치진 않았을 텐데?”
그러나 그 말에 김영훈이 어색하게 웃었다.
“…그… 거울에 대고 궁주들이 친한 이들에게 지원 요청을 하려는 거 같길래, 내가 다 박살 내서 심해에 버렸다만.”
“….”
“아, 그때 지원 요청 안 막았으면 우리가 상당히 애먹었다니까.”
나는 작게 한숨을 쉬었다.
이렇게 되면 방법은 하나밖에 없다.
“…게 누구 없느냐. 육요를 불러와라.”
어차피 염옥도 필요하고, 감찰경도 필요한데 둘 다 궁주에게나 있는 기물이라면 근처에 있는 궁주를 만나러 가는 게 좋을 터였다.
나는 이 위정해역이라는 해역의 지배자.
정룡궁주 육린을 만나기 위해, 그의 딸인 육요를 불렀다.
* * *
“아… 저를 아버님께 돌려보낸단 말씀입니까?”
육요는 멍한 표정으로, 시호의 눈총을 받으며 내 앞에 무릎을 꿇고 되물었다.
“그래. 너와 정룡궁의 인질들을 다시 돌려보내 주고, 약간의 배상만 받은 후 우호 관계를 맺으려 한다.”
그녀는 잉어인데도 얼마간 붕어처럼 입을 뻐끔거렸다.
나와 김연, 김영훈은 그녀의 의념을 읽었다.
‘도망쳐야겠단 생각밖에 없군.’
하지만 나는 딱히 육요를 보내 줄 생각은 없었다.
이 망나니 같은 사기꾼 잉어가 무슨 짓을 저질렀길래 정룡궁주와 사이가 안 좋은 건지는 모르겠지만, 솔직히 이 망나니의 행적을 보면 십중팔구 정룡궁주가 아니라 육요의 잘못일 터였다.
‘애당초 따지고 보면 정룡궁과 적대하게 된 이유도….’
육요가 서란의 얼굴을 훔쳐서 가지고 있다 나에게 걸렸고, 내게 잡힌 걸 오해한 정룡궁에서 그녀를 구출하려 하다 나와 마찰이 생겨 이리된 것이었다.
나는 이 골치 아픈 잉어를 정룡궁에 돌려준 후, 화해를 취할 생각이었다.
“혹시라도 말한다만, 도망칠 생각은 말아라. 너도 알겠지만 본 교단에는 너 하나를 감시할 인력도 많고, 원영기가 아니라 천인기라도 상처 하나 없이 다시 잡아 올 수 있는 실력자도 많다.”
“…아… 예. 알겠습니다. 따르겠…습니다.”
육요는 의념으로는 전혀 다른 생각을 품고 있단 걸 드러내며 내게 고개를 조아렸다.
시호는 그 모습을 보며 눈을 부라렸다.
“제가 볼 때 저 물고기 년은 필히 또 거짓말을 할 생각인 것 같습니다, 선배님. 그러니 그녀의 성격을 잘 아는 저와 북향함대 측에서 그녀를 가둬 놓도록 하지요.”
“히, 히익…!”
시호의 말을 들은 육요가 덜덜 떨며 내 눈치를 보았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좋다. 단, 북향함대 측에 맡겨 감시하되 감시인은 우리 측에서 붙이도록 하마.”
시호에게 맡겼다간 정룡궁에 육요를 돌려 주기도 전에 육요가 잉어회가 될 것 같았기 때문에, 감시 겸 호위 인력은 필요할 터였다.
“그리고 육요. 너는 정룡궁과 연락할 수단이 있겠지? 아무리 그래도 공주 신분이니….”
“흠… 제 쪽에서 연락할 방도는 없습니다만. 제 아버지 측에서 제 요핵에 감시 요술을 걸어놓긴 하셨습니다. 제 생명에 위협이 가거나 하면 알아차리실 수 있게 말이지요.”
“흠….”
놀랍게도 연락할 방도가 없단 건 거짓말이 아닌 것 같았다.
내가 어찌 연락해야 할지를 고민할 때, 김영훈이 말했다.
“내가 잠시 다녀와서 의견을 물어 줄 순 있다. 어떠냐?”
“아, 그런 방법이 있었군요. 그럼 부탁드립니다.”
“오냐.”
번쩍!
김영훈은 잠시 번뜩이는 듯하더니 자리에서 사라졌다.
그리고 얼마 후, 김영훈이 다시 자리에 돌아왔다.
그는 내 앞에 작은 수정구슬을 내려놓았다.
“정룡궁주가 쌍방 간 연결된 법기를 주더구나. 영상 통화라 생각하면 된다.”
그리고 김영훈의 말이 끝나기도 전, 수정구슬에서 빛이 뿜어지며 알록달록한 산호로 장식된 옥좌에 앉은 근엄한 장년인이 눈에 들어왔다.
그는 비늘로 이뤄진 주황색 용포를 입고 있었으며, 그의 배에는 긴 수염을 지닌 용이 한 마리 그려져 있었다.
[귀하가 본 위정해역에 방문한 무극교단의 교주신가? 반갑네. 본좌는 정룡궁주 육린이라 하네.]“처음 뵙겠소, 정룡궁주. 무극교단의 교주, 무극귀왕 서은현이라 하오.”
[그래, 정복왕의 동료에게 듣자 하니 본 궁과 우호적인 관계를 맺고, 내 딸과 수하들을 돌려주고자 한다지?]“그렇소. 조금 불미스러운 일이 있었지만, 가만히 따져 보니 오해에서 생긴 것 같아 평화롭게 오해를 풀고자 함이오.”
나는 여기까지 말했지만 혹시나 하여 그를 살펴보았다.
이런 영상 법기 등으로는 원래 의념이나 심상이 잘 읽히지 않았기에 그의 의중을 알기가 힘들었다.
‘어쩌면 모욕이라 여기고 더더욱 분노해서 전력을 보낼 수도 있겠지.’
합체기쯤 되면 하나같이 자존심이 어마어마하니 분명 그럴 확률도 꽤 높았다.
그러나, 정룡궁주 육린은 다음 순간 너털웃음을 터트렸다.
[하하, 좋소. 나 역시 귀하와 같은 호걸과 관계를 맺는 건 언제나 반가운 일이지. 정룡궁으로 오시오! 연회를 준비하겠소. 내 딸아이를 잘 돌봐 주셔서 감사하오. 이번 기회에 교주의 도움을 받아 딸아이와도 오해를 조금 풀어야 할 것 같구려. 허허….]정룡궁주는 말을 하며, 뒤편에 무릎을 꿇고 있는 육요에게 싸늘한 눈빛을 보냈다.
그는 싸늘한 눈빛을 하며 육요에게 따스한 목소리를 연기하며 말하였다.
[딸아, 얼굴을 직접 못 본 지도 꽤 되었구나. 이 아비가 너를 위해 좋은 신랑감을 알아보았으니, 이번 기회에 돌아와 정룡궁의 축복을 받으며 혼인하도록 하여라.]그녀는 대답하지 않았고, 육린도 대답을 기대하지 않았는지 그녀에게서 시선을 떼었다.
육요는 제 아비에게 눈빛을 받자, 굉장히 공포스러운 듯 의념의 색이 나빠졌다.
‘둘의 사이는 단순히 오해 수준이 아닌 거 같은데….’
그러나 육요의 가정사에 내가 개입할 이유는 없다.
‘투귀족 해적단장과 혼인한다 했었나?’
아마 우리에게 쳐들어와서 전명훈과 일전을 벌였던 그 합체기 투귀족을 말하는 것 같았다.
내 태산열제공을 맞고 죽은 거 같긴 했지만, 혼의 계위를 통해 혼이 이동하는 것을 봤을 때 어딘가에서 부활했을 터였다.
아마 그의 경지가 심각하게 떨어진 게 아니라면 육요의 정혼자는 여전히 그 해적단장일 터였다.
나는 정룡궁주와 몇 마디 의례적인 대화를 나눈 후 통화 법기를 껐다.
“13 수호귀왕 백린은 들라.”
나는 백린을 불러 육요를 북향함 한 척에 태운 후 감시하게 했다.
그런 후, 광음역은 정룡궁을 향해 출발하였다.
* * *
며칠이 지났다.
쿠구구구구!
나는 위정해역의 중심지, 정룡궁이 위치한 정룡도에 도착하였다.
“호오, 저곳이 정룡도인가.”
정룡궁이 있는 정룡도는 무수한 산호로 뒤덮인 ‘천공도’였다.
정룡도 역시 광음역처럼 허공에 떠서 위정해역 아래를 고고하게 오시하고 있었다.
쿠구구구구!
나와 무극교단 호법, 그리고 수호귀왕 전원.
그리고 북향함대의 주요 인사들이, 한데 모여 광음역의 끄트머리에 섰다.
쿠우웅!
얼마 후 광음역의 끄트머리와 정룡도의 끄트머리가 맞닿았다.
‘정룡궁이라….’
정룡도의 중앙에 세워져 있는 정룡궁은, 무수한 요수들의 뼈로 세워진 성채였다.
하기야 일정 경지에 도달한 요족들의 육신과 골육은 그 자체로 어지간한 광석보다 단단하고 영성을 머금었으니, 그것을 재료로 성을 짓는 것도 나쁘진 않을 터였다.
얼마 후, 광음역의 앞으로 지난번 우리를 공격했던 자라가 걸어왔다.
“저희 정룡궁은 무극교단 귀하들을 환영합니다. 어서 오십시오.”
자라는 내 눈을 쳐다보지 못하며 내 앞에 절을 올렸다.
그런 후 녀석은 그대로 거대화하더니, 자신의 등 위에 요술을 사용해 우리가 타고 갈 만한 좌석을 만들었다.
“정룡궁까지 뫼시겠습니다. 오르시지요.”
우리는 묵묵하게 자라의 등에 올랐다.
육요는 당장이라도 도망가고 싶은 듯했지만, 내가 백린에게 말해 감시하고 있었기 때문에 도망칠 수 없었다.
자라는 그대로 물살을 헤엄치듯이, 허공의 천지영기를 헤엄치며 떠올라 정룡궁을 향해 날아갔다.
쿠구구구!
정룡궁의 문이 열렸고, 나는 정룡궁을 올려다보았다.
보통 수도계에서의 높은 자리에 있는 이들은 하나같이 본인의 거처에 강력한 진법을 깔아 놓았다.
실력이 높더라도 수행 경지와 전투력이 반드시 비례하는 건 아니었고, 나처럼 경지가 낮아도 몇 단계 위의 힘을 내는 괴물딱지들은 분명히 있었으니 말이었다.
그렇기에, 보통 전력에 자신 없는 부류거나 지켜야 할 사람이 많은 이들은 본진에 펼친 진법이 더더욱 강해지고 위험해진다.
그리고, 정룡궁에는 합체기 요왕이 머무르는 곳임에도 불구하고 원영기 수준의 기초적인 결계밖에 쳐져 있지 않았다.
“….”
이는 정룡궁주가 실력에 자신이 있거나, 소중한 게 없는 인물임을 뜻했다.
우리는 정룡궁의 안쪽.
정룡궁주의 알현실까지 그대로 자라를 타고 날아갔다.
얼마 후.
쿠구구구!
우리는 알현실에서 자리를 잡고 있는 정룡궁주, 육린의 앞까지 당도하였다.
육린은 껄껄 웃으며 옥좌에서 일어나 우리를 반겨 주었다.
“환영하외다, 교주.”
“나 역시 반갑소, 궁주.”
나는 자라에서 내려 그와 인사를 주고받았다.
그러나 그의 심상을 보며 어느 정도 거리를 두었다.
‘탐욕과 의심이 많고 간교한 자다.’
정룡궁주의 심상은 가시넝쿨로 가득한 늪 같은 곳이었다.
동시에 그에게서 느껴지는 기력은 현음보다는 못할지언정 충분히 인족 총연맹주 준제와 준할 만한 것이었다.
물론, 내게는 이제 아무리 이 정도라 해도 큰 걱정은 없었기에 크게 두렵진 않았으나 언제든지 아군을 배신할 수 있는 인물임은 틀림없었다.
‘얻을 것만 얻고 가까이하지는 말아야겠군.’
얼마간 겉으로는 덕담을 주고받은 우리는 이내 육린과 함께 만찬장으로 갔다.
육린은 육요와는 눈을 마주치지도 않고 적당히 정룡궁의 수하들에게 손짓을 했고, 정룡궁의 어족 요수들은 육요를 끌고 가듯이 어딘가로 데리고 갔다.
“하하, 인족 출신 귀물이시길래 뭘 준비해야 할지 몰라, 일단 귀물들이 좋아한다는 신 음식들로 준비해 봤소.”
“훌륭하구려. 감사히 먹겠소.”
나는 식탁 위에 가득한 매실들을 보며 혀를 내둘렀다.
귀신들인 수호귀왕들은 하나같이 군침을 흐르고 있었고, 연위도 신 음식을 좋아하는지 입맛을 다시는 게 보였다.
우리는 정룡궁주와 식사를 하며 겉치레를 위한 덕담을 주고받았다.
“허허, 따님을 훌륭하게 키우셨더구려. 따님의 식견 덕에 고력계로 넘어와서 많은 도움을 받았소이다.”
“하하, 부끄러워 새우 구멍에라도 숨어들고 싶소. 오히려 딸아이가 무슨 민폐를 끼치진 않았을까 걱정이외만….”
“그런 일은 없었소이다. 허허… 마음씨가 예쁜 것이, 따님의 정혼자는 복을 받은 분인 것 같소.”
사실 육요의 행실이 너무 망나니 같아 그렇지.
의외로 그녀의 심상은 육린처럼 음흉한 편은 아니었다.
사기꾼치고는 상당히 예쁘고 순수한 심상인 것이었다.
나는 내가 본 대로 그녀의 마음씨를 칭찬하며, 육요와 혼인하기로 되어 있었다는 투귀족 해적단장 진마열을 소개시켜 주기를 바라며 운을 띄웠다.
‘그 녀석, 자세히 보진 못했지만 분명 답천경에 올라 있었다.’
무인으로서 흥미가 돋는 것도 돋는 것이었고, 서립이 증룡진인의 저물도에서 봤다는 투귀족 출신 심족과도 무슨 관계인지 궁금했다.
‘거기에 김영훈에 말에 의하면, 김영훈은 그의 애병을 훔쳤을 뿐 그를 죽이진 못했다 한다.’
뭔가 특별한 걸 가지고 있단 것이었다.
거기다가 투귀족 해적으로서 고력계를 몇천 년간 활보하고 다녔을 테니, 그와 관계를 맺어 정보를 얻는 것도 좋을 터였다.
그러나, 투귀족 해적단장을 소개시켜 주기를 바라고 한 말에, 기가 막힌 소리가 갑자기 육린의 입에서 튀어나왔다.
“하하, 분명 그렇소. 내 딸아이지만 참으로 참한 아이지. 그래서 말인데, 교주께서는 내 딸을 어찌 생각하시오?”
“….”
이 자식이, 나한테 도대체 뭘 떠넘기려는 거지?
회귀수선전(回歸修仙傳) 367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