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Regressor’s Tale of Cultivation RAW novel - Chapter (398)
회귀수선전(回歸修仙傳) 398화
바람과 함께 (1)
‘이건 도대체….’
틀림없다.
-구더기들을 위해 굳이 비승의 축복까지 준비할 이유가 무엇일까. 질 좋은 시체를 더 열심히 파먹으라고?
봉명성의 최상층.
봉명성의 진법을 제어하면 나타나는 숨겨진 층의 서고 한 귀퉁이에 써 있는 그 고어(古語)와 같은 문자임과 동시에, 같은 글씨체였다.
동일 인물이 썼다는 것이다.
‘그때의 그 자문(自問)에 대한 답이다.’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그자가 구더기들에게 그런 과한 것을 선물했던 이유. 구더기 따위의 비승을 돕는 게 아니었다. 그것은 분명 고력(古力)을 해방시키기 위함이었으리라.
나는 다시 한번 글귀를 읽어 본 후, 몇 가지 정보를 얻어 냈다.
첫째.
일단 이 글의 작성자는 굉장히 수도자들에게 불쾌감과 악의를 가지고 있다.
‘일단 수도자 전체를 구더기라고 취급하는 문장과 동시에, 수도자들의 비승 자체를 부정하는 듯한 발언.’
자신보다 격 낮은 이들 전체를 부정하는 듯한 말투였다.
‘어차피 자신도 이전에는 격 낮은 수도자에 불과했을 텐데 말이지.’
굉장히 좋은 선수진혈을 타고났거나, 혹은 격 높은 이를 부모로 두기라도 한 건가 싶었다.
둘째.
봉명인은 누군가가 굳이 수계에 ‘선물’한 것이라는 것이었다.
‘봉명인을 만들었다는 천상의 장인… 그자는 도대체 뭐란 말인가.’
글에서 말하는 것은 십중팔구 ‘봉명인’일 터였고, 봉명성을 수계에 둔 것은 높은 확률로 ‘모조 선보’인 섭명함의 ‘원본’을 주조했다는 ‘천상의 장인’일 터였다.
‘그나저나 이상하군. 천상의 장인이라는 자에 대해서는 왠지 모르게 친숙함이 든다.’
언젠가 만나 보기라도 했던 것일까?
‘북향화 때문인지도 모르겠어.’
나는 이유는 모르지만 어쩐지 천상의 장인만큼은 내게 호의적이리라는 근거 없는 망상이 들었다.
여하튼 셋째.
이 글귀를 쓴 자는, 봉명인의 정체에 대해 ‘고력(古力)’이라는 것을 해방시키기 위함이라고 언급했다.
‘확실히, 봉명성은 해방성이라고도 불리지.’
어째서 봉명성이 해방성이라고 불리는지에 대해, 그리고 어째서 봉명성이 ‘해방의 힘’을 지니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수계에서도 의견이 분분했다.
수계에 있는 고대의 영혼을 해방시키기 위함이라고도, 잊혀진 보물을 해방시키기 위함이라고도, 어떤 진법을 해제하기 위해서라고도 했다.
물론 그중에 뭐가 맞는지는 아무도 몰랐다.
‘원립과의 일전을 벌일 때도, 분명히 봉명성은 해방의 힘으로 원립을 해방시켰다.’
분명히 봉명성은 해방의 힘을 가지고 있었고, 그 자체로 운명을 움직이는 [선보(仙寶)]라는 것이었다.
‘다시 생각해 보면 조금 무섭긴 하지.’
선보 천뢰번, 그녀를 이미 경험해 보았기 때문일까.
다시 생각해 보면, 봉명인이라는 것도 일종의 선보라고 할 때.
봉명인 역시 ‘살아있는 무언가’였을 확률이 있지 않았을까.
심지어, 봉명인이라는 것은 정려와 달리 [아무런 봉인조차 되지 않은] 선보였으니.
그 사실을 떠올리자 문득 등줄기에 소름이 돋는 게 느껴졌다.
다시 생각해 보면 굉장히 무서운 일이었다.
‘…역시 수계는 조심해서 내려가야겠군.’
봉명인이 정말로 살아있는 것이라면.
그 정려조차 무서워하며 봉인당해 있었기에 어쩔 수 없이 박혀 있던 수계를, 봉명인은 [자기 의지로] 남아 있었다는 의미가 되니까 말이다.
난 고개를 부르르 떨며 생각을 전환했다.
[그런 것]들에 대해서는 오래 생각할수록 건강에 해로웠으니까.‘여하튼, 봉명성은 고력을 해방시키기 위해 만들어졌다…고 이 글의 필자는 생각하고 있다는 거지.’
그렇다면 여기서 말하는 고력(古力)이란 도대체 무엇일까.
단순히 생각해 보자면 고력계일 터였다.
하지만 나는 이 고력이라는 단어에 뭔가가 더 숨겨져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옛 힘.
그것은 도대체 무엇을 상징하는 것인가.
‘고력계는 태산열제공에 명동하였다.’
이 세계는 소금산과 관련되어 있다.
‘그리고 분명 하계에서 하늘을 관측한 청문령도 소금기둥으로 변해 버렸지.’
수계 역시 소금산과 관련되어 있다.
그렇다면 고력이라는 것 역시 소금산의 주인과 관련되었을까?
나는 머리를 굴리며 생각했다.
물론 지금으로선 알고 있는 것 자체가 너무 적었기 때문에 무어라 확신을 가지고 말할 수는 없었다.
일단 이 세 가지가 글귀들을 떠올리며 알아낸 정보들이었다.
‘나중에 이에 대해서 알아볼 기회가 있겠지.’
나는 글귀를 본 후 벽화로 시선을 옮겼다.
‘이 벽화는….’
자혼옥새에 적힌 글자들과 꽤 일치했다.
‘혈음, 증룡, 고력, 이하 만계. 아… 그렇군.’
나는 벽화 속에서 어떤 용과 싸우는 거뭇거뭇한 덩어리를 보며 이해했다.
저것은 증룡진인의 저물도 치제층의 그림에서도 본 덩어리였다.
저 그림에서는 어떠한 ‘느낌’이 났고, 저 그림 자체가 주변의 천지영기를 아주 느릿하게 마기(魔氣)로 전환시키는 것이 느껴졌다.
나는 이제야 어째서 자혼옥새의 위쪽에 혈음이 들어갔는지를 이해했다.
‘혈음계!’
서휼이 펼친 혈음귀곡미궁이라는, 명계의 외곽을 뒤튼 공간.
그 공간 안에서 서휼이 혈음계의 입구를 열었었다.
그 혈음계의 입구에서 느꼈던 기운과, 저 그림에서 느껴지는 기운은 동일했다.
‘수십만 년 전, 광한계가 만들어질 당시. 광한계는 만들어진 직후에 대전쟁이 있었다.’
그 대전쟁에서 증룡진인은 ‘마계의 어떤 존재’와 싸웠고, 그 존재와의 싸움 끝에 봉명추가 목에 찍혀 사망했다.
그리고 그 증룡진인의 사체가 지금까지 남아 진룡맹의 영역이 된 것이었다.
어쨌든 그 이후에 광한계의 이름이 광한(廣寒)에서 광한(光寒)으로 변화했고, 내가 알기로는 그 시기쯤에 진마계에서 혈음계가 분리되었다.
또한 이 벽화에서 나오는, 증룡진인과 싸운 ‘마계의 어떤 존재’에게서 분리되어 나온 ‘검붉은 덩어리’에게서 느껴지는 ‘혈음계와 같은 기운’ 등.
‘그리고 유호덕축을 쌓기 위해서는 진마계가 아닌, 혈음계로 가야만 하지.’
그런 것들을 종합해 볼 때.
나는 한 가지 결론을 내릴 수 있었다.
‘혈음계는, 그 자체로 살아 있다.’
그냥 살아 있는 수준이 아니라, 아예 [어떤 존재]의 뱃속이나 다름없는 곳이다.
진인들에게 관음당하는 명귀계나, 그 자체로 사체 처리장과 다를 바 없는 고력계보다도 훨씬 흉하고 불길한 곳인 것이었다.
‘…유호덕축을 미리 얻어 둬서, 정말로 다행이다.’
나는 작게 안도의 한숨을 쉬며 벽화의 내용을 정리했다.
‘혈음계라는 모종의 생명체가, 증룡진인의 사체에 손을 뻗어 [검은 것]을 만들었다.’
나는 바로 흑룡왕 현음을 연상했다.
‘애당초 자혼옥새에 ‘현음지계’라는 말이 대놓고 드러나 있으니까 말이지.’
거기다가 혈음계 존자의 몸과 자연스레 합일하고 악덕이란 권능을 자유자재로 다루던 현음이었다.
‘즉, 해룡족의 역사를 기록해 놓았다고 여겨지는 이 벽화는….’
혈음계에서부터 시작된 해룡족의 기원을 설명하는 것이었다.
최초의 해룡왕 자음(紫陰).
두말할 것 없이 흑룡왕 현음(玄陰)에게서 파생된 존재이리라.
서휼이 지금껏 혈음계와 관련된 마술을 사용해 왔던 이유.
그가 탁혼만천으로 감염시킨 원립을 혈음계로 비승시키기 위해 해 왔던 준비들.
그리고 흑룡왕과 서휼의 관계.
흑룡왕과 혈음의 관계.
‘해룡족은, 혈음에 의해 탄생한 종족이었던 거군.’
나는 자혼옥새에 있던 종자살포(種子撒布)라는 단어를 떠올렸다.
그리고 벽화에 그려진, ‘고력계’를 상징하는 듯한 문양에서, 별들, 그리고 넓적다리, 약지, [머리통] 등이 있는 세계로 떨어지는 듯한 자그마한 씨앗들을 보았다.
‘머리….’
나는 그 벽화를 쓰다듬었다.
수계(首界)의 이름은 어째서 수(首)계인가.
대충은 알고 있었다.
수계가, 누군가의 머리통으로 만들어진 부해계라는 것쯤은.
그렇다면, 이 벽화에 나온 그림은 필시 수계일 터.
그리고 이 수계에 뿌려진 씨앗.
“…너냐.”
난 벽화 속 그림을 노려보며 물었다.
어쩐지 그 자그마한 점 같은 그림 속에서 ‘후후’거리는 소리가 들려오는 듯했다.
“네가 이 녀석이냐?”
물론 내 착각에 불과할 뿐, 벽화는 아무 소리도 내지 않았다.
나는 잠시 벽화를 노려본 후, 기록용 법술로 벽화를 기록한 후 육요를 돌아보았다.
그녀는 이제야 조금 정신을 차린 듯 헛기침을 하였다.
“…교주님을 뵙사옵니다.”
“왜 그렇게 벽화에 빠져 있던 거지?”
“아… 어릴 때 서고에서 봤던 그림과 비슷해서 조금 놀란 것뿐입니다.”
“어릴 때 서고에서 봤던 거라면….”
“봉래국 안의 서고 말이지요.”
그녀의 말에 나는 벽화를 바라보았다.
“이 벽화가 서고 안에 있었다고?”
“정확히는 벽화 말고, 저것이 말입니다.”
“…?”
육요는 벽화의 시작점에 있는, [증룡과 싸우는 시커먼 뭔가]를 가리켰다.
벽화의 시작점에 있는 [시커먼 것]은 증룡진인과 막 싸움을 시작하는 중이었다.
나는 잠시 그것을 바라보다가 이해가 가지 않아 물었다.
“…솔직히, 그냥 벽에다가 먹칠 대충 한 거 아니더냐? 마기가 흘러나오긴 한다만 애당초 봉래국 안쪽에선 기(氣)가 없으니 느끼지도 못했을 테고… 그걸 어떻게 알아본 거냐?”
그러나 내 말에 육요는 의아하다는 듯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먹칠이라니요? 교주께서는 저 웅장한 상(相)이 안 보이십니까?”
“…?”
나는 눈을 크게 뜨고, 심지어 본체로부터 삼태극의 힘까지 조금 끌어와 관찰했지만, 아무리 봐도 저건 그냥 먹칠한 것이었다.
“…모르겠군. 넌 뭔가 보이는 건가?”
아무래도 봉래도 태생인 육요에게만 뭔가 보이는 건가 싶었다.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교주께선 안 보이시는 듯하니 제가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일단 저 그림은 봉래국 궐내 서고에 있는 서천탱화도(西天幀畫圖)라는 그림에 나오는 법상(法相) 중 하나입니다.”
“흠 그러냐?”
“예. 서천탱화도를 설명해 드리자면, 차륜제존(車輪帝尊)이라는 존재를 중심으로 14명의 법왕(法王)이 그를 수호하는 것을 그린 일종의 만다라(曼茶羅)지요. 귀교에 수호귀왕 13명이 있듯이, 차륜제존 역시 그를 수호하는 14명의 법왕이 존재합니다. 그리고 저 벽화에 그려진 법상은, 차륜제존의 오른 자리에 존재하는 적덕법왕(積德法王)의 상과 굉장히 흡사합니다. 조금 더… 흉칙하게 생기긴 했지만요.”
“차륜제존은 또 뭐지?”
“봉래국의 국교인 축륜도(軸輪道)에서 모시는 두 분의 대불존(大佛尊) 중 한 분이시지요. 차축제존(車軸帝尊)과 차륜제존(車輪帝尊)으로 불리시는 불존들이시며, 그중 봉래국에서는 차축제존을 최고로 치며 호국제존으로 받들어 모십니다. 차륜제존님도 물론 훌륭하신 불존이십니다만 그렇게 인기 있는 분은 아니시지요. 그래도 봉래국의 절 중 몇몇 개는 차륜제존님만을 모시는 곳이 있기도 합니다.”
육요는 어쩐지 그리운 듯, [검은 것]을 그린 먹칠 벽화를 바라보며 설명을 마쳤다.
“흠….”
내 눈에는 물론이고 백린의 눈에도 그냥 먹칠한 것으로밖에 보이지 않았으나, 그녀의 눈에는 뭔가 보이는 모양이었다.
나는 혹시나 싶어 [검은 것]에서 떨어져 나간 [검붉은 것]을 가리켰다.
혈음계라고 의심되는 것이었다.
육요는 그것을 잠시 바라보더니 고개를 갸웃했다.
“음… 글쎄요. 저건 그냥 검붉은 안개로 보이는군요. 잘 모르겠습니다.”
“그런가… 알겠다.”
어쨌든 뭔가 중요해 보이고, 해룡족의 비사와도 연관되어 있는 것 같으니 서란에게도 보여 줄 요량이었다.
나는 꼼꼼히 벽화를 기록한 후, 벽화가 그려진 길을 걸어갔다.
길의 끝에는 해룡족의 석상으로 보이는 것이 있었다.
‘이건….’
나는 그 해룡 석상을 보자마자 눈을 강하게 찌푸렸다.
진득한 마기가 석상에 덕지덕지 달라붙어 있었고, 불쾌한 피 냄새가 석상에게서 뿜어져 나왔다.
무엇보다 기분 나쁜 것은.
‘서휼이 썼던 것과 비슷한 술법 흐름이다.’
서휼이 사용했던 마술 중, ‘혈제비식 혈음귀향’이라는 마술과 굉장히 흡사한 마기의 흐름이 느껴지는 석상이었다.
나는 서휼이 사용했던 혈제비식 혈음귀향에 대한 것들을 떠올려 보며, 이 마술의 정체를 유추해 보았다.
‘아마 혈제비식 혈음귀향은 혈음계와의 인력(引力)을 생성하는 마술일 가능성이 크지.’
이 해룡족의 석상 역시 육린이 혈음계의 힘을 빌려오기 위해 만든 것일 가능성이 컸다.
콰드드득!
나는 단박에 석상을 박살 내 버렸다.
우르르르-
그리고 석상을 부수자, 석상 뒤편의 벽이 무너졌다.
숨겨진 비밀 통로가 있는 모양이었다.
“백린, 뒤편에 뭔가 있는 것 같나?”
“죄송합니다 교주님. 저 안쪽으로는 의식이 튕겨 나옵니다. 억지로 의식을 불어넣으려 하면… 마기가 정신을 침식하는 느낌이 들어서….”
“그럼 됐다. 의식을 보호해라.”
그 정도만으로도 정보는 충분하다.
‘육린이 신중하게 결계를 쳐 놓을 정도로 중요한 장소라는 거지.’
그렇다면, 높은 확률로 저 안쪽에 육린이 훔쳐 간 봉래도의 대궐이 있을 터였다.
즉, 이 앞쪽은 육린의 보물 창고다.
“그럼… 육린의 보물 창고를 구경해 볼까?”
나는 빙긋 웃으며 안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아니, 옮기려 했다.
피잉!
우뚝.
나는 자리에 멈춰 섰다.
아주 얇은 검기가 뒤쪽에서부터 내 뺨을 스치고 지나갔다.
“…그래, 네가 있었지. 생각해 보니 말이야….”
그곳에는 한 손을 괴검으로 변형시킨 진마열이 히죽 웃으며 자리해 있었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이지, 마교주? 분명 심해도는 우리 투마해적단 측에서 탐사하기로 약속했을 텐데?”
“정룡도에서 심해도로 이어지는 전송진을 찾아서 들어온 것뿐이다.”
“아 그렇군. 훌륭하다. 그럼 이제 네 부하와 육요 공주도 구했으니, 어서 다시 올라가서 타 해역으로 돌아가라.”
“미안하지만 안쪽에 확인해 봐야 할 게 남아서 말이다.”
“우리 투마해적단이 잘 조사해서 네게 뭐가 있었는지 알려 주마. 올라가라.”
“육요 공주를 얻는 게 네 이번 목적 아니었나? 너야말로 올라가지그래?”
“분명 사전에 심해도는 우리가 조사하기로 했을 텐데. 약속을 지켜라, 마교주.”
나는 진마열을 노려보았고, 진마열도 나를 노려보았다.
“…처음부터 육요가 목적이 아니라, 심해도 내의 보물이 목적이었던 건가?”
“둘 다지. 그래서 불만이냐?”
“불만이라기보다는….”
나는 해룡족의 비사가 그려진 벽화를 흘긋 본 후 말했다.
“안쪽에서 조사해야 할 게 있어서 말이다.”
“내가 조사해서 알려 준다 했다. 나가라.”
“미안하지만, 내겐 꼭 필요한 일이라서 말이지.”
진마열과 나는 서로를 노려보았다.
그리고 다음 순간.
파앗!
찰나의 세계에서 진마열이 괴검을 휘둘렀다.
괴검은 그대로 백린의 머리통으로 향했고, 녀석의 검에는 영역이 덧씌워져 백린의 천원지방을 그대로 베어 낼 수 있는 형태가 되었다.
콰앙!
나는 그대로 육요와 백린을 걷어차, 전송진이 있는 곳으로 날려 보냈다.
“나가라, 백린! 육린 분체는 내가 회 쳐 놓아서 당분간 못 움직인다!”
말을 하는 찰나 사이에 다시 괴검이 움직이며 나를 노렸다.
나는 총천검으로 놈의 괴검을 그대로 튕겨 낸 후 진마열을 노려보았다.
“내게 덤빌 셈이냐? 네 투무는 내 밑이다.”
진마열은 내 말에 씨익 웃었다.
“네 본체는 심히 두려웠지만, 투무밖에 못 쓰는 네 분체 따위는 충분히 상대할 수 있다. 그리고….”
두두두두!
“흐히히히!”
“흐하하하!”
투마해적단의 해적 놈들이, 전송진을 사용하려는 육요와 백린을 에워싸고 포위했다.
나는 놈들을 노려보며 말했다.
“내 수하를 죽이면 현고지로 작성한 계약이 너희를 벌할 것이다.”
내 말에 진마열은 히죽 웃으며 말했다.
“그건 맞는 말이지. 한데 이상하지 않나?”
“뭐?”
“그 계약 내용대로라면, 내가 네놈을 공격했을 때 바로 현고지의 계약에 따라 내게 ‘응징’이 내려져야 했다. 하지만 나는 멀쩡하지. 이게 뭘 뜻하는지 아나?”
“….”
“봉래도의 힘이다! 육린이 봉래도의 대궐을 뜯어 왔기에, 이 심해도에도 지금 봉래도의 규율이 일부 적용되고 있어! 즉, 이 안에서는 계약이 완벽히는 아니더라도 일정 부분 무효화된다는 거지. 어디까지 적용되나 시험해 볼까?”
녀석의 말에 해적단의 사축기 해적들이 히히덕거리며 백린의 몸을 인력으로 짓눌렀다.
“…알겠다. 나가도록 하지.”
나는 이를 살짝 갈며 한발 물러섰다.
그러나 진마열은 내 태도에 광소를 지으며 말했다.
“왜 그러시나? 저 안쪽이 궁금한 게 아니었나?”
“….”
“흐흠, 이거 재미없군. 이러면 안 되지.”
그는 나를 보며 욕정에 찬 눈빛으로 혀를 핥았다.
“내기를 하나 하지.”
“뭐?”
“네놈에게도 좋은 거다. 나와의 내기에서 이기면 네게 투마해적단의 선장 자리를 넘겨주마. 그리고 저 안쪽의 보물들도 전부 네놈을 주지. 안에서 뭘 조사하든 상관 않겠다. 하지만 네가 지면 네 부하의 목숨은 없다. 육요도 내 것이다. 안쪽의 보물도 내가 가지겠다. 그리고 너희 마교 놈들은 영원히 그 심해 깊은 곳 봉래도에 처박혀 있어야겠지. 어떠냐, 구미가 당기지?”
놈이 눈짓을 보내자 투마해적단의 수사들이 백린을 향해 위협적인 법술을 들이대었다.
말은 내기라고 했지만, 사실상의 협박이다.
나는 눈을 감으며 말했다.
“…무슨 내기지?”
“간단하다. 저 안으로 들어가면 아마 육린 놈이 가져간 염정의 대궐이 있겠지. 그 대궐을 먼저 손에 넣는 자가 승리하는 거다! 무슨 방법을 써도 좋다!”
녀석의 눈은 욕정으로 가득 차 있었다.
알 수 있었다.
마침 건수를 잡았으니, 나와 싸우며 욕정을 채우고 싶다는 의념이 여실히 드러난다.
내 본체와는 싸워서 승산이 없지만, 투귀족 특성상 강자와 전투하는 것은 최고의 쾌락일 테니, 분체인 나와 싸우며 쾌락을 느끼려는 것일 터였다.
불쾌해서 못 견딜 정도였다.
그러나 나는 백린을 흘긋 바라본 후 놈을 다시 바라보았다.
“…좋다.”
“하하하! 역시 호탕하군!”
그는 입술을 혀로 핥았다.
나는 침묵하며 가만히 육린의 보물창고 입구를 바라보았다, 다시 진마열과 눈을 마주쳤다.
“시작하지.”
“좋다, 교주!”
잠시 우리는 서로를 노려보았다.
그리고 다음 순간.
타닷!
나와 진마열은 누가 먼저라 할 새 없이, 그대로 석상의 뒤편.
육린의 보물 창고로 날아 들어갔다.
내 수하의 목숨을 건, 진마열과 나의 보물찾기가 시작되었다.